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자들을 세우신 이유
본문
막3:13-19
회사가 보유한 인재의 가치가 곧 회사의 가치를 나타내는 시대에 살고 있습니다. 요즈음 회사에서나 학교에서 사원을 뽑고 신입생을 뽑습니다. 그런데 아무나 받아들이지 않습니다. 일정한 자격이 있는 사람만 받아들입니다. 인재가 필요하기 때문입니다. 세계적인 컨설팅 회사 맥킨지(Mckinsey & Co.)는 작금의 경제 전쟁을 가리켜 그 핵심은 '인재 전쟁(The war of for talent)'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120개 기업 13,000명의 임원을 대상으로 실제 인재 활용 사례 및 해당 관리 결과에 대한 분석 작업을 5년에 걸쳐 연구했답니다. 연구 결과, 우수한 인재의 발굴 및 유지가 기업에 있어 가장 중요한 핵심 사안이라는 것입니다.
에드 마이클스 외 3인의 공저인 [인재 전쟁]에서는 "성공하는 기업을 연구하는 학자들은 전략, 기술, 시스템 등이 탁월했느냐에 많은 관심을 기울이는 것 같다. 하지만 이것보다 더 선결되어야 하는 것이 사람이다. 전략을 만드는 것도 사람이고, 그 전략을 실행하는 것도 사람이기 때문이다. 기술도 시스템도 마찬가지다. 그래서 인재의 중요성이 강조되는 것이다."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세계의 기업들은 지금 '인재 전쟁'을 벌이고 있습니다. 빌 게이츠 회장이 이끄는 마이크로소프트(MS)는 명실 공히 세계 초일류 기업입니다. 이 회사에는 1년에 20만여 통이나 되는 인재들의 이력서가 쌓일 정도지만 이력서를 보고 뽑은 사람이 전체 채용 인원 중 20~30% 정도이고 나머지 인재들은 300여 명으로 구성된 '캔디데이트 제너레이터(Candidate Generator)'라는 인재 발굴팀이 자체적으로 조사하고 발로 뛰어다니며 찾아낸다고 합니다. 만약 꼭 필요한 인재가 있는데 회사에 대한 신뢰나 다른 이유로 이직을 꺼려하면, 아예 그가 속한 회사를 사버리는 경우도 많다고 합니다. 가장 유명한 사례가 빌 게이츠의 기술자문 겸 소프트웨어 기술자인 아눕 굽타를 영입하기 위해 굽타가 다니는 회사를 통째로 인수한 일이라고 합니다.
인재의 덕목으로 사람들은 여러 가지를 제시하고 있습니다. 전경련은 최근 삼성전자. LG전자. SK텔레콤. 현대자동차 등 국내 굴지의 11개 기업의 인사담당자들을 상대로 기업이 원하는 인재상을 조사했는데 주요 요건의 공통점은 네 가지였습니다. (1)개인 역량 (2)국제 감각 (3)원만한 대인관계 (4) 올바른 가치관 등이었습니다. 학자들은 핵심인재의 특성을 (1) 전문능력(향후 회사의 주도할 인재) (2) 변화주도 역량( 변화와 혁신을 주도하는 인재) (3) 도덕성(투철한 가치관과 조직관을 갖춘 인재) (4) 인간미(사람과 ' 운' 이 따르는 인재) 등을 말합니다. 예수님께서 새로운 세상, 복음으로 통치하는 하나님의 나라를 건설하기 위해, 함께 일할 인재를 뽑고 있습니다.
1. 예수님은 어떤 사람을 불렀습니까?(13) 제자의 자격
예수님이 인재를 뽑을 때 그저 적당히 뽑은 것이 아닙니다. 제자를 뽑기 전에 무엇을 하였습니까? 예수님을 12제자를 세우기 전에 산에 올랐습니다. 자주 올라가서 기도하고 가르치던 산입니다. 이곳에서 밤이 맞도록 기도하였습니다(눅6:12). 그만큼 중대한 일이기 때문입니다. 공생애를 시작할 때는 40일 동안 금식기도하고 시작하였습니다. 십자가에 달리시기 전에도 밤이 맞도록 땀방울이 핏방울로 변할 정도로 기도를 드렸습니다. 생각난 대로 사람을 뽑은 것이 아닙니다. 밤새워 기도하고 신중하게 인재를 뽑았습니다. 12제자를 부른 것은 예수님의 구원 사역에서 매우 중요한 것입니다. 그러면 이렇게 중요한 사람을 부르실 때는 조건이 맞는 사람을 불러야 하지 않겠습니까? 외국에 나가서 복음을 전하려면 언어 능력도 있고, 유대인 랍비들을 상대하려면 랍비 교육도 받고 일을 하려면 돈이 필요하니까 돈도 있는 사람을 뽑아야 하지 않겠습니까?
