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난의 유익
본문
성경: 시119: 67, 71
“고난 당하기 전에는 내가 그릇 행하였더니 이제는 주의 말씀을 지키나 이다”(시 119:67)
"고난 당한 것이 내게 유익이라 이로 인하여 내가 주의 율례를 배우게 되었나이다"(시119:71)
울밑에 심겨진 몇 그루의 코스모스와 봉숭아가 아름다웠습니다. 흙이 얕은 곳이라 금방이라도 쓰러질 것 같았지만 부지런히 잘 자랐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부턴가 외양간에서 소가 나올 때마다 따로 떨어져서 무성하게 자라고 있는 코스모스 한 그루를 오며 가며 뜯어먹기 시작했습니다. 그래서 이 코스모스는 잎이 거의 남아나질 않아서 생명이 위태로웠습니다. 영양분의 부족과 어둠과 찬이슬로 추위를 떨면서 이 코스모스는 생명의 몸부림을 쳤습니다.
이 때 뜯어 먹히지 않은 다른 코스모스와 봉숭아들이 그 수난 당하는 코스모스를 바라보며 수근거리며 흉보고 있었습니다. "애들아 ! 제는 무슨 죄가 많아서 저렇게 수난을 당하며 우리처럼 자라지 못할까? 따뜻한 햇살을 받으며 우리는 이렇게 잘 커가고 있는데 말야! 우린 머지 않아 꽃도 피울 거고 또 아름답고 예쁜 씨앗도 생길 거야! 그러면 우리 주인이 우릴 무척 좋아하고 내년에도 우리의 예쁜 아기 씨앗들을 심어 줄 거야!"
드디어 봉숭아와 코스모스는 조그마한 꽃망울들을 갖기 시작했고 수난 당한 코스모스는 겨우 연한 잎 파리 몇 잎으로 생명을 지탱하며 아주 보잘 것 없는 꽃망울 하나밖에 갖지 못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갑자기 태풍이 불어 닥쳤습니다. 무럭무럭 자란 키가 큰 코스모스와 봉숭아는 필사적으로 몸부림을 쳤지만 무성한 가지와 잎사귀가 바람을 이기지 못해 가지가 꺾기고 더러는 뿌리 채 뽑혀서 바람에 날렸습니다. 남은 몇 그루는 만신창이가 되어서 꽃나무의 형체를 분간하기가 어려웠습니다. 주인은 나와서 이 만신창이가 된 꽃나무들을 걷어서 퇴비더미에 던져버렸습니다. 그리고 소에게 수난 당하던 코스모스도 함께 청소해 버리려고 가까이 왔을 때 주인은 깜짝 놀라고 말았습니다. 태풍이 오기 전에 이미 잎과 줄기를 소에게 수난을 많이 당한 탓에 태풍에도 견딜 수 있었을 뿐만 아니라 오히려 연한 싹들이 움돋기 시작하는 것을 보고 주인은 무척 기뻐했습니다. 찬바람이 불 때까지 이 나약한 코스모스는 결국 한 송이의 꽃을 피워냈습니다. 주인은 그 코스모스 한 송이에서 씨앗 24 개를 받아 냈습니다. 이듬해 주인은 이 씨앗으로 24 그루의 코스모스를 만들어 냈습니다. 그리고 주인은 지난해의 고난을 거울삼아 처음부터 억제 재배를 하고 있었습니다. 이번에는 지난 해 보다 더 강한 태풍이 왔지만 하나도 꺾여진 것들이 없었습니다.
고난이 주는 유익이 무엇인가를 말씀을 통해 살펴봅시다.
