믿음의 역사를 경험하라
본문
사무엘상 1장 2004년 04월 18일
살전1:3에 보면 "믿음이 역사와 사랑의 수고와... 소망의 인내"를 말씀합니다. 소망이 있으면 어떤 어려움이 있어도 인내할 수 있습니다. 사랑한다면 사랑하는 상대를 위하여 수고할 수 있습니다. 이것은 당연한 일입니다. 이 당연한 일이 믿음에도 해당되는데 믿음에는 역사가 있습니다. 믿음이 있다면 믿음의 결과가 있습니다. 믿음이 있다면 행동한다는 말입니다. 믿음이 있다면 열매가 있다는 말입니다.
삼상 1장에 나오는 한나는 믿음의 사람이었습니다. 믿음의 사람이었던 한나에게 한 가지 큰 슬픔이 있었습니다. 그녀는 엘가나의 부인입니다. 엘가나에게는 두 명의 아내가 있었습니다. 한 사람은 브닌나며 또 한 사람이 한나였습니다. 브닌나는 자식이 있고 한나는 자식이 없었습니다. 사실 한나에게는 이런 상황 하나만으로도 서러울 텐데 대적 브닌나가 그를 심히 격동하게 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하나님 앞에 제사하기 위하여 실로에 가게 됩니다. 그 당시에는 실로에 하나님의 법궤가 있었기 때문에 제사를 드리러 실로로 갔던 것입니다. 그곳에서 기도하던 한나가 엘리 제사장을 만나게 되고 엘리의 축복을 받게 됩니다. 그리고 돌아와서 사무엘이라는 위대한 하나님의 사람을 낳게 됩니다.
한나에게는 자식이 없었던 슬픔이 오히려 하나님의 복이었습니다. 그것 때문에 하나님 앞에 기도하고 기도하다가 사울과 다윗 왕에게 기름을 부운 위대한 선지자 사무엘을 낳게 된 것입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곧 그 뜻대로 부르심을 받은 자들에게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룬다는 하나님의 말씀이 그에게 이루어졌던 것입니다.
오늘은 무자했던 한나가 사무엘을 낳게 되는 과정을 통해서 믿음의 역사를 어떻게 경험하게 되는지 살펴보겠습니다.
1.바라는 것을 가지라(7-8절).
한나에게 한 가지 소원만 말하라고 한다면 무엇을 말하겠습니까? 그녀는 분명히 "자식이 필요합니다. 아들을 낳고 싶습니다"라고 말했을 것입니다. 그녀가 자식에 대한 소원이 얼마나 강했는지 보십시오. 실로로 올라갈 때마다 브닌나는 한나를 격동했고 한나는 울고 음식을 먹지 않았습니다. 남편이 한나를 심히 사랑해서 "내가 그대에게 열 아들보다 낫지 아니하뇨"라고 위로하지만 위로가 되지 않았습니다. 그녀에게 유일한 소원이 있다면 그것은 자식을 낳는 것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세상을 만드시기 전에 하신 일은 무엇이라고 생각합니까? 이 세상을 이렇게 만드시겠다는 생각 즉 소원을 가지셨습니다. 그리고 그 소원에 따라서 말씀하시고 그 말씀대로 세상은 만들어졌던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도 무슨 일을 하시기 전에 먼저 바라는 것이 있었다는 것입니다. 애굽에 있는 이스라엘 백성들을 출애굽 시키실 때 아무런 생각이 없으셨던 것이 아닙니다. 그들을 출애굽 시켜서 광야를 통과하게 하고 가나안에 들어가게 하시겠다는 분명한 계획이 있었습니다. 하나님은 가나안을 바라보셨던 것입니다.
믿음의 사람들이 믿음의 역사를 경험하는 것도 먼저 바라는 것이 있어야 합니다. 히11:1에 보면 "믿음은 바라는 것의 실상"이라고 말합니다. 실상이 있기 전에 먼저 바라는 것이 있어야 합니다. 또 빌2:13에서는 "너희 안에서 행하시는 이는 하나님이시니 자기의 기쁘신 뜻을 위하여 너희로 소원을 두고 행하게 하시나니"라고 말씀합니다. 하나님께서 하나님의 일을 하실 때는 먼저 우리 안에 하나님이 원하시는 뜻을 소원으로 불어넣어 주신다는 말입니다.
사람이 무엇을 바라보느냐가 중요합니다. 풍랑 이는 바다를 걸어오시던 주님께서 베드로에게 "오라"하셨습니다. 베드로는 담대하게 바다로 뛰어들어가서 주님을 바라보고 바다 위를 걸어갔습니다. 몇 걸음을 걸어간 베드로가 철썩거리는 파도를 바라보게 됩니다. 그가 파도를 바라보자 두려움이 엄습하게 되었습니다. 결국 그는 바다에 빠지게 되었던 것입니다. 운동장에 금을 긋는 사람이 움직이는 물체를 바라보면 선이 비뚤어지게 됩니다. 고정된 물체를 바라보게 되면 그 물체를 향해서 똑바로 그어지게 됩니다.
