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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의 부족을 채우시는 하나님 (민 11: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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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의 부족을 채우시는 하나님 (민 11:4-9)


한 아가씨가 지하철 사람 많은 곳에서 방귀가 나오려고 하는 겁니다. 참으려고 해도 안되는 겁니다. 그래서 머리를 썼습니다. 사람들이 미는 순간 소리를 내면서 동시에 방귀를 꾸었습니다. 완전범죄 아니겠어요? 그런데 옆에 있던 아줌마가 째려보면서 하는 말이 “소리는 됐는데 냄새는 어떻게 할껴?”고 했답니다. 자신은 지혜롭게 한다고 했지만 완전할 수가 없었습니다. 이처럼 인간의 지혜는 한계가 있고 부족합니다. 자신은 머리를 써서 잘 했다. 성공했다고 하지만 하나님이 붙들어 주지 않으면 흠도 많고, 이곳저곳 부족한 것뿐입니다.

오늘 본문에서 이스라엘 백성들은 자신들의 불편한 삶을 고백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그들에게는 생선도 없었고, 목마름을 해소 시켜 줄 오이도 없었고, 참외와 같은 과일도 없었고, 부추와 파와 마늘과 같은 정력을 도와줄 음식도 없었습니다. 민수기 20:5절에 보면 그들은 모세에게 이렇게 말합니다. “너희가 어찌하여 우리를 애굽에서 나오게 하여 이 나쁜 곳으로 인도하였느냐 이곳에는 파종할 곳이 없고, 무화과도 없고, 포도도 없고, 석류도 없고, 마실 물도 없도다”

그들의 말은 참으로 옳은 말입니다. 광야에는 씨를 뿌릴 땅이 없었습니다. 광야에는 무화과도 없고, 포도도 없고, 석류도 없고, 마실 물도 없었습니다. 생선도 없었고, 오이도 없었고, 참외도 없었고, 부추와 파와 마늘도 없었습니다. 그들이 볼 때 그들에게는 없는 것이 너무나도 많았습니다. 없었기 때문에 그들은 불평했고, 불만을 털어 놓았습니다. 없는 것을 없다고 하는 것이 무슨 잘 못이겠습니까? 이렇게 백성들이 “없다 없다”하게 된 원인이 어디에서부터 온 것입니까? 4절 말씀에 보면 “그들 중에 섞여 사는 다른 인종들이 탐욕을 품으매...”라고 했습니다. 이렇게 없다 없다라고 주장하게 된 가장 큰 원인은 “그들 중에 섞여 사는 다른 인종들이 탐욕을 품었기 때문”이라고 했습니다. 이것이 문제입니다.

불평과 원망의 원인은 다른 것에 있었던 것이 아니라 바로 하나님의 백성 중에 섞여 있었던 가인 족속들의 탐욕으로 인해 큰 문제가 발생한 것입니다. 탐욕은 놀랍게도 하나님의 백성들의 눈을 멀게 했습니다. 탐욕이 얼마나 무서운 죄악인지 첫째로 하나님이 그들에게 주신 구원의 은혜를 망각하게 했습니다. 하나님은 애굽에서 크신 능력으로 그들을 인도해 내셨습니다. 과거에 이미 그들은 애굽에 내렸던 10가지 재앙을 그들은 체험했습니다. 홍해를 가르신 하나님의 놀라운 역사를 체험했습니다. 그들은 쓴 물을 단물로 바꾸시고, 아말렉 족속을 이기신 하나님의 놀라운 인도하심을 체험했습니다. 탐욕이 그들 마음에 들어가자, 그들은 과거에 하나님께서 자신들을 어떻게 인도하시고, 어떻게 구원하셨으며, 무슨 은혜를 주셨는지 모두를 잃어버리는 영적 치매 현상에 걸리고만 것입니다. 탐욕이 얼마나 무서운 재앙인지 모릅니다.

예레미야 선지자는 “처녀가 어찌 그의 패물을 잊겠느냐 신부가 어찌 그의 예복을 잊겠느냐 오직 내 백성은 나를 잊었나니 그 날 수는 셀 수 없거늘”(렘 2:32)이라고 지적한 후에 “내 백성이 두 가지 악을 행하였나니 곧 그들이 생수의 근원되는 나를 버린 것과 스스로 웅덩이를 판 것인데 그것은 그 물을 가두지 못할 터진 웅덩이들이니라”(렘 2:13)고 했습니다. 탐욕은 자신들의 과거에 어떻게 하나님께 도와주신 것을 잃어버리게 하는 무서운 영적 질병입니다.

