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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점과 허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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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점과 허물
본문: 고전 1:26-31

그리이스 신화에 보면, 트로이 전쟁의 그리이스 용장으로, 빨리 달리기로 이름난 아키레스는 해의 신 네레우스의 딸 테티스와 인간인 펠레우스 왕과의 사이에서 태어났습니다. 테티스는 아들이 인간의 피를 섞어 받아 죽을 팔자를 면하게 하기 위해 아들 아킬레스를 지옥의 스틱스 강물에 목욕시켜 그 몸이 상처로 죽는 일이 없도록 해 놓았습니다 그런데 이때 애기의 발목을 쥐고 강물에 담갔기 때문에 발목만은 스틱스 강물이 묻지 않아 결국 그 자리에 상처를 받으면 죽기로 되어 있었다는 것입니다. 이를 아킬레스근이라고 하며 흔히 약점에 비유합니다. 어떤 장미에게도 가시가 있듯이 사람은 누구나 허물과 약점을 가지고 있습니다. 나의 약점과 허물을 알았거나, 남의 약점과 허물을 보았을 때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하는가?

첫째, 하나님은 나의 약점까지도 사용하신다는 사실을 알고 약점을 이유로 하나님의 일을 게을리 하지 말아야 합니다.

사람은 누구에게나 숨기고 싶은 약점들이 있습니다. 다른 사람들이 나의 약점을 알까봐 숨기고 싶어하는 그런 약점들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우리를 사랑하실 때 우리의 강점만 사랑하신 것이 아닙니다. 우리의 약점까지도 사랑하시고 그대로 받으신 분입니다. 그렇다면 우리도 우리의 약점을 그대로 인정하고 사랑할 수 있어야 합니다. 사람들은 강점만이 하나님 앞에 쓰임 받는 것으로 생각하지만 하나님은 다릅니다. 우리들의 약점이 하나님의 손에 들리기만 한다면 하나님은 우리의 약점도 아름답게 사용하실 수 있는 능력을 가지신 분이십니다. 성경에 나오는 바울이 그 예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바울을 사용하기 위해서 많은 것을 변화시키셨습니다. 그는 예수님을 만나기 전에는 살기가 등등한 사람이었습니다. 그러나 변화되고 난 다음에는 살리기가 등등합니다. 그를 만나는 사람마다 영적으로 소생하였으니까 살리기가 등등한 사람이지요. 예전에는 믿는 자들을 감옥에 넣는 자였는데 변화 받고 나니 자신이 감옥 가는 자가 됩니다. 율법에 충만한 자가 이제는 복음에 충만한 자가 됩니다. 웃음이 없던 자가 웃음이 있는 자로 변합니다. 복음은 사람을 변화시키는 능력이 있지요. 그런데 복음도 바울의 약점 하나를 바꾸지 못했습니다. 그 약점이 바로 바울이 몸에 지고 가는 육체의 가시였습니다. 그 육체의 가시가 질병임에는 분명한 것같습니다만 그 질병의 병명이 무엇인지는 성경에서 알려주지 않았습니다. 병명이 무엇이든지 상관이 없습니다. 바울은 능력이 있었습니다. 병든 자를 살린 적이 한두 번이 아니었습니다. 죽은 자를 살리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바울은 자신의 질병은 고치지 못하였습니다. 그래서 바울은 하나님께 세 번이나 고쳐달라고 기도하였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생각은 달랐습니다. 바울은 그 약점으로 인해 자고 하지 않고 그것 때문에 하나님의 영광이 더 드러난다는 것입니다. 사람에게 약점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의 영광이 드러난다면 하나님의 영광이 더 크게 보이는 것이겠지요. 약점이 없는 사람은 없습니다. 그렇다면 그 약점 그대로 하나님께 드리십시오. 하나님은 우리의 연약한 점까지 들어서 사용하실 수 있는 능력이 있으신 분이라는 사실을 믿으면서 말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강점만 사용하시는 분이 아니십니다.

예수님께서 부활하셨을 때에 가장 먼저 막달라 마리아에게 보이셨습니다. 많은 제자들이 있었는데 왜 하필이면 한 여인에게 처음 나타나셨을까요? 여러 가지 해석이 있지만 이런 해석도 있습니다. 일반적으로 여성은 남성에 비하여 말이 많습니다. 말이 많은 여성에게 보이시면 예수님의 부활이 급속도로 전파되게 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인간의 약점을 담당하십니다. 예수님은 인간의 단점도 장점으로 활용하십니다. 예수님은 우리의 모습 그대로 받으십니다. 그리고 예수님은 우리를 생긴 대로 사용하십니다. 그래서 우리에게 없는 것을 요구하지 않으시고 있는 것을 요구하십니다. 우리에게 있는 것만 가지고도 얼마든지 하나님께 영광을 돌릴 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모세에게도 “네 손에 있는 것이 무엇이냐”고 물으셨습니다. 손에 있는 것만으로도 위대한 일을 해낼 수 있습니다.

둘째, 자기의 약점과 허물을 숨기려하지 말고 정직하게 행동해야 합니다.

