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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나의 기도

본문

이광복 목사
제 목 : 안나의 기도
성경본문 : 눅2:36-38

"또 아셀 지파 바누엘의 딸 안나라 하는 선지자가 있어 나이 매우 늙었더라 그가 출가한 후 일곱해 동안 남편과 함께 살다가 과부 된 지 팔십 사년이라 이 사람이 성전을 떠나지 아니하고 주야에 금식하며 기도함으로 섬기더니 마침 이 때에 나아와서 하나님께 감사하고 예루살렘의 구속됨을 바라는 모든 사람에게 이 아기에 대하여 말하니라"

안나는 히브리어로 한나이다. 안나(Αννα)는 히브리어 한나(הנח)를 헬라어로 음역한 것인데, 「은혜」라는 뜻을 가지고 있다. 구약의 한나는 기도의 사람이었다. 엘리 제사장은 한나가 입술만 동한 채 기도에 심취해 있는 모습을 보고 그녀가 포도주에 취한 줄로 알 정도였다. 오늘 본문의 안나 역시 한나 못지않은 기도의 사람이었다. 안나의 기도의 핵심은 메시아 대망기도이다. 그녀는 정치적으로는 로마의 식민지 아래 살아가는 암담한 현실과 영적으로는 부패되어져 가는 여호와 신앙의 어두운 암흑시대에서 하늘로부터의 빛과 이스라엘의 위로를 대망하며 메시아를 기도로 준비한다. 주님을 기다렸던 안나의 기도는 어떤 모습일까?


1. 성전을 떠나지 않고 한 기도

“...이 사람이 성전을 떠나지 아니하고...”


본문 36-17절을 보면, 안나가 어려운 인생을 살아왔음을 짐작할 수 있다. 당시 유대 사회의 조혼 풍습대로 안나가 14세를 전후하여 결혼했다고 가정하면, 안나는 21살 때에 청상과부가 되어 무려 84년동안 재혼하지 아니하고 홀로 살아 왔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즉, 본문에서 안나의 나이는 이미 100세를 넘어선 상태인 것이다.
더욱 놀라운 점은 100세가 넘은 안나가 성전을 떠나지 않고 주야로 기도했다는 것이다. 여기에서 성전을 떠나지 않고 기도했다는 것은 안나의 기도가 생활화된 것을 의미한다. 즉, 안나는 80여년의 긴 세월동안 성전기도의 삶을 살았음을 알 수 있다.
나는 개인적으로 성경의 3대 기도를 정해보라고 한다면 예수님의 기도와 스데반의 기도와 그리고 안나의 기도를 꼽고 싶다. 안나의 기도를 주목하는 이유는 안나의 기도가 메시아를 대망하고 있기 때문이다.
자신의 기도의 내용에 스스로 귀기울여보라. 사실 우리의 기도가 얼마나 세속적인 면이 많은지 모른다. 오늘 안나를 생각해보라 84년동안 외롭게 살아온 그녀에게 얼마나 번뇌와 갈등과 고통이 많았겠는가? 마음 기댈 수 있는 사람조차 없이 긴긴 외로움을 혼자 견디어낸 가슴 저린 슬픔과 상실감이 너무 커서 밤을 삼키고도 남았을 것이다.
그러나 안나는 그럴수록 주님을 바라보았다. 안나는 주님을 바라보며 광야의 먼 길을 내달려 온 선지자였다. 그녀는 성경의 약속을 믿고 ‘메시아를 눈으로 보겠나이다’라고 대망하였다. 안나는 세속적이며, 육적인 기도에 머무르지 않았다. 안나는 메시아를 대망하며, 성전을 떠나지 않고 기도하였다.


"내가 그를 나의 성산으로 인도하여 기도하는 내 집에서 그들을 기쁘게 할 것이 며 그들의 번제와 희생은 나의 단에서 기꺼이 받게 되리니 이는 내 집은 만민의 기도하는 집이라 일컬음이 될 것임이라" (사56:7)


특별한 경우, 세상을 등지고 기도원에 가서 기도하는 것은 매우 좋은 일이다. 그러나 그것은 어디까지나 특별한 경우이다. 평상시에는 시간을 정하여 성전에 나아와 지속적으로 기도하는 것이 더 바람직하다. 어떤 학자들은 그녀가 성전의 뜰에 거처를 갖고 있었다고 주장하기도하고 또 어떤 학자들은, 그녀가 성전을 떠나지 않았다는 것이 예배 때마다 항상 거기에 있었다는 것을 의미한다고 말한다. 어찌되었건 중요한 것은 안나가 성전 기도의 삶을 살았다는 것이다.
기도의 삶을 사는 것처럼 중요한 일이 있을까? 기도는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니 않는다. 그래서 주님은 사도 바울의 서신을 통하여 ‘쉬지 고 기도하라’고 강조하셨다. 이는 ‘기도의 삶을 살아라’는 말이다. 우리 몸이 성전이니 성전답게 기도의 몸, 기도의 사람, 기도의 삶을 살아라는 말인 것이다. 유대인들은 일찍이 이를 체질화시켜왔다.


