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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나팔 둘을 만들라 (민 10:1-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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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나팔 둘을 만들라 (민 10:1-10)
- 이광호 목사 (영생감리교회)

저는 가끔 군대에 또 들어가는 꿈을 꿉니다. 군 생활을 참 잘했던 것 같습니다. 암호병으로 있지는 않았지만 숫자를 잘 외우고 순발력이 있어서 음어대회에 나가곤 했습니다. 군단 대회가 있으면 사단 휴양소에 가서 집중 훈련을 합니다. 모든 훈련이 열외가 되고 또 등수에 들면 포상휴가도 나올 수 있었습니다. 군인들에게 전쟁의 승리를 위해서 필요한 것은 총만이 아니다. 그중 작전 수행에 가장 중요한 것이 암호를 전달하고 해독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전쟁의 승패를 좌우하기도 합니다.

여러분 자녀들이 유치원에 가면 제일 먼저 배우는 것이 있습니다. 교통신호입니다. 빨간불 -서세요. 초록불-가세요 외치면서 길을 건널 때는 꼭 건널목으로 건너야 한다고 가르칩니다. 생명과 연결된 것이기 때문입니다. 교통신호를 무시하면 목숨을 잃을 수 도 있기 때문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약속의 땅 가나안으로 가는 광야의 길에서 하나님은 구름기둥과 불기둥으로 그들을 인도하셨습니다. 애굽의 마병이 쫒아 올 때 하나님은 불기둥으로 그 길을 막으시고 이편은 광명을 저 편은 흑암을 주시며 홍해의 물을 갈라 건너게 하셨습니다.
그런데 구름 기둥과 불기둥으로 인도하시는 하나님은 본격적인 광야 여정에 앞서 모세에게 은 나팔 둘을 만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리고 나팔을 길게 불면 짧게 불면, 둘을 함께 물면 하나만 불면 또 울려 불면 어떻게 해야 함을 일러주셨습니다.
정해진 대로 나팔을 불면 이스라엘 백성들은 그 나팔 소리를 따라 움직였습니다.

오늘 본문 1절과 2절 사이에는 히브리어 ‘레카’라는 말이 번역되지 않았는데 이 말의 뜻은 ‘너를 위해’입니다.
은 나팔을 만들게 하신 하나님의 목적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안전하게 광야를 지나 축복의 땅에 들어가게 하려는 하나님의 배려이며 사랑이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는 광야 같은 인생길을 지나고 있습니다.
험하고 무서운 길입니다. 많은 위험과 문제가 있는 곳입니다. 거칠고 메마른 곳입니다.

어떤 성도님이 하소연 합니다. 목사님 어떻게 삽니까?
묶인 것이 풀려지지 않아 힘들어하고 계셨습니다. 다른 사람이 모르는 여러 가지 힘들고 어려운 문제들이 많은 성도들에게 있습니다. 오늘도 눈물짓고 한숨짓는 성도들이 계십니다.
여전히 무거운 마음을 안고 예배하시는 분들도 계실 것입니다.
그러나 낙심하지 마십시오. 용기를 내십시오. 여러분은 하나님의 택하신 백성입니다.
구원의 은총과 영생의 축복을 받은 사람들입니다.
너를 버리지 아니하리라 떠나지 아니하리라는 약속이 있습니다.
그러므로 아무리 힘들고 어려워도 모든 것이 꽉 막혀 답답하여도 결코 포기할 수 없습니다. 이 힘들고 거친 세상을 지나 하나님이 약속하신 축복의 땅으로 들어가야 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면 이 거친 세상을 어떻게 지나서 축복의 땅에 들어갈 수 있는 것일까요?

첫째, 나팔 소리에 귀를 기울이고 들어야 합니다. 하나님의 나팔소리입니다.
곧 나팔소리는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성도는 하나님의 말씀을 들어야 합니다.
매일 들어야 합니다. 많이 들어야 합니다.
세상의 소리보다 하나님의 말씀에 귀를 기우려야 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에 귀를 기우리면 감당하기 힘든 세상이라도 지나갈 수 있기 때문입니다.

말씀이 여러분 가까이 있습니다. 붙드십시오. 말씀의 위로와 능력을 받으십시오. 말씀 속에 담긴 무한한 비젼들을 소유하십시오.
인터넷을 열면 들을 수 있습니다. 라디오를 틀면 텔레비전을 통해 말씀이 홍수 같이 밀려오고 있습니다. 그러나 문제는 말씀에 귀를 기울여야 한다는 것입니다.

