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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제설교] (조수현목사) 예수님이 거짓말을 하셨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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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 예수님이 거짓말을 하셨는가?
주제 : 빛 자녀 말씀
본문 : 본문 : 요한복음 7:1-10
말씀의 깊이 : ★★★


"예수께서 가라사대 내 때는 아직 이르지 아니하였거니와 너희 때는 늘 준비되어 있느니라 너희는 명절에 올라가라 나는 내 때가 아직 차지 못하였으니 이 명절에 아직 올라가지 아니하노라 이 말씀을 하시고 갈릴리에 머물러 계시니라"(요7:8-9)

주님께서는 자신의 때가 아직 차지 못하였으니 이 명절에 예루살렘에 올라가지 않으시겠다고 분명히 말씀하시고 갈릴리에 머물러 계셨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의 형제들만 초막절에 예루살렘으로 올라갔습니다.

그런데 그 다음절 10절을 보십시다. 우리가 참 이해하기 힘든 장면이 나옵니다.

"그 형제들이 명절에 올라간 후 『자기도 올라가시되』 나타내지 않고 비밀히 하시니라"

조금 전에 분명히 예수님께서는 『나는 이 명절에 올라가지 아니하노라 』라고 말씀하셨지 않았습니까? 그런데 예수님께서 금방 비밀리에 올라가셨단 말입니다. 예수님께서 거짓말을 하신 것이 아닙니까?

예수님도 일구이언하시는 것이 아닌가? 성경을 읽으면서 우리 자신도 이 대목에서 갸우뚱해지는 것을 느끼게 됩니다. 이 문제를 우리가 어떻게 풀어야 합니까? 예수님은 거짓말하시는 분이 아니신데....

유대인의 명절인 초막절 때의 일이었습니다. 예수님을 믿지 않는 예수님의 형제들이 예수님께 예루살렘에 올라가라고 했습니다. 초막 절을 지키는 사람들이 예루살렘에 많이 올 터인데 "자신을 나타내려면 그 많은 사람들 앞에서 자신을 나타내십시오" 라고 하면서 초막절 지키러 예루살렘 성으로 올라가라고 했던 것입니다.

그러자 예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예수께서 가라사대 내 때는 아직 이르지 아니하였거니와 너희 때는 늘 준비되어 있느니라 너희는 명절에 올라가라 나는 내 때가 아직 차지 못하였으니 이 명절에 아직 올라가지 아니하노라 이 말씀을 하시고 갈릴리에 머물러 계시니라"(요7:8-9)

주님께서는 자신의 때가 아직 차지 못하였으니 이 명절에 예루살렘에 올라가지 않으시겠다고 분명히 말씀하시고 예수님은 갈릴리에 머물러 계셨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의 형제들만 초막절에 예루살렘으로 올라갔습니다.

그런데 그 다음절 10절을 보십시다. 우리가 참 이해하기 힘든 장면이 나옵니다.

"그 형제들이 명절에 올라간 후 『자기도 올라가시되』 나타내지 않고 비밀히 하시니라"

조금 전에 분명히 예수님께서는 『나는 이 명절에 올라가지 아니하노라 』라고 말씀하셨지 않았습니까? 그런데 예수님께서 금방 비밀리에 올라가셨단 말입니다. 예수님께서 거짓말을 하신 것이 아닙니까?

예수님도 일구이언하시는 것이 아닌가? 성경을 읽으면서 우리 자신도 이 대목에서 갸우뚱해지는 것을 느끼게 됩니다. 이 문제를 우리가 어떻게 풀어야 합니까? 예수님은 거짓말하시는 분이 아니신데....

그러나 여기 보면 분명 형제들을 속인 것으로 되어 버렸으니 이 문제를 우리가 어떻게 해석해야 합니까?