영국의 올리버 크롬웰 장군이 유명한 화가를 초청해 자신의 초상화를 그리도록 명령했습니다. 화가들은 보통 얼굴의 흉터나 까만 점들을 감추고 실물보다 훨씬 멋진 모습을 그립니다. 이 화가도 크롬웰의 얼굴에 나있는 커다란 사마귀를 그리지 않았습니다. 초상화를 들여다본 크롬웰은 화를 벌컥 내며 화가를 꾸짖었습니다. "왜 내 얼굴의 사마귀를 그리지 않았소. 사마귀도 내 얼굴의 일부요. 당장 초상화를 다시 그리시오"
화가는 크게 무안을 당했습니다. 그는 얼굴의 사마귀가 그대로 나타나도록 초상화를 다시 그렸습니다. 그제서야 크롬웰은 화가의 손을 잡으며 노고를 치하했습니다. 사람들은 자신의 약점을 은폐하려고만 합니다. 그러나 인간의 죄는 하나님 앞에서 하나도 숨길 수가 없습니다. 하나님은 약점을 그대로 고백하는 정직한 사람을 기뻐하십니다. 성경은 겉과 속이 다른 사람을 '회칠한 무덤'이라고 질책합니다. 사람의 인격은 '정직'에서 출발합니다.

셋째, 나의 약점과 허물, 연약함으로 인해 괴로워하거나 낙심하지 말아야 합니다.

예수님의 공생애 가운데 사람들과의 개인적인 마지막 만남은 바로 ‘삭개오와의 만남’이었습니다. 삭개오는 다른 사람에 비해서 많은 약점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었습니다. 특히 그는 키가 작다는 약점을 갖고 있었습니다. 우리 주변에도 이와 같이 신체적인 약점 때문에 힘들어 하고 아파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자기 노력, 자기 의지와는 상관 없이 신체적인 약점을 타고 난 사람들이 갖고 있는 아픔, 이런 한계는 어찌보면 울분과 분노로 나타날 수 있을지도 모릅니다. 그래서 삭개오는 돈이면 이 모든 약점을 해결할 수 있다고 생각해서 닥치는 대로 돈을 벌 수 있는 직업을 선택했을 것입니다. 그것이 결국 그의 직업적인 약점이 되고 말았습니다.

수많은 사람들이 이 시간에도 내 힘으로는 어쩔 수 없는 또 내 노력으로는 어쩔 수 없는 그 약점과 한계 때문에 가슴을 치고 답답해하고 괴로워하고 있지 않습니까? 그런데 예수 그리스도를 만나면 이러한 모든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고 생각한 삭개오는 주님이 온다는 소식에 적극적으로 반응합니다. 그리고 주님을 만나러 갑니다. 그러나 예수님을 둘러싼 엄청난 군중과 환경 때문에 예수님을 만날 수 없었습니다. 거기서 삭개오는 멈추지 않았습니다. 좌절하지도 않았습니다. 남들이 걸을 때 그는 뛰기 시작했습니다. 뛰는 것도 모자라서 예수 그리스도를 볼 수 있는 자리까지 올라갑니다. 집중력을 갖고 사모하고 열정적이고 적극적인 사람이 되었을 때 예수님은 수많은 사람 가운데서 오직 한 사람 삭개오에게 집중하기 시작하셨고 주목하셨습니다. 그리고 예수님은 말씀하십니다. “내려와라. 내가 오늘 네 집에 유하여야 하겠다”(눅19:5) 그리고 삭개오의 삶은 변하게 됩니다. 물질관마저도 변하게 됩니다. 우리도 약점을 넘으려고 하는 열정과 도전 정신이 진정 삶을 변화시킵니다.

어느 파티에서 한 부인이 유명한 사상가인 존 러스킨에게 값비싼 손수건을 내보이며 울상을 지었습니다. "이 손수건은 최고급 실크로 만든 것인데 누군가가 여기에 잉크를 쏟아버렸어요. 손수건에 얼룩무늬가 생겨 이제는 아무 짝에도 쓸모가 없게 됐어요" 존 러스킨이 귀부인에게 말했습니다. "부인, 그 손수건을 며칠만 제게 빌려주십시오" 미술에 탁월한 재능을 갖고 있던 러스킨은 손수건의 잉크자국을 이용해 아름다운 나무와 숲과 새의 모양을 그려넣어 부인에게 주었습니다. 오히려 그 이전의 손수건보다 훨씬 고상하고 우아해 보였습니다. 러스킨은 손수건을 받아들고 감격해하는 부인에게 말했다. "잉크자국이 오히려 멋진 그림을 그려 넣는 동기가 됐습니다. 이전의 손수건보다 훨씬 아름답지요"
인간도 마찬가지입니다. 아무리 허물 많은 사람도 하나님의 손길이 닿으면 전혀 새로운 존재가 됩니다. 하나님은 가끔 우리의 약점과 허물을 사용해 뜻을 이루십니다.

넷째, 남의 약점과 허물을 서로 용서하고 이해해 주어야 합니다.