광야를 지나는 동안 이스라엘의 양식은 만나였습니다. 하루도 빠지지 않고 하늘에서 만나가 내렸고 백성들은 그것을 먹고 힘을 얻어 광야를 지날 수 있었습니다.
말씀은 내 발의 등이요 내 길이 빛이니이다. 아멘 이 고백이 저와 여러분의 고백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말씀이 성도의 참된 지혜요 능력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나팔소리를 듣고 난 후 행동했습니다.
그들은 나팔 소리가 어떻게 울리는지 귀를 기울였습니다. 그리고 그 나팔 소리에 따라 모이기도 하고 전진하기도 했습니다. 전쟁을 하기도 하며 예배드리기도 했습니다.
결코 먼저 행동하지 않았습니다. 그렇게 함으로써 이스라엘 백성들은 안전하게 광야 길을 지나갈 수 있었습니다.

그렇습니다. 이 거친 세상을 지나 축복의 땅에 들어가려면
둘째는 추월하지 말아야 합니다.
한번은 시골길을 운전하고 가는데 앞차가 너무 느리게 가는 것입니다. 급한 마음에 추월을 했습니다. 그런데 곧 뒤에서 싸이렌 소리가 울렸습니다. 제 바로 뒤에 경찰차가 있었던 것입니다. 경찰이 하는 말 ‘선생님 경찰차가 뒤에 있는데 추원하는 분은 처음입니다. 가끔 백밀러도 보고 다니십시오.’

많은 사람들이 하나님의 생각을 앞지르고 성급하게 행동함으로 실패하고 실수합니다.
내 생각을 가지고 하나님의 생각을 앞지르지 말아야 합니다. 하나님을 추월하면 위험합니다.

아브람과 사래는 하나님의 때를 기다리지 못했습니다. 인간적인 생각으로 하나님을 추월했습니다. 하나님의 때를 앞질러 인간적인 지혜와 생각으로 행동하는 것은 결코 그 결과가 선할 수 없습니다.

베드로를 향해 주님은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사단아 내 뒤로 물러가라 네가 하나님의 일은 생각지 못하고 도리어 사람의 일을 생각하는도다”

그러므로 문제투성이인 광야를 지나 축복의 땅으로 들어가려면 성도는 이렇게 해야 합니다.
‘주님 말씀하시면 내가 나아가리다 주님 뜻이 아니면 내가 멈춰 서리다 나의 가고 서는 것 주님 뜻에 있으니 오주여 나를 이끄소서. 뜻하신 그곳에 나있기 원합니다. 이끄시는대로 순종하며 살리니 연약한 내 영혼 통하여 일하소서. 주님나라와 그 뜻을 위하여 ....오주님 나를 이끄소서.
이 찬송을 모든 성도님들이 좋아하는 것 같습니다. 우리교회 주제가로 삼아야 할 것 같습니다.
나팔을 불 때 그 소리가 달랐습니다.
하나만 부느냐, 둘다 부느냐, 울려 부느냐, 그냥 부느냐에 따라 그 행동이 달랐던 것입니다. 성도에게는 말씀을 분별하는 영적 지혜가 있어야 합니다.

말씀을 분별하는 영적 지혜가 없으면 이단에 빠지는 것입니다.
모든 소리가 다 하나님의 말씀이 아닙니다. 말세의 때에는 미혹해하는 영들이 더욱 극성을 부립니다. 여기 구원이 있다 저기 구원이 있다 성도들을 유혹합니다.

요즘 익산에 이단이 들어와 교회와 성도들을 흔들고 있습니다.
많은 교회들 속에 침투해서 영적 질서를 어지럽히고 성도들을 미혹하고 있습니다. 기독교 무료신학원이라는 것이 그것인데 여러 가지 교묘한 방법으로 성도들에게 접근합니다. 친분을 가지고, 혹은 성경공부를 위장해서, 혹은 교회와 목사를 비방하고 불만을 갖게 함으로서 교회를 떠나게 하고 이단으로 끌어드리고 있습니다.

정신을 바짝 차리십시오. 분별해야 합니다. 혹 의심스러운 것이 접근하면 곧 교회로 알려야 합니다. 교회가 모르게 몇 사람끼리 모여서 성경공부 하는 것은 의심해야 합니다.
( 수상하면 신고하자. 신고는 834-0088로 )
교회 중심의 신앙생활을 해야 합니다. 성경공부 교회에서 하십시오.