그런데 예수님께서 제자들를 뽑은 조건은 딱 하나 밖에 나오지 않습니다. 그것이 무엇입니까?
13절을 보십시오. “자기의 원하는 자들을 부르시니”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제자 선정의 조건이 제자들의 자질에 있는 것이 아닙니다. 예수님의 선택에 있었습니다. 그들의 능력에 있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예수님의 주권에 있었습니다. 그들의 조건에 있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사용하고자 하시는 예수님의 은혜에 있었습니다.
예수님 말씀합니다. “너희가 나를 택한 것이 아니요 내가 너희를 택하여 세웠나니 이는 너희로 가서 과실을 맺게 하고 또 너희 과실이 항상 있게 하여 내 이름으로 아버지께 무엇을 구하든지 다 받게 하려 함이니라 (요 15:16)” 선택을 받으면 그 외에는 기도하면 다 주신다는 것입니다.
선택기준이 외적인 조건이나 열정이 아닙니다. 오직 예수님의 뜻과 계획에 의해서입니다.
많이 배운 율법학자를 많이 있습니다. 부자들도 있고 권력자들도 있습니다. 그런데 그들을 선택하지 않았습니다. 이스라엘의 열 두 지파를 대신하는 위치인 열 두 사도의 사회적 신분이나 교육 수준, 인품 등을 보면 참 연약한 사람들입니다.
예수님께서 12을 세우신 것은 구약의 선민 집단인 이스라엘의 12지파에 실질적 맥을 잇는 새로운 12지파의 백성, 새로운 언약 백성의 형성하기 위한 기본 골격을 구성한 것입니다. 12제자를 시발로 새 이스라엘 공동체를 만든다는 것입니다. 이 중대한 일을 수행할 사람을 택할 때 사회적으로 유능한 사람보다는 오직 주님의 뜻에 따라 선택한 것입니다. 아브라함을 선택할 때도 마찬가지입니다. 우상 장사의 아들입니다. 두 번이나 아내를 누이라고 속인 사람입니다. 그러나 그를 선택하였습니다. 야곱을 보십시오. 거짓말 장이입니다. 야곱의 열 두 아들을 보십시오. 모두 부족하고 허물 투성이입니다. 장자 르우벤은 서모와 통간했고 시므온은 살인하였고, 유다는 본의는 아니지만 며느리와 잠자리를 같이 하여 서자를 낳았습니다. 또한 이들은 공모하여 자신의 동생 요셉을 팔아넘겼습니다. 그런데도 하나님은 이들로 열 두 지파의 출발로 삼았습니다. 예수님의 제자들은 어떠합니까? 베드로는 성격이 불 같은 사람입니다. 야고보와 요한은 지고는 못사는 야심가입니다. 빌립은 계산에만 밝았고 마태는 세리였으며 심지어 유다는 예수님 판 사람입니다. 열 두 명중 네 명은 어부고 한 명은 사회의 멸시와 비난의 대상인 세리이며 또 한 명은 과격한 열심당원, 나머지 여섯 명은 전혀 알려지지 않은 이들입니다. 수제자이고 예수님의 가장 사랑을 받았다고 하는 베드로와 요한은 어떤 사람이었습니까? 사도행전 4장 13절에 '저희가 베드로와 요한이 기탄없이 말함을 보고 그 본래 학문없는 범인으로 알았다가 이상히 여겼더라'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오늘 날도 하나님께서는 시대마다 인재를 사용하십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방법은 특이합니다. "하나님께서 세상의 미련한 것들을 택하사 지혜 있는 자들을 부끄럽게 하려 하시고 세상의 약한 것들을 택하사 강한 것들을 부끄럽게 하려 하시며 하나님께서 세상의 천한 것들과 멸시받는 것들과 없는 것들을 택하사 있는 것들을 폐하려 하시나니 이는 아무 육체라도 하나님 앞에서 자랑하지 못하게 하려 하심이라 (고전 1:27-29)"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은혜로 인재를 택합니다. 