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이 이루시는 구원
본문
본문말씀: 출애굽기 6장 1-9절
민남기목사 설교
찰톤 헤스톤과 율부리너가 주연했던 ‘십계’라는 영화에서 애굽에서 종살이하던 이스라엘 백성들이 벽돌을 구우면서 감독들에게 채찍에 맞고 쓰러지고 넘어지는 장면이나 지푸라기도 주기 않고 직접 풀을 주어서 이전의 양과 같이 벽돌을 구우라고 하면서 재찍에 맞는 이스라엘 백성들의 고통스런 모습이 생생합니다. 모세가 바로를 찾아가서 내 백성을 보내라고 외치다가 더 힘든 종살이의 고역을 당하는 모습을 보는 것은 종살이의 고통이 너무나 힘들고 견디기 어려운 것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애굽에서 종살이 하면서 당했던 무거운 고통은 바로 우리가 예수 믿기 전에 죄악에 종노릇 하면서 당했던 고통을 상상하게 합니다. 죄 아래서 종노릇하면서 고통당하며 죽어가면서도 그 사실을 알지 못하고 사망과 심판에 빠져 죽어갔던 우리의 옛사람이 생각납니다.
창세기의 주제가 하나님이 자기 백성을 선택한 것이라면 출애굽기는 하나님이 자기 백성을 구원해 내신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오늘 우리의 구원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출애굽기에서 하나님이 자기 백성의 구원을 이루어 가시는 하나님의 구원해 대해서 먼저 잘 살펴볼 필요가 있습니다. 오늘 이 시간 하나님께서 모세를 통하여 자기 백성들의 구원해 가시는 그 구원에 대해서 몇 가지로 살펴보면서 오늘 하나님께서 이루어가고 계시는 우리의 구원이 무엇인가를 살펴보려고 합니다.
첫째로 하나님이 이스라엘을 애굽의 종살이에서 구속하는 것이었습니다(1-6)
하나님께서 모세를 불러 애굽에서 종살이하던 이스라엘 백성들을 구원하러 해방자로 보내셨을 때 이스라엘 백성들은 애굽에서 종살이하고 있었습니다. 하나님이 모세를 바로왕에게 보내서 “내 백성을 보내서 그들이 하나님을 섬기게 하라”는 하나님의 명령을 바로왕에게 전하면서 이스라엘 백성들의 종살이 고통을 더욱 심해졌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을 애굽의 총리였던 요셉의 초청을 받아 애굽에 영주권을 받아서 거주한 애굽의 영주권자들이었는데 요셉을 알지 못하는 새로운 애굽왕이 등장하면서 이스라엘 백성들을 자신의 종으로 부려서 국고성 비솜과 라암셋을 건축하고 있었습니다. 이 애굽왕은 이스라엘 백성들을 자신의 종으로 삼고 자신의 왕국 건설을 위하여 이스라엘 백성을 종으로 부리고 있었고 모세를 통하여 이스라엘 백성들을 하나님을 섬기도록 보내라는 말씀을 듣고 더 견디기 어려운 고역을 시켰습니다. 이 때 이스라엘 백성들이 애굽에서 당하는 종살이의 고통을 세 가지로 정리할 수 있습니다. 먼저는 영주권자였던 이스라엘 백성들을 바로왕은 애굽에서 강제로 노예를 삼아서 노역을 시켰습니다. 그리고 이스라엘 백성들 위에 애굽 사람과 이스라엘 감독을 세워서 지푸라기도 주지 않고 이전과 동일한 양의 벽돌을 구우라고 하면서 고통을 더하는 것이었습니다. 마지막으로 이스라엘 남아 살해정책을 시행해서 이스라엘 백성들의 부모에게 고통을 더하고 숫자 증가를 막아보려는 것이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애굽에서의 종살이는 정말 견디기 어려운 고통과 시련을 맞이하고 있었습니다. 사내아이를 나을 때 산파에게 죽이라고 했다가 두 산파가 바로왕의 명령을 듣지 않자 사내아이를 나일강물에 던져 죽이라는 것이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의 종살이 고통은 애굽의 바로왕에 의해서 조직적이고 계획적으로 시행되고 있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종살이하면서 견디기 어려운 강제노역을 날마다 계속하는 것도 힘든데 아들을 낳아서 강물에 던져 죽여야 하는 부모들의 고통과 아픔은 이루 말로 표현할 수 없었습니다. 이시기에 하나님을 두려워하여 히브리인들의 아들을 살린 두 산파와 모세의 어머니 요게벳의 믿음은 어두운 밤에 떠오르는 샛별과도 같은 한 줄기 빛이었고 소망이었습니다. 바로 이러한 믿음의 어머니 아래서 모세는 태어나서 자랐고 이스라엘 백성들의 해방자로 자랐습니다. 모세를 자신의 아들을 입양하여 키운 바로왕의 공주는 투트 모세 1세의 무남독녀 하세프세트입니다.
