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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국에서 큰 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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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국에서 큰 자 2006.10.15 정필도



천국에서 큰 자
마5:17~20
2006-10-15


17내가 율법이나 선지자나 폐하러 온 줄로 생각지 말라 폐하러 온 것이 아니요 완전케 하려 함이로다 18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천지가 없어지기 전에는 율법의 일점 일획이라도 반드시 없어지지 아니하고 다 이루리라 19그러므로 누구든지 이 계명 중에 지극히 작은 것 하나라도 버리고 또 그같이 사람을 가르치는 자는 천국에서 지극히 작다 일컬음을 받을 것이요 누구든지 이를 행하며 가르치는 자는 천국에서 크다 일컬음을 받으리라 20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 의가 서기관과 바리새인보다 더 낫지 못하면 결단코 천국에 들어가지 못하리라

다윗은 하나님의 율법을 사랑한 사람입니다. 다윗은 시편 19:7~11에서 『여호와의 율법은 완전하여 영혼을 소성케 하고 여호와의 증거는 확실하여 우둔한 자로 지혜롭게 하며 여호와의 교훈은 정직하여 마음을 기쁘게 하고 여호와의 계명은 순결하여 눈을 밝게 하도다 여호와를 경외하는 도는 정결하여 영원까지 이르고 여호와의 규례는 확실하여 다 의로우니 금 곧 많은 정금보다 더 사모할 것이며 꿀과 송이꿀보다 더 달도다 또 주의 종이 이로 경계를 받고 이를 지킴으로 상이 크니이다』라고 고백하고 있습니다.
이처럼 다윗이 율법을 사랑하게 된 것은 하나님께서 “우리의 행복을 위해서 율법을 주신 것”임을 확신하고 믿었기 때문입니다(신 10:13). 누구나 하나님이 주신 율법을 따라 살면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뿐만 아니라 하나님의 사랑과 축복을 받으며 행복하게 살게 될 것입니다. 그러나 어리석은 사람들은 율법대로 살지 않고 다른 방법으로 행복을 찾으려 하기 때문에 참만족이 없는 불행한 삶을 살게 되는 것입니다.
예수님 당시 많은 사람들이 예수님에 대한 오해가 많이 했습니다. 그 중의 하나는 예수님이 율법이나 선지자를 폐하러 온 것으로 잘못 알고 있었던 것입니다. 오늘 본문 17~18절을 보면 『내가 율법이나 선지자나 폐하러 온 줄로 생각지 말라 폐하러 온 것이 아니요 완전케 하려 함이로다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천지가 없어지기 전에는 율법의 일점 일획이라도 반드시 없어지지 아니하고 다 이루리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다시 말해서 율법은 일점일획이라도 없어지지 아니하고 다 이루어지며 그 율법을 완전케 하기 위해서 예수님이 이 세상에 오셨다는 것입니다.
마태복음 5:27~28을 보면 예수님께서 『간음치 말라 하였다는 것을 너희가 들었으나 나는 너희에게 이르노니 여자를 보고 음욕을 품는 자마다 마음에 이미 간음하였느니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는 『간음하지 말라』는 계명보다 차원이 더 높은 계명이라 할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간음하지 말라는 율법을 지키려면 마음으로라도 간음하지 말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사실 우리는 마음속으로 얼마나 많은 죄를 범하고 있습니까!
우리 주님은 율법을 폐하러 오신 것이 아니라 율법을 완전케 하기 위해 오셨습니다. 오늘 본문 19절을 보면 『누구든지 이 계명 중에 지극히 작은 것 하나라도 버리고 또 그같이 사람을 가르치는 자는 천국에서 지극히 작다 일컬음을 받을 것이요 누구든지 이를 행하며 가르치는 자는 천국에서 크다 일컬음을 받으리라』라고 했습니다. 우리가 율법을 똑바로 알고 바르게 잘 가르치는 것도 중요합니다만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은 그 자신이 먼저 율법대로 행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 당시 서기관과 바리새인들은 율법의 박사로서 항상 율법을 백성들에게 가르치면서도 율법대로 행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므로 예수님께서 이들을 향해 『너희 의가 서기관과 바리새인보다 더 낫지 못하면 결단코 천국에 들어가지 못하리라』라고 경고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계명이 아주 많은 것 같지만 한마디로 요약하면 『사랑하라』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서 “네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뜻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고 네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라”는 것입니다사랑은 율법의 완성이기 때문입니다(롬 13:10).
