찬양으로 마음의 소원을 이루라 (시 42:1-11)
본문
- 설교자 : 한용근 목사 (예사랑교회)
지난주에 어떤 환경 속에서도 하나님을 찬양하여 승리하라고 했습니다. 참으로 우리의 모든 찬양을 받으시는 하나님께 영광 존귀를 드립니다. 오늘 본문은 고라 자손의 찬양을 보게 됩니다. 고라 자손은 레위 지파의 한 가문입니다. 레우 지파 중에서도 특별히 고라 자손들은 찬양대의 핵심이 되어 하나님을 찬양하던 사람들이었습니다.
사람들은 생각하기를 찬양은 기쁠 때에만 찬양하는 것이라고 쉽게 생각합니다. 그러나, 찬양은 기쁠 때만 하나님께 드리는 것이 아니라 어떤 환경과 상관없이 하나님께 올리는 것이 바로 찬양입니다. 왜 우리들이 하나님을 쉼 없이 찬양해야 하는 것입니까? 시편 22:3절 말씀에 보면 '이스라엘 찬송 중에 거하시는 주여 주는 거룩하시니이다'라고 했습니다. 이사야 43:21절에는“이 백성은 내가 나를 위하여 지었나니 나의 찬송을 부르게 하려 함이니라”고 해서 우리를 만드신 목적이 바로 하나님을 언제나 찬송하게 하기 위함이라고 했습니다. 에베소서 1:12과 14절에는“이는 그리스도 안에서 전부터 바라던 우리로 그의 영광의 찬송이 되게 하려 하 심이라 ... "고 해서, 우리들이 바로 하나님의 영광이 되고 찬송이 되어야 한다고 가르치고 있습니다. 진실로 하나님은 우리들의 찬송 중에 함께 하십니다. 지난주에 이어 이 한 주간도 찬송을 통해 주님의 영광이 나타나고 마귀의 권세가 결박당하며 여러분들의 인생이 형통하고 길이 열리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역대하 20장에 보면 여호사밧 시대에 닥친 큰 국가적 위기에 대해 기록이 나오고 있습니다. 여호사밧이 왕이 되어 하나님을 잘 섬기기 시작하자 마귀가 역사하기 시작했습니다. 마귀가 그 옆에 있는 모압 자손과 암몬 자손들을 충동질해서 평안한 유대 나라를 공격하고 전쟁을 일으킨 것입니다. 군사적으로 열세에 놓여 있었던 유대 나라로서는 어떻게 할 도리가 없었습니다. 여호사밧은 나라의 위기를 놓고 하나님께 부르짖기 시작했습니다. 그는 "하나님이여 그들이 이제 전쟁을 일으켜 우리를 치고 이 땅에서 우리를 쫓아내려고 합니다. 우리는 우리를 공겨하는 이 큰 무리를 대적할 능력도 없고 어떻게 할 줄도 알지도 못하는 상황입니다. 이제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이라고는 오직 주만 바라 볼 수밖에 없습니다."(대하20:12)라고 무릎을 꿇고 하나님의 이름을 간절히 불렀습니다. 그 때에 하나님께서 선지자를 보내셨습니다. 선지자는 말하기를 "이제 노래하는 자들을 택하십시오. 그들에게 거룩한 예복을 입히십시오. 그들을 전쟁에 무기를 들고 나가는 군대보다 앞에 세우십시오. 그리고 오직 여호와 하나님의 이름을 찬송하면서 앞으로 나가십시오"
여호사밧은 백성들을 모으고 찬양대를 만들었습니다. 그리고, 군대 앞에 찬양대를 두고 전쟁을 위해 나가는 것이었습니다. 찬양이 시작되자 아주 신비한 일이 일어나게 되었습니다. 유대를 공격하기 위해서 왔던 모압과 암몬 족속들이 서로 반목하더니 두 족속이 서로 칼을 들고 싸우는 것이었습니다. 여호사밧과 그 백성들이 모압과 암몬 족속들이 진쳤던 곳에 이르렀을 때 그곳에는 오직 시체뿐이었습니다. 유대 사람들은 그곳 이름을 브라가 골짜기라고 이름하게 되었습니다. 브라가라는 뜻은 "찬송하다. 송축하다"라는 뜻입니다. 즉, 두려움과 공포와 죽음이라는 전쟁의 골짜기가 하나님께 찬송을 드리며 앞으로 나가자 찬송의 골짜기가 된 것입니다.
