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의 손 (삼상 7:5~14)
본문
여러분, 하나님이 어떻게 생기셨을까요? 유치한 질문 같지만 한번 생각해 보십시오. 하나님의 모양이 어떨까? 하나님의 생김새는 어떨까? 사실 궁금해 할 수 있습니다. 아마 어린아이들이라면 하나님을 흰 수염을 길게 기른 할아버지 모습으로 상상할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우리 인간처럼 육신을 갖고 계신 분이 아닙니다. 하나님은 영이십니다. 우리의 육안으로 볼 수 없습니다. 따라서 어떤 모양이나 생김새로 묘사할 수 없습니다.
그런데 성경에 보면 하나님에 대해 언급할 때 종종 하나님을 인간의 모양으로 표현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예를 들어 하나님의 눈, 하나님의 귀, 하나님의 얼굴 등 하나님이 인체와 같은 모습으로 표현하는 겁니다. 오늘 본문 성경에도 보면 13절에 ‘여호와의 손’ 즉 ‘하나님의 손’이란 표현이 나옵니다.
그러면 성경에 왜 이런 표현들이 등장하는 걸까요? 그것은 하나님을 계시(啓示)하는 방법 중의 하나입니다. 하나님이 인간의 육안에 보이지도 않고, 인간이 하나님을 잘 알 수도 없기 때문에 인간의 눈높이에 맞춰서 하나님 자신을 나타내 주시는 ‘친절한 배려’입니다. 이런 표현을 가리켜 신학에서는 ‘신인동형동성론’(神人同形同性論)이라 부릅니다. 일반적인 용어로 말씀드리면, 하나님을 인간에 빗대어 표현하는 ‘의인법’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성경은 이런 표현들을 통해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지(하나님의 속성), 그리고 어떤 일을 하시는지(하나님의 사역) 잘 설명해 줍니다. 이 시간에는 그 중에서 ‘하나님의 손’이라는 표현에 관해 살펴보고자 합니다. 이 말씀을 통해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지 다시 한번 발견하시고, 그 하나님을 믿고 의지함으로 승리하는 인생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1] 이스라엘의 승리 : 하나님의 손이 도와주신 결과
본문은 사무엘 당신의 구약 이스라엘의 역사를 기록하고 있습니다. 사무엘은 사사입니다. ‘사사’(師士)라는 말은 문자적으로는 재판관인데, 이스라엘에 왕이 없던 시절 백성들을 다스리던 지도자를 가리킵니다. 사사 시대에는 이스라엘이 암흑기라고 불리는 것처럼 여러 면에서 암울한 시기였습니다. 영적으로는 이스라엘 백성이 하나님을 멀리 떠나 있었고, 국가적으로는 블레셋 등 강대국으로부터 시달리고 있었습니다. 그런 시기에 사무엘이 사사가 된 것입니다. 그는 취임하자마자 제일 먼저 기도회를 열었습니다. 백성들을 미스바에 모아놓고 집회를 가졌습니다. 6절에 기록한 대로, 금식하면서 회개했습니다. 물을 부었다는 것은 마음을 쏟아놓고 회개했다는 뜻입니다. 그런데 호사다마(好事多魔)라고 블레셋 족속이 그 틈으로 노려 침략을 해왔습니다. 기도회를 하는 중이었으니 어떻게 싸우겠습니까? 군대를 소집할 시간도 없고, 무기도 없고, ... 한 마디로 한심한 겁니다. 인간적으로 보면 그냥 앉아서 당하는 수밖에 없었습니다. 풍전등화 같은 위기상황입니다. 그러나 사무엘과 백성들은 부르짖어 기도했고 하나님이 놀라운 기적으로 승리케 해 주셨습니다. 10절~11절. “사무엘이 번제를 드릴 때에 블레셋 사람이 이스라엘과 싸우려고 가까이 오매 그 날에 여호와께서 블레셋 사람에게 큰 우뢰를 발하여 그들을 어지럽게 하시니 그들이 이스라엘 앞에 패한지라 이스라엘 사람들이 미스바에서 나가서 블레셋 사람을 따라 벧갈 아래에 이르기까지 쳤더라”
이렇게 승리한 이스라엘은 하나님 앞에 감사의 표시로 기념비를 세웁니다. 12절. “사무엘이 돌을 취하여 미스바와 센 사이에 세워 가로되 여호와께서 여기까지 우리를 도우셨다 하고 그 이름을 에벤에셀이라 하니라”(에벤에셀=도움의 돌 - 하나님이 도우셔서 승리했다는 신앙 고백, 감사 표시)
그 후에 또 어떤 일이 있었습니까? 13절 보면, 여호와의 손이 함께해 주셨습니다. 그래서 그들을 블레셋의 위협에서 보호해주셨고, 더 나아가 과거에 빼앗겼던 땅을 되찾고, 주변국들이 감히 침략을 못하고 평화가 정착되었습니다. 이렇게 해서 사무엘이 사는 날 동안 이스라엘은 계속 태평성대를 이루게 됩니다.