첫째, 순종을 배우게 합니다.(히5:8,9)
어미 소가 두 마리의 송아지를 낳았습니다. 송아지가 자라 코뚜레를 할 때가 되자 맏이 송아지가 농부한테 사정하였습니다. “저한테는 코뚜레를 하지 말아주십시오.” 농부가 말했습니다. “코뚜레를 하지 않으면 망아지가 되고 말텐데.”“아닙니다. 주인님. 두고 보십시오. 코뚜레를 하지 않으니 일을 곱절로 잘한다는 말을 제가 듣고 말테니까요.” 농부는 맏이 송아지의 말을 들어 아래 송아지한테만 코뚜레를 하였습니다. 맏이 송아지는 코뚜레 없이도 스스로 멍에를 지고 쟁기를 끌었습니다. 그리고 코뚜레를 한 아래 송아지가 지쳐 쉴 때는 더욱 힘을 내어 달구지를 끌기도 하였습니다. 송아지는 어느덧 소가 되었습니다. 코뚜레 하지 않은 맏이한테 차츰 꾀가 늘었습니다. 일을 피해 달아나기도 했으며 잡으러 오는 농부를 뒷발로 차주기도 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코뚜레를 한 아래 소가 들에서 돌아와 보니 맏이가 없었습니다. 어디 있느냐고 묻자 주인이 말했습니다. “도살장으로 보냈지.” 모든 그리스도인에게 요구되는 주인의 명령은 바로 십자가를 지고 좇으라는 것입니다. 그것은 분명히 멍에입니다. 하나님의 모든 법도들은 방종을 요구하는 인간에게 거추장스러운 것입니다. 그러나 그것은 마땅히 필요합니다. 하나님께 부름 받아 그 울타리 안에 들어선 모든 이들은 기꺼이 그의 멍에를 지기로 해야 합니다. 여기에 생명이 있습니다. 여기에 바른 삶이 있습니다.
둘째, 말씀과 진리를 깨닫게 합니다.(시119:71, 딤후2:25)
조용한 섬나라인 뉴질랜드. 그곳에는 날지 못하는 새가 다섯 종류나 있습니다. 왜냐하면 그 섬에는 새를 해치는 다른 동물들이 없기 때문입니다. 심지어 뱀들도 독이 없다고 합니다. 그래서 새들은 굳이 공중으로 날아오를 필요가 없게 되고, 그저 나뭇가지나 땅에서 지내다보니 날개는 있어도 날지 못하는 새가 되었다는 것입니다. 안일은 삶을 무기력하게 하지만 고난과 시련은 새를 날아오르도록 합니다. 이렇듯 고난과 시련은 우리의 삶을 높이 끌어올리는 필수 요소입니다.
셋째, 하나님의 은혜를 깨닫고, 은혜를 더 받게 합니다.(벧전5:9,10)
"이를 인하여 내가 또 이 고난을 받되 부끄러워하지 아니함은 나의 의뢰한 자를 내가 알고 또한 나의 의탁한 것을 그 날까지 저가 능히 지키실 줄을 확신함이라."(딤후1:12)
"그리하면 그가 세상을 창조할 때부터 자주 고난을 받았어야 할 것이로되 이제 자기를 단번에 제사로 드려 죄를 없게 하시려고 세상 끝에 나타나셨느니라."(히9:26)
미국의 스미스 대학에서 교편을 잡고 있던 폴린 해밀턴 박사는 하나님의 인도하심에 순종하여 중국 선교사로 자원했습니다. 그러나 중국에는 많은 어려움들이 해밀턴 박사를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 어려움들은 해밀턴 박사에게 고통과 좌절이 되었습니다. 그러나 얼마만큼의 세월이 흐른 뒤 해밀턴 박사는 고난을 기회로 삼는 지혜를 터득하게 되었습니다. 실제로 그녀는 다리 부상으로 병원에 누워 있었을 때가 자신의 중국 선교 기간 중 가장 활기차게 사역을 감당했던 때라고 고백했습니다. 이처럼 그리스도의 자녀가 된 사람들에게는 고난도 유익할 수밖에 없습니다. 당신에게 고난이 찾아왔습니까 ? 감사하십시오. 그 고난을 통해 당신은 더욱 성숙해질 것입니다.
