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머니의 사랑
본문
본문: 사49:15
한태완목사
"여인이 어찌 그 젖 먹는 자식을 잊겠으며 자기 태에서 난 아들을 긍휼히 여기지 않겠느냐 그들은 혹시 잊을지라도 나는 너를 잊지 아니할 것이라"
어머니와 단둘이 사는 청년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청년은 외출에서 돌아오다가 뜻하지 않게 교통사고를 당했습니다. 소식을 듣고 몹시 놀란 어머니가 가슴 졸이며 병원에 달려갔지만, 불행히도 청년은 이미 두 눈을 실명하고 말았습니다. 멀쩡하던 두 눈을 순식간에 잃어버린 청년은 깊은 절망에 빠져 자신에게 닥친 상황을 받아들이려 하지 않았습니다. 그는 어느 누구와도 말 한 마디하지 않고 마음의 문을 철저하게 닫은 채 우울하게 지냈습니다. 바로 곁에서 그 모습을 말없이 지켜보는 어머니의 가슴은 말할 수 없이 아팠습니다. 그렇게 지내던 어느 날, 청년에게 기쁜 소식이 전해졌습니다. 이름을 밝히지 않은 누군가가 그에게 한쪽 눈을 기증하겠다는 것입니다. 하지만 깊은 절망감에 빠져 있던 그는 그 사실조차 기쁘게 받아들이지 못했습니다. 결국 어머니의 간곡한 부탁으로 한쪽 눈 이식 수술을 마친 청년은 한동안 붕대로 눈을 가리고 있어야 했습니다. 그때도 청년은 자신을 간호하는 어머니에게 앞으로 어떻게 애꾸눈으로 살아가냐며 투정을 부렸습니다. 하지만 어머니는 청년의 말을 묵묵히 듣고만 있었습니다. 꽤 시간이 지나 드디어 청년은 붕대를 풀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붕대를 모두 풀고 앞을 본 순간 청년의 눈에는 굵은 눈물 방울이 떨어지고 말았습니다. 그의 앞에는 한쪽 눈만을 가진 어머니가 애틋한 표정으로 아들을 바라보고 있었던 것입니다.
"두 눈을 다 주고 싶었지만, 그러면 네게 나의 장님 몸뚱이가 짐이 될 것 같아서..." 어머니는 끝내 말을 다 잇지 못했습니다.
<가정>이란 말을 할 때 제일 먼저 떠오르는 얼굴은 누구입니까? 그것은 '어머니의 얼굴'일 것입니다. 어느 가정이나 가정의 구심력은 어머니이기 때문일 것입니다. 그러기에 사람들의 마음속에 항상 그리운 곳이 있다면 자기의 고향이며, 가장 보고싶은 사람이 있다면 그것은 어머니일 것입니다. 사람은 누구나 어머니 태에서 10개월간 지냈고, 그 품에서 어머니의 심장의 고동을 들으며 자랐기 때문에 이것은 당연한 일일 것입니다. 어려서 엄마의 사랑의 냄새는 눈을 감고도 알 수 있는 냄새이었습니다. 저의 어머니는 이미 하늘 나라에 가셨지만, 여전히 그 어머니의 사랑의 냄새는 영원토록 기억되고 있습니다. 그러기에 그리운 분은, 보고싶은 분은 어머니이십니다. 어머니의 품은 모든 자식들의 영원한 마음의 고향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오늘은 어머니의 사랑에 대해서 말씀을 통해 상고하고자 합니다.
1. 어머니의 사랑은 주님 사랑을 닮은 사랑입니다.
