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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네시모를 용서하라 (몬 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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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네시모를 용서하라 (몬 1-3)
- 설교 : 윤정현 목사

성경은 탕자의 비유나 무자비한 종의 비유를 통해서 비유적으로 용서의 정신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한 가정의 실제적인 문제를 통해서 용서의 정신을 아름답고 감동적으로 우리에게 설명하고 있습니다. 이런 내용을 담고 있는 성경이 빌레몬서입니다. 그것이 우리가 앞으로 몇 주간 살펴보고자 하는 빌레몬서의 내용입니다. 10월 달은 빌레몬서를 살펴보면서 내가 용서해 주어야 할 나의 오네시모는 누구인지 깨닫게 되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나 자신의 행복과 나 자신의 평화를 위해서라도 나의 오네시모를 용서해 줄 수 있는 넉넉한 마음의 소유자가 되기를 바랍니다.

먼저 말씀드릴 것은 이 편지를 쓰신 분입니다. 1절 상반 절의 말씀대로 "그리스도 예수를 위하여 갇힌 자 된 바울과 및 형제 디모데는."라고 밝히고 있습니다. 그럼으로 빌레몬서를 쓰신 분은 바울입니다. 그리고 수신자는 빌레몬이라는 사람입니다. 아마도 빌레몬은 바울의 편지를 받았을 때에 남모르는 뜨거운 감격이 있었을 것입니다. 바울은 위대한 사도인데 그런 분의 친서로 편지를 받았으니 얼마나 감격스럽겠습니까? 그러나 감격스러운 이유는 따로 있습니다. 그것은 빌레몬이 예수를 믿게 된 것은 바로 바울 때문이었기 때문입니다. 다시 말씀드리면 바울은 빌레몬의 믿음의 아버지라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바울이 3차 전도여행을 할 때에 에베소에서 3년간 머물면서 주로 두란노 서원에서 말씀을 가르쳤는데 빌레몬의 집은 에베소에서 조금 떨어진 골로새라고 하는 지방이었습니다. 사업차 에베소에 나왔다 바울을 만났고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하지 않았을까 추측하는 설이 있습니다.

그런 믿음의 아버지인 바울의 편지를 그가 받았으니 얼마나 마음이 설레었겠습니까? 바울을 생각할 때마다 빌레몬의 마음 속에는 사랑의 감정, 좋은 감정, 엔돌핀이 솟구쳤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는 어떻습니까? 다른 사람이 나를 생각할 때 그 마음 속에 사랑의 정, 따뜻한 마음, 엔돌핀이 솟구쳐 오르겠습니까? 아니면 눈살이 찌푸려지는 모습은 아닌지를 살펴보기를 원합니다. 마치 빌레몬이 바울을 생각할 때 그 마음 속에 엔돌핀이 솟아난 것처럼 우리도 다른 사람의 마음에 따뜻함을 주고, 사랑의 감정을 불어넣어 주고, 엔돌핀을 솟구치게 하는 그런 사람으로 살아가기를 바랍니다.

그런데 바울은 자기를 소개하면서 "그리스도 예수를 위하여 갇힌 자된 바울."이라고 소개하고 있습니다. 사실 지금 바울은 로마 옥중에서 이 편지를 쓰고 있기 때문에 그렇게 말했을 것입니다. 다른 편지에서는 자신을 소개할 때에 사도라고 하는 말을 사용하였습니다. 그런데 유독 빌레몬서에서는 "그리스도 예수를 위하여 갇힌 자된 바울"이라고 소개하고 있습니다. 왜 그랬을까요? 거기에는 숨은 의도가 있을 것입니다. "빌레몬아! 내가 그리스도 예수를 위하여 지금 감옥에 있단다! 그렇다면 내가 지금 너에게 부탁하는 것을 너도 그리스도 예수를 위하여 들어주기를 바란다"는 간절한 마음의 숨은 의도였을 것입니다. 지금 바울이 빌레몬에게 부탁하는 것은 무엇입니까? 그의 종 오네시모를 용서하라는 것입니다.

여기서 오네시모가 등장을 합니다. 원래 오네시모는 빌레몬의 종이었습니다. 그런데 자기 주인의 돈을 훔쳐서 달아나 버렸던 종입니다. 그리고 로마로 도망가서 살던 사람입니다. 아마도 많은 사람 가운데 파묻혀 살면 아무도 모르리라고 생각을 했기 때문일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섭리 속에 바울이 전하는 복음을 듣고 예수를 만나게 되었고 바울과 이야기를 하는 중에 자기가 잘 아는 빌레몬의 종이었던 사실을 바울이 듣게 된 것입니다. 아마도 그랬을 것입니다. "야! 세상 참 넓고도 좁구나!" 그리스도 예수로 말미암아 오네시모는 전혀 새로운 사람이 된 것입니다. 오네시모는 옥중에 갇혀있는 바울의 옥바라지를 정성껏 했습니다.

