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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일의 비전을 잉태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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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창훈목사 설교
내일의 비전을 잉태하라


느 2:1-6
오늘의 본문을 보면 느헤미야 선지자는 조국과 조국의 백성들에게 안정되고 가치 있는 내일을 선물하고 싶어했습니다.
그래서 느헤미야는 그 일을 우선 기도로 시작했습니다.
그러나 그가 기도를 시작했다고 해서 당장 그의 조국에 어떤 변화가 나타났던 것은 아니지만 그는 포기하지 않고 계속 기도하고 있었습니다.
왜냐하면 조국의 내일을 포기할 수 없었기 때문입니다.
성도 여러분!
느헤미야가 내일의 비전을 잉태하기 위해 기도하며 해야만 했었던 일은 무엇이었을까요?
우리가 이 질문을 통해 얻고자 하는 대답이 있습니다.
그것은 우리가 자신과 가정과 교회의 내일을 위해 기도할 때에 동시에 할 일은 무엇인가 하는 것입니다.

1.목적을 가지고 기도하며 기다려야 합니다.
우리가 기도한다는 것은 희망을 품고 기다리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 이유는 우리가 희망을 버린다면 더 이상 기도하지 않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느헤미야가 조국을 위해 기도를 시작하여 마침내 조국에 돌아가 예루살렘 성을 재건하는 공사를 착수하기까지 얼마나 시간이 경과된지 아십니까?
적어도 4개월 이상의 시간이었습니다.
1절을 보면 "아닥사스다 왕 이십년 니산월에"라고 했는데 이때가 바로 느헤미야가 예루살렘 성 재건 공사를 시작된 달이었습니다.
니산월은 4월이라고 생각하시면 됩니다.

그런데 이 일에 대한 기도를 시작한 것은 언제였습니까?
느1:1을 보면 "아닥사스다왕 제이십년 기슬르월에"라고 했는데 기슬르월은 11월에서 12월경입니다.
그러므로 적어도 4개월 이상이 경과한 것입니다.
이렇게 그는 그 동안 충분히 기도하며 기다린 것입니다.
다시 말해서 그 동안 느헤미야는 조국의 아름다운 내일의 비전을 잉태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여러분! 우리 한국 사람들 같으면 이렇게 기다리고 있을 수 있었겠습니까?
언제인가부터 우리 한국 사람들은 기다리지 못하는 사람들이 되었습니다.
한국사람들에게 한국어를 배우는 외국인들이 제일 먼저 배우는 말이 "빨리 빨리"라는 단어라고 합니다.
오늘날 이런 습관은 우리의 기도생활에도 영향을 끼쳐서 우리는 기도를 시작하자마자 당장에 응답을 기대합니다.
소위 인스턴트 문화시대를 살아가는 우리는 기도조차 인스턴트식의 도구로 인식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성경은 기도란 시간과 함께 열매를 맺는 것으로 말씀합니다.
눅18:1절 이하를 보면 주님께서는 기도를 가르치면서 "항상 기도하고 낙망치 말아야 될 것"을 교훈하면서 억울한 일을 당한 과부가 불의한 재판관을 찾아가 지속적으로 탄원하는 비유로 가르치셨는데 이 비유의 핵심은 기도하고 믿음으로 기다릴 줄 알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왜 주님께서는 당장의 응답보다 기다림의 과정을 거치게 하실까요?
그 중요한 이유는 응답 그 자체보다도 기도하면서 우리가 하나님과 맺는 인격적 관계를 더 중요하게 생각하시기 때문입니다.
예를 들면
한 재벌가문에 아들이 있는데 이 아들은 아버지의 유산을 빨리 상속받는 일에 무엇보다 관심을 갖고 있습니다.
그러나 재벌 아버지가 지혜로운 분이라면 아버지의 아들에 대한 관심은 단순한 재산의 상속이 아니라 상속받기에 합당한 자질을 갖추는 아들로서의 인격적인 성숙일 것입니다.
그래서 아버지는 아들로 기다리게 하십니다.
그렇다면 이 기다림의 시간이야말로 아들에게 있어서 내일을 잉태하고 준비하는 시간이어야 할 것입니다.
그러므로 빛나는 내일을 잉태하려면 우리들도 기도하고 기꺼이 기다릴 줄 알아야 하는 것입니다.

