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스도인의 이성교제 (창 2:23)
본문
(창 2:23) 아담이 가로되 이는 내 뼈 중의 뼈요 살 중의 살이라 이것을 남자에게서 취하였은즉 여자라 칭하리라 하니라
1. 우리들의 이성에의 관심은 당연한 것이며 정상적인 것이다.
우리에게는 많은 관심사항들이 있습니다. 직장, 학교성적과 진로 등에 대한 관심이 있습니다. 가정과 부모님과의 관계에 대한 관심이 있습니다. 자신의 외모와 복장 등에 관심이 있습니다. 이성에 대한 관심도 있습니다. 이러한 관심 사항들이 우리의 소원대로 이루어질 때 행복을 느낍니다. 하지만 이러한 관심 사항이 뜻대로 되지 않을 때 슬픔과 고민에 빠집니다. 그로인해 스트레스를 받고 괴로워합니다. 그중에서 우리의 마음 깊은 곳까지 상처를 주는 것 중의 하나가 이성문제입니다.
이러한 우리의 관심 사항들은 바로 우리 마음의 욕구들입니다. 우리는 우리가 바라는 것들에 관심을 기울입니다. 우리의 내면세계에서 분출되는 욕구들이 관심의 대상을 결정합니다. 이 욕구들 중에는 정상적인 것도 있고 비정상적인 것도 있습니다. 비정상적인 욕구에 의해 나온 관심은 결국 불행으로 끝납니다. 정상적인 욕구에 의한 관심이라 할지라도 그 처리 방법이 틀리면 마찬가지로 불행에 이르게 됩니다.
이성교제에 대한 관심 중 대다수가 잘못된 욕구에 의해 나타납니다. 이성에 대해 관심을 기울이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대개 성적인 욕구 충족을 위해 관심을 나타내는 형제들이 많습니다. 이성을 소유하려는 소유욕을 위해 관심을 나타내는 형제들도 있습니다. 자기 과시를 위한 과시욕으로 관심을 나타내는 자매들도 있습니다. 이성과의 관계가 자신의 성공에 속한다는 성공관에 의해 관심을 기울이는 자매들도 있습니다. 이성의 정복을 위한 정복욕을 위해 관심을 기울이는 형제들도 있습니다.
이런 것들은 모두 잘못된 욕구에 의한 관심들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러한 관심의 근원을 알아야 합니다. 우리에게는 이성만이 채울 수 있는 빈 곳이 있습니다. 이성만이 채울 수 있는 빈 공간의 존재로 인해 외로움이 존재합니다. 이성만이 채울 수 있는 빈 공간의 존재로 인해 공허함이 존재합니다. 이성교제는 이 외로움으로 인해 나타나는 자연적인 현상이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이 외로움을 통해 이성에게 관심을 기울이게 하셨습니다. 오늘 본문은 이 관심이 왜 나타나는지 알려줍니다.
하나님께서는 아담이 독처하는 것이 좋지 못하여 돕는 배필을 지어 주셨습니다. 결국 아담에게는 자신을 완전케 하는 돕는 배필에 대한 욕구가 있었으며, 그에 대한 관심이 나타나게 되었습니다. 자신의 뼈 중의 뼈요, 살 중의 살인 배필을 만나기까지 그 관심은 계속 됩니다. 하와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자신이 도울 배필을 찾기까지 남자에 대한 관심과 욕구가 계속 됩니다. 자신을 있는 그대로 받아줄 남자를 찾기까지 관심은 사라지지 않습니다. 자신을 뼈 중의 뼈요 살 중의 살로 받아들일 남자를 발견하기까지 관심은 계속됩니다.
남자와 여자의 이러한 관심은 지극히 당연한 것입니다. 서로 만나 한 가정을 이루기까지 이 관심은 계속 되어야 합니다. 좁은 의미로, 이성 교제란 이러한 관심사항이 성취되어 결혼함으로써 둘이 한 몸이 될 때까지를 말합니다. 우리는 이러한 이성교제를 어떻게 해야 성경적인 것인지를 알아야 합니다. 우리의 이성교제의 기준을 말씀 안에서 세워 가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아담과 하와가 결혼하기 전까지 어떻게 지내왔는가를 생각해 보아야 합니다.
2. 이성 교제의 첫 번째 전제조건은 개인적인 하나님과의 만남이다.
아담과 하와의 이성 교제는 시작부터 끝까지 하나님과의 만남 안에서 이루어졌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아담을 만드셨습니다. 아담은 하나님과 창조주와 피조물의 관계로 만났습니다. 하와 역시 하나님과 창조주와 피조물의 관계로 만났습니다. 이 만남은 오로지 하나님의 계획에 의해서 이루어진 것으로서 한 순간에 완성된 만남입니다. 이 만남에 의해 아담과 하와는 자신을 알고 하나님을 아는 자가 되었습니다. 이 지식이 이성교제의 기본을 형성해 주었습니다.
창조주 하나님 안에서 하나님을 알고, 자신을 알고, 돕는 짝을 알 때 이성교제가 가능합니다. 아담은 창조주 하나님 안에서 일정한 기간 동안의 훈련을 받았습니다. 독처하는 기간 동안 하나님과 교제하며 자신을 알았습니다. 자신이 해야 할 일들을 하며 그 가운데 계신 하나님을 알았습니다. 하나님은 아담으로 하여금 자신과 하나님을 알 수 있도록 이끄셨습니다. 동물들을 아담에게 이끌어 오셨습니다. 아담은 이 동물들의 이름을 지어 주었습니다. 그러면서 자신에게 빈 공간이 있음을 알았습니다. 그 공간을 채워줄 여자가 어떤 여자인지 알았습니다.