거대한 몸집을 가진 코끼리가 가장 두려워하는 동물은 무엇일까. 호랑이나 사자도 감히 코끼리에게 덤비지 못합니다. 단단한 피부와 육중한 몸집은 맹수들의 공격을 막아내기에 충분합니다. 만약 코끼리의 발에 밟히면 아무리 사나운 맹수라도 살아남지 못합니다. 그런데 코끼리가 가장 두려워하는 동물이 있습니다. 그것은 조그마한 '쥐'입니다. 코끼리는 작은 생쥐가 나타나면 몸을 움츠리며 어찌할 줄을 모릅니다. 쥐들은 코끼리에게 공포의 대상입니다. 생쥐들은 코끼리의 등을 타고 다니며 자유롭게 뛰놉니다. 그러나 코끼리는 도저히 쥐를 잡을 수가 없습니다. 너무 날렵하고 작아서 발로 밟을 수도 없습니다. 결국 코끼리는 조그마한 쥐에게 자신의 몸을 완전히 맡겨버립니다. 코끼리의 몸집은 쥐의 놀이터일 뿐입니다. 사람은 누구나 약점과 허물이 있습니다. 완벽한 사람은 없습니다. 그러므로 서로 용서하고 이해하며 살아야 합니다. 나의 약함을 인정하는 것으로부터 용서와 사랑은 시작됩니다.

다섯째, 세상에는 의인이 없음을 깨닫고 사람을 높이거나 사람을 자랑하지 말아야 합니다.

미국 롱비치에서 한 신사가 그와 동행중이던 젊은 숙녀를 자동차에 남겨 둔 채 통닭구이 집에 들어가 통닭 한 마리를 샀다. 그런데 그 가게 주인이 실수로 통닭상자 대신에 그날 장사해서 들어온 현금상자를 싸서 건네주었다. 그는 은행에 예금을 하려고 돈을 빈 상자에 넣어 두었었는데, 그만 돈이 든 상자가 통닭상자인 줄만 알고 포장까지 해서 손님에게 건네준 것이다. 통닭을 산 이 신사는 아가씨와 함께 공원에 도착해서 상자를 열었을 때에야 그들은 상자 속에 통닭이 아니라 돈뭉치가 들어 있는 것을 발견했다. 사실 그 순간은 평범한 사람들이 가장 약해지기 쉬운 때였다. 그 신사는 뭔가 잘못된 것을 알고 다시 그 가게까지 달려가서 주인에게 돌려주었다. 너무 놀란 그 주인은 "선생님, 여기 잠깐만 앉아 계세요. 제가 신문사에 전화해서 당신들의 선행을 알려야 하겠어요. 당신들은 세상에서 가장 정직한 사람들이에요" 하며 감격해서 어쩔 줄을 몰라했다. 그런데 이 젊은이는 고개를 저었다. "아, 아니예요 절대로 그러지 마세요" 이상하게 여긴 주인은 물었다. "아니 왜 안된다는 거죠?" "보시다시피 저는 결혼한 몸입니다. 그런데 지금 저와 함께 있는 이 여자는 제 아내가 아니거든요."

우리는 이 이야기를 통해 인간은 어떤 한 면만을 보고 판단하고 평가해서는 안 된다는 사실을 알 수 있습니다. 어떤 사람이든 자세히 살펴보면 누구나 약점이 있는 것입니다. 그런즉 누구든지 십자가 이외에 사람을 자랑하지 말아야 합니다.(갈6:14, 고전3:21) 이 세상에 의인은 없습니다.(롬3:10) 성경에 나오는 위대한 믿음의 용사들에게도 모두 약점과 허물이 있었음을 우리는 압니다. 심지어 사도바울에게도 가시가 있었습니다.
"선을 행하고 죄를 범치 아니하는 의인은 세상에 아주 없느니라"(전7:20) 우리는 정치지도자나 종교지도자 등 사람을 절대로 우상화하거나 높여서는 안되고 우리 자신도 연약함과 허물이 있음을 깨달아 자만하지 말고 항상 넘어질까 조심해야 합니다.
"우리 강한 자가 마땅히 연약한 자의 약점을 담당하고 자기를 기쁘게 하지 않을 것이라"(롬15:1)

이 세상에는 잘 사는 사람이 많고 또 잘난 사람이 많은 것 같지만 사실은 그렇지 않습니다. 여러분께서 며칠 전에 신문에 보신대로 지금 세계에 백만장자는 7백만 정도밖에 되지 않는다는 발표가 났습니다. 7백만도 물론 대단히 많지만 세계에 잘 사는 나라가 얼마나 많습니까? 그래도 7백만 정도밖에 안 된다는 거예요. 여러분, 어떻게 보면 빌딩이 있고 저런 분은 얼마나 부자겠냐 싶지만 임대료 주고 은행 융자받은 것 다 빼고 나면 실질적으로 남는 것 많지 않다는 거예요. 아파트나 자기가 가지고 있는 것이 많이 있는 것 같아도 사채도 있지요, 외상한 것도 있지요, 빚낸 것도 있지요, 은행 융자받은 것 있지요, 그렇게 제하고 나면 자기 재산이 얼마 되겠냐 하는 거예요. 가난한 사람이 아주 많습니다. 지금 하루에 1달러, 한 달에 30불씩 가지고 사는 사람이 13억이 된다고 합니다. 가난한 사람이 몇 배 많습니다. 측량할 수 없이 많습니다. 내가 가난하다고 낙심해서는 안됩니다. 우리는 어려울 때 나만 어렵다는 생각을 가져서는 안됩니다. 어려운 사람이 더 많습니다. 아무 어려움 없이 평안하게 걱정 없이 사는 분이 몇 사람이 되겠습니까?

