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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득불 할 일 2006.11.26 정필도


부득불 할 일
2006-11-26
고후9:16~18

16내가 복음을 전할지라도 자랑할 것이 없음은 내가 부득불 할 일임이라 만일 복음을 전하지 아니하면 내게 화가 있을 것임이로라 17내가 내 임의로 이것을 행하면 상을 얻으려니와 임의로 아니한다 할지라도 나는 직분을 맡았노라 18그런즉 내 상이 무엇이냐 내가 복음을 전할 때에 값없이 전하고 복음으로 인하여 내게 있는 권을 다 쓰지 아니하는 이것이로라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님께서 육신을 입고 이 세상에 오셔서 복음을 전하신 것은 30세로부터 불과 3년 동안이었습니다. 공생애를 시작하시면서부터 십자가에 못박혀 죽으시고 사흘만에 부활 승천하시기까지 많은 말씀을 해주셨습니다.
그 중에서도 가장 중요한 말씀은 두 가지입니다. “서로 사랑하라”는 것과 “복음을 만민에게 전파하라”는 것입니다. 특히 온 천하에 다니며 복음을 전파하라는 말씀은 주님께서 승천하시기 전에 마지막으로 주신 말씀입니다. 이 말씀은 선택사항이 아니라 필수과제입니다. 그러므로 해도 되고 안해도 되는 것이 아닙니다. 반드시 우리가 순종해야 하는 지상명령인 것입니다. 오늘 본문 16절에서 사도 바울은 『내가 복음을 전할지라도 자랑할 것이 없음은 내가 부득불 할 일임이라 만일 복음을 전하지 아니하면 내게 화가 있을 것임이로라』라고 말씀했습니다. 이처럼 복음을 전하는 일이 부득불 할 일이라는 것입니다. 따라서 우리는 하기 싫어도 억지로라도 해야 할 일입니다.

왜 복음을 전해야 하는가?
1. 주님의 지상명령이기 때문입니다.
2. 만일 복음을 전하지 아니하면 우리에게 화가 있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에스겔 3:18~19을 보면 『가령 내가 악인에게 말하기를 너는 꼭 죽으리라 할 때에 네가 깨우치지 아니하거나 말로 악인에게 일러서 그 악한 길을 떠나 생명을 구원케 하지 아니하면 그 악인은 그 죄악 중에서 죽으려니와 내가 그 피값을 네 손에서 찾을 것이고 네가 악인을 깨우치되 그가 그 악한 마음과 악한 행위에서 돌이키지 아니하면 그는 그 죄악 중에서 죽으려니와 너는 네 생명을 보존하리라』라고 했습니다.
다시 말해서 멸망할 수밖에 없는 사람에게 우리가 복음을 전하지 않거나 깨우치지 않아서 그가 멸망했다면 그 피값을 우리에게서 찾으시겠다는 것입니다. 참으로 두렵고 떨리는 말씀이 아닐 수 없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복음을 전하고 깨우치고 애를 썼는데도 불구하고 그 사람이 너무 악하여 회개하고 돌아오지 않아서 멸망했다면 우리의 할 바를 다했기에 상관이 없습니다.
사도 바울도 때로는 너무 피곤하고 지쳐서 쉬고 싶을 때도 있었을 것입니다. 아무리 위대한 사도라해도 육신을 입었기에 헐벗고 매 맞고 굶주리며 너무 힘들 때는 하루 속히 천국에 가기를 원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사도들은 주님이 맡기신 일이기에 핍박을 받으면서도 무조건 순종했습니다. 그들은 순교를 각오하고 담대히 복음을 전했던 것입니다. 실제로 그들은 복음을 전하다가 대부분 순교했습니다. 그 당시 전도자로 그리스도의 증인이 된다는 것은 곧 순교자가 되는 것을 의미합니다.
소련의 스탈린 통치시절, 보리스 콘펠드라는 젊은 유대인 의사가 시베리아 강제수용소로 끌려갔습니다. 그 수용소에서 신실한 그리스도인을 만나 그의 열정적인 전도와 사랑의 보살핌으로 인해 그리스도인이 되었습니다.