6절을 다시 보면 "예수께서 가라사대 내 때는 아직 이르지 아니하였거니와 너희 때는 늘 준비되어 있느니라. 너희는 명절에 올라가라 나는 내 때가 아직 차지 못하였으니 이 명절에 아직 올라가지 아니하노라" 라고 하시며 예수님의 때가 아직 안 되었으므로 초막절에 아직 올라가지 않겠다는 말씀을 하십니다.

30절입니다. "저희가 예수를 잡고자 하나 손을 대는 자가 없으니 이는 그의 때가 아직 이르지 아니하였음이러라."

여기 30절에서는 예수님의 때가 아직 이르지 아니하였으므로 예수님이 그들에게 잡히지 않았다는 말입니다.

33절 "내가 너희와 함께 조금 더 있다가 나를 보내신 이에게로 돌아가겠노라. 나를 찾아도 만나지 못할 터이요 나 있는 곳에 오지도 못하리라."

예 맞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너희와 조금 더 있다가 나를 보내신 이에게로 돌아가겠다』는 말씀의 뜻은 예수님의 때가 되면 잡히셔서 죽으신 다음에 그 다음에 하늘의 아버지께로 승천해서 올라가시겠다는 말씀입니다.

예수님의 때가 되면 예수님께서는 "참 초막절 = 하늘나라의 초막 = 천국의 집"으로 올라가시겠다는 것입니다.

여기서 우리는 예수님께서 사용하신 언어의 뉘앙스의 차이를 볼 수 있습니다.

결과적으로 예수님께서 거짓말 하신 것이 아니라 예수님은 참 초막절을 이야기 하신 것이며 예수님께서 아직 때가 이르지 아니했으므로 올라가지 않겠다고 하신 이 말씀은 바로 이 땅에 있는 저 예루살렘에 안 올라가겠다는 것이 아니라 다른 뜻으로 하신 말씀임이 분명해 졌습니다.

초막절은 하늘나라 아버지의 장막을 바라보면서 아버지 집을 그리워하면서 지키는 절기입니다.

원래 초막절이란 가나안 땅을 바라보고 장막 생활을 하였던 조상들의 모습을 기억하기 위한 절기였습니다. 하늘나라에 있는 아버지 집을 생각하면서 이 땅에서는 나그네의 처소라 할 수 있는 장막에 거한다는 뜻입니다.

그러므로 초막절은 하늘 나라 천국으로 올라가는 것을 소망하는 절기입니다. 사람들은 이 초막절을 지키면서도 초막절의 참 의미는 생각지 않고 그저 명절을 지키는 데에만 급급했던 것입니다.

초막절에 사람들은 이 땅위에 있는 예루살렘 성에 올라가지만 , 주님은 곧 참 초막절을 지키게 되어 있었습니다. 곧 진정한 하늘나라 아버지 집에 있는 하늘의 거룩한 성 예루살렘에 올라가게 되어 있었습니다. 그러나 아직은 때가 차지 않았으므로 올라가지 않겠다는 뜻으로 하신 말씀입니다.

예수님은 늘 하늘의 일, 모형 속에 들어 있는 참 것을 말씀하셨습니다. 이 말씀은 예수님께서 참 초막절 다시 말하면 이 세상에서 주님의 일을 마치시고 하늘나라 장막으로 올라가시는, 하늘나라 거룩한 성으로 올라가시는 그것을 말씀하신 것입니다.

이 말씀은 바로 예수님이 이러한 깊은 뜻을 가지고서 말씀하신 것입니다. 이런 관점의 차이 때문에 오해가 생기게 된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왜 항상 이런 식으로 조금 어렵게 말씀하십니까? 그 답은 요한복음 10장 26절 이하에 있습니다.

"너희가 내 양이 아니므로 믿지 아니하는도다 내 양은 내 음성을 들으며 나는 저희를 알며 저희는 나를 따르느니라"

아무리 어렵게 말씀을 해도 목자의 양들은 주인의 음성을 알아듣게 되어 있습니다.

