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령이 진리 가운데로 인도하리라
본문
성경 ; 행2;1-21, 롬8:22-27, 요15:26-27,
제목 ; 성령이 진리 가운데로 인도하리라
작성 방법 ; 한글97 ( A4, 2쪽)
작성자 ; 정 수 환 목사(j3038@kornet.net)
홈페이지 주소 ; http://godislove.net/j3038
연락 전화 ; 영춘교회 ( 0444-423-3038 )
참고 ; 공개자료실에서는 A4 용지 4쪽으로 된 자료를 받을 수가 있 습니다. 이 설교자료는, 성서일과와 교회력에 따라 작성된 것입니다.
여러분은 우리 인간의 죄 중에서 가장 큰 죄가 무엇인지 잘 아시리라 믿습니다. 그것은, 두말 할 필요도 없이, 하나님을 믿지 않는 것입니다. 창조주 하나님을 불신하고 그 뜻을 거역하면서 사는 것보다 더 큰 죄는 없습니다. 인류 최초의 죄가 바로 아담과 하와가 하나님을 불신하고 그 명령을 어김으로써 발생했다는 것은 대부분의 세상 사람들도 잘 알고 있는 사실입니다.
그러나, 아직도 많은 사람들이 이 사실을 부정하고 있습니다. 다시 말해서, 하나님의 존재와 그 거룩한 뜻을 외면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실상 그다지 중요하지 않은 죄만을 거론하면서 ‘나는 그런 죄와는 상관이 없노라’ 말하고 있습니다. 그것은, 마치 태양을 손바닥으로 가리려 하는 것처럼, 참으로 어리석고 미련한 짓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말씀하시기를 『성령이 오시면, 사람들이 이 세상 죄에 대해서 잘못 생각하고 있는 것을 깨닫게 해 주시리라(요16:8)』고 하셨던 것입니다. 그러면서, 주님은 『세상의 죄란 곧 나를 믿지 않는 것이다(요16:9)』라고 밝히셨습니다. 그러니까, 예수를 믿지 않는 것은, 그를 이 세상에 보내신 하나님의 존재를 불신하고 그 사랑을 믿지 않는 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
그러니, 이보다 더 큰 죄가 어디 있겠습니까? 우리나라 사람들이 조상 섬기는 일은 무척이나 중요하게 여기면서도, 정작 그 조상의 근원이라 할 수 있는 하나님을 부정하고 있는 사람들이 많으니, 참으로 알 수 없는 노릇입니다. 진정 우리가 복된 나라를 이루기 위해서는 조상을 위하기보다는 하나님을 더 잘 섬겨야 할 것입니다.
아무튼, 우리가 인생을 아름답고도 멋있게, 그리고 의미 있게 살기를 원한다면, 우리 인생을 지으신 하나님의 도우심이 절대적으로 필요합니다. 하나님을 떠나서는 결단코 사람답게 살 수 없으며, 또한 넉넉하고 여유로운 인생을 살 수 없습니다. 그것은, 모든 지혜가 하나님께 있고, 모든 능력이 하나님께로부터 나오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그런 하나님의 지혜와 능력과 도우심은 반드시 성령을 통해서 우리에게 전달되도록 되어 있다는 사실을 알아야 합니다. 그래서, 교회에서는 ‘성령을 받아야 한다’고 그토록 강조하고 있는 것입니다. 성령을 받아야, 우리가 믿는 예수님도 바로 알 수 있거니와, 진리 따라 살 수 있는 능력도 얻을 수가 있기 때문입니다.
성령을 보혜사(保惠師)라고도 합니다. 보혜사(파라클레테)를, 다른 번역본에서는 ‘돕는 자’, ‘보호자’ 그리고 ‘위로 자’라고도 번역하고 있습니다. 뿐만 아니라, `훈계한다', `권고한다', `격려한다', `도와 준다'는 뜻도 포함되어 있습니다. 필리핀 남부의 어느 부족은 이 단어를 ‘옆에 서서 계속 같이 가시는 분’으로 표현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이처럼 좋으신 성령을, 우리가 모셔 살지 못한다면 얼마나 억울한 일이겠습니까? 우리가 성령을 아예 알지 못했다면 몰라도, 이런 좋은 성령을 알게 된 이상, 우리는 성령을 충만히 받도록 해야 하겠습니다. 그래서, 그 성령의 도우심을 받아서 은혜와 사랑이 넘치는 인생을 살아야 할 것입니다.
1.하지만, 안타깝게도 우리는 성령의 도우심을 제대로 받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 이유가 어디에 있는 것일까요? 그것은 성령의 본질인 진리에 대해서 별 관심이 없기 때문입니다. 주께서 승천하시기 전에 제자들에게 말씀하시기를 『진리의 원천이신 성령을 너희에게 보내겠다(요15:26)』고 하셨습니다. 그리고,『진리의 성령이 오시면 너희를 모든 진리 가운데로 인도하시리라(요16:13)』고 말씀하셨습니다.
