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이 땅에 사는 이유 (전 3:1-2,11, 전 12:13-14)
본문
I. 목적을 찾아 떠나는 여행
오래전 어느 가수는 인생은 나그네길이라고 노래했습니다. 나그네는 출발한 집이 있고 돌아가야 할 고향이 있습니다. ♪ 인생은 나그네길 어디서 왔다가 어디로 가는가?
이 질문에 대한 대답을 가지고 있는 유일한 사람이 우리 그리스도인들입니다.
택시를 타고 가던 할머니가 운전사에게 다급히 묻습니다. “아이쿠, 내가 어디로 가는지를 잊어 버렸네. 아저씨 내가 어디로 가자고 하던가요?” 치매 노인이었던 게지요. 운전사가 화들짝 놀라며 말합니다. “아이쿠, 할머니 어디서 탔어요?” 운전사도 치매 운전자였습니다.
여러분의 인생은 어디서 출발했습니까? 어디로 가고 있습니까? 당신이 이 땅에 사는 이유는 무엇입니까?
목적이 이끄는 삶 두 번째 캠페인, 비전의 사람들 오늘은 제7주 정리, 요약편 “내가 이 땅에 사는 이유” 입니다.
러시아의 소설 가운데 「외투」라는 소설이 있습니다. 아름다운 외투 한 벌을 갖기 위해서 살아가는 노인의 이야기입니다. 안쓰고 안먹고 모으고 또 모아서 아름다운 외투 한 벌을 사서 흥분된 마음으로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강도를 만납니다. 외투를 빼앗기지요. 살아갈 의미도 목표도 이제 없어졌습니다. 무서운 절망감에 서서히 죽어가는 한 노인의 이야기를 기록하고 있습니다. 외투 한 벌이 인생의 목적이요, 내 인생의 가치요 의미였더란 말입니까? 당신의 인생비전은 무엇입니까?
내 인생의 가장 위대한 지식은 나를 향한 하나님의 디자인(계획)을 아는 것입니다. 내 인생 최고의 성공은 그 하나님이 디자인하신 그 목적을 성취하는 것입니다. 우리네 인생, 낭비하며 살기엔 너무나 소중합니다.
그래서 우리는 지금 아무렇게나 살지 않겠다는 몸부림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아무렇게나 시간을 쓰지 않겠습니다. 아무렇게나 물질을 낭비하며 살지 않겠습니다. 내인생 되는대로 살다가 끝내지 않겠습니다.” 온 교회가 함께 결단하는 시간을 갖고 있습니다.
성경이 말하는 교회의 비전, 신앙의 비전, 인생의 목적이 무엇이었습니까?
1. 첫째 예배의 영광을 늘 경험하며 사는 것입니다. 예배의 실패는 신앙의 실패입니다. 가인을 보십시요. 그의 예배의 실패는 인생의 실패, 가문의 실패였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예배때 마다 성령의 임재가 있는 예배의 영광을 보고 살겠다는 것입니다.
2. 둘째 셀 생활의 기쁨과 복을 누리며 사는 것입니다. 우리가 구원받는 그날 우리는 모두 하나님의 가족이 되었습니다. 하나님은 그 가족 안에 기쁨을 숨겨두었고 행복과 능력을 숨겨두었습니다. 그래서 우리 교회는 온 성도가 마음을 모아 주님이 세우시길 원했던 바로 그 셀교회, 가족된 교회를 세우고 싶은 것입니다.
3. 셋째 주님의 지상명령 복음전도의 비전입니다. 하나님의 자녀들의 가슴엔 아버지의 마음, 하나님 아버지의 가슴앓이, 잃은 자를 향한 하나님의 통곡의 눈물이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교회는 불신자를 전도하여 부흥하는 모델교회를 이루고자 몸부림하고 있는 것입니다.
4. 넷째 헌금의 기쁨입니다. 현대인의 가슴속에 도사려 있는 맘몬을 추방하고 하나님의 영광과 사역을 위해 물질을 드리는 행복입니다. 이 비전이 분명할 때 헌금은 우리의 열정이 됩니다. 예배가 됩니다. 기쁨이 됩니다.
