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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의 존귀함을 알고 감사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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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의 존귀함을 알고 감사하자

번호:533 글쓴이: 이윤근
조회:3 날짜:2004/06/30 19:03

성경 전 6:1-2, 2004년 7월 2일 금요 심야기도

제목 "우리의 존귀함을 알고 감사하자"

서론

본문에 보면 "어떤 사람은 그 심령의 모든 소원에 부족함이 없어 재물과 부요와 존귀를 하나님께 받았으나 능히 누리게 하심을 얻지 못하였으므로 다른 사람이 누리나니 이것도 헛되어 악한 병이로다"하였습니다(2). 저자는 기록하기를 "사람이 하나님의 주신바 그 일평생에 먹고 마시며 해 아래서 수고하는 모든 수고 중에서 낙을 누리는 것이 선하고 아름다움을 내가 보았나니 이것이 그의 분복이로다 어떤 사람에게든지 하나님이 재물과 부요를 주사 능히 누리게 하시며 분복을 받아 수고함으로 즐거워하게 하신 것은 하나님의 선물이라 저는 그 생명의 날을 깊이 관념치 아니하리니 이는 하나님이 저의 마음의 기뻐하는 것으로 응하심이라"하였습니다(전 5:18-20). 이는 부와 존귀는 하나님께서 주신 복이고 선물인데 이것은 인간들이 원하는 것을 주셨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본문에서는 온갖 부귀를 지니고서도 그것을 누리지 못하는 폐단을 소개합니다. 왜 그러한 폐단에 빠지는가에 대해서는 본 절에 명시되어 있지 않습니다. 아마도 갑작스런 재앙, 싫증, 혹은 과욕 등이 그 원인이 아닐까 생각됩니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만족함과 감사가 없기 때문에 문제가 발생한다는 말입니다(딤전 6:6-8). 그래서 시편 저자는“존귀에 처하나 깨닫지 못하는 사람은 멸망하는 짐승같도다.”하였습니다(시 49:20).

1.존귀와 부는 하나님께서 주셔야 합니다
대상 29:28 "저가 나이 많아 늙도록 부하고 존귀하다가 죽으매 그 아들 솔로몬이 대신하여 왕이 되니라"하였습니다. 이는 다윗이 나이 많아...부하고 존귀하다가 정계(政界)에서 은퇴한 그의 삶이 본 절에서 역대기 기자가 표현한 대로 순탄한 생활이 아니었습니다. 왜냐하면 그는 죽음 직전에 아들들의 싸움을 목도했을 뿐만 아니라(왕상 1:50-53) 임종시에는 원수에 대한 저주(왕상2:9)로 죽음을 맞이했기 때문입니다. 그렇기에 열왕기서에 나타난 다윗의 말년의 이미지는 본 절과 상당한 차이가 있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기록상의 차이는 기자들간의 저술 관점으로 이해하면 별 문제가 없습니다.

다윗이 부하고 존귀하다가 죽은 것은 사실입니다. 그러나 존귀와 부함 속에서도 심적 고통은 많았다는 것은 부인할 수 없습니다. 이것이 인생살이라 시편 저자가 말하기를 "우리의 모든 날이 주의 분노 중에 지나가며 우리의 평생이 일식간에 다하였나이다 우리의 연수가 칠십이요 강건하면 팔십이라도 그 연수의 자랑은 수고와 슬픔 뿐이요 신속히 가니 우리가 날아가나이다"하였습니다(시 90:9-10). 인간에게 부와 존귀는 주셨어도 인간 편에서는 편안하게 누리지 못하는 문제점을 안고 있다는 것입니다. 부와 존귀를 주께로부터 받은 줄 알고 만족하게 여기고 사는 길만이 최대한 행복한 삶을 사는 것입니다. 받기는 했지만 누리지 못한다면 이는 그림에 떡과 같은 것이 될 것입니다.

2.우리가 받은 것에 대하여 생각해 보아야 합니다
대상 17:17-18 "하나님이여 주께서 이것을 오히려 작게 여기시고 또 종의 집에 대하여 먼 장래까지 말씀하셨사오니 여호와 하나님이여 나를 존귀한 자 같이 여기셨나이다 주께서 주의 종에게 베푸신 존귀에 대하여 다윗이 다시 무슨 말씀을 하오리이까 주께서는 주의 종을 아시나이다"하였습니다. 이는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라는 규례에 따라 한 인간이 이웃에게 친절과 사랑을 베풀어줌과 같이 주 여호와께서 다윗에게 극진한 사랑과 친절을 베푸셨다는 말씀과 같은 것입니다.

다윗은 자기에게 베푸신 하나님의 은혜에 대한 벅찬 감사를 도저히 말로 다 표현할 수 없었습니다. 따라서 그는 구차히 말로 감사를 표현하기보다는 인간의 중심의 모든 것을 다 아시는 하나님의 전지성(全知性)에 의지해 자신의 감사의 마음을 표하고 있는 것입니다. 바울은 말하기를 주님께서 우리를 가난에서 부요케 하셨다고 하였고(고후 8:9) 그리고 질병에서 건강을 주셨다고 하였습니다(벧전 2:24). 그뿐 아니고 멸망에서 영생에 이르도록 하셨다고 하였습니다(롬 1:2-4 요 3:16). 그리고 우리를 저주에서 속량받은 존귀한 자들이라는 것입니다(갈 3:13). 그 외에도 같은 예는 얼마든지 있습니다. 문제는 예가 없어서가 아니고 받은 은혜를 깨닫지 못해서 문제가 되는 것입니다.

