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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의 음성을 들으라 (삼상 3:1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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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의 음성을 들으라 (삼상 3:10-18)


혹시 '사오정 시리즈'에 대해 들어보신 적이 있습니까?
▣ 어느 날 사오정이 거울을 보다가 깜짝 놀랐다.
쭈글쭈글한 몸에 배만 툭 뛰어나온 모습 때문이었습니다. 너무 보기 싫었습니다.
그래서 사오정은 헬스클럽에 다니기로 결심했습니다. ...그후 1년이 지나고
사오정은 매우 멋진 몸매를 가지게 되었습니다.
떡벌어진 어깨와 가슴, 멋진근육까지... 그래서 이 사실을 방방곡곡으로 자랑을 하러 다녔다.
어느 날 최불암을 만났습니다. 자신의 근육을 자랑했고 최불암은 너무 부러웠다.
그래서 사오정에게 물어 보았다.
" 야 운동하냐?"
그러자 사오정이 아래를 내려 보며 이렇게 말했습니다. "아뇨. 쓰레빤데요." (슬리퍼)

▣ 사오정이 드디어 보청기를 하나 장만했다.
학교에서 수업 중에 맨 뒤에서 자꾸 이상한 소리가 났습니다.
선생님 : 야.거기 맨 뒤! 필기 안하고 뭐해?
사오정 : 안 보여서요
선생님 : 그래? 니 눈 몇인데?
사오정 : 제 눈은 둘인데여.
선생님 : 아니, 아니. 그거 말고 니 눈이 얼마냐고?
사오정 : 제 눈은 안 파는데여
선생님 : 야 ~! 니 눈이 얼마나 나쁘냐고?
사오정 : 선생님 제 눈은 ... 나쁘고 착하고 그런 거 없는데요

▣ 사오정은 국산 만화영화 - 날아라 슈퍼보드에 나오는 손오공, 저팔계의 친구입니다.
사오정은 온몸이 쭈글쭈글 주름으로 덮여 있습니다.
특히 귀가 주름으로 덮여 남의 말을 잘 알아듣지 못합니다. 언제나 동문서답을 하는 것이 그의 특징입니다.
신세대들은 이 시리즈를 통해 기성세대가 가는 귀먹은 사오정이라고 이야기 합니다.

▣ 텔레비전을 보는 사오정에게 동생이 칭얼댑니다. "형, 냉장고에 있는 우유 마셔도 돼?" 텔레비전에 정신이 팔려 대답이 없자, 동생은 사오정을 흔들며 우유를 마셔도 되느냐고 재차 물었습니다. 이에 화를 버럭 내며 사오정이 이렇게 말하였습니다.
"야 조용히 하고 냉장고에 있는 우유나 꺼내 먹어."
자기 고민을 진지하게 들어주지 않고 공부나 하라고 하는 기성 세대를 풍자합니다.

▣ 레스토랑에 간 사오정 친구들은 '나는 콜라' '나는 주스'라며 각각 다른 메뉴를 주문하였습니다. 그러나 맨 나중에 주문하는 사오정은 "여기 커피 셋이요"라고 제멋대로 주문하였습니다. 국민들을 위한다고 하면서 국민과 상관없이 따로 노는 국회를 풍자한 것입니다.

▣ 이런 단절은 같은 세대 안에도 있습니다.
사오정이 오토바이 뒤에 애인을 태우고 신나게 달리자 뒤에 타고 있던 애인이 "나 무서워"라고 소리를 질렀습니다. 그러자 사오정은 더욱 속도를 높였습니다.
다시 애인이 무섭다고 소리를 지르자 사오정이 하는 말. "나도 사랑해"

단절은 비극입니다. 단절되면 답답합니다.
서로가 서로를 불신하기 때문에 대화가 되지 않습니다.
대화가 없었기 때문에/ 관계가 단절되었기 때문에 인류는 불행한 삶을 살게 되었습니다.

하나님과 단절되면 불행하게 됩니다.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복을 누릴 수 없습니다. 하나님의 생각도 마음도 알 수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방법으로 살 수 없습니다. 그래서 망하게 되고 좌절하게 됩니다.
호세아서 말씀에 보면 하나님 지식이 없으므로 그 백성이 망한다고 하였습니다.
《호 4:6》 “내 백성이 지식이 없으므로 망하는도다 네가 지식을 버렸으니 나도 너를 버려 내 제사장이 되지 못하게 할 것이요 네가 네 하나님의 율법을 잊었으니 나도 네 자녀들을 잊어버리리라”
오늘 본문의 말씀은 하나님께서 어린 사무엘에게 찾아오셔서 그에게 말씀을 주심으로 암흑과 같은 시대를 위해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는 선지자로 세워주시는 장면입니다.

