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리가 너희를 자유케 하리라 / 요 8:31-36
본문
강종수 목사
(요 8:31-36) 그러므로 예수께서 자기를 믿은 유대인들에게 이르시되 너희가 내 말에 거하면 참 내 제자가 되고 진리를 알지니 진리가 너희를 자유케 하리라 저희가 대답하되 우리가 아브라함의 자손이라 남의 종이 된 적이 없거늘 어찌하여 우리가 자유케 되리라 하느냐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죄를 범하는 자마다 죄의 종이라 종은 영원히 집에 거하지 못하되 아들은 영원히 거하나니 그러므로 아들이 너희를 자유케 하면 너희가 참으로 자유하리라
예수께서는 하나님과 당신을 떠나있는 모든 인생은 죄 짐에 매여 있다고 보셨습니다.
(마 11:28) 수고하고 무거운 짐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
수고하고 무거운 짐을 진 상태는 단순한 노력중의 힘든 현실이 아니라 주께서 보실 때 하나님이 없는 인생은 노예와 같은 상태로 보시고 우리에게 진정한 영적 자유를 가르쳐 주시고자 한 것입니다.
1. 종(둘로스, )
(요 8:34)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죄를 범하는 자마다 죄의 종이라
(롬 6:16) 너희 자신을 종으로 드려 누구에게 순종하든지 그 순종함을 받는 자의 종이 되는 줄을 너희가 알지 못하느냐 혹은 죄의 종으로 사망에 이르고 혹은 순종의 종으로 의에 이르느니라
바울이 주님 앞에 종이라고 할 때 역시 둘로스로 꼼짝없이 주인의 명령에 순종하고 복종할 수밖에 없는 신분을 나타내어 주는 말이며 바울이 말한 주의 종에서는 만유의 주 앞에 받은 영광스런 종을 뜻합니다. 죄의 종에도 역시 둘로스란 단어로 전혀 자기 주관이 도입되지 않고 사탄의 영역에 존속되어 종이 된 상태를 말합니다.
유대인들은 아브라함의 후예라는 민족적 긍지로 이방인들을 무시하고 그들의 신앙생활은 외식되고 살았습니다. 이 정서가 곧 죄의 종 된 상태라는 말씀이었습니다. 이로써 우리 이방인들도 마찬가지로 여러 풍습과 가치관에 메여 하나님이 없이 취한 모든 언행과 역사가 죄로 판단되는 것입니다.
이스라엘 그들은 유일신 사상의 역사적이고도 국가적인 의식체제 속에서 살았음에도 거짓된 그들의 삶을 죄의 종 된 자리에 있다고 지적하셨으니 이방인인 우리들은 두말 할 나위없이 죄의 종이 되고 말 것입니다. 죄는 곧 마귀의 본성이자 지구촌을 지배하는 사단(마귀)의 정신입니다.
이스라엘의 노예제도에 그들의 노예는 6년 만에 해방될 수 있으며(출 21:2-6, 네가 히브리 종을 사면 그가 육 년 동안 섬길 것이요 제 칠 년에는 값없이 나가 자유할 것이며...) 50년 되는 해에는 희년(禧年)이라 하여 모든 노예들이 해방되는 것입니다(레 25:10, 제 오십 년을 거룩하게 하여 전국 거민에게 자유를 공포하라 이 해는 너희에게 희년이니 너희는 각각 그 기업으로 돌아가며 각각 그 가족에게로 돌아갈지며)
이러한 제도적 자유는 있으나 언제라도 노예의 신분에서 떠날 수 없으며 다시금 남의 노예가 되어 살아야만 하는 것입니다. 주님이 없이 사는 세상의 삶은 잠시 잠간의 일시적 안위가 있어도 영원한 안식과 행복이 없음을 이해시키는 내용입니다.
