활 노래를 부르자 (삼하 1:17-26, 삼하 2:5-7)
본문
지난 주일은 ‘용서 그리고 사랑, 이보다 더 좋을 순 없다’ 그런 말씀이었습니다. 오늘도 제목은 다르지만 역시 그런 사랑에 대한 하나님의 귀한 말씀을 통하여 은혜를 받고 사랑의 사람이 되며, 또한 사랑하는 우리 모든 심령위에 하나님의 사랑으로 충만하시기를 바랍니다.
우리는 부족한 것이 늘 물질이다, 육에 대한 부족한 것을 지적합니다. 실상은 그런 것이 아닙니다.
우리에게 부족한 것은 사랑입니다. 우리의 가정, 가슴, 교회, 사회에 부족한 것은 하나입니다. 사랑입니다. 사랑만 있으면, 사랑만 더해지면 우리의 삶은 모든 것이 더해지고 더 좋아집니다. 왜 그렇습니까? 사랑보다 더 아름답고 사랑보다 더 귀한 것이 없기 때문입니다. 우리 인간은 원래 하나님의 사랑 안에 살게 되어 있었습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사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 받은 우리 인간은 하나님의 자녀입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얼마나 사랑하시냐 하면 우리가 자녀를 사랑하는 것보다 몇 만 배 우리를 사랑하십니다. 그러나 우리가 범죄 하여 이 사랑이 떠나갔습니다. 하나님과 관계가 끊어졌습니다. 우리가 하나님 사랑에 등을 돌렸습니다. 하나님의 사랑을 떠나 마귀의 품안에 안겼습니다. 하나님이 아무리 사랑하려고 해도 우리가 하나님을 저버렸습니다. 그래서 에덴동산에서 범죄한 우리 인간은 가정이 무너졌습니다. 아담 이브가 서로 공격합니다. 허물을 자기에게 돌리지 않고 당신 때문이라고 그렇게 말합니다. 이 모든 건 당신이 문제라고. 여러분! 오늘 우리가 문제점을 당신에게서 찾는 사회는 해결될 수 없습니다. 넘어진 사회, 병든 사회는 문제가 당신에게 있다고 늘 공격합니다. 어디든지 그곳은 지옥과 가까운 곳입니다. 마귀가 지배하는 곳에 처음 들리는 소리는 너 때문이라는 말입니다. ‘너 때문에 나 못살겠다.’ 오늘 우리에게 들려오는 이야기들은 모두가 다 너 때문이라고 이렇게 말하고 있습니다. 아담 이브가 하나님의 그 어마어마한 참 사랑, 영원한 사랑, 거룩한 이 사랑에서 벗어날 때에 우리 인간은 이렇게 저주스러운 고백이 입에서 나오게 됩니다.
창세기 4장으로 넘어가면 아담과 이브만 그렇게 된 것이 아니라 그 형제도 또한 그렇게 됩니다. 아들이 가인과 아벨인데 두 사람이 서로 미워하게 됩니다. 시기 질투하여 살인 사건이 일어납니다. 동생을 죽입니다. 형제간이 그렇게 되었습니다. 하나님의 사랑이 없는 곳에 부모, 자녀, 형제, 자매, 아내, 남편 이 모든 관계가 무너지게 됩니다. 그래서 요즘 어머니들은 아기를 낳고 산후조리원에 한 달 동안 대체로 가서 조리하고 집으로 돌아옵니다. 이럴 때 꼭 조심해야 하는 것이 있답니다. 그것이 무엇이냐 하면, 집으로 돌아올 때 어머니와 아버지가 그 아기를 안고 집으로 들어오면 안 된다고 합니다.
