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기 가운데 도우시는 하나님/창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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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지난 월요일부터 시작된 특별새벽기도회와 저녁 기도회에 많은 분들이 적극 참여 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좀 아쉬운 것은 저분은 꼭 참여할 분인데 하고 생각했는데 참여하하지 않는 분들이 계십니다. 반대로 저분은 정말 어려우실턴데 하고 생각했는데 열심히 참여하고 계시는 분도 있습니다. 남은 두 주간 동안 힘써 참여하시여 여러분 앞의 여리고가 허물어지는 역사가 있기를 바랍니다.
제가 인터넷 설교 카페 하나를 운영하고 있습니다. 그 까페에 가면 “새벽 기도하는 남자와 결혼해야 하는 이유, 새벽기도 하는 여자와 결혼해야 하는 이유”라는 글이 올려 있습니다. 오늘 이 시간 여러분에게 소개를 해 드리려고 합니다.
새벽 기도하는 남자와 결혼해야 하는 이유 8가지가 있습니다. 1. 새벽 기도하는 남자는 ‘자기 통제(self-control)’를 할 수 있는 사람입니다. 새벽을 다스릴 수 있는 자가 자기 자신도 다스릴 수 있습니다. 시간과 잠을 통제할 수 있는 자가 인생 전체도 통제 할 수 있는 법입니다. 그러기에 새벽 기도하는 남자는 자기 통제력이 있음이 검증된 남자입니다. 그러기에 앞으로 인생의 힘든 시기에 자포자기로 무너지거나, 무책임하게 망가질 위험이 적은 남자입니다. 그러므로 이런 남자에게는 여자가 안심하고 인생을 맡겨도 되는 것입니다.
2. 새벽기도의 남자는 ‘무엇을 먼저 해야 하는지를 아는 남자’입니다. 남자가 만약 먼저 해야 할 중요한 일은 하지도 않고 빈둥거리다가 별로 중요하지도 않은 자잘한 일에나 열을 올리는 남자라고 상상해 보세요. 아마 여러분의 속에선 늘 울화통이 치밀어 오르고, 두통이 떠날 날이 없을 것입니다. 새벽 기도하는 남자는 '무엇이 중요한 것인지를 알고 있는 남자'입니다. 그러기에 새벽기도의 남자는 '인생의 정확한 우선순위를 아는 남자' 이며, '삶의 지혜와 분별력이 있는 남자' 입니다.
3. 새벽 기도하는 남자는 '사랑이 무엇인지 아는 남자' 입니다. 하나님을 정신 나간 듯이(?) 사랑할 수 있는 남자가 한 여자만을 열정적으로 사랑할 수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향해 미친 듯이(?) 사랑으로 몸을 던질 수 있는 남자여야 자기 아내를 위해서도 온 몸을 던지는 것입니다.
4. 새벽 기도하는 남자는 분명 말꾼은 아닌 실천하는 남자입니다. 말꾼은 말을 해 놓고도 행동은 하지 않는 무능력자나 말만 잘하지 책임은 지지 않는 허풍쟁이를 일컫는 표현입니다. 하지만 새벽기도의 남자는 자신이 한 말에 대해 실천력이 있음을 증명하고 있는 남자입니다.
5. 새벽 기도하는 남자는 '꿈이 있는 남자' 입니다. 아무 생각 없이 사는 사람은 기도할 제목도 없습니다. 인생과 사명에 대한 진지한 고민이 없는 사람은 뭘 기도해야 할지도 모릅니다. 오직 꿈이 있는 사람만이 새벽이라도 깨어 기도하는 것입니다.
