쏟아 붓는 사랑과 넘치는 은혜
본문
성경 ; 삼하6:1-5,12-19, 엡1:3-14, 막6:14-29
제목 ; 쏟아 붓는 사랑과 넘치는 은혜
작성 방법 ; 한글97 ( A4, 2쪽)
작성자 ; 정 수 환 목사(j3038@kornet.net)
연락 전화 ; 영춘교회 ( 0444-423-3038, 011-738-3038)
참고 ; 공개자료실에서는 A4 용지 4쪽으로 된 자료를 받을 수가 있 습니다. 이 설교자료는, 성서일과와 교회력에 따라 작성된 것입니다.
제게는 천사들이 많습니다. 저로 하여금, 믿음 안에서 바르게 살면서 주의 일을 잘 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고마운 천사들이 많습니다. 평생 천사가 되어 도와주고 있는 아내가 있고, 건강을 보살펴주는 천사가 있는가 하면, 기도로 지원해주고 있는 천사도 있습니다. 또한, 예배당 건축을 돕기 위하여 찾아온 천사를 비롯하여, 이모저모 저를 보살펴주고 있는 고마운 천사들이 있습니다.
그 고마운 천사들 중의 하나가 고 전도사입니다. 오래 전부터 교육전도사의 필요성을 절감하고 있었지만, 이 벽지까지 오겠다는 사람이 없었습니다. 그런데, 고 전도사가 나타난 것입니다. 그야말로, 하나님이 보내주신 고마운 천사입니다. 고 전도사가 제게는 정말 큰 힘과 도움이 되고 있습니다.
그래서, 고 전도사를 보내주신 하나님께 감사하고, 또한 고 전도사에게도 늘 고마운 마음을 갖고 있습니다. 하지만, 오늘 이 시간에는 고전도사의 흉을 좀 보려고 합니다. 오늘 말씀에 필요한 이야기라서 이렇게 공개하는 것이니, 당사자는 물론이요 여러분께서도 이해해주셨으면 합니다.
다름 아니고, 잠귀가 너무 어둡습니다. 자명종 시계가 울어대고 핸드폰 알람이 노래 불러도, 고 전도사는 끄덕하지 않습니다. 어저께는 아주 시끄러운 자명종을 머리맡에 갖다놓았습니다. 하지만, 그 시계가 온 세상이 떠나가도록 계속 울어대도, 우리의 주인공은 기척도 하지 않는 것이었습니다.
반면에, 제 아내는 잠귀가 너무 밝아서 탈입니다. 옆에서 잔기침만 해도 잠자다가 일어나고, 사랑방에서 들려오는 작은 라디오 소리에도 잠을 이루지 못할 정도로 신경이 예민합니다. 제가 보기에 안쓰러울 정도로 잠을 제대로 자지 못합니다.
‘그렇다면, 당신은 어떻습니까?’하고 물어보고 싶지요? 저는 그 중간입니다. 잠도 잘 자거니와, 자명종 벨소리도 잘 듣습니다. 첫 벨소리가 나는 순간 용수철처럼 발딱 일어납니다. 그래서, 아내는 두 번 놀랍니다. 자명종 소리에 놀라고, 제가 너무 빨리 일어나는 바람에 놀라곤 합니다.
육감은 제가 소유한 감각이 적당합니다. 하지만, 영감(靈感)은 제 아내의 육감처럼 예민해야 합니다. 아주 작은 은혜에도 감격의 눈물을 흘릴 수 있을 정도로, 영감이 아주 민첩하게 반응할 수 있어야 합니다.
삼하 6장에는, 영적으로 아주 민감한 다윗과 그렇지 못한 미갈이 등장하고 있습니다. 다윗은 하나님의 법궤를 예루살렘으로 모셔오게 된 것이 너무 기뻐서 덩실덩실 춤을 추었습니다. 그러나, 미갈은 그런 다윗을 마음속으로 업신여겼습니다. 왕의 체통을 떨어뜨리는 행동을 한다고 말입니다.
하지만, 다윗은 그렇게 기쁠 수가 없었습니다. 오랫동안 바라던 숙원이 이루어졌기 때문입니다. 지난번에는 ‘웃사’가 법궤를 손으로 만지는 바람에 법궤를 모셔오지 못했습니다. 그런데, 이번에는 법궤를 모셔오게 되자, 다윗은 너무나 기뻤던 것입니다.
미갈은 다윗의 이런 마음을 이해하지 못했습니다. 잠자리까지 같이하는 부부이지만, 그 마음은 하늘과 땅 차이만큼이나 멀었습니다. 왜냐하면, 다윗은 하나님을 믿고 의지했으나, 미갈은 하나님께 대한 믿음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다윗의 입장에서는 법궤를 모셔오는 일이 너무 중요한 일이었지만, 미갈에게는 별 볼 일이 없는 일이었습니다.
요컨대, 다윗은 영적인 감각이 예민한 까닭에 하나님의 은혜에 깊이 감사할 줄 아는 사람이었으나, 미갈은 그런 감각이 너무나 무디고 둔해서 하나님의 은혜를 거의 깨닫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다윗은 춤을 추면서 기뻐했지만, 미갈은 오히려 그런 다윗을 비웃었던 것입니다.