5. 다섯째 제자훈련의 비전입니다. 우리는 예수님을 닮기 위해 신앙생활을 합니다. 교회의 훈련과정을 통해 주님의 비전을 나의 비전으로 품을 때 우리는 주님의 제자가 됩니다. 그리고 나의 VIP들을 또한 주님의 제자로 삼는 기쁨과 행복을 누릴 수 있게 됩니다.
6. 여섯째 사역의 행복입니다. 우리는 하나님과 교회 그리고 이웃을 섬기기 위해 구원받았습니다.
지난주까지 우리는 이상 여섯 가지 비전을 나누었습니다. 그 주님의 비전이 나의 비전이 되었습니다.
II. 구름같은 인생의 트로피는 사라진다
사랑하는 여러분, 여러분 모두 예수님의 비전, 교회의 비전이 바로 당신 자신의 비전 되었습니까? 여러분을 위해 디자인하신 하나님의 계획, 당신 인생의 목적을 알고 계십니까? 그 목적이 무엇입니까?
세계적인 가정 사역자 짐 답슨(James Dobson)이라는 사람이 있습니다. 이 사람의 학창시절 목표는 테니스 챔피온이 되는 것이었습니다. 그는 열심히 노력했고 자신의 우승 트로피가 학교 트로피 진열장에 놓여져 있음을 늘 자랑스럽게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학교를 졸업한 몇 년 후 어떤 사람이 그 트로피를 우편으로 보내왔습니다. 학교 재건축 당시 쓰레기통에서 발견했다고 합니다. 이 사실을 기억하며 짐 답슨은 말합니다. 「시간이 흐르면 당신의 트로피는 잊혀지고 버려지게 될 것이다.
여러분도 이렇게 잊혀지고 버려지는 트로피를 위해 사시겠습니까? 일시적이고 순간적이고 썩어 없어질 목적에 여러분의 인생을 걸고 사시겠습니까?
인생론을 펼쳤던 전도서의 기자는 그 마지막 부분 12장 13절에 이렇게 말합니다.
“하나님을 경외하고 그 명령을 지킬지어다 이것이 사람의 본분이니라”
사람의 본분이란 사람의 전부, 인생의 목적이란 말입니다.
1) 세상의 모든 부귀를 누려본 저자 솔로몬은 재물과 부귀가 인생의 목표가 될 수 없다고 말합니다. “은을 사랑하는 자 은으로 만족함이 없고 풍부를 사랑하는 자 소득으로 만족함이 없나니 이것도 헛되도다”(전5:10)
2) 인생최고의 영화를 누렸던 솔로몬 왕이었지만 영화나 명예 또한 인생의 목표는 아니라고 말합니다. “저의 치리를 받는 백성들이 무수하였을찌라도 후에 오는 자들은 저를 기뻐하지 아니하리니 이것도 헛되어 바람을 잡으려는 것이로다” (전4:16)
3) 성공도 쾌락도 인기도 인생의 목표가 될 수 없습니다.
세간에 사람들이 하는 죠크 가운데 이런 얘기가 있습니다.
여자가 40이 되면 배운 사람이나 안 배운 사람이나 똑같아 진답니다. 50이 되고 나면 고친 사람이나 안 고친 사람이나 똑같아 진답니다. 60이 되고 70이 되면 남편 있는 사람이나 없는 사람이나 그게 그거랍니다. 80이 되고 나면 돈 있는 사람이나 없는 사람이나 같아지고, 90이 되면 산 사람이나 죽은 사람이나 그게 그거랍니다. 이게 인생이라고 하는 거지요.
참된 인생비전, 목표가 없다면 인생은 허무한 것이지요.
조선말에 길선주라는 소년이 있었습니다. 친구들과 함께 풀섶에 누워서 하늘을 바라보는데 하늘위에 양털구름, 뭉게구름이 떠 가고 있었습니다. 친구들과 함께 “저 양털구름은 내 구름, 저 뭉게구름은 니 구름” “내 구름이 앞장 섰어” “아니야 내 구름이 니 구름을 잡아 먹었다” 그런데 한참 뒤에 구름이 서서히 풀어지더니 사라져 버리고 말았습니다. 어린 길선주의 눈에서 눈물이 주르르 타고 흘러내렸습니다. “너 왜 울어?” “저게 우리 구름이라며, 우리가 살아가다가 언젠가 저 구름이 풀어지듯이 내 몸둥아리, 니 몽둥아리가 함께 썩어 없어질 것 아니야. 그럼 우리 어떡하지?” 그래서 그가 하나님 앞에 돌아옵니다. 한국 초대교회에 위대한 영적인 부흥을 일으켰던 길선주 목사님이시지요. 소위 100년전 평양 대 부흥의 선구자가 되었습니다.
