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혈의 능력으로 삽시다.
본문
요한복음 19장 31-37절 2004년 04월 04일
멕스웰 화이트 목사님의 [보혈의 능력]이라는 책에 나오는 내용을 소개하겠습니다. 화이트 목사님은 2차 세계대전 당시 영국에서 살았는데, 독일 폭격기의 공습으로 인하여 영국사람들은 공포에 떨고 있었습니다. 그는 매일밤 잠자리에 들기 전에 예수님의 보혈로 그가 살던 집과 그 가족을 덮어달라고 기도하였습니다. "언제 우리에게 폭탄이 떨어질지 모르는 위험 속에 살면서도 우리는 아이들과 함께 매일 밤 한번도 깨지 않고 편안히 누워서 잘 수 있었습니다. 그 때 우리를 보호해주셨던 예수님의 보혈의 능력이 너무도 생생해서 마치 우리가 어떤 종류의 폭탄에도 끄떡없는 튼튼한 방공호 속에서 잠을 자는 것 같았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우리 집 중심으로 반경 1.2Km 이내에 13개의 폭탄이 떨어졌을 때에도 건물의 일부가 사소한 피해를 입었을 뿐 가족 모두가 무사했습니다" 라고 말하면서 보혈의 능력으로 보호받은 사실을 간증했습니다.
성경에서 예수님의 보혈의 능력을 가장 잘 보여주는 사건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애굽에서 나올 때 지켰던 유월절 사건입니다. 죽음의 천사가 애굽 전역을 휩쓸고 지나가면서 전국의 장자들을 죽였습니다. 이 때 어린양의 피를 문설주와 문인방에 바른 집은 죽음의 천사가 넘어가서 죽음을 면하게 되었습니다. 이 사건은 어린양의 피 즉 예수그리스도의 피의 역할을 보여주는 비유적인 사건입니다. 이제는 그리스도께서 친히 십자가에서 피를 흘리셨기 때문에 유월절을 지킬 필요가 없습니다. 히 10:1에서는 "율법은 장차 오는 좋은 일의 그림자요 참 형상이 아니므로"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주님이 참형상이고 율법은 그림자입니다.
그리스도의 보혈의 능력을 크게 네 가지로 말할 수 있습니다. ① 속죄 ② 화목 ③ 보호 ④ 공격무기입니다.
오늘 설교는 예수님이 피를 흘리신 과정을 살펴보며 그 의미를 증거 하겠습니다.
1. 겟세마네 동산에서 흘리신 보혈입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를 지시기 전에 겟세마네 동산에서 올라가 기도하셨습니다. 기도하시던 예수님께서 얼마나 간절하게 기도하셨는지 모세혈관이 터져서 땀에 피가 섞여 나와서 땀방울이 핏방울처럼 되었습니다.
너무 열심히 기도하신 나머지 땀샘에서 땀과 피가 섞여 나옵니다. 의학적 용어로 "혈한증"이라고 합니다. 엄청난 스트레스를 받으면 땀샘에 있는 모세혈관을 파괴하는 화학성분이 나옵니다. 그래서 소량의 피가 땀샘에 들어오게 되는 것입니다. 이로 인해 예수님의 심리와 육체는 극도로 약해져 있는 상태였습니다.
겟세마네 동산에서 기도하시던 기록을 보면 예수님에게도 갈등이 컸던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마 26:37에 보면 "고민하고 슬퍼하사"라고 기록되어 있는데 주님의 감정과 갈등을 잘 표현해 주고 있습니다. 38절에서도 제자들에게 "내 마음이 심히 고민하여 죽게 되었으니"라고 말씀하셨습니다. 39절에서는 하나님께 기도하는 내용인데 "내 아버지여 만일 할만하시거든 이 잔을 내게서 지나가게 하옵소서"라고 기도하셨습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이셨으나 육신을 입고 오셨습니다. 예수님의 육신도 다른 사람들과 다를 바 없는 보통육신이었습니다. 보통 인간과 동일한 육신이었기에 십자가의 고통을 느껴야 했던 것입니다.
그런 연약한 육체를 가지고 갈등하셨으나 39절 하반절에서는 "그러나 나의 원대로 마옵시고 아버지의 원대로 하옵소서"라고 기도하셨습니다. 그리고는 결국 순종으로 십자가를 지셨던 것입니다.
인류의 대표가 되었던 한 사람 아담의 불순종으로 전 인류의 타락과 저주가 찾아온 것입니다. 롬 5:19을 보면 "한 사람의 순종치 아니함으로 많은 사람이 죄인 된 것 같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아담 한 사람이 하나님 앞에 불순종하여 타락하게 되므로 그의 허리에 있던 모든 사람이 죄인 된 것이며 하나님과 관계가 단절되었고 결국 저주 아래 놓이게 된 것입니다.