하와도 마찬가지입니다. 하와도 창조주 하나님의 손에 이끌림을 받았습니다. 하나님과 교제하며 자신이 가야할 곳을 알았습니다. 하나님 안에서 자신을 발견해 나가는 과정이 있었습니다. 하나님 안에서 자신이 채워 주어야 할 대상이 되는 남자가 어떤 존재인지 알았습니다. 하나님의 손 안에서, 하나님의 이끌림에 의해서, 그 남자에게로 가는 과정이 있었습니다. 자신이 갈 방향을 찾아 간 것이 아니라 전적으로 하나님의 손에 이끌려 찾아 갔습니다. 자신이 채울 갈빗대의 위치를 아시는 분이 창조주 하나님이심을 알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에 의한 훈련과 이끌림에 의해 아담과 하와가 만났을 때 완전한 짝의 만남이 이루어졌습니다. 뼈 중의 뼈요 살 중의 살이라는 고백을 할 수 있었습니다. 서로 벌거벗고 있어도 부끄럽지 않는 완전한 조화를 이루는 만남이 가능했습니다. 그러므로 이성교제는 남녀의 만남을 위한 준비 과정입니다. 남녀의 완전한 연합과 일치를 위한 준비 과정입니다.
남자는 남자대로 하나님 안에서 하나님과 자신을 발견하고 돕는 배필의 모습을 그려가는 과정입니다. 여자는 여자대로 하나님의 손에 이끌려 하나님과 자신을 발견하고 남자의 모습을 그려가는 과정입니다. 남녀간의 이성교제는 곧 만남을 위한 준비과정입니다. 긴 준비기간을 거친 후 이루어지는 만남을 통하여 하나님 중심의 삶을 사는 존재가 됩니다. 우리는 남녀간의 만남을 통하여 사람다운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사실상 첫 사람인 아담과 하와에게는 이성교제의 기간이 없었습니다. 이들은 이성교제의 기간 없이 만나 완전한 연합을 이루었습니다. 그럼에도 이들은 뼈 중의 뼈요 살 중의 살이라는 고백을 할 정도로 완전한 연합임을 고백했습니다. 자신이 그려가던 짝임을 알았습니다. 자신을 완전한 사람으로 만들어 줄 반쪽임을 알고 고백하였습니다.
이것은 이들이 아직 범죄 하기 이전이었기 때문입니다. 이들은 하나님 안에서 온전히 하나님과 자신과 상대방인 이성을 알 수 있었습니다. 독처하며 일을 해 나가는 과정 속에서 막힘이 없이 상대 짝을 알아갈 수 있었습니다. 이 모든 것은 이들이 이미 하나님과 완전히 아는 관계 속에 있었기 때문에 가능한 것이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에게는 아담과 하와와는 또 다른 전제 조건이 요구됩니다. 바로 하나님과의 만남이라는 일차적 조건이 만족 되어야만 하는 것입니다.
우리의 관심인 이성교제는 사람다운 사람이 되기 위한 준비과정입니다. 하나님의 창조 목적 안에서 사람다운 사람이란 완전한 연합을 이룬 남자와 여자의 한 쌍을 의미합니다. 이 한 쌍이 함께 위로 하나님을 경배하며 아래로 만물을 다스릴 때 이 한 쌍을 완전한 사람이라고 봅니다. 그런데 이렇게 완전한 사람을 이루기 위한 정상적인 이성 교제를 위해서는 남자와 여자가 각각 하나님과의 만남을 이루고 있어야 합니다.
우리는 하나님과 만날 때만 성적인 존재로서 자신의 온전한 존재를 알게 됩니다. 남자는 남자로서의 자신이 누구인지를 알 수 있습니다. 여자는 여자로서의 자신이 누구인지를 알 수 있습니다. 또한 남자는 여자의 존재를 알게 됩니다. 여자는 남자의 존재를 알게 됩니다. 하나님과의 만남만이 성적인 존재로서의 이성의 존재를 바르게 알게 합니다. 우리는 결코 하나님을 알지 못하고 자신과 다른 이성을 알 수 없습니다. 더군다나 자신에게 맞는 반쪽을 알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이성 교제의 전제 조건은 하나님을 알아 가는 데 있습니다. 남자와 여자가 각각 하나님을 향해 가까이 가면 갈수록 남녀 사이도 점점 가까워집니다. 마치 삼각형의 관계와 같습니다. 꼭짓점에 하나님이 계시고 밑변의 양 끝에 남자와 여자가 있는 것과 같습니다. 남자와 여자가 각각 하나님께 가까이 갈수록 하나님의 창조 목적을 알게 됩니다. 하나님께 가까이 갈수록 자신의 존재 목적을 알게 됩니다. 하나님께 가까이 갈수록 자신의 돕는 짝의 모습을 정확히 그릴 수 있습니다.
3. 하나님과의 만남이 없는 이성교제는 서로에게 상처를 쌓아간다.
그러므로 이성교제란 우리가 하나님께 가까이 가면서 얻은 신적 지식을 실제로 확인하는 작업입니다. 하나님께서 알려 주시는 이성에 관한 정보를 확인하고, 적용하고, 새로운 정보를 발견해 가는 과정입니다. 그러기에 이성교제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하나님을 바라보며 이성을 바라보고, 이성을 바라보며 하나님을 바라보는 것입니다. 이 과정이 없는 이성 교제는 육체적 관계일 뿐입니다.
아담은 독처하는 기간동안 하나님과의 만남이 우선되었습니다. 독처하며 하나님과의 만남을 통하여 자신의 참 모습을 알아 갔습니다. 하나님과의 만남 속에서 동물 이름을 지어주는 일을 하며 이성인 여자에 대한 인식을 바르게 세워 나갔습니다. “뼈 중의 뼈, 살 중의 살”이 어떤 존재인지 알게 되었습니다. 하와도 독처하는 기간 동안 하나님과 동행하며 자신과 이성의 참모습을 알아 갔습니다.
