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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스도의 성품에 참여하라 (벧후 1:3-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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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스도의 성품에 참여하라 (벧후 1:3-11)
- 설교 : 윤정현 목사

오늘은 우리 대선교회의 성도들이 한 해를 함께 추구해야 할 교회의 표어를 함께 나누려고 합니다. 우리 함께 하시겠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성품에 참여하자" 이것이 금년도 우리 신앙 인격의 목표가 되겠습니다. 우리 신앙의 목표가 무엇입니까? 4절을 함께 읽겠습니다. "이로써 그 보배롭고 지극히 큰 약속을 우리에게 주사 이 약속으로 말미암아 너희로 정욕을 인하여 세상에서 썩어질 것을 피하여 신의 성품에 참예하는 자가 되게 하려 하셨으니" 즉 신의 성품에 참여하는 것입니다. 그 성품을 계발하여 가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닮아 가는 것입니다.

사실 우리는 전에 마귀를 닮은 삶을 살았습니다. 그런데 이제 예수 그리스도를 믿은 후에는 영원한 생명을 받아서 하나님의 성품을 소유하게 된 것입니다. 마치 옛날 아브라함의 가정과 같습니다. 처음에 이스마엘이 태어났는데, 그는 약속의 자녀가 아니었습니다. 그 후! 14년이 되어 이스마엘이 청소년이 되었을 때에 죄의 씨로 태어났기 때문에 아이가 망나니와 같았습니다. 그래서 "사나운 들나귀"같다고 했습니다. 그때에 이삭이 출생한 것입니다. 이삭과 이스마엘은 나이 차이가 14년 정도 됩니다. 두 아이는 한 집에서 자랐습니다. 하나는 악의 성품을 가지고 태어났고, 이삭은 하나님의 성품을 가지고 태어났습니다. 이스마엘과 이삭이 한 가정에서 자라 가는 모습이 바로 우리들의 모습니다. 우리의 가슴속에는 이삭도 있고, 이스마엘도 있다는 말씀입니다. 이스마엘이 크고 힘이 있기 때문에 이삭을 괴롭게 합니다. 이삭이 17세 형에게 어떻게 당하겠습니까? 그러니까 두드려 맞습니다. 이것이 예수를 처음 믿을 때의 나의 모습니다. 오랫동안 이 죄성이 나를 지배하고 괴롭게 합니다. 나를 죄와 세상으로 끌고 갑니다. 그런데 이 집에 예수를 믿어 이삭이 태어났습니다. 그러나 이스마엘과 이삭이 항상 충돌합니다. 그래서 집안이 평안치 못합니다. 예수를 믿어도 마음이 편치 않은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는 것입니다.

그러면 집안이 평안 하려고 하면 어떻게 해야 하겠습니까? 이삭이 이스마엘의 멸시 천대를 받지 않으려고 하면 어떻게 해야 하겠습니까? 이삭이 빨리 성장하면 되겠지요! 이삭의 힘이 강해지면 이길 수 있겠습니다. 이삭이 빨리 성장하면 됩니다. 아브라함 집에 사라와 하갈, 이스마엘과 이삭이 함께 있을 때에는 집안에 불화가 끊임없었습니다. 후에 아브라함이 하갈과 이스마엘을 그 집에서 내어쫓습니다. 그때에야 비로소 아브라함의 집에 평화가 찾아 왔습니다. 저는 이 시간 간절히 바라는 것은 여러분들의 집에서 하갈과 이스마엘을 좀 힘드시겠지만 쫓아내시는 결단들이 있으시기를 축원합니다.

한번 같이 하시겠습니다. "나는 하나님의 성품을 받은 사람이다." 예수 믿으면 우리 속에 하나님의 성품이 생깁니다. 그렇다고 해서 성장하는 것이 아닙니다. 가만히 있으면 성장하지 않습니다. 아무리 좋은 묘목이라도 심어 놓고 내버려두면 잡목만도 못하여 집니다. 어떻게 하면 성장할 수 있습니까?