이러한 것을 그 당시 유대인들은 알지 못했습니다. 예수님께서 자신이 생명의 양식이 되어서 살과 피를 나누어준다는 말도 잘 알아듣지 못하던 자들이 있었던 것처럼 여기 예수님의 형제들을 비롯한 유대인들은 예수님께서 참 초막 절의 뜻처럼 하늘나라 아버지의 집으로 올라간다는 말을 전혀 이해하지 못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이에 유대인들이 서로 묻되 이 사람이 어디로 가기에 우리가 저를 만나지 못하리요 헬라인 중에 흩어져 사는 자들에게로 가서 헬라인을 가르칠 터인가 나를 찾아도 만나지 못할 터이요 나 있는 곳에 오지도 못하리라 한 이 말이 무슨 말이냐 하니라"(요7:35-36)고 했던 것입니다.

그들은 지금 초막절 기간인데도 이 초막절의 참 뜻은 조금도 생각하지 못하고 예수님께서 하늘로 올라가신 다는 것은 꿈에도 생각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예수님의 언어의 모습들 - 이 세상의 것들이 아니라 참된 것, 영적인 것들을 항상 말씀하심

성전 - 참성전이신 예수님 육체

요한복음 2장 19절에서 예수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너희가 이 성전을 헐라 내가 사흘 동안에 일으키리라." 그러자 유대인들은 " 이 성전은 사십 육년 동안에 지었거늘 네가 삼일 동안에 일으키겠느뇨?" "그러나 예수는 성전된 자기 육체를 가리켜 말씀하신 것"이라 했습니다. 사람들은 전혀 깨달을 수가 없었던 것입니다.

이처럼 예수님께서 말씀하시는 그 참 뜻을 그 당시의 사람들은 이해하지 못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모태로부터의 태어남 - 참 거듭남(영적 출생)

니고데모가 찾아왔을 때에 주님이 말씀하셨습니다.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진실로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사람이 거듭나지 아니하면 하나님 나라를 볼 수 없느니라" (요3:3) 그러자 니고데모는 이해할 수 없어서 " 사람이 늙으면 어떻게 날 수 있삽나이까 두 번째 모태에 들어갔다가 날 수 있삽나이까" (요3:4) 라고 하면서 되물었습니다.

우물물 - 영생의 생수

우물가의 사마리아 여인과 대화하실 때에도 주님은 말씀하셨습니다. " 네가 만일 하나님의 선물과 또 네게 물 좀 달라 하는 이가 누구인 줄 알았더면 네가 그에게 구하였을 것이요 그가 생수를 네게 주었으리라" (요4:10)

그러자 그 여인은 말을 합니다. "주여 물 길을 그릇도 없고 이 우물은 깊은데 어디서 이 생수를 얻겠삽나이까" (요4:11)

그 사마리아 여인은 예수님이 주신다는 물을 그냥 이 땅의 우물물을 주신다는 것으로 잘못 알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이 주신다는 생수는 이 땅의 우물물과는 전혀 다른 물을 말씀하신 것입니다.

먹는 떡 - 참양식인 영생하는 떡

요한복음 6장 51절에서 "나는 하늘로서 내려온 산 떡이니 사람이 이 떡을 먹으면 영생하리라 나의 줄 떡은 곧 세상의 생명을 위한 내 살이로라 하시니라 " 라고 말씀하시자 유대인들은 "이 사람이 어찌 능히 제 살을 우리에게 주어 먹게 하겠느냐 " 하면서 전혀 알아듣지 못했습니다. 예수님은 영생의 떡을 이야기하시는데 사람들은 이처럼 그것을 잘 이해할 수가 없었던 것입니다.

