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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서해야 할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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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서해야 할 이유 2007.01.14 정필도


예수님께서는 갈보리산 위에서 십자가에 못 박히는 극심한 고초를 당하시면서도 하늘을 우러러 보시며 ‘아버지여! 저들을 사하여 주옵소서. 저들이 하는 일을 알지 못하나이다’라고 기도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자신을 십자가에 못 박은 원수들을 용서하셨을 뿐만 아니라 그들의 죄를 사하여 달라고 하나님께 기도하신 것입니다. 예수님의 이 기도를 통해 인류의 모든 죄가 사함을 받게 되는 하나님의 놀라운 은혜가 임하는 순간이었습니다.
예수님은 죄로 말미암아 멸망할 수밖에 없는 인간들의 모든 죄를 대속하기 위해 이 세상에 오셨습니다. 그리고 우리를 대신하여 십자가에 못 박혀 죽기까지 하셨습니다. 예수님이 십자가에 못 박히시는 순간 우리의 모든 죄가 용서받게 되었습니다. 그러므로 이제부터는 하나님의 용서를 받아들이기만 하면 누구든지 용서받게 되는 것입니다. 이러한 사실이 얼마나 중요한지 모릅니다. 그러나 예수님이 우리의 죄를 짊어지시고 대신 십자가에 못 박히심으로 하나님의 용서를 받게 되었다 할지라도 용서받으려는 자발적인 마음이 없는 사람은 예수님과 상관없이 자기의 죄를 스스로 짊어지고 멸망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무엇보다도 용서받기를 원하는 마음을 가져야 하는 것입니다. 누구든지 죄와 허물을 용서해 달라고 하나님께 간구하기만 하면 하나님은 언제든지 용서해 주실 줄 믿습니다.
예수님 우편에 있던 강도는 자신의 죄로 사형을 당하는 처지였지만, 예수님이 메시야라는 사실을 깨닫고 ‘나를 기억해주옵소서’라고 염치 불구하고 부탁했을 때 예수님으로부터 ‘너는 오늘 나와 함께 낙원에 있으리라’는 소망의 말씀을 들었습니다. 주님이 이 말씀을 하시는 순간은 그가 평생 범한 모든 죄가 사함을 받는 순간이며 구원받는 순간이었습니다.
요한복음 6:37을 보면 『아버지께서 내게 주시는 자는 다 내게로 올 것이요 내게 오는 자는 내가 결코 내어 쫓지 아니하리라』라고 했고, 로마서 10:13에서도 『누구든지 주의 이름을 부르는 자는 구원을 얻으리라』라고 했습니다.
오늘날도 이 강도보다 더 악독한 인간이라 할지라도 누구든지 예수님께 나아와 용서를 구하기만 하면 죄사함을 받을 수 있습니다. 어떤 과거를 가지고 있든지, 죄가 얼마나 많든지 적든지 상관없이 회개하기만 하면 용서받지 못할 죄인이 하나도 없다는 사실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그런데 이렇게 하나님의 크신 은혜로 모든 죄와 허물을 용서받은 우리는 우리에게 죄를 범한 모든 사람을 용서해야 하는 의무가 있습니다. 왜냐하면 예수님께서 다른 사람의 죄를 용서하라고 우리에게 말씀하셨기 때문입니다.
오늘 본문을 보면 베드로가 ‘형제가 죄를 범하면 몇 번이나 용서해주어야 하느냐?’고 예수님께 묻습니다. 그리고 “일곱 번까지 할까요?”라고 말합니다. 이때 예수님께서 일흔 번씩 일곱 번이라도 용서하라고 말씀하십니다. 이 말씀은 몇 번이든지 끝없이 용서하라는 것이며, 항상 용서하며 살라는 뜻입니다.
예수님께서 우리로 하여금 용서하며 살라고 말씀하시는 이유는?