사랑은 주는 것이요 섬기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사람은 하나님께 드리기를 즐거워합니다. 이웃을 사랑하는 사람은 이웃을 섬기고 베풀기를 좋아합니다. 그러나 서기관과 바리새인들은 하나님을 사랑하는 마음이 없었으며 이웃을 사랑하지도 않았고 심지어 가난한 과부의 가산을 삼키는 강도들이었습니다(눅 12:40).
백성들에게 율법을 가르치면서도 정작 자신들은 율법을 지키지 않았기에 예수님으로부터 『주인의 뜻을 알고도 예비치 아니하고 그 뜻대로 행치 아니한 종은 많이 맞을 것이요 알지 못하고 맞을 일을 행한 종은 적게 맞으리라 무릇 많이 받은 자에게는 많이 찾을 것이요 많이 맡은 자에게는 많이 달라 할 것이니라』라는 책망을 들었습니다(눅 12:47~48).
오늘 본문 19절에서 『누구든지 이 계명 중에 지극히 작은 것 하나라도 버리고 또 그같이 사람을 가르치는 자는 천국에서 지극히 작다 일컬음을 받을 것이요 누구든지 이를 행하며 가르치는 자는 천국에서 크다 일컬음을 받으리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우리가 이 세상에 사는 동안 축복을 많이 받고 어디를 가든지 머리가 되고 존경 받는 위대한 사람이 되는 것도 귀하고 복된 일이나 이 세상에서의 영광보다 천국에서 더 큰 자가 되는 것이 더 귀하고 복된 일인 줄 믿습니다. 왜냐하면 이 세상의 영광은 잠시뿐이요 천국에서의 영광은 영원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믿음이 없는 사람들이나 내세를 믿지 않는 사람들은 죽으면 모든 것이 끝난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죽음 이후의 문제에 대해 별로 관심이 없습니다. 오직 이 세상에 사는 동안 어떻게 하면 잘 먹고 잘 살고 출세하고 성공할까 하는 생각으로 가득 차 있습니다.
예수님의 제자들도 이와 같았습니다. 한번은 제자들이 길을 가다가 심하게 다투었습니다. 예수님께서 이들이 서로 “누가 크냐?”로 다투는 것을 아시고 『열 두 제자를 불러서 이르시되 아무든지 첫째가 되고자 하면 뭇사람의 끝이 되며 뭇사람을 섬기는 자가 되어야 하리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눅 9:33~35). 그 당시 누가 큰 자인지 서로 다투었던 제자들도 오순절에 이르러 성령의 충만함을 받은 이후에는 섬기는 사람으로 변화된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천국에서 큰 자가 되는 비결은?
1. 지극히 작은 계명 하나라도 버리지 않고 행하며 가르치는 것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을 일점일획이라도 가감해서는 안됩니다. 요한계시록 22:18~19을 보면 『내가 이 책의 예언의 말씀을 듣는 각인에게 증거하노니 만일 누구든지 이것들 외에 더하면 하나님이 이 책에 기록된 재앙들을 그에게 더하실 터이요 만일 누구든지 이 책의 예언의 말씀에서 제하여 버리면 하나님이 이 책에 기록된 생명 나무와 및 거룩한 성에 참여함을 제하여 버리시리라』라고 말씀했습니다. 참으로 두렵고 떨리는 말씀입니다.
우리가 성경을 읽는 중에 이해가 안 되고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무시해서는 안됩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일점일획이라도 가감해서도 안되며 말씀대로 행하며 가르치는 것이 매우 중요합니다. 이는 행함 있는 믿음은 산 믿음이나 행함이 없는 믿음은 죽은 믿음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서기관과 바리새인들은 율법을 가르치면서도 행하지는 않았습니다. 마태복음 23:2~4을 보면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 모세의 자리에 앉았으니 그러므로 무엇이든지 저희의 말하는 바는 행하고 지키되 저희의 하는 행위는 본 받지 말라 저희는 말만 하고 행치 아니하며 또 무거운 짐을 묶어 사람의 어깨에 지우되 자기는 이것을 한 손가락으로도 움직이려 하지 아니하며』라고 말씀했습니다. 그리하여 이들은 예수님으로부터 호된 책망을 들었습니다.