강물 - 성령

요한복음 7장 37절에서도 초막절에 예루살렘에 올라가신 주님께서 사람들이 많은 그곳에서 큰 소리로 외치셨습니다. "누구든지 목마르거든 내게로 와서 마시라 나를 믿는 자는 성경에 이름과 같이 그 배에서 생수의 강이 흘러나리라"

그러나 들을 귀가 없는 자들은 아마 배꼽을 잡고 웃었을 것입니다. 생수 통을 앞에 갖다가 놓고 외치신 것도 아니요, 아무 물통도 가져다 놓지 않은 채로 목마른 자는 내게 와서 마시라고 큰 소리로 외치시니 사람들이 어떻게 생각을 했겠습니까? 게다가 내게로 와서 마신 자는 그 배에서 생수의 강이 흘러나리라고 말씀을 하시니 사람들이 더더욱 웃었을 것입니다. 또는 예수님을 이상한 말을 하는 미친 사람이라고도 여겼을 것입니다.

그러나 들을 귀 있는 자들은 '정말로 이 예수님은 진리를 말씀하고 계시는 구나' 하면서 예수님을 믿게 됩니다. 따르게 됩니다. 예수님이 과연 이 세상에 오셔서 생수의 강을 주시는 분임을 알게 될 것입니다. 이러한 자들에게 예수님은 세상 어느 것과도 바꿀 수 없는 보배가 되십니다.

왜 영적인 예수님의 언어들을 전혀 이해하지 못하는 것을까?

그러나 들을 귀 없는 자들에게는 참으로 예수님의 그러한 말씀들은 귀에 거슬리는 절대로 받아들일 수 없는 이상한 말씀으로 들릴 것입니다. 왜 이렇게 예수님이 말씀하시는 한 차원 높으신 말씀들을 그 당시 사람들은 잘 알아듣지를 못하는 것입니까?

유대인들과 예수님의 대화 장면 한곳을 살펴보십시다.

요한복음 8장 23절에서 그 이유를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예수께서 가라사대 너희는 아래서 났고 나는 위에서 났으며 너희는 이 세상에 속하였고 나는 이 세상에 속하지 아니하였느니라 "

또 요한복음 8장 37절에서 "나도 너희가 아브라함의 자손인 줄 아노라 그러나 내 말이 너희 속에 있을 곳이 없으므로 나를 죽이려 하는도다" 라고 하시면서 내 말이 너희 속에 있을 곳이 없으므로 깨닫지 못하고 배척하는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43절에서는 "어찌하여 내 말을 깨닫지 못하느냐 이는 내 말을 들을 줄 알지 못함이로다 " 라고 하시면서 아직 거듭나지 아니한 그들을 마귀에 속한 자라고 하시면서 진리가 그 속에 없으므로 진리에 서지 못하여서 진리를 알아듣지 못하는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47절에서는 "하나님께 속한 자는 하나님의 말씀을 듣나니 너희가 듣지 아니함은 하나님께 속하지 아니하였음이로다 " 라고 하셨고 요한복음 10장 26절에서는 "너희가 내 양이 아니므로 믿지 아니하는도다 내 양은 내 음성을 들으며 나는 저희를 알며 저희는 나를 따르느니라 " 고 말씀하시며 내 양이 아니므로 음성을 듣지 못하고 깨닫지 못한 것이라고 진단하셨습니다.

전혀 못 알아듣는 이유는 아직 거듭나지 않았기 때문에, 아직 육에서 난 상태로 그대로 있지, 아직 거듭 태어나지 않았기 때문에 잘 알아듣지 못하는 것입니다.

아직 아버지께 속하지 않았기 때문에 예수님의 이러한 영적인 말씀들을 전혀 알아듣지 못하고 당연히 배척하며 거부를 하게 되는 것입니다. 아직 영적인 눈을 뜨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아직 하나님의 자녀가 되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자녀들은 이러한 예수님의 말씀들을 처음에는 잘 못 알아듣다가도 나중에 다 깨닫게 됩니다. 깨달아 집니다. 니고데모나 우물가 사마리아 여인이나 예수님의 제자들은 나중에 다 깨닫게 됩니다. 그러나 거듭나지 않은 자들은 절대로 깨달아지지 않습니다.

이제 우리의 모습을 살펴보십시다. 우리는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이러한 한 차원 높은 영적인 말씀들이 우리 귀에 들려서 이해가 되고 믿어지는 가를 보십시다.