일본의 전설에 이런 이야기가 있습니다. 어느 홀어머니를 모시고 있는 아들이 자라서 어떤 여자를 알게 되고 교제하다가 결혼까지 하기로 약속하였습니다. 그런데 불행히도 이 여자가 무서운 병에 걸렸습니다. 이 병은 시간을 다투는 병이었습니다. 더구나 이 병을 고치는 약은 매우 구하기 어려운 것이었습니다. 왜냐하면 산 사람의 간(肝)을 먹어야 낫는다는 병이었기 때문입니다. 이 청년은 자기의 애인을 살리려는 욕심에 그만 어머니를 살해하여 어머니의 간을 꺼내 가지고 자기 애인이 있는 곳으로 정신 없이 달려가고 있었습니다. 그때 빨리 뛰어가고 잇는 아들에게 어머니의 혼이 나타나 "얘야, 너무 빨리 뛰어가다가 넘어질라!" 하였다고 합니다. 이것은 전설입니다. 그러나 여기서 우리는 어머니의 사랑이 얼마나 큰가를 봅니다. 종교 심리학자들의 말에 의하면 부모의 사랑을 받아 본 경험이 없는 사람에게 하나님의 사랑에 대하여 아무리 설명해도 잘 깨닫지를 못한다고 합니다. 즉 우리는 어머니의 사랑을 통해서 하나님의 사랑을 배우게 됩니다. 어머니의 사랑은 희생적인 사랑이기 때문입니다. 사람간의 사랑으로 어머니가 자녀를 사랑하는 것보다 더 큰사랑은 없습니다. 그러므로 어머니의 사랑은 주님의 사랑을 알게 합니다. 완전한 사랑은 자기 전체를 희생하면서 자기 생명을 주는 것입니다. 자기 희생이 최상의 사랑입니다. 사랑하는 자식이나 부모, 아내나 이웃을 위하여 자기 전체를 송두리째 나누어주는 것입니다. 이것이 참으로 큰사랑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우리에게 진리의 말씀만을 가르치신 것이 아니라 예수님의 몸과 생명 전체를 주셨습니다. 석가나 공자는 우리에게 도덕과 철학을 주었지만, 그의 생명 자체는 주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는 그의 사랑으로 자신의 몸 전체를 우리에게 주신 까닭에 그분이 우리에게 최고의 선생이 되신 것입니다.
프랑스 전쟁 때, 오른 팔에 총탄을 맞은 어느 사병이 육군병원에서 수술을 받게 되었는데, 결국 그 팔을 자르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수술하기 직전에 군의관이, "안타까운 일입니다만 당신의 팔을 이제 잃어버리게 되었소"라고 말했습니다. 그때에 그 사병은, "잃어버린 것이 아니라, 이 팔은 내 조국에 바쳤습니다."라고 말했다고 합니다. 성경에 이르기를 "그가 우리를 위하여 목숨을 버리셨으니 우리가 이로써 사랑을 알고, 우리도 형제들을 위하여 목숨을 버리는 것이 마땅하리라"(요일3:16)고 하였습니다.
2. 어머니의 사랑은 환경을 초월합니다.
매우 가난한 어머니가 있었습니다. 고등학생인 아들이 책을 사달라고 졸랐습니다. 소년을 극진히 사랑했던 어머니는 서점으로 달려가 아들이 원하는 책을 사다주었습니다. 그 날밤, 어머니는 머리에 수건을 두른 채 잠자리에 들었습니다. 소년이 밤중에 어머니의 머리를 풀어보니 머리카락이 몽땅 잘려 있었습니다. 어머니는 머리카락을 팔아 아들의 책을 샀던 것입니다. 소년은 삭발모정(削髮母情)에 통곡했습니다. 그리고 어머니의 사랑을 가슴에 품고 열심히 공부해 훌륭한 목사가 됐습니다. 그가 바로 활빈교회 김진홍 목사입니다. 이와 같이 어머니의 사랑은 환경을 초월합니다.
3. 어머니의 사랑은 이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모습입니다.
KBS방송 프로그램 가운데 행복한 세상에서 나왔던 이야기입니다. 남편은 세상을 떠났고 딸 하나 데리고 어렵게 사는 어머니가 분식점을 하면서 이 딸을 잘 키우기 위해서 애쓰는데 고등학교에 다니는 이 딸이 미술에 소질이 있다고 해서 미술학원에 보냅니다. 어느 날 분식점에서 일을 하는데 비가 오더니 장대비가 막 쏟아집니다. 어머니는 깜짝 놀라서 딸이 돌아올 때가 된 것을 알고 우산 두개를 가지고 미술학원으로 달려갔습니다. 아무 생각 없이 가서 학원 문 앞에 서서 보니 아차 일하던 모습 그대로 왔습니다. 앞치마를 둘렀고 옷은 말이 아니고 밀가루가 덕지덕지 붙어 있습니다. 이런 모양을 하고 학원에를 왔습니다. 이를 어쩌나 아이들이 보면 잠수성이 예민한 우리 딸이 부끄럽다고 생각할 텐데 그러나 이제는 어떨 수 없었습니다. 우산 둘을 들고 처마 밑에 서 있는데 시간이 되어 이층에서 딸이 내려다보아서 엄마가 왔다하고 손을 흔드는데 딸이 나오지를 않습니다. 엄마 꼴이 말이 아니어서 창피하다고 나오지 않는 모양이다 생각을 하고 그냥 집으로 돌아 왔습니다.
