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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21:18-23. 제자의 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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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요21:18-23...제자의 길(도).
흥부가 제비의 부러진 다리를 정성껏 싸매어 고쳐 주었더니 그 제비가 박 씨 하나를 물고 와서 흥부에게 주어서 심었더니 박 속에서 보물이 나와서 은혜를 갚았다. 한번도 가보지 않은 곳으로 팔려갔던 개가 옛 주인을 찾아 몇 십리길을 왔다는 우리나라 진돗개의 이야기 찬밥덩이 얻어먹고 살았던 옛 주인이 그리 고맙고 좋아서 그 먼 길을 찾아왔다는 개, 그리고 제비의 이야기를 생각하며 우리의 영혼을 위해 생명까지 내 놓으신 하나님 아버지의 사랑과 주님의 은혜, 그 어떤 짐승보다 기억력이 좋은 만물의 영장이라고 하는 인간...
그럼에도 그리 쉽게 버리고 떠나가는 인간...그들을 향해 주님은 찾아 오셔서 하늘 떡 먹이시고 정말 사랑하셨던 제자 요한의 아들 시몬아 너 날 아가파오하니? 아니 필레오하니? 세 번이나 물으시고 사랑을 확인시켜 주시고 네가 젊어서는 네 맘대로 다녔지만 늙어서는 사람들이 네 팔을 벌리리니 죽음에 대해 알려 주십니다. 그리고 다시 말씀하시기를 너는 나를 따르라, 제자의 길을 요청하고 계십니다.
요한은 19절에서 네 팔을 벌리리니 를 주석하기를 순교의 죽음이라고 했습니다. 어떤 말씀을 생각나게 할까요, 요13:37, 내가 지금은 어찌하여 따라갈 수 없나이까? ‘주를 위하여 내 목숨을 버리겠나이다’큰소리쳤던 베드로 정작 죽을 수 있는 자리에서 주를 모른다고 부인하고 도망쳤던 우리의 대 사도 베드로...이제 주님과 대면하여 사랑을 확인시켜 주시고 그의 죽음을 알려 주셨습니다.
순교의 자리로 초대를 받은 것입니다. 초대받은 후에 베드로는 요한은 어찌 될것인가 궁금했습니다. 주님은 그게 너와 무슨 상관인가 하셨습니다. 우리는 각자에게 주어진 길을 갈 뿐이지 옆에 사람에게 주어진 사명은 너와는 상관이 없다고 하십니다. 오늘 주신 말씀을 살펴보고 주의 제자의 길을 갈수 있기를 소원합니다.
1,제자의 길,  제자는 스승의 간 길을 뒤 따라가는 것입니다. 주님은 우리에게 말씀하셨습니다. 마11:29, 나는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니 나의 멍에를 메고 내게 배우라 그리하면 쉼을 얻으리라, 쉼은 구원을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겸손하고 온유하려면 주님의 멍에를 메라고 하십니다. 소 멍에는 소목에 밭을 갈 때 씌우는 굴레입니다. 이 멍에는 주님이 함께 하시기 때문에 무겁지 않다고 하십니다. 아니 내가 메는 것이 아니고 주님이 대신 메시고 나는 그 안에 들어가 있는 것이기에 주님이 메고 가신다는 말씀입니다. 이 멍에를 메어야 겸손하고 온유해진다고 하십니다.
혹시 보셨나요, 한 멍에에 두 마리 소가지고 밭을 가는 것, 바로 이것입니다. 나 혼자가 아니고 주님이 함께 하시기에 쉽고도 가볍다고, 근데 우리는 이 멍에가 싫다고 합니다. 주님 혼자 지라고 합니다. 그러니 제자의 길을 못 가게 되는 것입니다. 주님은 약4:6, 하나님은 교만한자를 물리치시고 겸손한자에게 은혜를 주신다고 했습니다. 성경에서 겸손한자를 찾아보면 세례요한입니다. 세례요한은 예수님보다 6개월 먼저 세상에 와서 광야에서 외치는 소리였습니다. 강력한 그의 메시지에 많은 군중들이 따랐습니다. 그는 회개의 세례를 베풀었습니다. 주님도 그에게 가서 세례를 받았습니다.