여러분, 우리는 여기서 무엇을 깨달을 수 있습니까? 이스라엘의 승리는 보이지 않는 가운데 ‘하나님의 손’이 역사하시고 도와주신 결과라는 사실입니다.
[2] 하나님의 손의 다양한 역사 : 구원, 보호, 인도, 위로, 치유, 징계
본문의 사건을 보면 하나님의 손은 ‘하나님의 임재’와 ‘하나님의 능력’을 의미함을 알 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그 손으로 이스라엘을 도와 주셨습니다. 그 도움은 전쟁의 위기에서 ‘구원’해 주신 것입니다. 그리고 그 후의 모든 위험으로부터 ‘보호’해 주신 것입니다.
성경을 연구해 보면 이 외에도 하나님의 손이 다양한 역사를 통해 우리 성도들을 도와주심을 알 수 있습니다. 여러 가지가 있지만, 그 중 몇 가지를 정리해서 소개해 드립니다. 하나님의 손은 여러 가지 면에서 우리에게 도움의 손길이 되십니다.
① 구원의 손길 :
본문에서 보면 이스라엘이 하나님의 손길로 블레셋의 위험에서 구원을 받습니다. 그리고 그 이전에 이스라엘은 역시 하나님의 손길로 애굽의 압제에서 출애굽함으로 구원받았습니다. 신26:8 “여호와께서 강한 손과 편 팔과 큰 위엄과 이적과 기사로 우리를 애굽에서 인도하여(bring out, ‘구원하여’란 표현이 적절함) 내시고 ... ” 출애굽 후 광야로 나간 이스라엘 앞에 홍해가 가로막았지만, 그리고 뒤에서 애굽 군대가 추격했지만 이스라엘은 하나님의 손길로 구원받았습니다. 출15:6 “여호와여 주의 오른손이 권능으로 영광을 나타내시니이다 여호와여 주의 오른손이 원수를 부수시니이다”
더욱 중요한 것은 죄와 사망에서 구원받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예수님의 십자가 대속으로 우리를 죄와 사망에서, 지옥의 형벌에서, 마귀의 권세에서 구원해 주셨습니다. 더 나아가 세상의 환란과 시험에서 구원해 주십니다. 예수님은 이러한 구원의 역사에 대해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요10:28~29 “내가 저희에게 영생을 주노니 영원히 멸망치 아니할 터이요 또 저희를 내 손에서 빼앗을 자가 없느니라 저희를 주신 내 아버지는 만유보다 크시매 아무도 아버지 손에서 빼앗을 수 없느니라” 예수님의 손과 하나님 아버지의 손은 우리가 얻은 구원을 빼앗기지 않도록 우리를 꼭 붙잡아주십니다.