너무나 속이 상해서 한 달 동안 말을 안 했는데 한 달 후에 딸이 그림을 잘 그렸다고 미술 발표회에서 상을 받는다고 해서 미술학원에 갔습니다. 딸이 특상을 받았는데 수상작품의 제목이“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모습”이었습니다. 어머니의 모습을 그린 그림입니다. 우산 둘을 들고 서 있는 어머니 앞치마를 두르고 밀가루가 덕지덕지 묻어있는 어머니가 비속에서 딸이 나오기를 바라보고 있는 그 날의 그 어머니 모습을 그리고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모습이라는 제목을 붙였습니다. 어머니는 너무도 고마워서 딸을 얼싸 안고 행복에 겨워했습니다.
"자녀들아 모든 일에 부모에게 순종하라 이는 주안에서 기쁘게 하는 것이니라"(골3:20)
4. 어머니의 사랑은 우리 주님의 십자가의 사랑을 닮았습니다.
눈이 수북히 쌓이도록 내린 어느 겨울날, 강원도 깊은 골짜기를 두 사람이 찾았습니다. 나이가 지긋한 한 사람은 미국 사람이었고, 젊은 청년은 한국 사람이었습니다. 눈 속을 빠져나가며 한참 골짜기를 더듬어 들어간 두 사람이 마침내 한 무덤 앞에 섰습니다. "이곳이 네 어머니가 묻힌 곳이란다"
나이 많은 미국인이 청년에게 말했습니다. 그러면서 지난날을 회상합니다.
한 미국 병사가 강원도 깊은 골짜기로 후퇴를 하고 있었는데, 무슨 이상한 소리가 들려왔습니다. 가만 들어보니 아이 울음소리였습니다. 울음소리를 따라가 봤더니 소리는 눈 구덩이 속에서 들려오고 있었습니다. 아이를 눈에서 꺼내기 위해 눈을 치우던 미국병사는 소스라쳐 놀라고 말았습니다. 거기에 또 한번 놀란 것은 흰눈 속에 파묻혀 있는 어머니가 옷을 하나도 걸치지 않은 알몸이었다는 사실이었습니다. 피난을 가던 어머니가 깊은 골짜기에 갇히게 되자 아이를 살리기 위해 자기가 입고 있던 옷을 모두 벗어 아이를 감싸곤 허리를 꾸부려 아이를 끌어않은 채 얼어죽고만 것이었습니다. 그 모습에 감동한 미군병사는 언 땅을 파 어머니를 묻고, 어머니 품에서 울어대던 갓난아이를 데리고가 자신의 아들로 키웠습니다. 아이가 자라 청년이 되자 지난날 있었던 일들을 다 이야기하고, 그때 언 땅에 묻었던 청년의 어머니 산소를 찾아온 것이었습니다. 이야기를 들은 청년이 눈이 수북히 쌓인 무덤 앞에 무릎을 꿇었습니다. 뜨거운 눈물이 볼을 타고 흘러내려 무릎아래 눈을 녹이기 시작했습니다. 한참만에 청년은 자리에서 일어났습니다. 그러더니 입고 있던 옷을 하나씩 벗기 시작했습니다. 마침내 그는 알몸이 되었습니다. 청년은 무덤 위에 쌓인 눈을 두 손으로 정성스레 모두 치워냈습니다. 그런 뒤 청년은 자기가 벗은 옷으로 무덤을 덮어가기 시작했습니다. 마치 어머니께 옷을 입혀 드리듯 청년은 어머니의 무덤을 모두 자기 옷으로 덮었습니다. 그리고는 무덤 위에 쓰러져 통곡을 합니다. "어머니, 그 날 얼마나 추우셨어요.!"