6. 새벽 기도하는 남자는 '무서운 잠재력'이 있는 사람입니다. 새벽기도의 남자는 '하나님의 엄청난 가능성'이 있는 남자입니다. 새벽 기도하는 남자의 인생은 분명히 오늘보다 내일이 더 눈부시게 될 것입니다. 새벽 기도하는 남자가 이끄는 가정, 교회, 일터는 장담컨대 현재보다 미래가 더욱 찬란하게 될 것입니다. '자산'에는 '유형 자산(돈, 땅, 물건 등)'과 '무형 자산(꿈, 리더십, 기도, 말씀, 믿음, 인간관계, 신뢰할 수 있는 인격, 성품, 가능성, 사랑, 성실함, 지혜 등)'이 있습니다. 그런데, '무형자산이 언제나 유형 자산의 가치와 미래를 결정한다.'는 진리를 잊지 말아야 합니다. 새벽 기도하는 사람은 엄청난 무형 자산을 갖고 있는 사람입니다.
7. 새벽 기도하는 남자는 '부지런한 남자' 입니다. 적어도 게으른 남자는 아닙니다. 성실하고(diligent), 신실한(faithful) 남자임에 틀림없습니다.
8. 새벽 기도하는 남자는 '낭만'을 아는 남자입니다. 새벽이라도 데이트 할 수 있는 남자, 새벽마저도 '데이트 같은 달콤함'으로 만들어 내는 남자, 새벽 공기의 낭만, 새벽만의 생명력, 새벽만의 영감, 새벽만의 기대감, 새벽만의 희망을 가질 수 있는 남자요. 이런 남자와 산다면……. 그런 남자는 '인생의 힘겨운 위기'마저도 '기적의 기회'로 바꾸어서 그대에게 선물해 줄 수 있는 사림입니다. 그러기에 이미 결혼 했으니 어쩌느냐! 되 물릴 수도 없고.. 한탄하지 마시고 여러분의 남자들을 지금은 안 되지만 머지않아 새벽 기도하는 남자로 만들어 가시기를 축원합니다. 남자 성도 여러분! 정신 바짝 차리고 새벽기도하시기를 축원합니다.
새벽기도 하는 여자와 결혼해야 하는 7가지 이유도 있습니다. 총각 여러분! 정신 바짝 차리고 들으세요. 이미 결혼 남성 성도 여러분! 여러분의 아내가 새벽 기도하는 아내가 되도록 도우시고 후원하시기를 바랍니다.
1. 새벽기도를 할 수 있는 여자는 아침밥도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새벽에 일찍 일어나서 교회 갔다 와도 다들 자고 있어서 마땅히 얘기 할 사람도 없습니다. 그러니 설거지를 시작합니다. 그러다 보면 밥통에 쌀도 씻어 두고 스위치도 툭 눌러 둡니다. 요즘 세상에 출근할 때 부인이 일어나서 잘 다녀오라고 하기만 해도 감격스러울 세태 속에서 아침밥 먹고 출근 할 수 있는 남자는 정말 행복한 남자랍니다.
2. 새벽기도의 여자는 '잔소리'를 안하기 때문입니다. 새벽 기도때 내내 남편을 위해서 눈물로 기도 하며 하나님께 다 쏟아부었습니다. 그렇게 하고 집에 와서 보면 쿨쿨 자는 남편이 그렇게 예쁠 수가 없다는 것입니다. 자녀는 말할 것도 없고…….
3. 새벽 기도하는 여자는 '사랑이 무엇인지 아는 여자' 입니다. 하나님을 사랑하고 순종하는 그 자세, 그대로 남편에게 자녀에게 가지고 가면 사랑도 순종도 어렵지 않습니다.
4. 새벽 기도하는 여자는 “자녀에게 꿈을 심어줄 수 있는 여자” 입니다. 새벽마다 요셉과 같은, 다니엘과 같은 꿈을 꾸면서 자녀를 위하여 기도하는데 또 집에 돌아와서는 잠자는 자녀 옆에서 그 꿈을 위하여 기도하는데 어찌 그 자녀가 꿈대로 되지 않겠습니까?