요한이 예수님을 향해 보라 ‘세상 죄를 지고 가는 하나님의 어린양’요1:29,이라고 하자 요한의 제자들이 예수님에게로 갑니다. 그러자 요한의 제자들이 시샘으로 요한에게 말합니다. 선생님이 증언하시던 이가 세례를 베풀매 사람들이 그리로 가더이다(요3:26). 그러자 요한은 말합니다.30절에‘그는 흥하여야 하겠고 나는 쇠하여야 하리라’29절에 신부를 취하는 자는 신랑이다. 그의 친구는 신랑의 음성을 들을 때 기쁨으로 충만하다. 했습니다. 우리의 고백도 이래야 되지 않겠는지요? 주님은 흥하고 나는 망해야 합니다. 이것이 세례요한의 겸손입니다.
그래서 성경은 우리에게 교만한자는 멸망하는 짐승 같다고  했습니다. 누가 교만해서 멸망했나요, 아담은 창조 때에 그 코에 하나님의 생기 호흡을 넣어 주시고 하나님과 교제하며 하나님의 가족으로 살아가게 하셨는데 뱀에 미혹에 이끌려 하나님과 같이 되려고 선과 악을 알게 하는 지혜의 열매를 먹는 순간에 그들은 죽음에 자리로 떨어지고 말았습니다.
그래서 영원히 하나님과 함께 에덴에서 살수있는 존재가 죽은 고기덩이로, 흙덩이로 살아가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성경은 엡2:1에서 허물과 죄로 죽었던 너희를 살리셨도다 했습니다. 진노의 자리에서 은총의 자리로 옮겨진 것입니다. 또 한사람이 교만하여 죽었는데 아담은 영이 죽었는데 이는 육체가 죽었습니다.
분봉왕 헤롯입니다. 행12:21-23에 보면 헤롯왕이 많은 군중 앞에서 연설을 했습니다. 사람들은 말합니다. 저것은 신의 소리라고 그 소리에 헤롯은 하나님이 된듯 했습니다. 그 영광을 하나님께 돌리지 않자 23절에 주의사자가 곧 치니 충이 먹어 죽으니라 했습니다.
오늘 우리에게도 동일하게 말씀하십니다. 하나님은 겸손한자를 찾으시고 그에게 은혜를 베푸신다고 바로 헤롯왕이 아니라 세례요한처럼 주님은 흥하여야 하고 나는 쇠하여야 하리라. 즉 나는 망하고 주님은 흥해야 합니다. 이런 고백을 할 수 있기를 소원합니다.
주님의 뒤를 따르는 제자는 주님의 하시는 일을 하는 자를 말합니다. 주님은 요5:19절에서 아들이 아버지께서 하시는 일을 보지 않고는 아무것도 스스로 할 수 없나니 아버지께서 행하시는 그것을 아들도 그와 같이 한다고 했습니다.
무엇을 말씀하시는 걸까요. 주님은 주님의 뜻대로 생각대로 방법대로 경험대로 하지 않았다 하십니다. 아버지가 보여 주신 것, 하라 하신 것을 한다고 했습니다. 그러면 우리도 그래야 합니다. 내 경험,내뜻, 생각, 내 방법, 고집을 버리고 주께서 무엇을 말씀하시는지 물어야 합니다. 우리에게 주신 주님의 마음인 성경 말씀과 교제인 기도와 찬양을 올리면서 주님의 뜻을 찾는 것입니다.
무엇을 하라시는지 금하셨는지 무엇이 주님이 원하시는 일인지 우리에게 주신 이 편지를 읽으면서 찾고 발견했으면 순종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성경을 덮어 놓고 읽지도 묵상도 안하고 어떻게 하나님의 뜻을 알 수가 있겠습니까?
주님은 아들이시라도 늘 밤이면 산에 올라가 기도하고 아버지가 일러 주신대로 보여 주신대로 순종하여 아버지께 영광을 돌렸습니다. 그런데 우리는 주님의 뒤를 따른다고 말만 하고 기도하는데 인색했습니다. 말씀보는데 인색했습니다. 그러니 내 생각에는 하면서 자기 생각을 주장하고 자신의 뜻대로 했습니다.
주님은 말씀하십니다. 순종이 제사보다 낫고 듣는 것이 수양의 기름보다 낫다고..주님은 결과보다 과정이라고 하십니다. 하나님은 성막을 지으라 하실 때에도 식양을 보여 주시고 그대로 하라 하셨습니다. 방주를 만들 때도 보여 주시고 하라했습니다. 우리는 얼마나 말씀 앞에 겸손했는지 그리고 순종했는지 자신을 살펴보시고 잘못되어진 부분은 철저하게 회개하시기를 원합니다.