2.기도하며 계획해야 합니다.
본문 내용을 보면 느헤미야가 그가 모시고 있던 왕으로부터 그가 기다리던 결정적인 질문을 받습니다.
왕이 "네가 무엇을 원하느냐?"고 물었을 때 느헤미야는 "내 고향 내 조국 이스라엘 땅 예루살렘에 돌아가 예루살렘 성을 중건하게 하옵소서"라고 마음속에 품고 있었던 기도 제목을 말했습니다.
그러자 왕은 다시 묻기를 "시간이 얼마나 걸리게 되겠느냐?"고 말했습니다.
6절 마지막 부분에 보면 이때 느헤미야는 "기한을 정했다"고 했습니다.
그리고 7절 이하에는 그가 왕에게 이 공사의 완공을 위한 구체적인 도움의 리스트를 열거합니다.
이 리스트를 보면 우리는 느헤미야가 이 기간동안 얼마나 치밀하게 계획을 준비했었는가를 알 수 있습니다.
그는 우선 왕이 주변 총독들에게 조서를 내림으로 그가 예루살렘까지 도착하는 일에 장애가 없게 명령서를 하달해 달라고 요청합니다.
8절에는 왕의 삼림감독 아삽에게 조서를 내려 성과 가옥 건축에 필요한 충분한 재목들을 공급해 달라고 요청합니다.
그는 이렇게 미리 치밀하게 계획한 것입니다.

우리는 이런 계획에 대하여 그리스도인들 가운데 두 가지의 다른 입장이 존재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어떤 사람은 기도하면 되었지 계획이 무슨 필요하겠느냐고 생각하는가 하면, 또 다른 종류의 사람들은 최선을 다해 계획하면 되었지 기도가 무슨 필요가 있겠느냐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진정한 믿음의 사람들은 기도하며 계획합니다.
왜냐하면 기도에서 비전과 계획이 태어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이 땅을 살아가는 모든 사람들은 누구나 나름대로 어떤 꿈을 안고 살아갑니다.
그러나 그 꿈이 실현되느냐, 못 되느냐를 결정하는 요소가운데 하나가 계획을 갖고 있느냐 하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그 계획 여부에 따라 비전과 개꿈이 결정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개꿈 이야기가 나왔으니까 이런 비유를 생각할 수 있습니다.
어느 집에 두 아들이 있었는데 두 아들 모두가 개를 기르는 것이 꿈이었습니다.
그래서 두 아들 모두 개꿈을 꿉니다.
그런데 한 아들은 꿈만 꾸는데, 한 아들은 개꿈을 꾸며 개집을 설계하고 짓기 시작합니다.
여러분이 아버지이고 한 아들에게만 개를 사주어야 한다면 어떤 아들에게 개를 사주시겠습니까?
개꿈만 꾸는 아들입니까? 아니면 소원을 품고 계획하는 아들입니까?

그런데 문제는 왜 우리가 기도하며 계획하지 못하는 것일까요?
그것은 많은 분들이 "계획하고 실현하지 못하면 어떻게 하겠느냐"는 실패에 대한 두려움이 존재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존 맥스웰(John Maxwell)은 말하기를 "실패가 두려워 아무 것도 계획하지 못하는 사람은 실패를 계획하는 것"라고 했습니다.

성도 여러분! 복된 내일의 비전을 잉태하고자 하십니까?
그렇다면 엎드려 기도하십시오. 비전을 받으십시오.
그리고 그 주께서 주신 비전에 따라 내일을 치밀하게 계획하시기를 바랍니다.

3.기도하며 기회를 찾아야 합니다.
기회를 찾는다는 것이 무엇을 의미합니까?
그것은 우리가 기도하며 계획한 바를 실행에 옮길 수 있는 결정적인 때를 찾고 그 때를 붙잡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기회란 지나가면 다시는 붙잡기 어려운 것입니다.