마태복음 23:25~28을 보면 『화 있을찐저 외식하는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여 잔과 대접의 겉은 깨끗이 하되 그 안에는 탐욕과 방탕으로 가득하게 하는도다 소경된 바리새인아 너는 먼저 안을 깨끗이 하라 그리하면 겉도 깨끗하리라 화 있을진저 외식하는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여 회칠한 무덤 같으니 겉으로는 아름답게 보이나 그 안에는 죽은 사람의 뼈와 모든 더러운 것이 가득하도다 이와 같이 너희도 겉으로는 사람에게 옳게 보이되 안으로는 외식과 불법이 가득하도다』라고 하셨습니다. 과연 이들에게 임한 하나님의 심판이 얼마나 컸겠습니까.

2. 섬기는 자가 되어야 합니다.
마가복음 10:43~44을 보면 『너희 중에는 그렇지 아니하니 너희 중에 누구든지 크고자 하는 자는 너희를 섬기는 자가 되고 너희 중에 누구든지 으뜸이 되고자 하는 자는 모든 사람의 종이 되어야 하리라』라고 했습니다. 예수님께도 섬김을 받으려 이 세상에 오신 것이 아니라 도리어 섬기려 하고 자기 목숨을 많은 사람의 대속물로 주시기까지 하셨습니다. 그리고 십자가를 지시기에 앞서 손수 제자들의 발을 하나 하나 씻어주시며 섬김의 본을 보여주셨습니다.
스코틀랜드 가정의 표어 가운데 “봉사하기 위하여 구원받았다.”(Saved to serve)라는 말이 있습니다. 섬김을 모르는 삶은 구원의 감격이 없는 삶입니다. 우리가 구원을 받은 것은 섬기기 위해서이며, 만일 우리가 병에서 고침을 받고 또 물질적으로 어려웠다가 다시 일어났다면 이는 섬기기 위해서입니다. 섬김을 받으려는 사람은 만족이 없습니다. 기쁨이 없고 불평불만이 심하며 따라서 행복하지 못합니다. 그러나 섬기려는 사람은 항상 즐겁고 기쁨이 충만합니다. 우리 교회에서 가장 존경을 받아야 할 사람은 섬김의 자리에 있는 분들입니다.
전주대학교 이남식 총장은 40대의 젊은 나이에 총장이 되신 분으로 바쁜 일과 중에도 시간을 쪼개 매주 금요일 저녁이면 어김없이 교회 순장으로 돌아가 믿음의 지체들과 함께 하나님 말씀을 나누고 찬양하면서 한 주간의 삶을 간증하는 은혜로운 시간을 갖는다고 합니다. 뿐만 아니라 2년이 넘도록 매주일 교회 주차요원으로 봉사하며 섬김의 본이 되신 분입니다.
우리 교회도 차량 봉사하시는 분들의 수고가 얼마나 많은지 모릅니다. 밀려드는 차는 많고 공간은 적고, 때로는 지시대로 따르지 않는 사람들로부터 욕을 먹으면서도 묵묵히 봉사하시는 이분들이야말로 우리가 존경하고 대접해야 할 분들입니다. 사실 우리 교회는 구석구석에서 말없이 기쁨으로 봉사하며 섬기는 분들로 인해 많은 사람들이 매주일 쾌적하게 예배를 드리고 있습니다.
어느 목사님이 간증하기를, 예배실 바닥이나 계단, 복도 등에 껌 딱지가 시커멓게 붙어 있는 것을 보며 마음이 좋지 않았지만 어떻게 손을 써야 할지 난감했다고 합니다. 그러던 어느 날 이 목사님께서 그렇게 보기 흉하던 껌 딱지들을 예배실 바닥에서 찾아볼 수 없었습니다. ‘누군가가 정성껏 그것을 떼어버렸구나!’하는 생각을 하고 예배실을 나오다가 깜짝 놀랐습니다. 작은 면도칼을 주름진 손으로 잡고 정성스럽게 껌 딱지를 떼시는 할아버지의 모습을 발견한 것입니다. 그 순간 이 목사님의 눈에서 눈물이 핑 돌았습니다. “얼마나 힘드십니까? 제가 하겠습니다.”하고 면도칼을 달라며 그분의 주름진 손을 잡는 순간 이분은 도리어 “목사님, 제가 이 교회에서 할 수 있는 일이 있으니 얼마나 감사한 일입니까? 이 손이 아직도 주님을 위해 일할 수 있다는게 너무도 고마워서 하는 일인데 이 기쁨을 빼앗으시렵니까?”하고 그 일을 계속하셨다고 합니다.