우상장사의 아들 아브라함, 거짓말 장이 야곱, 살인자 모세, 술주정꾼 노아, 목동 다윗, 노예 다니엘, 배신자 베드로, 겁쟁이 기도온, 주부 드보라, 장애인 에훗 등을 은혜로 선택합니다. 선택한 후에는 쓸만한 그릇으로 철저히 훈련을 시킵니다. 무능력한 상태를 그대로 쓰시지 않습니다. 아브라함은 25년 모세는 40년 다윗은 17년 훈련을 받았습니다. 훈련과정을 통해 하나님을 철저히 신뢰하는 믿음을 만들어 주십니다. 훈련 과정을 통해 능력있는 깨끗한 하나님의 사람으로 만들어 한 시대를 움직이게 하였습니다. 주님께서는선택 받을 수 없는 나를 선택하셨습니다. 사랑 받을 수 없는 나를 사랑 하셨습니다. 축복 받을 수 없는 나를 축복하셨습니다. 바로 이 감당치 못할 은혜와 사랑이 우리를 새사람으로 바꾸어 놓습니다. 이들에게 요구되는 것 한 가지는 즉각적인 순종입니다. 원하는 자를 부르시니까 어떻게 했습니까? 그들이 나아갔습니다. 부르심에 즉각적으로 순종한 것입니다. '하나님의 뜻대로 순복 할 자'를 주님의 주권적인 의지대로 선택하신 것입니다.
2. 예수님께서 제자를 부르신 목적은 무엇입니까?(14-15) 제자를 선택한 목적
제자를 세운 이유에 대하여 세 가지를 분명하게 말씀합니다.
첫째가 함께 있게 하기 위해서입니다.
뽑아 놓고 방치한다는 이야기가 아닙니다. 새 이스라엘의 지도자로 활동하게 하기 위해서 함당한 교육과 훈련을 받게 한다는 것입니다. 12제자는 3년 동안 일반 무리들과는 달리 특수한 교육과 훈련을 받았습니다. 일반 백성들에게 하나님 나라에 대하여 비유로 말씀하였지만 제자들에게는 본질적 의미와 핵심적인 내용까지 말씀해 주십니다(막4:11,12). 올바를 제자도를 가르쳐 주시고(막10:41-45), 기도하는 법을 가르쳐 주었습니다(마6:9-13) 또한 병자를 고치시고, 귀신을 내어 쫓으시고 갖가지 이적을 행하실 때 제자들을 데리고 다니었습니다. 제자훈련을 시킨 것입니다. 로버트 콜만은 예수님의 제자 훈련을 8가지로 소개하고 있습니다. 선택, 동거, 성별, 분여, 시법, 위임, 감독, 재생산 훈련을 시켰다는 것입니다. 회심하게 만들고 성장에 대한 갈망을 갇게 만들며 훈련에 대한 댓가를 지불하려는 마음을 갖게 만들었습니다. 단순하게 성경공부만 하는 것이 아닙니다. 세미나식으로 여러 주제를 나누는 것이 아닙니다. 코스웍을 마치고 수료증을 부여하는 것이 아닙니다. 서로 관심사를 나누는 친교 모임이 아니었습니다. 예수님의 구속 사역을 이해하고 예수님의 인격을 닮고 예수님의 구원사역에 헌신하는 제자를 만들기 위해 함께 있기를 원하였습니다.
앞으로 예수님을 대신하여 이 땅에 하나님의 나라를 건설해야 할 사람들입니다. 주님과 함께 있으면 주님을 닮아가게 되어 있습니다. 오늘 날도 만왕의 왕께서 만주의 주 역사의 주님이 인류의 구세주가 우리와 함께 있기를 원하십니다. 친교하기를 원합니다. 인격적 교제를 원하십니다. 사귐의 대상이 되고 같이 있고 싶어서 우리를 부르셨습니다. 바울은 고린도전서 1장 9절에서 이 놀라운 고백을 합니다. “우리를 불러. 우리를 불러 그 아들 예수 그리스도로 우리 주로 더불어 교제케 하시는 하나님은 미쁘시도다.”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아무든지 나를 따라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좇을 것이니라 (마 16:24)”라고 말씀하였습니다.