주님께서도 우리를 살리시기 위해 그 분이 가진 모든 것을 우리를 위해 내어주셨습니다. 물 한 방울, 피 한 방울까지도...
5. 어머니의 사랑과 인생은 우리 그리스도인이 본받아야 할 희생적인 사랑이요 봉사의 삶입니다.
수년 전 성탄절을 앞둔 12월 어느 날. 옛 소련에 속해 있던 아르메니아에서 대지진이 일어났습니다. 수많은 사람이 죽고 부상한 비극적 대참사였습니다. 그때 9층짜리 아파트가 무너지면서 생긴 철근과 콘크리트 틈새에서 스잔나라는 어머니와 가이아니라는 네 살 된 딸이 가까스로 목숨을 유지한 채 구조되기만을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생각처럼 빨리 구조되지 않고 하루 이틀 사흘 자꾸만 시간이 흘러갔습니다. 가이아니는 점점 기진맥진해가고 있었습니다. 그때 어머니 스잔나는 언젠가 TV에서 조난 당한 사람들이 먹을 것, 마실 것이 없자 피를 나누어 마시던 장면이 생각났습니다. 스잔나는 주변에서 유리조각을 찾아 자기 팔뚝을 그어 흐르는 피를 사랑하는 딸의 입에 떨어뜨렸습니다. 그렇게 수일을 버텼고 극적으로 구조대에 발견되어 생명을 건질 수 있었습니다. 이 이야기는 많은 사람의 마음에 큰 감동을 주었습니다. 그야말로 가이아니는 어머니 피흘림 때문에 살아난 것입니다. 우리 인간 또한 우리 죄의 삯으로 영원한 하나님의 진노와 멸망과 사망의 그늘에서 2000년 전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거룩한 피흘림 사건으로 구원받은 것입니다. 즉, 주님의 십자가 희생의 죽음이 없었다면 우리 인간은 죄악의 심판에서 구원될 수 없었던 것입니다.
6. 어머니라는 말은 이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이름입니다.
어머니! 라는 이 말을 통하여 느껴지고 깨달을 수 있는 것이 무엇이겠습니까? '어머니는 그래도 되는 줄 알았습니다.'라는 글을 소개합니다.
어머니께서 하루종일 밭에서 죽어라 힘들게 일해도 어머니는 그래도 되는 줄 알았습니다. 찬밥 한 덩이로 홀로 대충 부엌에 앉아 점심을 때워도 어머니는 그래도 되는 줄 알았습니다. 한겨울 차가운 수돗물에 맨손으로 빨래를 방망이질해도, 어머니는 그래도 되는 줄 알았습니다. 배부르다, 생각 없다, 식구들 다 먹이고 당신은 굶어도, 어머니는 그래도 되는 줄 알았습니다. 발뒤꿈치 다 헤져 이불이 소리를 내도, 어머니는 그래도 되는 줄 알았습니다. 손톱을 깎을 수조차 없이 닳고 문드러져도, 어머니는 그래도 되는 줄 알았습니다. 아버지가 화내고 자식들이 속썩여도 끄떡없는 어머니의 모습… 돌아가신 외할머니가 보고 싶으시다고… 외할머니가 보고 싶으시다고…
그것이 그냥 넋두리 인줄만 알았더니… 한밤중 자다 깨어 방구석에서 한없이 소리 죽여 울던 어머니를 본 후론…… 어머니는 그러면 안 되는 것이었습니다. 어머니, 사랑합니다.
어머니! 이 말 속에서 사랑이 무엇인지를 깨닫게 합니다. 어머니는 자신의 몸 안에서 우리의 생명을 잉태하였고, 핏줄로 이어진 생명의 영양소를 공급해 주었습니다. 그리고 죽음을 각오한 산고(産苦)의 고통을 감내하면서 우리를 낳으셨고, 진자리 마른자리를 갈아주면서 키워주셨습니다. 그뿐만 아니라 온갖 정성을 다하여 배움의 길로 인도하였고, 한 사람의 독립적인 인격이 형성되도록 모든 것을 참고 인내해 주었습니다. 이 모든 과정에서 우리에게 깨닫게 한 것은 그 분, 어머니의 사랑입니다. '철이 없다' '있다' 하는 차이를 어디서 느낄 수 있습니까? 어머니의 사랑을 알게 되는 것을 기준으로 판단하게 됩니다. 아무리 키가 크고 몸집이 불어났어도 어머니의 사랑을 모르고 있다면, 아직도 철없는 어린애일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기에 사랑이 무엇인지 우리에게 보여준 분은 어머니입니다. 어머니의 그 사랑으로 오늘 우리는 어른이 되어 이렇게 존재합니다. 우리의 모든 존재의 밑바탕은 어머니의 사랑입니다. 이것을 부정할 사람이 누구이겠습니까?