이것이 죄된 삶의 정체입니다. 이것은 죄의 종 된 신분의 고난입니다. 하나님을 주로 모시지 못한 세속은 곧 사단에 속하여 죄의 종 된 처지라는 것입니다(요일 5:19, 또 아는 것은 우리는 하나님께 속하고 온 세상은 악한 자(사단;마귀) 안에 처한 것이며). 이러한 삶의 정서에서 탈피할 것을 권유합니다.
2. 진리(아레데이아, )
본문 32절, 진리를 알지니 라고 하신 말씀 원문상, 기노세스데 텐 아레데이안( )라고 해서 진리란 단어 앞에 정관사 텐, 즉 (그)라는 관사가 있어 '그 진리'로 읽는 것이 맞습니다. 하나님의 진리, 절대적이며 유일무이한 진리, 그 진리를 뜻합니다. 예수께서 잡히시어 빌라도에게 심문 받으실 때,
(요 18:37) 빌라도가 가로되 그러면 네가 왕이 아니냐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네 말과 같이 내가 왕이니라 내가 이를 위하여 났으며 이를 위하여 세상에 왔나니 곧 진리에 대하여 증거하려 함이로다 무릇 진리에 속한 자는 내 소리를 듣느니라 하신대 빌라도가 가로되 진리가 무엇이냐 하더라 이 말을 하고 다시 유대인들에게 나가서 이르되 나는 그에게서 아무 죄도 찾지 못하노라).
여기 18:37에 있는 진리, ... 내가 이를 위하여 났으며 이를 위하여 세상에 왔나니 곧 진리에 대하여 증거하려 함이로다 무릇 진리에 속한 자는 내 소리를 듣느니라...하심에서 이 두 번의 진리 단어에는 역시 (그)라는 정관사가 붙어 있으며 영어 번역에도 the truth로 되어 있습니다. 바로 뒷 절에서 빌라도가 예수께 질문한 '진리가 무엇이냐?'고 한 말의 진리는 그냥 정관사 없이 이성주의적인 진리를 뜻하여 물은 물음입니다. 소위, '진리? 진리가 뭔데?' 뭐 이런 식입니다. 역시 영어 번역에도 관사 없이 What is truth?로 되어있습니다.
성경에서 진리는 예수 그리스도 자신이라 하셨습니다.
(요 14:6) 예수께서 가라사대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느니라
이 말씀에 역시, 헤 호도스 카이 헤 아레데이아 카이 헤 쪼애( , , ), 즉 I am the way, the truth, the life입니다. 그러므로 바르게 읽는다면, 내가 곧 (그) 길이요 (그) 진리요 (그) 생명입니다.
예수님은 말씀이 육신되어 이 땅에 오신 하나님의 아들이십니다(요1:1,14). (요 1:14)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시매 우리가 그 영광을 보니 아버지의 독생자의 영광이요 은혜와 진리가 충만하더라고 했습니다. 그러므로,
1)이 진리는 생명이 있는 진리입니다
즉 죽은 이론이 아닌 창조성이 있는 생명력을 지닌 진리입니다. 사물의 단순한 이치가 아니라 절대적인 힘을 가진 모든 것의 근본입니다.
(요 6:63) 살리는 것은 영이니 육은 무익하니라 내가 너희에게 이른 말이 영이요 생명이라
(요 6:68) 시몬 베드로가 대답하되 주여 영생의 말씀이 계시매 우리가 뉘게로 가오리이까
2)이 진리는 예수의 모든 가르침과 하나님의 뜻입니다
넓게는 하나님의 모든 뜻이 진리입니다. 또한 계시하여 성문화된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이 진리입니다. 성경 진리는 구약과 신약으로 나뉘는데, 가령 십계명은 영원한 진리로 사람이 하나님을 향하여 섬기는 예법과 세상을 잘 살아가는 이치입니다.