5. 새벽 기도하는 여자는 '무서운 기도빨' 이 있는 여자입니다. 여자가 한을 품으면 오뉴월에도 서리가 내리듯이 여자가 당신을 위해서 기도하기 시작하면 서리는 저리가라 입니다. 사단이 떠나가고 귀신이 떠나갑니다. 은혜의 비 가 내립니다. 기도 응답 '짱'입니다.
6. 새벽 기도하는 여자는 '부지런한 여자' 입니다. 게으른 여자들은 아침에 눈 절대 못 뜹니다. 자다가 화장실 볼일 빼고는 새벽에 일어날 수가 없습니다. 누가 업어 가도 모르는 여자랑은 결혼하면 골치 아픕니다. 7. 새벽 기도하는 여자는 식성도 좋고 건강합니다. 아침에 교회 가서 기도하고 돌아오면 그게 운동입니다. 영의 양식도 먹었습니다. 그리고 걸어갔다 걸어오니 장 청소도 됩니다. 거기다 교회까지 한 바퀴 돌고 나면 배고픕니다. 시장이 반찬이라고 아침 엄청 먹습니다. 아침을 꼭 먹으면 건강하다는 건 건강한 사람은 다 아는 사실입니다. 이렇게 말해도 새벽기도 안하면 그건 어쩔 수 없지요. 지금은 기도해야 할 때입니다.
본문으로 들어갑니다. 우리의 삶속에 여러 번의 위기 찾아옵니다. 그리고 그 위기는 예고하지 않고 어느 날 갑자기 찾아옵니다. 문제는 그 위기를 위기로 인식하는 감각이 얼마나 있느냐 하는 것입니다. 분명 위기인데 그것을 위기로 인식하지 못하면 그것은 망하는 것입니다. 위기를 위기로 인식하는 능력이 있다면 그 사람은 그 위기를 선용하고 그 위기를 통해 더 큰 복을 누리게 되는 것입니다.
성경에 나오는 많은 위인들을 보세요. 그들은 자기 앞에 닥친 위기를 잘 감지하여 그 위기를 믿음으로 극복한 사람들은 하나님 앞에 크게 쓰임을 받았습니다. 그러나 반대로 위기인데도 그것을 위기라고 생각도 못하는 사람은 결국 그 위기에서 무너져 내리고 마는 경우를 봅니다.
혹시 여러분! 지금 위기를 겪고 있지는 않습니까? 그것이 질병의 위기이든, 가장의 위기든 신앙의 위기든지. 과거에 겪든지 현재 겪고 계시는 분들이 있을 것입니다.
그런데 그때 그 위기를 어떻게 대처를 하고 계십니까? 위기를 위기로 인식하고 올바른 대처를 했다면 분명 그 위기는 복이 되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위기가 닥쳤는데도 그것이 위기인지도 모르고 있다가 무방비 상태에서 무너지는 경험을 하신 분들도 계실 것입니다.
어떤 분은 하는 사업마다 오래 못가고 문을 닫는 경우가 있습니다. 어떤 분은 사사건건 사람과 부딪쳐 직장을 오래 다니지 못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왜 그럴까요? 다른 여러 이유도 있겠으나 아주 중요한 이유 중에 하나는 위기관리능력이 다른 사람보다 떨어지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위기를 어떻게 해야 잘 극복하고 승리할 수 있을까요? 위기관리 능력이 뛰어난 하나님의 사람이 되려면 어찌해야 할까요? 정답은 이것입니다. 하나님이 세밀하게 도와 주셔야 합니다.
하나님은 당신의 백성이 위기를 맞이하고 있을 때 그냥 나 몰라라 구경하고 계시는 분이 아니십니다. 하나님은 당신의 자녀가 엄청난 위기 상황에 빠졌을 때 아주 특별한 방법으로 그 위기에서 벗어 날수 있도록 도우시는 분이십니다.
