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하나님의 성전입니다.
본문
베드로전서 2장 4절-5절 2004년 02월 15일
신앙생활에서 중요한 지식이 몇 가지 있습니다. 그 중 첫째는 만물의 근원이시며 창조주이신 하나님을 아는 것입니다. 둘째는 하나님의 피조물인 자탔?아는 것입니다. 그리고 셋째는 구원을 위하여 하나님과 자신 사이의 중보자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것입니다. 넷째는 능력 있는 신앙생활을 위하여 성령을 아는 것입니다. 이 네 가지 외에 다른 것들은 부수적인 것입니다. 핵심은 네 가지입니다. 순서는 좀 뒤바뀔지 몰라도 이 네 가지 지식은 기독교 신앙의 핵심적인 지식입니다.
자기 자신을 아는 것을 두 번째에 놓았습니다. 그만큼 자신을 아는 것이 중요한 지식입니다. 하지만 일반적으로 자신을 잘 모릅니다. 자신을 잘 모르기 때문에 자신의 자리도 모르고 자신이 해야 할 일도 모르는 것입니다. 자신을 모르면 하나님과 자신과의 관계를 모릅니다. 예수님과 자신과의 관계도 역시 모릅니다. 그리고 성령님과 자신과의 관계도 모르는 것입니다.
본문에서는 신자를 하나님의 성전이라고 가르쳐 줍니다. 신령한 집은 하나님이 거하시는 성전을 말합니다. 예수를 믿는 사람은 하나님의 성전입니다.
1.신앙생활은 성전을 짓는 생활입니다.
구약 시대의 이스라엘 백성들은 신령한 집을 세우고 신령한 집을 중심으로 신앙생활을 했습니다. 광야에 나온 이스라엘 백성들은 먼저 성막을 세우고 성막 중심의 신앙생활을 했습니다. 가나안에 들어간 유대인들은 다윗에게 임한 계시를 따라 솔로몬 시대에 성전을 세우고 성전 중심의 신앙생활을 했습니다. 바벨론에서 귀환한 유대인들도 스룹바벨을 중심으로 성전을 세우고 성전 중심의 신앙생활을 했습니다.
구약은 신약 시대를 사는 신자들을 위한 비유요 그림자입니다. 우리는 구약의 내용을 통해서 신앙생활의 지혜를 배우게 됩니다. 특히 성전 건축과 성전 중심의 신앙생활은 신약 시대를 사는 우리들에게 신령한 집을 세워야 함을 보여주는 좋은 비유며 그림자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마7장에서 신앙생활이 집을 짓는 생활임을 말씀하셨습니다. 사도 바울 역시 엡2장과 고전 3장에서 신앙생활이 신령한 집을 짓는 생활임을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베드로는 벧전2장을 통해서 우리가 산 돌이신 그리스도처처럼 신령한 집으로 세워져야 함을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헤롯성전을 보시면서 성전을 헐면 사흘만에 다시 세우시리라고 말씀하셨는데 그 성전이 바로 자신의 몸을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우리가 산 돌 같이 신령한 집으로 세워져야 한다는 것은 그리스도를 닮은 신자로 세워져야 함을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2.성전의 기초는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건물에 있어서 기초가 얼마나 중요한 지 아실 것입니다. 기초가 부실하면 세워진 건물은 무너지게 되어 있습니다. 기초가 튼튼해야 건물이 안전한 것입니다.
신앙의 기초도 중요합니다. 신앙생활을 하면서 나름대로 힘써서 신앙의 집을 세웠는데 기초가 부실하여 무너진다면 얼마나 억울한 일입니까? 열심히 기도하고 봉사하고 전도하고 예배하고 헌금했습니다. 그런데 기초가 부실하여 그 공든 신앙생활이 의미가 없어진다면 정말 억울한 일입니다.
신앙의 기초는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가 기초가 되어 세워진 신앙의 집만이 하나님 앞에서 인정되는 것입니다. 달걀은 무정란이 있고 수정란이 있습니다. 무정란은 수정란과 같은 모양이지만 그 안에 수탉의 생명이 없습니다. 21일 동안 암탉이 품고 있으면 수정란은 병아리가 되지만 무정란은 썩어버립니다. 신앙생활도 마찬가지입니다. 예수를 그리스도로 영접하고 그분의 이름을 힘입어 신앙생활을 하는 사람들이 있고, 예수 그리스도와 상관없이 나 홀로 신앙생활을 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을 알고 그 이름을 힘입어 신앙생활을 하는 사람들은 하나님 앞에 인정되는 신앙생활을 하는 것이지만 예수 없이 열심을 내었던 사람들은 하나님 앞에 아무 것도 아닌 것입니다.
3.각 사람이 성전으로 세워져야 합니다.
신앙생활은 개인적인 면과 연합적인 면을 항상 생각해야 합니다. 지체 개념으로 보면 각각의 지체와 몸 안에서 서로 연결됨을 함께 생각해야 하는 것입니다.