자기가 낳은 아기니까 집으로 올 때 안고 들어오는 데, 그것을 만일 누나나 형이 보면 한 순간에 ‘내 원수가 생겼구나! 내 사랑을 빼앗는 대적이 생겼구나!’라는 충격이 생기며, 그 충격이 굉장히 크답니다. 그래서 계속 울기도 하고 막 고민하며, 이 아이가 수심에 빠진답니다. 아프고 병도 생긴답니다. ‘왜 웬 놈이 들어왔냐?’, ‘아~ 내 사랑을 빼앗아 간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 아이에게 충격이 옵니다. 그러므로 데리고 들어올 때는 엄마, 아빠는 그냥 들어오고 다른 사람을 통해서 안고 들어오게 하는 것이 좋다고 합니다. 왜 그렇습니까? 우리는 형제도 사랑할 수 없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사랑이 끊어졌기 때문입니다. 인간관계는 하나님을 떠나서는 회복을 할 수가 없습니다. 정상적으로 갈 수가 없습니다. 창세기에 보면 야곱과 에서가 쌍둥이인데, 쌍둥이도 뱃속에서 서로 벌써 싸우더라는 것이 성경에 나옵니다. 둘이 서로 싸웠다라는 말이 나옵니다. 오늘 형제간에 모두 소송하고 미워하며, 살인하고 헤어지며, 서로 형제간에도 원수같이 지내는 것은 이미 창세기 4장에 나옵니다. 우리 인간이 하나님의 사랑에서 떠났기 때문입니다.
이 세상에 가장 아름답고, 귀한 것, 어떤 것보다도 앞세워야 할 것은 사랑입니다. 영적으로도 제일 큰 은사가 사랑입니다. 믿음보다 위에 있습니다. 믿음, 소망, 사랑은 항상 있을 것인데 그 중에 제일은 사랑이라고 했습니다. 그래서 우리 교인들은 어떤 은혜를 받아도 사랑의 은사를 받지 못한 마음은 늘 허전합니다. 믿음이 있어도 기적이 일어나도 예언과 방언을 해도 태산을 옮기는 믿음이 있어도 하나님의 말씀을 아무리 바이블 스터디를 해서 많이 알고 신학자가 된다고 할지라도, 사랑의 은사가 없는 사람은 항상 뭔가 아쉽고 허전하며, 또한 뭔가 불안하기 그지없는 영적 상태가 되며 안정이 안 됩니다. 육적으로도 그렇습니다. 아무리 가정이 좋은 것으로 채워져도 사랑이 없는 가정은 부족합니다.
아무리 남편의 지위가 높고 성공하며 돈을 많이 가져 다 주어도 사랑이 부족하면 그 가정은 육적으로도 병이 듭니다. 사막과 같습니다. 어느 것 보다도 사랑이 귀합니다. 무엇보다도 사랑이 앞서야 됩니다. 우리 모든 성도들은 하나님을 잘 경외하여 하나님으로부터 주어지는 아가페의 사랑, 참 사랑, 위로부터 주시는 거룩한 사랑으로 충만하시기를 바랍니다. 이것이 내가 사는 길, 우리가 사는 길입니다. 모두가 다 잘되는 길입니다. 약이 하나 있는데 그 약이 사랑의 약입니다. 이것만이 우리의 가슴, 마음, 우리 모두를 치료할 수 있는 약입니다.
어떤 임금님이 있었는데 아들 삼형제에게 이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것을 가져오면 내가 나라를 물려주겠다고 했습니다. 그래서 맏아들이 가서 제일 아름다운 것으로 장미꽃을 한 아름 안고 아버지에게 갖다 드렸습니다. 그런데 장미꽃은 금방 시들어버리지 않습니까? 아름답지만 시들어버립니다. 계속 갈 수가 없습니다. 그 아름다움은 무너졌습니다. 또한 동생은 그 다음에 무엇을 가져왔느냐하면 어린아이의 웃음을 가져왔습니다. 이 세상에 아이들이 웃는 것보다 아름다운 게 없습니다. 그러나 아이도 웃을 때 웃지만, 한 순간에 또한 울지 않습니까? 변합니다. 아름다움이 될 수가 없습니다. 막내아들이 가서 찾아온 것은 아기를 안고 어린아이를 사랑하는 어머니의 모습을 가져왔습니다. 이 세상
에 제일 아름다운 것은 어머니의 사랑, 자녀를 사랑하는 어머니의 사랑입니다. 그래서 유대인의 격언에 ‘하나님께서는 이 세상에 다 계실수가 없기 때문에 어머니를 곳곳에 두어서 하나님의 사랑을 우리에게 전하신다.’는 말이 있습니다. 어머니의 사랑은 하나님의 사랑을 닮았습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한 그 큰 사랑을 우리는 어머니에게서 볼 수 있습니다. 때에 따라 가정에 아버지들이 조금 잘못하고 가정에 불충실해도 어머니의 사랑만 있으면 그 가정은 완전한 가정입니다. 부부가 모두 다 잘하고 모든 것이 있어도 어머니 사랑이 없으면 문제가 됩니다. 어머니의 사랑이 핵심입니다.