민족이 암울한 시대를 걸어갈 때에 나라를 위해서 커다란 자국을 남긴 위대한 인물이 되는 것입니다.
지금으로부터 약 80년전 1923년 미국 시카고의 한 호텔에 당시 미국 사회를 떠들썩하게 했던 만찬회가 열렸습니다. 거기 모인 사람은 여덞 명 이었습니다. 그러나 여덞 명의 면면을 살펴보면 그 만찬은 대단히 의미있는 중요한 만찬일 수 밖에 없었지요. 세계 제일이었던 카네기 강철회사 회장이었던 슈와브, 전기회사의 제왕 인셜, 금융가의 대부 리버모어, 국제은행 총재 프레이져, 하딩 대통령 정부의 내무장관 폴, 증권계의 거부 휘트니, 정유업 대부 홉슨, 건축업자 크로이거 등이 그들이었습니다. 10년 20년 25년의 세월이 흘러갔습니다. 한 기자가 그때 만찬회를 기억하고 거기에 모였던 여덞 명이 지금 무슨 일을 하고 있을까? 조사를 해 보았습니다. 놀라운 사실은 하나 같이 비명횡사하거나 커다란 고통 중에 살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 것이지요. 제철 업계의 우두머리였던 슈와브는 채무로 쫓겨다니며 다른 친구들의 도움으로 연명하고 있었습니다. 금융계의 일인자 리버모어, 건축업계의 크로이거, 국제은행 총재 프레이져 등은 자살로 삶을 마쳤고, 증권업계의 휘트니는 정신병에 시달리다 죽었고, 주유 업계의 흡슨은 파산 충격으로 죽었고, 전기업계의 인셜은 해외망명으로 미국을 떠났고, 내무장관 폴은 감옥에서 고생하다가 사망했다는 것입니다. 커다란 일들을 감당하던 사람들이 25년이 지난 다음에 모든 사람들의 부러움의 대상이 되었던 이 사람들이 25년의 세월이 지나지 않아서 한결같이 커다란 고통가운데 살고 있더라는 것이지요. 이게 인생입니다. 허무하고 허탄한 것들, 사라져 없어질 구름같은 것들을 붙들고 살아가는 인생은 이처럼 허무하게 끝날 수 있다고 하는 것이지요.
III. 지은이의 사용설명서
사랑하는 여러분, 내 인생의 진정한 목적은 무엇이며 어떻게 그 목적을 알 수 있을까요? 만약 내가 한번도 사용해 보지 않은 진기한 발명품을 선물로 받았다면 그것의 목적을 어떻게 알 수 있을까요? 발명품을 만든 발명가에게 물어보는 것입니다. 사용설명서를 읽어보는 것입니다. 우리는 늘상 쓰는 핸드폰 모델만 바뀌어도 사용설명서를 읽어봅니다.
그렇습니다. 우리는 내 인생의 목표를 알기 위해서는 나를 만드신 하나님께 물어 보는 것입니다. 하나님 앞에 나오는 이유가 그것입니다. 그런데 어리석은 사람들은 하나님 앞에 예배하면서도, 하나님을 만나 기도하면서도, 하나님을 내 인생을 돌봐주는 이용물 정도로 도깨비 방망이 정도로 생각합니다. 내가 만들은 수많은 인생의 문제들을 뒤치닥 꺼리나 하시는 분으로만 생각합니다. 하나님 그분이 주시는 선물에만 깊은 관심을 가지는 사람들이 너무나도 많이 있습니다.
우리는 그분의 무릎 앞에 진지하게 무릎을 꿇어야 합니다. 하나님, 나를 이렇게 만드신 이유가 무엇입니까? 내가 무엇을 하며 살기를 원하십니까? 내 인생의 목적이 무엇입니까? 하나님의 디자인이 도대체 무엇입니까? 그 비전을 알고 그 비전을 따라 살겠습니다.
