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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 벧엘로 올라가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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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 벧엘로 올라가자 !
< Let us arise, and go up to Bethel>
성경 : 창세기 35장 1절 - 7절 ( 2005. 10. 2 주일오전예배 )

설교 : 전 원 준 목사 (☎051-523-8457. HP011-847-8457 )
(607-112) 부산시 동래구 명장2동 523-27 (산상성서침례교회)


헨델은 후기 바로크 음악의 거장이다.
한때 그를 시기하는 사람들이 그의 곡이 발표되는 공연장에 불량배들을 동원, 공연을 하지 못하게 했다. 헨델은 그 일로 충격을 받아 앓게 되었다.
그때 무명의 한 시인으로부터 한 통의 격려 편지를 받았다.“그리스도는 사람들로부터 버린 바 되었으나 하나님이 부활시켜 만왕의 왕이 되게 하셨습니다. 힘을 내십시오.”그 글을 읽고 힘을 얻은 헨델은 23일간 금식을 하며 묵상했다.
24일째 되는 날 하인이 그의 방에 들어갔을 때 헨델은 무릎을 꿇고 눈물을 흘리고 있었다.
헨델은 환희에 찬 얼굴로 “하늘이 열렸다. 나는 전능왕 메시아를 보았다”고 외쳤다.
그때 메시아 중 42번 할렐루야를 완성했다.
충격은 사람을 쓰러지게 하나 격려와 위로 한 마디는 절망과 좌절에서 일어서게 한다.
야곱은 문제가 발생하였습니다.
고향 땅으로 돌아와서 행복하게 살줄 생각하였는데, 여러 가지 문제가 발생하엿습니다.
딸 디나가 동네 사람들에게 모욕을 당하고, 그일 때문에 싸움을 하여 많은 사람을 죽이고 제물을 빼앗았습니다. 이런일이 신앙이 깊은 야곱에게는 큰 충격이 아닐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망설이던 중에 하나님의 음성을 듣게 된 것입니다.

“ 벧엘로 올라가라 !”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
낙심과 실망 가운데 계십니까?
절망과 어둠의 그림자가 어려분의 삶속에 있습니까?
하나님의 음성을 들으시기를 바랍니다.

“벧엘로 올라가라 !”
오늘 우리는 벧일을 올라가는 신앙되시기를 축복합니다.

1, 벧엘로 하나님의 집으로 올라가라고 하셨습니다. 1절

벧엘 - 하나님의 집.
야곱이 하나님을 처음 만나던 곳입니다.

두 사람의 마부가 수레에 짐을 싣고 먼 여행을 떠났습니다. 한 사람은 주일이 되자 말과 같이 하루를 쉬면서 예배를 드렸습니다. 그러나 또 다른 사람은 ‘하루를 쉬면 얼마나 손해가 많은가?’라고 생각하고 계속 말을 몰아 목적지를 향하였습니다. 그러나 목적지에 도착할 때까지 주일마다 꼬박꼬박 쉬면서 예배를 드린 믿음을 가진 마부가 목적지에 먼저 도착했습니다. 며칠이 지난 후에 목적지에 도착한 믿지 않는 마부는 말도 없이, 마차도 없이 기진맥진한 빈 몸으로 도착하였습니다. 이 마부는 쉬지 않고 계속해서 말을 몰았기에 말도 병이 나고, 마차도 고장나서 겨우 몸만 도착했다는 것입니다.

어려움과 문제가 생기면 처음 신앙으로 돌아가야 합니다.
기본으로 돌아가야 합니다. 기초로 돌아가야 합니다.
운동을 하다가 잘되지 않으면, 기초부터 다시 합니다.
기교를 부리려 하지 말고, 기본의 폼을 가지고 해야 합니다
그리하면 좋은 성적이 나오는 것입니다.

우리 신앙생활에서 무엇이 잘못되고 있으면, 우리는 기본으로 돌아서야 합니다.

기본이란 무엇입니까?
구원받은 것입니다. 처음 믿음입니다. 처음 사랑입니다.