"...내 집은 만민의 기도하는 집이라..." (막11:17)


유대인들은 각자의 집에 기도하는 독립된 공간이 있었다고 한다. 베드로가 지붕에 올라간 공간 역시 기도의 공간이었으며, 초대교회 성도들이 날마다 모여 전혀 기도에 힘쓴 공간 역시 기도의 공간 곧 가정교회, 성전이었다. 성전을 떠나지 않고 기도한 안나의 기도는 그녀의 기도가 성전 기도의 삶이었음을 보여주고 있다.
그렇다. 교회기도를 실패하고 특별기도를 성공한다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성전기도를 먼저 성공하고 그런 연후에 특별기도를 하라. 그것이 올바른 수순이다. 안나는 성전에서 지속적으로 메시아를 대망하였다. 메시아의 오심을 믿고 기다렸던 것이다. 그녀의 한 평생 전체가 대망의 삶이었다. 안나는 84년동안의 응어리진 깊은 고독감을 주님 한 분만을 대망하며, 한겨울의 세찬 바람을 견뎌내는 잔솔가지처럼 견뎌냈다. 성전의 기도를 통해서 말이다.
성경은 창세기부터 오실 주님을 대망함으로 시작하여, 계시록 마지막 순간까지 다시 오실 주님을 대망함으로 결론짓는다.


"...여자의 후손은 네 머리를 상하게 할 것이요 너는 그의 발꿈치를 상하게 할 것이니라..." (창3:15)

"이것들을 증거하신 이가 가라사대 내가 진실로 속히 오리라 하시거늘 아멘 주 예수여 오시옵소서" (계22:20)


안나가 메시아를 대망하였듯이 우리는 주님의 재림을 대망하며 기도하여야 한다. 나는 지금도 새벽 3시에 일어나면, ‘주 예수여 오시옵소서 오늘도 주님을 기다리며 은혜의 삶을 살리라’라고 기도한다.
재림을 대망하는 안나의 성전 기도를 드리라. 규칙적이고 지속적으로 기도하다보면, 세상적인 문제들은 잠잠해 지고 아무 것도 아닌 것으로 느껴지는 순간을 경험하게 된다. 나만의 기도공간을 확보하라! 그리고 안나와 같이 성전기도를 드리라! 지속적으로 주님의 재림을 대망하며 기도의 삶을 살아라! 한 차원 높은 기도를 드리라. 오늘 안나의 기도는 생활화된 기도의 정형을 우리에게 보여주고 있다. 얼마나 위대한가! 안나의 성전기도는 기도가 삶 그 자체였다.


2. 주야로 한 기도
“...주야에..”


안나의 기도의 첫 번째 특징이 생활화된 기도였다면 두 번째 특징은 기도의 양이다. 누가는 안나가 주야로 기도하였음에 주목하고 있다. 안나는 84년동안 주야로 성전에서 기도하였다. 주야의 기도는 하루 전체가 기도의 삶이었음을 의미한다. 즉, 안나가 84년간 기도의 삶을 살았다는 것은 그녀의 일평생이 기도의 생애였음을 의미한다. 이 얼마나 아름다운 모습인가?
나는 개인적으로 안나가 성경 인물 가운데 가장 많은 양의 기도를 드린 사람임을 확신하게 되었다. 안나의 연령 때문이기도 하지만 더욱 중요한 것은 성경에서 주는 힌트가 그렇게 생각하게끔 만들기 때문이다. 누가는 본문 36절을 통하여 안나의 신상에 대해 매우 자세히 기록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또 아셀 지파 바누엘의 딸 안나라 하는 선지자가 있어 나이 매우 늙었더라...”


이 짧은 구절은 우리에게 많은 정보를 가져다준다. 누가는 기록하기를 단순히 ‘안나’라고만 하지 않고 아셀 지파 바누엘의 딸 이라고 상세하게 설명해준다. 그것이 무엇이 대수인가 할 수 있지만 누가복음 2장 25절이하에 등장하는 시므온에 대해 주목하여 보라. 누가는 시므온에 대해 매우 간결하게 소개한다.