올바른 인생을 살고 믿음의 역사를 경험하려면 주님이 주신 확실한 비전을 가져야 합니다. 분명하게 바라보는 것이 있어야 그것을 소유하게 될 것입니다.
2.바라는 것을 얻기 위하여 기도하라(10절).
한나는 하나님께서 생명의 근원 되심을 알았습니다. 그리고 자신의 원통함을 풀어주실 분이 주님이라는 것도 알았습니다. 또 하나님께 기도하면 하나님은 그 기도에 응답하신다는 것도 알았습니다. 그래서 주님 앞에 엎드려 기도하는 것입니다.
성도들은 주님이 주신 기도에 대한 약속을 잘 알고 있습니다. "구하라 그러면 너희에게 주실 것이요 찾으라 그러면 찾을 것이요 두드리라 그러면 너희에게 열릴 것이니"라는 말씀을 모르는 사람은 없을 것입니다. 하지만 그 말씀의 실제를 누리는 사람은 많지 않습니다. 마7:7의 이 말씀의 실제를 경험하려면 실제로 기도해야 하는 것입니다. 알아도 기도하지 않으면 의미가 없는 것입니다.
성경에 나오는 믿음의 사람들은 기도응답의 실제를 경험하고 살았던 사람들입니다. 그 중에 대표적인 사람은 엘리야입니다. 그는 구약의 인물인데도 신약성경 약5장에서 그의 기도를 다시 다루고 있습니다. 그는 아합 시대에 패역한 이스라엘을 보고 하나님 앞에 비오지 않기를 기도하니 삼 년 육 개월 동안 비가 오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다시 기도하니 하늘이 비를 주고 땅이 열매를 맺었습니다. 그의 기도는 하늘 문을 닫기도 하고 열기도 하던 놀라운 능력이 나타났던 것입니다.
지난 금요일 심야 기도회에 조 태환 선교사님이 다녀가셨습니다. 선교사님은 10여 년 전부터 기도하던 선교센타에 대한 비전이 있었습니다. 선교사님을 알던 사람들 가운데 미쳤다고 말한 사람들도 있었답니다. 그런데 쉬지 않고 계속 기도해 오던 선교사님은 이제 모롱지역에 약 600평의 땅을 구입했습니다. 이제 그가 꿈꾸며 기도해 왔던 것이 현실로 다가오고 있다는 것입니다.
우리 교회는 이제 남은 자 7000의 비전으로 열방을 섬기는 교회가 될 것입니다. 비록 지금 우리의 형편으로 보면 불가능해 보이는 일 같아도 우리가 쉬지 않고 계속해서 기도한다면 반드시 이루어질 것입니다. 우리 교회가 지금보다 더 작았을 때 교회를 위하여 기도했던 많은 기도의 제목들이 있습니다. 시간이 지난 지금 돌아보면 그런 기도들이 응답되었고 지금도 응답이 진행 중에 있습니다.
저는 예수를 구주로 영접한 후에 가족 구원에 대한 소원을 갖게 되었습니다. 고등학교 때 그 소원을 갖고 날마다 기도를 했습니다. 그런데 지금 돌아보니 주님께서 그 기도를 들으시고 저에게 응답하셨습니다. 지금은 예수 믿는 가족들이 되어 모이면 신앙의 간증을 나누는 축복을 누리고 있습니다.
3.바라는 것에 합당한 말씀을 소유하십시오(17절).
엘리가 기도하던 한나를 술 취 한 것으로 오해했다가 한나의 말을 듣고 자초지종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한나를 향하여 축복의 말을 합니다. 그 당시 엘리는 사사로서 제사장과 왕과 선지자의 역할을 했던 하나님의 대리자였습니다. 그의 말은 신적 권위가 있었습니다. 지금 시대의 성경과 같은 권위는 아니라 할지라도 신적인 권위가 있는 것이 사실입니다. 살2:13에 보면 데살로니가 교인들이 바울의 말을 사람의 말로 듣지 않고 하나님의 말씀으로 받았습니다. 한나에게는 하나님의 대리자 엘리의 축복이 하나님의 말씀과 같은 수준이었습니다. 그래서 18절에 보면 다시는 수색이 없었다고 기록되어 있는 것입니다.
시107:19, 20을 보면 "이에 저희가 그 근심 중에서 여호와께 부르짖으매 그 고통에서 구원하시되 저가 그 말씀을 보내어 저희를 고치사 위경에서 건시는도다"라고 말씀합니다. 주님은 부르짖어 기도하는 자들에게 말씀을 보내시고 그 말씀을 통해서 당신의 뜻을 이루시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어떤 것에도 제한 받지 않으시지만 자신의 말씀에만 제한 받으십니다. 말씀하신 것은 반드시 지키시며 말씀의 울타리를 벗어나지 않으시는 분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소원하고 구하는 것이 말씀 안에 있다면 반드시 이루어질 것이며 말씀을 벗어난 것이라면 절대 이루어지지 않습니다.
