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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로 격로하고 위로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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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창훈목사 설교
서로 격로하고 위로합시다.

히10:19-25

오늘 본문에서 히브리서 기자는 그리스도인들에게 "어떤 상황 가운데서도 믿는 도리의 소망을 움직이지 말고 굳게 잡아 서로 돌아보아 사랑과 선행을 격려해야 한다"고 말씀합니다.
히10:32-35의 말씀으로 미루어 이 말씀은 믿음을 가진 후 고난에 직면해 있었던 1세기의 그리스도인들을 격려하기 위한 메시지였다고 생각됩니다.
고난의 종류는 달라도 1세기이상으로 훨씬 복잡한 오늘날 21세기를 사는 우리 성도들에게도 동일한 격려가 필요한 것이 사실입니다.
그래서 오늘은 낙심할 이유가 많은 이 세상에서 어떻게 우리가 서로 격려하며 살아갈 수 있을까? 를 생각하며 "서로 격려하며 위로합시다"라는 제목으로 은혜 받기를 예수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1.격려의 규칙적인 기회를 만들어야 합니다.
우리가 어떤 사람을 격려하고자 한다면 우선 그 사람을 만나야 하고, 그리고 일회성의 만남이 아닌 지속적 만남을 통해 한 사람의 인격과 신앙을 세워주기 위해서는 규칙적인 만남의 기회가 필요합니다.
그래서 그리스도인에게는 규칙적인 모임이 필요한 것입니다.
특별히 소그룹 모임, 즉 목장예배와 같은 상황이 필요합니다.
왜냐하면 주일 예배를 통해 이런 개인적인 격려를 나눈다는 것은 불가능하기 때문입니다.

초대교회 교인들이 그토록 무서운 신앙의 핍박에 직면하면서도 용기를 잃지 않고 당시의 세상을 변화시킬 수 있었던 비밀은 그들이 바로 집에서 거의 날마다 모인 교회의 교제를 통해 얻은 격려 때문이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히브리서 기자는 본문 25절에서 "모이기를 폐하는 어떤 사람들의 습관과 같이하지 말고 오직 권하여 그 날이 가까움을 볼수록 더욱 그리하자"고 말합니다.
지금은 1세기의 그리스도인들보다 훨씬 더 복잡한 위기에 직면해 있고 여러 가지 정황으로 미루어 예수님의 재림이 더 가까운 때에 살고있는 우리에게는 더욱 규칙적인 성도의 모임이 필요한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백성을 광야로 내보내면서 그들을 공동체로 나아가게 하셨습니다.
왜냐하면 공동체의 교제만이 광야의 위험과 고독에 대한 승리의 처방임을 아셨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이 광야의 행진에서 가장 중요한 자산은 장막이었습니다.
그들은 광야의 행진을 멈출 때마다 장막을 둘러싸고 열두지파로 나뉘어 공동생활을 하게 하셨습니다.
19-21절을 보면
밤마다 모닥불을 피워놓고 직면한 문제들을 토론하고 그래도 힘겨운 문제들은 제사장으로 하여금 그 문제를 짊어지고 장막을 열고 휘장 안에 들어가 하나님께 나아가 부르짖게 하였습니다.
또한 백성들은 장막 밖에서 중보기도를 하며 기다렸습니다.
그래서 공동체의 모임은 매순간 순간 그들에게 진정한 축복이었고, 안식이었던 것입니다.

행7:38절에서는 이 광야의 모임을 가르켜 "광야교회"라고 불렀습니다.
그렇습니다.
기독교는 처음부터 "공동체"로 출발했던 것입니다.
신약교회는 "새언약의 공동체"입니다.

성도 여러분!
여러분과 저는 얼마나 이 공동체의 모임을 소중히 여기고 있습니까?
공동체의 모임을 통해 규칙적인 격려를 받으며 살고 계시는지요?
영국성공회 성직자이며 시인이었던 존던이 리버플 항구에서 배를 타는데 교회식구들이 마중 나와 손을 흔드는 것을 조금은 번거롭게 생각했다고 합니다.
그런데 갑자기 한 노인이 교회식구들에게 나아오더니 지폐 몇장을 내밀면서 "부탁이 있습니다. 배가 떠날 때 저를 위해 손을 흔들어 주실 수 있을까요?"하더랍니다.
그 날 그는 공동체를 떠나서는 의미 있는 생존이 불가능한 인간의 실존을 깨닫고 "우리는 각 각 떨어진 외로운 섬이 아니다. 우리는 모두 대륙의 한 부분이다"라고 말했습니다.

