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형통의 네 가지 법칙 (창 26:12-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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형통의 네 가지 법칙 (창 26:12-15)


이 시간에 “형통의 네 가지 법칙”이라는 제목으로 은혜 나누고자 합니다. 만사형통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만 가지 일이 막힘없이 잘 이루어지는 것을 뜻합니다. 그렇게만 된다면
그 보다 더 좋을 것이 무엇이 있겠습니까? 그러나 알아야 할 것은 내 뜻대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뜻대로 이루어져야 진정한 성공입니다. 왜냐하면 내 뜻보다 하나님의 뜻이 더욱 위대한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항상 내 뜻대로 마옵시고 아버지의 뜻대로 되길 원하나이다 하고 기도해야 합니다.

우리는 오늘 말씀에서 형통한 사람을 봅니다. 바로 이삭입니다. 이삭은 참으로 어려운 환경 속에
있었지만 형통했습니다. 얼마나 형통했습니까? 블레셋 사람들이 시기할 정도로 형통했습니다.
얼마나 형통했으면 그렇게 시기했을까요? 우리 성도들도 그 이상으로 형통한 성도들이 되시기
바랍니다. 그럼 이삭이 그렇게 형통할 수 있었던 이유는 무엇일까요? 본문에서 형통의 비결을
배울 때 자신의 삶을 점검해 볼 수 있기를 바랍니다.

진실로 형통하기 위해서는 몇 가지 법칙이 있습니다.

1. 어떤 일이 있어도 세상으로 가지 않는 것입니다.

창26:1-2을 보면 “아브라함 때에 첫 흉년이 들었더니 그 땅에 또 흉년이 들매 이삭이 그랄로 가서
블레셋 왕 아비멜렉에게 이르렀더니 여호와께서 이삭에게 나타나 가라사대 애굽으로 내려가지 말고 내가 네게 지시하는 땅에 거하라” 했습니다.

이삭이 큰 흉년을 만났습니다. 그래서 가나안 땅을 떠나 애굽으로 가던 중 블레셋 땅에
이르렀습니다. 애굽은 세계 4대 문명이 발생지로서 나일강이 있어 비옥한 옥토에 흉년을 모르고
살 수 있는 곳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피난만 가면 살 수 있는 곳입니다. 그런데 그 때 여호와께서 이삭에게 나타나셔서 애굽으로 내려가지 말고 내가 네게 지시하는 이 땅에 거하라고 하시는
것이었습니다.

그랬더니 하나님께서 그 흉년의 때에 블레셋 땅에서 상상할 수 없는 축복을 주셨습니다.
12-13절을 보면 “이삭이 그 땅에서 농사하여 그 해에 백배나 얻었고 여호와께서 복을 주시므로
그 사람이 창대하고 왕성하여 마침내 거부가” 되었다고 했습니다. 한 해만에 거부가 되었어요.
하나님이 복 주시려고 하면 오래 가지 않습니다. 여기에 귀한 진리가 있어요.

애굽은 세상인데, 어떤 어려운 일이 있어도 세상으로 가지 않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타락하지 않고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만 살면 하나님께서 복을 주십니다. 왜 형통하지 못합니까? 마음이 세상이
가깝고 죄가 있기 때문입니다. 마음의 죄가 있으면 형통치 못합니다. 그래서 잠28:13에 “자기의 죄를 숨기는 자는 형통치 못하나 죄를 자복하고 버리는 자는 불쌍히 여김을 받으리라” 했습니다.
예수님만 붙들면 형통할텐데 왜 죄를 붙듭니까? 어떤 일이 있어도 죄가 거하지 않도록 마음
지키시기 바랍니다.



사사시대 이스라엘 백성들을 보세요. 하나님께서 그들에게 복을 주시면 그들이 우상과 죄악으로
타락합니다. 그래서 징계 하시면 고난 당하다가 나중에야 회개합니다. 그러면 하나님께서 사사를
보내셔서 구원해 주시고 다시 복을 주십니다. 그러면 다시 타락의 길을 갑니다. 이러기를
일곱 번이나 계속하지 않았습니까? 그들이 죄를 붙들면 반드시 고난이 닥쳤던 것입니다.