바울사도는 말하기를 "누가 너를 구별하였느뇨 네게 있는 것 중에 받지 아니한 것이 무엇이뇨 네가 받았은즉 어찌하여 받지 아니한 것 같이 자랑하느뇨"하였습니다(고전 4:7). 이는 인간들이 가지고 있는 모든 것은 하나님으로부터 받았기 때문에 자랑할 만한 아무런 정당성도 가질 수가 없다는 것입니다. 그들이 가진 지식, 혈통, 재산, 생명, 심지어 신앙까지라도 아무 공로 없이 하나님께로부터 선물로 받은 것이기 때문에 그들의 자랑은 무익한 것에 지나지 않는다는 뜻입니다(렘 9:23-24).

3.감사하며 살아야 합니다
시 116:12-15 "여호와께서 내게 주신 모든 은혜를 무엇으로 보답할꼬 내가 구원의 잔을 들고 여호와의 이름을 부르며 여호와의 모든 백성 앞에서 나의 서원을 여호와께 갚으리로다 성도의 죽는 것을 여호와께서 귀중히 보시는도다"하였습니다(시 116:12-15). 그렇습니다. 받은 것에 대한 감사와 은혜를 보답하겠다는 뜻에서 죽도록 충성하다가 죽으면 그의 죽음을 귀하게 보신다는 것입니다.

찬송가 28장 작시자인 로버트 로빈슨 목사는 자신이 방탕한 생활을 할 때에 자기를 구해주신 하나님의 은혜에 대하여 깊은 감사의 시를 썼습니다. 그래서 그는 일 절에 천사들의 찬송가로 나를 가르치소서 하였고 2절에서는 주의 크신 도움 받아 이 때까지 왔다고 하였으며 3절에서는 주의 은혜가 사슬이 되어 자신을 주께 매어 달라는 가사는 매우 감동적인 것입니다. 존 뉴톤은 찬송가 405장을 지으면서 "나 같은 죄인 살리신 주 은혜 놀라와"하면서 감격적인 시를 지어 주님의 은혜에 감격하여 찬송으로 그의 신앙고백과 삶의 간증으로 삼았습니다.

바울사도는 죄인 중에 괴수인 자신을 구원하심에 너무나도 감사해서 살든지 죽든지 자신의 몸에서 그리스도가 존귀하게 되기를 바란다고 하였으며 그의 은혜를 보답하는 차원에서 하는 말이 "나의 달려갈 길과 주 예수께 받은 사명 곧 하나님의 은혜의 복음 증거하는 일을 마치려 함에는 나의 생명을 조금도 귀한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노라"하였습니다(행 20:24). 이는 끊임없이 그리고 오로지 주를 위해 충성했는데도 불구하고 그 결과로 나타나는 것은 결박과 환난이 기다리고 있는 상황이었습니다. 그런데 본문은 이런 현실 앞에서 바울이 어떠한 태도를 취했는가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즉 결론적으로 자기 생명을 조금도 귀한 것으로 여기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생명이 참으로 귀한 것이로되 그러나 자기 생명이 자기 것이 아님을 잘 알고 있었습니다. 따라서 생명에 대한 맹목적인 애착에 사로잡히지 않았습니다. 자기 생명 때문에 자기 생명의 존재 이유를 잃지 않기 위해서였습니다. 따라서 자신의 생명을 관심밖에 둠으로써 자기가 존재하고 있는 그 거룩한 목적을 완성하려고 한 것입니다. 결국 바울에게 있어 죽느냐, 사느냐 하는 것은 중요한 문제가 아니었습니다. 그가 살아있는 유일한 목적은 주께 받은 사명, 곧 하나님의 은혜의 복음을 증거 하는 것을 다 마치는 데 있었기 때문입니다(롬 14:8 빌 1:20- 21). 그러므로 구원받은 우리는 범사에 감사하며 살아야 합니다. 그래야 존귀한 자체가 더욱 존귀함을 나타내며 사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결론"
그래서 잠언 저자는 말하기를 "여호와를 경외하는 것은 지혜의 훈계라 겸손은 존귀의 앞잡이니라"하였습니다(잠 15:33). 주의 귀한 은혜 받아 존귀한 인물들이 되었으니 더욱 겸손하여 존귀의 대로를 열어야 할 것입니다. 이는 겸손히 최종적인 목적인 여호와를 경외하는 것임을 보여 주어야 합니다(잠 1:7 9:10). 여호와를 경외하는 자의 가장 큰 특성 중의 하나가 겸손이라는 점에서 이 구절은 상반절과 의미상 연속되는 부분입니다. 겸손한 자에게 따르는 복과 영예는 성경 전반에 걸쳐 언급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주께서 존귀로 관 씌우심을 기억하고 더욱 겸손하게 주님을 영화롭게 해드리도록 노력해야 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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