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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화 본 문 : 행11:1-18

어릴 때 제가 교회에 다닐 때 기억자 교회가 있었습니다. 강대상이 기억자 가운데에 있었고 한 쪽에는 여자 성도님이 들어가 앉았고 한 쪽에는 남자 성도님들이 앉아 예배를 드렸습니다. 옛날 어떤 교회는 가운데를 커튼으로 가른 후에 남녀가 갈라 앉는 교회도 있었고 커튼으로 가르지 않았을 지라도 남녀가 같이 앉지 않고 양쪽으로 갈라 앉았습니다. 유교의 도덕 기준인 남녀 7세 부동석이라는 도덕 기준이 교회에도 그대로 적용되었던 것입니다. 그러나 지금은 그런 교회는 없습니다. 옛날에 보면 무당으로 있다가 예수 믿게 된 사람이 새벽 예배에 나오면 새벽 예배 나오기 전에 목욕 재개하고 새벽 예배에 나오는 사람도 있고 불교에 심취했다가 교회나오는 사람 중에는 사람을 만날 때 합장을 하고 인사를 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심하면 말씀을 들으며 다른 사람들은 할렐루야하는데 혼자 나무아비 타불 하는 사람도 있었다고 합니다. 사람이 자신이 가지고 있는 관습으로부터 변화한다는 것이 쉬운 일이 아닙니다. 바둑을 좋아하는 어떤 장로님은 기도하는데 아멘하지 않고 아다리라고 했다는 이야기도 들어 보았습니다. 사람이 변화한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닙니다.
그러나 변화해야 할 때는 아픔이 있더라도 변화해야 합니다. 변화하지 않으면 도태되게 되어 있습니다. 세계적 컨설팅 회사인 부즈-앨런&해밀턴는 한국 사회를 진단하면서 "지금 한국은 마치 호두 깨는 기구(넛 크래커) 속의 호두와 같다. 변하지 않으면 부서질 수밖에 없는..."고 진단하는 글을 보았습니다. 지금은 산업혁명이 일어날 때처럼 디지털 혁명, 지식 정보 혁명이 일어나고 있는 때입니다. 과거 1810년대 영국에 몰아 닥친 산업혁명의 초기에 노동자들이 기계화 물결은 반대하고 방직기를 파괴하였습니다. 기계화의 물결에 밀려 실직 위기에 놓이자 조직적인 저항에 나섰던 것입니다. 이 저항을「러다이트운동」입니다. 결국 기계문명에 적응하지 못한 근로자는 도태되었습니다. 정보와 지식사회는 새로운 직장 문화를 가지고 오고 있습니다. 미국이나 영국의 경우 평균 직장 근무 연수는 약 6년 정도에 불과합니다. 이런 변화의 물결 속에 생각이 바뀌지 않고 고집을 부리며 옛 생각으로 살아가면 사회에서 도태됩니다. 앨빈 토플러는“이제 지구촌은‘강자’와‘약자’대신‘빠른 자’와 ‘느린 자’로 구분될 것이고 빠른 자는 승리하고 느린 자는 패배한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빌 게이츠는 최근에 내놓은 책 ‘생각의 속도’에서 다가올 10년의 변화가 지난 50년의 변화속도를 압도할 것이라 말하고 있습니다. 어떤 미래학자는 오늘의 급속한 변화에 80%는 적응하지 못하고 적응하지 못하는 80%는 가면 갈수록 도태될 것이라고 했습니다.
토인비는 변화를 거부하면 결국 자기만족, 자기도취, 자아 우상화에 빠져 망하게 됩다고 하고 있습니다. 유대인들도 선민사상에 사로잡혀 변화를 거부하였을 뿐 아니라, 기독교라는 새로운 변화를 수용하지 못하고 탄압함으로써 결국 수난의 민족으로 남을 수밖에 없었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우리 나라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일본과 중국이 기독교와 함께 서양 문명을 받아들여 변화를 꾀할 때 당시 성리학에 바탕을 둔 조선의 양반세력들은 평등사상에 바탕을 둔 기독교 정신에 위기의식을 느껴 변화를 거부하고 천주교인들을 '사학죄인'으로 몰아 1만여 명이나 죽이고 쇄국정책을 펼쳐 서양학문이 들어오는 것을 차단하였습니다. 그렇게 하여 나라가 어떻게 되었습니까? 나라도 개인도, 사회도, 가정도 변화를 거부하면 망합니다.
우리 믿음의 사람은 어떻게 변해야 하겠습니까?