이 의사는 예수님을 영접한 후 영혼의 자유와 평안을 얻고 두 가지를 결심했습니다. 자신에게 놀라운 하나님의 사랑을 가르쳐 준 그 그리스도인처럼 이웃을 사랑하며 살겠다는 것과 복음을 열심히 전하며 살겠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는 시베리아 수용소에서 다시 의사로서 일하게 되었을 때, 한 젊은이가 병으로 사경을 헤매고 있음을 알고 안타깝게 여겨 몰래 불법수술을 해주었습니다. 그러나 이런 사실이 들통나는 바람에 그는 수용소 법을 어겼다는 이유로 사형에 처해지게 되었습니다. 사형 전날 이 의사는 수술해 준 젊은이 곁에 앉아서 밤 늦도록 하나님의 사랑과 예수 그리스도의 구원을 진지하게 전했습니다. 이튿날 아침, 의사는 처형 직전에 마지막으로 이런 질문을 받았습니다. “당신은 당신이 선택한 것에 후회가 없습니까?” 이때 그는 “그리스도 안에서는 결코 후회함이 없습니다”라는 유명한 대답을 남겼습니다. 그는 한 영혼을 사랑하여 복음을 전했고, 예수 그리스도의 영광스런 약속을 보여주었습니다. 그때 이 의사로 인해 살아난 젊은이가 바로 노벨 문학상 수상작가인 알렉산더 솔제니친입니다.
그동안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복음을 증거하다가 순교했는지 모릅니다. 그러나 지금의 우리의 여건은 참으로 전도하기 좋은 때요, 마음놓고 전도할 수 있는 좋은 세상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전도에 부담을 갖는 사람이 너무나 많습니다. 왜 그렇습니까? 믿음이 부족하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의 제자들도 처음에는 그러했습니다. 그러므로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사도와 같이 모이사 저희에게 분부하여 가라사대 예루살렘을 떠나지 말고 내게 들은 바 아버지의 약속하신 것을 기다리라 요한은 물로 세례를 베풀었으나 너희는 몇 날이 못되어 성령으로 세례를 받으리라 하셨느니라 저희가 모였을 때에 예수께 묻자와 가로되 주께서 이스라엘 나라를 회복하심이 이때니이까 하니 가라사대 때와 기한은 아버지께서 자기의 권한에 두셨으니 너희의 알 바 아니요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 하시니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행 1:4~8).
이 말씀에 순종하여 전혀 기도에 힘쓰며 성령이 임하시기를 기다리던 사람들은 모두 다 성령의 충만함을 받고 담대히 나아가 복음을 전하기 시작했습니다. 이들은 예수님의 부활과 구주 되심을 증거했습니다. 누구든지 예수님을 믿으면 구원을 얻는다는 복음을 전했습니다. 그리하여 이들이 가는 곳곳마다 큰 소동이 일어났습니다.
사도행전 3장에서 베드로 사도가 “너희가 십자가에 못박아 죽인 예수를 하나님이 살리셨느니라 이 예수를 믿으라 그리하면 너희가 죄사함을 받고 구원을 얻으리라”고 설교했을 때 저들이 이 말을 듣고 마음에 찔려 “형제들아 우리가 어찌할꼬” 가슴을 치며 회개하고 돌아왔습니다. 이때 베드로가 “너희가 회개하여 각각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고 죄사함을 얻으라 그리하면 성령을 선물로 받으리라”고 선포했습니다. 이때 세례를 받은 사람의 수가 남자만 3천 명이나 되었다고 성경은 말씀하고 있습니다. 실제로 여자와 아이들의 수까지 세었다면 아마 몇 배는 되었을 것입니다. 이렇게 엄청난 수의 사람들이 예수님을 믿고 돌아오게 되었습니다. 이는 모두 성령의 능력으로 된 것입니다.
사도행전 9:31을 보면 『그리하여 온 유대와 갈릴리와 사마리아 교회가 평안하여 든든히 서 가고 주를 경외함과 성령의 위로로 진행하여 수가 더 많아지니라』라고 했습니다. 사도들이 핍박을 받으면서도 담대히 복음을 전하여 예루살렘과 유다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복음이 전파되기 시작한 것입니다.
이번에 우리 교회가 부흥회를 갖는 것은 바로 성령의 충만한 은혜를 받기 위해서입니다. 성령의 충만한 은혜를 받으면 누구나 믿음이 충만하게 됩니다. 따라서 하나님을 뜨겁게 사랑하게 되고, 하나님을 기쁘시게 해 드리고 싶으며, 하나님을 위한 소원을 가지게 됩니다. 뿐만 아니라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일은 곧 복음을 전하여 이 땅에 주의 나라를 세우는 것임을 깨닫고 열심히 전도하게 되는 것입니다.