주님은 승천하시기 전에 남기고 가신 말씀이 있습니다. 행1:8절에 너희는 땅 끝까지 내 증이니 되라고 했습니다. 재판을 받을 때 보면 증인석에 증인을 불러 세우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우리는 이 땅에서 주님의 증인입니다. 많은 사람들에게 주님은 하나님의 아들이라 증거를 해야 합니다. 그러면 많은 사람을 주께로 인도하게 됩니다.
세상 끝 날에는 반대의 입장에 서게 됩니다. 마지막 날에 심판대에서 우리는 주님을 증인석에 세우게 됩니다. 그때에 주님의 한 마디가 우리를 희락에 자리로 아니면 눈물로 이를 갊며 있을 곳으로 갈라지게 됩니다. 이 땅에서는 우리가 주님은 하나님의 아들이십니다. 그를 믿으면 우리가 천국이고 아니면 지옥입니다. 그것은 사실입니다. 제가 증인입니다.
천국에 갈 때에는 주께서 아버지 그는 내 피로 산 나의 사람입니다. 이 한마디가 우리의 천국과 지옥이 갈라진다는 것입니다. 나의 한일이 주 앞에서 생명을 얻고 상습을 받는데 반대로 주께로 버림도 받기도 하고 영벌을 받기도 하는 것입니다. 주께서 말씀하십니다. 너의 말 한 그대로 나도 하리라
이 일을 위해서 우리에게 사명을 주셨습니다. 그 일이 각자가 다 다르다고 하십니다. 베드로가 주님께 요한은 어찌 되겠습니까? 하고 질문을 했습니다. 그게 너와 무슨 상관이 있느냐? 우리는 우리 개인에게 체질에 맞게 주님의 뜻대로 사명을 주셨습니다. 내게 주신 것으로 어떻게 영광을 돌릴것인가 기도하며 주님을 섬기는 것입니다.
나의 하는 일을 통해서 주를 섬기고 영광을 돌린다면 그래서 하나님 나라가 확장된다면 하나님께서 최고로 행복해 하십니다. 상대방을 바라볼 필요가 없다고 하십니다. 교회 안에는 베드로같이 고기를 잡는 어부로 부름을 받았고 바울같이 천막을 만드는 자로 부름을 받았고 요한처럼 그물을 깁는자로 부름을 받았습니다.
하는 일이 다릅니다. 어느것이 더 중요하고 덜 중요하고 하지 않습니다. 부르심에 합당한 일을 하면 부르심에 합당한 상을 받습니다. 이것을 효과적인 부르심이라 하십니다.
결론입니다. 주님은 말씀하십니다. 나를 따르라 제자가 가야 할 길입니다. 주님의 뒤를 잘 보고 따라가는 자가 충성스러운 제자입니다. 어느 수도원에서 수도사를 모집한다고 했습니다. 사람들이 많이 왔습니다. 그래서 시험을 치룹니다. 문제가 나왔는데 배추밭에 배추를 거꾸로 심으라고 했습니다. 사람들은 말도 안되는 일이라고 제대로 모종을 했습니다. 그 중에 한사람만이 하라는 대로 배추 뿌리가 하늘을 보도록 심어 놓았습니다.
그때에 수도사가 나와서 하는 말입니다. 우리는 순종하는 사람을 원하는 것이지 똑똑한 사람을 원하는 것이 아니다. 우리 주님도 내가 똑똑하다고 하는 자 보다 주의 말씀에 순종하는 자를 더 사랑하십니다. 이런 자가 주의 나라를 세우는 자입니다.
서로를 멸시치 않고 거절하지 않고 상대방의 장점을 보아 세워주며 자신의 장점으로 상대방의 약점을 보완 할 줄 아는 그 성도가 하나님의 나라를 세우는 자입니다. 우리는 주님의 제자이므로 주님을 배워야 합니다. 주님을 배울 때 나를 발견하게 됩니다. 내가 얼마나 형편없는 존재인지...내가 얼마나 하나님의 사랑을 받는 존재인지, 나의 신분이 어디에 올려 있는지, 베드로와 요한이 주 앞에서 사랑을 고백하고 주님을 따라 간 것처럼 우리 모두도 주님의 음성을 듣고 주님을 따라가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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