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깨닫지 못했던 사랑 (롬 8:32-39)
본문
기도 많이 하는 어머니에게 아들이 셋 있었습니다. 어머니의 기도 덕분에 세아들이 모두 부자가 되었습니다. 기도해 주신 어머니의 은혜에 감사하여 어버이 날에 선물을 드리게 되었습니다. 큰 아들이 비싼 벤츠를 한대 선물로 드렸는데 어머니는 별로 기뻐하지 않았습니다.
그러자 둘째가 "형은 쩨쩨해서 탈이야" 하고는 고급아파트를 한채 사드렸습니다. 그래도 어머니는 별로 기뻐하지 않았습니다
세째가 형들을 꾸짖으며 "어머니는 신앙이 좋으신데 그런걸로 기뻐 하시겠어?" 그리고는 성경을 창세기부터 계시록까지 다 외우는 신통한 앵무새를 아파트 두채값을 주고 사서 어머니께 선물했습니다
그제서야 어머니가 몹시 기뻐하며 다음날 셋째에게 편지를 보내셨습니다. "셋째야. 내 소원을 아는 놈은 너밖에 없다. 내몸이 요즘 허약해서 기운이 없었는데 어찌알고 그런 선물을 보냈니? 네가 보내준 닭은 푹 삶아서 잘 먹었다"
데이비드 씨멘즈(David Simans)라는 상담학자 있습니다. 일생동안 많은 사람들을 상담했습니다. 그의 많은 경험에서 그는 이렇게 결론을 짓습니다. "나는 오랫동안 많은 복음주의적인 신앙을 가진 사람들을 만났습니다. 그 그리스도인들이 겪는 정서적 문제의 주요원인은 첫째는 무조건적인 은혜와 용서를 그들이 깨닫지 못하고 받아들이지도 않고 그것을 누리지 못하는 데 있습니다. 둘째는 그 무조건적인 사랑과 용서를 베풀 줄 모르는데 문제가 있습니다. 참 사랑을 깨닫지 못하고 사랑을 모르는데서 사람들의 모든 문제가 파생된다는 말씀입니다. 여러분 세상에서 우리는 가장 놀라운 사랑을 받은 사람들입니다. 오늘 이 중요한 사실을 명확하게 발견하고 새로운 삶이 여러분 앞에 활짝 열리기를 축원합니다.
1. 아들을 내어 주신 하나님의 사랑입니다.(32)
오늘 성경은 우리에게 강하게 말씀하십니다. '자기 아들을 아끼지 아니하시고 우리를 위하여 내주신 이가 어찌 그 아들과 함께 모든 것을 우리에게 주시지 아니하시겠느냐.' 이 아들을 주었다는 말은 사랑의 극치를 표현하는 것입니다. 이 이상의 사랑이 없습니다. 내 목숨 주는 것 보다 내 아들 주는 게 더 어려운 겁니다. 아들을 아끼지 아니하시고 내어주시는 그러한 사랑이 여기에 있습니다. 그렇다면 무엇을 아끼겠습니까? 그럼 왜 안 주시겠습니까? 사랑하기에 가장 좋은 것을 주시고 사랑하기에 안 좋은 것은 절대 안주시는 것이에요. 바로 이것을 깨달으면 깨달을수록 믿으면 믿을수록 행복한 사람, 사랑의 사람이 될 수 있습니다.
어떤 목사님이 교도소에 가서 복음을 전했습니다. 그런데 청년 하나가 출소하여서 목사님을 찾아왔습니다. 전과 7범인데 목사님더러 직장을 소개하라는 겁니다. 잘 알지도 못하는 사람, 그것도 전과 7범이라는데 어느 직장에 쉽게 소개할 수 있겠습니까? 그래 망설이고 있으니까 이 청년 하는 말이 "그럴 줄 알았다구요. 사랑을 외치고 사랑을 부르짖지만 사랑은 없습니다. 우리 어머니는 나를 낳아서 고아원에 내버렸답니다. 어디에 가서 사는 지 모릅니다. 자기 자식을 내버리는 그런 세상입니다. 내가 거기서 자랐고 열네살 때 담장을 넘어 도망을 해 가지고 오늘까지 이렇게 방탕하며 방황하면서 전과 7범이요. 이렇게 살았는데 사랑이 어디 있단 말입니까? 쓸데없는 이야기하지 마세요. 사랑은 없습니다" 하고 고함을 치는 것입니다. 목사님이 어떻게해야할지 난감했습니다. 그래도 그 청년을 붙들고 이야기하기 시작했습니다.