여기서 다루는 것은 각각의 지체가 세워져야 함을 말합니다. 눈은 눈으로서 세워져야 하고 입은 입으로 세워져야 합니다.
개인이 하나님의 성전으로 세워진다고 할 때 세 가지의 회복을 말하는 것입니다. 영의 회복 혼의 회복 몸의 회복입니다. 성전은 성전 뜰과 성소와 지성소로 나뉘어집니다. 사람을 성전 개념으로 보면 몸과 혼과 영으로 나눌 수 있습니다. 여기서 몸은 성전의 뜰이며 혼은 성소요 영은 지성소입니다.
성전이 회복되는 것은 지성소만의 회복이 아닙니다. 성소도 성전 뜰도 회복되는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개인이 하나님의 성전이 된다고 할 때 지성소인 영에 성령께서 임재하셔서 그 영을 거듭나게 하시고 그 영의 보좌에 하나님께서 앉으시는 것을 말합니다. 그리고 성소가 지성소에 임하신 하나님의 영광에 의해서 지배 되듯이 혼이 영의 지배를 받아야 합니다. 생각도 감정도 의지도 영의 지배아래 들어가야 합니다. 또 성전 뜰에서의 모든 움직임이 지성소에 임하신 하나님의 영광스러운 임재에 지배 되듯이 몸도 역시 혼이 영의 지배를 받아서 몸을 통제하는 수준이 되어야 합니다.
4.성전은 서로 연결되어야 합니다.
엡2:21,22을 보면 "그의 안에서 건물마다 서로 연결하여 주 안에서 성전이 되어가고 너희도 성령 안에서 하나님의 거하실 처소가 되기 위하여 예수 안에서 함께 지어져 가느니라"고 말씀합니다.
각 사람이 신령한 건물로 세워져야 하지만 서로 연결하여 함께 지어진다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어떤 사람은 개인적으로 기도도 봉사도 헌금생활도 잘합니다. 그런데 서로 연결이 안 되는 사람이 있습니다. 다른 지체와 연합할 줄 모릅니다. 늘 홀로 서기를 합니다. 반대로 개인적으로는 잘 못합니다. 다른 지체보다 탁월한 능력이나 경건도 없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교회와 잘 연결되어 있고 다른 사람들과 상호책임을 지는 신앙생활을 합니다. 다른 지체와 연합할 줄 압니다. 둘 다 모범적인 신앙생활은 아닙니다. 둘 다 보강이 필요한 신앙입니다. 그런데 만약 그 둘 중에 더 나은 신앙이 어떤 신앙이냐고 묻는다면 저는 과감하게 후자를 선택하겠습니다. 능력이나 경건이 약해도 연합할 줄 아는 신앙이 더 좋은 신앙입니다.
쉽게 설명하면 이렇습니다. 예를 들어 왼손과 오른손이 있습니다. 오른손은 왼손보다 능력도 있고 일도 잘합니다. 왼손은 오른손에 비하면 너무나 하찮은 능력을 가졌습니다. 그런데 오른손은 몸에서 떨어져 나갔고 왼손은 몸에 붙어 있습니다. 말할 것도 없이 몸에 붙어 있는 왼손이 더 나은 것입니다. 몸에서 떨어져 나간 오른 손은 대단한 능력이 있어도 이미 죽은 것입니다. 그 손의 능력은 몸에서 떨어져 나가는 순간 아무런 의미가 없어지는 것입니다.
5.성전 건축의 도구는 성령의 은사입니다.
고전14:4에서는 "방언을 말하는 자는 자기의 덕을 세우고 예언하는 자는 교회의 덕을 세우나니"라고 말씀합니다. 여기서 덕을 세운다는 말은 건축을 한다는 말입니다. 다시 말하면 방언을 하면 자신을 하나님의 성전으로 건축하고 예언을 하면 교회를 하나님의 성전으로 건축한다는 말입니다.
은사가 개인과 교회를 하나님의 성전으로 건축하는 도구라면 은사 사용은 장려되어야 합니다. 은사를 많이 사용하면 개인과 교회가 더 크고 견고한 성전으로 세워지기 때문에 할수만 있으면 은사는 많이 사용되어야 합니다.
그런데 간혹 은사를 사용하는 것을 막는 교회도 있습니다. 여러 가지 이유로 은사 사용을 막고 있지만 결코 신앙생활에 유익한 것은 아닙니다. 바울은 고전14:39절에서 이 부분에 대하여 확실하게 충고해 주고 있습니다. "그런즉 내 형제들아 예언하기를 사모하며 방언 말하기를 금하지 말라"
하나님은 하나님의 교회를 세우고 개인의 신앙을 세우기 위하여 각 사람에게 은사를 주셨습니다. 하나님이 은사를 주실 때는 그 은사를 간직하라고 주신 것이 아닙니다. 사용하여 유익이 되게 하시기 위하여 주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뜻에 합당하게 은사를 사용하는 것이 은사를 주신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것입니다.
