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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나가 제시한 해결 방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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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나가 제시한 해결 방법
이근영 [성경본문] 요나서 1장 12절




“그가 대답하되 나를 들어 바다에 던지라 그리하면 바다가 너희를 위하여 잔잔하리라 너희가 이 큰 폭풍을 만난 것이 나의 연고인줄을 내가 아노라 하니라” 12절

【내용 요약】

요나는 모든 원인이 자기 때문이니 자기를 바다에 던져 원인을 제거하여야 문제가 해결된다고 하였습니다.


(1) “그가 대답하되”

“그가 대답하되” <알> 한 말은 대하여, 따라서, ~에 관하여란 뜻으로 요나가 무리들의 질문에 대한 대답으로 문제의 해결 방법을 제시하는 말입니다.
요나는 선지자로서 여호와 하나님께서 자신의 도망가는 길을 풍랑을 통해서 막으시는 사실을 알고 있으므로 그에 대한 해결 방법도 알아서 말해주는 것입니다.


(2) “나를 들어 바다에 던지라”

“나를 들어” <나싸> 란 말은 들어올리다, 받아들이다, 감당하다, 칭찬하다, 떠받치다, 일으키다, 취하다란 뜻으로 요나 자신을 그들에게 맡기어 하나님의 뜻대로 처분하라는 말입니다.
“바다” <얌>에 “던지라” <툴> 란 말의 기본 어근은 ~위에 던지다, 옮겨가다, 엎드러지다란 뜻으로 요나는 자기를 들어 바다에 던지는 것이 하나님의 뜻대로 해결하는 것이라고 그들에게 가르쳐 준 것입니다.

즉, 자기를 들어 바다에 던지는 것이 풍랑이 오게 된 원인을 제거하는 것이란 말이며 풍랑의 원인을 제거하라는 말은 공의의 법칙대로 처벌하여 공의를 만족시켜드림으로서 해결이 된다는 말입니다. 이와 같이 요나는 바다가 잔잔해 지는 방법이 자신을 바다에 던지는 것 외에 다른 방법이 없기 때문에 자신의 희생으로 그들의 생명을 구하려는 것이 현명한 길이었으며 이 방법을 통해서 문제를 해결하려는 것입니다.

하지만 성도는 공의의 법 아래 있지 아니하고 사랑의 법 아래 있는 자로, 성도의 육체는 공의의 법 아래 있고 중생한 영은 사랑의 법 아래 있으므로 성도의 이성과 몸이 지금도 죄와 사망 안에서 지배를 받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중생한 새 사람은 사랑의 법 아래 있는 자이지만, 옛 사람의 입장에서는 공의의 법에 따라 나를 들어 바다에 던지는 것이 공의의 법대로 처벌하는 것입니다.
요나가 여호와의 명령을 거역할 때 죄와 사망 아래 있는 옛 사람이 하나님의 뜻을 거역하였지만, 속에 있는 새 사람은 하나님 아버지의 뜻을 거역하는데 동참한 것은 아니라는 말입니다.
즉, 범죄는 옛 사람이 하고 회개는 새 사람이 하는 것입니다.