영화 부시맨에 보면 난장이 흑인족 부시맨이 살고 있는 마을에 큰 소리와 함께 코카 콜라병 하나가 떨어집니다. 비행기가 뭔지 콜라가 뭔지 모르는 이들은 조종사가 버린 콜라병 하나를 들고 하나님이 주신 물건이라 생각합니다. 이 병 하나 때문에 생기는 갈등, 싸움을 재미있게 그려 나가지요. 결국은 이 병을 지구 끝에 가서 버리자고 결정합니다.
영화 이후의 이야기입니다. 영화 제작이 끝난 다음 제이미우스 감독은 부시맨들이 사고 싶은 물건을 마음대로 사고 쓰라고 많은 돈을 그들에게 주었습니다. 그러나 돈이 뭔지 모르는 이들은 돈을 종이 대신 쓰기도 하고, 태우기도 하고, 바람에 날려보내기도 했습니다.
보십시오. 어떤 것의 목적이나 용도를 모르면 이처럼 엉뚱해지는 것입니다. 왜 이 땅에 살아가는 사람들이 왜 그렇게 자살을 쉽게 할 수 있으며, 그렇게 허무하게 하루 하루를 살아가는 것입니까? 인생의 참된 목적을 그들이 알지 못하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하나님이 디자인하신 내 삶의 계획을 깨닫지 못하고 살아가기 때문에 그런 것이지요. 만약 우리 인생을 만든 하나님이 아니 계신다면 인생은 허무하고 살아갈 이유도 의미도 목적도 없어지고 맙니다.
그런점에서 가장 사악한 사상 가운데 하나가 진화론입니다. 하나님의 창조를 거부하는 사상이지요. 미생물이 발달합니다. 동물이 됩니다. 원숭이가 발전되고 진화되어서 사람이 되었다는 것이지요.
만약 이것이 사실이라면 내가 누군가를 죽였다고 할지라도 그렇게 큰 잘못이 아닙니다. 진화된 발전된 미생물을 죽인 것에 불과한 것이지요. 닭 한 마리를 죽이는 것과 사람을 죽이는 것 사이에 어떤 차이가 있는 것입니까?
그러나 하나님은 사람을 창조하셨습니다. 중요한 목적을 가지고 창조하셨습니다. 하나님의 모양으로 창조하셨습니다. 하나님의 형상으로 창조하셨습니다. 위대한 계획을 통하여 위대한 일을 할 수 있도록 나를 만들고 여러분을 만들고 우리 모두를 만들었다는 것이지요. 그래서 한 생명이 온천하 보다 더 귀중한 것입니다.
IV. 영원한 삶을 위해 지음 받았다
우연히 태어난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어떤 어려운 환경에서 연약함을 안고 태어나 살아간다 할지라도 “오발탄”은 없습니다.
21세기 할 일 많은 이 땅, 분단된 조국의 현실과 함께 살아가는 이 모든 것이 하나님의 뜻입니다. 이유가 있고 목적이 있습니다. 내 아버지와 내 어머니의 만남 그 속에 내가 태어남, 당신이 맘에 들던 안 들던 바로 거기에 당신 인생의 의미가 있습니다.
우리 인생은 하나님이 디자인하신 하나님이 계획하고 만드신 그 목적이 내 삶을 이끌어 갈 때에 나는 바른 목표에 도달할 수 있게 되는 것이지요.
목적이 이끄는 삶이라고 할 때 “이끈다”는 말이 대단히 중요합니다. 인생을 하나의 수레에 비교한다면 이 수레를 끌고 가는 말이나 노새나 당나귀가 무엇이냐 하는 것입니다. 이 땅에는 많은 사람들이 참된 인생의 목적을 발견하지 못하고 엉뚱한 것에 의해 끌려 다니곤 합니다.
과거에 묶여 끌려 다니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과거의 죄책감이 언제가 했던 한번의 실수가 그들의 인생을 끌고 다니는 것이 있습니다. 과거에 받은 상처에 꽁꽁 묶여서 꼼짝 달싹하지 못하고 살아가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상처보다 크지 못하는 사람, 상처에 매여서 살아가는 사람은 하나님의 목적을 온전히 이룰 수 없습니다.