잠자는 동안 사단 마귀가 가라지 씨를 뿌리고 가는 것입니다. 가라지의 독성 때문에 곡식이 자라지 못하고 죽정이가 되는 것입니다. 이단이 들어오면 교회가 분열되는 것입니다. 이단은 가정을 파괴합니다. 이단은 성도를 무너뜨립니다.

그러므로 세 번째의 교훈은 성도는 자지 말고 깨어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나팔소리는 귀를 기울이는 자, 깨어있는 자가 들을 수 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무슨 일을 하든지 항상 나팔 소리에 귀를 기울였고 관심을 가졌습니다. 관심 갖지 않고 , 깨어있지 않고서는 나팔소리를 들을 수 없었기 때문입니다.
성도는 항상 깨어 있어야 합니다. 하나님의 음성에 귀 기울여야 합니다. 하나님의 일에 관심이 있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들에게 원하시는 것이 있습니다.

1. 일치입니다.
두 나팔을 불면 온 회중이 회막문 앞으로 모였습니다. 하나만 불면 천부장들이 모였습니다. 모임을 위하여 나팔을 불었습니다. 하나님이 성도에게 원하시는 것은 일치입니다. 하나됨입니다. 서로 모여 떡을 떼고 말씀을 들으며 기도하기를 원하십니다. 그것이 초대 예루살렘 교회의 모습이었습니다.
우리 영생교회는 하나님의 뜻 안에서 일치하고 하나 되는 교회가 되기를 원합니다.
익산과 민족과 열방의 선교를 위하여 하나가 되어야 합니다. 모든 성도들이 선교의 큰 꿈과 비젼을 품을 수 있기를 원합니다. 복음을 위해 하나가 되어 전도합시다.

2. 전진입니다.
나팔을 울려 불면 동편 진이 전진하고 나팔을 이차로 울려 불면 남편진이 전진하였습니다.
울려 부는 것은 전진하라는 신호입니다.
하나님의 바램은 우리의 믿음이 성장하는 것입니다. 장성한 믿음의 분량에까지 이르기를 원하십니다. 결코 어린아이로 남기를 원하시지 않습니다. 딱딱한 음식도 깨물어 먹고 소화하기를 원하십니다. 성도가 영적으로 성장하고 성숙해지는 것입니다.
성도의 믿음은 전진하는 믿음이어야 합니다. 앞길의 장애를 두려워하지 않는 용기 있는 믿음이어야 합니다.

3. 승리입니다.
대적을 치러 나아 갈 때에는 울려 불었습니다. 그리하면 하나님이 기억하시고 승리를 주셨습니다. 하나님이 그 전쟁에 개입하심으로 악한 대적을 물리칠 수 있었습니다.
영적 패배자가 되어서는 안 됩니다. 영적 싸움에 승리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이름으로 나아갈 때 승리할 것입니다. 그러므로 엡6:10절 이하의 말씀처럼 하나님의 전신갑주로 무장하고 무시로 성령 안에서 기도해야 합니다.

4. 기쁨입니다.
희락의 날, 절기에 제물 위에 나팔을 불었습니다. 그러면 백성들은 모여 기뻐하며 하나님께 예배를 드렸습니다. 그들의 제사는 감사요 축제였습니다.
성도는 주의 날을 기뻐해야 합니다. 기쁨과 감사로 하나님을 예배해야 합니다.
하나님은 억지로 하거나 인색함으로 하는 것을 기뻐하지 않습니다.
기쁨으로 예배해야 합니다. 기쁨으로 봉사해야 합니다. 기쁨으로 헌신해야 합니다. 할렐루야

은 나팔은 누가 붑니까? 제사장들이 불게 되어 있었습니다.
은나팔 둘을 만들라고 하신 이유는 당시 나팔을 사용할 제사장이 둘뿐이었기 때문입니다. 솔로몬 왕 시절에는 120명의 제사장들이 나팔을 불었다고 되어 있습니다.
제사장들이 나팔을 불면 백성들은 나팔소리에 귀를 기울였고 소리에 따라 움직였습니다.

고전14:8 “만일 나팔이 분명치 못한 소리를 내면 누가 전쟁을 예비하리요”라고 말씀합니다.