룻기에 보면 흉년 만나 모압으로 피신한 엘리멜렉가의 사람들은 나오미 혼자 살고 다 죽고
말았습니다. 그러므로 무슨 일이 있어도 신앙은 떠나서는 안 됩니다. 세상 가까이 해서는 안 됩니다.

2. 어떤 일이 있어도 약속의 말씀을 붙들어야합니다.

창26:3-4에 “이 땅에 유하면 내가 너와 함께 있어 네게 복을 주고 내가 이 모든 땅을 너와 네
자손에게 주리라 내가 네 아비 아브라함에게 맹세한 것을 이루어 네 자손을 하늘의 별과 같이
번성케 하며 이 모든 땅을 네 자손에게 주리니 네 자손을 인하여 천하 만민이 복을 받으리라”
했습니다.

이삭이 이 약속을 믿을 때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약속 하신 대로 이루어주셨습니다. 우리 앞길이 칠흑같이 어두울 때는 믿을 것은 하나님의 말씀 밖에는 없습니다. 말씀 속에 우리의 길이 있고
우리의 복이 있기 때문입니다. 성도는 아버지께서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모든 복을 주신 것을
알아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예수 안에서 우리에게 주시지 않은 복이 없습니다. 평안의 복,
승리의 복, 구원의 복, 천국의 복, 사랑의 복, 은사의 복, 물질의 복, 도움의 복, 건강의 복,
형통의 복 등 세상의 그 어떤 복도 다 주셨습니다.

어떤 일이 있어도 이 주신 복을 믿어야 합니다. 기도도 달라져야 합니다. “주옵소서.”가 아니라
“주셨음을 믿습니다. 주셨음을 감사합니다.”가 되어야 합니다. 말씀에 서서 복을 붙잡으시기
바랍니다. 믿어야 복이 옵니다. 아무리 환경이 어려워도 “그래도 믿습니다.”하는 고백자가 되시기
바랍니다. 그래야 환경이 역전 됩니다. 이삭은 아브라함 때문에 복을 받을 수밖에 없는
사람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너와 네 자손에게 복을 주리라 하셨기 때문입니다.
이처럼 우리는 예수 안에서 복을 받은 자들이기 때문에 복을 받을 수밖에 없다는 사실을 끝까지 믿고 확신하시기 바랍니다.

3. 어떤 시험이라도 이겨야 형통합니다.

6-11절을 보면 이삭이 시험 당하는 이야기 나옵니다. 이삭이 이방 땅에서 아리다운 아내 때문에
목숨을 잃을까 누이라고 했다가 블레셋 왕에게 책망을 받은 이야기입니다. 이삭에게 마음의 시험이 더 컸던 것입니다. 두려웠습니다. 행위의 시험은 물론 마음의 시험도 우리를 형통치 못하게 한다는 말입니다.
하나님은 그냥 복 주시지 않아요. 시험을 이겨야 복을 주십니다. 시험을 이기기 전에는 그 복이
내 복이 아닙니다. 아담도 에덴에 거했지만 시험을 이기기 전에는 그것이 자신의 것이 되지
못했습니다. 아브라함도 이삭을 드리라는 시험에 합격할 때 복을 받았습니다. 어떤 시험이
있습니까? 그 시험을 이기시기 바랍니다. 밤새 나와서 부르짖으시기 바랍니다. 예수 이름으로
물리치시기 바랍니다. 마음에라도 시험이 있다면 반드시 승리하시기 바랍니다. 시험을 이기는
자만이 약속하신 생명의 면류관을 얻을 수 있습니다. 욥처럼 시험을 이겨 갑절의 복을 받는
여러분이 되시기 바랍니다.

4. 어떤 어려움 속에서도 성령으로 충만해야 합니다.

