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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원의 어리석은 방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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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원의 어리석은 방법(열왕기하 5:1~4, 10~14)

옛날, 수리아라고도 하고 시리아(Syria)라고도 하는 북방의 대제국, 아람 나라에 나아만이라는 장군이 있었습니다. 그는 그 나라가 누란의 위기에 처했을 때 용감히 나가 싸워 나라를 구원하는 혁혁한 공을 세운 군대의 대장관이었습니다. 그러나 그는 문둥병이란 불치의 병을 앓고 있었습니다. 밖에 나가면 온 국민의 환호와 칭송과 영광을 받는 위대한 인물이었으나 집에 들어오면 살이 썩어 들어가고 악취가 들이치는 문둥병을 앓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 집에는 이스라엘을 점령했을 때 붙잡아온 어린 소녀 식모아이가 있었습니다. 그 어린 소녀는 피고름이 묻고 고약한 냄새가 나는 주인의 옷을 빨다가 자기 나라에 있는 능력의 사자 엘리사를 생각하고 그 여주인에게 말하기를 “주인께서 이스라엘의 사마리아에 계셨더면 이 문둥병도 고칠 수 있을 텐데요”라고 했습니다. 그랬더니 그 여자가 자기 남편에게 말했고, 나아만 장군은 자기 왕에게 말씀드렸습니다. 왕은 기뻐하며 “내가 서찰을 써줄 터이니 이스라엘 왕에게 갖다주시오”라고 했습니다. 나아만 장군은 왕의 친서와 은 10달란트, 금 6천개, 옷 열 벌과 많은 선물을 가지고 사마리아에 있는 엘리사 선지를 찾아갔더니 엘리사는 내다보지도 않고 종, 게하시를 시켜서 “요단강에 가서 일곱 번 몸을 담그십시오. 그러면 나을 것입니다”라고 일러주었습니다. 나아만 장군은 화가 머리끝까지 나서 “돌아가자. 우리나라에는 흙탕물 이 흐르는 개울 같은 요단강보다 더 크고 더 많은 강 다메섹강, 아마나강, 바르발강이 있지 아니하냐” 하며 돌아가려고 할 때 그 부하 중의 한 사람이 “장군님, 이보다 큰일을 하라고 해도 하실 터인데 그까짓 것 못하실 것이 무엇입니까. 어서 가서 요단강에 일곱 번 목욕을 하시지요”라고 간곡히 권면했습니다. 나아만 장군은 발걸음을 돌이켜 가서 인생의 화려한 계급장 붙은 옷을 다 벗고 들어가서 일곱 번 목욕했더니 어린아이 살같이 깨끗이 나았습니다.
하나님은 인간을 구원하실 때 어리석은 방법을 쓰신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오늘 본문에 나아만 장군의 불치병을 고치실 때에도 가장 어리석은 방법을 쓰셨습니다.
나아만 장군의 문둥병을 치료하실 때 이스라엘에서 포로로 붙잡아온 그집 식모인 어린 소녀가 전해준 복된 소식을 듣게 해서 구원하셨고, 또 선지자 엘리사가 내다보지도 않고 몸종 게하시를 시켜 “요단강에 가서 일곱 번 목욕하십시오” 하고 일러준 것도 이해가 안 될 만큼 어리석은 방법이었습니다. 또 물이 맑은 큰 강에서 목욕하라는 것도 아니고 흙탕물이 흐르는 개울 같은 작은 강, 요단에 몸을 담그되 일곱 번이나 몸을 담그라고 한 것입니다. 그런데 그 어리석은 방법대로 했더니 그 불치의 병, 문둥병이 고침 받아 어린 아기 살 같이 깨끗해졌습니다.