넷째, 기도하게 하고 하나님을 찬양하게 합니다.(사19:20,22, 시13:5,6)
서양 속담 중에 “흐르는 냇물에서 돌들을 치워버리면 그 냇물은 노래를 잃어버린다”는 말이 있습니다. 흘러가는 시냇물의 아름다운 소리는 곳곳에 박혀 물의 흐름을 방해하던 돌들 때문이었던 것입니다. 우리의 인생도 마찬가지입니다. 역경과 고난이라는 돌이 없다면 아름다운 감사의 찬양과 기쁨도 없습니다. 우리는 화니 제인 크로스비라는 이름을 기억합니다. 그녀는 어려서 다른 사람의 실수로 맹인이 됐지만 아무도 탓하지 않았고 오히려 스스로를 행운을 창조하는 사람이라고 믿었습니다. 그녀는 일평생 감사와 기쁨이 충만한 삶을 살았고 9000편의 찬송시를 남겼습니다. 전 세계 기독교인들이 가장 많이 부르는 찬송가 446장 ‘오 놀라운 구세주’ 역시 그녀가 남긴 찬송시입니다.
아무리 큰 절망과 고통이라 할지라도 믿음 안에서는 희망과 감격의 통로입니다. 하나님께서 함께 하시기만 한다면 아무리 어둡고 험한 길이라도 은혜로 점철된 기쁨의 길이 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감옥에 갇혀 있었던 바울과 실라를 보십시오. 한꺼번에 모든 가축과 종과 자녀를 잃었던 욥을 보십시오. 그들은 그러한 상황에서도 기도하고 찬양을 했습니다. 그리고 마침내 기도와 찬양으로 승리했습니다.
“모든 은혜의 하나님 곧 그리스도 안에서 너희를 부르사 자기의 영원한 영광에 들어가게 하신 이가 잠깐 고난을 받은 너희를 친히 온전케 하시며…”(벧전 5:10)
다섯째, 주의 위로를 얻게 합니다.
"우리의 모든 환난 중에서 우리를 위로하사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께 받는 위로로써 모든 환난 중에 있는 자들을 능히 위로하게 하시는 이시로다 그리스도의 고난이 우리에게 넘친 것같이 우리의 위로도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넘치는 도다." (고후1:4,5)
1704년 독일의 베냐민 슈몰크 목사 내외가 먼 지역의 심방을 마치고 집에 돌아와 보니 주택이 완전히 불에 타버리고, 여기 저기 아직 타다 남은 곳에서 연기를 내뿜고 있었습니다. 슈몰크 목사 내외는 집을 보던 어린 아들 형제를 열심히 불러보았으나 아무 응답이 없었습니다. 불길한 생각이 들어 타다 남은 잿더미를 들쳐보니 거기에 두 형제가 서로 부둥켜안은 채 불에 타죽어 있었습니다. 슈몰코 목사 내외는 새까맣게 타버린 사랑하는 두 아들의 시신을 앞에 놓고 두 무릎을 꿇고 하나님 앞에 울부짖었는데 하나님께서 주시는 위로의 시가 바로 찬송가 431장의 가사입니다.
1. 내 주여 뜻대로 행하시옵소서. 온몸과 영혼을 다 주께 드리니
이 세상 고락 간 주 인도 하시고 날 주관하셔서 뜻대로 하소서.
2. 내 주여 뜻대로 행하시옵소서. 큰 근심 중에도 낙심케 마소서
주님도 때로는 울기도 하셨네. 날 주관하셔서 뜻대로 하소서.
3. 내 주여 뜻대로 행하시옵소서. 내 모든 일들을 다 주께 맡기고
저 천성 향하여 고요히 가리니 살든지 죽든지 뜻대로 하소서.
"자기가 시험을 받아 고난을 당하셨은 즉 시험받는 자들을 능히 도우시느니라." (히2:18)
여섯째, 약한 자들을 이해하고 도울 수 있게 됩니다. (살전5:14)
어느 몹시 추운 겨울에 미국 뉴욕에서 석탄운반을 하는 노동자들이 동맹파업을 하여 뉴욕시에는 석탄이 들어오지 않아 불을 피울 수가 없어서 각 학교는 거의 보름간이나 임시 휴교를 하게 되었던 일이 있었습니다. 이런 일이 있기 전까지는 교실에서 편하게 공부하는 학생들에게는 그들의 생활이 석탄 나르는 노동자들과 긴밀하게 연관되어 있다는 사실을 상상조차 하지 못했을 것입니다.
