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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연인 것 같으나 섭리입니다.(룻 2:1-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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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연인 것 같으나 섭리입니다.(룻 2:1-12)

우리의 삶의 현장에서 때로는 우연히 일어나는 일들이 많습니다.
영국의 알렉산더 프레밍은 세균배양 실험을 하다가 우연히 푸른 곰팡이 균이 다른 화농을 일으키는 다른 세균을 잡아먹는다는 사실을 발견하여 페니실린을 발명하였습니다.
뉴톤은 우연히 사과나무 아래서 사과가 밑으로만 떨어지는 것을 보고 만유인력의 법칙을 발견하였습니다.

오늘 본문에서도 룻이 우연히 보아스의 밭에 가서 이삭 줍기를 했다는 말이 나옵니다.
마태복음에 나오는 예수님의 족보에 의하면 룻은 우연히 보아스의 보리밭에 이삭줍기를 갔다가 그와 결혼하여 다윗 왕의 증조모가 되고 그 후손의 혈통을 따라 메시아야 태어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다윗 왕의 혈통에 이방 모압의 여인이 끼어들어 중요한 위치에 우뚝 서게 되는 데 하나님을 그 사건의 발단을 한마디로 “우연히...” 라는 단어로 표현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구속사의 한 페이지는 이렇게 우연한 사건에서 시작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정말 우연히 그런 일 들이 일어나는 것일까요?

1. 이 세상에 우연은 없습니다.

결론부터 말씀드린 다면 우연은 없다는 것입니다. 우연이란 생각지 않은 어떤 일을 말합니다. 인간의 입장에서는 우연한 일인지 몰라도 하나님 입장에서 보면 절대로 우연이란 없습니다.
인간들은 1초 후의 일을 모르고 하나님의 영원한 계획을 모르기 때문에 답답함을 느낄 때가 많습니다. 자신에게 임하는 어떤 일들이 왜 일어나야 하는지 모르기 때문에 답답해 할 때가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우연히 라는 말을 하게 됩니다. 그러나 분명 우리가 알아야 할 것이 있습니다.
이 세상에 일어나는 모든 일들이 우연히 일어나는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그 일이 그렇게 되어야할 이유가 있어서 그렇게 된다는 것입니다. 다만 우리가 그것을 알지 못하고 깨닫지 못하는 것 뿐입니다.

이것을 하나님의 섭리라고 합니다.
섭리란 하나님이 목적하고 계획하신 바를 이루어 가시는 주권적인 행위를 말합니다.
성도들은 하나님의 섭리를 믿어야 합니다.
나에게 무슨 일이 일어난다고 하더라고 그것에는 반드시 내가 알지도 못하고 상상하지도 못할 어떤 뜻이 있다는 것입니다.

유다의 백성들은 바벨론으로 포로로 잡혀갔습니다.
희망이 없었습니다. 모두가 절망하였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예레미아 선지자를 통해서 그들에게 희망을 주십니다.
“너희를 향한 나의 생각은 내가 아나니 재앙이 아니라 곧 평안이요 너희 장래에 소망을 주려 하는 생각이라” (렘 29:11) 는 것이었습니다.
그렇습니다.
지금 당장은 절망이고 소망이 없었지만 하나님은 백성들의 생각 위에서 일하고 계신 분이십니다. 그것을 깨닫고 믿는 것이 신앙이요 믿음입니다.
성경에는 사람들의 입장에서 보면 우연한 일 같으나 하나님의 섭리였던 사건들이 많이 나옵니다. 대표적으로 몇가지만 살펴보겠습니다.

1) 요나의 풍랑
사람들은 갑자기 풍랑을 만났습니다. 우연히 되는 것 같았습니다. 그러나 거기에는 요나를 깨닫게 하시고자 하는 하나님의 뜻이 있었습니다. 사람들이 빨리 깨달아 요나를 바다에 던지므로 자신들은 위험에서 벗어날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요나에게는 하나님의 계획에 따라 큰 물고기가 예배되었고 물고기 뱃속에서 3일 동안의 체험을 통해 회개하고 하나님의 명령을 순종하게 되었습니다.