함께 있는 것이 영광도 되지만 마땅히 져야할 십자가가 있는 것입니다.
우리는 오늘날 모든 것이 상품화되는 시대에 살고 있습니다. 돈만 된다면 시체도 상품화시키려고 합니다. 사람이 상품화된 것은 오래된 이야기입니다. 십자가 역시 상품화되는 시대에 살고 있습니다. 아무런 인세도 받지 않고 주신 성경을 상품화하고 구원을 상품화합니다.
고객의 속성을 잘 읽어 잘 팔리는 종교제품을 만들기 위해 자기 상품화에 열을 올리는 사람들을 봅니다. 신뢰할 만한 상품인 것을 보여 주기 위해 적당히 학위를 사 붙이고, 자신이 거느리는 직원을 시켜 책을 쓰게하여 자신의 이름으로 출판하여 자신의 업적을 포장하고, 돈을 주고 기독교 언론 매체에 이름을 내어 자신을 좋은 상품이라고 판매하는 종교 지도자들을 종종 보게 됩니다. 이 정도까지 아니 되어도 기독교 언론을 보면 수많은 상품이 쏟아져 나오고 있습니다. "00 세미나, 00 학교, 00컨설트, 00컨퍼런스, 00코스..." 등으로 수많은 상품이 쏟아져 나오고 있습니다. 어느 교회는 교회를 상품화하여 버스에 광고판을 붙여 선전하고 있고 각종 좋은 종교 상품을 만들어 성도 마케팅에 나서는 교회를 어렵지 않게 주변에서 찾아 볼 수 있습니다. 십자가를 통해 장사하는 사람들이 많으면 많을수록 기독교는 타락해 가고 있다는 징조입니다. 십자가는 결코 상품화될 수도 자기 상품화의 수단이 될 수도 없습니다. 돈이 최고의 지배력을 가지는 시대에서 십자가를 상품화 수단으로 사용하고 싶은 유혹이 쉬지 않고 밀려오겠지만 십자가는 결코 상품화의 수단이 되어서는 아니 됩니다.
예수님은 힘을 가지고 지배하러 오신 것이 아니라 십자가를 지심으로 인류를 섬겼습니다. 십자가는 본질상 상품화되어서는 안됩니다. 십자가는 섬김의 표시입니다. 십자가는 구속의 표시입니다. 십자가는 희생과 나눔, 고난의 표시입니다. 십자가는 사랑과 공의의 표시입니다. 세상을 만드신 분으로 세상을 얼마든지 힘으로 제압할 수 있는 예수님께서 십자가를 지시는 것은 십자가만이 하나님의 사랑과 공의를 이룰 수 있는 유일한 길이었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을 제자들에게 이 길을 가게 만들기 위해 함께 있게하였습니다. 처음에는 그들도 이것을 이해 못했지만 그들은 부활과 승천을 본 후 완전히 변하였습니다. "이에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아무든지 나를 따라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좇을 것이니라 (마 16:24)"
둘째는 전도하게 하기 위해서입니다.
주님은 능히 돌들로도 아브라함의 후손들을 만드실 수 있으실 정도로 전능하신 분이십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같이 못나고, 무능하며, 답답한 사람을 택하셔서 사용하시는 것은 우리에게 쓰임 받을 수 있는 기회를 주시기 위함입니다. 제자들을 볼 때 속좁고 소심하고 성급하고, 부족한 점 있습니다. 그러나 그들을 통해 전도하기를 원했습니다. 전도사역은 제자들의 사명의 중심적인 것입니다. 전도를 통해 하나님 나라와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지식이 전파됩니다. 사망에 얽매인 자들을 해방시킵니다.
“하나님의 지혜에 있어서는 이 세상이 자기 지혜로 하나님을 알지 못하는 고로 하나님께서 전도의 미련한 것으로 믿는 자들을 구원하시기를 기뻐하셨도다 (고전 1:21)”
세상을 변화시키는 유일한 방법이 미련한 것같지만 그 전도에 있기 때문입니다. 복음 전도만이 세상을 바꿀 수 있습니다. 전도만이 인간을 궁극적으로 바꿀 수 있습니다. 교회에서 일어날 수 있는 최대의 비극은 그 교회에 전도하는 교인이 없는 것입니다. 무장 해제를 당하는 것입니다. 신앙인을 무장 해제하는 것은 전도 관심 제거시켜 버리는 것입니다.