1. 우리가 용서해야 우리 자신도 용서를 받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오늘 본문에서 예수님은 비유를 통해 용서에 대해 말씀하셨습니다. 이 비유에 일만 달란트의 빚을 진 사람이 등장합니다. 일만 달란트는 우리 돈으로 환산하면 100억 원 정도 되는 매우 큰 돈입니다. 주인이 이 사람에게 네 몸과 처와 자식들과 모든 소유를 다 팔아 빚을 갚으라고 명했습니다. 그러자 그는 엎드리어 절하며 ‘내게 참으소서 다 갚으리라’고 애원합니다. 이에 주인이 그를 불쌍히 여겨 모든 빚을 탕감해주었습니다. 한 순간 엄청난 빚을 몽땅 탕감 받은 이 사람은 날아갈듯이 기뻐 뛰며 즐거워했을 것입니다. 그때 마침 길을 가다가 그는 자신에게 백 데나리온을 빌려갔던 직장 동료를 만났습니다. 백 데나리온은 우리 돈으로 환산하면 약 2만원 정도 되는 적은 돈입니다. 그런데도 그는 당장 돈을 갚으라고 상대방을 윽박질렀습니다. 동료는 조금만 참아달라고 곧 갚겠다고 애원했으나 인정사정없이 그 친구를 감옥에 가두었습니다. 그 모습을 본 다른 동료들이 고약한 이 사람의 몰인정한 모습을 주인에게 일러주었습니다.
마태복음 18:32~35을 보면 『이에 주인이 저를 불러다가 말하되 악한 종아 네가 빌기에 내가 네 빚을 전부 탕감하여 주었거늘 내가 너를 불쌍히 여김과 같이 너도 네 동관을 불쌍히 여김이 마땅치 아니하냐 하고 주인이 노하여 그 빚을 다 갚도록 저를 옥졸들에게 붙이니라 너희가 각각 중심으로 형제를 용서하지 아니하면 내 천부께서도 너희에게 이와 같이 하시리라』라고 말씀했습니다. 여기에서 우리는 35절의 말씀을 통해 ‘우리도 중심으로 형제를 용서하지 않으면 우리 자신도 하나님으로부터 용서를 받지 못한다.’는 중요한 교훈을 얻습니다.
에베소서 4:31~32을 보면 『너희는 모든 악독과 노함과 분냄과 떠드는 것과 훼방하는 것을 모든 악의와 함께 버리고 서로 인자하게 하며 불쌍히 여기며 서로 용서하기를 하나님이 그리스도 안에서 너희를 용서하심과 같이 하라』라고 말씀했습니다. 또 갈라디아서 6:7을 보면 『스스로 속이지 말라 하나님은 만홀히 여김을 받지 아니하시나니 사람이 무엇으로 심든지 그대로 거두리라』라고 했습니다. 우리가 남을 용서해야 우리도 용서를 받게 된다는 성경의 이 원리를 잘 기억하고 살아야 할 것입니다. 우리가 진심으로 모든 죄를 용서받기를 원한다면 우리도 진심으로 다른 사람을 용서해야 하는 것입니다.

2. 우리의 행복을 위해서입니다.
우리가 살다보면 도저히 용서할 수 없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아주 고약한 인간을 만날 때가 있습니다. 어떤 여인이 계속되는 남편의 학대를 견디다 못해 이혼하기에 이르렀습니다. 그녀는 전 남편을 생각하면 도저히 용서할 수 없는 인간이라며 치를 떨었습니다. 그러나 문제는 이렇게 남을 용서하지 못하고 살면 곧 자신도 불행하게 된다는 사실입니다. 다시 말해서 용서하지 못하는 성품이 자기 자신을 불행하게 만드는 것입니다. 사실 원한에 사무쳐 증오심에 불타는 사람의 마음은 지옥이 되고, 그 얼굴 인상도 좋지 않게 되며 자연히 대인 관계까지 좋지 못한 영향을 미치게 됩니다.
이 세상에 실패자가 되는 이유가 두 가지 있다고 합니다. 첫 번째는 자신의 부족과 실수에서 비롯되고 두 번째는 대인관계가 좋지 않아서라고 합니다. 그런데 문제는 대인관계에서 오는 실패가 85%를 차지한다고 합니다. 그러므로 대인관계가 얼마나 중요한지 모릅니다. 남을 용서하지 못하는 사람은 그 사람을 미워하는 마음을 가지게 되고 결국 미워하는 마음속에 악한 영이 들어와 거하는 은신처가 됩니다.
사울왕은 백성들이 왕인 자신보다 다윗을 더 높이자 마음에 분노를 품게 되었습니다. 이때부터 충신이며 사위인 다윗을 시기 질투하여 미워하게 되었고 자연히 그의 마음에 악신이 들어와 자리를 잡고 괴롭히기 시작했습니다. 결국 사울은 어두움에 갇히는 비참한 신세가 되었습니다.