"예루살렘에 시므온이라 하는 사람이 있으니..." (눅2:25)


시므온은 단지 예루살렘의 시므온이라고 사는 지역만을 언급하고 있으나 안나에 대해서는 족보까지를 언급하고 있는 이유는 무엇인가? 성경에서 등장인물의 족보를 밝히는 경우는 그 등장인물이 역사적인 인물이거나 전파할만한 특별한 이유가 있기 때문이다. 안나가 아셀 지파 사람임을 밝히고 있는 것, 족보를 말해주는 것은 이 사람이 역사적인 인물이라는 것과 안나의 이 아름다운 기도가 전 세계에 전파할만한 가치가 있기 때문이다. 주야의 기도는 결코 쉽지 않은 것이다. 더군다나 안나의 주야기도는 무려 84년 동안 한결같았던 주야의 기도이다.
오늘날의 한국교회의 눈부신 성장원인의 무엇인가? 거의 대부분의 기독교인들은 주저하지 않고 가장 큰 요인이 새벽기도라고 말한다. 그렇다면 오늘날 한국교회가 침체의 기미를 보이는 것은 무엇인가? 물론 많은 이유가 있다. 주일학교의 침체, 교회의 세속주의, 물량주의, 목회자, 임직자들의 타락, 등등이다. 그러나 근본적인 문제는 기도부족이라고 본다. 외람되지만 나는 한국교회의 침체 원인이 한국교회의 기도가 약해져 가기 때문이라고 감히 단언한다. 주야의 기도가 약해져갈 때, 사단은 지체없이 공격을 감행한다.
매일 기도하고 매일 하나님과 만나는 것의 중요성이 잘 나타나 있는 이야기가 있다. 한 그리스도인 상인이 터키의 아르메니아에 있는 한 마을로 물건을 팔기 위해 갔다. 그런데 사막의 대상들을 약탈하는 한 무리의 도적떼가 그 상인 몰래 대상들을 뒤따라가면서 평지에서의 첫 번째 야영 장소에서 그들을 약탈하려는 계획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정해놓은 시간, 어둠이 깔려 있을 때 그들은 접근했다. 아무런 방어태세도, 지키는 파수꾼도 없는 것처럼 보였는데, 막상 그들이 덮쳤을 때 전에 거기에 없던 높은 담을 발견하고서 깜짝 놀라서 혼비백산하여 도망하였다. 그러나 그들은 전열을 가다듬어 다음날 밤에 야습을 기도하였다. 그러나 그 다음날 밤에도 그들은 뛰어넘을 수 없는 똑같은 담을 발견했다.
셋째날 밤에도 그 담은 있었는데 그 날 밤에는 그들이 안으로 들어갈 수 있는 틈이 조금 있었다. 그 도적들의 두목은 이 신비한 일이 두렵기도 하고 궁금해서 그 상인을 깨웠다.
"도대체 이것이 어찌된 일이오? 당신이 떠난 이후 줄곧 우리는 당신을 약탈하려고 쫓아왔소. 첫째날 밤과 둘째날 밤에는 당신들의 주위에 높은 담이 있었소. 만일 당신이 이 모든 비밀을 우리에게 말해준다면 당신을 해치지 않겠소."
그 상인은 놀라 당황하면서 말했다.
“나는 우리 주위에 벽을 쌓지 않았소. 내가 한 것은 오직 매일 아침, 저녁에 나 자신과 나와 함께 한 모든 것들을 하나님께 맡기는 기도를 했을 뿐이오. 나는 모든 악으로부터 나를 지켜달라고 그분께 완전히 맡기고 주야로 기도할 따름입니다.”

주야의 기도는 힘이 있다. 주야의 기도는 나와 하나님과의 사이를 더욱 가깝게 만드는 사닥다리가 되어준다. 나는 안나가 아기 예수를 만날 수 있었던 것도 그녀의 주야기도 때문이라고 본다. 그래서 나는 우리 교회에서 새벽기도를 목숨걸고 할 것을 강조하고 또 강조한다. 나는 파키슨병으로 고생하는 유장로, 암으로 투병중인 정장로 등을 제외한 모든 임직자들에게 안나의 주야의 기도를 하게한다.
우리의 생애가 이제 얼마나 남았는지 돌아보라. 지금부터 주야기도를 한다고 하더라도 우리가 주님께 드릴 수 있는 기도의 시간은 손에 쥘 만큼의 작은 분량에 불과 할 것이다. 초대교회의 제자들이 기도에 전혀 힘쓴 것을 보라. 얼마나 열정적으로 기도하는가?