오늘 봉독한 본문을 살펴보세요. 아브라함이 엄청난 위기에 봉착합니다. 어찌 보면 엄청난 실수를 하여 생긴 위기입니다. 그러나 사실 이 실수는 이번이 처음이 아닙니다. 과거에 기근을 피하여 애급에 내려갔을 때 바로 왕 앞에서도 이런 똑같은 실수를 하였습니다. 그런데 오늘 아비멜렉 왕 앞에서도 그는 똑같은 실수를 합니다. 그러니 이것은 이제 실수가 아닙니다. 엄밀히 말하면 가족에 대한 무책임한 범죄입니다.
그런데도 그런 상황 속에서 하나님은 그를 구해 내십니다. 어찌 보면 말도 안 될 상황입니다. 분명히 매를 맞아야 할 사람은 아브라함입니다. 그런데 신기할 정도로 하나님은 아브라함에게는 한마디도 야단을 치거나 책임을 추궁하지 않습니다. 그냥 일방적으로 보호를 하시고 그 위기를 벗어나게 하십니다.
왜 하나님은 위기의 아브라함을 보호하실까요? 1. 그는 택함 받은 백성이기 때문입니다. 아브라함은 하나님의 특별한 은혜로 택함 받은 사람입니다. 그는 창세기 12장에서 하나님의 특별 섭리 속에서 선택함을 받습니다. 창12:1절에 너는 본토 친척 아비 집을 떠나 내가 네게 지시할 땅으로 가라” 하셨습니다. 성경을 아무리 살펴보아도 그는 그 이전까지 하나님을 알고 믿고 있었다는 증거가 없습니다. 오히려 그의 부친이 우상을 만드는 사람이었던 것은 확실합니다. 그런데도 하나님은 일방적으로 그를 선택하여 불렀습니다. 노아의 후손 중에 그 많고 많은 사람 중에 하나님이 그를 일방적으로 택한 것입니다. 할렐루야!
하나님의 선택, 이것을 누가 판단할 수 있겠습니까? 왜 하나님이 그 아브라함을 선택하셨는지 알 수 없습니다. 마치 토기가 토기장이에게 “주인님 왜 나를 이렇게 만들었습니까?” 하는 것과 같은 것이기 때문입니다.
마찬가지입니다. 오늘 우리도 하나님은 우리를 선택하여 부르셨습니다. 세상에 많고 많은 사람 중에 저와 여러분은 하나님의 택함을 받은 백성임을 믿으시기를 축원합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선택한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먼저 택하셨습니다. 요15:16 “너희가 나를 택한 것이 아니요 내가 너희를 택하여 세웠나니 이는 너희로 가서 과실을 맺게 하고 또 너희 과실이 항상 있게 하여 내 이름으로 아버지께 무엇을 구하든지 다 받게 하려 함이니라” 믿습니까? 요15:19 “너희가 세상에 속하였으면 세상이 자기의 것을 사랑할 터이나 너희는 세상에 속한 자가 아니요 도리어 세상에서 나의 택함을 입은 자인 고로 세상이 너희를 미워하느니라.”
그렇습니다. 그러기에 하나님은 무조건 택함 받은 백성을 보호하시고 그들 편에서 일을 하십니다.
