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의 말씀은...
본문
시편 19편 7-11절 2004년 02월 29일
말씀은 우리의 신앙생활에 절대적으로 필요하며 엄청난 유익을 주고 있습니다. 시1편을 보면 말씀이 우리를 복 있는 사람으로 만듭니다. 말씀을 가까이 하는 사람은 시냇가에 심은 나무와 같은 존재가 됩니다. 시냇가에 심긴 나무가 시냇물이 공급되어 잎이 푸르고 시절을 따라 과실을 맺는 것처럼 말씀을 가까이 하는 사람은 그 행사가 다 형통하겠다고 말씀합니다. 신앙의 출발은 말씀을 들으므로 시작되는 것입니다. 아브라함에게 하나님의 말씀이 임하고 그는 말씀을 좇아갔습니다. 믿음의 성장도 말씀으로 되는 것입니다. 롬10:17에 보면 믿음은 하나님의 말씀을 들으므로 생기게 되고 자라게 되는 것이라고 가르쳐줍니다. 예수님을 만났던 환자들 대부분은 예수님의 말씀을 들으므로 치료가 되었습니다. 예수님이 만지셔서 치료 된 사람보다는 말씀을 들으므로 치료된 사람들이 더 많습니다. 잠4:22을 보면 말씀을 얻는 자는 생명을 얻게 되고 그 온 육체에 건강의 축복까지 얻게 된다고 말씀합니다. 심지어 시119:165에서는 "주의 법을 사랑하는 자에게는 큰 평안이 있으니 저희에게는 장애물이 없으리이다"라고 말씀합니다. 이 말씀에 근거하면 장애물 없이 평안 가운데 인생을 살려면 하나님의 말씀을 사랑하라는 것입니다.
다윗은 말씀의 유익에 대해서 확실히 알았습니다. 그래서 10절에 보면 말씀을 사랑하는 자신의 심정을 "금 곧 정금보다 더 사모할 것이며 꿀과 송이 꿀보다 더 달도다"라고 표현하고 있습니다. 그 당시 세상에서 가장 가치 있는 물질은 금이었으며 가장 맛있는 것은 꿀이었다는 점을 감안하면 다윗이 하나님의 말씀을 얼마나 가치 있게 생각했으며 말씀의 맛을 얼마나 기가 막히게 경험하고 있었는지 알 수 있습니다.
그럼 다윗은 왜 하나님의 말씀을 그렇게 가치 있게 생각하고 말씀을 읽고 듣는 것을 좋아했을까요? 그 이유를 살펴봅니다.
1.완전하여 영혼을 소성케 하기 때문입니다(7절)
'소성'이라고 하는 말은 '돌이키다, 회복하다, 되돌아가다'라는 뜻으로 잃어버린 생명을 다시 찾는 것을 말합니다.
인간은 본래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 받았습니다. 그런데 선악과를 따먹게 되므로 범죄하여 하나님의 형상을 잃어버렸습니다. 영적인 죽음이 찾아와 하나님과 단절된 상태에 놓이게 되었으며 결국 죽음 이후에는 영원한 지옥에 던져지게 된 것입니다.
영적인 죽음에서 해방되어 영혼이 살게되고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길은 예수 그리스도의 공로를 믿음으로 가능한 일입니다. 그런데 그 믿음을 갖게 하는 하나님의 방법이 말씀입니다. 말씀을 들으면 믿음이 생기고 믿음이 생기면 그 믿음의 능력으로 영혼이 소성하게 되는 것입니다.
세상의 무엇보다 영혼이 가치 있습니다. 모든 것을 소유했어도 영혼이 죽었다면 불쌍한 존재입니다. 모든 것을 소유했어도 영혼이 혼절 상태에 있다면 불행한 것입니다. 비록 가진 것이 없어도 영적으로 깨어 있다면 그는 행복한 존재입니다. 세상의 것도 가진 것이 없으면서 영적인 상태마저 비참한 상태라면 정말 불행한 것입니다.