알지 못하는 어떤 두려움에 사로잡혀 살아가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썩어지고 없어질 세상에 질질 끌려 다니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물질이 그들을 노예로 만들어 끌고 다니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주변 사람들의 시선에 끌려 다니는 사람들이 있고 인정욕구에 의해 끌려 다니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 안에서 참된 목적을 발견하고 그 목적에 이끌려 사는 사람들을 보십시오. 목적은 그들의 삶에 의미와 보람을 줍니다. 목적을 알고 나면 그들의 삶이 단순해 집니다. 목적은 우리네 삶에 집중력을 가져다 줍니다. 초점이 맞는 삶을 살게 해 줍니다.
영향력 있는 삶을 살고자 하면 목적과 비전에 집중하며 살아야 합니다. 목적은 열정을 낳습니다. 삶에 기운과 기쁨을 가져다 줍니다. 목적은 우리의 에너지를 영원한 세계, 영생을 위해 투자하게 해 줍니다. 종말의 승리자가 되게 합니다.
헨리 나웬이 지은 책 가운데 「죽음, 가장 큰 선물」이란 책이 있습니다. 어머니의 자궁 안에서 이란성 쌍둥이가 함께 주고 받는 대화를 기록한 한 토막이 나옵니다. 여동생이 오빠에게 얘기합니다. “오빠, 우리가 저 밖에 나가면 우리를 만든 엄마와 아빠가 있을는지도 몰라.” “너 쓸데없는 생각 하고 있구나. 그냥 우연히 너와 내가 만들어진 거야.” “아니야 오빠. 지금 여기서보다 더 아름다운 삶이 우리에게 있을지도 몰라. 아름다운 하늘이 있고, 예쁜 꽃들이 있고, 새들이 노래하는 우리가 마음껏 자라고 뛰어놀 수 있는 공간이 있을지도 모르잖아.” “아니야. 네 머릿속에 누가 그렇게 나쁜 생각을 넣어 주었니? 우리가 탯줄을 꽉 붙들고 있으면 먹을 것도 있고 너와 함께 놀면 재미있잖아. 쓸데없는 생각하지마.” 이런 얘기를 주고 받는 장면이 나옵니다.
어머니 뱃속에 있는 열 달이라는 이 기간동안은 열 달의 삶을 위해서만 있는 것이 아닙니다. 이 아이가 이 땅에 태어나서 70년 80년 100년 아름다운 삶을 살기 위한 준비에 불과하다고도 볼 수 있는 것 아니겠습니까? 우리가 이 땅에 살아가는 70년 80년 100년의 삶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가 이 땅에 살아가는 삶이 전부가 아니라는 것이지요. 우리의 생명이 끝나는 어느 순간, 내 숨이 멈추는 그 순간, 펼쳐지게 될 영원한 세계를 위하여 이 70년은 있는 것입니다. 그것을 위하여 참된 준비를 할 때, 그것을 위하여 진정한 투자를 할 때, 내 삶은 가치가 있는 것입니다.
영원에 비교해 본다고 하면 여기서 70년이라는 삶은 지구를 한바퀴 도는 것이 영원이라고 한다면 70년은 한 점에 불과한 것입니다. 태평양 바다가 영원이라고 한다면 물 한 방울에 불과한 것이 70년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당신의 시간도, 건강도, 물질도, 은사도 환경도 영원을 위해 투자한 것만 하나님 나라에 남습니다. 이 땅에 살아가는 동안에 영원히 살아가야 될 삶의 목표를 진정으로 깨닫고 준비하며 살아가기를 원합니다.
“죽음으로 인생은 끝나지 아니한다.” 하나님은 여러분과 함께 영원히 함께 살기 위하여 여러분을 만들어 주셨습니다. 하나님이 여러분과 함께 아름다운 교제를 아름다운 사랑을 나누기 원하십니다. 하나님은 여러분이 얼마나 소중했으면 여러분과 영원히 함께 살겠다고 말씀하시는 것일까요.
여러분, 썩어 없어질 허탄한 곳에 인생을 투자하지 마십시오. 영원한 가치에 투자하십시오. 이 땅에 살아가다가 없어질 허무한 구름 같은 것들을 붙들고 살아가지 마십시오. 그것들을 놓을 때에 진정한 끈을 우리는 붙들 수 있게 될 것입니다. 순간적이고 허무한 것들을 놓을 때에 영원한 가치를 우리는 붙들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V. 맺으며
오래 전에 제가 쓴 책 “축제가 있는 교회”에 나오는 어느 선교사님 얘기와 함께 말씀을 맺습니다.