오늘날 청소년들이 이렇게 탈선을 많이 하고 방탕하며, 강퍅하고 악해지며, 잔인해지고 막 거역하며, 이런 원인을 학자들은 어머니의 사랑에 문제가 있다고 보는 분들이 있습니다. 이 학설도 상당히 일리가 있습니다. 그래서 어머니는 사랑만 필요한데 애들과 대화중에도 어머니가 너무 똑똑하면 안 된다고 합니다. 말 잘하면 안 된다고 합니다. 사랑만 필요하답니다. 사랑만. 우리 어머니 너무 멋이 있구나, 우리 어머니에게서 사랑을 발견하지 못하고 다른 걸 발견할 때, 집을 뛰쳐나가 어머니의 사랑을 찾으려고 하다보니까 엉뚱한 길로 빠지게 됩니다. 요즘 어머니들이 좀 문제가 있지 않습니까? 애를 낳아 기르지도 않고 젖도 안 먹이며, 태어나면 다 보내 놓고 자기는 자기대로 계속 화장하고 밖으
로 나가고 이러니까 어떻게 되겠습니까? 애들이 어머니의 사랑을 받을 수 없는 것입니다. 어머니와 대화해보면 애가 집니다. 너무 어머니가 훌륭하고 똑똑하며, 지식이 많습니다. 자녀에게는 오직 사랑 하나만 있으면 되는데 너무 다른 면으로 훌륭하니 애가 얻고자 하는 것은 받을 수가 없을 때 문제가 됩니다. 그런 것을 안 느끼십니까? 가장 훌륭한 부모는 자녀를 사랑하는 부모입니다. 가장 훌륭한 지도자는 만왕의 왕이신 예수님으로 오직 사랑으로 온 인류를 세세토록 다스리시는 왕의 왕이십니다.
♬사랑의 왕이시여 자비의 목자시여 나 주를 멀리 떠나♬ ♬예수의 사랑 예수의 사랑 바다 물결같이 내게 임하니 영광의 물결에 온전히 싸여서 내 영혼의 기쁨 한량없도다♬ 예수의 사랑입니다. 사랑이 있는 곳에 힘, 용기, 기쁨, 행복이 있습니다. 누구의 사랑? 예수의 사랑, 하나님의 사랑, 이 사랑이 참 사랑입니다. 집에도 사랑입니다. 사랑 없으면서 다른 말 하지 마십시오. 상담을 해보면 우리 남편 문제 있다, 우리 부인 무슨 문제 있다 하는데 모두 다 틀린 말입니다. 사랑이 없습니다. 사랑이 있으면 모두 다 좋게 보이고 모두 다 좋을 수밖에 없습니다.
제가 어려서 그런 이야기를 우리 마을에 있는 할머니한테 들었습니다. 어떤 마을에 며느리를 보았는데 아들을 아홉 살에 장가를 보냈습니다. 옛날에는 아홉 살에 장가가는 일이 많이 있었습니다. 그러니까 하루 종일 밥 달라 하고 울며 부엌에서 같이 그러니까 참 기가 막힙니다. 잠도 재워줘야 되고 자장자장 하며, 또한 밥도 떠 먹여야 되고 옷도 입혀야 되니 장가는 일찍이 보냈지만 참 안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하루는 부엌에서 밥을 하는데 밥도 덜 되었는데 자꾸 밥 달라고 울며, 그러니까 너무 화가 나고 시집살이가 너무 힘들며 말할 곳도 하나 없는데 신랑이라는 것이 이렇게 울기만 하고 자꾸 옆에서 그러니, 너무 화가 나서 그만 신랑을 달랑 들어서 지붕위로 올려버렸습니다. 옛날에는 지붕이 나지막했습니다. 그래도 화가 풀리지 않고 너무 신세가 한탄스러우며 괴롭습니다. 그런데 저녁이 되어서 들어와야 될 시부모들이 점심 때 밖에서 소를 몰고 들어옵니다. 큰 일 났습니다. ‘내 신세 이제 끝났다.’ 그 때는 시집에서 쫓겨나면 친정 가서도 쫓겨납니다. 죽습니다. 안 받아줍니다. ‘아~ 세상에 이거 큰일 났구나 어떻게 하냐?’ 이럴 때 지붕위에 있던 남편이 세상에 ‘여보! 호박 큰 것 따 갈까요, 작은 것 따 갈까요?’ 이 한 마디에 살아납니다. 그래서 평생 하늘같이 받들었다는 것입니다. ‘나는 백이라도 남자를, 신랑을 따라갈 수 없다.’ 저 같으면 ‘아이고~ 원통해라, 원통해라. 저 아줌마가 나를 들어 올렸다.’고 그럴 텐데 세상에 남자가 다릅니다.