2.격려의 생산적인 내용을 숙지해야 합니다.
우리의 모임에서 나누어야 할 격려의 내용은 무엇일까요?
무슨 말로 격려해야 할까요?
때때로 우리는 격려하기 위해서 모였다가 오히려 서로에게 상처를 주는 일도 흔히 있을 수 있습니다.
그것이 우리들중의 어떤 분들이 목장예배를 회피하는 "이해할 수 있는 가장 큰 이유"이기도 합니다.

그러나 이런 경우를 생각해 보십시오.
자동차 사고를 경험한 직후에는 누구나 다시는 자동차 운전을 거부할 수 도 있습니다.
그러나 이런 분일수록 다시 핸들을 잡아야 합니다.
그리고 심리적인 상처를 극복해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그의 삶은 너무나 불편해 질 것이고, 그는 운전함으로 오는 많은 유익함을 잃어버리게 되기 때문입니다.

어떤 책을 읽어보니까 과거 북한의 김일성이 젊은 시절 헬리콥터 사고를 만나 죽을 뻔한 일이 있었다고 합니다.
그 후 그는 되도록 비행기를 피하고 기차로 다녔다고 합니다.
왜냐하면 그는 마음속에 있었던 비행기에 대한 심리적 상처를 극복하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그것이 아들 김정일에게까지 영향을 끼쳐 얼마 전 사흘이면 다녀올 수 있는 소련여행을 무려 한달 간에 걸쳐 다녀오는 세계적인 촌극을 연출하지 않았습니까!
그러므로 모임에서 상처받았다고 해서 모임을 거부하는 지혜롭지 못한 성도가 되어서는 안되는 것입니다.

성도 여러분!
이제 우리가 우리의 모임을 생산적으로 이끌어 가기 위해서는 생산적인 대화의 내용을 서로간에 숙지해야 할 필요가 있습니다.
그러면 무슨 대화를 나누어야 할까요?
정치이야기를 할 수 있지만 그것이 결코 성도의 모임의 주제가 되어서는 안됩니다.
사업이야기를 할 수 있지만 그것이 결코 우리의 모임의 주제가 되어서는 안됩니다.
자녀 이야기를 할 수 있지만 그것이 대화의 주제가 되어서는 안됩니다.
왜냐하면 우리의 모임이 단순히 사람과의 만남만이 아닌 하나님과의 만남이 전제된 것이기 때문입니다.

오늘의 본문은 성도의 모임의 세 가지 중요한 관심의 주제를 서술합니다.
그것은 믿음, 소망, 사랑입니다.
22절은 믿음의 중요성을 강조합니다.
믿음 없이 우리가 하나님께 나아갈 수 없기 때문입니다.
23절은 소망의 중요성을 강조합니다.
소망 없이 우리는 미래를 기대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24절은 사랑의 중요성을 강조합니다.
사랑 없이 우리의 모임은 의미 있는 모임으로 지속될 수 없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모일 때마다 믿음을, 소망을, 그리고 사랑을 격려하는 것을 숙지할 필요가 있는 것입니다.

3.격려의 성경적인 모범을 학습해야 합니다.
심리학자들은 인생을 성공적으로 살아가는 사람들에게는 어떤 습관이 있다고 말합니다.
책방에 가보십시오.
어떤 일에 있어서든지 성공하는 사람들의 여러가지 습관, 이런 유형의 책들이 적지 않게 서가를 채우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자녀를 기르면서 어린 시절에 몇가지 중요한 습관을 길러 주는 것은 중요한 일입니다.
예를 들면 공부하는 습관, 교회 가는 습관, 예배하는 습관, 기도하는 습관, 절약하는 습관, 이웃을 섬기는 습관 등...입니다.

그런데 문제는 우리 자녀들이 안 좋은 습관부터 학습한다는 것입니다.
공부 안 하는 습관, 교회 안가는 습관, 기도 안하는 습관....
이북 말로 말해서 이거이 문제 아닙니까?
그렇습니다.
우리가 신앙생활 할 때에도 우리들의 선배에게 좋은 습관을 학습한다는 것은 매우 중요한 일입니다.
그런데 가끔 우리는 안 좋은 신앙습관을 가진 사람에게 영향을 받을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누구와 함께 하느냐 하는 것은 너무나 중요한 것입니다.