이 사건을 통해서 성도를 회개하도록 깨우쳐주는 것으로 말로만 잘못하였다고 하는 것이 회개가 아니며, 잘못된 부분을 바로 잡아 새 사람으로 사는 것이 바른 회개가 되는 것입니다.
공의의 율법은 범죄한 옛 사람이 자기의 문제를 책임 져야 하는 것이지만, 사랑의 법은 아들의 문제를 아버지가 대신 책임을 지는 것으로 공의의 법이 요나를 처벌할 수는 없고 다만 요나를 바다에 던지는 것은 사랑의 법 아래서 아버지가 사랑하는 자녀들의 잘못을 깨우쳐 회개시켜 주기 위해서 징계하시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중생한 새 사람이 성신에 감동되어 죄 아래 있는 마음과 몸을 붙들고 의로운 생활을 할 수 있게 해주시는 것이 진정한 회개입니다.
우리가 회개한다고 외치면서 중언부언하는 것은 진정한 회개가 아니고 이방인의 회개이며 회개하는 흉내입니다.
진정한 회개를 하려면 잘못을 깨닫고 그 잘못된 원인부터 해결하여야 되는 것으로 자신의 모든 생활이 법적으로 잘못이 있는가 발견하고 회개하는 것이 법적 회개이며 도덕적으로 잘못된 생활을 하였는지 살펴서 도덕적 관계를 바로 가지는 것이 도덕적인 회개입니다.
나아가 신앙 양심에 따라 회개하는 것인데, 양심에 가책을 받는 일이 없도록 양심을 따라 행하는 것이 양심적인 회개입니다.

또한 심령이 진리의 깨우침을 통해서 회개하는 것으로 말씀의 역사에 이끌려 피동되는 것이 생명적인 회개입니다.
그리고 이와 같은 회개는 행동하기 전에 마음을 써야 되는 것으로 마음의 변화가 없이는 생활이 변화되지 않는 것입니다.
또한 생활의 변화를 가져오기 위해서는 마음을 깨끗이 하여 생각을 바로하고 모든 사물에 대하여 성경에 근거한 올바른 평가를 하여야 올바른 가치 평가가 바로 되게 하는 것입니다.
이와 같이 사물에 대한 바른 평가가 없이는 바른 생활이나 바른 회개를 할 수 없는 것입니다.


(3) “그리하면 바다가”

“바다가” <얌> 란 말은 노호하다는 어근에서 유래한 바다, 파도의 큰 덩치, 지중해, 지역적으로 서부, 가나안 서쪽이란 뜻으로 성도의 신앙을 연단하는 세상을 상징한 것입니다.
바다의 성격이 성도의 입장에서는 연단 받는 장소가 되지만 외형상으로 사망과 음부의 권세가 지배하는 어두움의 세계요 살리는 운동이 아니고 사망 운동이란 것도 알아야 합니다.


(4) “너희를 위하여 잔잔하리라”

“너희를 위하여” <알> 란 말은 위에, 넘어, 대하여, ~에 대하여, ~때문에, 시간을 지나서, ~에 관하여란 뜻으로 요나가 탄 배에 있는 성도들을 상징한 말입니다.
“그리하면-잔잔하리라” <솨타크> 한 말의 기본 어근은 감퇴하다, 잠잠하다, 그치다, 조용하다, 진정시키다란 뜻으로 요나를 바다에 던지게 되면 바다의 풍랑이 잔잔하게 된다는 말입니다.
그러나 바다에 풍랑이 있는 것이 성도의 신앙에 해로운 것이 아니고 바다에 풍랑이 있다는 것은 바다가 그 역할을 다하고 있다는 증거로 세상 바다에는 언제나 풍랑이 있는 것입니다.
그중 어떤 사람은 바다의 풍랑을 피하려는 사람도 있으며, 어떤 성도는 바다의 풍랑을 벗삼아 사는 사람도 있는 것입니다.
요나를 들어 바다에 던진다고 하여 아무 때나 바다의 풍랑이 잔잔하여 지는 것은 아닙니다. 다시 말해서 요나와 관계된 풍랑만 잔잔하게 되는 것이지 모든 풍랑이 잔잔하게 되는 것은 아니란 것입니다.
그리고 바다의 폭풍의 세력이 점점 강해지지 않았으면 사공들의 힘으로 해결할 것이며, 요나를 들어 바다에 던지라 하여도 사공들은 요나를 바다에 던지지는 않았을 것입니다.

