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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님이 원하시면
마가복음 1:40-45

지금 세계에는 얼마나 많은 질병의 종류가 있을까요?
세계보건기구(WHO)가 밝힌 바에 따르면 지난 18세기까지의 인류질병은 총 2천 4백 여 종이었는데 1934년에는 3천 5백여 종으로 늘어나고 20년 후인 1954년에는 배가 늘어난 7천여 종이 되었다고 합니다. 그 후의 공식통계는 아직 나와있지 않지만 비공식 통계로는 현재 세계에 퍼져있는 질병은 최소한 8천 가지가 넘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습니다. 감염성 질환은 바이러스 ․세균 ․곰팡이 ․기생충과 같은 질병을 일으키는 병원체를 제거하면 됩니다. 그런데 세균에 의한 질환은 항생제의 발달로 대부분 치료가 가능해졌으나, 바이러스성 질환에 대한 항바이러스제의 개발에는 아직 해결해야 할 과제가 남아 있는 것으로 되어 있습니다. 특히 고혈압 당료병, 암 등과 같은 비감염성 질환은 병원체 없이 일어날 수 있으며, 대부분 발현기간이 길어 오랫동안 고생을 하며 환자가 고통을 받습니다. 말기 암이나 에이즈와 같은 질병에 걸리면 인간의 존엄성은 파괴되고 삶의 질은 심각하게 떨어져 버립니다. 국내에 암 환자만 해도 25만이 넘는다고 합니다. 국민 200명 가운데 1명 꼴입니다. 무섭게 퍼지고 있는 에이즈도 세계적으로 4천 만 명이나 된다고 합니다. 이런 질병에 걸리면 얼마나 힘들고 어렵습니까? 특히 과거 한센씨 병에 걸린 사람들은 오랜 기간 동안 심각한 고통을 하며 죽어갔습니다. 세계보건기구(WHO)에 의하면 지금도 나병환자가 전세계적으로 8백만-1천만명에 달한다고 합니다. 이런 심각한 병에 걸리면 절망감이 찾아 옵니다. 수치심으로 괴로워합니다. 외로움으로 원망합니다
이 병에 걸리면 가족이 있지만 함께 살 수 없고 친구들로부터 세상 사람들로부터 격리되어 외롭게 살아야 합니다. 처음에는 자그마한 결절이 생기지만 점점 아름다운 모습은 잃어버리고 눈썹이 떨어지고 성대는 궤양으로 쉰목소리가 나고 신경은 마비되고 손가락이 떨어지고 발가락이 떨어지고 나중에는 손발 전체를 잃어버리게 됩니다. 20-30년 간에 걸쳐 서서히 육체가 죽어가고 나중에는 뇌에까지 침범하여 혼수상태에 빠지다가 결국 죽게 됩니다. 이 병은 몰골도 무섭지만 전염성이 있어 아무도 상종하려 하지 않습니다. 오늘 성경에 한 나병 환자도 이렇게 살았을 것입니다. 아무런 희망이 없이 죽을 날만 기다리는 사람이었을 것입니다. 차라리 죽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하는 사람입니다. 성 안에 들어갈 수도 없고 사람을 만나면 멀리서 손을 입에 대고 “부정하다. 부정하다.” 소리를 질러 자신이 나병환자임을 밝히며 사는 사람입니다. 사람들이 멀리서도 알아 볼 수 있도록 머리털을 밀고 찢어진 옷을 입어야 합니다.

1. 주님이 원하시면...
그런데 어느 날 절망감과 수치심과 외로움으로 좌절 속에 살아야 했던 그에게 희망의 소식이 들려왔습니다. 예수님이 각종 질병을 고치시고 귀신을 쫓아내신다는 소식이었습니다. 그의 마음에 희망이 생겼을 것입니다. 예수님만 만나면 자신도 살 수 있다는 소망이 생겼을 것입니다. 그런데 문제가 있었습니다. 자신의 다른 병과 달리 사람들이 사는 성안에 들어갈 수도 없고 만약 성안에 들어가 사람들에게 발견되면 돌로 맞아 죽을 수밖에 없는 신세였습니다. 당시의 사회적 관습이 장애물입니다. 마음에 갈등이 생겼을 것입니다. 연약한 마음이 장애물일 수 있습니다. “이대로 고통받으며 살다 죽을 것인가? 아니면 죽을 각오로 성안에 들어가 예수님을 만나 병을 났게 해달라고 요청하여 생명을 건질 것인가?” 여러 날 그는 밤을 새우며 번민했을지 모릅니다. 예수님에 대한 생각이 장애물일 수 있습니다. 열병같은 간단한 것은 모르지만 아무도 고칠 수 없는 이 문둥병을 고칠 수 있을까?라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목수의 아들이 무엇을 할 수 있겠냐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스스로 예수님의 능력을 제한할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이 모든 장애물을 뛰어 넘었습니다.