1. 무엇보다 먼저 생각이 변화되어야 합니다.
예수님을 영접하고서도 여전히 예수믿기 전의 생각에 사로잡히면 성숙하지 못하고 변화를 체험하지 못합니다. 세속적인 생각에서 복음적인 생각으로 완전히 변화가 되어야 합니다.
1)본문
베드로는 예수님을 영접하고 그리스도의 제자가 되었지만 여전히 유대교적 생각을 가지고 살았습니다. 그것이 지난 주에도 우리가 살펴 보았듯이 이방인에 대하여 하나님의 백성이 될 수 없다는 편협된 고정관념이었습니다. 그러나 그의 생각은 바뀌었습니다. 성령님의 능력으로 변화가 되었습니다. 그러나 예루살렘에 있던 다른 사도들과 기독교로 개종한 유대인들은 아직도 변화가 되지 못하였습니다. 베드로가 이방인들에게 하나님의 말씀을 전했다는 소식을 듣고 그들은 어떤 반응을 보입니까? 1-3절을 보십시오. 하나님의 말씀을 받았다는 소식을 들었습니다. 그러면 기뻐해야 할 일입니다. 그런데 기뻐하기는커녕 힐난을 합니다. 비난하고 정죄하였다는 것입니다. 무엇으로 힐난을 합니까? 복음 전했다는 문제가 아닙니다. 성령을 받았다는 것이 문제가 아닙니다. 무엇입니까? 3절을 보십시오. 무할례자의 집에 들어가 함께 먹었다는 것입니다. 지극히 편협적인 문제입니다. 다른 사람들은 몰라도 사도들은 직접 예수님으로부터 3년 동안 배운 사람들이고 예수님의 유언의 말씀을 들은 사람들입니다. 예수님이 유언적으로 그들에게 부탁하신 말씀이 무엇입니까? 마28:19-20절을 보십시오.
"그러므로 너희는 가서 모든 족속으로 제자를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주고 내가 너희에게 분부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라 볼지어다 내가 세상 끝날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 하시니라"
사도행전 1:8절을 보십시오.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 하시니라 (행 1:8)"
유대인들에게만 복음을 전하라고 했습니까? 아닙니다. 모든 족속입니다.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끝까지입니다.
왜 그들을 불렀습니까? 사람낚는 어부로 그들을 불렀습니다.
"말씀하시되 나를 따라오너라 내가 너희로 사람을 낚는 어부가 되게 하리라 하시니 (마 4:19)"
이것이 그들이 부름받은 본질입니다. 사명입니다. 그런데 그것을 잃어버린 것입니다. 그일을하는 것을 문제 삼는 것입니다.