2) 나사로
나사로가 병들어 죽었습니다. 사람들은 나사로가 우연히 병들어 죽게 된 줄 알았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그를 죽이고자 하시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예수님을 통하여 다시 살리시고 하나님이 영광을 받으시고자 함이었습니다.
요 11:4절에 보면 “예수께서 들으시고 가라사대 이 병은 죽을 병이 아니라 하나님의 영광을 위함이요 하나님의 아들로 이를 인하여 영광을 얻게 하려 함이라 하시더라” 라고 했습니다.

3) 사르밧 과부
한 끼 양식밖에 없는 사르밧 과부에게 어느 날 낯선 사람이 우연히 찾아왔습니다. 그리고 먹을 것을 좀 달라고 청하는 것이었습니다.
여인은 자신이 먹으려던 마지막 양식을 그 사람에게 주었습니다.
그랬더니 그 다음부터 그 집의 양식이 떨어지지 아니했습니다.
그 낯선 사람은 하나님의 종 엘이랴였습니다. 여인이 볼 때는 그는 우연히 만난 사람이었지만 하나님은 엘리야에게 사르밧에 사는 그 여인을 찾아가라고 지정하셨습니다. 왕상 17:9절에 보면 “너는 일어나 시돈에 속한 사르밧으로 가서 거기 유하라 내가 그 곳 과부에게 명하여 너를 공궤하게 하였느니라” 라고 하였습니다.

4) 아합 왕
왕상 22:34-35절을 보겠습니다.
“한 사람이 우연히 활을 당기어 이스라엘 왕의 갑옷 솔기를 쏜지라 왕이 그 병거 모는 자에게 이르되 내가 부상하였으니 네 손을 돌이켜 나로 군중에서 나가게 하라 하였으나 이 날에 전쟁이 맹렬하였으므로 왕이 병거 가운데 붙들려 서서 아람 사람을 막다가 저녁에 이르러 죽었는데 상처의 피가 흘러 병거 바닥에 고였더라”

아합 왕은 이스라엘 역대 왕 중에서 가장 악하기로 소문난 사람입니다. 그래서 왕상 22:20절에 보면 하나님께서 그를 전쟁터에서 죽이시기로 작정하셨습니다. 그리고 아람 나라와 전쟁을 하게 하였습니다.
치열한 전쟁을 하고 있을 때 한 사람이 우연히 화살을 쏘았는데 그것이 아합 왕 갑옷 솔기를 맞추었습니다. 그는 부상을 입었고 전쟁이 너무 치열하여 부상을 입은 채로 싸우다가 피를 너무 흘려서 죽고 말았습니다.
적군이 우연이 화살로 아합 왕을 맞춘 것 같았으나 그것은 하나님이 그렇게 작정하신 필연이었습니다.

2. 하나님의 섭리만 있을 뿐입니다.

그렇습니다.
세상의 모든 일들이 인간들의 입장에서 볼때는 우연히 일어나는 것 같으나 그것에는 하나님의 뜻과 섭리가 있습니다. 요셉은 형들에 의해 애굽에로 팔려 갔습니다. 그러나 그는 하나님의 섭리를 믿었습니다. 끝까지 하나님을 원망하지 않았을 뿐 아니라 자신을 애굽에 판 형들을 미워하지도 않았습니다. 오직 하나님의 섭리만 믿었습니다.
나중에 형들이 애굽의 총리가 된 자신을 보고 두려워 떨 때 그는 이렇게 말합니다.
(창 45:5) 당신들이 나를 이 곳에 팔았으므로 근심하지 마소서 한탄하지 마소서 하나님이 생명을 구원하시려고 나를 당신들 앞서 보내셨나이다.
그는 철저하게 하나님의 섭리를 믿었던 사람입니다.
어린 나이에 낯 설은 이국땅에 팔려와서 격은 외로움과 고초가 얼마나 컸겠습니까?
그러나 그 모든 것이 다 하나님의 계획 속에서 이루어진 것이라는 이 고백은 얼마나 위대한 고백입니까?
우리가 만일 이러한 절망적이고도 어려운 상황을 만날 때 모두다 하나님의 뜻이 있어서 그렇게 되는 것이라고 믿음의 선언을 할 수만 있다면 그는 위대한 믿음을 소유한 것입니다.