예수께서 오심으로 구약을 구속사적으로 이해하는 그리스도인들은 예수 중심으로 진리를 이해하게 되었습니다. 예수께서 말씀하신 교훈을 중심으로 구약의 진리가 재해석되어 집니다. 이것은 율법의 완성자로 오신 예수를 따르는 자로서의 성경 해석법입니다.
그러므로 성경을 바로 이해하고 또한 바르게 간직하는 지식은 진리를 내 속에 주님처럼 거하게 하는 아주 완벽한 경전이자 정보입니다.
3)이 진리의 체험은 인격적이며 신비입니다
진리를 알지니... 여기 안다는 말 헬라어 기노스코( )는 경험적인 지식을 강조하는 낱말입니다. 마리아가 처녀로 아기를 잉태했을 때 그가 하나님께 한 말이 그랬습니다. (눅 1:34) 마리아가 천사에게 말하되 나는 사내를 알지 못하니 어찌 이 일이 있으리이까
여기 알지 못하니는, 우 기노스코( )로 체험하지 못한 바를 고하는 것입니다.
진리는 먼저 듣거나 봄으로써 인식합니다. 이것은 머리로 이해를 시작하는 일입니다. 그런데 진리는 예수님의 다른 존재 양식이니 예수님처럼 인격적 체험이 있어야 2천년의 전의 주님을 체험하는 것과 같이 될 것입니다.
때문에 진리는 신앙의 여러 면에서 충성과 기도와 핍박 가운데서 진리가 뼈속 깊이 체험되어 지고 성령의 감화로 주님의 인격을 그대로 감동받는데 이르는 것입니다.
본문 31절에, 그러므로 예수께서 자기를 믿은 유대인들에게 이르시되 너희가 내 말에 거하면 참 내 제자가 되고
여기에 거한다는 말씀은 머리로 기억한다는 것과 다른 뜻으로 어떠한 존재의 동작과 상태를 말합니다. 우리 양심과 마음 속에 진리가 실제적으로 거하실 때 우리는 주님의 제자가 된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진리의 체험입니다. 성경 한 구절과 성경이 주는 하나님의 뜻을 맘에 담을 때 비로소 진리를 체험적으로 안다는 것입니다.
이 진리는 이론이 아닌 영적으로 인격이 내재한 진리입니다. 그러므로,
(1)이 진리는 영이요 생명이라 하셨기에 영적인 눈으로 읽어지고 보여져야 합니다.
(시 119:18) 내 눈을 열어서 주의 법의 기이한 것을 보게 하소서
(벧후1:21) 예언은 언제든지 사람의 뜻으로 낸 것이 아니요 오직 성령의 감동하심을 입은 사람들이 하나님께 받아 말한 것임이니라
(딤후 3:16) 모든 성경은 하나님의 감동으로 된 것으로 교훈과 책망과 바르게 함과 의로 교육하기에 유익하니
(고전 2:10) 오직 하나님이 성령으로 이것을 우리에게 보이셨으니 성령은 모든 것 곧 하나님의 깊은 것이라도 통달하시느니라
(고전 2:14) 육에 속한 사람은 하나님의 성령의 일을 받지 아니하나니 저희에게는 미련하게 보임이요 또 깨닫지도 못하나니 이런 일은 영적으로라야 분변함이니라
이러한 말씀을 보아서 우리는 성경의 진리를 이해하는 것은 신령한 일이며 영적인 안목으로 깨닫고 믿을 수 있음을 보게 됩니다.
(2)이 진리는 인격적 체험에 속합니다
인격은 이론을 넘어선 어떤 정도의 훈련에 속하여 심신에 체질화된 역사성을 지닌 것입니다. 듣고 배웠다고 그것이 금방 인격화되는 것이 아닌 것과 같습니다.
(시 119:71) 고난 당한 것이 내게 유익이라 이로 인하여 내가 주의 율례를 배우게 되었나이다
모세가 40세까지의 지식과 민족애로서 구원자가 되려다 살인만 하는 실패로 끝난 후 광야로 가서 나이 80이 되었을 때 부름 받아 이스라엘 영도자가 된 것이나, 12제자들의 예수님과 3년 간의 인격적 체험을 통한 아주 특별한 경험이나 바울의 주의 직접적 부르심의 체험 등으로 진리의 체험은 이론을 넘어선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는 것입니다.