'어머니!' 이 말 속에서 한없는 안식을 느끼고 어머니의 냄새 속에서 잃었던 동심의 세계를 떠오르게 합니다. 비록 인생 길에서 방황하던 자식도 '어머니!' 라고 부르는 소리에 눈물짓고 돌아섭니다. 어머니는 자식들 마음속에 영원한 사랑으로 각인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기에 하나님의 사랑을 어머니의 사랑으로 나타내 주었습니다.
본문에 "여인이 어찌 젖 먹는 자식을 잊겠으며 자기 태에서 난 아들을 긍휼히 여기지 않겠느냐"고 하였습니다. 하나님의 사랑을 어머니의 사랑을 통하여 깨달아 알게 된다는 말입니다.
어머니! 이 말 속에서 주님의 사랑의 교훈을 실천하게 됩니다. 하나님의 아들인 예수 그리스도는 육신의 부모를 온전히 순종하였습니다. 그리고 십자가에서 인류의 대 구속사역을 감당하는 순간에서도 어머니를 생각하였습니다. 우리 주님은 십자가상에서도 육신의 어머니를 제자들에게 부탁하셨습니다.
(요한복음 19:23- 27) "군병들이 예수를 십자가에 못 박고 그의 옷을 취하여 네 깃에 나눠 각각 한 깃씩 얻고 속옷도 취하니 이 속옷은 호지 아니하고 위에서부터 통으로 짠 것이라 군병들이 서로 말하되 이것을 찢지 말고 누가 얻나 제비 뽑자 하니 이는 성경에 저희가 내 옷을 나누고 내 옷을 제비 뽑나이다 한 것을 응하게 하려 함이러라 군병들은 이런 일을 하고 예수의 십자가 곁에는 그 모친과 이모와 글로바의 아내 마리아와 막달라 마리아가 섰는지라 예수께서 그 모친과 사랑하시는 제자가 곁에 섰는 것을 보시고 그 모친께 말씀하시되 여자여 보소서 아들이니이다 하시고 또 그 제자에게 이르시되 보라 네 어머니라 하신대 그 때부터 그 제자가 자기 집에 모시니라"
제자에게 어머니를 부탁하는 모습을 보면서 그가 얼마나 부모를 공경했었는지를 알 수 있습니다. 주님의 이 말씀을 통하여 우리들 그리스도의 제자 된 입장에서, 그리고 그리스도의 몸을 이루어 가는 공동체인 교회가 어른들을 어떻게 공경해야 할 것인지를 깨닫게 됩니다.
어머니! 이 말 속에서 사람됨의 기본을 알게 합니다. 자기의 어머니를 공경하는 사람이라면 어머니와 같은 어른들을 공경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자신의 어머니를 사랑한다면 내 형제의 어머니도 사랑하지 않을 수 없기 때문입니다. 이것이 인지상정(人之常情)입니다. 성경은 인생의 아름다운 것을 이렇게 표현하고 있습니다.
"젊은 자의 영화는 그 힘이요 늙은 자의 아름다운 것은 백발이니라"(잠20:29)
"백발은 영화의 면류관이라 의로운 길에서 얻으리라"(잠16:31)
무슨 말씀입니까? 늙음의 상징인 백발이 누구에게나 다 있을 수 있는 것이 아니란 말입니다. 우선 건강의 복을 타고나야 하고, 의로운 길에서 얻을 수 있는 것이라고 하였습니다. 술 주정꾼, 악당들, 패륜아들에게서 백발을 기대할 수 없다는 말입니다. 백발이란 인생의 갖은 풍상을 다 겪으면서 인내로서 승리한 표상입니다. 이것이 우리들의 어머니들입니다.