6.성전 안에는 성령이 거하십니다.
고전3:16을 보면 "너희가 하나님의 성전인 것과 하나님의 성령이 너희 안에 거하시는 것을 알지 못하느뇨"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성전 된 우리 안에는 하나님의 성령께서 거하십니다.
이 진리는 우리들이 얼마나 영광스러운 존재인가를 가르쳐 주는 것입니다. 만유의 주인이신 하나님의 영이 우리 안에 거하신다는 사실 하나만으로도 우리들은 충분히 영광스러운 존재들입니다.
그리고 이 진리를 통해서 우리가 얼마나 존귀한 존재인 것을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지갑의 가치가 지갑 안에 들어있는 돈의 액수로 결정되는 것처럼 우리 안에 주님이 거하신다는 사실 하나만으로도 우리는 충분히 존귀한 사람들인 것입니다.
이 진리는 신자를 얼마나 자신감 넘치게 만드는지 모릅니다. 신자 안에 거하시는 성령께서 신자를 인도하시고 도와주시고 보호하십니다. 신자를 건드리는 것은 신자 안에 있는 성령을 건드리는 것입니다. 그분은 우리를 눈동자처럼 보호하시는 분입니다.
7.튼튼한 성전을 세우려면 말씀을 행하는 신앙생활을 해야 합니다.
마7장에 보면 신앙생활이 집을 짓는 생활인데 말씀을 듣고 실천하는 사람은 그 집을 반석 위에 지은 지혜로운 사람과 같고 말씀을 듣고 실천하지 않는 사람은 그 집을 모래 위에 세운 사람과 같습니다.
건물이 튼튼하게 세워지려면 많은 재료가 들어가야 합니다. 재료가 부실하면 건물이 부실하듯이 신앙생활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신령한 집을 짓는 재료입니다. 말씀을 실천하는 신앙생활은 재료가 많이 들어간 집을 짓는 것과 같습니다.
그러므로 할 수만 있으면 말씀을 많이 들어야 합니다. 그리고 말씀을 많이 암송해야 합니다. 말씀대로 생각하고 말씀대로 말하고 말씀대로 행하십시오. 반드시 튼튼한 성전으로 세워질 것입니다.
8.성전의 튼튼함은 시험을 거쳐서 인정을 받습니다.
튼튼한 성전인 것은 이 땅에서도 영원한 세상에서도 시험을 거쳐서 인정되는 것입니다.
마7장에 보면 창수가 나고 바람이 불어 그 집에 부딪힘이 심할 때 무너지는 집이 있고 무너지지 않는 집이 있습니다. 여기서 창수가 나고 바람이 부는 것은 어려움을 말합니다. 어려움이 당하면 그 사람이 정말 튼튼한 성전으로 세워졌는가 아닌가를 알게 됩니다.
고전3장에 보면 마지막 날에 불로서 우리의 공력을 시험할 때가 있습니다. 이 때 신앙적이지 못한 방법으로 성전을 건축한 집은 불살라 없어지게 될 것입니다. 이들은 부끄러운 구원을 받게 됩니다. 반대로 불로서 시험을 받고도 그 집을 유지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이런 사람들은 영광스러운 상급이 준비되어 있습니다.
9.성전을 향한 하나님의 요구는 거룩함입니다.
고전6장에서는 음행의 죄에 대해서 다루면서 "너희 몸은 너희가 하나님께로부터 받은바 하나님의 성전인줄 알지 못하느냐 너희는 너희의 것이 아니라 값으로 산 것이 되었으니 그런즉 너희 몸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라"(19,20절)고 말씀합니다. 또한 고전3:17에서는 "하나님의 성전은 거룩하니 너희도 그러하니라"라고 말씀합니다.
내 안에 성령이 거하신다는 사실을 확신하십시오. 그러면 그 사실이 여러분은 거룩하도록 자신을 지키게 할 것입니다. 내 안에 성령이 거하시는데 성전에 쓰레기를 버릴 수 없는 것처럼 불의한 마음과 생각을 할 수 없고 불의한 행동을 할 수 없는 것입니다.
우리는 늘 우리의 행동에 집중합니다. 그런데 행동에 집중해서는 우리를 거룩하게 보존할 수 없습니다. 주님으로 충만하고 주님을 인정하고 주님과 동행함을 인식해야 합니다. 그런 인식이 나를 거룩한 하나님의 사람으로 만들어 주는 것입니다.
10.성전에서 가장 중요하게 다루는 것은 제사입니다.
호주에 가면 교회의 모습을 그대로 유지한 상태에서 술집 영업을 하는 곳이 있습니다. 강대상은 VIP석입니다. 말이 안 되는 일이 벌어지고 있는 것입니다. 성전도 마찬가지입니다. 오직 하나님께 제사하는 일이 행해져야 합니다. 그러나 그렇지 못한 경우가 많습니다. 제사에 대해서는 다음에 다루도록 하겠습니다.
마경훈목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