2)예수 믿고 나면 우리의 생각이 바뀌어야 합니다.
인생관이 바뀌어야 합니다. 세계관이 바뀌어야 합니다. 가치관이 바뀌어야 합니다. 삶의 목적이 바뀌어야 합니다. 생각이 바뀌어야 합니다.
생각을 바꾸려면, 우선 고정관념(固定觀念)을 뛰어 넘고, 선입관(先入觀)과 편견(偏見)을 버려야 합니다.
가난한 행상의 아들로 태어난 청년이 있었습니다. 그는 가난에 한을 품고 무섭게 일했습니다. 야심찬 사업가로 변신한 그의 인생철학은 `나를 위해, 돈을 위해'였습니다. 청년은 미국석유업의 90% 이상을 차지하는 세계적인 대부호로 성장했습니다. 그 과정에서 노동자들을 심하게 착취했습니다. 사람들은 존경심이 아닌 돈때문에 그에게 무릎을 꿇었습니다. 그의 나이 쉰셋. 몸과 마음은 심하게 망가져 있었습니다. 심한 노이로제와 소화불량, 무력감과 악몽..의사는 죽음을 준비할 것을 선언했습니다. 그때 신앙의 눈을 뜬 대부호는 `하나님을 위해, 이웃을위해'로 인생관을 바꾸었습니다. 거액을 헌금하여 시카고대학을 설립했습니다. 리버사이드교회도 세웠습니다. 여생을 `교육'과 `선교'와 `사랑실천'에 쏟았습니다. 그는 베푸는 삶을 통해 건강을 되찾았습니다. 그가 바로 98세까지 장수한 록펠러입니다. 그리스도를 영접하여 생각이 바뀌니까 그의 인생이 바뀐 것입니다.

"부활"을 쓴 러시아의 위대한 작가 톨스토이는 자신의 변화에 대하여 이렇게 말하고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말씀은 제게 믿음을 주었습니다. 저는 그 말씀을 믿게 되었습니다. 그로부터 저의 모든 삶이 변화되어 이전에 제가 바라던 것을 바라지 않게 되었으며 반면에 제가 결코 전에 바라지 않았던 것을 바라게 되었습니다. 이전에 저의 눈에 악으로 보였던 것이 선으로 보였으며 선으로 보였던 것이 악으로 보였습니다"

우리는 문제는 이 세상만이 문제가 아닙니다. 앞으로 인간이 상상하지 못할 것대한 변화가 있을 것입니다. 노아의 홍수처럼 소돔과 고모라의 멸망처럼 말입니다. 예수님의 재림으로 새로운 세계가 열리는 때가 옵니다. 그 때 우리가 주님을 모시지 않으면 영원히 도태될 것입니다. 예수 믿으면서도 세속적인 세계관, 세속적인 인생관 세속적인 가치관을 가지고 사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저 이 땅이 전부인 것처럼 사시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러나 이 땅이 전부가 아닙니다. 천국이 우리에게는 있습니다. 천국을 바라보며 생각하시기 바랍니다. 그 나라 가면 어떻게 될까를 늘 마음에 두고 생각하시기 바랍니다.

어디까지 바뀌어야 합니까? 생각만 바뀌면 되는 것입니까? 아닙니다.

2. 삶의 방식까지 바뀌어야 합니다.
생각의 변화가 변화의 시작이라면 변화의 끝은 생활 방식, 의식문화입니다. 직장 문화가 바뀌는 것이고 가정 문화가 바뀌는 것이고 결혼 문화가 바뀌는 것이고 장례문화가 바뀌는 것이고 제사 문화가 바뀌는 것이고 입시문화가 바뀌는 것이고 삶의 문화가 바뀌는 것입니다.

1)본문
예수님을 영접하기를 하였지만 여전히 옛날 유대인의 습관대로 살고 있는 것입니다. 그들이 문제 삶은 말씀을 전한 것이나 성령받은 것이 아니라 이방인과 식사를 했다는 것입니다. 이방인과 식사하는 것은 그들의 생활 방식과는 맞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삶의 문화가 바뀌는 것은 쉬운 문제가 아닙니다. 사도행전 15장에 가면 또다시 문제가 됩니다. 15장 5절을 보십시오. 이방인에게 할례를 주고 모세의 율법을 지키게 하는 문제로 한바탕 또 소동이 벌어집니다. 신약성경에 보면 이 문제는 계속적으로 언급이 됩니다.(롬2:25-29 4:9 고전7:18,19 갈6:11-16 엡2:14-17) 단시일에 해결될 문제 아닙니다.

