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려움이 없는 사람
본문
두려움이 없는 사람
시27:1-3
다윗은 1절에서 "여호와는 나의 빛이요 나의 구원이시니 내가 누구를 두려워하리요"라고 했습니다.
본문은 당시 다윗이 자신을 에워싼 숱한 걱정과 근심과 두려움과 고통과 환난 중에 있었지만 그러나 나는 "겁나지 않는다. 두려워하지 않는다"는 것이 다윗의 고백이며 찬송인 것입니다.
그래서 오늘은 "두려움이 없는 사람"이라는 제목으로 본문을 통해 무엇이 우리를 두렵게 하고 있으며, 그것들을 어떻게 극복할 수 있는가를 조명하여 하나님 앞에서 성도 여러분과 함께 은혜받기를 예수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1.일반적으로 사람들이 두려움을 갖게 되는 것은
2절을 보면 "나의 대적, 나의 원수, 행악자가 다 살을 먹으려고"라고 했고
3절을 보면 "군대가 나를 대적하여 진칠지라도"라고 했습니다.
심리학자들의 말에 의하면 사람에 따라 다르긴 하지만 75가지나 되는 공포증이 있다고 합니다.
예를 들면
높은 곳을 두려워하는 고소공포증
낮은 곳을 두려워하는 저소공포증
전쟁 공포증, 그런가 하면 새로운 것은 무조건 싫어하는 신공포증,
그래서 신공포증의 경우는 새 사람이 두려워 결혼도 못하고, 새 집이 두려워 이사도 못가고, 망할까 두려워 새 사업도 시작을 못하는 심리상태를 보인다는 것입니다.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전쟁이 일어나면 어떻게 하나? 병 걸려 죽으면 어떻게 하나? 하는 걱정과 두려움은 다윗이든, 현대를 살아가는 우리들이든 누구에게나 있는 것들입니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걱정이나 두려움은 인생을 살아가는데 아무런 도움도 되지 않고 신앙생활에도 아무런 유익이 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들에게 걱정이 없을 수는 없지만 그 걱정에 빠져버리면 헤어날 수가 없는 것입니다.
2.그러나 다윗이 두려움을 이길 수 있었던 것은
1)하나님 때문입니다.
1절을 보면 "여호와는 나의 빛이요 나의 구원이시니 내가 누구를 두려워하리요 여호와는 나의 생명의 빛이시니 내가 누구를 무서워하리요"라고 했습니다.
세계 2차대전 중에 독일 나치 수용소에 수감되었다가 극적으로 살아남은 "붐"이라는 사람은 말하기를 "기차가 캄캄한 터널 속으로 들어가 어두워졌다고 해서 기차표를 찢어버리거나 기차에서 뛰어내리면 안 된다. 왜냐하면 조용히 앉아 기관사를 믿고 기다리면 잠시 후 밖으로 나가 밝은 세상을 볼 수 있게 되기 때문이다"라고 했습니다.
다시 말해서 온갖 공포, 두려움, 절망, 실패가 나를 에워싼다고 해서 인생을 포기하거나 중단해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본문에서 다윗이 그 어떤 공포도 두려워하지 않은 이유는 "하나님이 나와 함께 하신다"는 믿음 때문이었습니다.
다윗은 소년시절 골리앗과 마주 서서 싸운 경험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골리앗의 키는 2m70cm가 넘는 거인이었고, 그가 입었던 갑옷은 57kg이었고, 7kg이 넘는 창을 들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다윗의 차림은 천으로 만든 옷을 입고 허리에는 띠를 둘렀으며 손에는 돌을 끼워 던질 수 있는 가죽으로 만든 물매를 들고 있었습니다.
이러한 다윗을 본 골리앗은 "나를 개로 여기고 막대기를 가지고 내게 왔느냐 내가 네 고기를 공중의 새들과 들짐승이 뜯어먹게 하리라"고 했습니다.
이에 다윗이 응수하기를
"너는 칼과 창과 단창으로 내게 오거니와 나는 만군의 여호와의 이름 곧 네가 모욕하는 이스라엘 군대의 하나님의 이름으로 네게 가노라"고 했습니다.
그날 다윗은 골리앗과 싸우기 위해 매끄러운 돌 다섯 개를 골라 주머니에 넣었습니다.
그리고 한 개의 물맷돌로 골리앗을 쓰러뜨렸습니다.
여기에 위대한 계산법이 있습니다.
다시 말해서 아직도 골리앗 정도의 상대 4명을 쳐서 이길 돌맹이가 남아 있다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만군의 여호와 하나님의 이름과 그 능력을 믿고 의지하는 사람들은 넉넉히 이기고 남게 되는 것입니다.