하나님과 만난 사람만이 이성과 만나 무엇을 해야 할지를 알게 됩니다. 하나님과 만난 사람만이 이성과 바르게 만나는 방법을 알게 됩니다. 또한 하나님과 만난 사람은 하나님이 주신 사명을 알게 됩니다. 이 사명을 감당할 때 자신에게 반쪽이 부족함을 알게 됩니다. 이 사명을 감당할 때 자신에게 비어있는 반쪽의 모습을 그리게 됩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을 만난 사람만이 이성의 바른 모습을 알고 찾아 나설 수 있습니다.
하나님을 만나지 않은 사람은 오직 정욕과 소유욕과 인생의 장식품으로서 이성을 찾아 나설 뿐입니다. 하나님을 모르고 이성 교제를 하는 사람은 죄악의 지름길로 접어드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아직 하나님을 만나지 않고 이성교제를 하는 사람들은 그 이성교제를 중지하고 우선적으로 하나님을 찾으십시오. 우선적으로 하나님께 나아가십시오. 그럴 때만 이성교제가 유익을 줄 것입니다. 하나님을 만나고, 그 안에서 이성 교제를 할 때 그 모든 과정이 하나님 안에서 영원한 기쁨의 과정이 됩니다.
그러나 하나님과의 만남이 없는 이성 교제를 계속 한다면 그 상처가 마음에 쌓일 것입니다. 원치 않는 쓰레기들이 마음에 쌓여 나갈 것입니다. 흉한 상처가 마음에 새겨질 것입니다. 억지로 이성교제를 하여 이성간의 만남과 영육간의 결합을 이루어지더라도 그들에게 오는 것은 기쁨이 아니라 고통입니다. 조만간 이혼이라는 쓴 뿌리가 생기게 됩니다.
하나님과의 만남이 없는 여자들은 결코 남자에게 유익을 주지 못합니다. 그런 여자와 교제하는 남자들은 그들의 욕구를 채워주기 위해서 자신의 형상을 파괴시켜야 하는 불행을 맛보게 됩니다. 하나님과의 만남이 없는 남자들은 결코 여자들을 행복하게 해 주지 못합니다. 그 남자들은 여자들을 사랑하는 것이 아닙니다. 여자를 성적 소유물로 사랑할 뿐입니다. 여자 본체 전체를 자신의 반쪽으로 받아들이는 것이 아니라 육체적으로만 반쪽을 인정하기에 그 외의 더 많은 부분들이 거부당합니다.
그런 남자들은 다른 방식으로 여자의 육체적인 반쪽의 채움을 받을 수 있을 때마다 언제든지 버림받을 수 있는 위치에 서게 됩니다. 그러므로 결코 하나님과의 만남이 없는 남자 또는 여자와 이성교제를 하지 마십시오. 또한 자신이 하나님과 만나지 못하는 한 이성교제를 하지 마십시오. 먼저 하나님을 만나십시오. 그럴 때 하나님께서 여러분을 가까이 하시며 여러분의 이성교제를 만족 가운데로 이끄실 것입니다.
4. 이성 교제의 두 번째 전제조건은 부모님의 통제와 공급이다.
이성 교제를 위한 전제 조건에 또 한 가지가 있습니다. 이성 교제를 위해서는 하나님을 만나는 것만이 전부가 아닙니다. 지금의 우리는 창조시의 아담이나 하와와는 다른 상황이기 때문입니다. 아담과 하와는 아름다운 청년의 모습으로 창조되었기 때문에 계속 성장해 가야 하는 우리와는 전혀 다른 상황입니다. 우리는 지금 육체적으로, 정신적으로 성장해 가고 있습니다. 성장해 가면서 이성 교제를 해야 하는 상황입니다.
아담과 하와는 장성한 가운데 이성교제를 하고 연합을 하였지만 우리는 육체적으로, 정신적으로, 사회적으로 자라가면서 이성 교제를 해야 하는 상황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께서는 우리로 하여금 이차적인 전제조건 속에서 이성 교제를 하게 하셨습니다. 이성 교제의 이차적인 조건은 부모님과의 관계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부모님을 통해 이성 교제에 필요한 것들을 공급하십니다. 부모님과 가정은 이성과의 만남에 필요한 공간을 제공합니다.
가정과 부모님은 우리의 이성과의 만남을 거룩한 만남이 되게 합니다. 독처하는 기간 동안 돕는 배필이 없는 부족의 채움을 받습니다. 부모님과의 만남은 반쪽이 없어서 부족한 우리를 보호합니다. 부모님을 통해서 다른 반쪽의 모습을 그려가게 하십니다. 부모님을 통해 다른 반쪽의 역할을 경험하게 하십니다. 그러므로 부모님의 영향 아래서 이성을 만나는 사람이 정상적인 이성 교제를 할 수 있습니다. 부모님의 공급이 없는 이성 교제는 역시 타락의 지름길이 되기 쉽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독처하는 기간 동안의 활동을 부모와 가정에 위임하셨습니다. 아담의 독처하는 기간 동안의 모든 만남은 오늘날 우리에게 있어서는 가정 내에서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성교제는 하나님을 아는 믿음 안에서, 그리고 가정의 부모님의 통제와 보호와 공급 안에서 이루어져야 합니다. 그러므로 부모님의 도움이 어려운 가정이라면 그 누구보다도 더욱 철저하게 하나님과의 만남에 최선을 다해야 합니다.
이성교제에 있어서 기본적인 두 가지의 만남인 하나님과의 만남과 부모님과의 만남이 정상적일 때, 그 안에서 이성과의 만남도 정상적일 수 있습니다. 아담이 독처하는 기간 동안 아담에게 영향을 준 요소는 오직 하나님과 가정뿐이었습니다. 그 안에서의 이성교제였기 때문에 자신의 돕는 짝을 발견하고 “이는 내 뼈 중의 뼈요 살 중의 살이라 이것을 남자에게서 취하였은즉 여자라 칭하리라”라고 고백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5. 이성 교제의 전제 조건에 관한 성경의 예들을 기억해야 한다.