“메이 라일리 스미스” (May Riley Smith) 라는 사람의 “하나님은 최선을 알고 계셨다” 라는 글을 소개합니다.
언젠가 인생의 모든 교훈들을 다 배웠을 때,
해와 별들이 영영 져버렸을 때
우리의 연약함 때문에 놓쳐버린 것들과 눈썹이 다 젖도록 그 잃어버림을 슬퍼했던 것들이
삶의 깜깜한 방으로부터 나와 우리 앞에서 반짝이리라.
별들은 더 깊은 푸른 색으로 가장 밝게 빛나고
하나님의 모든 계획들이 얼마나 옳았는지 그리고 꾸지람이 얼마나 진실한 사랑이었는지 알게 되리라.
그러니 만족하고 가난한 마음을 가지라.
하나님의 계획은 티 없이 하얀 백합과도 같이 펼쳐지리라. ......
인내를 거쳐 우리 그 땅에 이르리니 신발 끈 풀어 피곤한 발 쉬게 하며,
확실히 보고 알게 되는 때가 오리니 그때 우리 이렇게 고백하리.
"하나님은 최선을 알고 계셨다!"

그렇습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최선을 알고 계십니다.

어느 중국 가정교회에서 있었던 일입니다.
가정에 30여명이 모여 숨어서 예배를 드렸습니다. 어느 가정의 아들과 어머니가 열심히 예배에 참석했습니다. 그런데 부인이 자주 집을 비우자 속이 상한 남편이 “내 며느리는 반드시 믿지 않는 여자로 내가 고를 것이다”고 아들에게 말했습니다. 그러자 아들이 “반드시 예수 믿는 여자를 고르셔야 합니다”고 대답했습니다.
속이 더욱 상한 아버지는 그만 가정 교회를 경찰에 고발해 버렸습니다.
경찰에 붙잡혀간 30여명의 성도들은 모두 벌금형을 선고받았습니다. 그러나 벌금을 낼 돈이 없어 몸으로 때우겠다며 30명이 유치장에 앉아 기도하고 찬송을 불러댔습니다. 그리고 이미 들어와 있던 사람들까지 모두 전도해 버렸습니다.
시끄러운데다 세끼 밥까지 먹여주어야 하니 경찰도 낭패였습니다. 그래서 남편을 불러 그까짓 일로 고발했느냐고 호통을 치고 성도들을 내보냈습니다.
지금 중국에서는 사도행전 시대의 기적들이 일어나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섭리는 자연 만물에서도 얼마든지 찾아볼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왜 세상에 번개와 같이 무섭고 쓸모없는 것을 만드셨을까하고 생각해 본적이 있습니까?
번개는 산불을 일으키며, 벼락으로 전선을 끊어 놓으며, 여러 건축물들을 파괴시키기도 합니다. 번개가 치면 많은 어린이들이나 혹은 겁 많은 어른들까지도 두려움과 공포에 떨게 됩니다. 그러나 번개가 단지 우리를 두렵게 할 뿐 아무런 쓸모없는 것이라고 오해하지 마세요
이 요란한 천둥소리는 세상에 있는 식물들에게 양분을 공급하는 큰 역할을 한답니다.
사실 식물은 번개가 없이는 살수 없습니다.
공기의 80%는 식물에 필요한 질소로 구성되어 있읍니다. 하나님은 공기에서 질소를 분리시켜 그 질소를 양분으로 바꾸어 식물에 공급하는 아름다운 계획을 세우셨읍니다.
번개가 하늘에서 우르릉하고 울릴 때에 생기는 뜨거운 열로 인하여 질소는 빗방울에 녹습니다. 질소가 용해된 빗방울은 온 대지를 촉촉히 적십니다. 무서운 폭풍우가 지나간 후에 당신은 공기에서 신 냄새를 맡을 수 있습니다.
질소의 시큼한 냄새는 바로 하나님께서 식물에게 주신 비료입니다. 그분은 우리에게 쓸모없이 보이는 번개로 하여금 식물이 살 수 있는 비료의 생성 과정을 진행시키고 계신 것입니다.
이 세상의 모든 것이 우연히 생긴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은 세상 만물에 대하여 계획과 목적을 가지고 계십니다.