골리앗을 이기게 하신 하나님, 그 하나님이 나와 함께 하시는 한 원수도, 행악자도, 질병도, 죽음도, 고통도, 실패도 두렵지 않다는 것이 다윗의 고백이며 노래인 것입니다.
마틴 루터(Luther Martin)가 1517년 종교개혁의 기치를 들자 당시 교황과 그 추종세력들은 루터를 죽이려고 했습니다.
그러나 루터는 하나님은 내편이라는 강력한 믿음으로 위협과 죽음의 공포를 두려워하지 않고 종교개혁의 횃불을 지펴나갔던 것입니다.
그때 지은 찬송이 384장의
"내 주는 강한 성이요 방패와 병기되시니 큰 환난에서 우리를 구하여 내시리로다"라는 것입니다.
다윗의 신앙과 루터의 신앙은 일맥상통하며 계보를 같이하고 있습니다.
오늘도 하나님과 함께하는 사람들은 두려움이 없는 것입니다.
2)환난 날에 지켜주시기 때문입니다.
5절을 보면 "여호와께서 환난 날에 그 초막 속에 비밀리 지키시고 그 장막 은밀한 곳에 나를 숨기시며"라고 했습니다.
시편 곳곳에 환난 날에 지켜주신다는 말씀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리고 다윗은 하나님 자신을 피난처, 피할 바위로 고백하고 있습니다.
적의 공습이나 화학전으로부터 피하기 위해 만든 피난처가 아니라 하나님이 나의 피난처라는 것입니다.
마11:28절을 보면 "수고하고 무거운 짐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고 했습니다.
이 말씀 속에 놀라운 사실은 주님께서는 "우리를 쉬게 하시기 위해 어느 지점에 별장을 만드시고, 휴게소를 만들어 주신 것이 아니라 주님 자신이 우리들의 영혼의 쉼터가 되신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내게로 오라"고 하신 것입니다.
고현의 성도 여러분!
힘들 때, 답답할 때, 속상하고 괴로울 때 찾아 갈 곳이 어디라고 생각하십니까?
피난처 되시고 환난 날에 위로가 되시는 하나님께로 나와 하나님을 만나시기를 축복합니다.
3)버리지 않기 때문입니다.
10절을 보면 "내 부모는 나를 버렸으나 여호와는 나를 영접하시리이다"라고 했습니다.
하나님의 사랑과 부모의 사랑이 희생적이고 일방적인 점에서는 공통점이 있습니다.
그러나 부모의 사랑은 한계가 있고 제한이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천년만년 계속될 수도 없고, 경우에 따라서는 조건 때문에 원수가 되기도 하고, 부모를 돈 때문에 살해하는 자식이 있는가 하면 자기가 낳은 자식을 물건처럼 버리는 부모도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영원히 나를 버리지 않습니다.
롬8:35절에서 사도 바울은 "누가 우리를 그리스도의 사랑 안에서 끊으리요 환난이나 곤고나 핍박이나 기근이 적신이나 위협이나 칼이랴"라고 했습니다.
다시 말해서 하나님이 함께 하시는 한 그 어떤 것도 나를 넘어뜨리거나 패망시킬 수 없다는 것입니다.
루마니아의 리챠드 램브란드 목사님은 1948년 루마니아가 공산화되면서 체포되어 14년 동안 감옥에서 온갖 고초를 겪었습니다.
그는 감옥에 있는 동안 성경을 수 백번 읽는 중에 "두려워 말라"는 말씀이 365번이나 된다는 것을 발견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365일 매일 한 번씩 사랑하는 자녀들에게 "두려워 말라"고 격려하시고 위로하는 것이라고 그는 말했습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은 1년 365일 날마다 내 곁을 떠나지 않고 나를 버리지도 않으시며 나와 함께 계십니다.
4)은혜를 믿기 때문입니다.
13절을 보면 "내가 산 자의 땅에 있음이여 여호와의 은혜 볼 것을 믿었도다"고 했습니다.
이 구절의 뜻은 "내가 만일 하나님의 은혜를 믿지 않았다면 이 땅에 살아 있지 못할 것이다"라는 것입니다.
우리가 즐겨 부르는 "나같은 죄인 살리신" 405장 찬송은
죤 뉴톤(John Newton)이 1779년에 지은 찬송입니다.