1. 어리석은 방법으로 구원하시는 하나님

하나님이 우리를 구원하시는 방법이 너무 단순하고 어리석어서 믿지 못하고 구원받지 못하여 지옥으로 떨어지는 사람이 많습니다.
사도 바울은 고린도전서 1장 18절에 “십자가의 도가 멸망하는 자들에게는 미련한 것(어리석은 것)이요 구원을 얻는 우리에게는 하나님의 능력이라”고 했고, 다음절 19절에는 “…내가 지혜 있는 자들의 지혜를 멸하고 총명한 자들의 총명을 폐하리라…”고 했습니다. 범죄하고 타락한 인간의 지혜나 총명은 하나님 앞에서 무익한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광야에서 불뱀에 물려 다 죽게 되었을 때 어리석은 방법으로 구원하셨습니다. 놋뱀을 만들어 높은 장대에 매달고 뱀에 물린 자마다 그 놋뱀을 쳐다만 보면 죽어가던 사람도 낫게 하셨습니다. 물린 상태가 심하든지 경하든지 다 놋뱀만 쳐다보면 나았습니다. 그 때도 똑똑한 사람들은, “약을 발라주든지 모세가 안수기도 해주든지 해야지 어리석게 그것을 쳐다본다고 낫겠는가? 죽으면 죽었지 나는 안 쳐다봐”라고 했는데, 그 사람들은 다 죽었습니다. 똑똑하고 총명하기 때문에 죽었습니다.
요한복음 3장 14절에 “모세가 광야에서 뱀을 든 것같이 인자도 들려야 하리니 이는 저를 믿는 자마다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니라”고 말씀하시고, 16절에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저를 믿는 자마다 멸망치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니라”고 했습니다. 구원은 죄가 하나도 없이 깨끗해져야 받는 것도 아니고, 착한 일을 많이 해서 공적을 쌓아야 받는 것이 아닙니다. 완전히 거룩해져야 구원받는 것이 아닙니다. 선행은 하늘나라에서 상 받고 면류관 받는 조건이며 땅에서 복 받는 조건이 되는 것입니다. 구원에는 상관이 없습니다.
예수님이 십자가에 달리실 때 지금까지 강도짓만 했는데도 자기 죄를 인정하며 예수님을 믿을 때 즉시 예수님이 구원해주셨습니다. 요한복음 1장 12절에 “영접하는 자 곧 그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으니”라고 하셨습니다. 요한복음 6장 40절에 “내 아버지의 뜻은 아들을 보고 믿는 자마다 영생을 얻는 이것이니 마지막 날에 내가 이를 다시 살리리라 하시니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로마서 10장 9절에 “네가 만일 네 입으로 예수를 주로 시인하며 또 하나님께서 그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것을 네 마음에 믿으면 구원을 얻으리니”라고 하셨고, 다음절 10절에 “사람이 마음으로 믿어 의에 이르고 입으로 시인하여 구원에 이르느니라”고 하셨습니다. 오늘 처음 나온 사람이라도 예수님을 구주로 믿기로 결심하고 입으로 고백하면 이 순간부터 구원을 받습니다. 믿음으로 따라합시다. “주 예수여, 예수님을 나의 구주로 믿고 영접합니다. 이 죄인을 용서하시고 구원해주심을 믿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심지어 교회를 다니는 사람들까지도 너무 단순하고 어리석어 보여서 믿지 못하고 구원을 못 받습니다.
황금빛 나는 63빌딩의 엘리베이터는 주인이 돈을 들여 설치해놓았기 때문에 돈 낼 필요 없이 믿음으로 올라타고 버튼만 누르면 30층이든 50층이든 데려다 주는 것같이, 예수님이 사람의 몸을 입고 이 세상에 오셔서 십자가에 달려 그 죄 없는 피를 흘려 우리 죄를 대속해주셨기 때문에 믿기만 하면 구원을 받습니다. 단순하고 어리석은 방법입니다.

2. 왜 어리석은 방법으로 구원하시는가?