어느 철학자가 "가장 감미로운 음악은 언제나 슬픔에서 생겨나는 것이다"고 한 것처럼, 만약 이 학생들이 이런 아픔의 고통을 모르고 자란다면 그들은 영혼의 섬세한 감정을 모르는 잔인하면서도 둔감한 인간이 되지 않으리라는 보장은 할 수 없게 됩니다. 이렇듯이 모든 고통으로 인해 우리가 성숙해 질 수 있다면, 고통에 있어 우리는 겸손하여 지고 타인에 대해 동정적이 되고 다른 사람을 이해해 보려는 태도를 가질 수 있게 될 것입니다.
자기의 고난은 참아야하고, 남의 고난은 돌보아 주어야 합니다. 그런데 우리가 결코 잊어서는 안 될 하나의 사실이 있습니다. 즉 지금 우리가 대처해 있는 환경이나, 또는 꼼짝할 수 없는 곤란한 처지를 우리가 모르는 다른 어떤 사람은 능히 이겨내고 있다는 점입니다. 곤란은 나 혼자에게만이 아니라, 남에게도 있었고, 그들은 그 곤란한 장벽 앞에 굴하는 일 없이 힘차게 뚫고 나갔다는 것도 기억할 필요가 있는 것입니다. "너희는 믿음을 굳게 하여 저를 대적하라 이는 세상에 있는 너희 형제들도 동일한 고난을 당하는 줄을 앎이니라"(벧전5:9)
일곱째, 하나님을 찾게 하고, 영혼을 살립니다.(시78:31- 34, 잠23:19)
어떤 과학자가 나방이 어떻게 고치를 만들고 그 고치 속에서 어떻게 나비로 탈바꿈하는 가를 관찰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 과학자는 고치 속에서 밖으로 나오려고 바둥거리며 온 힘을 다하는 애벌레가 안쓰러워 칼을 가지고 고치 위쪽을 쭈- 욱 찢어 주었습니다. 그런데, 이상한 것은 밖으로 쉽게 빠져 나온 나방에게 고통은 중단되었으나 그 나비는 곧 죽어 버리고 말았습니다. 놀란 과학자가 나비의 죽음을 연구해 본 결과는 이렇습니다. 나비는 고치를 뚫고 나오려고 버둥거릴 때 날개에서 기름기가 흐르게되고 그 기름 때문에 고치에서 나와 햇볕을 받을 때 날개가 마르지 않고 쫙~ 펴져서 하늘을 날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나방이 불쌍하다고 하여 인위적으로 고치를 뚫고 나올 때의 고통을 제거해 버리면 나방이 쉽게 나오기는 하는데 결국은 기름기 없는 날개로 인하여 날지를 못하고 햇볕에 말라죽는 다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우리가 고난 당할 때 그 고난이 없었으면 하기도 하고 누군가 빨리 고난을 제거하여 주기를 바라기도 합니다. 하지만 그렇게 되면 우리의 삶은 과학자의 손에 의해 고통 없이 세상으로 빠져 나온 나방 같아서 날지 못하고 곧 우리의 영성이 죽을 지도 모릅니다. 우리 하나님은 이 사실을 너무나 잘 알고 계시기 때문에 우리가 힘겨운 고통으로 바둥대고 있을 때도 도와 주시지 않는 듯 멀리 계시는 겁니다. 이 일로 인하여 우리는 하나님을 원망도 하지만 우리의 바둥거림을 통하여 우리의 믿음의 날개에는 성령의 기름이 흐르게 되고 그 바둥거림의 시간을 통하여 우리는 죽는 것이 아니라 살게 됩니다 뿐만 아니라, 푸른 창공을 날아가는 나비처럼 저 높은 곳을 향하여 힘차게 올라갈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러니, 지금의 고난이 어떤 것이든 하나님을 기다리며 참아 내십시요. 우리가 진정 하나님의 자녀라면 절대로 고난 때문에 망하거나 죽지 않습니다.
여덟째, 주의 능력을 알게 합니다.(고후4:8-11)
영국 한림원(The Royal Society)에는 과학자들의 초상화가 걸려있습니다. 만유인력의 법칙을 발견한 아이잭 뉴턴이라든지 열역학의 복사법칙을 발견한 제임스 진수는 모두 영국이 배출한 석학들입니다. 이 가운데 진스의 고백이 있습니다.