오늘 봉독한 본문을 보세요. 하나님이 선택한 그 백성이 위기에 봉착했습니다. 가정이 파탄 나게 생겼습니다. 그러니 어찌 하나님이 그를 그냥 두시겠습니까? 하나님이 아비멜렉 꿈속에 나타나셔서 그를 책망하십니다. 3절을 보세요. “3그 밤에 하나님이 아비멜렉에게 현몽하시고 그에게 이르시되 네가 취한 이 여인을 인하여 네가 죽으리니 그가 남의 아내임이니라”
잘못한 것은 아브라함입니다. 아비멜렉은 잘못한 것이 없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일방적으로 아브라함 편에서 아비멜렉을 야단치십니다. 오히려 야단맞아야 할 사람은 아브라함입니다. 자기 목숨 부지하기 위해 아내를 누이라 속였습니다. 그리고 아내가 왕궁으로 데려감을 당하는데도 일체의 저항을 하지 않습니다. 참 모자라는 인간입니다. 이런 남자를 남편이라고 믿고 따른 사라도 참 대단합니다. 한심스럽기 그지없는 남자요, 책임의식이 전혀 없는 그런 못난 사람인데도 하나님은 그를 보호하시고 그의 가정을 보호하십니다. 그게 하나님의 사랑입니다. 어찌 보면 지나친 사랑이고 어찌 보면 미련한 사랑입니다. 선택했다는 그 이유 하나로 지독한 사랑을 하고 계십니다. 그 사랑이 오늘 이 시대를 사는 저와 여러분을 향해서도 행해지고 있습니다. 2. 그는 약속을 받은 사람이었기 때문입니다. 왜 하나님은 아브라함을 위기 속에서 구해 내실까요? 그가 택함 받은 하나님의 백성이기도 하지만 또 하나의 이유가 있습니다. 하나님은 그에게 약속을 주셨습니다. 창세기 12장 2~3절을 보세요. 2내가 너로 큰 민족을 이루고 네게 복을 주어 네 이름을 창대케 하리니 너는 복의 근원이 될지라. 3너를 축복하는 자에게는 내가 복을 내리고 너를 저주하는 자에게는 내가 저주하리니 땅의 모든 족속이 너를 인하여 복을 얻을 것이니라 하신지라
그렇습니다. 하나님이 그를 부르실 때에 그에게 엄청난 약속을 주셨습니다. 1)내가 너로 큰 민족을 이루고 네게 복을 주어 네 이름을 창대케 하겠다. 2)너는 복의 근원이 되겠다. 3)너를 축복하는 자에게는 내가 복을 내리고 너를 저주하는 자에게는 내가 저주하겠다. 4)땅의 모든 족속이 너를 인하여 복을 얻을 것이다. 이 약속은 하나님이 아브라함에게 행하신 약속입니다. 서로 쌍방 합의 한 약속이 아닙니다. 하나님 쪽에서 일방으로 행하신 약속입니다. 그러니 그 약속을 하나님이 지키셔야 했습니다. 너로 큰 민족을 이루게 하겠다. 그런데 지금 상황이 어찌되었습니까? 아브라함의 부인이 아비멜렉의 첩이 될 상황입니다. 그러면 그 약속이 깨어집니다. 그러니 그냥 두실 수가 없습니다. 또 너를 축복하는 자에게 내가 복을 내리고 너를 저주하는 자에게 내가 저주하겠다고 하셨습니다. 그러니 지금 아브라함이 지금 저주 상황 속에 놓인 것입니다. 그러니 하나님이 그 아비멜렉을 공격하시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언약은 이처럼 엄청난 것입니다. 그 약속 때문에 아브라함이 부족하고 시원찮아도 하나님은 그를 옹호하고 보호하는 것입니다. 우리 하나님은 약속의 하나님이십니다. 한번 맺은 약속은 무슨 일이 있어도 지키시는 하나님이십니다. 그래서 예수님이 아브라함과 다윗의 자손이라고 불리는 것도 하나님이 그들에게 메시야의 약속을 하셨습니다. “네 씨로 말미암아 천하 만민이 복을 얻으리라” “네 자손의 위가 영원하리라” 할렐루야
그러기에 여러분이 위기를 만나면 약속을 붙잡는 것이 중요합니다. 하나님은 약속의 하나님이시기에 약속을 붙들고 있으면 보호하십니다.
3. 그는 하나님의 선택된 종(선지자)이었기 때문입니다. 오늘 본문 7절을 보세요. “7이제 그 사람의 아내를 돌려 보내라 그는 선지자라 그가 너를 위하여 기도하리니 네가 살려니와 네가 돌려 보내지 않으면 너와 네게 속한 자가 다 정녕 죽을 줄 알지니라”
하나님이 아브라함을 선지자라고 호칭합니다. 그리고 그가 너를 위하여 기도하리니 그러면 네가 살게 된다. 그렇지 않으면 너와 네게 속한 자가 다 정녕 죽을 줄 알지니라. 세상에 이럴 수가 있습니까?
