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령의 능력으로 야성을 회복합시다
본문
성령의 능력으로 야성을 회복합시다
삿7:1-8
고대 철학자로 불려지는 피타고라스는 "앞으로 오는 시대의 지배적인 신은 숫자의 신이 될 것이다"라고 말했습니다.
다시 말해서 "더 많은 숫자의 군대, 더 많은 숫자의 무기, 또 더 많은 숫자의 황금을 준비한 나라만이 세계의 패자가 될 것이다"라는 것입니다.
오늘날의 세상 현실을 볼 때 이것은 지극히 상식적이고 또 보편적인 예언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이런 상식적인 관점에서 오늘의 성경 본문을 들여다본다면 성경의 하나님은 지극히 비상식적이라고 할 수밖에 없습니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는 미디안 대군과 전쟁을 앞둔 기드온에게 말씀하시기를 "숫자가 너무 많다 좀 돌려보내라"고 하셨기 때문입니다.
사실 미디안의 대군과 싸우기 위해서는 3만2천명도 오히려 부족한 숫자인데 하나님께서 너무 많다고 돌려보내라고 하신 것입니다.
그래서 기드온은 전쟁준비가 안된 사람, 그리고 참으로 마음속에 죽음을 두려워하는 사람들은 돌아가라고 해서 이제 만 명이 남았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또 말씀하시기를 "만명이 아직도 많다. 좀 더 돌려보내라"고 하셨습니다.
그래서 마지막에 남은 사람은 300명이었습니다.
바로 이 300명을 통해 하나님은 이스라엘 나라를 구출하시고, 또 하나님의 나라를 세워 가는 놀라운 기적을 행하신 것입니다.
그렇다면 도대체 이 300명은 어떤 사람들이었을까요?
그래서 오늘은 우리 고현교회의 성도님들이 성령의 능력으로 용감한 야전 병이 되기를 열망하면서 "성령의 능력으로 야성을 회복합시다"라는 제목으로 본문을 조명하여 하나님 앞에서 성도 여러분과 함께 은혜 받기를 예수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1.자긍하지 않아야 합니다
2절을 보면 "여호와께서 기드온에게 이르시되 너를 좇는 백성이 너무 많은즉 내가 그들의 손에 미디안 사람을 붙이지 아니하리니 이는 이스라엘이 나를 거스려 자긍하기를 내 손이 나를 구원하였다 할까 함이니라"고 했습니다.
여기서 우리가 주목해야 할 단어는 "자긍"이라는 단어입니다.
그 뜻은 "우쭐댄다"는 말로써 "자랑, 혹은 교만"이라는 뜻입니다.
다시 말해서 하나님께서 말씀하시기를 이스라엘 백성들이 자기들의 능력을 자랑하며 교만하여 "내 손이 나를 구원하였다"할까 두려워서 내가 그들을 돌려보낸다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우리가 성경에 보면 하나님이 제일 싫어하시는 것, 하나님이 절대로 눈뜨고 보지 못하시는 것 한 가지가 있다면 그것이 바로 교만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겸손한 자에게는 은혜를 주시지만 교만한 자는 그냥 놔두시는 정도가 아니라 대적하여 물리치신다"고 하셨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그리스도인이고, 기도하는 사람들이며, 하나님을 사랑하는 사람들이고, 하나님의 도움을 의지하고 살아가는 사람들임에도 불구하고 우리들에게 부족함과 연약함을 남겨두십니다.
왜냐하면 우리의 일생을 통해서 시련과 역경을 통과하게 하여 교만하지 않게 하여 성령을 의지하게 하시려는 하나님의 섭리이기 때문입니다.
그 대표적인 사람이 바로 사도 바울입니다.
바울은 교통이 불편했던 그 당시에 세계를 적어도 네바퀴씩이나 돌면서 전 세계를 완전히 복음으로 바꾸어 놓았던 이 놀라운 영적인 거인이었습니다.
그리고 그가 기도하면 사람들이 치료를 받았고, 그가 들어가는 도시마다 마을마다 복음의 충격 속에서 삶이 바뀌는 놀라운 사건들이 일어났습니다.
그런데 바울이 해결하지 못한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자기 자신의 육체의 질병입니다.
바울은 그것을 "육체의 가시"라고 불렀습니다.
고후12:7-8절을 보면 나를 계속해서 찌르고 있는 가시, 나를 괴롭히고, 나를 아프게 하고, 나를 고통스럽게 만들고 있는 가시를 놓고 세 번씩이나 하나님 앞에 나와서 "하나님 이 병을 고쳐주옵소서"라고 결사적으로 기도한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그러나 낫지 않았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그 육체의 가시를 남겨두는 이유를 깨달았습니다.