제가 오늘 아침에도 강영우 박사가 오셔서 잠깐 이야기를 했는데, 여자는 하루 종일 5천 단어를 사용한답니다. 남자는 하루 종일 사용하는 단어가 2천 단어라고 합니다. 그러니까 여자는 남자의 거의 2백 퍼센트 이상 많은 단어를 사용하기 때문에 전화를 해도 할 말이 많답니다. 많은 말을 해야 해가 진답니다. 5천 단어를 써먹어야 되니까. 그런데 여자의 약점은 중요할 때에 가장 우선해야할 때에 집중력이 떨어진답니다. 그래서 미국에서도 여자들이 고속도로에 많이 나온 날은 교통사고가 많이 난다고 합니다. 아는 것은 많은데 정녕 브레이크를 밟아야 할 때 못 밟습니다. 중요한, 결정적인 일에 탁 밟아야 할 때를 왔다 갔다 한다는 것입니다. 남자는 말은 많이 안하는데 뭔가 속에 결정적일 때 중요
한, 남자다운 역할을 해 냅니다. 놀랍지 않습니까? 그 아홉 살인데도 다릅니다. 남자가 박사냐 나이가 많으냐 적으냐 이게 아닙니다. 사랑 하나만 있어도 부인을 잡습니다. 아홉 살이래도 잡을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서른 살이 되어도 들추어내고 뭐 잘못 했냐, 네 잘못이다, 너 때문이다, 이러면 부인을 못 잡습니다. 지도자에게 중요한 일이 뭔지 아십니까? 경력? 모두 다 소용없습니다. 그래서 목회도 제가 세계를 다녀보면 모든 것이 부족해도 존경받고 사랑받으며, ‘저것이 설교냐?’ 그런데도 잘 계시는 분이 있고, 설교를 들어보면 너무 잘해도 일 년 가서 보따리 싸는 목회자가 너무 많습니다. 그 이유가 어디에 있는 줄 아십니까? 사랑입니다. 사랑. 사랑이 힘입니다. 제일 큰 힘이 사랑에 연결된 힘입니다. 사랑만이 하나를 만들 수 있습니다. 오늘 나온 모든 성도들은 예수님의 사랑으로 잃어버렸던 에덴동산의 사랑을 우리 하나님을 섬기면서 그 사랑을 발견하며, 사랑의 사람이 되고 사랑을 품으며 살고, ‘내가 늘 이제 누구에게 사랑을 줄까?’ 이런 마음으로 살아가면 여러분의 삶은 기적과 축복이 일어날 줄로 믿습니다.