우리는 모든 일에 절망하지 말아야 할 것입니다. 낙심하지 말아야 할 것입니다. 공부 못한다고 자살하는 학생들도 있고 점수가 만족스럽지 못해서 자살하는 학생이 많습니다. 공부 잘하는 사람은 몇 명 안됩니다. 못하는 사람이 백 배나 더 많습니다. 일등 하는 사람은 몇 명 안됩니다. 낙심해서는 안됩니다. 인물이 좀 못나서 수술하고 또 수술이 만족하지 못해서 자살하는 분들이 또 그렇게 많더라고요.

여러분, 못난 분이 훨씬 많습니다. 낙심하면 안됩니다. 이걸 아셔야 합니다. 잘났다 그래도 대체로 착각하는 것이지 진짜로 잘난 사람은 얼마 안 되는 거예요. 우리가 낙심할 게 없어요. 모든 일에 아 나는 어렵다 불행하다. 아닙니다. 우리가 주님을 믿고 믿음으로 주님을 바라보면 어떤 어려움도 우리는 이겨낼 수 있습니다. 예수를 믿는다고 해서 낙심이 안 오는 것 아닙니다. 사탄은 믿는 자에게도 역사하고 믿지 않는 자에게도 역사 합니다. 우리는 믿음으로 물리치는 이 믿음이 있어서 그런 것이지 사탄이 우리에게 와서 유혹하고 시험 들게 하는 것은 마찬가지입니다. 주의 종이 되어도 기도해도 성령으로 충만해도 사탄은 늘 우리에게 좌절을 가져다 주고 낙심을 가져다 줍니다. 실망하게 합니다. 네가 무슨 교인이냐? 네가 무슨 교회에 나가냐? 우리 마음을 흔들어 놓습니다. 우리를 넘어뜨립니다. 우리는 어떤 성공보다도 자신과의 싸움에 이겨야 합니다. 자신과의 싸움이 먼저입니다. 내 마음에 여러 가지로 순간 순간 찾아오는 좌절과 절망과 불안과 걱정을 이겨내야 할 것입니다. 루터의 종교개혁은 1517년이지요. 바르트부르그 성에 와서 성경을 번역한 것은 1521년 5월부터 1522년 3월까지 열 달 동안 이곳에 와서 성경을 번역합니다. 라틴어로 된 성경을 독일어로 번역을 하지요. 카톨릭은 일반 성도들에게 몇 백년동안 일절 성경을 주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신부만이 성경을 갖고 말씀을 가르쳤기 때문에 성도들은 알 수가 없었습니다. 무슨 말을 해도 몰랐어요. 그래서 루터가 종교개혁을 하고 성경을 번역하면서 말씀의 능력과 신비로움과 거룩함과 그리고 믿음과 말씀이 주는 갖가지 지혜를 얻으면서 독일 민족은 세계적인 민족이 된 것입니다. 그리고 독일 한 나라뿐만 아니라 온 인류가 말씀을 읽으면서 우리 한 사람 한 사람이 받은 은혜는 측량할 수 없이 큰 것이었습니다. 이것이 바로 루터에 의해서 이루어졌고 루터는 어디에서 이것을 이루었느냐 하면 바르트부르그 성에서 성경을 번역하므로 주어진 것입니다.

