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을 향한 그리스도인의 마음(mind)
본문
< Is it because there is no God in Israel >
성경 : 여호수아 14장 6절 - 12절 (2008. 4. 6 주일오전예배)
설교 : 전 원 준 목사
(수 14:12) 『그 날에 여호와께서 말씀하신 이 산지를 내게 주소서 당신도 그 날에 들으셨거니와 그 곳에는 아낙 사람이 있고 그 성읍들은 크고 견고할지라도 여호와께서 혹시 나와 함께 하시면 내가 필경 여호와의 말씀하신 대로 그들을 쫓아내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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괴테에게 탁월한 조수 한 사람이 있었다.
시인 지망생이었던 에커만이란 사람이었다.
괴테의 작품에 매료된 후에 자신이 직접 쓴 글 하나를 괴테에게 보내면서 만남이 시작된 사람이었다. 괴테에게 완전히 매료된 에커만은 거의 3년간 곁에서 괴테의 일거수일투족을 지켜보게 된다. 괴테를 만나고 그의 사상에 완전히 몰입하게 된 그는 시인의 길을 조금도 주저함 없이 접었다.
괴테가 죽을 때까지 무보수 조수를 자처하면서 에커만은 괴테의 작업을 도왔다. 약 1000일에 이르는 일기가 책으로 편집되었다.
에커만의 '괴테와의 대화'라는 책이다.
그 책에 기록된 한 에피소드에 눈길이 멈추었다.
어느 날 괴테가 경매에서 푸르고 아름다운 중고의자 하나를 사온다.
그런데 한번도 그 의자에 앉아보지 않는 것이다.
그 이유를 에커만에게 이렇게 들려주었다.
'그 의자에 앉는 순간 안락함에 안주할까 두려웠기에 평생 딱딱한 나무의자에 앉아 글을 쓸 수밖에 없었다'는 고백이었다.
삶은 언제나 편안함에 길들여지기 쉽다.
서면 앉고 싶고, 앉으면 눕고 싶은 것이다. 언제나 깨어있기는 쉽지 않다.
에커만이 부럽다. 괴테에 매료되어 무보수 조수를 자처한 그가 부럽다.
일을 맡을 때마다 대가 없이는 못하겠다고 말하는 내가 부끄럽다.
괴테가 부럽다. 푸르고 아름다운 의자에 앉아보지 못한 그가 불쌍한 것이 아니라 못내 부럽다.
지난 20 여 년을 한 겨울에도 찬물에 설거지를 하던 아내를 보면서,
못내 불쌍히 여겼던 내 자신이 부끄럽다. 그녀는 불쌍한 것이 아니라 위대한 것이다. 괴테처럼은 아닐지 몰라도,,, 말이다.
오늘 우리는 푸르름이 돋아나는 4월을 맞이하였습니다.
이 생기 발랄한 4월에, 우리의 믿음도 새롭게 변화하는 모습이 되기를 기도합니다.
오늘 읽은 본문 말씀은 갈렙이 85세가 되었지만, 가나안 정복을 위하여 힘을 잃지 않고 그 험준한 헤브론 산지를 점령하겠다는 무서운 의지를 보여주는 말씀입니다.
이것은 나에게 주어진 세상의 삶에 안주하지 않고 새롭게 도전하고자 하는 강인한 믿음의 모습을 보여 줍니다.
그러면 이 세상에서 우리 그리스도인들이 가져야 할 마인드는 어떤 것입니까?
1, 참된 그리스도인은 세상을 향하여 거룩한 불만을 가져야 합니다.
잡지 '뿌리 깊은 나무'와 '샘이 깊은 물'의 발행인이자 편집자였던 고 한창기 선생. 그는 10년을, 아니 20년을 내다봤던 사람으로 국어와 전통문화를 깊이 이해하고 보존해 한국 문화사에 족적을 남긴 인물이다.
당시만 해도 잡지를 만들 때 잡지 이름이 네 자를 넘으면 망하고, 한글 이름이면 망하고, 가로 쓰기면 망하고, 집필자의 글을 고치면 망한다는 이야기가 있었다. 하지만 수많은 이유들 앞에서 한 선생은 당당하게 그의 방법대로 했으며, 결국 망하지 않았다. 그리고 현재 높은 평가를 받고 있다.