오늘날에도 미갈처럼 영적으로 무감각한 사람들이 있습니다. 어쩌면, 우리 자신도 영적인 감각이 무디어진 것은 아닌지, 그래서 처음 예수 믿을 때의 그 감격과 감동을 잃어버린 것은 아닌지, 스스로가 자신의 영적 인 상태를 의심해봐야 할 것입니다.
죽은 사람은 그 살갗을 만지거나 꼬집어도 감각이 없습니다. 문둥병 환자도 마찬가지입니다. 이처럼, 영적으로 죽어있거나 문둥병에 걸린 사람은 하나님의 은혜를 깨닫지 못합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늘 베풀어주시는 은총과 사랑에 대해서 감사할 줄도 모르고 기뻐할 줄도 모르는 것입니다.
사람이 죽었을 때에만 안타까워할 일이 아닙니다. 영적으로 죽어가고 있는 자신을 모습을 발견하고 심히 애통해야 할 것입니다. 요즘에는 일이 많고 날씨가 덥기 때문에 자신의 영혼관리를 소홀히 할 염려가 많고, 신앙생활을 게을리 할 우려가 있습니다.
다윗이 하나님의 법궤를 예루살렘으로 모셔들였듯이, 우리 또한 하나님을 마음에 진심으로 모셔들여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함께 하셔야, 우리 인생에는 기쁨과 평화가 있습니다. 바울은 말하기를 『하나님 앞에 서 있는 우리는, 그분의 사랑 속에 싸여 살아가고 있다(엡1:4)』고 했습니다.
1.하지만, 오늘 우리는 하나님을 진심으로 모셔들여 살지 못할 때가 많습니다.
헤롯은 세례 요한을 존경했습니다. 그래서, 요한이 자신의 잘못을 지적하면서 회개를 촉구했을 때에도, 그가 그렇게 바른말하는 것이 미웠지만, 그를 두려워하면서 은근히 보호해주었던 것입니다. 그러나, 헤롯은 요한이 믿고 있는 하나님을 잘 알지 못했습니다. 만일, 그가 하나님의 은총과 사랑을 알고, 또한 그의 공의로운 심판을 알았다면, 요한의 목을 벨 수 없었을 것입니다.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만일 우리가 진정 하나님을 믿어야 행복하게 살 수 있음을 믿는다면, 지금보다는 좀더 열심히 신앙생활 할 것입니다. 바울은『은총과 사랑을 쏟아 주의 사람이 되게 하신 하나님을 찬양하자(엡1:6)』고 했습니다. 우리도 바울 같은 믿음이 있다면, 날마다 베풀어주시는 하나님 은혜에 민감하게 반응하면서 감사와 기쁨이 넘치는 생활을 할 수 있을 것입니다.
①그러나, 우리는 주의 자녀가 누리고 있는 은혜를 잘 깨닫지 못하고 있습니다.
일찌감치 하나님은 죄로 말미암아 죽을 수밖에 없는 우리를 용서하셔서 당신의 가족으로 삼으시려는 위대한 뜻을 갖고 계셨습니다. 그래서, 그 아들 예수를 우리 대신 죽게 하셔서 우리 죄를 용서하셨던 것입니다. 그리고, 그 예수를 믿는 사람들에게 날마다 지혜와 총명을 베풀고 있습니다.
오늘도 우리는 그 은혜로 이 자리에 나왔습니다. 그리고, 하늘의 신령한 음식인 말씀을 공급받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 은혜에 대한 감격을 잃어버린 사람들이 있습니다. 생명의 양식인 말씀을 들어도 도무지 감동을 느끼지 못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시계가 아무리 울어대도 피곤하면 그 소리를 잘 들을 수 없듯이, 영적으로 죽어가고 있거나 병든 사람은 하늘의 음성을 잘 듣지 못합니다. 그래서, 하늘의 음성을 듣지 못하는 까닭에, 그런 사람은 자꾸만 이 땅에 속한 소리만 떠들어대게 마련입니다.
②그리고, 그런 사람은 하나님의 뜻을 저버리고 자기 욕심대로만 살아갑니다.
헤롯이 요한을 죽인 것은, 그가 하나님을 잘 몰랐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런고로, 그는 하나님의 뜻을 알 리가 없었습니다. 오로지, 그는 자신의 체면만을 생각할 수 있을 뿐이었습니다. ‘요한을 죽인다는 것이 좀 괴로운 일이었지만, 많은 사람들 앞에서 한 약속이기 때문에 어길 수 없었다’고, 복음서 기자는 기록하고 있습니다.
오늘 우리도 하나님의 말씀을 잘 모르면, 자신의 체면이나 권위만을 앞세우기가 쉽습니다. 그리고, 기도도 해 보지 않고 불쑥 자신의 생각을 내세우는 것입니다. 우리는 이 점을 항상 경계해야 합니다.
이처럼, 하나님의 은혜 따라 살지 않고, 세상적인 욕심이나 체면을 앞세울 경우,
③하늘의 복을 누릴 수가 없습니다.