불순종의 결과는 비참했습니다. 몇 가지 심각한 결과가 나타났는데 정신적인 문제(수치심과 두려움), 신앙적인 문제, 대인관계의 문제, 가정의 문제, 질병의 문제, 환경의 문제, 죽음의 문제, 낙원상실의 문제 등이 발생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세상을 사랑하셔서 인류가 멸망 받는 것을 원하시지 않으셨습니다. 그래서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를 보내셔서 그리스도께서 인간의 모든 불순종의 결과를 해결하기를 원하셨던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아버지께 순종하여 이 땅에 오셨습니다. 그리고 아버지의 뜻에 순종하여 인류를 대신하여 십자가를 선택하셨던 것입니다. 그 결과를 롬 5:19에서는 "한 사람의 순종하심으로 많은 사람이 의인이 되리라"고 말씀합니다. 그러므로 겟세마네 동산에서 흘린 피는 아담 안에 있는 전 인류의 불순종에 대한 구속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2. 가시 면류관을 쓰시고 흘리신 보혈입니다.
군병들은 예수님을 조롱하기 위하여 가시 면류관을 만들었습니다. 왕관 대신 가시면류관을 씌우고 갈대 몽둥이로 머리를 때리며 조롱했습니다. 눈을 가리고 뺨을 치면서 선지자라면 "너를 친자가 누군지 맞춰봐라"고 조롱했습니다. 그 지역의 가시는 우리 나라의 탱자나무의 가시보다 더 길고 강합니다. 예수님의 머리를 때릴 때마다 가시가 예수님의 머리를 찔렀으며 머리에서는 피가 솟아 흘렀습니다.
예수님께서 가시관을 쓰시고 보혈을 흘리신 것은 환경적인 저주를 속량하시기 위함입니다. 아담과 하와가 범죄 한 후에 땅은 저주를 받아서 가시와 엉겅퀴를 내게 되었습니다. 가시는 저주의 상징입니다.
예수님이 가시관을 쓰시고 보혈을 흘리셨기 때문에 복음이 들어가는 곳에는 환경이 살아나는 역사가 있습니다. 사 58:11-12을 보면 "너는 물댄 동산 같겠고 물이 끊어지지 아니하는 샘 같을 것이라 네게서 날 자들이 오래 황폐된 곳들을 다시 세울 것이며 너는 역대의 파괴된 기초를 쌓으리니 너를 일컬어 무너진 데를 수보하는자라 할 것이며 길을 수축하여 거할 곳이 되게 하는 자라 하리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 말씀은 하나님과 관계가 회복된 사람들이 하나님의 능력으로 환경을 변화시킬 것을 예언하는 말씀입니다. 또 사61:4절에서는 성령의 역사로 복음을 받아드리게 된 사람들에 대해서 "그들은 오래 황폐하였던 곳을 다시 쌓을 것이며 예로부터 무너진 곳을 다시 일으킬 것이며 황폐한 성읍 곧 대대로 무너져 있던 것들을 중수할 것이며"라고 말씀합니다.
조용기 목사님의 책에 보면 여의도 순복음 교회가 미국과 유럽 등에 선교할 수 있는 재정을 확보하고 있다고 말합니다. 그런데 처음부터 그랬던 것이 아닙니다. 그 교회 성도들은 처음에 대부분 가난한 사람들이었고 끼니 걱정을 하던 사람들입니다. 그런데 교회가 재정적으로 튼튼해 진 것은 신앙생활을 하면서 하나님의 축복을 받아서 성공한 사람들이 많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3. 채찍에 맞아 흘리신 보혈입니다.
성경을 자세히 보면 예수님은 대략 세 시간 가량 채찍에 맞으시고 9시간 가량 피를 흘리신 것 같습니다. 이 정도라면 십자가를 지시기 전에 이미 거의 죽음 직전이라고 보면 될 것 같습니다.
예수님을 때린 채찍은 39개의 가닥으로 되어있습니다. 병사의 기분에 따라 가닥수가 많을 수도 있었습니다. 땋은 가죽으로 되어 있는데 그 안에는 쇠 구슬과 뼛조각이 들어 있습니다. 쇠 구슬은 살을 멍들게 했고, 찢어진 근육조직을 더욱 크게 벌리는 역할을 했습니다. 뼛조각은 살을 찢는 역할을 했습니다. 예수님은 단순히 영화처럼 한 가닥의 채찍으로 맞으신 것이 아닙니다. 칼보다도 더 무서운 채찍에 맞으신 것입니다. 한 번 제대로 맞으면 사망할 수 있는 그러한 채찍으로 맞으셨던 것입니다. 병사들은 예수님을 기둥에 묶어놓고 어깨부터 등 그리고 엉덩이 정강이를 때렸습니다. 근육이 찢어지고 피범벅이 되었으며 살점은 리본처럼 매달려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무엇 때문에 그렇게 잔인한 태장을 받으셨습니까? 이에 대해서 성경은 분명하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사 53:5에 보면 "그가 채찍에 맞으심으로 우리가 나음을 입었도다"라고 예언하고 있으며 벧전 2:24에서도 "저가 채찍에 맞음으로 너희는 나음을 얻었나니"라고 가르쳐줍니다.