자신의 영혼을 소성하게 하려면 성경을 읽으십시오. 말씀을 잘 들으십시오. 말씀이 공급되는 길 외에는 없습니다.
2.확실하여 우둔한 자로 지혜롭게 하기 때문입니다(7절).
'우둔하다'는 말은 '단순해서 아무 말이나 믿는 것'을 말합니다. 미련한 것은 고칠 수 없는 병과 같습니다. 그래서 잠27:22에서는 "미련한 자를 곡물과 함께 절구에 넣고 공이로 찧을지라도 그의 미련은 벗어지지 아니하느니라"고 말씀합니다. 그런데 성경에서는 미련함을 벗어버릴 수 있는 몇 가지 비결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세 가지만 소개해드립니다. 첫째, 성령으로 충만하십시오. 성령은 지혜의 영이십니다. 성령으로 충만하여 성령의 인도를 받으면 세상 지혜자의 도움을 받는 것보다 더 지혜롭게 행할 수 있습니다. 둘째, 기도하십시오. 약1:5에서는 지혜가 부족한 자에게 기도하라고 말씀하시면서 후히 주시고 꾸짖지 안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셋째, 말씀으로 마음과 생각을 채우십시오, 말씀을 따라가십시오.
베드로는 고기잡이로 잔뼈가 굵은 사람입니다. 어느 날 그의 고기잡이 이력에 부끄러울 만큼 한 마리의 고기도 잡지 못했습니다. 그는 갈릴리 바다의 생리를 잘 알고 있습니다. 언제 어떻게 그물을 던져야 고기를 많이 잡을 수 있는지 잘 알고 있는 사람입니다. 그런 그에게 주님의 말씀이 임했습니다. "깊은 데로 가서 그물을 내려 고기를 잡으라". 베드로의 경험으로 보면 고기 잡힐 시간이 아닙니다. 더욱이 갈릴리 바다에서 깊은 곳에 그물을 내리는 것은 더 어리석은 일입니다. 그런데 주님은 이미 날이 밝은 그 시간에 깊은 곳에 그물을 내려 고기를 잡으라는 것입니다. 베드로는 주님의 말씀에 순종했습니다. 말씀에 의지해서 그물을 내렸습니다. 그리고 그는 그의 고기잡이 인생에서 한 번도 경험해 보지 못한 만선의 기쁨을 단 한번의 그물던짐으로 경험하게 되었습니다. 말씀이 베드로를 고기 잡는 일에 지혜롭게 한 것입니다.
저는 신앙생활의 열쇠 중에 하나를 하나님의 말씀으로 봅니다. 내가 행하는 일에 하나님의 말씀이 임했는가가 중요합니다. 말씀이 임했다면 그 일은 하나님 보실 때 지혜로운 일입니다. 말씀이 임했다면 하나님 앞에서 반드시 인정 받는 일입니다.
3.정직하여 마음을 기쁘게 하기 때문입니다(8절).
여러 종류의 기쁨이 있습니다. 물질로 인한 기쁨이 있습니다. 사람은 물질을 필요로 합니다. 세상을 살아가려면 반드시 물질이 있어야 합니다. 꼭 필요한 물질이 부족하면 감정에 영향을 미치게 되고 기쁨을 상실할 수도 있습니다. 영적인 기쁨이 있습니다. 성령의 역사가 있으면 기쁨이 생깁니다. 속에서부터 솟아나는 기쁨이 있습니다. 관계로 인한 기쁨이 있습니다. 사람은 늘 관계 속에서 살아갑니다. 좋은 관계는 사람에게 기쁨을 줍니다. 관계가 깨어지면 기쁨을 잃어버릴 수 있습니다. 여기서는 정직함으로 얻게 되는 기쁨을 말합니다.