기도하다가 말씀이 임하면 환경이나 감정과 상관없이 하나님의 말씀을 믿으십시오. 한나는 엘리를 통한 축복의 말씀을 받은 후에 몸에 변화가 일어난 것도 아닌데 다시는 수색이 없었다고 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기도하다가 하나님의 말씀을 받아도 말씀보다 자신의 느낌이나 환경을 의지하기 때문에 말씀의 실제를 경험하지 못합니다. 말씀은 살아 있으며 지금도 역사하는 능력이 있습니다.
4.말씀을 믿고 입으로 고백하십시오(19절).
다음 날 한나는 아침 일찌기 일어나서 하나님께 경배를 드렸습니다. 하나님을 경배하는 방법은 다양합니다. 가장 보편적인 방법은 주님의 위대하심을 입으로 고백하며 그분을 높여 드리는 것입니다. 한나는 하나님의 능력을 입으로 고백한 것입니다.
고백은 부정적인 고백과 긍정적인 고백이 있는데 부정적인 고백은 죄악을 고백하는 면이 강하다면 긍정적인 고백은 신앙을 고백하는 것입니다. 한나의 경배 행위는 기도에 응답하신 하나님을 고백한 것입니다.
막11:23에서는 "누구든지 이 산더러 들리어 바다에 던지우라 하며 그 말하는 것이 이룰 줄 믿고 그 마음에 의심치 아니하면 그대로 되리라"고 말씀합니다. 막11:23에서는 믿음의 언어가 어떤 능력이 있는가를 보여줍니다. 산을 옮길만한 능력이 있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런 언어의 능력을 사용할 수 있는 사람들에 대해서 '누구든지'라고 말하고 있다는 사실을 주목해야 합니다. 저와 여러분도 성경에 나오는 사람들처럼 믿음으로 말하면 그 능력을 체험하게 된다는 말입니다. 민14:28에서는 우리가 말한 것을 주님이 들으시고 주님의 귀에 들린 대로 역사 하시기겠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므로 무슨 말을 해야 할지 잘 생각해야 합니다. 승리를 말하면 승리하도록 역사하시고 성공을 말하면 성공하도록 역사하신다는 말씀입니다. 뿌린 언어의 씨대로 역사하십니다.
왕상 18장에 보면 비가 오기를 위하여 기도하던 엘리야가 손바닥 만한 구름을 보고도 믿음의 말을 하므로 비가 내리는 축복을 체험합니다. 사환에게 "올라가 아합에게 고하기를 비에 막히지 아니하도록 마차를 갖추고 내려가소소 하라"고 말합니다. 아직 비가 내리지도 않았습니다. 구름이 하늘 전체를 덮었던 것도 아닙니다. 손바닥만한 구름 한 점이 떠올랐습니다. 그런데 엘리야는 믿음의 고백을 합니다.
5.말씀을 따라 행동하라(19절).
한나의 기도대로 될 것이라는 하나님의 말씀이 임했습니다. 한나는 그 말씀을 듣고 돌아가서 남편과 동침했습니다. 그리고 아들을 낳게 된 것입니다. 그가 만약 기도 응답은 받았는데 동침하지 않았다면 아들을 낳는 일은 없었을 것입니다.
성령을 따라 사는 원리를 오해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나는 가만히 있고 성령께서 모든 것을 해주실 것으로 생각합니다. 절대 그렇지 않습니다. 골1:29 말씀대로 내 속에서 역사하시는 성령의 역사를 따라 내가 힘을 다하여 수고해야 합니다. 성령의 감동이 있으면 감동을 따라야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뜻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가나안을 점령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가나안을 점령하는 것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나가서 싸워야 가능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나가서 싸우지 않으면 가나안 땅 점령은 불가능했습니다.
전도도 마찬가지 아닙니까? 하나님은 모든 사람이 구원을 받으며 하나님을 아는 것을 원하십니다. 하지만 전하는 자가 없이는 들을 수 없고 듣지 않으면 믿음이 생기지 않기 때문에 반드시 성령의 역사하심을 따라 전하는 사람이 있어야 합니다.
방언기도도 마찬가지입니다. 행2:4, 19:6, 고전14:14을 보면 방언의 은사는 성령이 주시는 것이지만 입을 열어서 방언을 하는 것은 내가 하는 것입니다. 내가 하지 않으면 방언은 안됩니다. 수원지에서 물을 보내도 수도꼭지를 트는 것은 내가 해야 하는 것과 같습니다.
하나님은 우리 모두에게 성경이나 설교로 말씀하십니다. 때로는 환경으로 하나님의 뜻을 알게 하시기도 합니다. 주변 사람들을 통해서 말씀하십니다. 감동이나 부담감으로도 말씀하십니다. 그럴 때 내 영은 하나님의 뜻을 분별할 수 있습니다. 믿음의 역사를 체험하려면 하나님의 뜻이 분별되면 순종해야 합니다.
마경훈목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