고후12:9-10절에 보면 사도 바울은 말하기를 "하나님이 나에게 이미 많은 은혜를 주셨는데 내게 건강까지 주시면 내가 틀림없이 교만할 가능성이 있기 때문에 이 가시를 부둥켜안고 오직 성령을 의지하며 살게 하심으로서 내가 겸손할 수 있도록 이 가시를 허용하셨다"고 고백하였습니다.
저는 인생을 살면서 시련을 겪을 때마다 좀 지나고 나서 제 삶을 돌이켜 보면 어느 때나 한가지 공통점이 있었습니다.
그것은 제가 다소간 교만해지려고 할 때 하나님이 시련을 주시는 것을 발견하게 됩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내가 교만한 꼴을 조금도 못보시는구나 하고 생각하고 그분 앞에 엎드립니다.
왜냐하면 내가 만약 성령님을 의지하지 아니하고 내 자신을 의지하며 교만해지면 그것이 내 목회사역의 끝이라는 것을 알기 때문입니다.
성도 여러분!
우리가 주목해야 할 것은 하나님이 쓰시는 사람들은 자기 부족을 알고 성령의 도움을 받기를 위해 엎드리는 겸허한 사람들이었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 앞에서 성령충만으로 무장하여 교만하지 않는 겸손한 자들이 되어 주님으로부터 계속하여 쓰임을 받으시는 성도님들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2.주님을 신뢰하는 사람이어야 합니다.
우리가 자신의 부족함을 알고 있다고 해서 그것만으로 자동적으로 우리가 하나님께 쓰임을 받을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
그러므로 중요한 것은 자기의 연약함과 부족을 알기에 강하신 하나님 앞에 나와서 그분을 의뢰하며, 그분 앞에 무릎을 꿇고 엎드려 주시마 약속하신 성령충만을 받기 위해 간구하는 것이 정말 중요한 것입니다.
유명한 세계적인 전도자 "무디"는 모세의 일생을 성경을 통해서 공부하다가 그의 일생을 흥미있게 세가지의 단계로 나누었습니다.
모세는 120년을 살았습니다.
그것을 세단계로 나누면 처음 40년, 중간 40년, 마지막 40년입니다.
그런데 무디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모세의 처음 40년은 애굽의 궁중에서 자라면서 자기가 굉장한 인간인줄 착각하면서 살던 시절이라고 했습니다.
두 번째 40년은 하나님이 모세를 미디안 광야로 밀어냈고 그 광야에서 모세가 배운 것은 "나는 아무것도 아니구나"라는 것을 알았다고 무디는 표현했습니다.
그렇습니다.
"처음에 나는 굉장한 인간인줄 알았다가 내가 하나님 앞에서 자신을 들여다 볼 수록 내가 하나님 앞에 정말 나는 아무 것도 아니다"라는 이 고백을 하기까지는 모세에게 40년이 필요했던 것입니다.
그런데 40년이 끝난 후 하나님이 모세에게 "됐다. 이제 겸손해졌구나. 내가 너를 붙들어 쓰겠다. 너는 이제 내 백성을 이끌어내라"고 하셨습니다.
이때 모세는 "하나님 저는 혀가 둔하여 이 백성을 설득할 수 없습니다"라고 말했습니다.
그때 하나님께서 "네 입을 누가 만들었느냐? 그렇다면 말하는 사람으로 너의 입을 대신하여 아론을 세워주겠다. 나를 믿고 가거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때 비로소 모세는 하나님을 의지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래서 무디는 모세의 마지막 40년을 가리켜서 모세는 자기 부족을 알았기에 자기를 의뢰하지 않고 하나님만을 의뢰하는 단계였다고 말했습니다.
성도 여러분!
하나님의 손에 붙들림을 받아 하나님만 의뢰하고 성령님에게 순종하는 종이 되었을 때 하나님이 비로소 이런 모세를 통해서 출애굽의 영광을 나타내시고 놀라운 이스라엘의 새로운 역사를 펼쳐가신 것입니다.
9절을 보면 이제 300명밖에 남지 않았는데 하나님께서는 기드온에게 "이 밤에 여호와께서 기드온에게 이르시되 일어나 내려가서 적진을 치라 내가 그것을 네 손에 붙였느니라"고 했습니다.
그런데 기드온은 이 말씀을 믿었습니다.
다시 말해서 "네 적진을 너희 손에 붙였다. 너희들이 300명이지만 내가 너희들에게 이 적군을 맡겼다"는 하나님의 말씀을 신뢰하고 말씀을 믿는 순간 갑자기 기드온 300명의 용사는 강력한 야전병들이 되었다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자기의 연약을 깨닫고 엎드려서 하나님을 의뢰하는 그 순간이 가장 강해지는 순간인데 이것을 그리스도인의 삶의 역설이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자기의 연약함을 사용하시는 강하신 하나님께 엎드리고 간구하여
성령충만을 받은 자는 더 이상 약한 자가 아니라는 것을 믿으시기를 축원합니다.