"다시 생각해 보자. 다른 사람들은 자기 자식이기 때문에 먹이기도 하고 입히기도 한다. 그러나 너는 너와는 아무 상관도 없는 사람이 너에게 젖을 먹였어. 네 기저귀를 갈아 채웠다. 네가 모르는 사이에 너는 너와 아무 상관도 없는 사람들의 사랑을 받고 네가 살아난 것이고 건강하게 자랐고 네가 한번 농사한 일 없지만은 오늘까지 먹고 살았어. 이래도 사랑이 없다는 거냐? 너는 다른 사람이 받지 못한 특별한 사랑을 받은 거다." 그러자 이 청년이 마음을 돌립니다. 고아원 원장을 생각하고 자기를 사랑해 주던 보모들을 생각합니다. 그러더니 목을 놓고 울어요. "내가 잘못 생각했습니다. 정말 저는 사랑을 많이 받았습니다." 그리고 일어서더라니 얼굴이 환하게 되어서 인사를 하고는 돌아가더랍니다.
여러분, 모든 문제의 근본은 사랑을 모르기 때문이에요. 내가 받은 사랑, 지금도 내가 그 사랑 안에 있음을 모르기 때문에 불행합니다. 오늘 성경은 말합니다. '아들도 아끼지 않고 내어주신 이가 아들과 함께 모든 것을, 모든 것을 은사로 주지 아니하시겠느뇨.' 하나님이 내게 주시는 모든 것이 은혜적 선물입니다. 그걸 잊지 말아야합니다.
나의 고독의 원인은 나의 고집 때문입니다. 내가 절망하고 있는 것은 내가 믿음이 없기 때문입니다. 사랑을 못 받아서 그런 게 아닙니다. 사랑을 깨닫지 못해서 그런 겁니다. 과거에 이미 사랑을 받았고, 앞으로 사랑의 약속이 있고, 오늘 내가 처한 처지 모든 현실 속에 하나님의 사랑이 확증되어 있습니다. 여러분, 십자가를 쳐다보면서 다시 한 번 생각해 보세요. 그 안에 무궁무진한 하나님의 사랑이, 내게 향한 구체적인 사랑이 계시되어 있습니다. 하나님의 사랑 안에 내가 있고 그 사랑 안에 나를 향한 축복이 담겨 있습니다.
여러분 십자가에 달려 죽음으로 사랑을 증명할 수 있도록 아들을 기꺼이 내어주신 하나님의 진실한 사랑을 깨닫고 여러분에게 사랑이 넘치게 부어지고 있음을 확신할 수 있기 바랍니다.
2. 우리를 의롭다고 인정하시는 예수님의 사랑입니다.(34)
일본의 미우라 아야꼬 라는 여류 소설가가 쓴 '양치는 언덕'이라는 소설에는 나오미라고 하는 목사 딸이 나옵니다. 나오미는 료오이찌라고 하는 남자에게 반해 부모를 버리고 도망합니다. 그러나 그 료오이찌라고 하는 사람은 술꾼이요 바람둥이이었기 때문에 원만한 결혼생활을 할 수가 없어서 결국 얼마 후 친정으로 돌아오고 맙니다.
그때 료오이찌라고 하는 사람이 폐병에 걸려 나오미에게로 옵니다. 나오미는 그 사람을 받아들이기가 싫었지만 목사인 아버지가 그를 받아들입니다. 처가집에서 요양생활을 하는 동안 료오이찌는 처가집 식구들의 믿음에 감동을 받아 예수를 영접하게 됩니다.
요양 생활을 하면서 료오이찌는 다락방에서 그림을 그리는데 아무도 보지 못하게 흰 천으로 그림을 덮어놓곤 합니다. 그리고 부인에게 크리스마스때가 되면 선물로 그림을 완성하여 주겠다는 약속을 합니다.