그리스도인은 세상을 따라 흘러가듯이 사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는 세상을 거스리는 한이 있더라도 하나님을 향하여 거룩한 불만을
가져야 하는 것입니다.
# 이스라엘 백성이 싯딤에서 모압 여인과 음행을 하였습니다.
하나님이 진노하사 염병에 걸리게하여 죽은자가 24,000명이나 되었습니다.
이 일로 인하여 온 이스라엘이 회계의 눈물을 흘리고 있을 때,
그 와중에 족장 중 한사람 시므리가 이방여인과 음행을 하였습니다.
이것을 본 아론의 손자 비느하스가 손에 창을 들고 장막에 들어가서 두사람을 죽였습니다. 그제서야 하나님이 그 염병을 거두셨던 것입니다.
시므리는 생각하기를 내가 족장인데 누가 감히 말리겠는가 ?
나쁜짓을 서슴없이 하였습니다.
그러나 비느하스가 가만두고 볼 수가 없었습니다.
지금이 어느 때인데 ,,,
온 이스라엘이 다 죽어가는 판에, 자기욕망만 체우는 그를 가만 두고 볼 수가 없었던 것입니다.
(민 25:11-13) 『[11] 제사장 아론의 손자 엘르아살의 아들 비느하스가 나의 질투심으로 질투하여 이스라엘 자손 중에서 나의 노를 돌이켜서 나의 질투심으로 그들을 진멸하지 않게 하였도다 [12] 그러므로 말하라 내가 그에게 나의 평화의 언약을 주리니 [13] 그와 그 후손에게 영원한 제사장 직분의 언약이라 그가 그 하나님을 위하여 질투하여 이스라엘 자손을 속죄하였음이니라』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
여러분은 하나님을 위하여 거룩한 불만을 가져 본 적이 있습니까?
내가 이대로 있을 수 없다.
나도 주님을 위하여 무언가 하여야 한다, 라는 마음을 가지식 바랍니다.
그 믿음을 하나님께서 보시고 축복하실 줄 믿습니다.
“비느하스에게 영원한 제사장 직분을 주시듯이,,,”
2, 참된 그리스도인은 세상을 속에서 거룩한 도전을 하여야 합니다.
“이 산지를 내게 주소서,,!”
이 말은 험악한 산, 헤브론, 가나안의 강한 군대가 있는 헤브론,
아무도 넘보지 못하던 그 땅 헤브론을 내가 정복하겠다는 신앙의 의지인 것입니다. 그냥 땅을 고스란히 달라는 것이 아닙니다.
@# 나이가 어린 다윗이지만,,,
불레셋과 싸움중에 골리앗을 두려워 하는 이스라엘 군대를 보고 마음이
불탔습니다. ‘내가 가서 싸우리라 !“
사람들은 다 못한다고 생각하였습니다.
싸우겠다는 다윗을 향하여 말리다 못해, 못하게 방해를 했습니다.
그도 다윗의 형들이,,,
아마도 다윗이 죽을까 걱정했기 때문이겠지요,
(우리는 항상 좋게 해석을 하고 싶습니다)
다윗은 골리앗을 물리치고 승리를 하였습니다.
# 울산 교회 어느 집사님의 이야기 입니다.
울산교회 건축하려고 기도할 때, 성도들이 건축헌금을 작정을 하였습니다,
건축비가 수십억이 필요한데,,,
그 교회는 부자 성도들도 있습디다.
어느 집사님이 일억원을 하겠다고 약속을 했답니다.
그분은 별로 돈도 없는 분입니다.
페인트 가계를 하면서,,,남의 집 페인트 칠 해주고 일당 받는 그런 분입니다. 지난번 우리교회 페인트 칠 할 때 그곳에서 페인트를 구입했는데,
아주 좋은 가격에 좋은 페인트 주셨습니다.
하여튼 그런 집사님 인데 일억원을 약속하러랍니다.
목사님은 은근히 걱정되고 시험 당하면 어쩌나,,,염려도 되었겠지요,
그것이 목회자 마음입니다.
그런데 그 이후로 일거리가 많아지기 시작하더랍니다.
큰 공사도 맡게되고,,,
그러나 그 수입을 다른 곳엔 일체 사용하지 않고,,,헌금을 했답니다.
자동차가 덜덜거려도 그대로 몰고 다니고, 가정 생활도 동결하고,,,
일체 다른 곳에 지출을 하지 않고,,, 열심히 한금을 하더니.