성경에는 이 두 가지의 전제 조건에 대한 예가 나와 있습니다. 이성교제의 전제 조건을 만족시킨 가운데 행한 이성교제와 이것을 무시한 가운데 이루어진 이성 교제의 결과들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전제조건을 무시한 대표적인 이성 교제는 창세기 34장입니다. 야곱의 딸 디나와 하몰의 아들 세겜 사이의 이성 교제입니다. 하나님과의 만남이 없는 이방인 세겜은 남자인 자신과 여자인 이성이 어떤 존재인지 모릅니다. 그래서 디나의 외적인 아름다움에 빠져 디나를 소유할 욕심으로 강간하였습니다.
이 “강간”이라는 단어는 “화간”의 의미가 담긴 단어입니다. 이것은 야곱의 딸 디나가 하나님을 모르는 자의 요구에 응답했다는 뜻입니다. 디나와 세겜 모두 하나님과의 만남이 없이 이성 교제를 하였습니다. 그로인해 세겜의 남자들이 진멸 당하는 공동체의 파괴가 일어났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도 벧엘에서 서원했던 것(창 28:18-22)을 망각하고 살아가는 야곱의 죄가 드러나게 되었고, 그 상황에 대한 두려움 속에 빠졌습니다. 전제조건을 무시한 이성교제가 자신과 공동체를 파괴한 것입니다.
또 한 가지의 예는 사무엘하 13장입니다. 다윗의 아들 압살롬의 누이 다말과 다윗의 아들 암논 사이의 이성교제입니다. 외적 아름다움만을 기준으로 하나님과 가정 밖에서 이루어진 이성교제였습니다. 사무엘하 13:2에 보면 암논은 다말을 연애하여 상사병이 날 정도였습니다. 그래서 친구의 도움과 속임수로 다말을 자기 침실까지 유인하여 억지로 동침하였습니다. 그런데 동침을 한 후에는 암논의 마음이 달라졌습니다. 사무엘하 13:15에 보면 그가 다말을 심히 미워하게 된 것을 볼 수 있습니다.
다말을 그리워하는 암논의 그동안의 상사병은 진정한 사랑이 아니라 외모에 대한 소유욕에서 비롯된 갈증이었습니다. 암논이 하나님 안에서, 그리고 부모님의 통제 안에서 다말이 자신의 뼈 중의 뼈요 살 중의 살이라고 고백하고, 그와 연합하기를 원한 것이 아닙니다. 그러기에 이 이성교제 역시 파괴적인 결과를 낳았습니다. 이로 인하여 암논 자신은 죽임을 당했습니다. 그리고 다말의 오라비인 압살롬은 아버지인 다윗을 반역하다가 그도 죽임을 당하는 등 공동체 파괴가 일어났습니다.
반면에 이성교제의 두 전제 조건을 따르는 이성교제는 자신과 공동체를 세워줍니다. 창세기 24장에 나오는 이삭과 리브가의 만남은 하나님 안에서 이루어졌습니다. 이들은 하나님을 향해 있었고, 하나님의 인도를 따랐습니다. 또한 양쪽 다 부모님의 도움 속에서 만나게 되었습니다. 아버지 아브라함의 충분한 공급과 관리 속에 이루어졌습니다. 그로인하여 이들의 만남은 이스라엘 공동체를 세울 수 있게 하였습니다.
또 한 가지는 창세기 39장의 요셉과 보디발의 아내 사이의 관계입니다. 요셉에게는 하나님과의 만남 안에서의 이성교제의 기준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을 모르는 유부녀인 보디발의 아내가 아무리 강력하게 교제를 요청해도 그 요청을 물리치고 하나님의 계획을 이루어 나갈 수 있었습니다. 하나님은 이러한 요셉을 통해서 이스라엘 민족의 구원을 이루어 주셨습니다. 그러므로 모든 그리스도인 남녀들은 이 두 전제조건 속에서 이성과의 만남을 구체적으로 진행해 가야 합니다.
그러므로 이제 먼저 하나님을 만나십시오. 하나님을 향해 걸어가십시오. 그러면 이성 교제의 모든 문제가 풀립니다. 하나님 안에서 이성을 알 때만 이성 교제의 축복을 누릴 수 있습니다. 하나님과 교제하며 부모의 공급과 통제 속에서 이성교제를 할 때 우리의 이성 교제는 아름답게 이루어집니다. 이제 정상적인 이성 교제의 축복을 누리기 위해 하나님께 나아가십시오. 부모님께 나아가십시오. 우리의 이성 교제가 천국의 기쁨을 누리게 할 것입니다.
그런데 여기에는 우리가 해결할 수 없는 영역이 있습니다. 현재 우리의 가정들은 우리의 이성교제에 신앙적으로 도움이 되지 못한 경우가 대다수입니다. 오히려 신앙적인 교제의 방해가 되기도 하고, 대적이 되기도 합니다. 우리의 가정들이 믿음의 가정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믿음의 가정이라 할지라도 성경적인 안목이 부족한 가정이기 때문입니다. 오히려 가정과 부모님을 고려할 믿음을 벗어난 이성교제가 될 수도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할 수 있는 유일한 길은 하나님과의 만남에 목숨을 거는 것입니다. 하나님과의 긴밀한 만남과 교제는 남자와 여자의 모든 부족들을 보완해 줍니다. 또한 가정과 부모님의 공급과 보호의 결핍까지도 해결해 줍니다. 요셉은 부모의 손을 떠난 애굽 땅에 홀로 있으면서도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받았습니다. 하나님과의 만남을 이성교제의 최우선순위로 삼는 이성교제는 언제나 하나님의 이끌림을 받습니다.