영적으로 보면 교회는 가정입니다. 사랑의 공동체를 이루어 가는 큰 가족입니다. 주님의 사랑을 실천하며 살아야 할 모델입니다. 먼저 교회 안에 어른들을 공경함이 있어야 하겠습니다. 교회 안에 어른들을 모두 내 부모처럼 모셔야 하겠습니다. 디모데전서 5:1-2절에도 "늙은이를 꾸짖지 말고 권하되 아비에게 하듯 하며 젊은이를 형제에게 하듯 하고 늙은 여자를 어미에게 하듯 하며 젊은 여자를 일절 깨끗함으로 자매에게 하듯 하라"고 하였습니다. 믿음 좋다는 것을 어디에서 볼 수 있겠습니까? 생활 속에서 볼 수 있는데, 그것은 어른을 대하는 태도를 보아야 할 것입니다.
참으로 성숙한 신앙의 소유자들이라면 우리 주님처럼 가정에서 우선 부모를 공경해야 할 것입니다. 이것이 옳은 일이고 약속 있는 계명이라고 하였습니다. 땅에서 잘 되고 장수하리라는 약속이 있는 계명이 바로 부모를 공경하라는 계명입니다. 그런데 그것을 잘 순종하지 못하는 것이 우리들의 형편입니다. 요즘 부모를 모른척하고 있는 자식들이 얼마나 많습니까? 극단적인 일이지만, 이민가면서 자기 자식새끼들만 함께 가버린 불효자식도 있는 것을 보았습니다. 자기를 낳은 어머니를 버리고 가는 놈이 무슨 잘 되기를 바라겠습니까? 그 놈은 또 자기 자식들에게 그렇게 버림을 당하고야 말 것입니다. 옛 시절에는 고려장이라는 제도가 있었습니다. 그러나 오늘의 불효자식들처럼 그렇게 버리지는 아니했습니다.
먹고살기 어려운 때에 고려장이란 풍습이 있었습니다. 고려장은 나이가 많은 어머니나 아버지를 깊은 산중에 버리는 것입니다. 어느 아들이 늙은 어머니를 더 이상 봉양하지 못하고 지게에 어머니를 지고 깊은 산 속으로 들어갑니다. 지게를 지고 깊숙이 들어가는데 어머니가 계속 꽃나무 가지를 꺾어서 길에 뿌립니다. 자꾸 나뭇가지를 부러뜨리는 소리가 나자 아들이 묻습니다. "어머니 무엇 때문에 나뭇가지를 꺾어 버립니까?"
"표시하려고 그런다." "돌아갈 것까지 걱정하십니까?"
"아니다, 나는 가면 못 온다는 것을 안다. 그러나 네가 돌아갈 때 길을 잃어버릴까봐 표시해 두는 것이다.."
아들은 하늘이 무서워 돌아왔습니다. 그 후 어머니를 잘 봉양했다고 합니다.
(잠20:20)"자기의 아비나 어미를 저주하는 자는 그 등불이 유암 중에 꺼짐을 당하리라"
(신5:16) 너는 너의 하나님 여호와의 명한대로 네 부모를 공경하라! 그리하면 너의 하나님 여호와가 네게 준 땅에서 네가 생명이 길고 복을 누리리라! 모정(母情)이라는 글을 읽으면서 어머니의 사랑을 다시 그려봅니다. 보름달이 뜬 깊은 밤, 멀리 마을에서 개 짖는 소리가 희미하게 들려오고 있었습니다. 어머니를 등에 업은 아들은 자꾸만 흘러내리는 눈물 때문에 몇 번이나 발을 헛디뎠습니다. 등에 업힌 어머니는 잠이 들었는지 아무 기척이 없었습니다. 늙은 노인을 산에 갖다 버리라는 국법을 따르기는 하지만, 분하고 원통해서 그대로 주저앉아 통곡이라도 하고 싶었습니다. 산중턱을 지나자 얼마 전부터 눈여겨봐 두었던 조그만 바위동굴이 나왔습니다.
아들은 그 안에 들어가 마른풀을 쌓은 한쪽에 어머니를 눕히고 작은 모닥불을 피워놓고 풀로 어머니 어깨를 덮어 드렸습니다. 그러자 또 눈에서 눈물이 어른거렸습니다.