아프리카에서 일하던 어느 선교사님은 여러해 동안 많은 열정을 쏟았음에도 불구하고 선교 열매를 거두지 못했습니다. 오히려 두 아들이 아프리카 풍토병에 걸려 시름시름 앓다가 목숨을 잃고 말았습니다. 두 아들을 땅에 묻고 어머니는 충격을 이기지 못하여 역시 세상을 떠났습니다. 선교사님은 슬픔과 비감한 심정을 이기지 못해 끝내 선교를 포기하고 고향인 미국으로 돌아오고 있었습니다. 그가 고향으로 돌아오는 배에는 휴가를 얻어 아프리카에서 사냥을 하고 돌아오는 미국의 대통령 일행이 함께 타고 있었습니다. 배가 샌프란시스코 항에 도착했을 때 해군 군악대의 연주와 예포 소리가 울려 퍼졌습니다. 대통령 일행이 내리자 붉은 주단이 깔려졌습니다. 그들이 내리고 다른 승객들이 내렸습니다. 마지막에 선교사님이 힘없이 내렸을 때는 붉은 주단이 걷혀진 다음이었고 해군 군악대도 떠나간 다음이었습니다.
쓸쓸한 바닷가를 거닐며 하나님 앞에 넋두리를 늘어놓았습니다. “휴가를 얻어서 사냥을 즐기고 돌아오는 대통령 일행은 저렇게 엄청난 환영을 받는데 낯설고 물설은 땅에 내 사랑하는 가족을 묻어두고 돌아오는 내게는 환영하는 사람도, 날 반겨주는 사람이 없는 것이 인생입니까?” 그때 하나님의 음성이 들렸습니다. “아들아 종아, 이 땅이 인생의 전부가 아니니라. 네가 진정으로 내 진정한 고향에 돌아올 때에 해군 군악대의 아름다운 연주가 아니라 천군천사들의 나팔소리와 함께 너를 영접하게 될 것이다. 붉은 주단이 아니라 내 몸을 찢어 만든 보혈의 주단을 깔아서 너를 영접하게 될 것이다. 네가 잃어버린 그 아들, 네가 잃어버렸다고 생각하는 사랑하는 아내가 하늘나라에서 천사들과 함께 영광스럽게 변화된 모습으로 너를 영접하게 될 것이다. 종아 아들아, 이것이 네 삶의 마지막이 아니니라.” 선교사님은 다시 짐을 싸고 아프리카로 돌아갑니다.
그토록 몸부림하며 찾아가는 당신의 인생의 목적이 무엇입니까?
“너희는 먼저 그 나라와 그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
우리가 추구해야 될 것은 이 모든 것들이 아닙니다. 아버지의 나라와 아버지의 의를 구할 때에 그렇게 소중하게 붙들고 전전긍긍하고 있는 그것들 쯤은 하나님께서 보너스로 주시겠다고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건강이 모자랄 때에 건강을 더하여 주실 것입니다. 환경이 모자랄 때에 환경의 넉넉함으로 여러분을 채워주실 것입니다.
하나님 내 인생의 목적이 무엇입니까? 내가 추구해야 될 아버지의 나라가 무엇입니까? 아버지의 비전은 무엇입니까? 주님께서 나를 바라볼 때에 “종아, 난 너를 목사 삼은 것을 참 자랑스럽게 생각한다.” 하나님께 보람을 드릴 수 있다고 한다면, 하나님께 기쁨을 드릴 수 있다고 한다면, 우리는 제대로 살아간 것 아니겠습니까? 우리가 이 땅에 살아가는 마지막 목적이 무엇입니까? 나 주님의 기쁨이 되는 것, 주님의 기쁨되어 살기를 원합니다. 주님이 나를 바라볼 때마다 “얘야 나는 기쁘다. 너를 바라볼 때마다 행복하다.” 주님 앞에 기쁨을 드리는 효자의 삶을 살아가는 것 이것이 우리 인생의 목적이 아니겠습니까?
사랑하는 여러분, 인생의 종착점에 섰을 때에 여러분이 달려왔던 인생길을 돌이켜 보며 후회하지 않는 삶을 살 수 있을는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