저희 마을에 무슨 물이 하나 있느냐 하면, 저희들이 어렸을 때 산에 꼴을 하러 많이 다니는데 학교 갔다 와도 소꼴 해라 하면 늘 소꼴을 합니다. 이 풀을 베다 보면 옻나무라는 게 있는데 그 모양이 너무 좋아 손을 대고 낫으로 베다가 그만 옻이 오르는 수가 있습니다. 저는 옻을 많이 탑니다. 옻에 베면 하여튼 얼굴이 짐승 가죽을 벗긴 것과 같습니다. 뻘겋게 막 달아 오릅니다. 온 몸이 이렇게 국수 꼬리같이 부어 오릅니다. 그러면 병원에도 못갑니다. 그 옻의 특징이 가렵습니다. 벌에 쏘인 것처럼 막 가려워서 펄펄 뜁니다. 그리고 부어오릅니다. 그런데 놀라운 것은 우리 마을에, 병원에도 못가니까 어머니가 알려 주는 곳이 있습니다. ‘얘야~ 너 거기 가서 씻어라.’ 그래서 제가 가보니까 요만한 묘가 있는데, 묘 밑에 물이 나오는 것입니다. 솔솔솔 새어 나오는 것입니다. 그걸 앉아가지고 얼굴에도 바르고 몸에도 바르는데 너무 신기한 것은 그 자리에서 이게 아픔이 없어지고 치료가 됩니다. 깨끗하게 나아집니다. 누가 지금 이런 걸 의약품으로 개발하면 굉장히 좋을 것입니다. 누가 돈 벌기 원하는 분이 계시면 제가 그 자리 알려 드릴 텐데... 이 피부가 그만 깨끗해집니다.
기독교는 바로 이러한 물과 같습니다. 온갖 죄악으로 인하여 증오와 미움과 악함과 원망과 불평과 시기로 완전히 상처받은 우리 마음들, 우리 몸들을 어떻게 치료합니까? 물질, 지식, 과학으로 치료할 수 없습니다. 하나님을 떠나 상처받은 우리 인간은 어떤 것으로도 어떤 문화로도 치료가 안 됩니다. 갈수록 더 강퍅해집니다. 가면 갈수록 더 잔인하고 인간관계가 이렇게 사람이라고 할 수 없을 만큼 난폭해집니다. 이것을 어디에서 치료해야 하느냐? 예수의 보혈, 기독교만이 용서의 종교요 사랑의 종교입니다. 놀라운 하나님이 그 아들을 통하여 흘려주신 보혈로 우리를 씻겨야 신비하게 내 죄가 씻어지고 남의 죄도 씻어주는 은혜가 주어집니다. 내 죄를 씻음 받아야 남의 죄도 씻어 줄 수 있는, 용서하
는 마음이 생깁니다. 내가 예수의 보혈로 정결하게 된 경험이 있어야 남의 죄에 대해서도 긍휼이 베풀어지고, 지난 주 이야기한대로 모든 원수를 용서하게 되는 줄로 믿습니다. 예수의 보혈의 능력입니다. 흰 눈보다 더 희게 하십니다. ♬흰 눈보다 더 흰 눈보다 더 주의 흘리신 보혈로 희게 씻어 주옵소서 ♬ 보혈의 은혜가 자녀, 부모, 형제, 누나, 이웃의 허물도 씻어주기에 내게 원수가 없어집니다. 사랑의 힘보다 더 큰 힘이 없습니다. 사랑 하나만 가지고도 평생 동안 어디에서도 우리는 천국같이 살아갈 수가 있습니다.
우리 교인 중에 성공한 분이 있습니다. 세상적으로 크게 성공한 분이 저에게 그런 말을 합니다. 자기는 태어날 때부터 자라나면서 자기 아버지같이 사랑이 없고 냉정한 분, 날마다 때리고 뭐라고 하시는 분이 없었다고 합니다. 자기가 중학교 다닐 때 아버지가 등록금을 준 것을, 세상에 자기가 어디에 뭐가 씌였는지 한 순간에 유혹을 받아서 3,4일 동안 집에 가지도 않고 먹는데에 모두 다 써버렸답니다. 자기 마음대로 써버렸답니다. 이걸 뻔히 큰일 날 줄 알지만 이미 자기가 그런 길에 들어서서 걷잡을 수 없이 거기에 며칠 빠져 버렸습니다. 나중에 돈을 모두 다 잃고 나니까 ‘아하~ 나 죽었구나, 나는 이제 끝났구나.’ 이렇게 생각을 했답니다. 아버지가 찾아왔답니다. 아버지의 얼굴이 무서운 호랑이 같은 얼굴인 줄 알았는데, 아버지가 오시더니만 그렇게 인자한 얼굴로 대해 주시면서 ‘얘야! 