어떤 사람이 기독교인의 3대 기적을 이렇게 지적했습니다.
1. 예수 믿는다고 하면서 성경을 안 보는 것이 기적이다.
2. 예수님을 사랑한다고 하면서 전도하지 않는 것이 기적이다.
3. 성경을 보지 않고 전도도 하지 않으면서 예수님을 잘 믿는다고 생각하는 것이 기적이다.
우리의 약점을 지적하는 말이 아닐 수 없습니다. 누구나 성령 충만을 받지 않으면 이렇게 살 수밖에 없습니다.
히틀러 정권에 항거하다가 8년 동안 옥고를 치른 마르틴 미네르 목사는 ‘전쟁백서’에서 다음과 같이 간증했습니다. 전쟁이 끝날 무렵, 미네르 목사는 일곱 번이나 똑같은 꿈을 꾸었다고 합니다. 많은 사람이 한 줄로 서서 하나님의 심판을 받는데, 심판대에 선 사람들은 한 사람도 뒤를 돌아보지 못하고 자신만 바라보면서 자신의 죄를 하나님께 고백하고 용서를 비는 것이었습니다.
미네르 목사도 그 대열에 서 있을 때 어떤 한 사람이 죄를 고백하기는커녕 뒤를 돌아보면서 계속 변명만 늘어놓았습니다. 그가 누군가 궁금하여 자세히 바라보니 다름아닌 독재자 히틀러였습니다. 그때 하나님께서 미네르 목사에게 “히틀러가 이렇게 된 것은 바로 너의 책임이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 말을 들은 미네르 목사는 소스라치게 놀랐습니다. 그리고 이어서 “너는 8년 동안 히틀러 정권에 항거는 했지만 그에게 한번이라도 전도한 적이 있느냐? 네가 히틀러에게 전도했더라면 그가 이렇게 무서운 폭군이 되어 전쟁을 일으키고 무고한 생명을 빼앗아 갔겠느냐? 전쟁을 일으킨 죄 값은 너에게도 있다.”라고 하나님께서 호되게 책망하셨습니다. 그후 미네르 목사는 “이 전쟁의 책임이 제게 있습니다.”라고 고백하며 회개의 눈물로 ‘전쟁백서’를 썼던 것입니다.
저도 이 글을 읽으면서, 오늘날 지도자 한 사람이 잘못됨으로 해서 온 나라 온 민족이 고통을 당하게 되는 것을 보며 지도자를 욕하고 원망하는 사람이 많지만 사실 그들에게 전도하지 아니한 저에게도 큰 책임이 있다는 것을 깨닫고 눈물을 흘리지 아니할 수 없었습니다.
어떤 사람은 전도할 줄을 몰라서 전도를 하지 못하겠다고 하는 분도 있습니다. 그러나 이번에는 혼자가 아닌 그룹을 지어서 함께 전도하기 때문에 누구나 나와서 동참하기만 하면 됩니다. 예수님께서도 둘씩 짝을 지어 전도하러 보냈습니다. 전도하는 사람은 아무것도 두려워 할 필요가 없습니다. 왜냐하면 주님이 함께 하시기 때문입니다.
마태복음 28:18~20을 보면 예수님께서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를 내게 주셨으니 그러므로 너희는 가서 모든 족속으로 제자를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주고 내가 너희에게 분부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라 볼지어다 내가 세상 끝날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전도하는 사람과 주님이 함께 하신다는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더구나 우리가 전도할 때 그 사람이 믿든지 안 믿든지 걱정할 필요가 없습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이 택한 백성은 모두 예수님을 믿게 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사도행전 13:48에서 『영생을 주시기로 작정된 자는 다 믿더라』라고 했습니다. 뿐만 아니라 예수님을 믿게 만드는 것은 성령의 역사로 말미암기 때문입니다. 고린도전서 12:3을 보면 『성령으로 아니하고는 누구든지 예수를 주시라 할 수 없느니라』라고 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단지 하나님이 전도를 명하셨으므로 순종하는 전도의 심부름꾼일 뿐입니다.