그래서 모든 풍랑이 일어나는 원인을 풀어 가는 사람에겐 풍랑이 잔잔하게 되지만, 풍랑이 왔을 때 그 원인을 알지못하면 그 풍랑으로 인하여 생명을 빼앗기게 될 수도 있는 것입니다.
즉, 풍랑을 신앙으로 이용하는 자에겐 풍랑으로 보이지 않고, 그 풍랑을 통해서 새로운 삶과 기쁨을 맛보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어떤 사람은 세상 살기가 수월하고, 어떤 사람은 살기가 힘들고 어려운데, 자기에게 부딪친 문제를 힘들고 어렵게 살지 말고, 같은 문제라도 쉽게 풀어가며, 평안히 사는 방법을 배워야 합니다.
이처럼 실제 사건에 부닥치면 그 문제를 풀어 가는 사람에 따라서 어렵고 쉬운 것이 큰 차이가 있습니다.
그리고 바다 세력이 잔잔해진 것은 풍랑을 일으키신 여호와의 뜻이 성취되었기 때문에 잔잔해진 것으로 보는 것입니다.


(5) “너희가 이 큰 폭풍을 만난 것이”

이 “큰” <가돌-> 이란 말은 크게 되다에서 유래된 큰, 건방진, 큰 목소리, 심히 큰, 위대한 사람, 일, 물건, 힘센, 많은, 고상한, 거만한 것, 심히 아프단 뜻으로 폭풍의 세력을 가리키는 말입니다.
“폭풍을” <싸아르> 한 말은 달려들다에서 유래된 태풍, 폭풍우, 회오리바람이란 뜻으로 성도를 연단시키는 환난을 상징한 것입니다.
“너희가-만난 것이” <알> 란 말은 위에, 넘어, 바로 위에, 대하여, ~위로, 따라서, ~에 대하여, ~중에, ~때문에, ~둘 사이에, 시간을 지나서, ~에 관하여, ~안에, 통하여란 뜻으로 다시스로 가는 배가 폭풍을 만나게 된 것이 요나 자신 때문이란 말입니다.

이와 같이 요나는 배 안의 사람들에게 폭풍이 일어나게 된 원인이 자기 때문이라고 말한 것은 자기가 모든 책임을 지겠다는 말입니다. 이는 요나의 양심적인 고백으로, 요나가 자기로 인한 것임을 안다는 것이 어느 정도는 이 같은 사건이 일어날 것을 이미 예감하고 있었다는 말입니다.


(6) “나의 연고인줄을 내가 아노라”

“나의 연고” <쉘> 란 말은 …때문에, 무엇이든 간에, 어떤 것이든 간에 원인을 말하는 뜻으로 그 사건의 원인이 요나 자신의 때문이라는 말입니다.
“줄을” <키> 한 말은 그리고, 과 같이, 때문에, 그러나, 조차도, 왜냐하면, 그러므로,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렇다란 뜻이며,
내가” <아니> 란 말은 나에서 온 압축형 나, 나 자신, 우리란 뜻으로 요나 자신을 가리키는 말입니다.
“아노라” <야다> 한 말의 알다. 직접 보아서 확인하다, 관찰, 깨달음, 밝히 알아차리다, 이해하다, 선언하다, 탐지하다, 깨우침을 받다, 알고자하다, 분별하다, 나타나다란 뜻으로 요나는 배 안의 사람들에게 이 큰 폭풍이 일어나게 된 원인이 자기 때문이라는 사실을 요나가 알고 있다는 말입니다.

오늘날 우리들도 자신이 하는 행위가 앞으로 어떠한 결과를 가져올 것인지 어느 정도 알 수 있으며, 성신님도 성도의 마음에 양심을 통해서 깨우쳐주기 때문에 자기 양심의 소리를 성신님께서 깨우쳐주시는 소리로 알아야 할 것입니다.
이와 같이 양심의 깨우침을 받는다는 것은 하나님께서 그와 함께 계시다는 증거이며, 자기의 양심에 따르는 것이 하나님께 순종하는 생활이 되기도 하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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