(계 2:4) 『그러나 너를 책망할 것이 있나니 너의 처음 사랑을 버렸느니라』

(계 2:5) 『그러므로 어디서 떨어진 것을 생각하고 회개하여 처음 행위를 가지라 만일 그리하지 아니하고 회개치 아니하면 내가 네게 임하여 네 촛대를 그 자리에서 옮기리라』

(시 115:11) 『여호와를 경외하는 너희는 여호와를 의지하라 그는 너희 도움이시요 너희 방패시로다』

내신앙의 구원을 점검하고, 처음 가졌던 그 신앙으로 돌아가야 하는 것입니다.
처음 가졌던 그 순수함, 그열정, 그 뜨거움으로 돌아가는 신앙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우리가 벧엘로 올라갈 때 하나님의 놀라운 축복이 임할줄 믿습니다.




2, 우리의 벧엘은 하나님의 집 교회입니다 .

벧엘에서 단을 쌓으라고 하셨습니다.

루이 14세 때 있었던 실화라고 합니다.
주일에 왕이 왕의 가족들, 왕족들을 거느리고 늘 교회에 나오곤 했는데 말입니다. 프넬론이라고 하는 대주교가 시무하고 있는 교회에 이 왕이 늘 출석을 했는데 좌우간 너무 많은 교인들이 모여서 주체할 수가 없어요. 그 예배당이 터지게 모이고 모이는 거예요. 이 대주교의 마음속에 이게 정말 예수 믿는 사람들인지 왕을 만나러 오는지 그걸 알 수가 없거든요. 그게 궁금해서 어느날 한 번 시험을 해 보았답니다. 왕과 왕족들이 마차를 타고 교회에 나왔는데 보니까 교인이 하나도 없고 대주교만 있더랍니다. 깜짝 놀라서 어떻게 이렇게 됐느냐? 하고 물었더니 대주교 말씀이 "아무래도 이분들이 예배하러 오는 게 아니라 왕을 만나러 오는 것 같아서 한 번 제가 실험을 해보았습니다. 지난 주일에 조용히 광고하기를 '다음 주일은 왕이 못 나오십니다' 했더니 오늘 이렇게 됐습니다." 하나님을 예배하고 하나님을 목적하고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것이 예배거늘 교회에 나갔다가 친구 만나고 교회 나갔다가 왕과 악수 한 번 하고 왕에게 보일려고 하는 이 마음, 이게 바로 불신앙이라는 것이지요.

3절,,,[3] 우리가 일어나 벧엘로 올라가자 나의 환난날에 내게 응답하시며 나의 가는 길에서 나와 함께 하신 하나님께 내가 거기서 단을 쌓으려 하노라 하매

야곱은 엄청난 축복을 받았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 예배신앙을 잊어버렸습니다. 한번도 드린적이 없었습니다.
처음에 지팡이 들고 삼촌집에 갈 때, 드린 예배 이후에는 없었습니다.
아브라함이나 이삭은 가는 곳마다 예배를 드렸습니다.
예배생활을 잊어버렸습니다.

흑인교회에 가보면 설교를 하면 성도들이 반응을 합니다. 목사님이 한 마디 하면 성도들도 꼭 말을 받아 응답합니다. 목사님이 헌신해야 합니다. 그러면 성도들이"맞습니다. 맞습니다.
헌신해야 합니다." 참 재미있습니다. 흑인 목사님이 이렇게 설교를 했답니다.
오늘 날의 교회는 주저 앉아 있습니다. 교회는 걷기 시작해야 합니다. 서도들이 맞습니다.
맞습니다. 걸어야합니다. let's work걷는 것 가지고는 부족합니다. 교회는 뛰어야 합니다. 뛰어야 합니다.성도들도 뜁시다. 뜁시다. let's run목사님은 계속에서 강조하기를 우리는 전 세계 복음 전하기 위해 교회는 날아야 합니다.
교인들이 맞습니다. 날아야 합니다. 날읍시다. let's fly그런데 돈이 필요합니다. 헌금을 들여야 합니다. 그랬더니 갑자기 조용해지더랍니다.
그런데 조용한 침묵이 있는데 저 구석에서 한 성도가 그러더랍니다.
그냥 그냥 걸읍시다. 그냥 걸어야합니다.just work