너 나하고 장에 가자.’ 하시고는 부산에 시장에 가서 음식을 사 주시면서 ‘너 다른 별일은 없니?’ 하고는 돈 잃은 것은 일절 안 묻더랍니다. 그래서 지금까지 얻어 맞았던 것 모두 다 잊어버리고 완전히 아버지에 대한 조금 있었던 불평, 끓어오르는 것이 싹 없어졌답니다. 그 다음부터 평생 동안 우리 아버지의 그 한 번 용서해준 사랑 때문에, 우리 아버지 세상에 없다, 이 지구위에 우리 아버지 같은 분이 없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돈 있어야 아버지인줄 압니까? 자꾸 꾸중한다고 아버지인줄 아십니까? 지위 높다고 아버지인줄 압니까? 아닙니다. 용서해 주어야 합니다. 사랑해야 그게 큰 힘이 되는 걸 알아야 됩
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위하여 그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보내 주셔서 우리를 위하여 십자가에 못 박혀 돌아가게 하신 그 크신 사랑 때문에 우리가 여기 있는 것입니다. 날마다 우리를 사랑하시는 그 큰 사랑 ♬그 큰 사랑 내 맘속에 명랑하게 비췰 때에 찬송하네 그 큰 사랑 내 맘속에 화평함과 기쁨주네 그 큰 사랑♬
오늘 본문을 말씀 드리면 활 노래라는 것입니다. 이걸 어떻게 보면 노래가 아니고 굉장히 비극의 순간인데 오늘 이 노래가 나왔습니다. 이 내용의 배경은 다윗이라고 하는 이스라엘의 왕이, 정치는 정적이 있지 않습니까? 사울 왕이 다윗을 얼마나 미워하는지 계속 죽이려고 합니다. 십 년이 넘도록 집에서 잠을 못잡니다. 계속 죽이려고 합니다. 같이 밥 먹는 순간에도 창을 던집니다. 그래서 기적적으로 피해가지고 살아나며, 이렇게 끊임없이 밤낮으로 군대를 풀어가지고 다윗을 죽이려고 합니다. 그런데 죽이려고 했던 다윗은 안 죽고 자기가 오히려 블레셋 군대에게 아들 삼형제하고 같이 사울 왕은 죽습니다. 이 소식을 전해 듣고 오늘 활 노래가 나옵니다. ‘사울의 죽음을 너무 너무 아파하며 이스라엘의 용사가 돌아가셨다. 이 슬픈 소식을 적에게 알리지 마라. 남의 나라에 이 소식 알리지 마라. 그리고 내 친구 요나단, 나를 사랑하는 그 요나단의 죽음이 슬프다.’ 이렇게 슬퍼하고 이 두 분의 죽음에 대해서 애도하는 노래가 이 노래입니다. 그래서 이 노래를 활 노래라고 하는데, 활 노래라고 하는 것은 옛날에 활에다가 악기를 가지고 그 때 악기가 없던 때에 이렇게 연주를 하면서 부르던 노래가 이 활 노래입니다.
여러분! 옛날이나 오늘이나 이 얼마나 어려운 일입니까? 다윗 같은 고통을 당하고도 이렇게 사랑의 노래가 나올 수 있겠습니까? 길르앗 야베스 사람은 사울 왕의 주검을 가져다가 장사를 지냈는데, 그 분들에게 ‘너희들은 복이 있으라.’ 합니다. 사람이 죽고 나면 모두 다 배반하고 떠나는데, ‘너희들은 너무 착하다.’하고 그래서 이 길르앗 야베스 사람에게도 복을 줍니다. 이렇게 해서 다윗의 나라가 시작이 됩니다. 자기가 원수를 안 맺으면 밑에서는 안 맺습니다. 자기가 위에서 풀면 아래는 모두 다 풀어집니다. 그러니 온 나라가 하나가 됩니다. 화목합니다. 지난 사울 왕이 얼마나 나쁜 사람입니까? 그 사람을 들추어내려고 하면 별의별 것을 모두 다 들추어낼 텐데, 모두 다 슬퍼하고 덮어주며, 그 자녀들 위로해주고 이러니 이 나라가 하나로 마음이 묶어지는 것입니다. 여러분! 사람이 마음이 하나가 되어야 다 힘이 납니다. 