요한일서 2:9~11을 보면 『빛 가운데 있다 하며 그 형제를 미워하는 자는 지금까지 어두운 가운데 있는 자요 그의 형제를 사랑하는 자는 빛 가운데 거하여 자기 속에 거리낌이 없으나 그의 형제를 미워하는 자는 어두운 가운데 있고 또 어두운 가운데 행하며 갈 곳을 알지 못하나니 이는 어두움이 그의 눈을 멀게 하였음이니라』라고 했습니다.
미워하는 마음을 갖게 되면 어두움에 갇히게 되어 앞이 보이지 않는 영적 소경이 됩니다. 가인은 자신의 아우 아벨을 미워하는 마음을 갖게 되자 어두움에 갇혀 영적 분별력이 없어졌으며 결국 아우를 죽였습니다. 이로 인해 가인은 인류 역사상 최초의 살인자가 되었습니다.
제 2차 세계대전 때, 독일의 히틀러는 유대인 600만 명을 가스실에 몰아넣고 죽였습니다. 그 당시 수용소에 갇혀 있다가 극적으로 살아남은 두 사람에게 이런 질문을 했습니다. ‘당신들은 나치스를 용서할 수 있습니까?’라고 물었을 때 ‘어떻게 그 악몽을 잊을 수 있겠는가. 우리는 꿈에도 용서할 수 없다.’라고 말했습니다. 그러자 질문자는 ‘그렇다면 당신들의 육신은 자유를 얻었는지 몰라도 당신들의 마음은 아직도 그 수용소 안에 있는 것이요. 그 지옥에서 살고 있는 것이나 다름없소.’라고 말했다고 합니다. 우리도 남을 용서하지 않으면 어둠의 감옥에 갇혀 있게 된다는 사실을 명심하시기 바랍니다.
어느 개척교회 사모가 못된 집사의 이간질로 죽고 싶을 정도로 많은 괴로움을 당할 때, 하나님 앞에 억울함을 호소하며 간절히 기도하기 시작했습니다. 어느 날 주님께서 ‘내가 왜 원수를 용서하라고 했는지 아느냐? 그것은 내가 네 원수를 사랑해서가 아니라 너를 사랑하기 때문이다. 네가 원수를 용서하지 않으면 네 마음이 지옥과 같이 되기 때문이란다.’라고 말씀하셨다고 합니다. 우리가 참으로 마음 천국을 누리며 행복하게 살기를 원한다면 무조건 용서해야 합니다. 그 사람이 용서를 빌든지 말든지 괴롭힘을 계속 당한다 해도 나 자신의 행복을 위해 무조건 용서해야 하는 것입니다. 그리할 때 마귀는 쫓겨나게 되고 대신 빛되신 하나님이 그 마음에 들어와 계심으로 해서 마음 천국이 이루어지게 되는 것입니다.
성경을 보면, 원수를 용서한 사람은 모두 축복을 받았습니다. 요셉은 자신을 애굽의 노예로 판 형님들을 용서하고 도리어 그들을 위로했습니다. 결국 하나님이 그를 범사에 형통케 하시고 축복하셔서 애굽의 총리에 오르게 하셨습니다. 다윗도 자신을 미워하고 죽이려한 사울왕을 끝까지 용서하고 사랑을 베풀 때 하나님께서 그를 기뻐하시며 ‘내 마음에 합한 자라’고 말씀하시고 그를 축복하시고 높여주셨습니다.
2003년 10월 19일 저녁 고정원이라는 분이 직장에서 퇴근하여 집에 돌아와 보니 집안에 아무런 인기척이 없었습니다. 갑자기 불길한 생각이 든 그는 서둘러 집안을 둘러보니 아내와 어머니와 4대 독자인 아들이 칼에 맞아 비참하게 죽어 있었습니다. ‘누가 이 짓을 했을까 내가 가만히 두나 봐라.’ 원수갚을 생각으로 잠도 못 자고 마치 혼이 나간 사람처럼 미친듯이 거리를 방황하기 시작했습니다. 어느 날 예수 믿는 사람으로부터 전도를 받고 교회에 나갔습니다. 그리고 은혜를 받았습니다. 주님이 그에게 찾아오셨습니다. 십자가를 지신 예수님이 그의 마음속에 들어오는 순간 분노와 증오와 저주가 사라졌습니다. 대신 사랑과 평온함이 그의 마음을 지배하는 놀라운 변화가 생겼습니다.