2) 신앙인이면 우리의 생활 방식의 변화가 있어야 합니다.
거지로 살 때는 거지의 문화가 있습니다. 그러나 왕자가 되면 왕자 문화가 있는 것입니다. 왕자가 되어 거리에 자고 밥그릇 가지고 구걸하며 품바 춤을 추고 다니면 안되는 것입니다. 왕자답게 살아야 하는 것입니다. 변화(變化)의 법칙이 있습니다. 먼저 생가이 변합니다.
생각이 변하면 행동(行動)이 변하고 행동이 변하면 습관(習慣)과 태도(態度)가 변합니다. 습관과 태도가 변하면 인격(人格)/성격(性格)이 변하고 자신의 인생이 변하게 되어있습니다.
인간은 어떤 행동을 하기 전에 의식적이건 무의식적이건 생각을 하게 되며, 어떤 행동을 했을 때, 그 결과에 만족하게 되면 그 행동을 반복(反復)하게 됨으로서, 그 사람의 습관과 태도가 형성됩니다. 일단, 습관과 태도가 형성되면, 그 사람의 인격과 성격이 결정되고, 그에 따라 그 사람의 인생의 문화가 바뀌어 버리는 것입니다.
예수를 믿으면서도 여전히 삼강 오륜의 틀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선인들은 삼강오륜(三綱五倫)을 우리 사회의 기본적 윤리로 존중했습니다. 그러나 시대가 변했습니다. 특히 믿는 사람은 이제 인생이 바뀐 사람들입니다. 그런데 여전히 부부유별(夫婦有別)하여 어쩌자는 것입니까? 칠거지악(七去之惡) 삼불거(三不去) 장유유서(長幼有序) 군신유의(君臣有義)를 하여 어쩌자는 것입니까? (예 옛날 전도 교회 다님 아버지 제사 불효 교회 못다니겠다) 지금도 구공탄과 캐시밀론 이불에 전념한다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타자기가 그립다고 계속 타자기만 붙들고 있든지 돌 나이타가 좋다고 그것만 붙들고 있으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예수 믿으면 믿는 사람답게 삶의 문화가 바뀌어야 합니다.
야곱은 신앙 생활을 하지만 여전히 바뀌지 않습니다. 그러다가 얼마나 어려움을 당합니까?
아버지의 집에 있을 때 아버지와 형 에서를 속여 장자권과 축복권을 빼앗는 바람에 그곳을 떠나서 20년동안 타향살이를 합니다. 어떤 사람들은 직장을 갖고 결혼을 해도 방황을 합니다. 그 이유는 겉은 변했지만 속이 변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야곱은 분명히 하나님을 만났습니다. 하나님의 음성도 듣고 보호도 받았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불안해 합니다. 여전히 세속적입니다. 이러한 야곱에게 생각하지도 못했던 불상사가 생기고 맙니다.
그 사건이 창세기 34장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하나뿐인 딸 디나가 강간을 당한 일입니다. 무척이나 고통스러운 일입니다. 행복이 산산조각 나버렸습니다. 그러나 이런 일을 당한 야곱은 아버지로서 남자로서 속수무책입니다. 아직도 진정으로 변화하지 않은 그는 자신감도 없었고 이런 문제를 제대로 감당해내지 못합니다.
창세기 35장을 보십시오. 위기를 당하자 자신의 생활 문화을 완전히 바꾸어 버립니다.
인사동 골목에 있는 승동교회는 백정들을 기반으로 세워진 교회라고 합니다. 초대 장로가 박성춘 장로인데 이분이 백정이었다고 합니다. 우리 나라에 선교사들이 들어온 후 세브란스 병원이 설립되고 의과 전문대학이 세워지고 초창기에 이 대학을 졸업한 후 외과 의사가 되었던 박서양라는 사람이 있는데 이 사람의 아버지의 이름은 박성춘이라고 합니다. 배우지 못한 것이 평생 한이 되어 아들을 이곳에 입학시켰는데 아들은 예수님의 제자가 되었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아버지 박성춘이 장티푸스에 걸리게 되었습니다. 요즘 장티푸스는 병도 아니지만 이 시대에는 장티푸스에 걸렸다 하면 그 집을 쓸어내고 동네에 새끼줄을 치고, 교통을 차단하였습니다. 무서웠던 염병입니다. 아버지 박성춘이 갈수록 심해지고 열이 올라가고 보니 정신이 '들어왔다, 나갔다'합니다. '죽었다, 살았다'하는 위기에 처했습니다. 이때 아들 박서양이 세브란스 병원의 원장 어비슨 선교사를 찾아갔습니다. "선교사님. 제 아버지가 장티푸스에 걸렸는데 여기까지 모셔 올 재간이 없습니다. 열 때문에 정신을 잃고 죽어 가는데 사람 좀 살려주십시오."라고 부탁합니다. "그래? 가자."라고 말하고 함께 박성춘의 집으로 갔습니다. 어비슨 선교사가 주사와 약으로 치료했더니 열이 내려갔습니다. 이때 아버지는 깨끗이 살아났습니다. 그후 예수를 믿어 사람이 완전히 변해버렸습니다. 백정들에게 복음을 전합니다. 말씨가 달라졌습니다. 생활이 달라졌습니다. 백정 문화는 어디 한 곳없이 사라졌습니다. 그는 승동교회 초대 장로로 선출이 되었습니다.