둘째로 그들의 마음에 탐욕이 불처럼 일어나자 현재 자신들을 인도하시고, 그들을 지키시며 보호하시는 하나님의 은혜를 잃어버렸습니다. 아담과 하와가 마귀의 말을 듣고 탐욕에 눈이 어두워지자, 선악과가 지혜롭게 할 만큼 탐스럽게 보였던 것처럶 그들 눈에는 애굽에서 먹었던 음식들이 더 아름답게 보였고, 더 지혜롭게 할 만큼 능력 있는 것으로 보였던 것입니다. 그들은 6절에서 말하기를 “이제는 우리의 기력이 다하여 이 만나 외에는 보이는 것이 아무 것도 없도다”라고 했습니다. 만나는 하나님께서 그들을 현재 돕고 계시며, 그들과 함께 하신다는 놀라운 증거였습니다. 그들은 매일 아침 그들 눈 앞에 펼쳐진 하나님의 은혜를 날마다 경험할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놀랍게도 그것이 더 이상 하나님의 은혜로 가슴에 다가 오지 않았던 것입니다.

왜 그렇습니까? 그들의 눈에는 지금 돕고 있는 하나님이 보이지 않았고, 지금 그들 가운데 부족한 것을 채우고 계신 그 하나님의 은혜가 보이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도대체 왜 이 사람들의 눈에는 이렇게 현재 그들을 도우시는 하나님의 은혜와 역사하시는 은혜가 감격으로 다가오지 않은 것입니까? 이런 감사가 없는 삶의 행태를 누구에게서 배운 것입니까? 4절에는 분명히 “섞여 사는 다른 인종들에게 영향을 받았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믿음의 사람들의 라이프 스타일과 믿음없는 이방인들의 라이프 스타일은 분명하게 다른 것입니다. 그런데, 문제는 믿음의 사람들이 이방인들에게 영향을 주어야 할 상황에서 오히려 믿음의 삶을 살지 않고, 세상의 방식과 세상의 방법으로 살아가고 있는 이방인들의 라이프 스타일을 믿음의 삶을 살고 있는 성도들이 받아들인 것입니다.

세상과 비교해 보니 자신들의 삶은 너무나도 초라하다는 것입니다. 먹을 것을 제대로 먹지 못하고 산다는 것입니다. 십일조를 드리지 않고, 살면 그 십일조를 가지고 다른 귀한 용도로 사용할 곳이 많이 있다는 것입니다. 선교 예물을 드리지 않고, 그 예물을 우리 아이를 위해서 사용하면 우리 아이가 고기 한점이라도 더 먹을 수 있다는 것입니다. 감사 예물을 드리지 않으면 그 예물 대신에 내 삶을 풍요롭게 하는 다른 일에 더 사용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 돈으로 생선도 살수 있고, 그 돈으로 오이와 참외와 부추와 포도와 마늘과 무화과와 석류 등의 각종 과일들을 살 수고, 하나님께 드리지 않고 나를 위해 사용함으로서 우리 가족도 배불리 먹을 수 있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얼마든지 오늘 이스라엘 백성들이 말한 것처럼 “우리의 기력이 다했고, 더 이상 만나를 먹을 수 없다”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놀라운 일은 우리 스스로가 경제적으로 어렵다 힘들다고 말하지만 그 말 속에서 하나님께서 우리를 돕는 은혜를 잃어버리고, 살고 있다는 것입니다. 믿음의 라이프 스타일을 따르면서 살려고 하지 않고, 세상의 믿음없는 족속들과 이방인들의 라이프 스타일을 우리들이 따르려고 하기 때문에 없는 것들이 불편하게 느껴지고, 불만으로 다가오고 있는 것은 아닌지 생각해 봐야 합니다.