"여자들과 예수의 모친 마리아와 예수의 아우들로 더불어 마음을 같이하여 전혀 기도에 힘쓰니라"(행1:14)

"쉬지 말고 기도하라" (살전5:17)


안나와 같이 주야로 기도하라. 하루의 시작과 끝을 하나님께 드리고 맡기라. 하루의 시작과 끝을 드린다는 것은 하루 전체, 전 생애를 하나님과 동행하는 것을 의미한다. 에녹을 보라 에녹은 하나님과 동행하는 삶을 살았다. 동행하는 삶의 구체적인 형태가 무엇이겠는가? 그것은 기도이다. 에녹의 기도의 삶이 얼마나 아름다웠던지 하나님은 에녹을 그대로 천국으로 인도해가신다.


"에녹이 하나님과 동행하더니 하나님이 그를 데려가시므로 세상에 있지 아니하였더라" (창5:24)


안나처럼 주야로 기도하라, 하루 전체의 삶을 통하여 하나님과 교제하라. 주야의 기도는 하나님과의 관계가 더욱 깊어지게 해 준다.


3. 금식의 기도

“...금식하며 기도함으로 섬기더니...”


메시아를 대망하며 드린 기도가 금식하였던 기도라는 사실은 우리에게 큰 도전을 주는 대목이다. 우리들도 가끔은 작정하고 금식기도를 한다. 그런데 그 기도의 목적은 대개가 개인적인 일에 국한되어 있다. 진학과 취업, 진급 시험, 가정적인 문제, 사업에 관한 일, 건강 문제, 등에 관련되어 있다. 그런데 안나의 금식기도의 목적은 그런 것들과는 거리가 멀었음을 기억해야 한다.
금식을 하였다 할지라도 재림을 위해 금식하며 기도하는 사람이 얼마나 되는가? 사실 개인적인 기도도 금식하며 기도하기가 쉽지 않다. 그렇다면 주님을 기다리며 금식하는 안나는 도대체 얼마나 간절한 마음을 갖고 주님을 기다렸을꼬?
주님을 향한 안나의 사무치는 그리움은 천개의 학을 접는 것과는 비교를 불허하는 깊은 심연의 그리움이었다. 즉, 안나의 금식기도는 메시야를 향한 목숨을 건 타는 목마름이었다. 메시야에 대한 안나의 대망은 그녀의 생명을 걸게끔 만들었다. 메시아의 오심을 대망하며 금식하는 안나의 기도를 한 적이 있는가? 주님을 향한 사무치는 안나와 같은 그런 기다림이 있는가?


"나의 영혼도 심히 떨리나이다 여호와여 어느 때까지니이까"(시6:3)

"이것들을 증거하신 이가 가라사대 내가 진실로 속히 오리라 하시거늘 아멘 주 예수여 오시옵소서" (계22:20)


나는 오늘도 다시 오실 주님을 기다리며 설교를 준비한다. 그리고 진실로 그 날을 기대하며 준비한다. 나는 지금도 모든 설교가 2~3년 분량이 준비되어 있다. 나는 주님 오실 그 때까지 이 일을 쉬지 않을 것이다. 안나와 같이 자신을 쳐서 기도하며 기다릴 것이다. 금식하며 기다릴 것이다. 위기의 순간이든지 은밀한 중이든지 자신을 쳐서 기도하라. 은밀한 금식은 아버지께서 기억하시고 갚으신다.


"여호사밧이 두려워하여 여호와께로 낯을 향하여 간구하고 온유다 백성에게 금식하라 공포하매"(대하20:3)

"이는 금식하는 자로 사람에게 보이지 않고 오직 은밀한 중에 계신 네 아버지께 보이게 하려 함이라 은밀한 중에 보시는 네 아버께서 갚으시리라"(마6:18)



오늘 안나는 우리에게 기도가 무엇인지를 직접 몸으로 보여주었다. 안나는 성전을 떠나지 않고, 주야로, 금식하며 기도함으로서 여선지자라는 특별한 은혜를 받는다. 이는 물론 목회적 의미는 아니다. 이는 예언적 의미, 선지자적 의미를 갖는 것이다.
안나는 은혜라는 뜻을 가진 자신의 이름대로 주님의 놀라운 은혜를 받았다. 장수하는 은혜를 받았고, 성전에서 가장 오래 기도했던 사람으로 인정받을 만 하였고, 아기 예수님을 안고 기뻐하였던 눈부신 은혜를 받은 사람이었다. 이 위대한 여선지자의 기도를 본받으라. 상상할 수 없었던 놀라운 은혜의 세계가 펼쳐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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