▣ 당시의 형편을 이렇게 표현하고 있습니다. (1)
사무엘이 부름 받을 때는 사사시대의 마지막 때였습니다.
이 시기는 영적 암흑기라고 부를 수 있습니다.
이 시대는 하나님의 말씀이 희귀한 일이 되었습니다.
백성의 지도자들도 타락하였습니다. 종교적으로 눈이 어두워졌습니다.
이스라엘 백성은 하나님의 백성이었지만 그들에게 하나님의 말씀이 들려지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에는 관심이 없었습니다.
신앙이 없으니 자기 맘대로 소견에 옳은대로 살았습니다.
백성들의 선택의 기준은 다만 나에게 좋으냐 좋지 않으냐 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들은 하나님이 선물로 주신 땅에서 살지만 하나님의 백성답지 못했습니다.

▣ 엘리의 눈이 어두워져 있었습니다.
엘리는 15명 사사들 중 14번째 사사였습니다.
사사는 이스라엘의 종교, 정치 군사 지도자였습니다. 동시에 제사장이었습니다.
그런데 엘리는 눈이 어두웠습니다.
이 표현은 육적인 것만을 의미하지 않습니다. 영적으로도 눈이 멀어진 것을 보여줍니다.
① 엘리는 눈이 어두워져서 하나님을 보지 못했습니다.
하나님의 음성이 어린 사무엘에게는 들렸지만 엘리에게는 들리지 않았습니다.
사무엘은 4번이나 들었지만 엘리는 한 번도 듣지 못했습니다.
엘리는 이스라엘의 지도자였지만 눈이 어두워 하나님을 보지도 못하고 듣지도 못하게 되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들리지 않고 하나님의 모습이 보이지 않는 시대는 불행한 시대입니다.
성도들에게도 이런 일이 일어날 수 있습니다.
안일에 빠질 때 눈이 어두워질 수 있습니다.
종교적인 형식과 의식에 빠질 때 눈이 어두워질 수 있습니다.
세상 염려에 빠질 때 눈이 어두워질 수 있습니다.
죄와 타협할 때 눈이 어두워질 수 있습니다.
자기의 소견과 고집이 강할 때 눈이 어두워질 수 있습니다.

세상과 나는 간 곳없고 구속한 주만 보이도다. 라는 찬송이
구속한 주는 간 곳 없고 세상과 나만 보이게 될 수도 있습니다.

▣ 엠마오로 가던 두 제자는 눈이 어두워서 그들 중에 동행하시는 주님을 알아보지 못했습니다.

▣ 네가 말하기를 나는 부자라 부요하여 부족한 것이 없다 하나 네 곤고한 것과 가련한 것과 눈 먼 것과 벌거벗은 것을 알지 못하노라.
주님은 라오디게아 교회의 성도들이 눈이 멀어서 보지 못한다고 책망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안약을 사서 눈에 발라 보게 하라고 권면하고 있습니다.

눈이 밝아져 하나님을 보고 듣는 사람은 행복한 사람입니다.
그러나 눈이 어두워서 하나님을 보지도 듣지도 못하는 사람은 불행한 사람입니다.
엘리는 하나님을 보는 눈이 어두워져 있었습니다.

② 엘리는 눈이 어두워져서 자신의 죄도 자녀들의 죄도 보지 못했습니다.
하나님의 사람이 엘리에게 와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삼상 2:29 너희는 어찌하여 내가 나의 처소에서 명한 나의 제물과 예물을 밟으며 네 아들들을 나보다 더 중히 여겨 내 백성 이스라엘의 드리는 가장 좋은 것으로 스스로 살찌게 하느냐
이 말씀을 보면 엘리는 성소에서 제사장의 직분을 제대로 수행하지도 못했고 아들들을 제대로 다스리지도 못했습니다.
엘리의 두 아들은 불량자들이었는데 하나님을 알지도 못했고 제사를 멸시하였습니다.
습관적으로 하나님의 것을 가져갔습니다. 그것도 부족해서 성소에서 간음행위까지 했습니다.
그런데 엘리는 그런 악행을 금하지 않았습니다.
다만 이렇게 부드럽게 타이를 뿐이었습니다.
너희들의 소문이 별로 좋지 않아 이런 일은 하지 말아라
이런 부드러운 책망을 들을 리가 없었습니다. 그들은 불량자였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사무엘에게 엘리가 자기 아들들이 저주를 자청하되 금하지 아니한 것이 엘리의 죄라고 분명히 밝히시고 있습니다.
엘리는 자기의 죄와 아들들의 죄를 심각하게 느끼지도 보지도 못했습니다.
눈이 어두웠기 때문이었습니다.