그리스도인의 이성교제(2) (창 2:23)
(창 2:23) 아담이 가로되 이는 내 뼈 중의 뼈요 살 중의 살이라 이것을 남자에게서 취하였은즉 여자라 칭하리라 하니라
1. 하나님께서 여자를 아담에게 이끌어 오셔서 한 몸 되게 하셨다.
아담은 자신의 배필을 찾아 나서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의 배필을 창조하셔서 데려다 주셨습니다. 아담은 독처하며 자신에게 맡겨진 일을 수행하고 있었습니다. 자신의 일을 수행하며 돕는 배필을 사모하는 자가 되었습니다. 자신이 받은 명령을 수행함에 있어서 돕는 짝이 어떤 존재여야 하는 지를 알아갔습니다. 그 일을 하며 그 돕는 배필을 사모하고 있었습니다.
하나님은 아담이 자신의 돕는 짝이 어떤 존재인지 알게 되었을 때 그의 앞에 그 배필을 데려다 놓으셨습니다. 아담은 그 짝을 보자마자 자신의 일치하는 조력자임을 알고 고백하였습니다. “이는 내 뼈 중의 뼈요 살 중의 살이라 이것을 남자에게서 취하였은즉 여자라 칭하리라” 이렇게 해서 결합된 짝이 하나님이 원하시는 한 몸이며, 한 가정입니다. 이렇게 일치하는 짝이 기쁨으로 일을 하며 하나님을 기쁘시게 합니다.
그러므로 가정, 부부는 하나님께서 이루시는 일입니다. 하나님께서 주관하시는 이성교제의 목적은 여기에 있습니다. 자신이 받은 사명을 충실히 감당하고 있는 사람에게 이루어주시는 하나님의 최대의 선물입니다. 자신의 사명을 무시하고 이성교제만 하는 사람은 일치하는 짝을 발견할 수 없습니다. 자신이 뼈 중의 뼈요 살 중의 살이라고 고백할 수 있는 대상이 어떤 짝인지 모르기 때문에 방황만 합니다.
그러므로 자신의 사명을 감당하며 하나님이 주신 가정을 사모하는 자가 되어야 합니다. 사명을 감당하며 돕는 배필의 모습을 그려 나아가야 합니다. 그럴 때 어느 순간에 자신 앞에 하나님이 데려다 놓으신 자신의 반쪽을 발견하고 고백할 수 있습니다. 그와 한 몸을 이루어 살아갈 때 인생은 의미 있고, 기쁨에 넘치게 되며, 하나님 보시기에 기뻐하는 모습이 될 수 있습니다.
이렇게 창조하셨기에 여자는 남자의 일치하는 짝이 된 것입니다. 아담 자신도 자신에게 일치하는 짝임을 고백하고 있습니다. 창세기 3:23에서 “이는 내 뼈 중의 뼈요 살 중의 살이라”고 고백하고 있습니다. 자신과 완전히 일치한다는 사실을 알고 고백하고 있습니다. 자신이 독처하며 동물의 이름을 지을 때 사모하며 요구했던 완전한 짝임을 고백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고백을 할 수 있는 짝이 돕는 배필이며 배우자입니다.
이 짝이 있음으로 인해 하나님께 온전히 나아갈 수 있습니다. 이 짝이 있음으로 인해 만물을 향해 기쁨으로 일을 할 수 있습니다. 이 두 가지를 이루게 하는 것이 돕는 짝입니다. 아담은 바로 이것을 할 수 있게 하는 짝임을 발견하고 뼈 중의 뼈요 살 중의 살이라고 고백하는 것입니다. 아담은 하나님께서 자신에게 이 짝을 주셨음을 알았습니다. 그래서 그 이름을 여자라 칭하였습니다.
남자를 뜻하는 “이쉬”에서 취한 의미로 여자인 “이솨”로 칭했습니다. 하나님이 자신에게서 취하신 일치하는 존재라는 고백의 이름입니다. 이 이름을 대할 때마다 하나님이 주인임을 기억하게 됩니다. 이 이름을 부를 때마다 자신과 일치하는 짝임을 알게 됩니다. 또한 이 이름을 지은 자가 자신이기에 자신이 책임져야 할 대상임을 알게 됩니다. 만물을 관리하듯 자신이 책임지고 보호하고 관리해야 할 돕는 배필인 것입니다.
2. 하나님께서 의도하신 이성 교제를 위한 절차와 순서를 따라야 한다.
그러면 이러한 한 몸이 되기 위한 이성 교제를 위해 지금 우리는 어떤 준비를 해야 할까요? 첫째, 남자 여자 각각 하나님을 알아가는 자가 되어야 합니다. 둘째, 이성 교제를 하는 동안 자신의 역할을 충실히 행해야 합니다. 셋째, 부모님과의 관계 속에서 가정의 통제 테두리 안에서 진행되어야 합니다. 가정의 보호와 공급 속에서 자신의 역할을 수행하며, 그 역할에 대한 하나님의 뜻을 알아갈 때 정상적인 이성교제가 됩니다.
그 역할 수행 속에서 하나님을 발견하며, 자신을 발견하며 자신의 짝된 이성을 발견하게 됩니다. 이러한 전제 조건 속에서의 이성교제는 우리에게 많은 유익을 줍니다.
첫째, 자신의 뼈 중의 뼈요 살 중의 살이 무엇인지 알아가게 합니다.
둘째, 자신의 짝된 이성과 자신을 일치시키는 방법을 알게 합니다.
셋째, 이성과의 대화와 교제하는 방법을 알게 합니다.
넷째, 이성의 전체적인 특성을 알고 받아들이는 법을 알게 합니다.
다섯째, 이성의 요구에 반응하는 법을 알아가게 합니다.
여섯째, 서로 독처하는 기간 동안의 빈 공간, 부족을 채우게 합니다.
일곱째, 독처하는 중에도 사람으로서의 즐거움을 유지하게 합니다.