루터가 성경을 번역한 방을 가 보았는데 한 다섯 평이나 네 평정도 되는 방인데 그 책상 그 의자 다 그대로 있어요. 독일 사람은 보존을 잘 하니까요 그대로 잘 보존을 했어요. 그런데 우편에 벽에 원숭이 같은 인형이 있는 거예요. 저게 뭐냐고 하니까 바로 루터가 이곳에서 성경을 번역하고 기도할 때마다 사탄이 늘 나타나서 야, 네가 무슨 개혁이냐? 너냐 개혁해라. 네가 무슨 신부냐? 네가 무슨 개혁을 하냐? 네 자신을 알아라. 날마다 와서 자기 마음에 사탄이 와서 늘 마음을 불안하게 하고 낙심을 주는 거예요. 여러분이 이걸 꼭 기억하셔야 합니다. 우리가 성경을 늘 많이 읽는다고 해서 사탄이 떠나가는 것이 아닙니다. 기도 많이 한다고 해서 사탄이 가만히 두는 것 아닙니다. 기도해도 우리에게 와서 낙심을 줍니다. 절망하게 합니다. 우리에게 네가 무슨 교회에 나가냐? 네 자신을 바라보아라. 낙심을 주고 절망하게 만듭니다. 네가 무슨 집사냐? 네가 무슨 교인이냐? 네가 천국 갈 것 같으면 안 갈 사람이 없다. 이렇게 마귀는 끊임없이 우리를 유혹하고 마음을 넘어뜨립니다. 마음이 넘어지면 다른 것 넘어뜨리는 거야 문제없지요. 그래서 루터가 그때마다 사탄아 물러가라 해도 사탄이 어디 잘 물러갑니까? 계속해서 역사하니까 루터가 갖고 있던 잉크병을 확 던져버렸어요. 벽에 그대로 잉크 자국이 있는 거예요. 사탄이 늘 나타났던 자리에 인형을 걸어놓고 그렇게 한 거예요. 일 하면 뭐하냐? 너 같은 죄인이 기도하면 뭐하냐? 죄인의 기도는 듣지 않는다고 하셨다. 이러한 사탄을 향하여 우리도 믿음으로 물리쳐야 합니다. 우리 모든 성도들에게 사탄이 역사 하는 것은 정상입니다. 잘 믿을수록 더 많이 역사 합니다. 개혁자에게 더 많이 역사하고 기도하는 분에게 더 많이 역사 합니다. 주님이 우리와 함께 하십니다. 사도 바울도 말했습니다. 주님이 나와 함께 하시는데 주님이 나를 인정하고 계시는데 누가 나를 정죄하리요 누가 나를 송사하리요 누가 나를 그리스도의 사랑에서 끊으리요 라고 했습니다.

오늘 본문에 주님께서 우리에게 말씀해 주셨습니다. 주님은 이 세상의 약한 자를 택하여 있는 자를 부끄럽게 하시고 천한 자를 택하여 하나님께서 능력 있는 자를 권세 있는 자를 부끄럽게 하려 하시고 미련한 자들을 택하여 지혜 있는 자들을 부끄럽게 하려 하시고 없는 것들과 멸시받는 것들을 다 택하여 하나님은 이 세상에 지혜 있고 능력 있고 강한 자를 부끄럽게 하려 하시는 하나님이십니다. 우리는 낙심하면 안됩니다.

영국의 역대 국왕 중에서 인격적으로나 용모로나 학식으로 볼 때 가장 저속한 왕이 제임스 1세일 것입니다. 그는 술주정뱅이었으며 많은 악에 탐닉해 있었고 외교적 유익을 위해 자녀들을 결혼시켰습니다. 뿐만 아니라 호색과 방탕으로 국고를 탕진한 왕입니다. 균형잃은 머리,군침 흘리는 혀,활처럼 휜 두 다리, 퉁방울 눈, 비열한 인간성, 현자티를 내는 위선 등…. 그는 왕으로서 존경할 가치가 조금도 없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런 왕을 들어 쓰셨습니다. 그는 성경학자들을 소집하여 어느 시대를 막론하고 가장 감동적이며 영향을 주는 성경을 펴냈습니다. 그 성경이 바로 1611년 간행된 흠정역 성경이며 왕의 이름을 딴 제임스왕역 성경(King James Version)입니다.
하나님은 미련한 사람을 들어 지혜 있는 자를 부끄럽게 합니다. 제임스 1세는 세상적으로는 실패한 것 같으나 하나님을 위해서 위대한 일을 했습니다. 하나님을 바라보는 사람은 실패한 것 같아도 성공합니다.

어떤 분이 저에게 편지를 보냈습니다. 목사님, 우리는 죽을 것입니다. 우리 가정은 이제 끝낼 것입니다. 끝내면 안됩니다. 죽으면 안됩니다. 조금만 넘기면 좋은 날이 옵니다. 우리 교회도 잘 사는 사람이 많고 아무 문제없는 분이 많은 게 아닙니다. 다 문제가 있는 분들이 많습니다. 어려운 분들이 많습니다. 처음부터 부자가 된 사람이 어디 있어요? 미국에도 재벌들을 조사해 보면 80퍼센트가 자수 성가 했다고 합니다. 어려움을 뚫고 길가에 있는 잡초처럼 짓밟히다가 나중에 모두 일어나서 세계적인 부자가 되고 성공한 사람들이 되었습니다. 인기 있는 사람들도 다 그렇다고 합니다. 지금 미국의 부자인 빌 게이츠도 얼마나 가난했던 분입니까? 어려운 분이 그렇게 되었습니다. 미국의 3대 부자 록펠러도 그런 사람 아닙니까? 나중에 모두 잘 되지 않았어요? 어렵게 살다가... 카네기도 그렇지 않습니까? 다윗도 그렇지 않습니까? 요셉도 그렇지 않습니까? 오늘 우리는 이런 곳에서 여러 가지 어려움이 있을지라도 우리는 이것을 넘고 일어나면 좋은 날이 오고 주님이 우리와 함께 하시면 반드시 좋은 날이 올 줄로 믿어야 합니다.