살아있는 하나님의 말씀이 우리 속에 들어오면 말씀 자체의 능력과 생명으로 우리를 변화시킵니다. 말씀이 강하면 강한 만큼 말씀의 능력과 생명이 신자를 새롭게 만들고 정직하게 만듭니다. 그리고 자신이 정직하면 정직함으로 인한 기쁨이 생기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가 사람과 하나님 앞에 떳떳하면 하나님과 사람 앞에서 담대해지며 자신 속에 기쁨이 있는 것을 발견하게 될 것입니다. 이 기쁨은 환경과 상관없는 기쁨입니다. 세상이 줄 수 없는 기쁨입니다. 혹시 환경은 문제될 것이 없는데 내 속에 기쁨이 사라졌다면 하나님 앞에서 정직함을 잃어버린 것은 아닌지 확인해볼 필요가 있습니다.
4.순결하여 눈을 밝게 하기 때문입니다(8절).
인생에 있어서 눈이 열린다는 것은 중요한 성공 요소 중 하나입니다. 사업가는 사업의 아이디어도 필요하고 자본이나 사람 그리고 때와 시기가 중요하지만 돈의 흐름을 볼 수 있는 눈이 열려야 합니다. 부동산에 투자하는 사람들도 땅을 보는 눈이 있어야 합니다. 땅을 보는 눈이 없기 때문에 전혀 쓸모 없는 땅에 돈을 투자해서 어렵게 사는 사람도 있습니다. 사람을 쓰는 사람은 사람을 보는 눈이 열려야 합니다. 인사가 만사라고 하는데 사람 잘못 봐서 일을 망치는 경우도 많습니다. 영적인 생활에서도 눈이 열려야합니다. 그래야 영적인 생활이 가능한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순결하여 말씀을 가까이 하는 사람의 눈을 밝게 합니다. 눈이 밝아진다는 말은 눈이 빛난다는 말이 아니라 잘 볼 수 있는 눈이 생긴다는 의미입니다. 그럼 무엇을 잘 볼 수 있습니까?
숨겨진 보화가 보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밭에 감추인 보화와 같은 예수 그리스도를 발견하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예수를 영접하고 성령을 모시고 하나님을 섬기는 신자가 된 것입니다. 말씀이 우리의 눈을 밝게 한 것입니다.
말씀을 가까이 하면 가야 할 길과 가지 말아야 할 길이 보입니다. 집을 찾아갈 때 우리의 눈은 가야할 길과 가지 말아야 할 길을 보게 합니다. 그래서 큰 어려움 없이 집을 찾아가는 것입니다. 만약 우리의 눈이 어두워서 가야할 길과 가지 말아야 할 길이 보이지 않는다면 집을 찾는데 상당한 어려움이 있을 것입니다. 영적인 생활도 마찬가지입니다. 영생을 얻고 천국을 향하여 가는데 가야할 길과 가지 말아야 할 길이 보여야 합니다.
사람들은 항상 갈래 길에 서있습니다. 한 길은 생명의 길이며 한 길은 사망의 길입니다. 눈이 밝아 이 두 길이 보여지고 분별되어야 합니다. 만약 우리의 눈이 어두워서 잘 보이지 않고 분별이 안 된다면 보통 위험한 일이 아닙니다. 말씀을 가까이 하십시오. 그 말씀이 우리의 눈을 밝게 하여 길을 분별하게 하고 생명의 길을 가게 할 것입니다.
5.정결하여 영원까지 이르기 때문입니다(9절).
우리가 하는 일 가운데 이 땅에서는 인정받지만 영원한 세계로는 이어지지 않는 것들이 있습니다. 반대로 이 땅에서는 인정받지 못하는 것 같은데 영원한 세상에서는 인정되는 것이 있습니다. 또 이 땅에서도 인정되고 영원한 세상에서도 인정되는 것이 있습니다. 기왕이면 이 땅에서도 인정되고 영원한 세상에서도 인정되는 것이 좋겠지만 둘 중 하나를 선택하라면 영원한 세상에서 인정되는 것을 선택해야 합니다.