① 타락한 인간의 지혜는 하나님 앞에 무익하기 때문
인간이 마귀에게 속아서 선악과를 따먹어 눈이 밝아졌지만 무익한 눈이 밝아졌습니다. 오늘날 핵무기를 만든 것도 그 한 예입니다. 하나님을 아는 데는 아무 소용없는 것입니다. 고린도전서 1장 19절에 “…내가 지혜 있는 자들의 지혜를 멸하고 총명한 자들의 총명을 폐하리라…”라고 했습니다. 또 20절에 “지혜 있는 자가 어디 있느뇨…하나님께서 이 세상의 지혜를 미련케 하신 것이 아니뇨”라고 했고, 21절에 “하나님의 지혜에 있어서는 이 세상이 자기 지혜로 하나님을 알지 못하는 고로 하나님께서 전도의 미련한 것으로 믿는 자들을 구원하시기를 기뻐하셨도다”라고 했고, 25절에 “하나님의 미련한 것이 사람보다 지혜 있고 하나님의 약한 것이 사람보다 강하니라”고 하셨습니다. 그래서 지혜 있고 총명한 사람보다 어리석고 천하고 멸시받고 가난한 사람들 중에 구원받는 사람이 많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고린도전서 1장 18절에 “십자가의 도가 멸망하는 자들에게는 미련한 것이요 구원을 얻는 우리에게는 하나님의 능력이라”고 하셨습니다. 목회도 어리석고 단순한 목회자가 교회를 부흥시킵니다.

② 교만을 꺾은 후에 구원하시려고
나아만 장군은 문둥병에 걸린 주제에 자기의 계급과 높은 지위만 생각하고 교만하고 거만하기 이를 데 없었습니다. 그런 사람을 하나님이 고쳐주시지 않습니다. 그래서 엘리사는 내다보지도 않고 사환을 시켜서 “요단강에 가서 일곱 번 몸을 담그시오”라고 했던 것입니다. 그 교만 때문에 고침 받지 못하고 돌아가려고 했습니다. 그러나 따라온 부하가 “더 큰일을 하라고 해도 할 터인데 옷 벗고 일곱 번 목욕하라는 것이야 못할 것 무엇입니까?”라고 했습니다. 자존심을 꺾고 겸손히 순종할 때 그 불치의 병이 고침 받았습니다.
우리 인간은 모두 문둥병보다 더 무서운 죄의 문둥병에 걸려 결국 영원한 지옥의 형벌을 받아야 할 존재인데 똑똑한 체하고 교만해서 구원을 못 받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교만한 자 를 미워하십니다. 잠언 6장 16~17절에 “여호와의 미워하시는 것 곧 그 마음에 싫어하시는 것이 육 칠 가지니 곧 교만한 눈과 거짓된 혀…”라고 했습니다. 교만을 제일 미워하십니다. 야고보서 4장 6절에 “…하나님이 교만한 자를 물리치시고 겸손한 자에게 은혜를 주신 다…”라고 했습니다. 잠언 16장 18절에 “교만은 패망의 선봉이요 거만한 마음은 넘어짐의 앞잡이니라”고 했습니다. 잠언 11장 2절에 “교만이 오면 욕도 오거니와 겸손한 자에게는 지혜가 있느니라”고 하셨습니다.
하나님이 교만 때문에 큰 상처를 받고 고통을 받으셨던 일이 있습니다. 하나님의 작품 가운데 가장 큰 걸작으로 천사장 루시퍼를 만드시고 큰 지혜와 아름다움을 주셨는데 이 천사장이 그 자리에 만족하지 않고 자기가 하나님보다 높아져서 하나님의 보좌까지 찬탈하려는 것을 보시고 저주하여 땅으로 내쫓았습니다. 그래서 교만을 무엇보다 미워하시지 않나 생각합니다. 교만한 자를 물리치기 위해서 어리석은 방법으로 사람을 구원하십니다. 교만은 결국 자기를 높이는(self-esteem) 것이기 때문에 하나님이 가증히 여기시는 것입니다.