할렐루야! 여호와를 찬양하기를 축원합니다. 찬양은 환경을 바꾸는 힘이 있습니다. 찬송은 마귀의 역사를 무너뜨리는 능력과 권세가 있는 것입니다. 생각해 보십시오. 마귀가 최대로 역사하는 곳은 가정 환경이 아닙니다. 사업장도 아닙니다. 마귀가 가장 강하게 역사하는 곳은 바로 마음입니다. 마귀는 마음에 들어와서 마음이 무너지게 만드는 것입니다. 마음에서 찬송을 빼앗고 감사를 빼앗고 기쁨을 빼앗는 것입니다. 마음이 무너지기 때문에 몸이 무너지는 것입니다. 마음이 무너지기 때문에 사업도 무너지고 가정도 무너지고 인생 전체가 무너지는 것입니다. 마음을 지켜야 합니다. 때문에 잠언 4:23절에는 "무릇 지킬 만한 것보다 더욱 네 마음을 지키라 생명의 근원이 이에서 남이니라"고 했습니다. 마음에서 생명의 역사가 시작되는 것입니다. 마음이 무너지면 모든 것이 무너지는 것입니다. 따라서, 마귀는 우리 마음에서 찬송을 빼앗고, 마음에서 기쁨을 빼앗고, 마음에서 소망을 빼앗고, 마음에서 사랑을 빼앗는 것입니다. 찬양은 그 마음에서 마귀를 물리는 치는 힘과 능력이 있습니다. 잠언서 27:9절에는 "내 아들아 지혜를 얻고 내 마음을 기쁘게 하라 그리하면 나를 비방하는 자에게 내가 대답할 수 있겠노라"고 했습니다.
마음을 기쁘게 해야 마귀가 역사하지 않습니다. 마음에 찬양이 넘쳐야 바울과 실라가 빌립보 감옥의 문을 열었듯이 인생의 문이 열리는 것입니다. 마음에 찬양이 넘쳐야 다윗이 찬양할 때에 사울 속에 있었던 악한 영이 떠난 것처럼 우리 속에 악한 영이 떠나고 하나님의 영이신 성령께서 역사하는 것입니다. 에베소서 5:19절에는 "시와 찬미와 신령한 노래들로 서로 화답하며 너희의 마음으로 주께 노래하며 찬송하며..."라고 했습니다.
노벨상 수상 작가인 펄 벅이 어렸을 때에 이런 일이 있었습니다. 그의 부모는 중국 선교사였습니다. 그녀의 아버지는 전도 여행으로 인해 집을 비우게 되었습니다. 어머니인 캐롤라인과 아주 어린아이들 셋만이 집에 남아 있게 되었습니다. 저녁 무렵 캐롤라인이 창가에 앉아 바느질을 하고 있는데 밖에서 중국 사람들이 모여 하는 이야기 소리가 들려왔습니다. 그들은 말하기를 "지금 이 지방에 극심한 가뭄이 일어나서 온 동네가 고통을 당하고 있는 원인이 바로 저 서양 사람들이 들어와 이 마음에 살기 때문이며, 그들이 믿는 신 때문에 조상신들이 노했다"는 겁니다. 그러니 "오늘밤이 깊어지면 저들을 붙들어 처치하자"는 이야기를 주고받는 것이었습니다. 남편도 없는 그 상황에서 이 말을 들은 캐롤라인이 어떻게 했겠습니까? 그녀에게는 말할 수 없는 두려움이 엄습했습니다. 오늘 본문에 나타나는 말씀처럼 깊은 폭포 소리와 깊은 바다가 서로 부르짖는 것과 같이 가슴이 두근거렸습니다. 그녀는 이제 세 아이들과 함께 아무런 대책이 없었기 때문에 그냥 골방에 들어가 기도하기 시작했습니다. 얼마 동안 기도하자 그녀의 마음에 자신이 이곳에 살기 위해 온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이름을 증거하다 죽기 위해 왔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녀는 아이들과 함께 그 밤에 찬송을 부르기 시작했습니다. 밤이 깊어지자 중국인들이 살기가 가득한 험악한 얼굴로 몰려왔습니다. 그러자 캐롤라인은 기다렸다는 듯이 침착하게 그들을 맞이하였고 그들을 위해 다과를 대접했습니다. 그리고는 오르간 앞에 앉아 중국어로 아이들과 함께 다시 찬송을 부르기 시작했습니다. 그들의 찬송이 끝날 때까지 방안은 조용했고, 중국인들은 찬송을 들으면서 과자를 나누며 서로의 얼굴을 마주바라 보고 있었습니다. 얼마 후 분노에 찬 얼굴은 멋쩍은 얼굴들이 되었고, 한 사람 씩 두 사람씩 돌아가고 말았습니다.
