큰 대제사장이신 예수님을 바라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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큰 대제사장이신 예수님을 바라보라
히4:14-16
히브리서는 하나님께서 당시 유대인으로서 예수를 믿는 사람들에게 특별히 써보내신 계시의 말씀이었습니다.
히브리서를 받아본 독자들은 당시 대단히 어려운 상황에 있었습니다.
유대인으로서 예수를 믿었기 때문에 유대 사회로부터 완전히 추방당한 것은 물론이고 끝없이 이어지는 핍박 속에서, 생업도 박탈당하여, 인생 밑바닥 생활을 하며, 단지 예수 믿는다는 그 이유 하나 때문에 사람들로부터 조소와 멸시를 받았습니다.
이러한 이유 때문에 그들 가운데 상당수가 "내가 이렇게 믿어서 어떻게 인생을 살 수 있을까? 더 이상 나는 못 견디겠다"라고 생각하고 예수를 부인하면서 백기를 들고 옛날로 돌아갔습니다.
이런 어려움에 처한 유대인 그리스도인들을 향해 하나님께서는 히브리서를 써 보내신 것입니다.
그 이유는 그들을 격려하고, 그들에게 소망을 주고, 그들로 하여금 잘못되지 않도록 경고하기 위함이었습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하나님께서는 그들에게 핍박을 하루아침에 다 평안으로 바꾸어 주신다든지, 그들의 가난을 풍요로운 생활로 바꾸어 주신다든지, 하는 식의 해답을 주시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4:14절에서 히브리서 기자는 "그러므로 우리에게 큰 대제사장이 있으니 승천하신 자 곧 하나님의 아들 예수시라"고 했습니다.
다시 말해서 우리에게는 큰 제사장이 있다는 것입니다.
구약 성경을 보면 제사장이나 대제사장은 하나님과 사람 사이에 서서 하나님의 손에 있는 은혜들을 사람들에게 가져다주는 중간 역할을 했습니다.
다시 말해서 예수 그리스도가 바로 그와 같은 위치에 계신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예수 그리스도는 구약에 있는 대제사장과 다른 완전한 대제사장이라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어째서 예수님은 완전한 대제사장입니까?
예수님은 참 하나님이시고 예수님은 참 사람이십니다.
우리는 그 신비의 진리를 다 이해하지 못합니다.
하지만 예수님은 분명히 완전한 하나님이십니다.
그러므로 하늘나라에 대한 모든 신비한 축복에 대해 예수님이 모르시는 것은 하나도 없습니다.
따라서 예수님이 하나님 자신이나 하늘 나라의 축복에 대해 잘 몰라서 우리를 돕는데 있어 실수하실 확률은 전혀 없는 것입니다.
그리고 예수님은 완전한 사람이십니다.
15절을 보면 "모든 일에 우리와 한결같이 시험을 받으셨다"는 말씀이 바로 그 의미입니다.
본인이 직접 사람이 되셨고, 참 사람이시기 때문에, 인간의 연약함도 알고 계시고, 인간에게 필요한 것이 무엇인가도 알고 계시고, 그들에게 당장 하나님께서 내려 주셔야 될 은혜가 어떤 것인가도 정확하게 아십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이 사람을 잘 이해하지 못해서 우리를 실망시킬 가능성은 전혀 없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예수님은 하나님도 완전히 아시고, 사람도 완전히 아십니다.
이처럼 모든 것을 다 알고 완벽하게 우리를 위해서 축복의 역할을 해 줄 수 있는 분이기 때문에, 완전한 대제사장이 되시는 예수님을 바라보라는 것입니다.
따라서 예수님을 바라볼 때 아무리 핍박이 심해도 이길 수 있고, 아무리 가난 때문에 고생해도 날마다 기뻐하고 감사하면서 살 수 있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지금 우리 모두에게도 마찬가지입니다.
실패할 때, 실망할 때, 연약해서 몸부림 칠 때, 위로를 받고, 평안을 유지하고, 구원을 얻을 수 있는 길은 완전한 대제사장 되신 예수 그리스도를 분명히 보고 믿고 알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두 가지를 꼭 실천해야 됩니다.
1.예수 그리스도가 대제사장 되심을 철저하게 믿어야 합니다.
14절 끝을 보면 "우리가 믿는 도리를 굳게 잡을 지어다"라고 했습니다.
무엇을 믿는다는 말입니까?
예수님은 우리의 완전한 대제사장이 되신다는 진리를 믿는 것입니다.
이 진리를 철저하게 믿고 붙들어야 비로소 대제사장 되신 예수님을 통해서 오는 모든 축복을 누릴 수 있다는 말입니다.
"굳게 잡으라"는 말은 헬라어로 "크라테오(krateo)"입니다.
특별히 남에게 빼앗기지 않아야 될 소중한 것을 손에 쥐었을 때는 어느 때보다도 힘을 더 강하게 주듯이 꽉 잡는 것을 말합니다.