그러면 우리가 어떻게 변화되어야 하겠습니까?
3. 우선 나부터 변화되어 다른 사람들을 변화시킬 만큼 우리가 변화되어야 합니다.
1)본문
베드로가 먼저 변화되었습니다. 그리고 자신이 변화된 사실을 분명하게 설명을 합니다(4-17). 그리고 베드로는 그들을 설득합니다. 무엇으로 설득합니까? 자신이 보고 듣고 경험한 것으로 설득합니다. 자신의 경험을 통하여 이방인이 구원받는 것이 하나님의 뜻임을 설명(4-17)합니다. 성령이 임한 것으로 이방 선교에 대한 정당성과 당위성에 대한 확신(행10:15,34,47)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힐난에 당황하거나 노하지 않습니다. 설득 굴복시킵니다.(18) 인간적 어리석음과 연약함 벗어버리고 하나님의 지혜와 능력으로 무장합니다. 가이사랴에 우연히 또는 자신의 의지로 간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인도하심이라는 사실을 분명히 합니다. 보고 듣고 만남을 확실히 말씀합니다(7,11). 그러자 다른 사도들과 유대 기독교인들도 변화됩니다. 18절을 보십시오. 이방인 선교를 인정하고 하나님께 영광을 돌립니다. 편협성을 벗어나게 됩니다. 고정관념을 탈피하게 됩니다. 잠잠했습니다. 인정했다는 말입니다. 이방인도 구원받을 수 있다는 사실을 알았습니다. 그리고 하나님께 영광을 돌렸습니다.