찬양은 마귀의 세력을 무력화하는 놀라운 힘이 있습니다. 여러분들의 입술과 가정에서 찬양이 넘침으로 마귀의 권세가 모두 깨어지고 마귀가 결박당하는 놀라운 역사가 일어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둘째로 오늘 본문을 통해 찬양은 하나님을 절대적으로 믿는 믿음의 고백이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3절 말씀을 보겠습니다. "사람들이 종일 나더러 하는 말이 네 하나님이 어디 있느뇨 하니 내 눈물이 주야로 내 음식이 되었도다" 6절에는 "내 하나님이여 내 영혼이 내 속에서 낙망이 되므로..."라고 했습니다. 10절에서는 "내 뼈를 찌르는 칼같이 내 대적이 나를 비방하여 늘 말하기를 네 하나님이 어디 있느냐"라고 고백하고 있습니다. 지금 하나님께 찬양을 드리고 있는 고라 자손의 마음은 어떤 마음입니까? 결코 즐겁거나 행복한 마음이 아닙니다. 그는 불안한 마음과 낙심한 마음을 가지고 있는 상태입니다. 5절과 11절에서 우리는 이 사실을 분명히 알 수 있습니다. 그는 5절과 11절을 통해 "내 영혼아 네가 어찌하여 낙망하며 어찌하여 내 속에서 불안하여 하는고 너는 하나님을 바라라 그 얼굴의 도우심을 인하여 내가 오히려 찬송하리로다"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는 지금 낙망한 마음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는 지금 불안한 마음을 가지고 있습니다. 9절에는 "원수의 압제로 인하여 슬프게 다니나이까?"라고 해서 원수가 자신을 압제하고 억누르는 상황에 있습니다. 10절에는 "내 뼈를 찌르는 칼같이 내 대적이 나를 비방하여..."라고 해서 지금 그는 뼈까지 칼에 찔리는 듯한 큰 고통을 당하고 비방을 받고 있습니다. 여러분 같으면 이 상황에서 하나님을 찬양할 수 있겠습니까?
그러나, 고라 자손은 말합니다. 8절을 보겠습니다. "낮에는 여호와께서 그 인자함을 베푸시고 밤에는 그 찬송이 내게 있어 생명의 하나님께 기도하리로다" 그는 또한 11절에서 이렇게 말합니다. "내 영혼아 네가 어찌하여 낙망하여 어찌하여 내 속에서 불안하여 하는고 너는 하나님을 바라라 그 얼굴의 도우심을 인하여 내가 오히려 찬송하리로다" 할렐루야! 그는 말하기를 "그의 얼굴의 도우심을 인하여 내가 오히려 찬송하리로다"라고 했습니다.
고라 자손은 감사할 수 없는 상황에서 감사의 찬송을 하나님께 드렸습니다. 낙심의 상황에서 하나님을 찬양했습니다. 절망의 상황에서 그리고 칼이 살을 뚫고 뼈를 찌르는 아픔 중에서도 하나님을 찬양했습니다. 파도가 그의 인생을 두드리며 고통과 환난의 폭포가 그의 머리를 내리 칠 때에 그는 하나님을 바라보면서 오직 하나님을 찬양했습니다.
여러분은 어떤 상황에 있습니까? 하나님은 찬양하는 자들을 도우십니다. 찬양하는 인생들의 문을 여시고 형통하게 하시는 분입니다. 지금 여러분의 마음에 성령이 충만합니까? 주님을 찬양하기를 축원합니다. 고난과 아픔 중에 있습니까? 인생에 뜻하지 않은 질병을 만나 고통 중에 있습니까? 마음에 낙심이 있고 낙망하는 중에 있습니까? 살아가는 인생이 계획대로 되지 않고, 뜻대로 되지 않고 있습니까? 그러나, 모든 염려를 주님께 맡기고 지금은 오직 주님을 찬양하기를 원합니다. 찬양하는 모든 입술 위에 성령의 큰 역사가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호흡이 있는 우리 모두는 함께 하나님을 찬양하기 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