재미교포의 이야기입니다. 그분은 6.25 때 고아로 거지노릇을 하며 길거리를 방황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미군 트럭이 그 앞에 섰습니다. 그리고 그를 가엽게 여긴 미군이 그의 손을 붙잡아 트럭으로 끌어 올렸습니다. 그 후 그는 미군부대에서 하우스 보이로 일하게 됩니다. 그러다가 미군 장교의 눈에 들어 양아들이 되어 미국으로 건너갑니다. 거기서 그는 예수님을 만났고, 공부도 하게 됩니다. 후일 그는 대학 교수가 되었고, 상원의원이 됩니다. 그는 자신의 생애를 회고하면서 이렇게 간증합니다. “그날 미군 트럭으로 나를 끌어올린 손은 ‘구원의 손길’이었습니다. 그것은 사람의 손길이 아니라 하나님의 손길이었습니다.”
② 보호의 손길 :
13절을 다시 보면, " ... 여호와의 손이 사무엘의 사는 날 동안에 블레셋 사람을 막으시매 ... “ 그랬습니다. 이스라엘을 보호한 하나님의 손길이 있었음을 언급합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세상의 모든 위험에서부터 보호하십니다. 성경은 그 보호하심을 가리켜 하나님의 손이 우리를 붙드시는 것으로 묘사합니다. 사41:10 “두려워 말라 내가 너와 함께 함이니라 놀라지 말라 나는 네 하나님이 됨이니라 내가 너를 굳세게 하리라 참으로 너를 도와주리라 참으로 나의 의로운 오른손으로 너를 붙들리라” 특별히 ‘오른 손’이라 함은 능력 있는 손길임을 강조하는 겁니다. 성경에서 ‘오른쪽’은 능력 혹은 권능을 상징합니다. 다윗은 보호하시는 하나님의 손길을 가리켜 이렇게 표현합니다. 시37:24 “저는 넘어지나 아주 엎드러지지 아니함은 여호와께서 손으로 붙드심이로다"
여러분, 「닥터 지바고」라는 영화를 아시죠. 오래된 영화지만 지금도 눈에 선할 정도로 아름다운 영화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주로 지바고와 라라의 러브 스토리에 집중하지만, 저는 개인적으로 마지막 장면을 아주 인상 깊게 기억합니다. 닥터 지바고의 형(장군)은 지바고의 친딸을 찾으려고 애를 씁니다. 그러다가 한 소녀를 만납니다. 분명히 딸이 맞는 것 같아서 지바고의 이야기를 들려줍니다. 그리고 이런 저런 질문을 합니다. “너는 왜 아버지와 헤어지게 됐느냐?” 소녀는 당황해 하면서 얼버무립니다. 왜냐하면 가슴 아픈 사연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 때는 전쟁 중이었어요. 거리는 온통 불바다였고, 저를 보호해 줄 수 있는 상황이 아니었어요.” 그러자 장군은 다그치며 다시 묻습니다. “아냐, 아버지와 헤어진 진짜 이유가 뭐지?” 그러자 하는 수 없이 소녀는 가슴 속에 묻어두었던 말을 꺼냅니다. “사, 사실은 ... 아버지가 제 손을 놓아버렸어요.” 그러자 장군은 단호한 어조로 말합니다. “그러면 그렇지. 그 사람은 네 아버지가 아니란다. 아버지는 어떤 상황에서도 자식의 손을 놓지 않는 법이지. 너의 친아버지는 바로 닥터 지바고야!”
그렇습니다! 아버지는 절대 자식의 손을 놓지 않습니다. 그렇다면 하물며 당신의 독생자를 십자가에 내어주시기까지 우리를 사랑하시는 하나님 아버지가 어찌 우리를 놓아버리겠습니까? 하나님은 분명히 어떤 경우에라도 그 손길로 우리를 꼭 붙잡아 주실 줄로 믿습니다.
③ 인도의 손길 :
우리 인생은 초행길입니다. 미래를 알 수 없습니다. 그래서 안내자가 필요합니다. 그런데 인간 안내자는 위험합니다. 왜냐하면 그 역시 초행길이기 때문입니다. 조금 앞서 가는 사람의 안내가 조금은 도움이 되지만, 그 역시 미래를 알 수 없기에 보장이 없습니다. 오직 창조주 하나님, 전지전능자 하나님이 우리의 과거도 현재도 미래도 아시기에 진정한 안내자가 되어 주십니다.