크리스마스 때가 되고 그림도 다 완성되었을 때 전에 사귀던 좋지 못한 여자로부터 전화가 옵니다. 할 수 없어서 나가 만납니다. 술을 권하지만 마시지 않습니다. 하룻 밤 자고 가라고 유혹하지만 그 유혹에 빠지지 않습니다. 그러자 그 여자가 몰래 술에 수면제를 탑니다. 그리고 이 한잔만 마시면 보내주겠다고 속입니다. 술에 수면제가 들어있는 줄도 모르고 그 술을 받아 마신 료오이찌는 그곳에서 잠들지 않으려고 길을 나섰다가 길에서 잠이 들어 그만 동사하고 맙니다.
소설의 클라이막스는 료오이찌를 장사하고 그가 다락방에서 그렸던 그림의 천을 벗기는 것입니다. 흰 천을 벗기자 거기에는 십자가에 달리신 예수님의 그림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 십자가의 발아래 한 청년이 무릎을 꿇고 고개를 숙인채 예수님의 발을 붙잡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 손등위에 예수님의 피가 떨어지고 있었습니다. 그 청년은 료오이찌 자신이었습니다.
십자가에 능력이 있습니다. 죄로 말미암아 영원히 죽게 된 우리들을 구원하실 수 있는 놀라운 능력이 그 십자가에 있습니다. 우리는 예수님의 십자가로 말미암아 다 구원을 받았습니다. 이것이 우리 믿음의 핵심인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심으로 우리는 다 구원을 받았습니다. 우리는 구원 받은 사람입니다. 이것이 중요합니다. 매우 중요합니다.
죄의 문제는 용서를 통해서만 해결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진정한 용서는 사랑을 통해서만 가능합니다. 사람들은 돈을 받고도 용서를 해 주지만 그것은 진정한 용서라고 할 수 없습니다. 진정한 용서를 위하여 필요한 것은 사랑입니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얼마나 사랑하는가가 어디까지 용서하는가를 결정한다는 것입니다. 많이 사랑하면 많이 용서할 수 있고 조금 사랑하면 조금 용서할 수 있습니다. 바로 여기에 십자가의 비밀이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의 죄를 용서해 주시기 위하여 선택하신 방법이 십자가인 이유가 있는 것입니다.
십자가보다 더 큰사랑은 없습니다. 그 십자가의 큰사랑이 우리의 모든 죄를 다 사하시게 되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십자가의 사랑 앞에 용서받을 수 없는 죄는 없습니다. 워낙 십자가의 사랑이 크고 놀랍기 때문에 우리의 모든 죄가 다 용서 받을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본문에 누가 정죄하리요? 라고 말씀합니다. 아무리 간교한 사단도 우리를 정죄할 수 없다는 말씀입니다. 우리의 죄가 하나도 없기 때문에 정죄하지 못한다는 말슴이 아닙니다. 이미 예수님께서 우리의 모든 죄를 십자가에서 다 담당하셨기 때문입니다. 뿐만아니라 부활하셔서 하나님 보좌 우편에 계시며 혹 사단이 참소를 하면 우리를 위하여 변호하십니다. 성부 하나님께 간구하십니다. "이미 그의 죄를 내가 십자가에서 다 사하였기에 그는 깨끗합니다. 죄가 하나도 없습니다." 라고 말입니다.
예수님은 여러분으로 하여금 의롭다는 인정을 받게 하시려고 지금도 하나님 우편에서 변호를 하십니다. 천국백성으로 당당하게 설 수 있도록 큰 사랑으로 용서하시고 정결케하시는 예수님의 사랑을 깨닫고 더욱 견고한 믿음에 서시기 바랍니다.
