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 받는 비결
본문
번호:538 글쓴이: 이윤근
조회:2 날짜:2004/07/02 16:02
성경 신 28:1-6, 2004년 월 일
제목 "말씀대로 살면 복"
서론
본문 말씀은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하시는 말씀이요 오늘의 우리 모든 성도들에게 하시는 말씀인데 그 말씀의 언약과 효력은 어제나 오늘이나 영원토록 변함이 없습니다. 예나 지금이나 말씀을 순종한 사람들이 복을 받았고 불순종한 사람들이 저주를 받았습니다. 성경은 전체가 하라는 것과 하지 말라는 것으로 구성이 되어 있는데 하지 말라고 하신 것은 하지 아니하는 것이 복이요 하라고 하시는 것은 하면 이것이 곧 복이 되는 것입니다. 하라는 기도는 하면 복이요 하지 말라는 우상숭배는 하지 않는 것이 복입니다. 그러므로 복 받기를 원하는 성도들은 속는 셈치고 주님의 말씀대로 순종하는 차원을 넘어서 복종하여 약속하신 복을 기어코 받고 마는 순종의 성도들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1.다른 사람을 먼저 대접하라고 하십니다
마 7:12 "그러므로 무엇이든지 남에게 대접을 받고자 하는 대로 너희도 남을 대접하라 이것이 율법이요 선지자니라"하였습니다. 칼빈은 이 말씀이 먼저 말씀(7-11)과는 연락이 없다고 하였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이 말씀이 바로 윗 말씀과 어떤 관계 있는 것을 발견하지 못한 것뿐입니다. 달리 번역하면 "사람들이 너희에게 행해 주기를 원하는 바의 모든 것들을 그와 같이 너희가 저희에게 행하라"고 할 것인데 이것은 두 가지로 적극성을 가지는 도덕률입니다. 인본주의에서는 내가 원치 않는 것을 남에게도 행치 말아야 한다는 것이고 악을 다른 사람에게 하지 않을 정도이지만 여기서는 자기에게 좋은 것을 남에게도 하라고 하였으니 적극적인 도덕이라는 것입니다.
이것은 남들이 나에게 선으로 갚아줄 줄 미리 생각하고 행하라는 말씀이 아니고 남들이야 네게 그렇게 행하건 아니 행하건 나는 그들에게 그렇게 행해야 될 것을 가르치는 것입니다. 눅 6:30-36의 말씀을 보면 분명히 그 뜻이 이해가 됩니다. 이것은 사랑의 정신으로 선을 행함이니 온 율법과 선지자의 강령입니다(롬13:8-10). 세간에는 고래로 이와 비슷한말들이 많이 있어 왔습니다. 그러나 그것들은 모두 다 소극적인 것이었을 뿐 적극적인 것은 아니었습니다.
주면 하나님께서는 더욱 흔들어 넘치도록 주신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바울은 주는 자가 복이 있다고 하였고(행 20:35). 잠언 저자는 흩어 주는 자에게는 더욱 부하게 되지만 과도히 아껴도 가난해 진다고 하였고 남을 윤택하게 하는 자는 윤택하여 진다고 하였으며(잠 11:24-27). 그리고 히브리서 저자는 기록하기를 "형제 사랑하기를 계속하고 손님 대접하기를 잊지 말라 이로써 부지중에 천사들을 대접한 이들이 있었느니라"하였습니다(히 13:1-2). 그렇습니다. 대접을 받고 싶은 마음이 있으면 남이 나를 대접하기를 기다리지 말고 내가 먼저 대접을 하는 것이 순서라는 것이 주님의 말씀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남을 먼저 대접하고 대접을 받는 복을 받아야 하겠습니다.
2.십일조를 드리라고 하십니다
말 3:10-13 "만군의 여호와가 이르노라 너희의 온전한 십일조를 창고에 들여 나의 집에 양식이 있게 하고 그것으로 나를 시험하여 내가 하늘 문을 열고 너희에게 복을 쌓을 곳이 없도록 붓지 아니하나 보라 만군의 여호와가 이르노라 내가 너희를 위하여 황충을 금하여 너희 토지 소산을 멸하지 않게 하며 너희 밭에 포도나무의 과실로 기한 전에 떨어지지 않게 하리니 너희 땅이 아름다워 지므로 열방이 너희를 복되다 하리라 만군의 여호와의 말이니라"하였습니다.
이는 시험해보라고 하신 말씀은 그가 확실히 십일조를 드리는 자에게 풍성한 물질로 갚아주실 것을 보장하시는 말씀입니다. 이것이야말로 도전적인 말씀입니다. 그 다음에 나오는 말씀들을 보면, 십일조를 드리는 자에게 풍성한 물질로 갚아 주실 것을 여러 가지로 진술하십니다. 그런데 문제는 우리가 아는 대로 십일조를 바치는 자들 중에 확실히 이 말씀대로 하나님의 갚아주시는 풍성한 물질을 받은 자들이 있는 반면에, 또 그렇지 못한 일도 있다는 것입니다. 여기에 있어서 우리는 자세히 알아 보아야합니다. 십일조를 바치되 물질의 풍성한 것으로 갚음 받지 못하는 원인은, 아직도 그 바치는 일이 하나님 보시기에 성실 되지 못한 까닭이겠고, 그렇지 않으면, 그가 십일조는 바치지만 다른 죄악 때문에 물질적 축복을 받지 못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그 계명을 지키는 자에게 언약을 지키시겠다고 하셨습니다(단 9:4).