그러므로 완전한 대제사장 예수 그리스도를 꽉 붙들고 놓치 않는 방법은 철저하게 믿는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나의 대제사장 되신다. 그분은 오늘도 나와 함께 계신다" 이와 같이 예수님이 나의 대제사장 되심을 계속해서 확인하고 믿고 고백하고 꼭 붙들면, 그 생각이 나의 모든 것을 지배하게 되어지고, 그 믿음이 나의 생각과 감정과 의지를 통제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렇게 되면 나중에는
3:1절의 "그러므로 함께 하늘의 부르심을 입은 거룩한 형제들아, 우리의 믿는 도리의 사도시며 대제사장이신 예수를 깊이 생각하라"는 말씀과 같이 예수님을 깊이 생각하는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서 예수님이 나의 모든 사상과 감정을 지배하면서 나를 장악하실 때 놀라운 위로와 평안이 우리를 사로잡게 된다는 것입니다.
왜 그렇습니까?
4:15절을 보면 "우리에게 있는 대제사장은 우리 연약함을 체휼하지 아니하는 자가 아니요"라고 했습니다.
왜 예수님이 우리의 연약함을 동정하실 수 있습니까?
사람의 몸을 입고 이 세상에 오셔서 우리가 겪는 모든 연약함과 고통을 맛보셨기 때문입니다.
성도 여러분!
예수님만큼 가난 때문에 고통 당한 일이 있습니까?
예수님만큼 슬픔을 가슴에 안고 괴로워한 경험이 있습니까?
그는 죄가 없는 분이기 때문에 똑 같은 슬픔이라도 그가 느끼는 강도는 우리보다도 몇 천배, 몇 만배 더 클 수 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 슬픔을 안고 함께 눈물을 흘리면서 괴로워하는 모습을 성경에서 볼 수 있습니다.
예수님만큼 공포로 인해 밤새도록 씨름해 본 일이 있습니까?
십자가의 공포를 여러분이 체험해 보셨습니까?
우리 예수님은 인간이 경험할 수 있는 모든 연약함을 다 경험하시면서 그 연약함으로 인한 고통도 몸소 체험하셨습니다.
2:18절을 보면 "자기가 시험을 받아 고난을 당하셨은즉 시험받는 자들을 능히 도우시느니라"고 하셨습니다.
우리 가운데 "나를 알아주는 사람은 아무도 없어"라는 생각이 자주 드는 분이 있습니까?
죄를 짓고 고통 속에서 마음에 무거운 짐을 지고 잠을 이루지 못하는 성도님들이 있습니까?
여러분의 처지를 충분히 이해하시고, 여러분을 도우려고 하시는 분이 한 분 계십니다.
그 분은 우리가 사랑하는 완전한 대제사장,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그분을 꼭 붙드십시오.
그러면 우리에게는 절망이 없습니다.
우리는 절대로 거꾸러뜨림을 당하지 않습니다.
2.우리가 해야 할 일이 있습니다.
4:16절을 보면 "그러므로 우리가 긍휼하심을 받고 때를 따라 돕는 은혜를 얻기 위하여 은혜의 보좌 앞에 담대히 나아갈 것이니라"고 했습니다.
다시 말해서 하나님의 은혜를 잔뜩 쌓아 놓고 예수님의 이름을 부르면서 오기만 하면 주시겠다고 준비한 보좌라는 것입니다.
여러분! 얼마나 엄청난 은혜를 쌓아 놓고 계시는지 아십니까?
딤전1:14절에 보면 "우리 주의 은혜가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믿음과 사랑과 함께 넘치도록 풍성하였도다"고 하셨습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의 은혜는 넘치는 은혜입니다.
넘치는 것을 더 초월해서 풍성해지는 은혜입니다.
이런 은혜를 하나님께서 쌓아 놓으신 곳이 은혜의 보좌입니다.
저나 여러분이나 은혜를 빼면 남는 것이 무엇이 있습니까?
아무 것도 없습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서 은혜를 거두어 가면 우리는 시체입니다.
아무 것도 없습니다.
우리는 어차피 우리 모두는 문닫을 시간이 다 되어서 허겁지겁 포도원에 들어가 한 시간 일하고, 하루 일한 사람들처럼 일당을 받아 나온 품꾼과 비슷합니다.
몇 시간을 일했는지는 문제가 되지 않습니다.
얼마나 일을 많이 했는지도 상관없습니다.
일등이냐, 꼴찌냐 하는 것도 아무 의미가 없습니다.
잘 생겼나, 못 생겼나 하는 것도 상관이 없습니다.
주인이 기분이 좋아서, 너무너무 사랑스러워서 무조건 주시는 은혜입니다.
우리 모두가 이 은혜를 받고 지금까지 살아왔습니다.
이런 은혜를 하나님이 주시려고 은혜의 보좌를 마련해 놓고 계십니다.
그리고 예수님은 그곳에서 기도하고 계십니다.
그러므로 그 보좌를 향해 나아가기만 하면 되는 것입니다.
그럼 "나아간다"의 뜻은 무엇입니까?
끊임없이 하나님의 은혜를 찾는 것입니다.
끊임없이 예수 그리스도를 바라보고 그의 이름을 부르는 것입니다.
기독교는 나아감의 종교라는 말이 있습니다.