③ 엘리는 눈이 어두워져서 정치 사회 현실을 보지 못했습니다.
엘리가 나이 많아 눈이 점점 더 어두워졌을 때 이스라엘에 국가적 위기가 닥쳐왔습니다.
불레셋 군대가 이스라엘을 침략했습니다. 이스라엘이 나가서 싸웠지만 패하고 말았습니다.
여기서 4000명이 죽었습니다.
엘리는 국가적 위기가 닥친 원인을 분석할 수 있는 영적 지각이 없었습니다.
이 환란은 하나님의 심판의 사인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 두 번이나 말씀해 주셨습니다.
그러나 엘리는 눈이 어두워져 이것을 제대로 볼 수 없었습니다.

▣ 현대의 모습
요즘은 지식이 넘쳐나는 시대입니다.
신문이나 잡지의 홍수입니다. 인터넷에도 날마다 시간마다 새로운 것으로 가득 차 있습니다.
이런 것들을 정독하려면 하루 종일을 투자해도 다 읽을 수 없을 정도입니다.
TV를 보는데 채널이 하도 많아서 여기 저기 돌려보면 정말 다양한 지식이 넘쳐나고 있습니다.

설교 말씀도 인터넷과 TV를 통해서 얼마든지 들을 수 있습니다. 가만히 앉아서 전국교회의 예배실황을 보고 선포되는 하나님의 말씀을 들을 수 있습니다.

그런데 그 결과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뜨거운 관심이 식어지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대체할 수 있는 것들이 많이 있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지식과 정보가 무차별적으로 들어오지만 하나님의 말씀이 들려지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듣는 것이 희귀한 일이 되고 있습니다.

▣ 사무엘이 살았던 시대는 현재 우리가 살고 있는 시대와 다르지 않습니다.
아프리카 정글을 탐험한 학자들이 몇 가지 실험을 했습니다.
정글에 사는 수많은 동물 가운데 한 종류 씩 없애고 그 결과를 살펴보는 실험이었습니다.
① 하루 종일 시끄럽게 울어대는 새를 없앴습니다.
그랬더니 정글은 마치 공동 묘지처럼 적막한 숲이 되어 버렸습니다.
② 원숭이들을 쫓아내 보았습니다.
이 가지 저 가지를 옮겨 다니며 나뭇가지를 꺾고 숲을 망가뜨리는 존재들로 보였습니다.
그런데 원숭이가 없으니까 나무들이 서로 엉키고 덮여 썩어 들어가기 시작했습니다.
③ 징그러운 뱀들을 다 제거해 보았습니다.
그랬더니 천적이 없어진 쥐들이 그 숲에서 판치기 시작했습니다.
많아진 쥐들이 해충을 잡아먹던 벌레까지 다 잡아 먹었습니다. 숲이 병들어가기 시작했습니다.
이 실험을 통해 학자들은 하나님께서 만드신 자연은 모든 것이 함께 어우러져 있을 때 건강하고 질서가 잡힌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고 합니다.

이런 생각을 해보신 적이 있으십니까? 나처럼 말하고 생각하는 사람들만 있었으면 좋겠다.
저는 생각해본 적이 있습니다.
나와 같은 생각을 가지고 있는 사람만 존재한다면 어떻게 될 것 같습니까?
아마 숨이 막혀서 나도 못살 것 같았습니다.

하나님은 나와 성격이 다른 사람들을 주위에 주셔서 함께 살도록 하셨습니다.
지금 내 주변에 있는 사람들은 하나님께서 보실 때 가장 나와 맞는 사람입니다.
내가 잘 살 수 있도록 하나님께서 보내 주신 사람입니다.
당신은 하나님이 보내주신 선물입니다.