그런데 오늘에는 십일조 하라는 목사는 사기꾼이라고 매도하는 사람들도 있는데 하나님께서 주시고 십분의 일을 요구하시는 것은 무리한 요구가 아니고 이는 반드시 십분의 일에다 국한시킬 것이 아니며 십의 오를 드려도 부족해서 더 드리고 싶은 아쉬운 마음이 있어야 할 것입니다. 왜냐하면 주님은 우리 죄악을 위하여 십자가를 지시고 죽어주셨는데 우리는 주님이 주신 물질에서 드리는 것이 무엇이 아까우랴 이는 따지지 않고 감사하는 마음으로 십일조를 드리고 복이야 주시던 안주시던 그것은 상관할 이유가 없습니다. 복을 받겠다는 마음으로 상업적인 정신이나 이해타산으로 드려서는 안 될 것입니다. 그러나 주님이 드리면 복을 주시겠다고 약속하셨으니 이는 주님의 처분만 바랄 뿐입니다.
3.사람이 무엇이나 행한 대로 받습니다
계 22:12 "보라 내가 속히 오리니 내가 줄 상이 내게 있어 각 사람에게 그의 일한대로 갚아 주리라"하였습니다. 이는 권능의 손을 휘둘러 심판하시는 하나님의 권세가 재림하시는 그리스도에 의해 성취됨을 시사하는 말씀인데 각 사람에게 그의 일한 대로 갚아 주리라는 그리스도의 재림의 목적을 가리키는 것입니다. 이처럼 행위에 근거한 판단이나 심판은 성경 전체에서 자주 나타납니다(계 2:23 잠 22:12 렘 17:10 롬 2:6 벧전 1:17). 이것은 마지막 백보좌 심판을 묘사할 때에도 (계 20:13) 동일하게 사용되고 있습니다. 본 절에서 언급된 바와 같이 의로운 자에 대한 보상은 상대적으로 악한 자에게 하나님의 엄중한 심판이 있음을 암시하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의 재림은 그를 추종하고 따른 자들에게 보상이 주어지는 즐거움을 가져다주나 짐승과 사단을 숭배하여 하나님을 대적한 자들에게는 두려운 심판만을 가져다주는 행한 대로 받는 무서운 심판이 될 것입니다.
바울은 말하기를 "스스로 속이지 말라 하나님은 만홀히 여김을 받지 아니하시나니 사람이 무엇으로 심든지 그대로 거두리라 자기의 육체를 위하여 심는 자는 육체로부터 썩어진 것을 거두고 성령을 위하여 심는 자는 성령으로부터 영생을 거두리라"하였습니다(갈 6:7-8). 바울은 인간의 행위를 자연 법칙에 비유합니다. 이렇듯 행위와 그 결과를 설명하기 위해 씨 뿌리고 거두는 비유를 사용하는 것은 혤라 문화와 성경에서 자주 발견됩니다(마 7:16 막 4:26눅 19:21 고후 9:6). 바울은 고후 9:6에서 적게 심는 것과 많이 심는 것의 차이에 대하여 설명하였으나 본 절에서는 심는 것과 거두는 것의 질에 대하여 논하고 있습니다. 본 절에서 묘사된 행위는 인간이 지속적으로 행하는 각각의 행위를 말합니다. 따라서 사람들이 복음을 듣고 그것을 어떻게 실생활에 실천하느냐 하는 문제는 그가 미래의 심판대 앞에서 어떠한 결과를 거둘 것이냐 하는 문제와 밀접한 관계가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모든 것은 원인과 결과가 있듯이 인생도 마지막 날이 있음을 깨닫고 살아가야 합니다. 술을 많이 마신 사람은 간 경화증으로 생명을 잃기 쉽고, 담배를 많이 피운 사람은 폐암에 걸리기 쉬우며 도박을 즐기는 사람은 결국 돈의 노예가 되고 패가망신하며 쾌락을 좋아하는 사람은 육신도 정신도 병든 자가 됩니다. 그러나 절약을 좋아하는 사람은 그만큼의 풍요함을 누게 되며, 땀을 많이 흘린 사람은 그만큼의 행복이 있으며, 성실로 음식을 삼은 사람은 행복의 날을 노래합니다. 인간사에는 원인이 있으면 반드시 결과 또한 있습니다.
"결론"
그러므로 하나님의 말씀을 읽고 듣고 지켜서 복을 받아야 하겠습니다. 사도요한은 기록하기를 "이 예언의 말씀을 읽는 자와 듣는 자들과 그 가운데 기록한 것을 지키는 자들이 복이 있나니 때가 가까움이라"하였습니다(계 1:3). 본문은 예언의 말씀을 읽고 듣고 지키는 자가 복이 있는 이유입니다. 특히 말세가 되면 될수록 더욱 그리 해야 합니다. 그리스도가 승천한 이후부터 다시 오실 재림의 때까지는 인간 편에서 볼 때 항상 임박한 긴장(緊張)의 시간이며 하나님 편에서 볼 때 정한 시간입니다. 그러므로 복 있는 자는 말씀을 읽고 듣고 지킴으로 종말을 준비해야 합니다(마24:3-51; 요21:22). 그러므로 우리는 주님의 재림을 고대하면서 사는 날까지 복된 삶을 위하여 주님의 말씀대로 하라는 것은 하고 하지 말라는 것은 하지 아니하는 말씀에 절대 순종하는 성도들이 되어야 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