마가복음에 나타난 예수님의 의도를 보십시오.
제자를 부르실 때 무엇이라고 말씀하였습니까?
“예수께서 가라사대 나를 따라오너라 내가 너희로 사람을 낚는 어부가 되게 하리라 하시니 (막 1:17)”
예수님의 오심에 대하여 무엇이라고 말씀합니까?
“이르시되 우리가 다른 가까운 마을들로 가자 거기서도 전도하리니 내가 이를 위하여 왔노라 하시고 (막 1:38)”
그리고 오늘 공식적으로 12 제자를 임명하면서 전도하게 하기 위해 임명한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막3:14)
그리고 훈련을 시킵니다. 그들을 파송합니다.(막6:7)
부활하신 후에 제자들에게 부탁하신 말씀이 무엇입니까?(막16:15)
예수님께서 승천하시면서 마지막 남긴 유언은 무엇입니까?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 하시니라 (행 1:8)”
그래서 그 전도의 명령을 12제자가 순종하여 이루어진 결과는 무엇입니까?
(1)삼천-행2:41 (2)남자 오천-행4:4 (3)심히 많음-행6:7 (4)남녀 세례-행8:12 (5)수가 많아짐-행9:31 (6)수다한 사람들-행11:21 (7)수만-행21:20
데이빗 왓슨 제자도에 이런 이야기가 나옵니다.
만일 당신이 하나님의 은혜를 받아 매년 매일 밤에 1천명씩 그리스도께 인도한다면 전세계 사람을 그리스도께 인도하는데 몇 년의 세월이 필요하겠습니까? 인구 폭발을 고려하지 않아도 대략 1만년이 더 소요된다고 합니다. 그러나 일년에 한 사람씩 그리스도의 제자로 삼아 그들이 계속 인도한다면 몇 년 걸리겠습니까? 32년이면 된다고 합니다.
교회는 전통에 따라 움직이는 교회, 인물에 의해 움직이는 교회, 재정에 의해 움직이는 교회, 프로그램에 의해 움직이는 교회, 건물에 의해 움직이는 교회, 행사에 의해 움직이는 교회, 구도자에 의해 움직이는 교회, 숫자에 의해 움직이는 교회 갖가지 형태가 있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무엇보다 교회는 목적, 사명에 따라 움직이는 교회가 되어여 합니다. 사랑을 실천하고, 제자도를 실천하여야 합니다.
“그러므로 너희는 가서 모든 족속으로 제자를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주고 내가 너희에게 분부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라 볼지어다 내가 세상 끝날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 하시니라 (마 28:19-20)
셋째는 귀신을 내어쫓는 권세가 있게 하기 위해서입니다.
귀신 이야기를 하면 오늘 현대 사회에 맞지 않는 것처럼 생각을 합니다. 그래서 귀신 대신 치유라는 말을 많이 사용합니다. 그러나 귀신은 존재합니다. 귀신의 가장 간교한 수단은 자신이 존재하지 않는다고 속이는 것입니다. 공중 권세를 잡고 하나님의 뜻을 불순종하게 하고 믿는 사람들을 불행하게 합니다.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에게 마귀와 그의 사자들의 올무에 빠진 자들을 하나님 나라의 백성으로 불러 모으기 위해 귀신을 내어 쫒는 권세를 주셨습니다.
“열두 제자를 부르사 둘씩 둘씩 보내시며 더러운 귀신을 제어하는 권세를 주시고 (막 6:7)”
“예수께서 열 두 제자를 불러 모으사 모든 귀신을 제어하며 병을 고치는 능력과 권세를 주시고 (눅 9:1)”
우리는 이 권세를 가지고 살아야 합니다. 이 세상은 전쟁터입니다. 나라간에 기업간에 개인간 끊임없는 전쟁을 하고 있습니다.