③ 하나님이 홀로 영광 받으시기 위함
하나님이 사람을 당신의 형상대로 창조하신 목적은 영광과 경배를 받으시기 위함이며 독생자까지 사람의 몸을 입고 이 땅에 오셔서 대속의 제물로 십자가에서 피 흘려 죽으심은 죄 값으로 멸망 받을 인간을 구원하셔서 영광과 찬양을 받으시기 위함인 것입니다. 믿음으로 구원받게 하시는 최종 목적은 우리가 지옥의 형벌에서 구원받아 천국 가게 하는 것이 아니라 영광과 찬양을 받으시는 데 있습니다.
그런데 인간의 지혜와 총명이 뛰어나서 하나님을 잘 알아서 구원받는다면 하나님께 돌아갈 영광을 자기가 받고 마는 것입니다. 고린도전서 1장 20~21절에 “…하나님께서 이 세상의 지혜를 미련케 하신 것이 아니뇨…이 세상이 자기 지혜로 하나님을 알지 못하는 고로 하나님께서 전도의 미련한 것(어리석은 것)으로 믿는 자들을 구원하시기를 기뻐하셨도다”라고 하신 것입니다. 하나님은 어리석어보이는 방법으로 단순하게 믿는 자를 구원하셔서 하나님이 영광과 찬양을 받기를 원하신 것입니다.
다윗이 소년으로서 물맷돌을 가지고 거장 골리앗을 쳐서 이겼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영광을 받으신 것입니다. 다윗이 힘 센 장수였거나 창칼이 훌륭해서 이겼다면 그 무기에 영광이 돌아갔을 것입니다.
우리가 구원받는 데에는 인간의 공적이나 지혜나 선행이 1%도 포함되면 안 되는 것입니다. 인간의 공적이나 지혜 때문에 구원받는 데는 포함이 안 되는 것입니다. 그래야 100% 하나님이 영광을 받으시는 것입니다. 인간의 그 어떤 것도 구원받는 일에 작용해서는 안 되는 것입니다.
복음을 잘 설명해주는 말씀이 에베소서 2장 8절이라고 봅니다. “너희가 그 은혜를 인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얻었나니 이것이 너희에게서 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선물이라”고 했고, 다음절 9절에 “행위에서 난 것이 아니니 이는 누구든지 자랑치 못하게 함이니라”고 했습니다. 자기 행위로 구원받게 되면 인간이 자기를 자랑하게 되고 하나님께 영광이 돌아가지 않기 때문입니다.
8절에서 “은혜(grace)”란 말도 거저 준다는 뜻이고 “믿음(faith)”이란 말도 행위가 아니라 믿기만 하면 값없이 구원하신다는 뜻입니다. “선물(gift)”이란 말도 값을 내지 않고 거저 받는다는 뜻입니다. 고린도전서 1장 18절을 다시 보면 “십자가의 도가 멸망하는 자들에게는 미련한 것이요 구원을 얻는 우리에게는 하나님의 능력이라”고 했습니다. 하나님은 어리석은 방법, 십자가의 복음을 믿는 자들을 구원하시는 것입니다. 본문에 나아만 장군이 많은 금, 은, 보화를 가지고 왔으나 엘리사는 하나도 받지 않고 거저 문둥병을 고쳐주고 보화를 도로 가져가게 했습니다.
어리석은 방법으로 구원하시는 하나님의 뜻을 깨닫고 우리도 또한 어리석고 단순하게 반응(response)해야 구원받는 것입니다. 복음을 단순히 믿음으로 받아들이지 않고 타락한 인간의 지혜와 총명으로 따지고 비판하려고 들면 구원받을 수가 없습니다. 또한 선행을 많이 쌓고 공적을 세워서 구원받으려고 한다면 복음을 모르는 사람이며 단순하고 어리석게 반응하는 것이 아닙니다. 따라서 구원을 받을 수가 없습니다.
“선악과”(the fruit of knowledge of good and evil)란 어떤 것이 옳고 어떤 것이 틀렸느냐를 따지게 하는 열매란 뜻입니다. 이것은 죽는 길입니다. “생명과”(fruit of life)는 결국 생명을 살리는 열매이며 곧 예수님입니다.

김홍도 감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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