"얘야, 어서 돌아가거라. 밤이 깊었구나."
어머니가 염려하며 나직이 말하자 아들은 무릎을 꿇고 입을 열었습니다.
"어머니, 이틀에 한 번씩 양식을 가지고 들르겠으니 부디 몸조심하십시오."
"괜찮다. 애들 먹일 양식도 부족할 텐데... 걱정 말아라. 내가 알아서 산열매나 나무 뿌리를 찾아 먹으마."
어머니의 눈에도 그렁그렁 눈물이 맺혔습니다. 아들은 더 이상 그곳에 있을 수가 없어 어머니에게 인사하고 막 동굴을 나가려고 했습니다. 그때, 어머니가 아들을 부르더니 주머니에서 헝겊에 꼬깃꼬깃하게 싼 뭔가를 내밀어 손에 꼭 쥐어 주었습니다. 그것은 아내가 저녁마다 어머니의 간식거리로 드렸던 누룽지였습니다.
"너희가 악한 자라도 좋은 것으로 자식에게 줄줄 알거든..."(마태복음7: 11)
불란서 혁명시 어떤 어머니가 세 아들과 함께 집에서 쫓겨나 며칠동안을 산 속과 들판을 헤매었습니다. 부인과 아들들은 나무 뿌리와 풀잎을 먹고 연명했습니다. 사흘째 되던 날, 군인들이 다가오는 것을 보고 덩굴 속에 숨었습니다. 군인상사는 덩굴 속에 인기척이 잇는 것 같으니 찾아보라고 병사에게 명령했습니다. 한참 후에 어머니와 아이들이 끌려나왔습니다. 군인상사가 그들을 본 순간 그들이 굶어 죽기 직전에 있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군인 상사는 너무 측은해서 빵 한 덩어리를 어머니에게 주었습니다. 어머니는 굶주린 이리처럼 그 빵을 얼른 받아 세 조각으로 나누더니 아이들에게만 나누어주었습니다. 이것을 본 군인 상사가 말했습니다.
"애들에게만 주고 자기는 안 먹는구나!"
그 옆에 있던 사병이 "아마 배가 안 고픈가 보죠"라고 말하자, 다시 상사가 하는 말이 "아니다. 어머니라서 그렇지"라고 말했습니다. 자식을 사랑하기 때문에 자기는 먹지 않고 배고픈 자기 아이들에게 아낌없이 다 준 것입니다. 사랑은 자기의 유익을 구치 아니하고, 사랑은 항상 아낌없이 주려 하고 또 사랑은 항상 기쁨과 슬픔을 함께 나눕니다.
우리는 이 시간 어머니의 사랑을 통하여 주님의 사랑을 깨달으시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부모님의 사랑과 은혜를 보답하기 위해 부모님을 공경하고, 순종하고, 사랑하고, 봉양하고, 기쁘게 해드려야 합니다.
성도 여러분, 아무쪼록 부모님이 살아 계실 때 부모에 대한 자녀의 의무를 다하시는 성도님들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 기도: 사랑의 하나님 아버지, 우리에게 어머니를 주시고 사랑하심을 감사합니다. 부모를 공경하면 잘 되고 땅에서 장수한다는 말씀을 믿습니다. 이 축복을 우리가 받게 하옵소서 육신이 부모는 잠깐 함께 있지만 하나님은 영원한 부모입니다. 이 영원하신 부모이신 하나님을 우리가 깨닫게 하옵소서 어떤 일을 하든지 영의 부모이신 하나님의 뜻을 생각하고 따르게 하옵소서. 또 하나님의 뜻이 무엇이든지 간에 이 뜻에 순종하고 복종하는 마음을 허락하여 주옵소서 영의 부모이신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행동과 일을 하도록 도와주소서. 우리가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고 말씀에 순종할 때 육의 부모에게도 순종할 줄 믿습니다. 오늘도 우리의 마음이 땅의 부모와 하늘의 부모를 생각하고 사랑하므로 우리의 삶에 기쁨이 넘치게 하옵소서. 부모를 생각하는 우리의 마음에 범사가 잘 되고 형통하는 길을 열어주시옵소서. 오늘 주님 안에서 누리는 축복과 은혜와 도우심에 감사, 감격하는 자가 되게 하옵소서. 우리 주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한태완 목사
* 묵상 및 토의
0 예수님의 사랑과 어머니의 사랑에 대해 이야기하세요
0 우리가 왜 부모를 공경하고, 부모에게 순종하고 봉양해야 합니까?