하나님은 아브라함에게 복의 근원이 될 것을 약속하셨고 이것은 모든 족속이 아브라함에게서 나는 그 아들로 구원함을 얻게 될 것을 약속하였습니다.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하셨던 이 약속은 그 후손이 하늘의 별과 같이 많아지는 것이었고 아브라함과 그 후손들에게 가나안 땅을 주시겠다는 언약이었습니다. 그러나 아직 가나안땅의 죄악이 가득 차지 아니하여 아브라함의 후손들이 애굽에 400년간 종살이하다가 해방되어 와서 그 땅을 차지할 것도 이미 말씀해 주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찾아오셔서 언약을 맺어주시면서 가나안땅을 그들에게 주시겠다는 것과 그 아들로 인하여 모든 민족을 구원하시겠다는 약속은 놀라운 하나님의 축복이 아닐 수 없습니다. 아브라함의 아들 이삭과 그 후손이 야곱과 요셉도 다 약속의 가나안 땅이 하나님의 의해서 그들에게 주어질 것을 믿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애굽에서 종살이 하면서 종살이의 고통과 아픔이 너무나 커서 하나님께 부르짖었을 때 하나님은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에게 가나안 땅을 그들에게 주시겠다는 하나님의 언약을 기억하였다고 했습니다. 하나님이 아브라함에게 찾아오셔서 언약을 하셨다는 것 자체가 놀라운 은혜이고 축복입니다. 창조주 하나님이 피조물인 사람에게 찾아오셔서 약속을 해주신 것 자체가 참으로 놀라운 하나님의 은혜인데 이 언약을 하나님께 반드시 이루어 주신다는 사실이 얼마나 놀라운 약속인가 이 말입니다.
언약의 하나님은 여호와 하나님이라고 말씀하시면서 강한 손과 편 팔로 애굽의 종살이의 무거운 고역에서 이스라엘 백성을 구속하시겠다고 했습니다. 이것은 언약의 하나님이 전능하신 능력으로 자기 백성을 죄악의 종살이하는데서 구원하시겠다는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박윤선 박사님은 구약에서 구속하다(카알)는 말은 “다른 생명을 희생시켜서 구원하다”는 뜻으로 해석했는데 구속사적인 의미를 담은 해석입니다. 신약에서 바울사도가 구속하다는 말은 사용할 때는 당시의 노예제도를 염두에 두면서“종을 값을 지불하고 사서 자유인이 되게 한다”는 의미로 사용했는데 구약과 신약의 구속하다는 말은 서로 일맥상통하는 의미가 담겨 있음을 보게 됩니다. 하나님이 애굽에서 무거운 고역으로 종살이하던 이스라엘 백성들을 어린양의 피를 지불하여 애굽에서 구원하여 자유인으로 약속의 땅 가나안에서 하나님을 섬기게 했습니다.
(적용) 하나님은 자기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를 십자가에 피 흘려 죽게 해서 다시 살리셨는데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죽으심을 믿은 사람은 죄를 다 용서받고 죄악에서 구원을 받았습니다. 예수님의 십자가의 죽으심을 믿는 사람을 죄의 종에서 해방되어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구원을 이미 받았습니다. 출애굽의 구원은 죄의 종노릇이 너무나 고통스럽고 무거운 것이라는 사실을 우리에게 알게 해줍니다. 무서운 죄의 종으로 영원한 사망에 빠져 죽을 수밖에 없었던 우리를 예수님의 피로 구원하여 하나님의 자녀로 삼아주신 우리의 구원에 대해서 감사하고 감격하고 기뻐하는 우리 모든 성도들이 될 수 있기를 바랍니다.
둘째로 하나님이 이스라엘을 하나님의 백성으로 삼아주신 것입니다(7)
여호와 하나님은 종살이하던 이스라엘 백성을 하나님의 백성으로 삼아주시고 이스라엘 백성의 하나님이 되어 주셨습니다. 이것은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과 인격적인 관계를 맺어주신 것을 말합니다. 아브라함에게 찾아오셔서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과 더불어 언약을 맺어주시고 그들과 언약을 기억하시고 지키시는 언약의 하나님 여호와는 전능하신 하나님이십니다. 이 언약의 하나님이 아브라함과 맺은 언약을 기억하시고 그들을 애굽에서 구원하여 내서 언약의 백성으로 삼아주신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애굽에서 해방되어 하나님의 백성이 되었다고 하는 것은 애굽의 종살이에서 자유해졌고, 하나님의 언약이 성취되는 것을 믿었고, 전적으로 이 모든 것이 하나님의 주권에 의해서 이루어지는 것을 믿었습니다.
예수님은 유월절 만찬을 잡수시면서 잔을 나누어 주시면서 자신의 피로 세우신 새 언약이라고 말씀하시면 주의 죽으심을 예수께서 다시 오실 때가지 증거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오늘 우리는 예수님의 십자가의 죽으심을 믿고 새 언약의 백성이 되었습니다. 새 언약의 백성은 하나님의 법을 마음에 새겨져 있고 작은 자에서부터 큰 자에게 이르기까지 다 하나님을 알고 하나님께서 그들의 죄를 기억조차 하지 않는다고 했습니다.