여덟째, 가정을 통한 하나님의 사명에 소망을 품게 합니다.
가정에 대한 소망이 완성될 때까지 이러한 유익을 주는 이성교제는 계속 이루어집니다. 정상적인 이성교제는 이 유익을 위한 방향으로 진행됩니다. 이성과의 만남의 과정이 이런 방향으로 진전되어 갑니다.
처음에는 전혀 모르는 관계 속에 있었습니다. 그러나 서로가 하나님을 향할 때 하나님 안에서 아는 관계가 되며, 그 속에서 서로의 존재를 확인하게 됩니다. 서로가 주님의 이름으로 이성 교제를 할 때 잘 아는 관계로 발전하게 되며 서로가 어떤 남자, 어떤 여자인지를 발견해 갑니다. 이 교제가 진행되어 나갈수록 아주 친밀한 관계로 변하여 서로의 영육간의 모습을 발견하게 됩니다.
그러면서 상대방의 있는 그대로의 전부가 자신이 받아들일 수 있는 것인지 점검하게 됩니다. 자신의 영육간의 반쪽을 채워 주는 부분인지 시험해 보는 기간입니다. 이 속에서 상대방이 자신의 뼈 중의 뼈요 살 중의 살이라고 고백할 수 있는 대상이 발견되면 그와 연합을 이루게 됩니다. 이때 일대일의 관계 속에서 서로의 문화 명령을 확인하고 한 몸 된 부부로 하나님의 사명을 감당하는 길에 들어섭니다. 각기 자기의 공급처였던 부모를 떠나 영육간의 연합을 이룹니다.
이성 교제를 통해 전혀 모르는 사이가 아는 사이로, 친구 관계로, 친밀한 친구 관계로, 이성 친구 관계로, 그리고 애인 관계로 변하여 결혼 대상자로 결정되어, 정혼 관계가 되며, 결혼에 이르게 됩니다. 이때 이성 친구의 관계로부터는 일대일이어야 하며, 끊고 맺음이 분명해야 합니다. 일대일로 교제를 하되 언제든지 상대 이성이 다른 사람에게로 갈 수 있도록 길을 열어 놓아야 합니다. 자신도 일대일로 하되 다른 이성에게로 갈 수 있음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그러므로 이성 교제시의 지나친 사랑 고백은 좋지 않습니다. 최후의 사랑 고백은 어떤 상황에서도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랑하는 관계임이 확인될 때만 고백되어져야 합니다. 그리고 육체적으로도 육체적 관계에 자신만의 제한선을 두어야 합니다. 한 몸 될 짝이 아닌 한 육체적인 관계는 허락될 수 없습니다. 남자나 여자 모두 동등합니다. 자신의 모든 순결을 지킬 수 있는 한계 안에서만 이성교제가 이루어져야 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성교제시 하나님과 부모님의 영역 밖으로 벗어나게 만드는 성적 욕구를 조절하는 절제와 통제가 필요합니다.
첫째, 성경적인 이성교제가 아니라 세상적인 가치관과 풍습에 의해 이루어지는 성적인 이성교제로 유혹하는 각종 어지러운 매체들을 멀리해야 합니다. 책, 잡지, 만화, 비디오, 영화, 노래방 등 모든 것이 해당됩니다. 이런 것들이 정상적인 이성 교제를 변질시킵니다.
둘째, 늘 하나님의 말씀을 묵상하는 큐티 생활을 통해 하나님 안에서 이성교제를 해야 한다는 의식을 회복시키고 기억나게 해야 합니다.
셋째, 변질된 이성교제가 아닌 정결한 이성 교제를 증진시켜 줄 목회자나 부모님이나 믿음의 선배들이나 선생님들과 많은 시간을 함께 해야 합니다.
넷째, 하나님 안에서 거룩한 이성교제를 하도록 격려해 주고 힘을 줄 믿음의 사람들과 많은 시간을 함께 해야 합니다.
다섯째, 성욕의 왕성함을 전도, 봉사, 구제나 성경공부 등 하나님을 향한 활동 분야로 돌려 분출시켜야 합니다.
여섯째, 은밀한 공간이 아닌 열려진 곳에서 공개적으로 이루어져야 합니다.
일곱째로, 이성 교제 후에는 하나님과 부모님께 숨김없는 보고가 이루어져야 합니다.
3. 여자의 이성교제시의 진행요령과 주의사항을 알아야 한다.
그러면 실제로 이성교제를 할 때 어떻게 해야 할까요? 우리는 늘 모형이 되는 아담과 하와의 경우를 염두에 두어야 합니다. 여자의 경우, 이성 교제는 남자의 관심 끌기에 있습니다. 자신에게 관심을 기울이는 수많은 남자들 중 자신의 모든 것을 있는 그대로 전부 받아 줄 남자가 자신을 발견하고 따라와 붙게 만드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요구하는 이성교제는 요즘 세대의 방식과는 전혀 다릅니다. 자신이 좋아하는 남자가 눈에 보였다고 해서 적극적으로 그 남자에게 접근해 가는 신세대의 이성 교제는 성경과 다릅니다. 자신의 반쪽이라고 발견된 남자가 있다 할지라도 자기 스스로 찾아 나서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자신을 이끌어 가실 때까지 기다릴 줄 알아야 합니다. 여자가 따라가 붙는 것이 아니라 남자가 따라와 붙는 것입니다.
먼저 여자는 하나님과 교제하며 그 남자를 위해 기도해야 합니다. 말씀 생활 중 그 남자를 향한 하나님의 요구가 있을 때 그 말씀에 순종하면 됩니다. 하나님께서는 여자에게 그 남자의 필요를 알려 줄 것입니다. 여자는 그 남자의 그 필요를 채워주며 그의 친구가 되어야 합니다. 이성 교제를 하기 전에 먼저 필요를 채워주는 친구의 모습으로 그에게 접근해 가야 합니다. 그러면서 그 남자로 하여금 하나님의 명령과 맡은 일에 충성하도록 도와야 합니다.