한국에도 잘 알려진 하버드 대학의 헨리 나우웬 박사는 어려서부터 ‘신동’으로 불리웠습니다. 그는 항상 정상의 자리에 있었습니다. 더군다나 나우웬이 만든 20여 권의 저서는 모두 베스트 셀러가 되었으며 많은 사람들로부터 존경을 받았습니다. 어느 날 나우웬이 많은 보수와 명예를 보장하는 하버드대학의 교수직을 사임하고 정신지체아 보호시설에 직원으로 취업했습니다. 그가 주로 하는 일은 정신지체아들의 대소변을 받아내고 목욕시키는 일이었습니다. 사람들이 그에게 “대학자인 당신이 왜 제자들을 가르치지 않고 아무나 할 수 있는 이런 일을 합니까?”하고 물으면 그는 빙그레 웃으며 “나는 그 동안 ‘성공’과 ‘인기’라는 이름의 꼭대기를 향해 오르막길만 달려왔습니다. 한 장애인을 만난 후 내리막길을 통해 예수 그리스도를 만날 수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습니다. 오르막길에서는 ‘나’만 보일 뿐입니다.”라고 말했습니다. 은혜받은 사람이 아니면 도무지 할 수 없는 진실한 고백입니다.
우리나라의 유명한 목사님 중에 모 신학 대학장을 지낸 목사님이 마산 결핵 요양소에서 진찰을 받은 결과, 앞으로 석달밖에 살지 못할 것이라는 충격적인 말을 의사로부터 들었습니다. 하지만 그는 마음을 단단히 먹고 “의사가 석 달만 산다고 했지 하나님이 그렇게 말씀한 것은 아니지 않는가? 하나님! 석 달을 살더라도 죽을 때까지 목사로서, 신앙인으로서 할 일을 다 하겠습니다.”라고 기도했습니다. 그후 의사로부터 절대로 안정을 취하지 않으면 안된다는 주의 경고에도 불구하고 이 목사님은 다른 환자의 대소변을 받아주고, 그들을 위로하고, 죽은 환자의 장례도 치러주며, 설교도 하고 찬송도 부르며 예배도 드렸습니다. 그후 이 목사님은 삼 년이 아닌 삼십 년을 더 살았다고 합니다.
우리의 죽고사는 것이 전적으로 하나님의 손에 달려 있습니다. 우리도 천국에 가는 날까지 섬김의 삶을 살아야 하겠습니다.

3. 어린 아이같이 자기를 낮추는 사람입니다.
마태복음 18:3~4을 보면 예수님께서 『가라사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가 돌이켜 어린 아이들과 같이 되지 아니하면 결단코 천국에 들어가지 못하리라 그러므로 누구든지 이 어린아이와 같이 자기를 낮추는 그이가 천국에서 큰 자니라』라고 하셨습니다. 자기를 낮추는 사람은 겸손한 사람입니다. 겸손한 사람은 하나님이 기뻐하시고 은혜를 주십니다. 하나님이 함께 하시고 높여주십니다. 사실 겸손한 마음이 없이는 남을 섬길 수 없습니다.
우리 교회 안에는 은혜 받은 성도들이 많이 있습니다. 은혜 받은 성도들의 특징은 변화입니다. 예전에는 성격이 무척 사납던 사람도 어린아이와 같이 온순하고 착하고 겸손하게 변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그리고 순수하고 진실합니다. 매사에 단순합니다. 복잡하지 않습니다. 그대로 믿고 행합니다. 기쁨으로 순종하고 섬깁니다. 우리 교회가 나날이 부흥 발전하는 비결도 여기에 있습니다. 매주 수만 명의 사람이 모이면서도 교회가 은혜롭고 늘 평안한 이유는 은혜 받은 성도들이 많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이 세상에서 너무 높아지려고 하지 말고 천국에서 큰 자들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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