결국, 성령은 곧 진리입니다. 그래서, 성령은 오셔서 우리에게 진리를 가르쳐주시고, 그 진리대로 살 수 있도록 우리를 도와주시는 것입니다. 그런고로, 우리가 성령을 가까이 모시려면, 성령의 본질인 진리를 추구해야 합니다. 세상 즐거움이나 유익을 구하면서 ‘성령이여, 어서 오시옵소서!’하고 아무리 떠들어봤자 별 소용이 없습니다.
만일 방안 어느 물건에 불이 붙기 시작했다면, 제일 먼저 어떻게 하면 좋습니까? 이불이나 담요로 불이 난 곳을 덮어버려야 합니다. 그러면, 십중팔구 그 불을 끌 수 있습니다. 불이 계속 타오르려면 공기(산소)가 필요한데, 담요나 이불이 그 공기를 차단시키기 때문에 불을 끌 수 있는 것입니다.
우리에게 성령의 불이 붙지 못하도록 차단시키고 있는 것은 죄와 욕심입니다. 죄라고 하는 덮개가 우리를 온통 덮어씌우고 있어서, 우리로 하여금 진리가 되시는 예수를 제대로 바라보지 못하게 하고 성령의 불도 받지 못하게 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런고로, 우리는 그 죄의 덮개를 벗겨내야 합니다. 예수를 바로 보지 못하도록 방해하는 욕심의 덮개를 벗겨내야 하는 것입니다.
주의 제자들도, 처음에는 세상 욕심이 그들의 마음을 가리고 있어서, 주님을 바로 알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다가, 주께서 부활 승천하신 후에야, 그들은 예수를 바로 알게 되었습니다. 그야말로, 이제는 세상 욕심 때문에 예수 믿는 게 아니라, 진리에 사로잡혀 주님을 따르게 되었던 것입니다.
그 결과, 그들의 관심과 목적이 바뀌게 되었습니다. 그때까지는 세상에서 명예롭게 되거나 부자로 잘 사는 것을 인생 최고의 목적으로 삼고 살아왔으나, 그 후로는 하나님의 뜻에 따라 바르게 사는 것이 가장 값진 인생인 줄로 알고 살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여러 신도들과 함께 모이는 일에 힘썼습니다. 그리고, 함께 기도하고 찬송을 불렀습니다. 그런 일을 계속하고 있던 중, 성령의 불을 받게 된 것입니다. 그 날은 바로 주께서 부활하신 지 50일째가 되는 오순절 날이었습니다. 그들은 외국말로 말을 하기 시작했고, 그 결과 각 지역에서 온 유대인들은 자신의 출신 지역 말로 복음에 대해서 들을 수 있었습니다.
그렇다면, 오늘 우리는 어떻습니까? 초대교회 때 성도들처럼 성령 받을 만한 준비를 충실히 하고 있는 것입니까?
①예수에 대한 관심이 어느 정도입니까?
예수를 믿는다는 게 무엇이고, 주님은 이 세상에 어떤 목적으로 오셨으며, 왜 다시 이 세상에 오시겠다는 것인지? 여러분은 이런 문제에 대해서 어느 정도나 알고 있고, 또 얼마나 깊이 생각해보셨습니까?
승천을 앞두신 주께서 제자들에게 말씀하시기를, 『나는 지금 나를 보내신 분에게로 간다』고 하시면서 『그런데도, 내가 어떤 목적으로 가는지 관심을 가지는 사람이 없고, 그 이유를 묻는 사람도 없다(요16:5)』고 한탄하셨습니다.
여러분은 교회에 나오실 때에 ‘나는 무슨 목적으로 교회를 다니고 있는가?’하고 생각해보신 적이 있습니까? 그리고, 그 목적이 올바른 것인지 한 번 따져보셨습니까? 만일 그 목적이 잘못된 것이라 생각되신다면, 속히 바로잡도록 해야 합니다. 그래야, 성령을 받을 수 있게 되는 것이고, 또한 그의 도우심도 입을 수 있는 것입니다.
②그 믿는 목적이 잘못되어 있을 경우, 결코 성령의 도우심을 받을 수 없습니다.
바울 선생은 롬8:26에서 말하기를 『성령은 연약한 우리를 도와주신다』고 했습니다. 그리고, 성령은 우리를 위하여 하나님의 뜻에 따라 대신 간구해주신다고 했습니다(27). 뿐만 아니라, 성령은 우리에게 미래의 일도 알려주셔서, 진리 안에서 살 수 있도록 지도해주신다는 것입니다(요15:13).
그러나, 천국에 대한 소망을 갖고 진리 안에서 살려고 애쓰는 사람보다는, 이 세상에 더 깊은 애착을 갖고 사는 사람들이 많은 듯 싶습니다. 그렇게 살면, 결코 성령 체험을 할 수 없는 것입니다.
③그래서, 그런 사람들은 진실한 삶을 살 수 없거니와, 거짓된 영에 이끌려서 불행한 길로 빠져들 수밖에 없습니다.