만약 이러한 여자의 모습이 그 남자의 눈에 뼈 중의 뼈요 살 중의 살인 모습으로 깨달아 질 때 그 남자가 따라와 붙습니다. 이로 인하여 이성 교제가 이루어지며 사랑을 고백하고 결혼이라는 연합의 단계까지 다다르게 됩니다. 만약 그 남자를 자신의 과시를 위한 소유물로 삼고자 하는 마음이 있다면 이미 이성 교제의 대상이 아닙니다. 만약 자신이 그 남자에게 채울 부분이 없다면 돕는 짝이 아닙니다. 만약 자신이 그 남자로부터 무엇인가를 얻고자 하는 마음만 있다면 자신을 모르는 것이므로 이성 교제를 할 수 없습니다.
여자들의 이성 교제는 남자들을 만나 이러한 것을 확인하는 작업입니다. 한 번 즐기기 위한 남녀 한 쌍의 쾌락적 만남이 아닙니다. 이성교제는 숭고한 것이며 어디까지나 그 목표가 결혼에 이르는 것입니다. 목표가 결혼을 통한 가정의 형성에 있지 않은 이성 교제는 파괴적이며 하나님을 대적하는 사단적인 교제입니다. 비록 어린 나이에 행하는 이성교제라 할지라도 목표는 결혼을 통한 가정 형성에 있음을 깨달아야 합니다. 많은 남자들과 친구 관계로 지내며 자신의 도울 짝을 찾는 것입니다.
그리고 몇 번 그 남자의 부족을 채워줘도 자신에게 충만함이 없고 그 남자에게도 반응이 없다면 그 남자와의 관계는 단지 친구일 뿐입니다. 이성 교제의 대상이 아님을 깨닫고, 정리한 후, 그 경험을 다음 교제에 적용해야 합니다. 또한 여자는 남자의 부족을 채워줄 때 남자로 하여금 오해케 하는 일이 없도록 기도하며 주의를 기울여야 합니다. 오해는 남자로 하여금 성적인 공격을 하게 만듭니다. 오해로 인한 이성 교제의 형성은 남자로 하여금 확인과 정복을 위한 생리적인 공격을 하게 합니다.
그러므로 자신이 도울 짝이라고 확인된 사람 이외에 다른 남자에게 돕는 행위를 할 때 정서적인 오해가 없도록 확인해 주는 작업이 있어야 합니다. 둘 다 하나님을 향하고 있다면 오해는 쉽게 풀릴 수 있지만 그렇지 않을 때는 그 오해가 큰 화로 다가올 때가 있습니다.
또한 여자는 남자로 하여금 하나님 앞에 거룩한 존재로 서게 도와야 할 책임이 있습니다. 그 남자가 자신을 뼈 중의 뼈요 살 중의 살로 고백하는 남자가 아닌 한 그 남자의 성적 순결을 도와야 합니다. 그 남자가 일치하는 짝과만 육체적인 연합을 이루도록 도와야 합니다. 그러므로 이성교제 기간 동안은 그 남자로 육체적 충동을 일으키게 하는 태도를 취하지 말아야 합니다. 그러한 장소나 분위기도 피해야 하는 것입니다.
4. 남자의 이성교제시의 진행요령과 주의사항을 알아야 한다.
남자의 경우는 자신이 좋아하는 여자가 눈에 보였다고 해서 무조건 따라가 붙는 것이 아닙니다. 남자는 늘 기도와 말씀 묵상을 통하여 하나님의 뜻을 찾는 자여야 합니다. 하나님 안에서 하나님의 명령을 충실히 수행해 나가야 합니다. 하나님 안에서 자신이 맡은 일에 충성하여야 합니다. 남자는 여자를 볼 때 “그의 무엇이 좋다”라는 것의 지배를 받으면 안됩니다. 먼저 저 여자와 함께한다면 하나님 앞에서 무엇을 할 수 있는가를 생각해야 합니다.
이러한 과정을 통해 자신의 부족한 반쪽을 발견해 가고 맞추어 가는 것입니다. 그 여자가 자신에게 와서 채울 때마다 자신감과 용기가 생기며 하나님 앞에 더욱 가까이 나갈 수 있어야 합니다. 맡은 일에 더 열심을 내며 충성할 수가 있어야 합니다. 그러므로 남자는 관심 있는 여자가 있을 때 먼저 그 여자가 그리스도 안에서 더 성장하고 성숙하도록 도울 수 있는 것이 무엇인지 찾아야 합니다.
그 여자로 하여금 하나님께 가까워지게 할 수 있는 길이 눈에 보이지 않는다면 그 여자는 친구로 머물 뿐 이성 교제의 대상은 아닙니다. 그 여자와 함께 기도하거나, 성경공부를 하거나, 큐티를 나누거나, 성구 암송을 하거나, 신앙 서적을 나누거나 할 수 있는 관계로 발전시킬 수 없는 관계라면 이성 교제의 대상이 아닙니다.
이성 교제 중 그 여자에게 고쳐야 할 부분이 있다고 생각되며, 그것을 받아들일 사랑의 마음이 없다면 그 또한 이성 교제를 지속할 대상이 아니므로 명확히 끊어야 합니다. 또한 그 여자와 함께 있을 때 일상생활의 정보만 나눌 뿐 의미 있는 대화를 나눌 수 없는 관계라면 이성 교제의 대상이 아닙니다. 남자는 의미 있는 대화를 통하여 그 여자를 정서적으로 안정시켜야 할 책임이 있습니다. 의미 있는 대화를 통해 그 여자를 하나님 앞으로 인도할 책임이 있습니다. 의미 있는 대화를 통해 그 여자의 모든 것을 보호해줄 참 사랑이 있음을 믿게 할 책임이 있습니다.