5-7절을 함께 읽겠습니다. "5)이러므로 너희가 더욱 힘써 너희 믿음에 덕을, 덕에 지식을, 6)지식에 절제를, 절제에 인내를, 인내에 경건을, 7)경건에 형제 우애를, 형제 우애에 사랑을 공급하라" 여기에 보면 예수 그리스도의 성품 8가지가 기록이 되어 있습니다. 우리가 그리스도의 성품에 참여하는 것에 아주 중요한 덕목들입니다. 그런데 그것 보다 더 중요한 것은 5절에 있습니다. "이러므로 너희가 더욱 힘써 너희 믿음에 덕을, 덕에 지식을," "더욱 힘써"라고 하는 단어입니다. 이 말씀은 "열심히, 적극적으로 믿으라"는 말씀입니다. 세상일은 적당히 할 수 있습니다. 아니 요즘은 적당히 하면 살아남을 수 없습니다. 눈가림으로만 할 수 있습니다. 세상 모임에 가서 눈 도장 한번 닫으면 될 수도 있을지 모릅니다. 그러나 이 신앙이라고 하는 것은 그래 가지고는 내 신앙이 자라지도 못하고 그리스도의 성품에 이르지 못합니다. 복도 받지 못합니다. 내어쫓았던 이스마엘에 의해서 또 지배당하여 비참하게 될 수도 있습니다.
이 자리에 계신 저와 여러분들 속에는 세 가지의 무서운 세력이 있습니다. 마귀의 권세와 세상의 힘과 내 속에 있는 죄의 성품이라는 세 가지 적이 도사리고 있습니다. 물론 믿는 사람들의 마음에도 이것이 있습니다. 이것들이 우리 속에서 죄성을 부추깁니다. 충동질합니다. 그래서 죄짓게 만들고, 게으르게 만들고, 그러면서도 죄의식도 못 느끼게 만듭니다. 이것을 우리가 어떻게 이길 수 있겠습니까? 성령께서 도와주셔야 합니다. 그런데 성령님께서는 가만히 있는 사람을 도우시지는 않습니다. 열심히! 적극적으로 믿는 사람에게 함께 하시는 것입니다. 오죽 하시면 문고리가 밖에는 없지 않습니까? 안에서 문을 열어주어야 들어오실 수 있습니다. 그래서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벧후1:10절을 함께 읽겠습니다. "그러므로 형제들아 더욱 힘써 너희 부르심과 택하심을 굳게 하라 너희가 이것을 행한즉 언제든지 실족치 아니하리라" "그러므로 더욱 힘써 믿으라"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금년에 더욱 힘써 믿으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이렇게 적극적으로! 열심히 믿으면 어떻게 됩니까? 11절도 함께 읽겠습니다. "이같이 하면 우리 주 곧 구주 예수 그리스도의 영원한 나라에 들어감을 넉넉히 너희에게 주시리라" 겨우 들어갑니까? "넉넉히 들어갑니다. 여러분들은 천국에 넉넉히 들어가시기를 축원합니다.

하나님께서 여러분들을 부르신 줄 믿으시기 바랍니다. 왜 부르셨습니까?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닮게 하기 위해서입니다. 금년도 우리 교회의 표어인 예수 그리스도의 성품에 참여하게 하기 위해서라는 말씀입니다. 한번 같이 합시다. "예수 그리스도의 성품에 참여하라" 이 일에 도전을 받으시고 꼭 그렇게 기도하시고 그렇게 하시기를 힘쓰시기를 축원합니다. 그래서 여러분들을 부르신 것입니다. 사람이 직원을 뽑을 때에는 펑펑 놀라고 사람을 쓰겠습니까? 그렇게 놀리면서 월급을 주는 직장이 있습니까? 우리 예수님께서 여러분들을 부르신 이유가 바로 신의 성품에 참여하게 하시려고 부르신 것입니다.

그러면 좀더 구체적으로 우리가 힘쓸 일들이 어떤 것인가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우리가 무엇을 위하여 열심을 낼 것인가 하는 것입니다. 함께 5-7절을 다시 읽겠습니다. "5)이러므로 너희가 더욱 힘써 너희 믿음에 덕을, 덕에 지식을, 6)지식에 절제를, 절제에 인내를, 인내에 경건을, 7)경건에 형제 우애를, 형제 우애에 사랑을 공급하라"

첫째는 믿음의 생활입니다.

누구든지 예수 믿으면 구원의 믿음을 가진 것입니다. 여러분들이 예수님을 믿으십니까? 그렇다면 여러분들은 구원의 믿음을 가진 분들입니다. 구원의 믿음이 없으면 신앙 생활이 성장하지 않습니다. 이 믿음이 있어야 구원받고 천국에 들어갑니다. 그러나 천국에 자랑스럽게 들어가려고 하면 그것만 가지고는 부족합니다. 생활 속에 믿음이 있어야 합니다. 이 생활 믿음이란 범사에 우리 주님을 의지하고 살아가는 것입니다. 그 믿음은 큰 믿음이 적은 믿음이 있습니다. 그 믿음이 작으면 부끄러운 구원을 얻게 됩니다. 십자가 오른편의 강도는 부끄러운 구원을 얻은 사람입니다.