헌신하는 신앙 헌신하는 예배, 이런 신앙이 필요합니다.
(롬 12:1) 『그러므로 형제들아 내가 하나님의 모든 자비하심으로 너희를 권하노니 너희 몸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거룩한 산 제사로 드리라 이는 너희의 드릴 영적 예배니라』
3, 변화된 삶을 살라고 하였습니다.

[2] 야곱이 이에 자기 집 사람과 자기와 함께 한 모든 자에게 이르되 너희 중의 이방 신상을 버리고 자신을 정결케 하고 의복을 바꾸라 [4] 그들이 자기 손에 있는 모든 이방 신상과 자기 귀에 있는 고리를 야곱에게 주는지라 야곱이 그것들을 세겜 근처 상수리나무 아래 묻고

오랜 옛날 어느 나라에 어리석은 왕이있었습니다. 하루는 그 왕이 사냥을 다녀온 후 신하들에게 울퉁불퉁한 땅바닥에 자기 발에 상처가 났다고 불평을 했습니다. 그리고는 모든 길에 쇠가죽을 깔라고 명령했습니다. 그러자 한 신하가 왕에게 말했습니다. "폐하, 그것은 아주 무모한 발상입니다. 왕의 발을 보호하기 위해서라면 쇠가죽 두 조각만 있으면 될 것입니다." 그 말을 들은 왕은 신하의 말대로 쇠가죽으로 신발을 만들어 신었습니다.그러자 더 이상 울통불퉁한 땅바닥을 불평하지 않게 되었습니다.(이렇게 해서 신발이 생겨나게 되었다는 이야기도 있습니다.)세상이 변해야 내가 변하는 것이 아닙니다.내가 번저 변해야 세상이 변화되는 것입니다.

이방신상을 버리고, 자신을 정결케하고, 의복을 바꾸었습니다.

1) 우리의 삶속에 우상이 있으면 변화되지 못합니다.

프랑스의 지성 장 콕토가 세상을 향해 질문을 던졌다.
“만약 당신의 집에 불이 났다면 당신은 무엇을 갖고 나오겠는가.” 사람들의 대답은 각양각색이었다. 어떤 사람은 현금,어떤 사람은 주식,어떤 사람은 땅문서,어떤 사람은 보석이라고 말했다. 모두 자신의 가치관에 따라 다른 대답을 했다. 그런데 장 콕토 자신의 대답은 특이했다.
“나는 불을 갖고 나오겠다.” 그 말의 의미는 무엇일까. 그것은 불을 갖고 나와야 불을 끌 수 있다는 말이 아니다. 불에 닿는 것이면 무엇이나 열을 전도시키고 태울 수 있는,그 뜨겁고 도전적인 불의 열정을 갖고 나오겠다는 고백이다.비록 모든 것을 불 속에서 잃었어도 그 속에서 건질 수 있는 것은 불의 열정이었다.
성공한 사람들의 공통점은 한결같이 이런 불의 열정을 지녔다는 점이다. 성경은 말한다.
“내가 불을 던지러 왔다 이미 너희에게 붙었다면 내가 무었을 더 원하겠느냐”(눅 12:49)

하나님보다 더 귀하게 여기는 것이 우상입니다.
우리는 이것을 버려야 할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변화입니다.

(마 6:33)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



2) 자신을 정결케 하여야 변화합니다.