바울은 오네시모가 참 고마웠을 것입니다. 혈혈단신인 바울의 옥바라지로 정성을 쏟아 주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오네시모는 빌레몬의 종이었기 때문에 불편했습니다. 오네시모가 자기와 함께 있는 것은 좋은 일이기는 하지만 빌레몬의 승낙이 없이 임의대로 그렇게 하기를 원치 않았습니다. 그래서 바울은 오네시모를 그의 주인 빌레몬에게 되돌려 보내기를 원했습니다. 빌레몬에게 보내는 편지 한 장을 들려 보내면서 오네시모를 빌레몬에게 돌려보냅니다. 그것이 바로 빌레몬서입니다.

지금 우리는 이 말씀을 같이 나누면서 사도 바울은 그리스도 예수를 위해서 옥에 갇혀 있습니다. 주 예수 그리스도를 위해서 그는 순교했습니다. 그 순교 정신으로 빌레몬에게 부탁을 하고 있습니다. "오네시모를 용서하라!" "네가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다면! 예수 그리스도께 엄청난 사랑을 받았다고 한다면 오네시모를 용서하라!"
사랑하는 여러분! 사람들은 저마다 오네시모가 있을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위하여 감옥에 갇히고!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순교하는 바울이 부탁하는 말을 듣고 빌레몬은 오네시모를 용서하여 주었는데 우리도 나의 오네시모가 누구이든지 간에, 나의 오네시모가 나에게 어떠한 짓을 했든지 간에 그리스도 예수를 위해서 기꺼이 용서해 줄 수 없겠느냐는 말씀으로 들으시기를 바랍니다.

예수님은 무자비한 종의 비유를 우리에게 해 주셨습니다. 마태복음 18장에 나옵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일만 달란트 빚을 다 탕감해 주셨다는 사실을 알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내 형제가 내게 일백 데나리온의 작은 빚을 지고 있을 때는 그리스도의 사랑으로 기꺼이 용서해 줄 수 있는 마음이 되어야 할 것입니다. 수천 억, 조가 넘는 엄청난 빚을 탕감 받았다면 기껏해야 몇 백만원 정도는 기꺼이 탕감해 줄 수 있는 용서의 마음을 가져야 할 것이 아니냐는 말씀입니다. "나의 오네시모가 누구인가?" 성령께서 깨닫게 하시기를 원합니다. 누군가 내게 어떤 섭섭한 일을 했다 할지라도 나를 향하신 그리스도의 사랑, 곧 십자가의 정신을 생각하면서 이 시간 성령의 도우심으로 우리의 오네시모를 용서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바울은 1절 중반 절에 빌레몬에게 한 사람을 또 소개하고 있는데 그 이름은 디모데입니다. 디모데를 소개하면서 디모데를 무엇이라고 부르고 있습니까? "형제여!"라고 합니다. 디모데도 역시 바울의 믿음의 아들입니다. 물론 디모데도 빌레몬과 친분이 있기도 합니다. 디모데는 바울에 비해서 나이가 훨씬 어린 사람입니다. 아들 같은 사람입니다. 지식과 경험적인 면에서도 두 사람 사이에는 엄청난 차이가 있었습니다. 9절에 "나이 많은 나 바울"이라고 한 것을 보십시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도 바울은 디모데를 자기의 형제라고 부르고 있습니다. 이 말씀은 무엇을 의도하고 있는 것입니까? "내가 디모데를 나의 형제로 대하고 있는 것처럼 너도 오네시모를 종처럼 취급하지 말고, 이제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형제와 같이 대해 주기를 바란다."라는 뜻일 것입니다.

우리 모두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다 하나입니다. 믿음의 한 가족들입니다. 서로 사랑하면서 살아가야 한다는 말씀입니다. 우리 모두는 다 부족한 존재들입니다. 그러므로 서로 용서하면서 살아가자는 말씀입니다. 이것이 될 때에 신앙의 공동체로서 하나님의 사랑과 축복을 받게 될 것입니다.

그리고 바울은 빌레몬을 "사랑 받는 자요, 동역자"로 대우하고 있습니다.(1,2) 빌레몬보다 나이도 많았습니다.(9) 얼마든지 명령을 할 수도 있습니다. 강요할 수도 있습니다. 명령을 내릴 수 있는 권한도 있습니다. 그러나 그렇게 하지 아니하였습니다. 빌레몬이 오네시모를 용서하고 받아주되 자발적으로 마음에서 우러나오는 마음으로 해 주기를 바랐던 것입니다. "우리 모두는 빌레몬 너를 사랑한단다. 디모데도 너를 사랑한단다. 너나 우리나 그리스도의 나라를 위한 동역자들이 아니냐? 그러니 이제 너도 오네시모를 종처럼 취급하지 말고, 그를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함께 하나님의 나라를 위해서 일하는 동역자로 받아주기를 바란다."는 뜻으로 "사랑하는 자요, 동역자라고 하였던 것입니다.