여러 여자들과 교제하며 자신에게 일치되는 짝을 찾는 것이 이성교제입니다. 여러 번의 접촉을 통해 그러한 상대가 되는 여자를 찾는 것이며, 그러한 여자를 대하는 훈련을 받는 것입니다. 여자들과의 접촉을 통해 이성 교제의 대상이 아닐 때는 한계를 분명히 하여야 합니다. 단지 친구일 뿐이므로 이성 교제의 경계선을 그어야 합니다. 이성 교제 중에도 자신과 일치되지 않는 짝임이 드러나면 질질 끌지 말고 즉시 친구 관계로 머물 것을 선언하여야 합니다.
오해케 하거나 구속하는 것은 서로에게 해가 되는 것입니다. 이성 교제로 인하여 자신의 삶이 나빠진다면 그 상대는 분명히 잘못된 만남입니다. 하나님 안에서의 이성 교제가 아닌 쾌락을 위한 장난일 뿐입니다. 그리고 남자도 여자의 순결을 보호해야 할 책임이 있습니다. 이성교제 기간 동안 자신과 일치하는 짝이 아닌 이성의 순결을 보호해야합니다. 이성으로 하여금 일치하는 짝과 연합할 수 있도록 보호해야 합니다. 순결은 남녀가 동일합니다.
그러므로 남자는 여자와 함께 하며 하나님께로 나가는 작업을 함께 할 자신이 없다면 이성 교제를 할 때가 아닙니다. 그냥 친구로 지낼 뿐입니다. 남자가 외모나 육체적인 행위로 여자를 이끌려고 하면 곧 파국에 이르고 심한 상처만 남깁니다. 남자의 육체적 행위는 여자로 하여금 감정적으로 반응하게 만듭니다. 여자의 육체적 행위는 남자로 하여금 여자를 육체적 존재로만 보게 만듭니다.
그러므로 남자와 여자 모두 육체적 행위의 경계를 분명히 하여야 합니다. 자제할 수 없고 스스로 통제할 수 없다면 아예 처음부터 일체의 육체적 행위를 금해야 합니다. 손을 잡는 것조차 금한 가운데 이성 교제를 해 나간다면 그로인한 방해를 받지 않을 것입니다. 자신이 자신을 알고 인정하며, 처음부터 한계를 긋고 이성교제를 진행해 가야 합니다.
5. 이성교제의 끝은 서로를 뼈 중의 뼈요 살 중의 살이라고 고백할 때다.
남자와 여자의 이성교제는 하나님의 최대 관심사입니다. 그러므로 언제나 하나님께서 의도하신 이성교제의 진행 절차와 주의사항을 잘 따라야 합니다. 이제 자신이 하나님의 이러한 이성교제의 인도하심 속에 들어가 있다면 말씀을 가까이 하며, 가정의 보호와 통제 속에서 이성교제를 점검해 보아야 합니다. 그리고 아직 그러한 이성교제의 영역 속에 들어가지 못했다면 자신에게 무엇이 부족한지 발견할 수 있어야 합니다.
아담을 만드신 하나님은 아담을 이성교제의 장소로 인도하셨습니다. 그런데 아담이 하와를 만난 것은 아담이 홀로 독립할 수 있는 상태에 있을 때입니다. 하나님의 독립된 명령을 수행할 수 있는 성장한 자일 때입니다. 아담 자신의 일을 알고, 자신의 채울 곳을 채울 배필의 형상을 알고 있을 때입니다. 자신의 직업, 자신의 미래, 자신의 비전에 맞는 배우자상 등이 세워졌을 때입니다. 또한 아담이 하나님 안에서 여자를 여자라고 칭해줄 수 있는 위치일 때입니다. 여자에게서 자신의 배필의 모습을 보고 그 이름을 칭할 수 있는 영적지식이 있을 때입니다.
또한 하와를 만드신 하나님은 하와도 이성교제의 장소로 인도하셨습니다. 하와가 아담을 만난 것은 아담이 하와의 모습 속에서 배필의 모습을 발견할 수 있을 때였습니다. 하와가 아담을 만난 것은 아담의 일컬음에 대해 “예와 아니요”의 가부간의 반응을 보일 수 있는 성숙된 상태일 때입니다. 또한 아담이 하나님 안에서 여자라고 칭할 때 그 칭함 받는 대상이 자신임을 알 수 있는 영적지식이 있을 때입니다.
이러한 아담과 하와의 만남은 서로를 향하여 “이는 내 뼈 중의 뼈요 살 중의 살이라”는 고백을 할 수 있게 하였습니다. 서로를 향하여 “뼈 중의 뼈요 살 중의 살”이라고 고백할 때가 이성교제의 끝입니다. “하파암”이라는 단어로서 “자 보아라, 이번에야말로”라고 시작되는 이러한 고백은 독처 하는 기간의 종착점에 이른 것을 의미합니다. 자기와 일치하는 짝을 드디어 발견한 것입니다. 사랑으로 따라가 붙을 여자를 발견한 것입니다. 복종으로 도울 위치가 있는 남자를 발견한 것입니다.
이제는 정혼 후 공개적인 선포만 남긴 것입니다. 창조시의 그 사람으로 본격적인 공동 사명을 준비할 때가 된 것입니다. 우리 모든 그리스도인은 이러한 이성교제를 꿈꾸어야 하며, 이러한 이성교제를 행해야 하며, 이러한 이성교제를 통하여 결혼을 하여 한 부부로서 하나님 앞에 서야 합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꿈이며, 교회의 꿈이고, 우리의 꿈입니다. 우리는 아름다운 이성교제의 모델을 만들어 가야 할 하나님의 백성입니다. 하나님의 뜻에 합당한 이성교제와 결혼에의 꿈은 우리의 지상 최대의 사명임을 깨닫고, 남녀사이의 모든 관계를 새롭게 변화시켜 가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