에스라7:9 보면 이런 말씀이 나옵니다. “정월 초하루에 바벨론에서 길을 떠났고 하나님의 선한 손의 도우심을 입어 오월초하루에 예루살렘에 이르니라” 에스라가 포로 생활을 하던 중 조국 이스라엘로 귀환하게 됩니다. 백성을 이끌고 예루살렘으로 돌아가는데, 길을 알 수 없습니다. 요즘처럼 길이 분명하고 좋은 것도 아니고, 지도나 네비게이션 같은 게 있는 것도 아니고 아주 막막했을 겁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손길이 동행함으로 안전하게 예루살렘에 도착하게 됩니다.
3중 장애인(시각, 청각, 언어)으로 세계적인 크리스천 교육가였던 헬렌 켈러가 한 말입니다. “하나님의 손에 이끌린 맹인이 눈 뜬 사람보다 낫다.” 정말 그렇죠. 눈을 멀쩡하게 뜨고 있어도 인간은 미래를 알 수 없기에 엉뚱한 길로 갈 수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손길에 이끌리면 바른 길, 축복의 길로 인도받을 수 있는 것입니다.
④ 위로의 손길 :
우리가 험한 세상을 살다보면 위로가 필요합니다. 그런데 인간의 위로에는 한계가 있습니다. 때로는 가족조차 우리에게 이로가 되지 못할 때도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우리에게 다가오셔서 그 부드러운 손길로 참다운 위로를 해 주십니다.
열왕기상 19장을 보면 엘리야 선지자의 이야기가 나옵니다. 그는 갈멜산 위에서 우상 선지자 850명을 격파합니다. 그런데 그 소식을 듣고 이를 갈며 엘리야를 잡아 죽이겠다고 호언하는 이세벨의 소리를 듣고 혼비백산 도망갑니다. 큰 선지자라도 인간적으로 이렇게 약해질 때가 있습니다. 이럴 때 사람들은 인정사정없이 비난합니다. 하지만 하나님은 책망하지 않고 위로해 주십니다. 사람이 신앙생활을 잘 하다가도 때로는 지칠 수 있고, 낙심할 수 있음을 이해해 주십니다. 엘리야가 한참 가다가 로뎀나무 아래서 낙심한 채 잠이 듭니다. 그때 하나님이 어떻게 하십니까? 왕상19:5 “로뎀나무 아래 누워 자더니 천사가 어루만지며 이르되 일어나서 먹으라 하는지라” 천사가 나타나 부드러운 손길로 어루만져 위로합니다. 여기서 천사는 구약 시대에 종종 나타났던 그리스도입니다. 비슷한 예가 다니엘 3장(다니엘 세 친구가 풀무 불에서 살아나온 사건)과 다니엘 6장(다니엘이 사자 굴에서 살아나온 사건)에 나옵니다.
하나님은 그 부드러운 손길로 우리를 어루만져주십니다. 우리의 상처를 싸매어 주시고, 뺨에 흐르는 눈물을 닦아 주십니다. 장차 하늘나라에 들어가면 모든 눈물을 완전하게 닦아 주실 겁니다. 계7:17 “ ... 하나님께서 저희 눈에서 모든 눈물을 씻어 주실 것임이러라” 계21:4 “모든 눈물을 그 눈에서 씻기시매 다시 사망이 없고 애통하는 것이나 곡하는 것이나 아픈 것이 다시 있지 아니하리니 처음 것들이 다 지나갔음이러라”
⑤ 치유의 손길 :
우리가 세상을 살아가다 보면 영적으로 육적으로 많은 상처를 입고, 각종 질병으로 시달리게 됩니다. 그래서 우리에게는 치유가 필요합니다. 물론 의학이 유용하게 사용되기도 합니다. 그러나 결국 모든 상처와 질병을 치료하시는 분은 ‘여호와 라파’ 하나님이십니다.