가끔은 짜증도 많이 나지만 그래도 감사한 것은
나와 정반대의 성격을 가진 아내와 살게 하신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내가 액셀레이터라면 아내는 브레이크의 역할을 합니다.
만약 둘 다 엑셀레이터라고 하면 / 둘 다 브레이크라면 더 어려울 것입니다.

성도 여러분
가정에서/ 사회에서/ 직장에서/ 교회에서/ 만나는 사람들을 보며 하나님께 감사하는 여러분이 되시기 바랍니다.

성도된 우리에게 가장 먼저 회복되어야 하는 중요한 관계는 하나님과의 관계입니다.
하나님과의 관계를 회복하고 바르게 유지하기 위해서 노력해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①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자 하는 열망이 있어야 합니다.
많은 정보와 지식들이 무차별적으로 우리에게 다가옵니다. 기본적으로 살다가 보면 어느 정도의 지식을 가질 수 있습니다. 인터넷만 켜 놓고 있어도 수많은 정보가 다가옵니다.
실시간으로 뉴스가 제공됩니다. 우리가 별로 관심이 없는 것까지 알게 됩니다.
오늘 설교준비를 하며 20억을 가진 탈랜트 전원주가 난방비를 절약하기 위해 이효리 춤을 춘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추우면 보일러 돌리기 전에 격렬하게 춤을 추십시오.
이런 정보는 궁금하지도 않은데 알게 된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말씀을 들으려면 많은 노력이 필요합니다.
하나님과의 깊은 교제를 나누려고 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붙잡고 씨름해야 합니다.
성경 말씀이 나를 살리는 생명의 말씀으로 믿고 가까이 해야 합니다.

사 55:3“너희는 귀를 기울이고 내게 나아와 들으라 그리하면 너희 영혼이 살리라”
하나님께서 자녀들을 초청하십니다.
영적으로 죽어버린 자녀들을 향해서 너희는 내 음성을 들어야 살 수 있다고 말씀하십니다.

성도 여러분 교회에만 출석하는 것으로는 부족합니다.
우리에게는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자 하는 간절한 열망이 있어야 합니다.

시 42:1 하나님이여 사슴이 시냇물을 찾기에 갈급함같이 내 영혼이 주를 찾기에 갈급하나이다 시인은 자기의 영적 갈급함을 뼈저리게 느끼고 있습니다.
그래서 목이 타는 사슴이 시냇물을 찾아 헤매듯이 생수되시는 주를 찾고 또 찾는다는 고백입니다.
이런 복음성가가 있습니다.
목마른 사슴 시냇물을 찾아 헤매이듯이 내 영혼 주를 찾기에 갈급하나이다.
주님만이 나의 힘 나의 방패 나의 참 소망 나의 몸 정성 다 바쳐서 주님 경배합니다.
성도 여러분!
하나님을 찾고자 하는 열망이 여러분의 가슴 속에 불일 듯 일어나기를 바랍니다.

② 다른 데로 가지 말고 하나님께로 가야 합니다.
사무엘은 나이가 많은 엘리 제사장의 가장 가까운 곳에서 생활을 했습니다.
사무엘은 하나님의 음성을 들었을 때 엘리 제사장이 시킬 일이 있어서 부르는 줄 알았습니다.
세 번씩이나 그렇게 했습니다.

하나님께서 하고 싶은 말씀이 있어서 사무엘을 부르시는데 사무엘은 자꾸만 다른 데로 달려갑니다.
성경은 아직 사무엘이 하나님을 알지 못하고 말씀도 아직 그에게 나타나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말합니다.

우리는 하나님을 압니다. 다른 데로 가면 안됩니다. 하나님의 음성을 들으려면 하나님께 가야 합니다.
다른 데로 가면 소용이 없습니다. 더 피곤한 일을 당하게 될 것입니다.

▣ 동방에서 온 박사들은 아기 예수님을 찾아 베들레헴으로 가지 않고 예루살렘으로 갔습니다. 유대인의 왕이니까 당연히 수도인 예루살렘에서 출생했을 것으로 생각했던 것입니다.
유대인의 왕을 찾으러 왔다고 소문을 내고 다녔습니다.
그 결과 헤롯 왕이 베들레헴과 그 주변의 두 살 아래의 사내 아이들을 죽이는 일이 생겼다.