3. 우리로 승리하도록 도우시는 성령님의 사랑입니다(37)
우리는 깨지기 쉬운 질그릇처럼 약합니다. 아주 작은 충격에도 깨지기 쉽습니다. 인간의 이 연약은 아담의 죄로 인해 유전된 타락의 결과이기 때문에 거듭났다고 해서 없어지지 않습니다. 믿음이 좋다고 해서, 혹은 성령 충만하다고 해서 금방 사라지지도 않습니다. 이 연약은 우리가 일생동안 짊어지고 살아야 할 무거운 십자가인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이 연약함 때문에 얼마나 힘들어 하는지 잘 아십니다. 그래서 우리의 연약함을 도우시길 원하십니다. 어떻게 도우시느냐 하면 성령을 보내어 도우십니다. 이와같이 "성령도 우리의 연약함을 도우시나니"(26). 성령은 우리를 도우시는 분이기 때문에 `보혜사'라고 부릅니다. 즉 `돕는 자'라는 뜻입니다.
스펄젼은 노젖기를 배우는 아들의 예를 들어서 `도우신다'는 뜻을 잘 설명하고 있습니다. 아들이 처음 노젖기를 배울때 보통 고생을 하는게 아닙니다. 아들이 가장 쉽게 배우는 방법은 아버지의 도움을 받는 일입니다. 아버지는 노를 잡는 아들 뒤에 앉아서 아들의 손 위를 덥썩 잡고서 함께 저어가며 가르칩니다. 그러면 아들은 아주 쉽게 노젖기를 터득합니다. 이처럼 성령은 노젖기를 배우는 아들을 돕는 아버지와 같이 도우시길 원하시는 것입니다.
성령은 우리가 연약하기 때문에 오셨고 연약하기 때문에 동행하십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간은 자기의 연약함 때문에 괴로워하고 한탄하며 마침내는 하나님을 원망합니다. 실은 우리의 연약함이 성공과 능력의 비결인데도 말입니다. 우리는 우리의 연약함에 대해 바울처럼 말할 수 있어야 하겠습니다. "나의 여러 약한 것들에 대하여 자랑하노라." "내 능력이 약한데서 온전하여짐이라".
그러면 성령은 우리의 무엇을 돕습니까? 기도를 돕습니다. 왜냐하면 우리의 연약함이 제일 먼저 기도를 방해하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또 기도 없이는 우리의 연약함을 극복할 수가 없기 때문입니다. 어떻게 보면 신앙생활 가운데서 기도는 생명줄과 같습니다. 기도 생활에 탈이 나면 성령의 도우심을 받을 수 없게 되고 마침내는 우리의 연약함에 짓눌려 신앙생활 자체가 파선할지도 모릅니다. 감기는 모든 질병이 침투해 들어오는 통로라고 합니다. 기도의 적신호야말로 모든 영적인 생활의 감기인 것입니다.
기도는 사단과의 영적인 씨름이며 결코 쉬운 일이 아닙니다. 그것을 우리에게 가장 잘 나타내 보여주신 분이 예수님의 겟세마네 동산에서 땀방울이 피방울처럼 되기까지 기도하신 모습입니다.
그러면 성령은 어떻게 우리의 기도를 돕습니까? 첫째 말할 수 없는 탄식으로 우리를 위해 친히 기도하심으로 도우십니다(26). 성령이 말할 수 없는 탄식으로 기도하십니다. 성령 하나님이 직접 탄식하며 기도하십니다. 우리 자신을 한번 들여다 봅시다. 게으르고 무모하며 이기적이고 형식적인 기도를 드리는 우리를 볼 때, 어찌 성령님이 탄식하지 않을 수가 있겠습니까?
두번째로 성령은 하나님의 뜻대로 우리를 위해 간구하심으로 도우십니다(27). 이 말은 성령이 우리의 눈을 열어 하나님의 뜻대로 기도하도록 인도하신다고 해도 좋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뜻과는 상관없이 기도하던 적이 얼마나 많습니까? 이스라엘 백성은 광야에서 만나가 지겨우니 고기를 달라고 조르고 졸랐습니다. 그 결과 하나님은 저희의 요구한 것을 주셨지만 그 영혼을 파리하게 하셨습니다(시106:15). 이처럼 우리는 하나님의 뜻을 헤아리는데 있어서 몹시 연약하며, 둔감합니다. 성령의 도우신이 없이는 손해보는 기도, 하나님이 응답할 수 없는 기도를 드릴 수 밖에 없는 연약한 자들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우리의 연약함을 꾸짖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즐겨 도우시는 것입니다.