여러분 중에 빌리 그래함 목사의 설교에 참석하신 분도 있고 TV를 통해 보신 분도 계실 것입니다. 그런데 불과 20~30분 간의 평범한 설교를 듣고 과연 몇 사람이나 감동을 받고 예수를 믿을지 의심이 들기도 합니다. 그러나 많은 사람들이 예수님을 믿겠다고 결신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수천 수만의 사람들이 강단 앞으로 나와 무릎을 꿇고 눈물을 흘리며 예수님을 나의 구주로 고백하는 놀라운 광경을 보면 할 말을 잃습니다.
1966년도에 빌리 그래함 목사가 하버드대학교에 초청을 받아 강의할 때, 이런 말을 한 적이 있습니다. “이전에 내가 전도를 할 때는 정성을 다하면 된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정성을 다하고자 노력했으나 그 후 생각을 바꾸게 되었습니다. 나는 내 자신의 힘을 완전히 빼버리고 전도에 임하기로 작정한 것입니다. 나는 사용되는 도구에 지나지 않습니다. 실제 일은 성령이 하시는 것입니다. 따라서 성령이 하시도록 나는 내 힘을 완전히 빼고 전도하는 것입니다. 아주 기분 좋게 전도합니다. 그 다음 문제는 성령에게 맡기고 나는 전도합니다.” 바로 이것이 그분의 전도 비결이었던 것입니다. 메세지가 특별하지 않아도 수많은 사람들이 예수 믿고 돌아오는 것은 바로 성령께서 일하시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도 담대히 전도지를 나누어 주기만 하면 됩니다.
인도에서 한 선교사가 어느 크리스천 여인과 담소하고 있을 때, 두 다리를 몹시 저는 장애인 거지가 동냥을 하고 있었습니다. 선교사는 동전과 함께 그들의 언어로 된 전도지를 주었습니다. 그러자 이 여인은 안타까운 표정으로 “당신의 전도지를 그에게 허비하지 마세요.”라며 “그는 결코 크리스천이 될 수 없어요.”라고 단호히 말했습니다. 그러나 이 선교사는 3일 후에 자신의 집 문 앞에 나타난 이 사람을 보고 깜짝 놀랐습니다. 그는 전도지를 읽은 후 이곳까지 오기 위해 저는 다리임에도 불구하고 8마일의 먼거리를 걸어온 것입니다.
그러나 이번에는 돈을 요구하지 않았습니다. 대신 다른 전도지를 원했습니다. 그는 새로운 전도지를 받은 뒤, 그 집 문 앞에 앉아 몇 시간이고 그것을 공부했습니다. 그리고 선교사에게서 성경책을 빌려 읽기 시작했습니다. 그 후 세례까지 받고 기독교 서점의 경비원으로 일하면서 틈틈이 책꽂이의 모든 책을 다 읽어 내려갔습니다. 이처럼 전도지가 어떤 사람에게는 합당치 않은 것처럼 보이기도 하지만, 하나님께서는 먼저 믿은 우리를 통해 무엇을 하실지 우리는 결코 알 수 없습니다.
한 사람이 기차 안에서 전도지를 나누어주며 전도를 하고 있었습니다. 한 승객이 전도지를 받더니 곧바로 갈기갈기 찢어서 창밖으로 던져 버렸습니다. 마침 그때 기차 선로에서 작업 중이던 인부 중 한 사람이 바람에 날리는 찢어진 종이조각을 주워 읽었습니다. 거기에는 요한복음 6:35의 말씀이 적혀있었습니다. “내가 곧 생명의 떡이니 내게로 오는 자는 결코 주리지 아니할터이요”
그 사람은 이 말씀에 큰 감동을 받고 어느 목사의 심방을 통해 복음에 대해 더 자세히 들은 후 예수님을 영접했습니다. 그리고 후에 그는 복음전도자가 되었습니다. 이처럼 하나님이 택한 백성은 종이 조각에 쓰인 성경 말씀 한 구절만 읽어도 예수님을 믿게 될 줄 믿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그 사람이 예수 믿고 안 믿고는 전적으로 하나님께서 하실 일입니다. 우리는 단지 전하는 일에 순종하기만 하면 됩니다. 이번 주간에 전도지를 들고 부산 시민에게 다가갈 때 놀라운 일이 일어날 줄 믿습니다. 모두가 이 일에 동참하셔서 이 부산이 그리스도의 나라가 되기를 축원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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