마음만 하나로 묶어지면 못 할 일이 무엇이 있겠습니까? 모기도 모여서 소리를 지르면 천둥소리가 난다는데 사람이 모여가지고 하나가 되면 못 할 일이 어디 있겠습니까? 그래서 이 다윗 왕국이 복을 받습니다. 번성하고 잘 됩니다. 하나님이 위에서 복을 주십니다. 하늘 문을 여시고 복을 주신 것입니다. 그래서 이 시대가 최고의 시대가 된 것은 다윗 한 사람이 부른 이 활 노래, 사랑의 노래가 나라 전체를 바꾸어 놓았습니다. 여러분의 가정에 천하에 좋은 노래가 많습니다. 나훈아의 노래도 좋고 남진의 노래도 좋습니다. 그러나 더 좋은 노래인 활 노래를 부르기를 바랍니다. 사랑의 노래를 부르십시오. 용서하고 긍휼을 베풀며, 인자함을 베푸는 이 노래를 부르십시오. 그러면 여러분의 가정은 축복이 찾아옵니다. 사랑을 제해놓고 무슨 바른 말한다, 정의다 진실이다, 그러지 마십시오. 사랑은 그 위에 있습니다. 하나님이 주신 참 사랑, 이 사랑으로 다윗은 개인적으로도 나라를 이끌어 가는데 매우 형통하고 가정이 복을 받으며, 정말로 만사가 형통한 은혜를 받습니다.
야고보서 4장 1절부터 3절에 이런 말씀이 있습니다. “너희 중에 싸움이 어디로, 다툼이 어디로 좇아 나느뇨 너희 지체 중에서 싸우는 정욕으로 좇아 난 것이 아니냐, 너희가 욕심을 내어도 얻지 못하고 살인하며 시기하여도 능히 취하지 못하나니 너희가 다투고 싸우는도다. 너희가 얻지 못함은 구하지 아니함이요, 구하여도 받지 못함은 정욕으로 쓰려고 잘못 구함이니라.” 교인들은 하나님의 뜻이다, 믿음이다, 신앙이다, 그런 말 앞세우지 마십시오. 사랑하는 것은 모두 다 하나님의 뜻입니다. 사랑을 제해놓고 다른 말 하지 마십시오. 저는 명성교회를 개척하기 전에 이미 다섯 교회를 거쳐 왔습니다. 흥국교회, 월전교회, 풍북교회, 해양교회를 거쳐서 1980년에 명성교회를 개척했습니다. 제가 있던 교회는 모두 다 싸웠습니다. 모두 다 교인끼리 싸웁니다. 날마다 날마다 싸움 합니다. 제가 있던 교회는 교인끼리 서로 잘 믿는다고 하면서, 정말 톱으로 대들보를 양 쪽을 잘라서 나누어 갔습니다. 그리고는 다 주여, 주여 하니 하나님께서 야 이 자식아, 이 사탄아 하지 않겠습니까? 그리고는 둘 다 양쪽 교회에서 공격하고 내가 잘 믿는다, 내가 진짜 교인이다, 우리를 위해서 우리 죄를 위해서 십자가에 돌아가신 예수님 앞에서 십자가를 잘라 놓고 무슨 사랑을 한다는 것입니까? 오늘 한국교회가 모두 교회를 위한다, 주님을 위한다 하지만 주님을 위한 것도 아니고 교회를 위한 것도 아니고 자기 정욕을 위한 것입니다. 자기를, 자기 욕심 채우려고 그러는 것입니다. 우리 한국교회는 사랑을 회복해야 합니다. 이 민족 앞에 이런 본을 보여야 됩니다. 교인들이 서로 형제간에 화목하게 지내는 모습을 보이면 집안에도 하나님의 영광이 드러납니다. 안 믿는 사람이 하나님을 못 보지 않습니까? 예수 믿는 사람보고 교회에 따라 나오는데 교인이 안 믿는 사람보다 더 싸우는데 누가 교회에 나오겠습니까? 우리가 변화되어야 합니다. 새로워져야 합니다. 할렐루야! 활 노래를 부르십시다. 사랑의 노래를 부르십시다. 원수를 용서하는 노래를 부르십시다. 원수의 죽음을 ‘싸다’ 우리 말로는 잘 된 것을 ‘싸다.’ 고 그럽니다. ‘고것 싸다.’ 그러면 안 됩니다. 싸다 그러지 말고 ‘비싸다.’ 이렇게 말을 바꾸는 것입니다. 우리 가슴이 아파하고 내 형제가 아플 때 내가 아파하는 것 이보다 더 좋은 신앙의 본이 없습니다.