둘째는 덕 있는 생활입니다.

신앙 생활을 하면서 어떤 분은 덕이 없습니다. 믿음은 좋은 것 같은데 덕이 없어 사람들에게 본이 되지 못합니다. 주님의 이름에 욕을 돌립니다. 그 사람의 삶이 도덕적으로 윤리적으로 나무랄 데가 없는 것을 말합니다. 이런 경우 있습니다. 성경지식은 많은데 질서가 없습니다. 믿음은 좋은 것 같은데 도덕적으로 구설이 많습니다. 덕이 없는 사람입니다. 덕이 있다는 말은 어느 누가 봐도 괜찮은 사람! 깨끗한 삶을 사는 사람입니다. 누구에게 물어봐도 "그 사람 괜찮은 사람이지요!"하고 인정받는 사람입니다. 이것이 덕입니다. 그리스도의 성품은 믿음에 덕을 쌓아야 합니다. 그래서 덕을 계발해야 합니다.

셋째는 지식입니다.

여기서 말하는 지식은 수능고사 만점의 지식이 아니라 그리스도를 알아 가는 지식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알아 가는 지식이 많아지면 어떻게 되는 줄 아시겠습니까? 벧후1:2절을 읽겠습니다. "하나님과 우리 주 예수를 앎으로 은혜와 평강이 너희에게 더욱 많을지어다" 부디 예수님을 아는 지식에서 자라서 여러분들의 마음과 가정에 은혜와 평강이 쌓여 가시기를 축원합니다. 그리고 주님과 친해지시기 바랍니다. 친하면 매일 만나지 않습니까? 그래도 싫지 않지 않습니까? 빨리 친숙해 질 것입니다.
새 가족이 오면! 또는 성도들끼리! 구역식구들끼리 집에 서로 초청도 하고, 쇼핑도 함께 하고, 또 아무리 바빠도 산책하는 시간도 가지시기 바랍니다. 이렇게 예수님과 날마다 교제하심으로 은혜와 평강이 있기를 바랍니다. 믿음만 가지고는 안됩니다. 덕이 있어야 합니다. 그러나 부족합니다. 지식이 더해져야 합니다.

넷째로 절제의 생활입니다.

아마도 제일 어려운 것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절제는 자기 자신을 통제하는 것을 말합니다. 이웃의 안녕을 위하여! 교회의 평안을 위하여! 모든 것을 좋게 하기 위하여! 자기를 통제하는 것입니다. 세상을 살아가는데 가장 문제는 바로 "자기, 나"입니다. 입술을 깨무는 중에 한번만 더 깨물면 되는데 그것을 하지 못해서 상처를 주고받습니다. 절제의 은혜가 부족하기 때문입니다.

한 숟가락만 덜 먹으면 될텐데 절제하지 못해서 배탈이 납니다. 덜먹으면 그렇게 편한 것을 배탈이 나면 얼마나 힘이 듭니까? 신앙 생활도 때로는 극단적이고 광적으로 흐르는 경우를 보는데 왜 그렇게 됩니까? 절제가 잘 안되어서 그렇습니다. 항상 극단적인 것은 위험합니다. 말도 극단적인 말을 하지 않기를 바랍니다. "보통 다 그렇다! 다 썩었다!....등"극단적인 말을 하는데 그렇지 않습니다. 이 세상은 아직도 안 그런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아직도 건전하고 괜찮은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절제가 잘 안 되는 사람들은 극단적인 말을 하게 되고 문제를 만들 수 있습니다. 때로는 진리가 아니고 교리가 아닌 것은 이렇게 할 수도 있고, 저렇게 할 수도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들은 항상 사람을 가장 소중하게 여기시기를 바랍니다. 한번 따라 하시기 바랍니다. "대선교회의 핵심가치는 바로 나다" 믿음은 남을 함부로 판단하는 것이 아닙니다. 골고루 쌓아 가야 하는 것입니다.