어느 날, 스승이 제자들에게 물었습니다."새벽이 언제 오느냐” 한 제자가 대답했습니다."먼동이 틀 때입니다” 그러자 스승은 "아니다”하고 고개를 저었습니다. 다른 제자가 나서 "새가 울 때입니다”라고 말했습니다. 그러나 스승은 "그것도 아니다”라고 말했습니다. 궁금해진 제자들이 스승에게 물었습니다. "스승님, 그러면 새벽은 언제 오는 것입니까” 그 때, 스승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저기 길거리에 지나가는 낯 모르는 이들이 너희의 형제와 자매로 보일 때, 그 때 새벽은 오는 것이니라"

(마 7:5) 『외식하는 자여 먼저 네 눈 속에서 들보를 빼어라 그 후에야 밝히 보고 형제의 눈 속에서 티를 빼리라』
자신을 정결케 한다는 것은 남을 돌볼 줄 아는 신앙입니다.

3) 의복을 바꾸어야 합니다.

중국은 이미 13세기에 유럽을 능가하는 문명과 문화를 가졌다.
도시 거주 인구가 수백만이 넘이 도시들이 여럿있었고 철 생산량도 연간 10만톤이 넘게 생산하는 엄청난 국가였다. 징키즈칸과 같은 지도자가 있어서 폴란드, 러시아, 독일 같은 나라의 민족들이 몽고군에게 손한번써보지 못하고 패배하였다. 그러나 18세기 산업혁명 이후 세계판도가 달라졌다. 유럽은 변화를 추구한 반면에 중국은 만리장성을 쌓고 자기안에 고립되어 변화를 포기하였다. 결국 인쇄술을 중국이 개발했지만 그것을 이용해서 책을 대량으로 찍어낸 것은 유럽이었다. 화약을 세계최초로 만든 곳 역시 중국이지만 그것은 총과 대포를 만든 것도 유럽이다. 원거리 항해술은 동양이 훨씬 더 앞서 있었지만 미국을 비롯해서 신대륙을 만들어 낸 것은 유럽사람들입니다. 왜 이렇게 된 것입니까?
중국은 변화하지 않으려 했고, 유럽은 변화하려고 몸부림쳤기 때문입니다.

삶의 기준이, 목표가 무엇입니까?
물질입니까? 명예입니까? 출세입니까?

의복이란 그 사람의 삶의 의미를 나타냅니다.
교복을 입은 학생은 공부하는 의미가 있고,
군복을 입은 군인은 전쟁을 하는 의미이며,
경찰관은 정복을 입을 때 치안을 관리하는 것입니다.
검사가, 판사가 법복을 입고 재판을 하듯이,,,
우리는 무슨 옷을 입고 있느냐가 대단히 중요한 것입니다.
삶의 자세가 변화되는 것입니다.

(롬 12:2) 『너희는 이 세대를 본받지 말고 오직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변화를 받아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온전하신 뜻이 무엇인지 분별하도록 하라』


결론 = 야곱은 비로소 변화되었습니다.

(창 35:18) 『그가 죽기에 임하여 그 혼이 떠나려할 때에 아들의 이름은 베노니라 불렀으나
그 아비가 그를 베냐민이라 불렀더라』

아내가 아들을 낳았습니다. 그리고 숨을 거두었습니다.
그 이름을 베노니라고 지었던 것입니다.
베노니- 슬픔의 아들
그러나 야곱은 그 이름을 고쳤습니다.
베냐민- 오른손의 아들, 하나님의 능력을 받는 다는 의미일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
우리는 벧엘로 올라가야 합니다. 하나님 앞으로 나아가야 합니다.
신령과 진정한 예배를 드릴 수 있어야 합니다.
우리의 삶이 변화되어야 합니다.
베노니가 베냐민으로 변화되듯이 말입니다.
그리할 때 하나님의 축복이 임할 줄 믿습니다.

(창 35:10) 『그에게 이르시되 네 이름이 야곱이다마는 네 이름을 다시는 야곱이라 부르지 않겠고 이스라엘이 네 이름이 되리라 하시고 그가 그의 이름을 이스라엘이라 부르시고』

이스라엘-하나님과 싸워서 이긴자 라는 의미입니다.(하나님 축복받은자 란 의미입니다)
우리는 벧엘로 올라갈 때, 하나님의 축복을 받는 성도가 될 줄 믿습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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