(3)이 진리는 성경 말씀 자체가 체험케 합니다
성경 말씀 전후 설명도 없이 성경 구절 자체를 듣거나 보는 자로 하여금 영혼에 충동질 하여 구원에 이르는 경우가 허다하며 어쩌면 설명보다 진리 자체가 하나님의 은총 가운데 영혼을 깨우시는 것입니다.
* 스펄젼이 설교 연습 중 요1:29을 외칠 때 지붕에서 페인트를 칠하던 자가 말씀에 감동받아 구원을 얻었다는 일화나.
*어거스틴이 방황할 때 어느 날 어린 아이의 성구 암송 롬13:13의 소리에 영혼의 눈을 뜨고 회개했던 것이 곧 하나님의 말씀 자체의 생명력과 창조의 능력을 보여 준 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
자유주의 신학은 이성에 기초하여 상황윤리를 도입합니다. 말씀보다 삶의 정황에 무게를 더하므로 성경의 능력을 제약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칼.바르트의 찰나신학이나 예수 부활 불신자의 비신화화 신학자 불트만과 내세를 하나의 삶의 희망이란 용어로 대체한 몰트만 같은 신학은 성경보다 역사의 상대성에 호소하는 것들입니다.
구티.에레츠의 해방신학이 그러하고 철학과 신학을 결합으로 철학자에 가까운 나름대로 신학자라 일컫는 로마.카토릭 신학의 대부 토마스.아퀴나스와 폴.틸리히 같은 자들이 철학과 신학의 만남을 통하여 하나님을 사회의 화목을 위한 종교 다원주의를 인정하는 신으로 그 정체성을 불분명하게 해버리고 만 것입니다.
그러나 지금도 하나님의 말씀은 모든 이론을 파하고 우리의 선입관이나 경험주의 지식을 무릎 꿇게 하시며 구원 역사를 이루는 가장 확실한 힘이 되는 진리입니다.
(딤후 3:15) 또 네가 어려서부터 성경을 알았나니 성경은 능히 너로 하여금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에 이르는 지혜가 있게 하느니라
3. 자유(엘유데로스, )
진리가 우리 속에 체험적으로 동거하시게 된다면 주께서 이르신 그 참 자유를 만끽하게 될 것입니다. 31절에, 거한다는 말씀, 메노( )는 머물다,남다,거주하다, 계속 영존하다 등의 뜻입니다. 이것은 어떠한 것에도 메이지 않는 완전한 자유, 나아가서 개인의 인격적 권세를 가진 것을 말합니다.
그러므로 진정한 자유는 위로부터, 하늘로부터 오는 자유입니다. 그 평안은 세속의 그 어떤 댓가로 체험될 수 없는 것입니다(요 14:27, 평안을 너희에게 끼치노니 곧 나의 평안을 너희에게 주노라 내가 너희에게 주는 것은 세상이 주는 것 같지 아니하니라 너희는 마음에 근심도 말고 두려워하지도 말라).
그러면 진리가 우리에게 체험적으로 내주하게 될 때 우리는 어떠한 존재가 됩니까?
그것은 죄의 종에서 의의 종으로 신분이 바뀌고 그 누릴 영광이 달라지는 것입니다.
(롬 6:17,18) 하나님께 감사하리로다 너희가 본래 죄의 종이더니 너희에게 전하여 준 바 교훈의 본을 마음으로 순종하여 죄에게서 해방되어 의에게 종이 되었느니라)
(요 8:32) 진리를 알지니 진리가 너희를 자유케 하리라
진리는 예수, 그 진리는 예수 믿는 믿음 안에서 인격적으로 체험하는 신비적인 생명의 이치입니다. 예수는 우리를 죄와 노예적 인생의 삶을 완전한 자유의 삶으로 회복시켜 주십니다.