예수님의 보혈은 우리를 질병에서 보호하시고 건강을 보장하시는 능력이 있는 것입니다. 신앙생활을 하면서 많은 사람들이 건강을 얻습니다. 제가 성도들을 위하여 기도해주면 많은 사람들이 병에서 고침을 받습니다. 그 이유는 주님이 흘리신 보혈에 병고침의 능력이 있기 때문입니다. 신자가 건강의 축복을 누릴 수 있는 비결은 보혈의 능력을 의지하며 사는 것입니다.
4. 대못에 박혀 흘리신 보혈입니다.
군병들이 예수님을 십자가에 매달 때 양손에 못을 박았고 두 다리는 겹쳐서 발등에 못을 박았습니다. 못 박힌 채로 십자가에 달리시자 양손과 발에서 더 많은 피가 흘러 십자가 밑으로 떨어졌습니다.
십자가에서 흘리신 보혈은 우리를 죄로부터 구속하는 능력이 있습니다. 벧전 1:18, 19을 보면 "너희가 알거니와 너희 조상의 유전한 망령된 행실에서 구속된 것은 은이나 금같이 없어질 것으로 한 것이 아니요 오직 흠 없고 점 없는 어린 양 같은 그리스도의 보배로운 피로 한 것이니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구약에서는 죄를 속하기 위하여 짐승을 잡았습니다. 레 17:11을 보면 "육체의 생명은 피에 있음이라 내가 이 피를 너희에게 주어 단에 뿌려 너희의 생명을 위하여 속하게 하였나니 생명이 피에 있으므로 피가 죄를 속하느니라"고 말씀합니다. 그런데 히브리서의 말씀대로 구약의 제사 제도와 율법은 비유며 그림자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공로와 예수 그리스도를 통한 구원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그래서 요일 1:7에서는 "저가 빛 가운데 계신 것같이 우리도 빛 가운데 행하면 우리가 서로 사귐이 있고 그 아들 예수의 피가 우리를 모든 죄에서 깨끗하게 하실 것이요"라고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죄의 문제에서 우리를 구속하셨다는 것은 인류의 모든 문제가 십자가 안에서 해결된다는 의미입니다. 왜냐하면 인간의 모든 문제가 죄로 인하여 발생한 것인데 죄가 해결되니 죄로 인한 모던 문제가 해결되는 것입니다.
예를 들면, 중풍병으로 고생하던 한 사람이 친구들의 헌신으로 예수님을 만나게 되었습니다. 친구들이 침상 채 중풍병자를 데리고 왔으나 너무나 많은 인파로 인하여 예수님께 접근할 수 없었습니다. 병자의 친구들은 사람들 때문에 절망하지 않았습니다. 용기를 내서 지붕에 올라갔고 담대하게 지붕을 뜯어냈습니다. 그리고 지붕에서 친구를 달아 내렸습니다. 그 들의 믿음을 보신 예수님께서 중풍병자에게 "이 사람아 네 죄 사함을 받았느니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병자에게 "네 병이 고쳐졌느니라"고 말씀하시지 않고 "네 죄 사함을 받았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렇게 말씀하신 이유는 그 사람의 병이 죄로 인하여 발생한 것이라는 말이며 죄 사함을 받았기 때문에 병에서 놓여 건강하게 되었다는 말씀입니다.
5. 창에 찔려 흘리신 보혈입니다.
십자가에 달리신 예수님은 결국 돌아가시고 말았습니다. 본래 사람이 십자가에 달려 죽게 되면 죽음을 확인하기 위하여 다리를 부러뜨립니다. 로마의 군병들이 다른 사람들의 다리를 부러뜨릴 수는 있었으나 예수님의 다리를 부러뜨릴 수는 없었습니다. 왜냐하면 시 34:20에서 "그 모든 뼈를 보호하심이여 그 중에 하나도 꺾이지 아니하도다"라고 말씀하신 예언을 이루어야 하기 때문입니다. 군병들은 뼈를 꺽지 않는 대신 다른 방법을 사용했습니다. 창으로 옆구리를 찔렀습니다. 그러나 물과 피가 흘러나왔습니다. 살아 있는 사람은 피만 흘리는데 죽은 자에게서는 피와 함께 물이 나옵니다.
주님은 살아서도 보혈을 흘리셨고 죽어서도 보혈을 흘리셨습니다. 죽음 후에도 보혈을 흘리신 이유는 죽음의 문제와 죽음 후의 문제를 해결하신 것을 상징적으로 보여주신 것입니다.
주님을 믿으면 죽음도 문제되지 않습니다. 사람들에게 가장 극복하기 어려운 문제는 죽음의 문제입니다. 의사는 병을 고치지만 죽은 자를 살릴 수는 없습니다. 그런데 주님은 부활하셔서 죽음의 문제를 해결하셨습니다.
모든 사람은 다 죽게 되어 있으며 죽음 후에는 심판이 있습니다. 주님은 죽음의 문제만 해결하신 것이 아니라 심판의 문제도 해결하신 것입니다. 죽음 후에 심판을 이기지 못하면 영원한 지옥에 떨어져서 말로 다 할 수 없는 고통을 받아야 하는데 예수를 믿으면 영벌이 아닌 영생을 얻어 천국에 들어가는 것입니다.
마경훈목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