오늘 신약의 활 노래가 고린도전서 13장에 있습니다. 사랑이 무엇인지 한번 보겠습니다. 고린도전서 13장 1절부터 3절까지는 사랑의 중요성, 사랑에 대해서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 다음 4절부터는 사랑이 무엇인지 나옵니다. 여러분! 사랑이 무엇입니까? 우리 예수 믿는 사람들이 사랑하는 사랑이 무엇입니까? 이것은 아가페의 사랑, 하나님의 사랑입니다. 여기에 14 가지가 나옵니다. 고린도전서 13장 4절 사랑은 첫째, 오래 참는 것입니다. 참는다는 말이 헬라어 원어는 내게 해를 끼친 사람에게 참는 것을 말합니다. 그런 것을 참아야 합니다. 두 번째는 온유입니다. 부드러움입니다. 이게 사랑입니다. 세 번째는 투기하지 않습니다. 투기라는 말은 남의 성공을 싫어하는 것, 남이 내 위에 있는 것을 싫어하는 것, 이것이 투기입니다. 네 번째는 자랑치 않습니다. 막 자꾸 자기 자랑하는 것 이건 사랑이 아닙니다. 교만하지 않습니다. 무례히 행치 않습니다. 예의가 없는 것, 윤리를 벗어난 것 이것은 사랑이 아닙니다. 자기의 유익을 구치 않습니다. 자기 유익을 앞세우면서 그게 무슨 정의고 진실이고 사랑입니까? 모두 다 욕심입니다. 그 다음 여덟 번째, 성내지 아니하며, 악한 것을 생각하지 않습니다. 불의를 기뻐하지 않습니다. 진리를 오히려 기뻐합니다. 열한 번째는 모든 것을 참습니다. 참는다는 말이 두 번 나오는데 여기에 참는다는 말은 헬라어로 ‘스테게일’이라는 말인데, 남의 허물을 덮어준다는 말입니다. 남의 모든 허물을 보자기를 가지고 덮어줍니다. 저 집의 부끄러움을 내가 덮어주는 것입
니다. 그러면 하나님이 내 허물도 보자기로 덮어주시고 내 자녀의 허물도 하나님이 보자기로 덮어주시는 걸 믿어야 합니다. 열두 번째, 모든 것을 믿으며.. 사랑이 있는 사람은 믿음이 있습니다. 그러니까 참 평안합니다. 믿음이 없으니까 불안합니다. 사랑은 자녀, 남편, 이웃, 교회, 나라도 믿습니다. 모든 걸 믿습니다. 사랑이 없으면 하나도 못 믿습니다. 열세 번째, 모든 것을 바라며. 소망이 있습니다. 희망이 넘칩니다. 그 다음 열네 번째, 모든 것을 견디느니라. 견딘다는 말은 끝까지 남는다, ‘휴포메네이’라는 말인데 끝까지 남는 삶, 끝까지 가는 삶, 사람을 사귀어도 끝까지 가고 참는 것도 끝까지 가는 것 모든 것을 견디느니라.
오늘 사랑에 대해서 두 번째 시리즈 활 노래에 대해서 말씀을 드렸습니다. 다음 주일에도 사랑에 대해서 다시 한 번 말씀드리겠습니다. 사랑이 얼마나 소중합니까? 이 시대 문제가 너무 여러 곳에 있는 걸로 모두 지적을 하는데 성경은 그렇지 않습니다. 우리나라에 지금 사랑이 식어졌습니다. ♬사랑을 채우세 내 맘속에 성령의 사랑을 채워 주께서 베푸신 그 사랑을 이 세상에 널리 펼치리♬ 우리나라에 사랑을, 우리 이웃에 사랑을, 우리 교계에 사랑을, 세계를 향한 큰 사랑을 펼치는 여러분 되시기를 바랍니다. (김삼환 목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