T.V에서 복싱 같은 것을 보면 조그마한 링 위에 갈 곳이 어디 있습니까? 그곳에서 막 얻어맞습니다. 내 인생은 갈 곳이 없습니다. 내가 어디로 갑니까? 내가 돈이 있습니까 빽이 있습니까 믿을 곳이 있습니까 친척이 있습니까 친구가 있습니까 어디를 갑니까? 몸이 아파서 폐병으로 고치지도 못할 병에 걸려서 피를 토하고 위가 나빠서 그 약을 많이 먹어 가지고 식사도 못하고 간도 나쁘고 피곤하고 너무 너무 이 식구들을 이끌고 내가 어디를 갑니까? 그래서 텔레비전을 보면서 늘 많이 기도합니다. 눈물을 흘립니다. 혼자서 나는 이기리라, 나는 죽지 아니하리라. 아무리 복싱처럼 나를 향하여 끊임없이 주먹이 내게 날아올지라도 나는 이것을 넘어서리라. 12라운드, 그 때는 15라운드까지 있었어요. 15라운드까지 나는 끝까지 참으리라. 다운이 되고 홍수환이 몇 번 다운이 되도 일어난 것처럼 나는 일어나리라 끊임없이 나 혼자 그러는 거예요. 나는 일어나리라 나는 살리라 나는 죽지 아니하리라 나는 주님의 은혜로 반드시 승리하리라 그러면서 나 혼자 눈물을 많이 흘립니다. 자신과 싸움이에요. 여러분이 외로울수록 하나님을 붙잡고 기도하고 낙심될수록 믿음을 가지면 오늘 우리에게 오는 태산같은 대적이 올지라도 우리는 반드시 승리할 줄로 믿습니다.

주님은 약한 자를 위해 오셨습니다. 주님은 우셨습니다. 주님은 모든 약한 자의 친구이십니다. 모든 약한 자를 강하게 하기 위해서 주님은 약해지셨습니다. 모든 천한 자를 귀하게 만드시기 위해서 주님은 천한 자가 되셨습니다. 마귀는 우리 모두에게 있는 것까지도 빼앗아 가고 우리의 모든 것을 빼앗아 가는 도적과 같지만 주님은 십자가 위에서 우리를 위하여 생명을 주시고 모든 것을 주신 사랑의 주님이십니다. 십자가 위에 달린 주님을 보면 누구든지 용기가 납니다. 나를 위해 저렇게 고난을 당하신 주님 주님을 바라보면 우리는 어떤 것도 참을 수 있고 이겨낼 수 있는 것입니다. 주님은 우리의 산성이십니다. 우리의 피할 바위이십니다. 늘 주님을 바라보아야 합니다. 힘과 능력은 위로부터 주님에게로부터 오는 것입니다. 마틴 루터가 주님을 의지하지 않았더라면 승리할 수 없었습니다. 루터의 가정은 음악 가정이더라고요. 어머니도 피아노를 잘 치셨고 루터도 어려서부터 악기를 잘 다루고 음악을 잘 했더라고요. 그래서 루터가 작곡도 하고 작사도 한 찬송이 찬송가에 있습니다. 그 성에서 보호를 받았거든요. 그래서 원래는 그 성에 피할 때에 누가 자기를 데려다 죽이는 줄 알았어요. 가다가 중간에 납치되어 갔는데 가 보니까 믿음 좋은 성주가 그 성에 데려다가 아주 오래된 고도의 성에서 보호를 해 가지고 아무도 모르게 그 성에서 성경을 번역하도록 도와주신 거예요. 성이 굉장히 든든해요. 견고해요. 그는 그 성에서 이 찬송을 작곡 한 것입니다.

찬송가 384장. ♬ 내 주는 강한 성이요 방패와 병기되시니 큰 환난에서 우리를 구하여 주시리로다 옛 원수 마귀는 이 때도 힘을 써 모략과 권세로 무기를 삼으니 천하에 누가 당하랴 내 힘만 의지 할 때는 패할 수밖에 없도다 힘있는 장수 나와서 날 대신 하여 싸운다 이 장수 누군가 주 예수 그리스도 만군의 주로다 당할 자 누구랴 반드시 이기리로다 이 땅에 마귀 들끓어 우리를 삼키려하나 겁내지 말고 섰거라 진리로 이기리로다 친척과 재물과 명예와 생명을 다 빼앗긴대도 진리는 살아서 그 나라 영원하리라 아멘♬ 찬송가가 너무 시원하고 힘이 되고 좋은 찬송가라고 생각합니다. 우리는 어떤 가난이나 실패나 질병이나 환난이나 이게 무섭고 이게 중요한 게 아닙니다. 우리는 주님을 떠나는 것이 무서운 것이지 주님을 떠나서 이 세상으로 가는 것이 참 절망이지 세상에서 주님으로 나아가는 길은 어떤 어려움도 반드시 해결되고 승리할 수 있는 것입니다. 기독교의 절망은 기독교의 위기는 성경이 말하는 인간의 불행은 하나님을 떠나는 거예요. 천하를 다 가졌을지라도 교회를 떠나고 예수 떠나면 그건 거지예요. 탕자예요. 그러나 천하에 거지요 천하에 쓸모 없는 비천한 사람이라도 주님에게로만 돌아오면 그는 살아날 수 있는 거예요.
맨발로 소리를 듣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녀의 이름은 에블린 글래니입니다. 30대 중반에 접어든 그녀는 세계 최고의 타악기 연주자 중 하나로 꼽힙니다. 여느 음악인들과 다른 점이 있다면 그녀가 이미 열두 살 때 청력을 잃은 청각장애인이라는 사실입니다.당연히 사람들은 그녀가 청각을 잃는 순간 음악가로서는 이미 그녀 인생에 마지막 종이 울렸다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그녀는 포기하지 않았습니다. 글래니는 더 이상 제 기능을 하지 못하는 귀를 일단 포기해야만 했습니다 대신 그녀는 소리의 진동과 뺨의 떨림으로 어떤 소리인지 감지해내는 연습을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무대엔 항상 맨발로 올라가 발끝에서 전해오는 진동으로 소리를 구별해냈습니다. 귀가 아니라 온몸 전체가, 그 중에서도 극도로 섬세해진 발끝의 촉각 하나 하나가 그녀만의 청각기관이 되어준 셈입니다.덕분에 그녀는 미세한 대기의 변화로도 음의 높낮이를 읽어낼 수 있는 경지에 이르렀고 20여 년의 노력 끝에 세계 최고의 타악기 연주자로 꼽히게 되었습니다. 듣고 싶다는 간절한 소망이 그녀의 신체적인 결함을 극복할 수 있는 에너지가 된 것입니다.