하나님이 그를 선지자로 여기고 그에게 엄청난 권세를 부여합니다. “그가 너를 위해 기도하면 네가 산다, 그렇지 않으면 죽는다.”
사도 바울도 죄수로 로마로 끌려 갈 때 배가 파손을 당합니다. 그런데도 하나님은 그 배에 탄 사람들을 다 살려냅니다. 왜요? 그 배에 바울이 타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가 한 섬에 도착합니다. 그 섬에서 바울이 독사에 물립니다. 그래도 죽지 않습니다. 그 섬사람들을 구원해야 할 사명이 있는 하나님의 택한 사람이기 때문입니다. 그 풍랑이 위기였고 그 뱀에 물린 일이 절대절명의 위기였으나 그가 사명자이기에 하나님은 그를 살리고 그를 통해 그 섬사람들을 구원하십니다. 할렐루야! 오늘 우리도 그런 백성입니다. 우리도 선택된 백성이고 우리도 사명을 가지고 태어난 사역자입니다. 하나님이 여러분을 성도로만 부르신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거룩한 나라에 사명자로 그리고 주님의 몸된 교회에 일군으로 부르셨음을 믿으시기를 축원합니다. 따라서 합시다. “나는 사명자다,” “나는 하나님의 택한 종이다.” “나는 약속을 받은 백성이고 복의 근원이다” 아멘? 믿으시기를 축원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위기는 누구에게나 찾아옵니다. 아니 오히려 하나님의 택함 받은 백성은 더 많은 위기가 닥칩니다. 그러나 그것이 단순한 위기가 아니라 위험하지만 기회가 되는 것입니다. 그 위기를 위기로 알고 그 위기를 성도답게 해결하는 능력이 있기를 축원합니다.
개인의 위기도 있으나 공동체의 위기도 있습니다. 가장공동체의 위기, 교회 공동체의 위기, 직장 공동체의 위기, 그리고 국가 공동체의 위기, 이런 각종의 공동체에 위기가 닥치면 그런 위기를 막을 사람은 하나님의 백성임을 믿어야 합니다.
하나님의 백성은 남다른 감각이 있습니다. 성령이 함께하는 백성이고 영적인 능력을 소유한 백성입니다. 그러기에 세상이 볼 수 없는 신령한 세계를 바라 볼 수 있는 사람이고 하나님이 주시는 지혜와 권능으로 위기를 대처하는 능력이 있는 사람입니다. 그러기에 위기가 닥칠 때 우리 성도는 믿음의 자세로 위기를 관리해야 합니다. 그 위기관리 지침을 몇 가지를 소개하면 1. 하나님께 기도해야 합니다. 2. 하나님의 약속하심과 보호하심을 철저하게 신뢰하여야 합니다. 3. 사소한 죄악이라도 멀리해야 합니다. 4. 공동체의 위기를 막는 일에 온몸을 던져야 합니다. 손가락으로 막을 일을 일이 있다면 내 손가락을 집어넣어 막아야 하고 주먹으로 막을 일이라면 속히 주먹으로 막아야 하고 내 온몸을 다 던져 막아야 할 일이라면 온몸 다 바쳐 막아야 합니다. 그러나 그 보다 더 중요한 것은 하나님이 내 위기를 지키시고 막으신다는 믿음이 있어야 합니다.
성도는 위기를 직감하는 분별력을 갖추고 그 위기 앞에서 기도할 때는 기도해야 하고 말씀을 붙잡을 때는 붙잡아야 합니다.
사43:1을 다 같이 읽습니다. 야곱아 너를 창조하신 여호와께서 이제 말씀하시느니라. 이스라엘아 너를 조성하신 자가 이제 말씀하시느니라. 너는 두려워 말라 내가 너를 구속하였고 내가 너를 지명하여 불렀나니 너는 내 것이라
기도합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