3.준비된 사람이어야 합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믿는다고 할 때 성도들에게 가장 빈번한 오해는 내가 하나님을 믿기 때문에 나는 아무 것도 안 해도 좋다는 생각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기억해야 할 것은 참된 믿음은 믿기 때문에 아무 것도 안 하는 것이 아니라 믿기 때문에 최선을 다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5-6절을 보면 주님께서 최종적으로 300명을 선별할 때, 만명의 병사들에게 물을 마시게 함으로서 선별하신 것을 보여 주고 있습니다.
이때 병사들이 두 종류로 갈라집니다.
무릎을 꿇고 편안히 물을 마시는 사람과, 무릎을 꿇지 않고 손으로 물을 움켜쥐고 마시는 사람이었습니다.
때문에 무릎을 꿇지 않고 물을 마신 300명의 병사는 물을 마셨다라고 하기보다는 물을 입에 적셨다는 것이라고 해석할 수 있습니다.
우리가 주목하실 것은 지금 본문의 상황은 전시 상황입니다.
그러므로 선별된 300명은 긴장을 풀지 않고 전방을 향해 경계 태세를 가지고 있었던 사람들이라는 것입니다.
고현의 성도 여러분!
우리 성도들은 우리가 지금 전시 상황에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벧전5:8절을 보면 베드로는 "근신하라 깨어라 너희 대적 마귀가 우는 사자와 같이 두루 다니며 삼킬 자를 찾느니라"고 했습니다.
그러므로 적어도 사탄을 대적하는 일에 있어서 우리는 항상 긴장을 풀지 말고 준비된 자세가 되어 있어야 하는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스라엘의 많은 병사들은 그 긴장의 띠를 쉽게 풀어버리고 말았습니다.
그런데 중요한 것은 하나님께서는 그들을 쓰시지 않으시고, 전방을 향해 긴장을 풀지 않고 준비하고 있었던 사람들만 쓰셨다는 것입니다.
성도 여러분!
그들이 하나님으로부터 시험받았던 시험은 아주 미미한 것입니다.
왜냐하면 물을 마시는 일이 대단한 일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그것이 하나님의 시험이었습니다.
또한 흥미로운 사실은 그들은 시험을 받으면서 자신이 하나님으로부터 지금 시험을 받고 있다는 사실을 전혀 모르고 있었다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은 오늘도 저와 여러분을 어떻게 시험하실는지 아무도 모릅니다.
그리고 그 시험은 일상적인 삶의 환경에서 아주 작은 일에서부터 치러진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성령충만으로 무장하여 오늘의 작은 일 앞에 성실할 수 있는 사람을 위해서 내일의 위대함을 준비하고 계시는 하나님이라는 사실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성도 여러분!
물 마시는 일, 그것은 아무 것도 아닌 일이었습니다.
그러나 거기서부터 최선을 다하고 준비하고 있었던 사람들을 하나님은 쓰신 것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시78:70절을 보면 "또 그 종 다윗을 택하시되 양의 우리에서 취하시며"라고 했습니다.
다시 말해서 하나님께서 다윗이 양무리를 치는 것을 보니까 양 한마리하고 놀며, 그들을 돌보는 일을 성실하게 잘 하더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시78:72절을 보면 "이에 저가 그 마음의 성실함으로 기르고 그 손의 공교함으로 지도하였도다"라고 했습니다.
즉 하나님께서는 다윗을 내려다보시면서 저렇게 성실한 다윗에게 내 민족을 맡겨도 되겠구나 생각하시고 그를 왕으로, 이스라엘의 목자로 세워 사용하셨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손에 붙들려 쓰임받는 성공자가 되기 위해서는 우리들도 오늘 내 삶의 현장과 내 사역의 현장에서 주어진 일, 그것이 아무리 작은 일이라도 주께서 나에게 맡기신 일로 알고 신실하게 긴장의 띠를 풀지 않고 최선을 다하는 성도님들이 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말씀을 맺습니다.
우리의 남은 생애를 어떻게 사시겠습니까?
우리는 참으로 부족합니다.
그러나 그 부족함과 내 연약함을 알고 교만하지 않고 스스로 겸비하여 전능하신 하나님 앞에 엎드려 그분을 의뢰하면서 최선을 다한다면 저와 여러분을 통해서, 고현교회를 통해서 한번 놀라운 일을 행할 줄로 믿습니다.
왜냐하면 내 연약함을 알고 전능하신 하나님께 전적으로 의뢰하고 약속하신 성령충만을 받아 기드온 300용사처럼 용감한 야성을 갖춘다면 이 비젼은 하나님의 비젼이 되기 때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