오늘도 많은 사람들이 육체의 장애와 인생의 고난 앞에서 얼마나 자주 포기하고 좌절하고 있습니까? 그런 의미에서 사도 바울은 그가 믿고 의지했던 것들이 하나둘 멀리 떨어져 나갈 때도 꿋꿋이 믿음으로 서서 승리한 인물입니다.사도 바울은 그가 가진 부유한 배경과 뛰어난 지식을 배설물처럼 버렸습니다. 로마의 감옥에 수감됨으로써 아무데나 갈 수 있는 육체의 자유를 상실했습니다. 찌르는 가시와 같은 안질로 육체의 고통이 극에 달했습니다. 믿고 신뢰했던 이들이 그를 버리고 데마와 같이 세상으로 떠나갔습니다. 석방의 소식은 들려오지 않고 가난과 곤핍이 그를 찾아왔습니다.이 노쇠한 사도의 마음속에도 포기하고 싶은 유혹이 왜 없었겠습니까? 그러나 그는 그런 와중에서도 옥중서신 4권을 기록해서 남기는 큰 일을 감당했습니다.
“그러므로 내가 그리스도를 위하여 약한 것들과 능욕과 궁핍과 핍박과 곤란을 기뻐하노니 이는 내가 약할 그때에 곧 강함이니라”(고린도후서 12:10)

위대한 역사의 업적들은 편안하고 자유로운 가운데 이루어진 것이 아니라 심히 고통스럽고 모든 것을 포기하고픈 절망적인 상황 속에서 꽃피곤 했습니다.우리가 당하는 현실의 고통을 두려워하지 마십시오. 오히려 사도 바울의 고백처럼 내가 약할 때 가장 강한 자라는 진리를 깨닫고 오늘도 믿음으로 꿋꿋이 서시기를 바랍니다. 비록 우리가 가장 약한 처지에 있다고 하더라도 우리의 능력 되시고 생명 되신 예수 그리스도를 의지하고 그분의 도움을 요청한다면 우리는 가장 강한 자가 될 수 있습니다. 만군의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하시면 우리가 그에게로 가고 그의 보호를 받고 그가 나와 함께 하시면 주님은 우리의 피난처가 되시고 눈동자처럼 지켜주십니다. 나의 갈길 다 가도록 예수께서 인도해 주시고 책임져 주십니다. 우리의 앞날은 새로운 날이 올 것이고 소망의 날이 올 것이고 어두움은 지나갑니다. 우리도 때가 되면 주님께서 우리를 소원의 항구로 인도하시고 주의 능력으로 우리가 바라보던 저 땅, 젖과 꿀이 흐르는 땅으로 우리 가정을 인도하시고 여러분 한사람 한사람을 이끌어 주실 줄로 믿습니다. 주님은 우리의 피난처이십니다. 환란을 당하고 가난하고 버림받고 궁핍한 자가 피난하는 것입니다. 다윗이 피난 왔을 때 원통하고 슬픈 사람들 6백 명이 다윗을 따라가서 나중에 다윗 왕궁의 지도자가 되듯이, 예수님을 따라나선 모든 제자들이 다 비천한 분들이었지마는 하나님은 그들을 통하여 영광 받으시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모든 데에서 구원하여 주시는 것입니다. 어떤 악의 세력도 우리를 넘어뜨릴 수 없습니다. 바울이 말 한대로 환란이나 기근이나 적신이나 위험이나 칼이나 금생 일이나 내생 일이나 장래 일이나 악한 세력이나 어둠의 세력이 어떤 세력도 주님 함께 하는 생명을 넘어뜨릴 수가 없어요. 주님은 우리의 방패가 되시고 큰 성이 되는 줄로 믿습니다.