진실하지 못한 삶은 미래가 없습니다. 그래서, 그 삶은 불안합니다. 육신적인 즐거움에 빠져보지만, 그 즐거움이 오래갈 리가 만무합니다. 술잔을 기울일 때의 그 즐거움의 시간은 잠깐이고, 그 후에 겪는 고통의 순간이 훨씬 더 길게 마련입니다. 그러니, 후회가 따르지 않을 수 없습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하겠습니까? 거짓된 영을 물리치고 성령을 모셔들여야 합니다. 우리를 진리와 생명의 길로 인도하면서, 연약할 때에 우리를 도우시는 성령을, 우리 마음속에 모시고 살아야 합니다.
유명한 설교가 무디 선생은 한 집회에서 물 잔을 청중들에게 보이면서 말했습니다. “내가 어떻게 해야 이 잔 속에 있는 공기를 없앨 수 있겠습니까?” 그러자, 한 사람이 “펌프로 공기를 빨아들이면 되지요”라고 답했습니다. 이 대답에 무디 선생은 “그렇다면 진공(眞空)을 이루어야 하고 잔을 부수게 되지 않겠습니까?”라고 반문했습니다.
많은 의견들이 제시된 후, 무디는 잔잔히 미소를 지으면서 옆에 있는 물주전자를 집어들고 그 잔에 물을 가득 채웠습니다. 그리고는, 그는 “자, 이제는 공기가 모두 제거되었습니다”라고 말했습니다.
물 잔에서 공기를 억지로 빼려고 하면, 그 잔은 깨어집니다. 마찬가지로, 우리의 영혼에서 죄를 강제로 추방시키고자 하거나, 우리 마음을 억지로 깨끗하게 하려고 하면 부작용이 있습니다. 즉, 구원의 기쁨보다는 죄의식에 빠지게 되는 것입니다. 고로, 우리의 삶과 마음 속에서 죄를 없애려면, 뭔가 다른 것이 우리를 채워주어야만 합니다.
그것은 과연 무엇이겠습니까? 그것은 바로 성령입니다. 성령이 우리들 마음속에 충만하게 될 때, 우리들 속에 있던 더러운 것들을 다 쫓아낼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2.우리는 성령으로 충만하게 되어야 합니다. 그래서, 주의 뜻을 이뤄가야 합니다.
어떤 책에서 보니 ‘그 주간 동안에, 당신이 담임 목사의 성령 충만을 위하여 기도하지 않았다면, 당신은 결코 설교를 비판할 자격이 없다’고 했습니다.
그렇습니다. 성령 충만해야 설교도 잘 할 수 있고, 사랑과 봉사의 생활도 열심히 할 수 있습니다. 또한, 복음을 전하거나 헌신하는 일도, 그 마음에 성령이 가득해야만 할 수 있습니다. 우리가 하나되는 일도 성령이 임해야 가능한 것입니다.
그런데, 이처럼 우리가 성령으로 충만하게 되어 주의 뜻을 이루기 위해서는
①우리가 믿는 예수에 대해서 항상 깊은 관심을 갖고 살아야 합니다.
다시 말해서, 우리가 무엇을 믿고 있는지, 그 진리에 대해서 좀 따져봐야 하는 것입니다. 그냥 무턱대고 교회만 나와서는 아무 소용이 없습니다. 교회 재정이나 목사의 설교만 따져서는 별 소득이 없습니다. 정말 중요한 것은, 우리가 믿는 예수가 어떤 분인지 바로 알도록 힘쓰는 일입니다.
베드로는 행2:21에서 ‘주의 이름을 부르는 자는 구원을 받을 것이다’라고 하는 요엘서의 말씀을 인용했습니다. 우리를 구원해주시는 그 주님에 대해서 바로 알려고 애쓸 때에, 성령이 오셔서 알게 해주실 것입니다. 주님이 요15:26에서『성령이 오셔서 나에 관하여 모든 것을 알려 주실 것이다』라고 말씀하셨기 때문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에 대해서 바로 알아야 예수를 바로 믿을 수 있습니다.
이와 같이, 예수를 바로 알려고 힘쓰면서 예수를 진실하게 믿을 때에,
②우리는 성령으로 충만하게 되어 진리 안에서 바른 인생을 살 수 있습니다.
어느 누구든지 바른 삶을 살고자 간절히 원하고 있으나, 그게 뜻대로 되지 않기 때문에 늘 고민합니다. 그러나, 성령으로 충만하게 되면, 그런 걱정을 하지 않아도 됩니다. 왜냐하면, 성령께서 바르게 살 수 있는 능력을 주시기 때문입니다. 성령은 연약한 우리를 도와주신다고 했습니다(롬8:26)
바른 삶의 표준은 예수님이십니다. 그래서, ‘주의 이름을 부르는 자는 구원을 받는다’고 하는 것입니다. 하지만, 하루아침에 구원을 다 이룰 수 없습니다. 교회에 나오자마자 예수님처럼 살 수 없습니다. 인내와 확신을 갖고 주의 뒤를 따르다보면 주님을 닮아가게 될 것입니다. ‘예수 아니면 죽는다’는 확신을 갖고, 예수를 바로 믿기 위하여 몸부림을 쳐야 합니다.
우리 모두, 성령의 도우심을 입어서, 예수를 바로 알고 바로 믿도록 합시다. 그래서, 진리로 승리할 수 있기를 축원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