다섯째로 인내의 생활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인내는 참는 것입니다. 참는 것도 그냥 참는 것이 있고(patience), 당당하게 참는 것(perseverance)이 있습니다.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참는 자에게 복을 주신다는 약속을 바라보고 당당하게 참는 것입니다. 끝까지 참는 것입니다. 저와 여러분들은 하늘나라에 들어가기로 약속을 받은 사람들이기 때문에 그 나라에서 받을 상을 바라보고 이 세상에서 어떤 어려움이 있어도 당당하게 참는 것입니다. 여러분 모두가 그렇게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넉넉히 이기고 참는 것입니다. 이것이 승리의 확신입니다.

이 세상에 그 누구라도 참지 못하면 아무 것도 이룰 수 없게 됩니다. 참는 사람이 결국은 발전하고 성숙하고 승리하는 것입니다. 특별히 하나님의 교회에서 잘 참아야 합니다. 회의를 하든지, 모임을 가질 때에 잘 참아야 합니다. 저는 잘 참는 사람은 참 위대하고 대단한 사람이라고 생각을 합니다. 다른 것을 보기 전에 그 사람이 얼마나 자기를 절제하며, 인내하는가를 보면 위인 됨을 알 수 있게 됩니다.

이민 목회를 하는 목사님이 제직회를 하는데 한 분이 계속해서 괴롭게 했습니다. 너무너무 힘들게 했습니다. 견딜 수가 없었습니다. 이 목사님이 유도가 2단에, 태권도가 3단입니다. 그래도 어떻게 해야 합니까? 열 번, 백 번 참으면 "그 목사님 훌륭하시다."라고 하면서 존경을 하였을 것입니다. 그런데 그 목사님이 참지를 못했습니다. 그 집사님의 멱살을 잡고 끌고 나갔습니다. 그 다음은 제가 말씀을 안 드리겠습니다. 그리고 그것으로 그 목사님의 목회 생명은 끝났습니다. 언제 참아야 합니까? 정말 이제는 못 참겠다 할 때에 인내해야 하는 것입니다. 도저히 못 참겠으면 "주여! 나를 도우소서!"하고 우시기 바랍니다. 여기에 신앙인의 멋이 있는 것입니다. 끝까지 인내하는 것이 참 인내입니다. 참지 못하면 사업도 못합니다. 비즈니스도 못합니다. 신앙도 못합니다. 복을 받는 일도 못합니다. 이 때에 여러분들이 성숙하게 되는 것입니다. 이것이 예수님의 성품에 참여하는 것입니다.

여섯째는 경건을 이루는 것입니다.

경건하다는 말은 "하나님으로 가득 찼다"는 말입니다. 아침에도 예수! 기쁠 때도 예수! 슬플 때도 예수! 최권능 목사님이 아침에도 예수 천당! 저녁에도 예수 천당! 매를 맞아도 예수 천당이 튀어나옵니다. 이것이 경건입니다. 일이 잘 되어도 하나님입니다. 일이 잘 안되어도 하나님입니다. 한가해도 하나님을 찾습니다. 바빠도 하나님을 찾습니다. 이것이 경건입니다. 경건은 모양이 아닙니다. 지식이 아닙니다. 삶이어야 합니다. 다윗이 그랬습니다. 이것이 주님의 성품에 참여하는 삶입니다. 저와 여러분들이 하나님으로 가득 차시기를 축원합니다.

일곱째로 형제우애를 이루는 것입니다.

이것은 형제간에 친절한 것을 말합니다. 형제들 간에는 허물도 쉬쉬하고, 잘 못 된 것도 감추어 주려고 하고 단점, 약점은 보지도 않고 장점, 좋은 점만 봐 주듯이 우리 성도들이 이렇게 교회 생활하는 사람들이 형제우애가 있는 사람입니다. 형제를 향하여 무조건적으로 친절하게 하게 하고 선을 행하는 행위가 형제우애입니다. 이런 모습이 그립습니다. 이런 성품을 가지면 교회는 저절로 자라게 될 줄 믿습니다.

끝으로 사랑을 실천하는 마음입니다.

사랑을 아는 것을 사랑이라고 하지 않습니다. 그 아는 사랑을 실천할 때에 사랑의 사람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사랑은 허다한 허물을 덮고, 허다한 죄를 덮습니다. 아직도 여러분의 눈에 형제와 자매의 허물과 죄가 보인다면 그 만큼 내 속에 사랑이 없다는 증거일 것입니다.

모쪼록 금년에 우리 모두가 힘들고 어려워도 행복하고 풍성하게 사는 비결은 예수 그리스도의 성품에 내가 참여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금년에 표어입니다. 이 일에 열심을 품고, 적극적이고, 힘쓰는 것입니다. 그래서 주님을 닮아 가시는 축복이 있으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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