(롬 8:2)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생명의 성령의 법이 죄와 사망의 법에서 너를 해방하였음이라
(갈 5:1) 그리스도께서 우리로 자유케 하려고 자유를 주셨으니 그러므로 굳세게 서서 다시는 종의 멍에를 메지 말라
1)신분이 하나님의 자녀가 됨(요1:12)
신분이 하나님의 자녀가 된 정서는 세상을 살아가는 일에 소망 없는 세인들과는 다른 것입니다. 집을 짓는 일에 주인의 아들도 품삯을 주는 일꾼들과 같이 일하지만 그 일하는 맘이 다른 것과 같은 격입니다.
(요 1:12) 영접하는 자 곧 그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으니
2)죽은 자 같이 꼼짝 못하다가 산자가 됨(엡2:1)
(엡 2:1) 너희의 허물과 죄로 죽었던 너희를 살리셨도다
성경은 죄와 허물로 우린 영은 이미 죽은 상태였고 이 죽은 상태에서 공중 권세 잡은 자, 즉 사단에게 순종한 사람이었으나 은혜로 우리의 영을 다시 살리셨다고 했습니다. 이것이 자유의 진정한 개념입니다. 영혼이 살면 육신이 움직이고 자유하듯이 세상은 영혼이 죽었으므로 걸어다니는 송장이라 볼 것입니다. 그들은 움직이나 사단에게 제압되고 그것이 습관화 된 비참한 노예 상태인 것입니다.
3)지옥같은 세상을 살지만 천국의 시민권을 획득하여 소망 중에 영생을 소유한 채 영원 자유를 미리 체험하고 살아가는 것은 완전한 자유인의 기쁨입니다.
(빌 3:20) 오직 우리의 시민권은 하늘에 있는지라 거기로서 구원하는 자 곧 주 예수 그리스도를 기다리노니
(롬 8:18) 생각건대 현재의 고난은 장차 우리에게 나타날 영광과 족히 비교할 수 없도다
(롬 8:35-39) 누가 우리를 그리스도의 사랑에서 끊으리요 환난이나 곤고나 핍박이나 기근이나 적신이나 위험이나 칼이랴 기록된 바 우리가 종일 주를 위하여 죽임을 당케 되며 도살할 양같이 여김을 받았나이다 함과 같으니라 그러나 이 모든 일에 우리를 사랑하시는 이로 말미암아 우리가 넉넉히 이기느니라 내가 확신하노니 사망이나 생명이나 천사들이나 권세자들이나 현재 일이나 장래 일이나 능력이나 높음이나 깊음이나 다른 아무 피조물이라도 우리를 우리 주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하나님의 사랑에서 끊을 수 없으리라
바울의 이러한 확신은 그리스도 안에서 누리는 참된 자유의 영이 고백하는 바 우리들의 고백이 됨을 믿습니다. 우리가 이 악한 세대에서 하나님이 주시는 평안, 곧 영적 자유는 진리의 하나님이 주신 약속입니다. 아무라도 우리를 그리스도의 사랑에서 해할 자가 없다는 것을 믿으시기 원합니다.
정치적 제도에 의한 심신의 부자유 혹은 끈질긴 죄스러운 습관에 의한 부자유 그리고 세상의 불확실한 미래에 대한 공포와 긴장의 부자유 등등으로 인생은 노예처럼 고달픈 삶을 예나 지금이나 영혼을 방치한 채 살아가고 있습니다. 우리는 언제나 주님이 우리 안에 진리로 계셔서 자유의 사람, 평안의 사람으로 살아 갈 수 있도록 열심히 기도해야합니다. 또한 진리를 사모하며 진리 안에 거할 수 있기를 정성과 뜻을 다해 영적 전쟁에서 승리자들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