그럼 어떻게 해야 영원한 세상에서 인정받을 수 있을까요? 답은 말씀대로 행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본문에서 하나님의 말씀이 정결하여 영원까지 이른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지혜로운 사람은 미래에 대한 준비가 된 사람입니다. 다음의 이야기는 좀 심한 이야기지만 현대인들의 한 단면을 보여줍니다. 어느 한 가정이 해수욕장에 놀러갔습니다. 어린 아들은 수영하는 재미에 자꾸만 깊은 곳으로 들어갔습니다. 그러자 불안한 어머니는 심하게 꾸중을 했습니다. 그랬더니 아들은 불만이 가득해서, 왜 아버지는 깊이 들어가도 말리지 않으면서 자기만 야단하느냐고 투덜댔습니다. 그 때 어머니가 "아버지는 보험에 들었단다"라고 대답했다는 이야기입니다. 황금 만능주의 시대를 잘 대변해 주는 이야기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내세에 대한 준비가 되어 있습니까? 영원한 세상에서도 보장된 보험은 들어놓으셨습니까? 예수를 믿고 말씀을 따라 사십시오. 영원한 천국에 들어가는 것뿐만 아니라 영원한 상급도 준비됩니다.
6.확실하여 다 의롭게 하기 때문입니다(9절).
의는 두 가지가 있습니다. 사람의 의가 있고 하나님의 의가 있습니다. 사람의 의는 아무리 대단해도 하나님 앞에서는 불의에 불가합니다. 사람의 가치, 사람의 기준은 하나님 앞에서 불의인 것입니다. 마치 그림 속에 호랑이가 아무리 무섭게 생겼어도 토끼 한 마리 잡을 수 없는 것처럼 사람의 의는 아무리 탁월해도 하나님 앞에 의미가 없는 것입니다.
말씀은 하나님의 의를 가르쳐줍니다. 그리고 말씀에 붙잡힌 사람을 하나님 앞에서 의로운 사람으로 만듭니다.
열심히 살고 인간적으로 대단한 업적을 이루었어도 하나님 앞에 인정되지 않는다면 불행한 것입니다. 자신의 수고와 노력이 하나님 앞에 인정되고 상이 되려면 하나님의 말씀 앞에 서야 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으로 채워지고 그 말씀의 힘으로 살아야 하는 것입니다.
7.지킴으로 상이 크기 때문입니다(11절).
말씀대로 사는 사람에게는 두 가지 상이 있습니다. 현세의 상과 내세의 상입니다. 주님은 주와 및 복음을 위하여 세상의 것을 버리고 주님을 따른 자들에게는 이 땅에서 백 배의 복이 있을 것이며 내세에서는 영생이 있다고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지키게 되면 현세에서 임하는 상을 몇 가지 말씀드려보겠습니다.
살아 계신 하나님을 체험하게 됩니다. 말씀대로 순종하면 하나님께서 역사하십니다. 그리고 그 역사를 통해서 하나님을 체험하게 되는 것입니다.
시험과 환난을 이겨냅니다. 마7장에서 반석 위에 세운 집은 바람이 불고 창수가 나도 무너지지 않습니다. 거기서 반석 위에 세운 집은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말씀대로 행한 신앙인이 세운 영적인 집을 말합니다.
자신이 변화됩니다. 나아만에게 엘리사를 통해서 하나님의 말씀이 임했고 그 말씀에 순종했더니 문둥병이 고쳐지고 나아만 자신에게 놀라운 변화가 일어났습니다.
환경을 정복하게 됩니다. 가나안에 들어간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의 말씀대로 행하므로 가나안을 정복하게 되었습니다.
대적을 물리치고 승리합니다. 다윗은 평생 전쟁을 했습니다. 그때마다 하나님의 말씀대로 행하여 대적을 물리쳤습니다.
마경훈목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