탤런트 최수종씨 이야기를 좀 해야 겠습니다. 그의 젊은 시절의 꿈은 외국에 나가 광고 마케팅을 공부하여 크게 성공하는 것이 꿈이었습니다. 그런데, 가정 형편이 어려워 부모님은 남미의 파라과이로 이민을 떠나게 되었고, 자신도 외국 유학은 생각할 수도 없게 되었습니다. 그는 자신에게 갑자가 닥친 불행을 원망하지 않았습니다. 왜냐하면, 그에게는 그 환경을 극복하게 하시는 하나님이 계셨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는 시간을 정해 놓고 매일 새벽마다 하나님 앞에 기도하기 시작했습니다. ‘하나님, 나에게 능력을 주시옵소서. 구하라 주실 것이요, 찾으라 찾을 것이요, 두드리라 열릴 것이라고 했으니 나도 유학 가서 꿈을 이루게 하옵소서.' 그는 말씀을 벽에 붙여 놓고 이렇게 새벽마다 기도했습니다. 놀라운 일이 일어났습니다. 아버지의 사업이 회복되면서 생각지도 않게 유학의 길이 열려 미국 콜로라도주립대학에 가서 공부를 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유학 중에 다시 큰 고난이 닥쳤습니다. 자신의 든든한 후원자였던 아버지가 세상을 떠나셨고, 생활이 더 어렵게 되었습니다. 급기야는 밀가루 한 포대를 사다 놓고 4개월 동안 수제비는 생활을 해야 했습니다. 결국, 그는 도저히 견딜 수가 없게 되어 다시 귀국하고 말았습니다. 한국에 돌와 왔다고 해서 그를 환영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습니다. 귀국 후에도 오갈 데가 없어 고속버스터미널에서 얼마가 노숙자로서 신문을 덮고 잤고, 극장에서 점원 노릇을 하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그는 계속해서 하나님께서 자신을 지금 돕고 계시다는 그 믿음을 떨쳐 버릴 수가 없었습니다. 어려움 가운데서도 언제나 아침 일찍 일어나 새벽 기도를 했습니다. 마가복음에 있는“할 수 있거든 무슨 말이냐 믿는 자에게는 능치 못할 일이 없느니라.”는 말씀과 빌립보서에 있는 “내게 능력주시는 자 안에서 내가 모든 것을 할 수 있느니라.”는 말씀을 붙들고, 어려움과 고통이 올 때마다 “하나님, 나를 붙들어 주시옵소서. 반드시 인생의 형통할 때가 오게 하실 것을 믿습니다. 나를 통해 하나님께 영광 돌리게 하옵소서.”라고 기도하였습니다. 어느 날 우연치 않게 하나님께서 그를 극장 점원으로 인도하셨고, 그곳에서 우연히 연예계로 입문하게 하셨습니다. 그리고, 점점 유명해져서 오늘날의 스타의 자리에 오르게 하셨습니다. 그는 결코 배우가 되려고 노력하지는 않았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뜻하지 않게 그를 연예계로 인도하셨고, 가장 건실한 가정을 이루고 있는 연예인으로 만드셨고 지금도 이곳 저곳에서 자신의 삶에 대한 간증을 하고 있습니다.

여러분은 어떤 인생의 라이프 스타일을 꿈꾸고 있습니까?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의 백성임에도 불구하고 하나님 중심의 라이프 스타일이 아니라 세상 중심의 라이프 스타일을 가지고 살려고 했습니다. 그러자, 그들은 현재 그들을 돕고 계신 하나님을 볼 수가 없었습니다. 그들을 채우시는 하나님의 은혜를 볼 수가 없었습니다. 그들은 있는 것에 감사하지 않게 되었고, 채우시는 하나님의 은혜를 대적하고, 오히려 없는 것에 대해 불평하기 시작한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없는 것에 인생을 맞출 것인가? 아니면, 있는 것에 초점을 맞추고 있는 것을 적극적으로 활용하고 감사하며 인생을 꾸려 갈 것인가는 여러분들의 선택입니다. 그러나, 이것만은 꼭 알아야 합니다. 하나님의 사람으로서 믿음의 관점으로 볼 때 없다고 생각고 없는 것을 채우려는 사람에는 그 있는 것까지 빼앗기게 되는 날이 온다는 것입니다.

아브라함은 아무 것도 없는 광야를 선택해야 했습니다. 그러나, 롯은 자신의 욕심을 채우기 위해 풍요로운 소돔과 고모라를 선택했습니다. 그 결과는 우리가 너무나도 잘 알고 있습니다. 롯은 세상의 라이프 스타일로 자신을 채우려고 했던 것입니다. 결국, 그의 인생의 남은 것 없이 모두 빼앗기게 되었고, 망하게 되었습니다. 우리를 채우시는 분은 세상이 아니라 하나님입니다. 분명히 하나님은 빌립보서 4:19절에서 “나의 하나님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영광 가운데 그 풍성한 대로 너희 모든 쓸 것을 채우시리라”고 했습니다. 현재 있는 것에 감사해야 합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이처럼 섞여 사는 세속적인 인생들의 라이프 스타일의 유혹에 빠져, 지금 하나님께서 주시는 만나조차도 감사하지 않는 어리석은 인생이 되어 멸망의 길로 가고 말았습니다.