7절 마지막에 이스라엘이 여호와 하나님을 하나님으로 알게 되었다는 것은 참으로 놀라운 구원의 의미를 말해주고 있습니다. 이사야 선지자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을 알지 못해서 망한다고 했습니다. 사도요한은 요한복음 17장 3절에서 하나님을 유일한 참 신으로 아는 것이 영생이라고 했습니다. 애굽에서 여러 신들을 섬기는 혼합적 무속상황에서 살았습니다. 애굽에서 태양이나, 나일강이나, 소를 신으로 섬기는 다신교 문화권에서 계속해서 살다가 여호와 하나님이 유일한 참 신으로 알게 된다는 것은 참으로 놀라운 일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열 가지의 재앙을 통하여 그들이 알게 된 언약의 하나님의 유일한 참 신으로 알게 되었습니다.
(적용) 삼위일체 하나님을 우리의 유일한 참 신으로 알고 섬기는 것이 바로 영생입니다. 하나님의 백성으로 하나님을 유일한 참 신으로 섬기는 우리 모든 성도들이 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셋째로 하나님이 약속의 땅을 이스라엘에게 기업으로 주신 것입니다(8-9)
오늘 우리들에게 고향이라는 말은 자연 그대로의 시골을 말하기도 하고 부모님이 계시는 곳이라는 의미도 있습니다. 왠지 전원적이고 풍성하고 포근한 의미가 담겨져 있습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고향을 좋아하고 명절이면 찾아가서 따뜻한 정을 나누어 가지고 갑니다. 제가 처음 미국에 가서 시카고에 살다가 나중에 뉴욕으로 이사 가서 살았습니다. 시카고에서 불스 농구팀을 열심히 응원하다가 뉴욕에 가서 살면서 닉스팀이 응원될 줄 알았는데 놀랍게도 뉴욕에서도 시카고 불스팀을 응원하는 제 자신을 보고 제 자신도 놀랐습니다. 사람이 처음에 정착하고 산 데가 고향처럼 느껴지고 정이 더 가는 것은 어쩔 수가 없었습니다.
하나님이 아브라함에게 가나안으로 향하여 가라고 말씀하셨고 가나안에 사는 아브라함에게 찾아오셔서 가나안땅을 아브라함과 그의 후손들에게 수시겠다고 약속해 주셨습니다. 아브라함과 이삭이 다 가나안 땅에 대한 약속을 믿고 살다가 죽으면서 막벨라 굴에 묻혔습니다. 야곱은 애굽에 내려가서 살면서도 요셉에게 가나안의 막벨라 굴에 장사지내겠다고 서약을 하게 해서 막벨라 굴에 묻혔습니다. 요셉도 후손들에게 출애굽할 때 자신으 시신을 가나안으로 가져가서 묻으라고 유언을 했고 실제로 그들은 출애굽 때 요셉의 시신은 가나안으로 가져가서 세겜에 묻었습니다. 아브라함을 비롯한 족장들은 다 가나안 땅에 대한 약속을 그대로 믿고 살았던 믿음의 사람들입니다.
하나님은 애굽에서 종살이 하고 있는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가나안 땅을 그들의 기업으로 주시겠다고 분명하게 말씀해 주셨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가나안 땅을 차지하고 사는 것이 바로 영생입니다. 히브리서 기자는 족장들에게 있어 본향은 땅 위에 있는 본향이 아니라 하늘에 있는 본향이라고 했습니다. 요한계시록 21장 3절에서 하나님의 장막에 하나님의 백성들이 거하게 될 것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약속의 땅 가나안은 오늘 우리들에게는 하늘에 있는 영원한 본향이고 하나님이 거하시는 새 하늘과 새 땅의 하나님의 장막입니다. 새 하늘과 새 땅이 도래할 때 우리 성도들은 하나님의 백성이 되어 하나님의 장막에 영원히 거하게 될 것인데 이것이 바로 하나님이 이루시는 구원의 완성입니다.
그런데 모세가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하나님이 이루실 구원에 대해서 전했을 때 그들은 모세가 전하는 구원의 말씀 듣기를 거절했습니다. 오늘 우리가 놀라운 구원의 복음을 전하더라도 사람들은 우리의 복음 듣기를 거절할 경우가 많이 있을 것을 말해 줍니다. 그럼에도 낙심하지 말고 계속해서 우리는 구원의 복음을 전해야 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이여!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을 향하여 계획하신 구원을 이루어 내신 것처럼 오늘 우리를 향하여 세우신 구원계획도 이루어 내실 것입니다. 하나님이 오늘 우리를 위해서 이루실 구원은 죄에서 건져 내 주시는 구원이고, 하나님의 백성으로 삼아주시는 구원이고,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게 해주시는 구원입니다. 하나님이 이루시는 우리의 구원을 그대로 믿고 순종하여 나아가서 온전하게 구원받는 우리 모든 성도들이 될 수 있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