여러분의 은혜의 보좌는 어디 있습니까? 두 세 사람이 예수의 이름으로 모이는 그곳에 은혜의 보좌가 있습니다.
어디에 은혜의 보좌가 있습니까? 홀로 조용히 앉아 기도하는 밀실에 있습니다.
어디에 은혜의 보좌가 있습니까? 예수님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예배하기 위해서 모인 거룩한 성도들의 자리에, 이 예배 시간에 은혜의 보좌가 있습니다. 할렐루야!
그 보좌로 우리는 나아가야 합니다.
그리고 예수님의 이름을 부르면서 당당하고 담대하게 나아가면 "때를 따라 돕는 은혜"를 주신다고 말씀하십니다.
성도 여러분!
때를 따라 돕는 은혜는 어떤 것인지 생각해 보셨습니까?
제가 볼 때는 두 가지 의미가 있는 것 같습니다.
1)내가 항상 받을 수 있는 은혜, 이것이 때를 따라 돕는 은혜입니다.
"하나님, 제 믿음이 너무 약합니다. 믿음을 주시옵소서"라고 구할 때 하나님께서 믿음을 키워 주신다든지, "하나님, 대학입시를 봤습니다. 꼭 합격시켜 주십시오"라며 열심히 기도했을 때 합격하게 해주셨다든지, 이와 같이 당장 급하기 때문에 주님 앞에 달라고 기도하면서 기다리는 것에 대한 즉각적인 응답을 일컬어 때를 따라 돕는 은혜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이런 은혜는 우리를 매우 기쁘게 합니다.
저도 이런 응답을 참 좋아합니다.
2)하나님 식대로 대답하는 것입니다.
하나님 식대로 은혜를 주시는 것이란 하나님만의 방법을 가지고, 하나님만의 때를 가지고 응답하시는 것을 말합니다.
우리가 아무리 "하나님, 하나님" 하고 부르고, "예수님, 예수님 주십시오"라고 애걸복걸해도 하나님께서 생각하시는 때가 아니면 절대 허락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때를 따라 돕는 은혜는 하나님이 선택하신 방법과 때를 따라서 주시는 은혜라고 해석할 수 있습니다.
성경에 등장하는 많은 위대한 인물들을 한번 보십시오.
그들이 급하게 하나님께 달라고 구할 때 즉시 응답하시는 경우가 많은가, 가만히 두면서 하나님의 방법대로, 하나님의 때를 맞추어서 주시는 때가 더 많은가 한번 조사해 보십시오.
어느 것이 더 많습니까?
후자가 훨씬 많습니다.
우리에게도 그렇게 하시는 것을 자주 봅니다.
하나님의 때를 따라서 응답하시는 은혜가 때로는 우리에게 몹시 큰 갈등과 고통을 안겨 줍니다.
그래서 "하나님, 지금 당장 필요한데 왜 가만히 계십니까?" 한 달을 기도해도 일년을 기도해도 하나님은 가만히 입 다물고 계시는 것 같이 느껴질 때는 정말 견디기 힘듭니다.
믿음이 마구 흔들리기도 합니다.
그리고 마귀는 때를 놓치지 않고 와서 "믿어도 소용없다. 아무리 기도를 많이 해도 다 쓸데없는 짓이다"라며 계속 속삭여 댑니다.
이런 상황에 있으면 갈등이 일어나고 고통이 따라옵니다.
이런 때는 엄청난 인내가 필요합니다.
여러분도 많이 경험했을 것이고 앞으로도 많이 경험하셔야 됩니다.
이런 경우에 우리는 어떻게 해야 됩니까?
은혜의 보좌 앞에 나와서 하나님 앞에 기도할 때, 처음에는 내 식대로 달라고 기도해야 합니다.
그리고 아무리 기도해도 소식이 없으면 "하나님이 작정하신 때가 언제입니까? 하나님이 생각하시는 방법이 무엇입니까? 그대로 주십시오. 인내하면서 기다리겠습니다. 기도가 끊어지지 않도록 저를 도와주십시오" 라면서 계속 은혜의 보좌 앞으로 나아가면 어느 때인가 하나님의 방법, 하나님의 때를 따라서 응답을 하실 것입니다.
말씀을 맺습니다.
여러분에게 두려움이 있습니까?
고통이 있습니까?
오랫동안 기도하지만 응답이 없는 기도제목이 있습니까?
앞날에 대한 불안이 있습니까?
염려하지 마십시오.
우리에게는 대제사장, 완전한 대제사장 되신 예수 그리스도가 오늘도 은혜의 보좌에 계십니다.
그곳에서 우리를 위하여 기도하고 계십니다.
우리에게 가장 최선의 것을, 가장 최선의 때에 맞추어서 주시려고 자기 앞에 담대히 나아 오라고 초청하시는 예수 그리스도가 계십니다.
그분을 바라보십시오.
그분을 믿으십시오.
그리고 항상 담대하게 나아가십시오.
그러면 세상이 보기에 화려하지 않을지 모르지만 우리는 반드시 하늘에서 별과 같이 빛나는 영광스러운 사람들이 될 것을 믿으시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