마지막으로 오늘 본문을 통해 볼 때 이렇게 불평과 불만으로 먹을 것을 채우려고 했던 이스라엘 백성들의 가장 큰 문제는 비전의 상실에 있었습니다. 그들의 비전은 이 광야에서 사는 것이 아닙니다. 그들의 비전은 바로 가나안 땅에 들어가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들이 섞여 사는 이방민족들의 유혹에 빠졌을 때 그들은 하나님이 주신 비전을 상실하고 삶의 터전을 광야에 두고, 광야에서 뿌리를 내리고 번성하려고 했습니다. 하나님의 백성들에게 잃어버려서는 안 될 위대하고 거대한 주제가 있다면 비전입니다. 그들은 광야의 삶 속에서 물도 없고, 식물도 없는 것이 불편했고, 불만이었습니다. 그들은 그들의 지도자 모세를 원망하였고 하나님을 불신했습니다. 그들이 이렇게 된 가장 큰 원인은 바로 그들 속에 비전이 사라졌기 때문입니다.

세상 공부가 가르칠 수 없는 것이 바로 비전입니다. 성도는 하나님의 나라를 향한 꿈과 비전을 가진 사람들입니다. 잠언서 29:18절에는 “묵시가 없으면 백성이 방자히 행하거니와 율법을 지키는 자는 복이 있느니라”고 했습니다. 묵시라는 말이 바로 비전입니다. 비전이 없는 백성은 방자하게 된다고 했습니다. 방자하게 된다는 말은 “망할 짓을 하다”는 말입니다. 비전이 없는 사람들이 하는 일은 망할 짓을 하게 된다는 말씀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말씀을 붙들고 말씀을 의지하며, 말씀을 지키려고 하는 사람들에게는 복이 있다고 했습니다.

그들은 세상의 라이프 스타일을 따르면서 하나님이 주신 가나안을 향한 비전을 상실한 것입니다. 따라서, 이제 우리들은 다음과 같은 두 가지 결단을 내려야합니다. 첫째는 우리 속에 있는 다른 인종을 쫓아내야 합니다. 아브라함에게 하나님은 인정사정 볼 것 없이 애굽의 여인 하갈을 쫓아내라고 하셨던 것처럼 우리 속에 있는 이방 여인인 하갈을 쫓아내야 합니다. 하나님을 대적했던 고라와 그를 따르는 무리가 땅이 갈라져 음부로 떨어졌던 것처럼 우리 속에 있는 고라의 무리를 제거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뜻을 거역했던 선지자 미리암이 문둥병에 걸렸을 때 진영 밖으로 쫓아 내었던 것처럼 불신의 악한 세력은 모두 우리 속에서 진영 밖으로 쫓아 내야 합니다. 이제 여러분 속에 있는 모든 어둠의 영들과 귀신들의 무리와 유혹과 미혹의 마귀들이 떠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둘째로 우리는 또 비전을 향한 결단을 내려야합니다. 그것은 세상의 라이프 스타일이 아닌 하나님의 라이프 스타일인 비전 중심의 살을 살려고 노력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비전이 없으면 백성은 망하는 것입니다. 수 천 명이 모이고 수 만 명이 모여도 교회에 비전이 없으면 망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기드온의 삼백 용사와 다윗의 사백 용사가 비전으로 모였을 때 하나님은 그들에게 역사하셨습니다. 비전은 숫자에 있는 것이 아니라, 이루고자 하는 꿈과 믿음에 있는 것입니다.

저희 교회는 꿈꾸며 기도하며 소망하는 비전이 있습니다. 선교사 파송을 통해 세계적인 영향력을 가진 교회로 성장하려는 비전이 있습니다. 여러분 모두가 이 광야의 시대에 낙심하지 말고, 비전을 잃지 말고, 세상의 라이프 스타일을 따르지 않기를 축원합니다. 섞여 사는 이방인들의 라이프 스타일을 좇다가 멸망의 길로 가지 않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저는 우리의 부족을 채우시고 역사하시는 하나님께서 이루실 줄을 믿습니다. 함께 교회의 부흥과 선교의 비전과 자신들의 비전을 위해 기도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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