그래서 기회를 풍자하는 이런 이야기가 있습니다.
옛날 헬라 시라큐스의 거리에 날개를 달고 있는 사람의 동상이 있었는데, 앞머리는 무성하고 뒷머리는 대머리였습니다.
그 동상 아래 이런 문구가 쓰여 있었다고 합니다.
누가 그대를 만들었는가?-리시퍼스.
그대의 이름은 무엇인가?-기회.
그대의 앞머리는 왜 그렇게 무성한가?- 내가올 때 사람들이 쉽게 붙잡을 수 있도록.
그대의 뒷머리는 왜 그렇게 대머리인가?-내가 지나가면 사람들이 다시 붙잡기 어렵기 때문에.

여러분! 드디어 느헤미야에게 기회가 찾아 왔습니다.
2절에 보면 "느헤미야의 얼굴에 수색 즉 근심의 표정이 있는 것을 보고 왕이 무슨 일이 있느냐"고 묻습니다.
느헤미야는 이 때를 놓치지 않았습니다.
3절을 보면 느헤미야는 "왕께 대답하되 왕은 만세수를 하옵소서. 나의 열조의 묘실이 있는 성읍이 이제까지 황무하고 성문이 소화되었으니 내가 어찌 얼굴에 수색이 없사오리까?"라고 말하자
4절을 보면 왕이 다시 묻기를 "네가 원하는 것이 무엇이냐?"고 했습니다.
이때 느헤미야는 5절에서 "나를 유다땅 나의 열조의 묘실이 있는 성읍에 보내어 그 성을 중건하게 하옵소서"라고 요청하였습니다.
그리고 그는 마침내 기도의 응답을 받습니다.

그렇습니다.
우리가 기도하고 기다린다는 것은 막연한 기다림이 아니라 기회를 찾는 기다림이어야 합니다.
사실 느헤미야는 그 기회를 얻기 위해 1:11을 보면 하나님께 묵상하며 기도하기를 "이 사람(아닥사스다 왕)앞에서 은혜를 입게 하옵소서"라고 하였습니다.
이 기도는 구체적으로 기회를 얻기 위한 기도였고, 드디어 그 기회가 도래한 것입니다.
성도 여러분!
우리가 어떤 분을 전도하고 그가 정말 구원받기를 소원하신다면 "그가 구원받게 해 주십시오"라고만 기도하시겠습니까?
아니면 좀더 구체적으로 "그에게 전도할 수 있는 기회가 오게 해 주십시오"라고 기도하시겠습니까?
우리가 막연히 기도하면 주님께서도 막연히 응답하실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의 기도가 구체적이라면 주님의 응답도 구체적일 것입니다.

여기 느헤미야는 기회 얻기를 위하여 기도했고, 기회가 왔을 때 기회를 잃어버리지 않았습니다.
그러므로 성령의 사람들은 하나님이 주신 기회를 놓치지 말아야 합니다.
왜냐하면 바로 그 기회가 하나님의 뜻을 이루는 기회이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때에 민감한 인생을 사셨습니다.
그는 나서지 않으셔야 할 때 "내 때가 아직 이르지 아니하였다"고 하셨지만, 그러나 소명을 이루시는 십자가의 고난의 시간이 가까이 왔을 때 주님은 "내 때가 이르렀사오니"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리고 그에게 주어진 고난의 잔을 마시며 당신의 때를 붙잡으셨습니다.
이렇게 우리의 죄를 대신한 그의 십자가에서 죽으심과 부활로 인류는 구원을 얻고, 새로운 삶을 살게 되었고, 그는 모든 민족가운데 구주와 주님이 되셨습니다.
그리고 여러분과 저는 새로운 내일을 바라보게 되었습니다.

주님의 제자 된 고현의 성도 여러분!
오늘 우리의 인생이 아무리 힘들고 어려워도 주님에게 나아와 기도하면, 반드시 주님이 주실 내일의 비전을 잉태하는 자가 되시지 않으시겠습니까?
그렇다면 이제 기도하며 기다립시다.
그리고 기도하며 계획하십시다.
그리고 기회가 오면 내일의 비전을 이루기 위해 몸을 던지는 고현의 성도 여러분이 되시기를 예수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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