지난 3월에 일억원을 다 헌금하였다고 합니다.
하나님이 축복하신 것입니다. 아멘 !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
우리는 세상을 향하여 거룩한 도전을 하여야 합니다.
안주하면 ,,,넘어집니다.
힘들 것 같치만,,, 사실 힘든 일이지만,,,하나님이 축복하십니다.
3, 참된 그리스도인은 세상을 향하여 거룩한 용기를 가져야 합니다.
얼마전에 인터넷에서 한 영상을 보았습니다.
두 남녀가 발레를 하는 그런 영상입니다.
그런데 남자 무용수는 한쪽발이 없습니다. 목발을 짚고 있었습니다.
다른 여자 무용수는 한쪽 팡이 없는 것입니다.
그 두사람이 발레를 하는 것입니다.
음악에 맞추어 두사람이 무용을 하는데,,,
아무런 문제도 없이 건강한 사람이 하듯이 거침없이 연기를 하는 것입니다.
발레의 의미를 잘 모르기는 하지만 마음이 찡하는 것을 느겼습니다.
청중중에 많은 사람이 연방 두 눈에 눈물을 흘리며 그것을 보는 것입니다.
대단한 용기 그 자체였습니다.
# 차인표씨가 상반기 중 개봉 예정인 탈북자를 다룬 '크로싱'이란 영화에 대한 정치적인 해석을 경계하면서 남긴 말이 기억에 남는다.
"총선에 출마하느냐는 말도 들었습니다. 저는 좌파든 우파든 정치적인 관심은 없습니다. 오히려 굶주린 아이들을 위해 대신 울어주고 싶은 마음이었습니다."
그리스도인의 진정한 용기는 자신을 위하여 것이 아니라 주님을 위하여 싸우는 용기입니다.
이 용기는 우리의 신앙의 열정을 회복시키는 지름길입니다.
# 운동 선수들이 입고 있는 유니폼을 한번 보세요,
운동 선수들의 유니폼을 보면 등에는 자기 이름과 번호를 적고
가슴에는 자신이 소속된 팀의 이름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왜냐하면,,,
선수는 승리의 영광을 자신의 이름은 뒤로 감추고
팀에게 영광을 돌리리라
진정한 용기는 자신이 가질 수 있지만, 그것을 주님께 영광을 돌리고자
하는 믿음 그것입니다.
그것이 바로 이 세상에서 그리스도인들이 가져야 할 마인드 - 진정한 용기인 것입니다.
(사 41:10) 『두려워 말라 내가 너와 함께 함이니라 놀라지 말라 나는 네 하나님이 됨이니라 내가 너를 굳세게 하리라 참으로 너를 도와주리라 참으로 나의 의로운 오른손으로 너를 붙들리라』
4, 결론 =
마리아는 일곱 귀신이 들렸던 사람이었다.
황금 같은 성장기를 귀신의 지배를 받으면서 흉측한 모습과 괴이한 몸짓으로 살아오는 동안 그가 미래를 위해 무엇을 준비할 수 있었을까?
제대로 된 교육을 받는 것도 불가능했고, 인격과 교양을 가다듬는 일도 꿈꿀 수 없었다. 특별한 재능을 가꾸지도 못했고 자기 능력을 개발할 어떤 기회도 얻을 수 없었다. 그러나 이런 마리아가 주님께 선택되고 사용된 것은 그녀의 마음깊이 자리 잡고 있던 예수님을 향한 순전한 사랑 때문이였다.
자신에게 절대 은총을 베풀어 주신 예수님을 향한 그 사랑은 누구보다 진실했고 뜨거웠고 눈물겨웠다. 주님의 무덤에 제일 먼저 찾았고 부활의 주님을 보았다. 그리고 제자들에게 이 사실을 전할 것을 명 받앗다.
마리아는 이 사랑 한 가지로 ‘내가 주를 보았다’고 증거하고 사도들에게 보내진 사도의 삶을 살았다.
우리는 세상에 보냄을 받은 그리스도의 사도입니다.
세상에 파뭍혀 안일하게 살 것이 아니라.
세상을 향하여 그리스도를 증거하는 삶을 살아야 할 줄 믿습니다.
이것이 바로 세상에서 살아가는 그리스도인의 마인드입니다.
찬송 = 사 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