성령은 우리의 불안전한 기도를 도와 온전케 해 주시는 분입니다. 또한 성령님은 우리를 세상에서 잘 살아갈 수 있도록 도와 주시는 분이십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하는 모든 일에 성령님을 인정하고 그 분의 도우심을 받는 것을 주저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성령께서 우리를 도와 주시기만 한다면 나의 판단이 좀 부족하고 실수가 많아도 지나고 보면 하나님은 그것조차도 나를 겸손하게 만드는 도구로 유익하게 사용하셨음을 깨닫게 될 것입니다.
방직공장에 다니는 아주머니가 있었습니다. 그 남편이 방직공장에서 일하다가 순직을 했기 때문에 그 부인이 대신 방직공장에 취직이 되고 이렇게 살아가는데 유복자를 낳아 가지고 기숙사에 갖다 놓고, 일하고 나와서 젖먹이고 일하고 나와서 젖먹이고 이렇게 키웠습니다. 어느 날 그 기숙사에 불이 났습니다. 불이 타오를 때 아무도 들어가지 못한다고 하는데 소방서원들이 말렸지만은 여인은 그대로 뛰어들어가서 아이를 품에 안고 뛰쳐나왔는데 머리카락이 홀랑 타고 얼굴도 다 타서 얼굴이 얽었습니다. 그 어린아이가 잘 자랐는데 얘가 철없을 때 유치원 다니고 초등학교 다닐 때입니다. 아이들은 서로 다투다 보면은 상대방의 약점을 꼭 건드리거든요. 그래서 싸우면서 "너의 엄마는 곰보다" 놀린다 말이에요. 그러면 얘는 집에 돌아와가지고 엄마는 왜 곰보냐고, 남의 엄마처럼 예쁘지 않느냐며 엉엉 우는 거예요. 이렇게 답답하고 기가 막힐 일이 있나요?
어느날 아들이 아이들의 놀림을 받고 돌아와 울자, 엄마는 옛날 결혼 사진을 보여주면서 "엄마가 이렇게 예뻤단다. 그런데 불 속에 갇힌 너를 살리기 위하여 엄마 얼굴이 이렇게 됐단다. 자, 이래도 보기 싫으냐?" 철없는 아이지만 그 엄마를 바라보면서 그는 울었습니다. 감격했습니다. 그 다음에 누가 "네 엄마는 곰보다" 그러면 "아니다. 우리 엄마는 천사다. 우리엄마는 세상에 가장 예쁜 여자다" 라고 대답하더랍니다. 사랑을 확증 받고 보니까 누가 뭐라고 해도 엄마가 부끄럽지 않고 자랑스럽습니다. 아이들이 아무리 놀려도 개의치 않고 행복합니다. 이제는 엄마가 어떻게 대하든지 어머니의 사랑을 의심치 않게 되었어요. 사랑의 확증을 얻었거든요.
오늘 우리들도 믿음이 없을 때는 하나님의 사랑을 잘 알지 못합니다. 그래서 자주 흔들립니다. 사람들의 말에도 큰 영향을 받습니다. 내 뜻대로 되지 않으면 하나님의 사랑이 어디 있느냐?고 원망을 잘 합니다. 조금만 고난이 와도 당황하고 쩔쩔 맵니다. 아무것도 아닌 일에도 낙심을 하고 불행해집니다. 그러나 믿음이 자라갈수록 하나님의 사랑을 잘 이해할 수 있습니다. 겉으로 드러나는 현상을 바라보고 흔들리기 보다는 말씀을 의지하여 하나님의 사랑을 확신하고 기뻐합니다. 사랑하시는 하나님을 힘입어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사람이 됩니다. 여러분 하나님의 사랑은 모든 좋은 것을 아낌없이 내어 주는 사랑입니다. 우리를 의롭다고 인정하시며 모든 정죄로부터 보호해주시는 사랑입니다. 그리고 연약한 우리를 끝까지 도우시고 이기게 하시는 사랑입니다. 이 사랑을 확신하고 요동치않기를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