14-15절에 “양과 소가 떼를 이루고 노복이 심히 많음으로 블레셋 사람이 그를 시기하여 그 아비
아브라함 때에 그 아비의 종들이 판 모든 우물을 막고 흙으로 메웠더라” “사촌이 논을 사면 내 배가 아프다”는 말대로 본문의 블레셋 사람들이 그랬습니다. 중동지방에는 물이 귀해서 앞으로 전쟁이
일어나면 물 때문에 일어날 것이라고 합니다. 그런데 이삭이 복을 받으니 시기해서 우물을 다 막아버렸습니다.

남의 땅 빌려 농사하는 사람의 설움을 이삭이 당했습니다. 그러나 이삭은 환경을 바라보지 않고
하나님만 바라보았습니다. 그랬기에 다투거나 싸우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의 뜻이 다른 곳에 있나
보다 하고 다른 곳에 우물을 파고 팠지만 또 빼앗자 또 다른 곳에 우물을 팝니다. 이렇게 하여
네 번째 브엘세바에 우물을 파서 성공하게 됩니다. 브엘세바는 일곱 우물이라는 뜻입니다.
여기에 뜻이 숨어 있어요.

물은 성령입니다. 그리고 일곱은 완전수예요. 그러므로 브엘세바는 성령 충만을 상징합니다. 이처럼 우리가 은혜 생활에 어려움이 많아도 끝까지 쟁취해야 할 것은 성령 충만입니다. 성령 충만해야
영육 간에 형통이 오는 것입니다. 그러면 천국과 같이 생각만 해도 이루어지는 형통의 기적이
함께 하십니다. 성령 충만하려면 열심히 신앙 생활해야 합니다.

블레셋은 사단의 상징입니다. 그들은 아무리 파도 물을 얻지 못했지만 이삭은 파기만 하면 물이
쏟아집니다. 세상 종교는 아무리 파도 하늘의 생수가 없지만 하나님의 자녀들은 조금만 노력해도
생수가 터진다는 말씀입니다. 그래서 블레셋 사람들이 시기해서 방해했습니다. 이처럼 우리의
열심을 사단이 얼마나 방해합니까? 그러나 이삭처럼 낙심하지 말고 생수가 터지도록 파기를
계속해야 합니다. 기도로 파고 찬송으로 파고 전도로 파고 충성으로 파고 말씀으로 파고 예배로서
파고 새벽기도로 철야기도로 파고 또 파야 합니다. 성령의 은혜는 귀한 것이기 때문에 사모해야
주십니다. 성령께서 역사하시면 안 될 일도 될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나 악령이 역사하면 될 일도
안 됩니다. 어려움만이 질풍처럼 몰아닥치게 됩니다.

그래서 부흥사 R. A. 토레이는 “나는 아침에 일어나면 성령 충만을 위해서 기도한다.”고 했습니다. 그러면서 “제가 성령 충만하지 않을 때 제 인생의 중요한 결정을 하지 않도록 도와주십시오.” 라고 기도했다고 합니다. 예배하는 경건한 삶이 있는 곳에 성령께서 임하시고 성령님이 임하신 곳에
천사의 활동이 있으며 천사의 활동이 있는 곳에 도우심과 형통함이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 육체의 방해와 사단의 방해를 무릅쓰고 성령 받는 일에 최선을 다해야 합니다. 그래서 일곱 우물이라는 성령 충만이 터질 때 주님이 다스리시는 형통이 오게 되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는 지금 예수 안에서 형통의 백성들입니다. 그러므로 아무리 삶이 어려워도 이삭을 본받아
형통의 사람이 되시기 바랍니다. 형통하지 않다면 어디에서 막혔는지 점검?? 보시기 바랍니다.
어떤 일이 있어도 죄를 붙들지 맙시다. 어떤 일이 있어도 주신 복을 믿읍시다.
어떤 시험도 다 이겨내십시다. 어떤 방해 가운데서도 성령으로 충만합시다.
우리 모두 이 진실로 형통할 네 가지의 법칙 가지고 이삭과 같이 영육 간에 형통한 성도들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http://cafe.daum.net/agas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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