▣ 이사야 6장에는 이사야가 하나님을 만나는 이야기가 소개되고 있습니다.
웃시야 왕은 52년 동안 유다를 다스렸습니다.
유능한 왕이었습니다. 하나님을 의지하고 기도하는 왕이었습니다.
웃시야가 왕으로 있을 때 온 나라가 번성했습니다. 웃시야 왕은 특히 외교를 잘 했습니다.
주변나라들과의 우호적인 관계를 잘 유지했습니다.
그런 웃시야 왕이 죽었습니다. 위기의 상황이 되었습니다.

이사야는 다른 데로 가지 않았습니다. 성전으로 갔습니다. 하나님께 나아갔습니다.
거기서 하나님을 만났습니다.
자기가 부정한 사람이라는 것을 깨닫고 그것을 용서받는 영적인 체험을 했습니다.
“내가 누구를 보내며 누가 우리를 위하여 갈꼬”하는 하나님의 음성을 들었습니다.
“내가 여기 있나이다 나를 보내소서”라고 대답했습니다.
그리고 선지자로서 사역을 시작하게 됩니다.
놀라운 하나님의 역사가 시작된 것은 이사야가 다른 곳에 가지 않고 하나님 앞으로 나갔기 때문입니다.
성도 여러분, 답답하고 어두워 가는 이 때에 하나님을 향한 열망을 가지시기 바랍니다.
그 열망을 가지고 다른 곳에 가지 말고 하나님께 가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겸손히 사무엘처럼 하나님 말씀 하옵소서 주의 종이 듣겠나이다. 하시기 바랍니다.

③ 하나님의 음성을 들어야 합니다.
첫째, 성경 말씀을 묵상하십시오.
이 성경은 하나님의 말씀을 기록해 놓은 책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이 성경을 통해서 우리에게 가장 확실하게 말씀하십니다.
이 말씀을 묵상할 때 하나님의 음성을 들을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정기적으로 읽고 그 말씀을 성령의 인도를 따라 깊이 묵상하시기 바랍니다.
깨달은 말씀을 구체적인 내 생활 속에서 실천하시기 바랍니다.

둘째, 설교를 경청하십시오.
설교는 하나님의 말씀이 선포되어진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주의 종을 통해 전하시고자 하시는 하나님의 말씀을 선포하십니다.
이 말씀을 잘 경청할 때 하나님의 음성을 들을 수 있습니다.
경청(listening)과 청취(hearing)는 다릅니다.
청취는 외면의 말을 듣습니다. 소리를 듣는 것입니다.
경청은 내면의 마음을 읽는 것입니다.
설교를 경청한다는 것은 설교를 통해서 하나님의 마음을 읽는 것을 말합니다.
설교를 경청하는 성도는 설교를 들으며
하나님께서 내게 바라시는 것이 무엇인지?
내게 하지 말라고 하시는 것은 무엇인지? 를 발견할 수 있습니다.

셋째, 말씀을 붙잡고 기도하십시오.
기도는 하나님께서 세미하게 말씀하시는 소중한 통로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기도를 하나님 앞에 요청하고 부르짖는 것이라고 말합니다.
이것은 말하는 기도입니다.
그리고 듣는 기도도 있습니다. 내게 주시는 하나님의 음성을 듣는 기도입니다.
이런 질문이 도움이 됩니다.
하나님의 뜻이 무엇입니까? 이럴 때는 어떻게 하며 좋을까요?
이런 경우 예수님이라면, 하나님이라면 어떻게 하실까요?

무전기는 핸드폰과 다릅니다.
무전기는 먼저 키를 누른 사람만이 말할 수 있습니다.
한 쪽에서는 말하고 한 쪽에서는 듣습니다. 동시에 말을 할 수 없습니다.
기도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가 말씀드리면 하나님은 들으십니다. 하나님께서 말씀하실 때는 들어야 합니다.
동시에 말하고 동시에 들을 수 없습니다.

그런데 많은 사람들은 자기만 키를 누르고 말합니다. 자기 말을 다 끝내고 키를 놓습니다.
이제 하나님께서 말씀하시려고 키를 누르시면 아예 무전기를 꺼버립니다.
늘 자기만 말하고 하나님께서 말씀하실 기회를 드리지 않습니다.
이제 우리는 기도의 무전기 키를 놓아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키를 쥐시고 말씀하시도록 기회를 드려야 합니다. 그리고 들어야 합니다.

성도 여러분 우리는 하나님을 압니다.
우리는 이 시대를 위해 준비된 하나님의 사람입니다.
이 어두운 시대에 하나님의 음성을 잘 듣고 전하는 신실한 하나님의 사람들이 되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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