"나는 하나의 과학자에 불과하다 학문을 연구하면 할 수록 창조주 하나님의 위대함에 감복할 뿐이다. 제한된 지식을 알게된 피조물인 내가 어떻게 하나님의 무한한 능력을 알 수 있겠는가"
하나님의 광대함을 이해하면 우리들의 잠시고난이라는 것도 능히 견딜 수가 있습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섭리는 무한 하시고 그 하나님이 나를 사랑하시기 때문입니다. 많은 믿음의 사람들은 고난 속에서 승리케하시는 하나님의 섭리를 바라보면서 하나님께 영광을 돌렸습니다.
아홉째, 겸손하게 하고, 죄를 깨닫게 해줍니다.(신8:3, 16, 욥36:8,9)
인간이 하나님의 은혜를 거부하고 스스로의 능력과 방법에 의지했을 때 인생에는 가시가 돋아나기 시작했습니다. 고통의 가시는 우리에게 "너는 하나님의 신세를 정말지지 않고 살겠느냐? 너는 네 능력과 방법을 의지해서 살겠느냐? 그러면 네 앞길에는 끝없는 가시가 생겨날 것이다"라고 말할 것입니다. 이러므로 인생의 가시에 찔릴 때 '가시의 외침'에 귀를 기울이고 잘못된 것을 청산해야 합니다. 인생의 가시에 찔려 고통 당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들은 '왜 이런 일이 생깁니까? 사랑의 하나님께서 왜 이런 고통을 주십니까'라고 말합니다. 그러나 원망하고 불평하기 전에 고통의 의미를 발견해야 합니다.
열 번 째, 고난 후 평안과 안식을 얻게 하고, 주의 고난에 동참케 합니다.(시94:12,13, 벧전4:1, 13)
“자녀이면 또한 후사 곧 하나님의 후사요 그리스도와 함께 한 후사니 우리가 그와 함께 영광을 받기 위하여 고난도 함께 받아야 될 것이니라. 생각건대 현재의 고난은 장차 우리에게 나타날 영광과 족히 비교할 수 없도다”
(롬 8:17,18)
열한 번 째, 성화하게 합니다.(벧전1:7)
"하나님이여 주께서 우리를 시험하시되 우리를 단련하시기를 은을 단련함같이 하셨으니"(시66:10)
바닷가에서 두 굴조개가 이야기를 주고받는데 한 굴조개는 자기 뱃속에 원인을 알 수 없는 한 혹이 생겨 말할 수 없는 아픔을 겪고 있다고 하소연을 하였습니다. 이때 옆에서 하소연을 듣고 있던 다른 굴조개는 '자기는 아무 탈 없이 잘 지낸다.'고 자랑하면서, 자기에게 건강을 주신 조물주를 찬양하였습니다. 굴조개들의 대화를 엿들은, 지나가던 거북이 한 마리가 건강을 자랑하는 굴조개에게 "당신은 건강해서 좋을지 모르지만, 뱃속에 혹이 있어 신음하는 굴조개는 지금 그 뱃속에 진주를 만들고 있다는 사실을 알아야 할 것입니다."라고 했다고 합니다. 하나님 앞에 진실 되게 살려는 사람은 고난을 보석으로 생각합니다.
고난을 모르는 사람보다 더 불행한 사람은 없습니다. 고난은 천국으로 인도하는 채찍이며, 고난은 승리의 전주곡입니다. 고난에는 반드시 섭리가 있습니다. 이것을 깨닫고 감사하며 사는 성도가 되어야 하겠습니다. 고난이 내게 반드시 유익을 가져온다는 것을 알고 낙심하지 말고 승리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 기도: 우리의 죄를 사해주시기 위해 십자가의 고난을 당하신 주님, 저희로 그리스도 안에 있으므로 고난도 유익이라고 고백할 수 있게 하심에 감사드립니다 주님 안에 있을 때 고난까지도 축복의 통로가 됨을 기억하며, 세상을 좇는 어리석은 자가 아니라 고난의 십자가를 짊어지는 지혜로운 자 되게 하소서. 어떠한 상황에서라도 주님의 깊은 뜻을 발견하고 가치 있게 살아가게 하옵소서 우리 구주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한태완 목사(하나교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