어느 신문에 당선작으로 뽑힌 한 할머니의 생활 수기 "운명인 줄 알았더니 시련이었습니다."라는 제목의 생활수기가 있습니다.
20살 난 외아들이 갑자기 불치의 병으로 누우면서부터 기구한 운명이 시작됩니다.
병을 치료하기 위하여 가산을 탕진하고, 50이 넘어 방직 공장 직공생활도 하였습니다. 자살을 하려고 수면제를 사 모으는 아들의 닥한 사정을 보고 가슴아파 하던 일,술로 화를 달래던 남편마저 위암으로 죽어 절망은 극에 달하였습니다. 그러나 할머니는 절망하지 않았습니다. 앉은뱅이 아들과 함께 밤잠을 안 자며 종이봉투를 만들어 푼전을 모았습니다. 결국은 아들을 시계수리 학원에까지 보내게 되었고, 또 그 아들은 불구의 몸으로 열심히 공부하여 최우수상을 받으며 졸업하였습니다. 이제 저들은 집도 장만하고 가게도 차려 놓았습니다.
이 감동적인 실화를 방송을 통해 들은 어느 아리따운 규수는 자진하여 이 할머니의 며느리가 되기로 결심하고, 드디어는 많은 축하객의 박수 속에서 행복한 가정을 이루었습니다.
그렇습니다.
운명처럼 여겨지는 모든 일들에 하나님의 섭리와 뜻이 있습니다.
그래서 약 1:2절에서 야고보 사도는 이렇게 말합니다.
“내 형제들아 너희가 여러 가지 시험을 만나거든 온전히 기쁘게 여기라”
하나님의 섭리를 믿는 사람을 여러 가지 시험과 환난을 만나도 기뻐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섭리하셔서 롬 8:28절의 말씀처럼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룰것을 믿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알거니와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곧 그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는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느니라
세상 사람들은 자신의 뜻과 상관없이 되어지는 우연한 일들을 운명적으로 받아드리려고 합니다. 그러나 세상에서 나의 의지와 상관없는 일들은 많아도 하나님의 의지와 상관없는 일은 없습니다.
오직 하나님의 섭리가 있을 뿐입니다.
오늘 우리의 환경은 하나님의 섭리의 과정에 있는 것이라는 것을 믿어야 합니다.

어느 추운 겨울날 어떤 기독교인 한 사람이 골목 어귀에서 떨고 있는 거지를 우연히 보았습니다. 그 거지의 몰골이 너무 불쌍해 보여서 그는 즉시 하나님께 항의했습니다.
『하나님 어떻게 이러실 수가 있습니까? 저 사람을 보세요. 어떤 사람들은 호화호식하면서 잘먹고 잘사는데, 저 사람은 저렇게 지지리도 복없이 고생하고 살아야 합니까? 하나님 가만히만 계시지 마세요. 뭔가 대책을 마련하셔야 할 것 아닙니까? 사랑의 하나님 이라면서 저런 사람을 그저 보고만 계시긴가요?』
이 말에 하나님이 대답하셨습니다.
『내가 이미 대책을 세워 놓았느니라.』
기독교인은 다시 물었습니다. 『그 대책이란게 도대체 뭐죠? 어디 한번 보여주시죠.』하나님은 대답하였습니다. 『네가 바로 그 대책이니라.』

그렇습니다.
하나님의 섭리는 멀리 있는 것이 아닙니다.
오늘 나를 통하여 일하기를 원하시고 계십니다. 하나님의 섭리를 깨닫고 좌절하지 맙시다. 룻은 우연히 보아스의 밭에 간 것이 아닙니다. 그를 살리시고 쓰시려는 계획에 의해 그렇게 인도되어진 것입니다.
세상에 우연은 없습니다.
하나님의 섭리만 있습니다. (설교 : 박재신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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