이스라엘이 여리고를 점령할 때 제사장들이 양각 나팔을 불었습니다. 나팔 소리를 듣고 백성들이 한 마음으로 소리를 질렀습니다. 제사장 일곱이 양각나팔을 불면서 앞장서고 그리고 여호와의 법궤가 따라갔습니다. 여리고성은 여지없이 무너져 내렸습니다.
기드온이 미디안과 싸울 때에 하나님은 300명의 군사를 선발하게 하셨습니다. 도저히 불가능한 전쟁입니다. 그러나 삼 백명을 세대로 나누어서 각 손에 나팔을 잡게 하고 나팔을 불게 했습니다. 일제히 함성을 질렀습니다.
성경에 보면 “300명이 나팔을 불 때에 여호와께서 온 적군이 동무끼리 칼날을 치게 하므로 도망하여”(삿7:22)라고 하였습니다.
나팔 소리는 전쟁을 승리로 이끄는 것입니다. 그런데 나팔이 분명치 못한 소리를 내면 누가 전쟁을 예비하겠느냐는 것입니다.

나팔 소리를 듣는 자가 있고 부는 자가 있습니다.
누구의 책임입니까? 나팔을 부는 자의 책임입니다.
소리를 내는 자가 분명하지 못하다는 것입니다.

저는 언젠가 하나님 앞에 기도하면서 눈물로 기도한 적이 있습니다. 진리를 바르게 알지 못하고 진리를 바르게 전하지 못한 시절이 있었습니다. 그때도 여전히 열심히 했습니다. 열정도 있었습니다. 수고도 있었습니다. 그런데 복음을 분명하게 전하지 못했습니다. 천국과 지옥을 분명하게 전하지 못했습니다. 축복과 심판을 분명하게 전하지 못했습니다.

오늘날 현대 교회의 여러 가지 문제들은 목회자들의 문제입니다. 나팔 소리를 분명히 내지 못한 영적 지도자들의 문제 입니다. 복음이 분명하지 않은 것이 문제입니다.

또한 목회자들만의 문제가 아닙니다. 모든 성도들의 문제입니다.
오늘날 가정의 문제, 자녀들의 문제는 아버지들의 문제요 어머니들의 문제입니다.
나팔 소리가 분명하지 않은 것이 문제입니다. 성도들의 복음이 분명하지 않은 것이 문제입니다.

한 사람의 복음이 분명하지 아니함으로 한 가족의 멸망이 오는 것입니다.(롯의 가족)
롯 - 보기에 좋은 대로 선택하였다. 영적 권위가 없습니다. 이유는 신앙적 교육이 이루어지지 않음 롯은 복음이 분명하지 못했습니다.
아버지의 복음이 분명치 아니하면 자녀들의 실패가 오는 것입니다.(사울)
사울의 교만, 망령된 제사, 성령을 소멸함-악령의 활동을 방치

영적인 일은 사명을 가진 자가 책임입니다.
나팔 소리가 분명해야 합니다. 복음이 분명해야 합니다.
아버지의 나팔 소리가 분명해야 자녀들이 성공과 승리를 얻을 수 있습니다.

오늘 이 시대의 문제는 나팔 소리를 분명하게 내지 못한 교회들의 문제입니다.
나팔을 부는 자의 책임입니다. 우리 모두의 책임입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이 이 시대의 tkud자들로 우리를 부르셨기 때문입니다.
아버지들이여, 어머니들이여, 여러분들의 복음이 분명해지시기를 바랍니다.
복음의 나팔 소리를 분명하게 내고 자녀와 가정을 하나님의 은혜로 이끄시는 성도들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거친 광야 같은 세상을 사는 성도 여러분 얼마나 어려우십니까? 얼마나 힘드십니까?
성도 여러분, 어떤 문제들로 인해 한숨지고 눈물나는 고통이 있습니까?
그러나 기억하십시오. 하나님은 여러분을 결코 놓지 않으십니다.
능력의 하나님이 여러분과 함께 하심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이 거친 세상을 지나 축복의 땅으로 인도하시기를 원하십니다.

그러므로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하나님의 말씀에 귀를 기울이십시오. 나팔소리를 들어야 합니다.
하나님을 추월하지 마십시오. 추원하면 사고납니다.
깨어있어야 합니다. 사단 마귀는 성도를 무너뜨리려 노리고 있습니다.

하나님이 원하시는 것이 무엇인지를 알아야 합니다.
교회의 일치입니다.
성도의 성장과 성숙입니다.
영적 싸움의 승리입니다.
주안에서 누리는 성도의 기쁨입니다.

나팔을 부는 자가 분명한 소리를 내야 합니다.
자녀와 가정과 교회와 이 시대의 방황은 모두 영적 지도자들의 책임입니다.
아버지들의 책임입니다. 어머니들의 책임입니다.
복음이 분명하지 못했던 저와 여러분들의 책임입니다.
그러므로 이제 우리의 복음이 분명해져야 합니다.
“만일 나팔이 분명치 못한 소리를 내면 누가 전쟁을 예비하리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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