그분이 우리에게 치유의 은혜를 베풀지 않으면 의사도 약도 소용이 없습니다. 오히려 의사나 약으로 고칠 수 없는 것조차 하나님이 치유의 손길로 도와주시면 나음을 받을 수 있습니다.
마태복음 8장에 보면, 예수님께서 문둥병자를 고쳐주신 사건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마 8:2~3 “한 문둥병자가 나아와 절하고 가로되 주여 원하시면 저를 깨끗케 하실 수 있나이다 하거늘 예수께서 손을 내밀어 저에게 대시며 가라사대 내가 원하노니 깨끗함을 받으라 하신대 즉시 그의 문둥병이 깨끗하여진지라” 예수님의 손이 얼마나 놀라운 치유의 능력을 갖고 있는지 보여줍니다.
옛날 어린 시절의 기억이 납니다. 밤새 열이 펄펄 끌어서 괴로워할 때 어머니가 손으로 이마를 짚어줍니다. 그러면 열이 내렸습니다. 그리고 배가 아파서 고통스러워할 때 어머니가 손으로 배를 쓸어주시면 아픈 게 사라졌습니다. 그래서 어머니 손은 ‘약손’입니다.
여러분! 하나님의 손은 ‘더 큰 약손’입니다. 예수님의 손은 ‘더 큰 약손’입니다. 그 손의 능력을 의지함으로 모든 질병과 상처에서 치유 받으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은 이처럼 다양하게 그 손으로 역사하셔서 우리 성도들을 도우십니다. 그래서 험한 인생길에 동행해 주시고 능력으로 역사해 주심으로 승리케 해주십니다. 그러므로 성도 여러분! 세상을 의지하지 말고 오직 하나님의 손을 의지하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의 손이야말로 가장 큰 힘입니다. 가장 확실한 승리의 방법입니다. 하나님의 손이 함께 하면 우리 인생은 반드시 형통할 수 있습니다.
그러면 어떻게 해야 하나님 손길의 도움을 받을 수 있습니까? 본문에 보면 사무엘과 백성들이 부르짖어 기도합니다. 그때 하나님의 손이 그들을 도와주셨습니다. 우리도 날마다 기도함으로 하나님의 손을 의지하고 그 도우심을 받기 바랍니다.
그리고 우리만 하나님의 손을 의지하는 게 아니라, 우리 주변에 하나님의 손이 필요한 사람들에게 하나님의 손을 잡도록 도와주어야 합니다. ‘전도’가 딴 게 아닙니다. 세상 사람들로 하여금 ‘하나님의 손을 잡도록 도와주는 것’입니다.
희대의 여배우 마를린 먼로의 이야기입니다. 그는 마지막 약물을 과다복용하고 자실을 기도합니다. 그가 운명한 후 경찰이 현장에 달려갔습니다. 현장 검증한 결과 그의 마지막 운명 모습이 전해졌습니다. 그는 마지막 순이 끊어지는 순간 고통스러워하며 손을 뻗쳐 전화기를 향하고 있었다는 것입니다. 누군가의 도움을 호소하는 모습입니다. 이 이야기를 들으면서 그런 생각을 해봅니다. 진작 그가 하나님의 손을 붙잡았더라면 ... ? 정말 아쉽습니다. 오늘 우리 주변에도 그와 비슷한 사람들이 허다합니다. 겉보기에 멀쩡하고, 아니 화려해 보이는 사람들 중에도 남모르는 사연으로 고통스러워하며 허무감에 몸부림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우리는 그들의 손이 하나님의 손을 붙잡을 수 있도록 도와줄 책임을 갖고 있습니다. 아무쪼록 우리 자신도, 가족도, 이웃도 모두 하나님의 손을 꼭 잡고 승리할 수 있기를 간절히 소원합니다. (홍문수 목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