이 세상의 누구든지 하나님의 복을 마다할 사람은 없습니다. 불신자일이지라도 ‘하늘의 복을 가득히 받으십시오’하고 축원하면 아주 좋아합니다. 하물며, 하나님의 자녀인 우리가 그 은혜와 복을 멀리할 수 있겠습니까? 그런데, 문제는 그 복을 받을만한 준비가 되어 있느냐 하는 것입니다.
다윗은 웃사가 사고로 죽자, 법궤 모셔오는 일을 보류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법궤를 모시고 있는 오벧에돔의 집에 복을 내리셨다는 소식을 듣게 되었습니다. 이에, 다윗은 하나님께서 진노를 거두시고 은혜를 베풀기 시작한 징표로 보았습니다.
바울이『지금은 은혜 받을 만한 때요, 구원의 날이다(6:2)』라고 했지 않습니까? 그러기에, 그는 『하나님은 은혜와 사랑을 쏟아 부어서,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의 사람이 되게 하셨다(엡1:6))』고 했습니다.
그러나, 체면과 체통만을 생각한 나머지, 하나님의 뜻을 저버리면, 주께서 주시기로 약속하신 풍성한 은혜를 누리지 못합니다. 안타까운 일이지만, 그런 사람은 오히려 하나님의 진노가 더 가까이 임할 것입니다.
그러니, 우리가 어떻게 해야 하겠습니까? 두말 할 것 없습니다. 하나님을 우리 마음과 가정에 진심으로 모셔들여야 합니다. 그리고, 교회에 하나님을 정성스레 모셔들여야 합니다. 그리고, 참 기쁜 마음으로 찬송하며 춤추어야 합니다. 그러면, 오벧에돔과 다윗 집에 복 내리셨듯이, 오늘 우리에게도 많은 복을 베푸시리라 믿습니다.
어떻습니까? 여러분의 마음에 기쁨이 있습니까? 그렇다면, 성령이 임한 증거입니다. 혹시, 미갈이 그랬던 것처럼, 오늘의 말씀에서 은혜 받지 못하고 오히려 미운 마음이 더 가득하게 되신 분은 없겠지요?
2.우리 모두 주님을 모시고 기쁨과 은혜 안에서 살아갈 수 있기를 바랍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①하나님께서 날마다 베푸시는 은혜와 사랑을 아주 민감하게 받아들여야 합니다.
세상에서 들려오는 기분 나쁜 소리는 듣지 않아도 괜찮습니다. 그러나, 하나님 말씀에는 귀를 기울여야 합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자녀인 우리에게 쏟아 부으시는 그 사랑과 은혜를 가득히 받아들여야 합니다.
하나님은 이미 모든 준비를 완료하고, 우리가 기쁘게 받아들일 날만을 손꼽아 기다리고 있습니다. 독생자 예수를 희생시키고 구원하신 귀한 자녀들인데, 어찌 하나님께서 우리를 소홀히 하시겠습니까?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 된 사실을 확신하고 그의 품에 안기면, 하나님은 틀림없이 우리에게 많은 복을 베풀어주시리라 믿습니다.
그러니까, 하나님의 풍성한 복을 받는 비결은 다른 게 아닙니다.
②하나님을 모시고 그 뜻대로 살아가는 것입니다.
다윗이 그토록 모시기를 원했던 법궤란, 하나님의 말씀인 십계명 돌판이 들어있는 상자였습니다. 요컨대, 다윗은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기를 원했던 것입니다. 그래야, 하나님의 복이 임하리라는 것을 확신했기 때문입니다. 다윗은 몇 번의 실수가 있었지만, 그는 누가 전해주는 말씀이든지 하나님의 말씀이라면 무조건 순종했습니다.
우리도 다윗처럼 말씀에 순종해야 합니다. 자꾸 인간적인 생각으로 치우쳐 판단할 게 아니라, 좀 손해가 나고 욕을 먹더라도 말씀에 근거해서 모든 일을 행해야 합니다. 내 생각이나 감정은 철저히 배제하고, 어떤 경우라도 주의 뜻에 순종할 수 있는 저와 여러분이 될 수 있어야 합니다.
③그럴 때에, 우리는 온전히 주님의 백성이 되어 하나님께 감사하고 찬양하는 삶을 살 수 있게 될 것입니다.
하나님께 감사할 수 있으면, 그 인생은 복 받은 존재입니다. 어떤 형편에 있을지라도 감사할 수 있으면, 그는 하나님의 풍성한 은혜 안에서 살고 있는 것입니다. 아무리 넉넉하고 여유로운 형편에 있다 할지라도 불평과 원망하는 마음을 갖게 되면, 그는 불행한 사람입니다. 사탄의 저주 아래 있는 사람이라 할 수 있습니다.
아무쪼록, 오늘도 우리에게 베풀어주시는 하나님의 넉넉한 은혜와 쏟아 부으시는 그 사랑에 아주 민감하게 반응하셔서, 기쁘고 평화스러운 인생을 사시는 저와 여러분이 다 될 수 있기를 축원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