어떤 교인은 이런 말을 합니다. 목사님 우리 가정은 전부 단명합니다. 다 내려오는 분들이 30대를 넘지 못했습니다. 예수 믿으면 내려오는 저주가 어디 있어요? 예수의 이름으로 장수하는 거예요. 우리 집은 내려오는 유전병이 있습니다. 유전병이 어디 있어요 예수 믿는데? 다 끊어지는 거예요. 저주란 저주는 믿음 안에서 어떤 것도 이 성을 넘어뜨릴 자가 없어요. 예수님이 지키고 보호하는데 그걸 넘어설 자가 없는 거예요. 이 세상에는 억 만가지 저주가 끊임없이 우리 옆을 드나들고 있을지라도, 시편 91편에 있는 대로 내 좌우편에 천 명 만 명이 쓰러져 전염병으로 넘어질지라도 주님 우리를 지켜주시는 것입니다. 교회는 피난처입니다. 뭐하러 교회 나오는 거예요? 세상이나 교회나 똑같을 거 같으면 뭐하러 나오는 거예요? 교회가 가는 곳에 저주가 떠나가는 것입니다. 우리 민족이 4천년동안 이 저주를 벗어나지 못하다가 교회가 들어오면서 이 땅을 덮고 있던 어두움의 저주가 다 물러가는 것처럼 개인이나 가정에도 모든 저주가 떠나갈 줄로 믿습니다. 죽음이 찾아오지 못합니다. 생명의 주님이 여러분과 함께하십니다. 멸망이 여러분을 찾아올 수 없습니다. 만복의 근원되시는 부유하신 주님이 나를 지키시고 계시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이제 더욱 열심히 기도해야 됩니다. 더욱 믿음으로 주님을 가까이 해야 할 것입니다.

공산주의는 가난한 자를 찾아서 비판하게 해서 모두 있는 자도 가난하게 만들고 가난한 자도 영원히 가난하게 만듭니다. 공산주의가 들어가는 곳에 가난을 해결하려고 하지마는 가난한 자를 들어서 끝까지 가난하게 만듭니다. 교회가 가는 곳, 기독교가 가는 곳에는 가난한 자를 택하여 부유하게 하시고 있는 자를 부끄럽게 하시는 우리 하나님이신 것입니다. 주님은 우리의 형편을 아십니다. 우리의 모든 형편을 아십니다. 병든 자 슬픈 자 불행한 자의 형편을 너무너무 잘 아십니다. 사람이 또 평생 아무 걱정 없이 고생 없이 사는 것보다는 살면서 아픔도 질병도 가난도 불행도 경험하는 것이 참 좋습니다.

눈물 젖은 빵을 먹어보지 못한 사람이 인생을 알 수 없듯이 가난한 사람이 가난을 통해서 나중에 복을 받으면 개인적으로 복을 받을 뿐만 아니라 그 사람이 부유해지면 훌륭한 지도자가 돼요. 왜 그러냐하면 가난했을 때의 그 형편을 잘 알면서 모든 일을 잘 하면서 가난한 사람들의 사정을 알고 가난을 겪으면서 인내심도 겪고 그 모든 적응하는 것도 다 훈련을 통하여 겪으면서 나중에 그런 분들이 지도자가 안 되는 분이 없습니다. 지도자가 다 되는 거예요. 저도 어렸을 때 가난을 겪으면서 참 감사한 것은 무엇이든지 요사이 늘 감사가 됩니다. 그렇게 행복해요. 옛날 생각하고 사니까 그저 하루 하루가 그렇게 천국같이 고마울 수가 없습니다. 불평이 없습니다. 그 다음에는 가난한 분들의 형편을 잘 알아서 도와주는 거예요. 저는 옛날에 배가 고프니까 어느 집에 가던지 먹을 거 안주나 그런 생각했거든요. 그 마음을 알고 나를 찾아오시는 분은 그냥 보내는 분이 별로 없습니다. 여러분, 절대로 가난이 그냥 가난만이 아니더군요. 거기서 배우는 것이 너무 많습니다. 질병이 그냥 질병이 아닙니다. 거기서 인생을 너무 많이 배우는 것입니다. 불행이 그냥 불행이 아닙니다. 거기서 배우는 것이 참 많다는 것입니다. 나중에 축복을 받아 천 배 만 배 주의 영광을 드러낼 줄로 믿습니다. 가난한 자 모든 약한 자는 절대로 울거나 낙심하지 말고 주님을 바라볼 때 기쁨과 소망과 믿음을 가지고 새 시대를 개척하는 성도들 되시기를 바랍니다.

* 기도: 존귀하신 하나님, 오늘 거룩한 주의 날 성령께서 이 자리에 오셔서 우리 한 분 한 분을 사랑하시고 또 예배를 받으시며 머리마다 하나님의 성령이 비둘기같이 임재하여 주셔서 우리 마음에 어두움이 다 물러가고 우리를 향하여 끊임없이 낙심을 주고 절망을 주는 원수 마귀를 늘 대적하고 주님의 은혜로 주님을 피난처로 삼아 만대에 복을 받게 하여 주옵소서. 예수 그리스도 이름으로 기도하옵나이다. 아멘.
/한태완 목사(하나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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