우리교회는 목장에 되도록 좋은 목자와 섬김이를 세우기를 원합니다만 그렇지 않은 경우들도 있을 수 있다고 봅니다.
그런 경우 바꿀 수 있는 여러분에게 선택의 자유를 제공하고 싶습니다.
다시 말해서 순교적 각오로 한 목장을 고수하실 필요는 없다는 것입니다.
여러분에게 좋은 영향을 주는 목장을 선택하십시오.
그런 목장이 없겠지만 어떤 목장에 갔더니 다른 사람 험담만 한다면 미안하다고 인사하고 다른 목장으로 옮기십시요.
왜냐하면 나쁜 영향을 분별하여 선택하는 것은 여러분의 몫이기 때문입니다.

25절을 보면 "모이기를 폐하는 어떤 사람들의 습관과 같이하지 말고"라고 가르칩니다.
다시 말해서 나쁜 모범을 극복하라는 말입니다.
그러면 격려의 좋은 모범은 무엇입니까?
우선 복음서를 통해 예수님의 모범을 보면 예수님은 열두 명의 제자들을 선택하신 후 그들과 규칙적으로 함께 하시며, 하나님 나라의 진리를 나누셨습니다.
마지막 십자가를 앞두고 예수님은 제자들과 만찬을 함께 하시고 제자들의 발을 씻기시는 사랑의 본을 보이신 후 "너희는 서로 사랑하라"고 격려하셨습니다.
제자들은 주님의 이런 격려를 체험하며 제자다운 제자로 성숙할 수 있었고 마침내 그들을 통해 세상이 변화될 수 있었던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예수님은 위대한 격려자이셨습니다.
기독교 역사상 또 한 분의 위대한 격려자가 있었다면 사도 바울입니다.
그의 서신서는 격려의 메시지로 꽉 차있습니다.
그러나 저는 바울이 바울 될 수 있었던 중요한 이유는 그의 인생에서 바나바를 만났기 때문이라고 믿습니다.
사도 바울이 기독교인들을 핍박하다가 다메섹 도상에서 예수님을 만난 후 변화되어 나타났지만 아무도 그를 믿어 주지 않았습니다.
이때 그를 믿어준 사람, 그의 변화를 보증한 사람이 누구였습니까?
바나바는 안디옥 교회에서 목회하던 때에 교회가 부흥되어 일거리가 많았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고향 다소에 파묻혀 있던 바울을 찾아가서 아직도 검증되지 않은 청년 바울을 믿어주고 "함께 일하자"고 격려한 사람이 바나바였습니다.
그리고 마침내 세계선교의 지도력을 그에게 위임하고 조용히 역사의 저편으로 사라져간 간 사람, 그는 이름처럼 "격려의 아들" 바나바 이었습니다.
바울은 이런 격려를 받았기에 또한 격려의 사람일 수 있었습니다.
왜냐하면 격려 받아본 자가 격려 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말씀을 맺습니다
얼마 전에 세상을 떠난 미국의 코미디언 가운데 "밥 호프"라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가 한번은 월남전 참전 용사 위문공연에 초청을 받았다고 합니다.
스케줄 중복으로 여러 번 사양했지만 너무 중요한 모임이어서 그가 얼굴이라도 잠깐 비치는 것이 좋겠다고 하여 5분 출연을 약속했다고 합니다.
그런데
그가 공연장에서 예상을 깨고 30분 이상을 공연하여 "어찌된 일인가?"고 묻자 그는 무대 맨 앞에 있었던 두 상이용사를 가리키며 "저 사람들 때문이지요?"하더랍니다.
앞에 있는 두 상이용사를 보았더니 둘 다 팔을 하나씩 잃어버린 사람이었는데 서로 한 손을 들고 마주치며 노래하는 모습이 보였다고 합니다.
그러면서 밥 호프는 "오늘 저는 참된 격려가 무엇인지 배울 수 있었습니다"는 말을 남겼다고 합니다.
오늘 우리는 여름방학을 끝내고 목장예배가 시작되는 주간입니다.
주님의 승리로 구원 얻은 그 기쁨을 목장예배를 통하여 온 세상에 나누기 위한 은혜의 축제가 다시 시작되는 것입니다.
모든 마을 목장원들이 함께 참예하여 복음 안에서 격려를 나누는 축제가 되기 위해 서로 격려하며 위로를 나누는 고현의 모든 성도님들이 다 되시기를 예수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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