그 당시에는 노예가 도망쳤다가 잡히게 되면 가혹한 처벌을 받게 되어 있었습니다. 그런 사람을 십자가에 못 박아 죽이던지 아니면 도망자라고 하는 낙인인 "F"자를 이마에 찍던지 하였습니다.(Fugitivus) 바울은 오네시모가 그와 같이 가혹한 처벌을 받지 아니하고, 이제는 그리스도의 사람으로서 하나님 나라의 동역자로서 그를 받아주기를 기대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여기서 우리는 그리스도의 사랑이 얼마나 큰 것인가를 깨닫게 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는 작은 일이나, 말 한 마디에 상처받기 쉬운 연약한 인간들입니다. 옛말에 "말 한 마디로 천냥 빚을 갚는다"라는 말이 있지 않습니까? 말 한 마디라도 남을 배려해 줄 줄 아는 사람들이 되어야 합니다. 바울은 디모데를 가리켜 "형제"라고 말했습니다. 자기는 낮추고 디모데는 높였습니다. 그런 마음이 우리에게도 있기를 바랍니다. 여기에 그리스도인의 아름다움이 발견 되게 될 것입니다.
끝으로 축복의 말씀입니다. 3절을 함께 읽도록 하겠습니다. "하나님 우리 아버지와 주 예수 그리스도로 좇아 은혜와 평강이 너희에게 있을 찌어다." 축복의 근원은 누구입니까? "하나님 우리 아버지와 주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축복의 내용은 무엇입니까? "은혜와 평강"입니다. 은혜는 원인이고 평강은 결과입니다. 은혜를 받으면 자동적으로 평강이 따라옵니다. 여러분! 평강을 원하십니까? 그렇다면 은혜 받는 일에 힘쓰시기를 축원합니다.

그리고 축복의 대상은 누구입니까? "너희에게 있을찌어다"입니다. 빌레몬과 그의 가족들, 한 걸음 더 나아가서 온 골로새 교우들을 지칭하는 말입니다. 오네시모의 모든 과거의 잘못을 용서해 주고, 따뜻하게 용납해 주고, 형제로 받아줄 사람들을 가리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하나님의 축복을 원하십니까? 하나님 우리 아버지와 주 예수 그리스도로 좇아오는 은혜와 평강을 누리기를 원하십니까? 나의 오네시모를 용서해 주십시다. 나의 오네시모가 누구이든지 간에, 내게 무엇을 행했던지 간에, 그리스도의 사랑으로 용서해 주어야 합니다. 그것이 축복받는 길입니다. 그가 나를 배신했을 수도! 물질적인 손해를 끼쳤을 수도 있습니다. 그 사람만 생각하면 속이 상해 잠을 못 이룰 수도 있습니다. 그럴지라도 오네시모를 용서해 주어야 합니다. 그것이 바로 축복을 받는 길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미국의 유명한 강철 왕 앤드류 카네기는 이런 말을 했습니다. "우리는 우리의 원수를 용서할 만큼 성자가 아닐지도 모른다. 그러나 우리 자신의 건강과 행복을 위해서라도 우리의 원수를 용서하고 잊어버리기로 하자."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의 오네시모는 누구입니까? 하나님은 우리의 오네시모를 다 용서해 주기를 요구하고 계십니다. 성령님의 도우심으로 오네시모를 용서해 줄 수 있는 우리들이 되기를 바랍니다. 그리할 때 하나님의 은혜가 임합니다. 우리의 마음 속에 평강이 절로 임하게 될 것입니다.

끝으로 용서가 무엇인가를 정리하면서 이 설교를 마치도록 하겠습니다. 첫째로, 참는 것입니다.(Forbear) 속이 상한다고 해서 화풀이한다면 그것은 용서가 아닙니다. 참아야 합니다. 용서는 참는데서 시작이 되는 것입니다. 둘째로, 잊어버려 주는 것입니다.(Forget) 나의 오네시모가 나에게 섭섭한 일을 하고 손해를 끼쳤다 할지라도 과감히 잊어버리라는 것입니다. 셋째로, 잊어버리되 영원토록 잊어버리는 것입니다. 용서는 기억 속에서 영원히 깨끗하게 잊어버려야 하는 것입니다.(Forever)

모쪼록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의 오네시모는 누구입니까? 하나님은 이제 우리에게 말씀하셨습니다. "너의 오네시모를 용서하라." 이런 말씀을 들었습니다. 말씀을 지켜 순종하며 행하기를 바랍니다. 그리하면 하나님의 축복이 우리에게 임하게 될 것입니다. 그것이 하나님의 축복을 받는 길입니다. 은혜와 평강을 누릴 수 있는 길입니다. 부디 우리 대선의 모든 성도들의 마음에 평강과 천국을 회복 할 수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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