인간에게 일어나는 전쟁은 보이는 것이 전부가 아닙니다. 보이지 않는 영적 전쟁입니다. 성경은 우리의 씨름은 혈과 육에 대한 것이 아니요 정사와 권세와 이 어두움의 세상 주관자들과 하늘에 있는 악의 영들에게 대함이라 (엡 6:12)라고 분명하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영적 전쟁은 '보이지 않는 전쟁'입니다. C. S. 루이스가 사람들은 마귀에 대해 다음의 두 가지 중 한 가지 잘못을 범하고 있는데, 그것은 마귀에 대해 도에 지나친 관심을 쏟거나, 마귀의 존재 자체를 아예 무시해 버리는 것이다라고 말한 것처럼 마귀의 존재를 부인하는 것 자체가 영적 전쟁에서 패배하는 것입니다. 악(evil)'이라는 단어에 d라는 철자를 더하면 마귀(devil)'가 됩니다. 악의 존재를 부인하는 사람은 없지만 악의 근원이 마귀다는 것은 부인하려고 합니다. 악(evil)과 악한 자(The Devil)를 분리시킵니다. 그리스도인들인 행복론, 합리주의, 과학만능주의에 젖어 영적 존재를 부인하는 현대 사조 속에 살기 때문에 신앙인 마저 사탄, 지옥, 천국, 성령 같은 단어들을 개념화해 버리고 상징화해 버립니다. 그러나 영적 전쟁을 의식하지 못하게 하는 것은 사단의 최대 전략입니다. 전쟁에서 자기 정체를 노출하지 않는 것은 전술의 최대 전략입니다. 예수님은 분명하게 “너희는 너희 아비 마귀에게서 났으니 너희 아비의 욕심을 너희도 행하고자 하느니라 저는 처음부터 살인한 자요 진리가 그 속에 없으므로 진리에 서지 못하고 거짓을 말할 때마다 제 것으로 말하나니 이는 저가 거짓말쟁이요 거짓의 아비가 되었음이니라 (요 8:44)”라고 사단의 정체를 밝히고 있습니다.
영적 전쟁의 대상을 분명히 밝혀 주시는 것입니다. 사탄은 때로는 광명의 천사로 나타납니다. 성경은 이것이 이상한 일이 아니라 사단도 자기를 광명의 천사로 가장하나니 (고후 11:14)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좋은 것으로 인간을 유혹합니다. 죽음으로 이르는 달콤함으로 인간의 윤리를 마비시킵니다. 사단은 때로는 우는 사자로 나타나 인간을 괴롭힙니다. 성경은 근신하라 깨어라 너희 대적 마귀가 우는 사자같이 두루 다니며 삼킬 자를 찾나니 (벧전 5:8)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귀신이 우리를 넘어뜨리는 두 가지 방법이 있습니다.
첫 번째 방법은 유혹하는 것입니다. ①간계로 미혹케 합니다(고후11 : 3) ②광명의 천사로 가장합니다(고후11 : 14) ③꾀입니다(딤후2 : 14) ④궤계를 부립니다(엡6 : 11) ⑤하나님의 말씀 들은 것을 빼앗습니다(막4 : 15) ⑥하나님 대신 사람에게 경배받으려 합니다(살후2:4)
⑦하나님을 욕하도록 꾀합니다(욥2:5) ⑧말씀을 의심케 합니다(창3 : 1)
두 번째 방법은 핍박하는 것입니다.
“(벧전5 : 8) 근신하라 깨어라 너희 대적 마귀가 우는 사자같이 두루 다니며 삼킬 자를 찾나니” ① 공중의 권세를 잡고 있습니다.(엡2 : 2) ② 때로는 질병이나 사고를 줍니다(욥2 : 7)
마귀를 대적하기 위해서는 다른 것이 없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으로 물리쳐야 합니다. “(마4 : 10) 예수께서 말씀하시되 사단이 물러가라 기록되었으되 주 너의 하나님께 경배하고 다만 그를 섬기라 하였노니라”
내 힘이 아니라 주의 이름으로 물리쳐야 합니다. “(행16 : 18) 바울이 심히 괴로워하여 돌이켜 그 귀신에게 이르되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내가 네게 명하노니 그에게서 나오라 하니 귀신이 즉시 나오니라”
성령을 힘입어 대적해야 합니다. “(약4 : 7) 너희는 하나님께 순복할찌어다 마귀를 대적하라 그리하면 너희를 피하리라” “(마12:2) 내가 하나님의 성령을 힘입어 귀신을 쫓아내는 것이면”
하나님의 전신 갑주를 입어야 합니다. “(엡6 : 11) 마귀의 궤계를 능히 대적하기 위하여 하나님의 전신갑주를 입으라”
2007.1.21/열린교회/김필곤 목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