0 부모에 대한 순종은 그리스도께 대한 순종과 의무의 한 부분인 것을 기억합니까?
0 나는 연로하신 부모님을 잘 섬기고 있는가?
0 나는 부모님의 훈계의 말씀을 경청하고 있는가?
0 나는 얼마나 부모님을 위해 기도하는가?
0 현재의 나의 위치에서 부모님께 효도할 수 있는 일은 무엇일까?
0 나는 부모님의 은혜에 대하여 감사하고 있는가?
0 나는 나 자신을 효자라고 생각하는가? 아니면 불효자라고 생각하는가?
0 나의 가정은 주안에서 부모님의 뜻을 받드는 아름다운 가정인가?
* 금언:
0 코끼리는 코를 짐이라고 생각지 않는다. 어머니는 제 아이를 짐이라고 생각지 않는다.(아프리카 속담)
0 자식을 아는 일에 아버지를 따를 사람이 없다.
0 아버지의 덕행은 최고의 유산이다.
0 자식은 부모의 행위를 그대로 비취어 주는 거울이다.
0 어머니는 우리 마음속에 열을 주고, 아버지는 빛을 준다.
0 나쁜 아비라도 나쁜 자식을 원하지 않는다.
0 어머니는 우리 마음에 온화함을 주고 아버지는 빛을 준다.(장 파울)
0 부모의 역할은 아이를 위험에서 멀리 떼어 놓는 일이 아니라 다쳤을 때에 대비, 붕대를 준비해 놓고 아이가 하는 일을 지켜보는 것이다.
* 어머니를 산 사람
어느 날 신문에 나이 드신 어머니를 판다는 광고가 실렸습니다. 그 날 저녁 한 부부가 광고에 적힌 주소를 보고 그 집을 찾아갔는데, 집은 상상외로 웅장했습니다. 벨을 누르자 한 노파가 그들을 맞았습니다. 남편이 노파에게 물었습니다.
"어느 분을 파시는 거죠?"
"바로 나라오. 그런데 남들은 있는 부모도 안 모시려고 하는 세상에 당신들은 무슨 생각으로 늙은 어머니를 사려고 하오?"
"저와 제 아내 모두 어려서 부모를 잃었답니다. 그래서 저희는 항상 부모님을 모시고 행복하게 사는 모습을 부러워했지요. 그리고 마침 신문에 광고가 났기에 찾아왔습니다."
머리를 긁적이는 남편의 말에 노파는 빙그레 웃으면서 말했습니다.
"뜻이 맞으니 이것으로 거래가 성사되었군. 그럼 이제부터 어머니로서 말을 놓겠다. 아무래도 너희 가족이 이 집으로 와서 함께 사는 것이 좋겠다."
"그게 무슨 말씀이세요?"
"너희 부부의 차림새를 보니 넉넉한 것 같지 않은데, 어떻게 나를 모시고 살겠느냐? 그러니 너희가 이 집에서 함께 살자꾸나."
"그럼 왜 스스로 돈을 받고 팔겠다고 광고를 하신 겁니까?"
"만일 내가 양자를 구한다고 해보아라. 아마도 사람들이 구름 떼처럼 몰려들겠지. 하지만 모두 돈을 보고서 오는 것이다. 그러나 너희는 없는 살림에도 나를 사러왔으니 진정 내 아들딸이 될 자격이 있다. 지금부터 이 집과 재산은 너희 것, 아니 우리 것이다. 나는 너희 가족과 한 식구가 되어 남은 여생을 행복하게 보내고 싶구나."
연로하신 부모님들을 짐스러워 하는 오늘의 세대를 향한 좋은 교훈의 메세지입니다. 성경에서는 분명히 이렇게 약속하고 있습니다.
"네 아버지와 어머니를 공경하라 이것이 약속 있는 첫 계명이니 이는 네가 잘되고 땅에서 장수하리라"(엡6;2~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