2)우리도 우선 내가 먼저 변하여 다른 사람들을 변화시키는 사람들이 되어야 합니다.
(1)먼저 내가 변해야 합니다.
어떤 사람은 설교 들으면서 아내의 옆구리를 찌르며 당신 잘들어 라고 말하시는 분이 있습니다. 자신은 문제가 없는데 자녀들에게 문제가 있다고 자녀들만 탓하는 부모들도 있습니다. 자신은 문제없는데 부모가 문제가 있어나 자신이 잘못되었다고 원망하는 자녀들도 있습니다. 모든 것을 다른 사람 탓으로 돌립니다. 우리나라 정치인들이 하는 것을 그대로 흉내내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우리 당은 전혀 문제가 없는데 다른 당이 문제가 있다는 것입니다. 국민은 전혀 문제가 없는데 정부가 잘못하여 이렇게 경제가 어렵고 실업자가 많이 나온다는 것입니다. 경영자는 전혀 문제가 없는데 근로자가 문제가 있어 회사 경영이 어렵다는 것입니다. 나의 변화없이는 결코 타인의 변화를 기대할 수 없는 것입니다. 먼저 내가 변해야 합니다. 내가 변하면 가정이 화목해 집니다. 내가 변하면 나라가 좋아 집니다. 내가 변하면 세상이 바뀌게 됩니다. 우리는 때때로 우리 사회가 변화되어한다느니 국가가 변화가 되어야 한다느니 혹은 교회가 변화되어야 한다고 주장을 합니다. 그러나 변화의 우선 순위는 나 자신입니다. 내 자신이 변화되지 않으면 우리 주위를 변화시킬 수 없습니다. 변화의 출발점은 바로 나 자신부터 입니다.
알콜 중독자를 둔 한 아내의 글을 읽어 보았습니다. "수 년 동안 저는 저자신의 노력으로 남편을 변화시키려고 했습니다. 천성적으로 저는 의지가 강했고 제가 원하는 바를 위해 투쟁할 준비가 되어 있었습니다. 그러나 변화되지 않더라는 것입니다." 그러나 어느 날 포기하고 말았어요. 목욕탕 속에서 울면서 기도를 드렸다는 것입니다. 자신을 씻어야 한다는 것을 자신이 변화되어야 한다는 것을 남편을 사랑하고 남편을 위해 헌신했다고 합니다. 그러자 남편도 서서히 변화되더라는 것입니다.

(2)내가 변했으면 상대를 변화시켜야 합니다.
나의 변화로 상대에게 영향력을 끼쳐야 합니다.
나사로가 변화되니까 나사로 때문에 믿는 사람이 많아졌습니다.
웨슬리의 변화는 교회를 변화시키고, 영국을 변화시켰습니다. 그리고 감리교회가 이 땅에 세워지게 하는 역할을 하였습니다. 칼빈의 변화는 스위스를 변화시켰고 장로교를 만들어 내게 되었습니다. 오순절 마가의 다락방에서 기도하고 있었던 120명의 성령 체험은 초대 교회를 탄생하게 하였습니다. 다메섹 도상에서 예수님을 만난 사도 바울의 변화는 이방 세계에 교회를 탄생하게 하였습니다.
박찬호 선수가 활약하고 있는 미국 LA다저스의 강타자 셰필드는 3년 전만 하더라도 가장 불행한 야구선수 중 한 사람이었습니다. 그는 결혼에 두번이나 실패했습니다. 한 여인은 아기를 안고 운동장에 찾아와 셰필드를 괴롭혔습니다. 그러나 셰필드는 요즘 ‘실력’과 ‘인격’을 겸비한 모범적인 선수로 불리게되었습니다. 그는 화려한 플레이로 ‘제2의 전성기’를 맞고 있습니다. 그 원동력은 무엇일까요. 셰필드는 2년 전 독실한 크리스천이며 가스펠가수인 아내 디레온을 만났습니다. 그는 아내의 내조와 기도에 힘입어 마음의 안정을 찾아 전혀 새로운 사람으로 변화됐었습니다. 그는 모든 공을 아내에게 돌립니다. “디레온은 하나님이 나를 위해 예비해놓으신 최고의 선물이었다. 그녀를 만난 후 비로소 삶의 의미와 목적이 보이기 시작했다”라고 고백하고 있습니다.
어머니가 30년간 교육한 남자를 아내는 3년이면 바꾸어놓는다는 말이 있습니다.

변화가 요구되는 세상에 우리가 살고 있습니다.
1. 무엇보다 먼저 생각이 변화되어야 합니다.
2. 삶의 방식까지 바뀌어야 합니다.
3. 우선 나부터 변화되어 다른 사람들을 변화시킬 만큼 우리가 변화되어야 합니다.

변화/행11:1-18/김필곤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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