요한복음 7장 37절에 "명절 끝 날 곧 큰 날에 예수께서 서서 외쳐 가라사대 누구든지 목마르거든 내게로 와서 마시라 나를 믿는 자는 성경에 이름과 같이 그 배에서 생수의 강이 흘러나리라 하시니" 하신 예수님의 말씀을 보면서 창세기에 나오는 에덴 동산에서 발원하여 동산을 적시며 사방으로 충만하게 흘러내리는 강물의 모습과 연결이 되는 것이 깨달아지지 않습니까?

에스겔 47장의 성전에서 흘러나오는 강물 때문에 그 주위에 각종 나무들이 열매를 맺고 자라는 모습과도 연결되지 않습니까?

요한 계시록 22장의 하늘나라 천국의 중앙을 흘러가는 하나님과 어린양의 보좌에서 계속 흘러내리는 생명수의 강물과도 연결되지 않습니까? 성부 성자 성령은 삼위 일체이십니다. 천국의 성부 하나님과 그리고 어린 양 성자 예수님의 보좌가 계시는데 그러면 성령은 어디 계십니까? 바로 하나님과 어린양의 보좌에서 흘러내리는 생명수의 강물 그것이 곧 성령인 것입니다.

초막절에 "나를 믿는 자는 그 배에서 생수의 강이 흘러나리라 하셨는데 그것이 성령을 가리켜 말한 것이라" 이 말씀과 정확하게 일치하는 것임이 깨달아지지 않으십니까?

우리는 이러한 조금은 어려운 성경말씀들이 깨달아집니까? 우리는 이해가 됩니까? 우리는 믿어집니까? 그러면 거듭났다는 증거입니다. 이미 우리 속에 말씀이 거할 곳이 있다는 것입니다. 이미 있다는 증거입니다. 이미 우리는 하나님께 속한 자가 되었다는 증거입니다.

요한 일서 4장 6절에 "우리는 하나님께 속하였으니 하나님을 아는 자는 우리의 말을 듣고 하나님께 속하지 아니한 자는 우리의 말을 듣지 아니하나니 진리의 영과 미혹의 영을 이로써 아느니라" 고 했습니다. 주님께서 하신 영적인 말씀들이 깨달아지고 믿어지고 하는 것은 하나님께 속한 하나님의 영을 받지 않은 자들은 불가능한 것입니다.

주님께서는 양과 염소를 구별하시려고 주님께서는 감추어진 말씀으로 늘 말씀하신 것입니다. 그래서 요한복음 12장 40절에 "저희 눈을 멀게 하시고 저희 마음을 완고하게 하셨으니 이는 저희로 하여금 눈으로 보고 마음으로 깨닫고 돌이켜 내게 고침을 받지 못하게 하려 함이니라 하였음이더라 " 라는 말씀이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께 속한 자들은 이렇게 영적 이야기를 하여도 그것이 주님의 음성이므로 목자의 음성이므로 이렇게 영적인 어려운 말씀으로 하셔도 결국 알아듣게 됩니다. 양과 염소를 구별하려고 이렇게 어려운 말씀으로 말씀하신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성경에 나오는 이러한 조금 어려운 예수님의 말씀들이 잘 이해가 되며 믿어지며 귀에 들려오시는 분들은 하나님께 감사할 줄 알아야 합니다. 우리 자신의 신분이 이미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음을 알아야 합니다.

우리도 예수님의 말씀하신 한 차원 높은 영적인 말씀들이 거부감 없이 믿어지며 깨달아지며 귀에 잘 들려 오면 그는 이미 하나님의 자녀가 된 것입니다.

그러면 이제 하나님의 자녀라는 나 자신의 신분을 분명히 자각하고 우리는 세상과는 다르게 이제 빛으로 살아야 합니다. 이 신분을 망각하고 그냥 세상과 어울려서 어둠의 자녀처럼 살면 안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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