그가 세례를 받은 지 보름이 되는 날 범인이 붙잡혔습니다. 범인은 사람을 23명이나 죽여 세상을 떠들썩하게 했던 희대의 살인마 유형철이었습니다. 그러나 이미 그의 마음속에는 원수에 대한 증오심이 사라진 후였습니다. 그는 그 범인을 불쌍히 여기고 사랑하는 마음까지 생겼습니다. 그를 전도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유형철이 낳은 두 남매를 돌보기로 결정했습니다. 이처럼 원수의 자식을 사랑으로 돌볼 생각을 할 수 있었던 것도 진실로 주님을 만난 사람이 아니면 도무지 할 수 없는 일입니다. 이 마음이 바로 주님의 마음입니다.
우리가 행복하게 살려면 용서하는 마음을 가져야 합니다. 여러분 중에는 기도를 많이 해도 응답이 되지 않아 늘 속상해 하는 분이 계실 것입니다. 혹시 여러분 마음속에 ‘다 용서해도 그 인간만은 도저히 용서할 수 없다.’라는 생각을 가지고 있지는 않습니까? 그러나 우리가 용서하지 못함으로 자신도 용서받지 못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아야 합니다. 하나님과 그 사람 사이에 막힌 담으로 인해 많이 기도함에도 불구하고 축복이 임하지 않는 것입니다. 용서하지 않음으로 기도 응답도 받지 못하고 스스로 불행한 삶을 살게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 이 시간 용서해보세요. 예수님의 이름으로 용서하노라 선포해보세요. 하나님이 얼마나 기뻐하시는지 모릅니다. 여러분의 삶에 행복이 오고 기도 응답의 축복이 임할 줄 믿습니다.
우리가 용서할 때 기적이 일어납니다.
스위스의 유명한 정신과 의사인 폴 투르니에의 진료 사례집을 보면, 신앙과 질병과의 관계와 병과 사람의 생각과의 관계에 대한 여러 가지 치료사례가 나열되어 있습니다. 한번은 불치의 빈혈증에 걸린 한 소녀가 날마다 치료를 받으러 왔습니다. 그러나 어떤 정신 요법이나 약물요법으로도 잘 낫지를 않았습니다. 마침내 산중 요양소로 그녀를 보내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얼마 후 요양소에서 다시 진료했을 때, 혈액검사 결과 아무런 이상이 없었고 빈혈증도 아니며 어떤 불치의 병도 아닌 모든 것이 정상으로 나왔습니다. 이제 그녀가 완치된 것입니다. 그래서 그 소녀에게 지난 번 자신에게 진단을 받았을 때와 요양소에서 진단 받을 때까지의 생활 중에 무슨 변동이 없었느냐고 물었습니다. 그녀는 평생 지독하게 미워했던 어떤 사람을 갑자기 용서하게 되었다고 고백했습니다. 그 결과 마음이 환해지고 삶에 대한 생각도 매우 긍정적이 되었으며 적극적인 신앙도 갖게 되었고 점점 몸의 병도 나아졌다는 것입니다.
대체로 마음이 착한 사람들은 억울한 일을 당하거나 손해를 봐도 보복할 생각을 하거나 원망하지 않고 잘 참고 견딥니다. 그러나 이것으로 다 된 것이 아닙니다. 천성이 착하기 때문에 묵묵히 참고 지내는 것일 뿐 만일 상대방을 볼 때마다 ‘저 나쁜 인간, 저주받을 인간’으로 판단하고 미워하며 산다면 이것이 더 큰 문제입니다. 우리가 마음으로부터 그 사람을 용서하지 않는다면 하나님께서도 기뻐하시지 않습니다.
우리 성도들이 교회를 핍박하고 괴롭히는 사람들을 미워하고 저주한다면 이는 그들을 아직 용서하지 않고 있는 증거입니다. 이럴 때 우리는 예수님과 같은 기도가 필요합니다. “아버지, 저들을 용서해주세요. 저들이 예수님을 몰라서 어리석어서 그렇습니다. 저들의 죄를 용서해주세요. 예수 믿고 구원받게 해주세요. 저들을 축복해주세요”라고 기도하시기 바랍니다.
용서가 없는 곳에는 비극이 떠나지 않습니다. 부부지간에도 형제지간에도 이 세상 어디든 마찬가지입니다. 오늘날 테러범들이 이 세상을 불안하게 만드는 것은 자신들의 억울함을 알리기 위해 몇 배로 보복하겠다며 무차별적으로 폭탄 테러를 자행하기 때문입니다. 용서가 없는 세상은 지옥과 다름 없습니다. 여러분! 용서함으로 마음의 천국을 이루시고 행복한 삶을 살아가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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