죤 뉴턴은 4절로 된 찬송 가사 속에서
나 같은 죄인 살려 주신 것도, 큰 죄악에서 건져 주신 것도, 지금껏 내가 살게 된 것도, 영원히 주님과 함께 천국에서 살게 되는 것도 모두가 주님의 은혜라고 고백하고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다윗의 고백처럼, 뉴턴의 노래처럼 내가 살아 있는 것도 그리고 영원한 천국에 들어가게 되는 것도 하나님의 은혜인 것입니다.
우리는 그 은혜에 날마다 감사하고 감격하며 살아가야 합니다.
3.그러므로 두려움이 없는 사람들은
1)평안이 있습니다.
3절을 보면 "군대가 나를 대적하고 전쟁이 일어나도 내가 오히려 안연하리로다"라고 했습니다.
안연하다는 것은 평안하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당연한 귀결입니다.
하나님께 다 맡겼기 때문에 걱정도 없고 두려움도 없고 겁도 없습니다.
그러므로 평안할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요14:1절을 보면 주님은 "너희는 마음에 근심하지 말라 하나님을 믿으니 또 나를 믿으라"고 하셨습니다.
2)찬송이 있습니다.
6절을 보면 "그 장막에서 즐거운 제사를 드리겠고 노래하며 여호와를 찬송하리로다"라고 했습니다.
하나님께 모든 것을 맡긴 후 겁이 없는 사람들은 찬송할 수 있습니다.
행16장을 보면 바울과 실라가 전도하다가 체포되어 감옥에 갇혔습니다.
온몸은 매를 맞아 쑤시고 아팠습니다.
그리고 갇힌 장소는 깊은 감옥이었고, 때는 깊은 밤이었습니다.
그런데 그들은 감옥에서 찬송을 불렀습니다.
왜냐하면 하나님께 다 맡겼기 때문에 찬송이 가능했던 것입니다.
찬송은 하나님을 높이는 것입니다.
하나님께 관심을 쏟고, 하나님의 일을 소중히 여기고, 그래서 하나님을 높이는 사람들이 부르는 노래를 찬송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통계자료에 의하면 미국내 각 교파를 통 털어 외국 선교비는 년간 약 2억달러가 된다고 합니다.
그리고 여자들이 립스틱으로 소비하는 돈은 4억6천만불, 삼푸로 소비되는 돈은 950억불, 영화나 운동경기에 쓰는 돈은 2천7백억불이 넘는다고 합니다.
우리의 경우는 어떻습니까?
말로 몸으로 물질로 주님을 찬송해야 합니다.
3)주의 얼굴을 찾습니다.
8절을 보면 "내가 주의 얼굴을 찾으리이다"라고 했습니다.
그 뜻은 주님을 바라보고 산다는 것입니다.
오늘날 성도들 중에는 돈을 찾아 날마다 하루종일 증권사의 주식 시세판을 들여다보며 웃다가 울다가 집으로 돌아오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리고 밤마다 유흥가를 찾아 향락을 일삼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진기한 맛을 찾아 식도락 여행을 다니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그러나
본문에서 다윗은 주의 얼굴을 찾겠다고 고백합니다.
왜냐하면 노아 시대의 악인들에게서 하나님은 그의 얼굴을 돌리셨고 교만했던 사울에게서 얼굴을 외면하셨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얼굴을 돌리셨다"는 것은 그 사람을 버렸다는 것을 의미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자신의 얼굴을 구하는 자들에게 자신의 얼굴을 향하여 주시는 창조주 하나님께 다윗처럼 주의 얼굴을 찾는 자들이 되어야 합니다.
말씀을 맺습니다.
챨스 알렌 박사가 교인들의 신앙형태를 조사한 바에 의하면
"교인 중 20%는 교회출석을 하지 않고, 25%는 기도를 하지 않고, 35%는 성경을 읽지 않고, 40%는 일정한 헌금을 하지 않고, 75%는 교회 안에서 어떤 책임도 지지 않고, 85%는 단 한명도 전도하지 않는다. 그러나 100%의 교인들은 천국에 가는 것을 바라고 있다"는 것입니다.
고현의 성도 여러분!
두려움이 없는 안전한 삶, 평안하고 행복한 인생을 살기 원하십니까?
그리고 성공적이고 진취적인 신앙생활을 원하십니까?
그렇다면 환난 날에 지켜주시고, 영원히 나를 버리지 아니하시며, 은혜를 주시는 하나님의 얼굴을 찾아야 합니다.
하나님을 신뢰해야 합니다.
그리고 하나님을 높여 드려야 합니다.
그리하여 험한 이 세상에서 다윗처럼 두려움이 없는 일생을 살아가시는 고현의 성도님들이 다 되시기를 예수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