그는 용기 있게 결단을 하였습니다. 사람들에게 발각되어 죽는 한이 있어도 예수님께 나아가기로 결단을 하였습니다. 차라리 짐승보다 더 못하는 인생을 사는 바에야 예수님께 나아가다가 죽는 것이 났다고 생각했을 수도 있습니다. 예수님께 나와 왔습니다. 죽음을 각오한 모험입니다. 사회의 관습에 대한 정면적이 도전을 한 것입니다. 이제까지 한 번도 경험하지 못한 세계에 대하여 과감하게 몸을 던진 것입니다. 당시 율법에 의하면 나병환자가 이렇게 성한 사람 앞에 갈 수 없게 되어 있었습니다(레위기13:45,46). 그러나 용기를 내어 죽기를 각오하고 예수님께 나아갔습니다. 생명을 건 모험입니다. 신앙은 그렇습니다. 전 인생을 건 모험과도 같습니다. 예수님 앞에 나아가 무릎을 꿇어 엎드리었습니다. 겸손하게 무릎을 꿇었습니다.

이렇게 나갈 수 있었던 이유가 무엇이겠습니까?
40절을 보십시오. 예수님께서 원하시면 얼마든지 자신을 깨끗케 할 수 있는 분으로 믿었기 때문입니다. 옣수님에 대한 분명한 신앙고백을 하였습니다. 마태복음 8장 3절에는 “주여 원하시면 저를 깨끗케 하실 수 있나이다”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예수님을 주님으로 믿은 것입니다. 세상의 주인입니다. 전지 전능하시고 말씀으로 모든 것을 이루시는 주님으로 믿은 것입니다. 모든 만물을 통치하시고 지배하시는 주인으로 믿은 것입니다. 우리의 영혼을 구원하시는 메시아로 믿은 것입니다. 주님께서 하시려고 하면 불치의 병인 나병도 얼마든지 고칠 수 있다는 사실을 믿은 것입니다. 이 나병환자의 고백처럼 오늘날도 우리 주님께서는 원하시면 우리의 절박한 문제를 풀어주실 메시아이신 줄 믿습니다. 문둥병에 걸린 사람과 같이 죄로 마비된 우리의 양심을 회복시켜 주실 수 있습니다. 문둥병에 걸린 사람처럼 전혀 회복되지 않고 서서히 무너져 가는 기업과 우리 인생을 회복시키시고 살려 주실 수 있습니다. 문둥병에 걸려 손가락과 발가락이 떨어져 가는 것처럼 하나하나 상실되어가는 것을 보면서 상실감의 깊은 신음 속에 있는 우리에게 생기와 기쁨을 줄 수 있습니다. 정신적인 문둥병에 걸린 사람이 되어 삶에 기쁨과 환희가 없는 자도 예수님께 나오면 삶의 목적을 찾고 기쁨과 환희를 맛볼 수 있을 줄 믿습니다. 죄로 말미암아 영적인 문둥병에 걸린 사람도 예수님께 나와 회개하면 용서함을 받아 진정한 평안이 임할 줄 믿습니다. 주님 말씀합니다.
“마11:28수고하고 무거운 짐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

주님에 대한 이 믿음이 중요합니다. 나는 못한다 할지라도 우리 주님이 원하시기만 하면 모든 것을 할 수 있다는 믿음이 중요합니다. 그 믿음이 우리를 죄에서 자유함을 주고 우리 삶의 수렁에서 건져내 줍니다.
[피아노 치는 변호사]라는 책을 낸 박지영 변호사의 간증을 읽어보았습니다. 5살 때부터 피아노를 치기 시작했답니다. 예원학교와 서울예술고등학교를 거쳐 서울대 음악대학에서 작곡이론을 전공한 분입니다. 아버지의 부도로 단칸방에서 살면서 피아노까지 처분해야 했었고 어렵게 어머니가 피아노를 다시 마련하여 피아노를 놓을 곳이 없어 주인 집 마루에 놓고 피아노 연습을 했다고 합니다. 그런데 심각한 문제가 생겼답니다. 고등학교를 졸업하던 해인 만 19세에 림프암에 걸답니다. 지옥같은 항암치료를 받을 때 몸 안의 장기가 모두 입으로 딸려 나올 것 같은 토악질을 10시간씩 해댔답니다. 물을 넘기기도 어려웠답니다. 주사바늘을 하도 많이 꽂아 혈관이 모두 숨어버렸고 잠만 자면 가위에 눌렸답니다. 기도했답니다. 주기도문을 계속했답니다. 어느 정도 인생 여정이 아직도 남아 있으리라는 이상한 확신이 생겼답니다. 항암치료를 중단했답니다. 병원에서는 경고했지만 집에서 현미와 채소 등 자연식을 먹으면서 1년여 동안 암세포와 싸워나갔답니다. 아들을 십자가에 내어 놓기 까지 하신 하나님께서 은사를 주신 것입니다. 깨끗이 치유된 것입니다. 그 이후 15년 동안 감기나 타박상 등을 치료하러 병원에 간 일 외에는 림프샘 종양과 관련해 병원을 간 적이 없다고 합니다. 기나긴 터널을 통과하는 동안 늘 함께 해주신 하나님께 뒹굴고 울부짖으면서 사랑을 나누었다고 합니다. 서울대 음대를 들어갔다고 합니다. 한시적 삶 한정된 시간 동안 분명히 해야 할 일이 있다는 것을 깨달은 것입니다. 인생의 목표가 분명해졌다고 합니다. 자신만을 위한 삶이 아니라 하나님을 기쁘게, 이웃을 기쁘게 하는 삶입니다. 선교단체 ‘한시미션’에 들어가 농촌 오지, 도시빈민, 소년소녀 가장, 장애우 등을 구체적으로 섬겼다고 합니다. 담임목사님께서 부르시더니 “지영아, 사법시험에 도전해보면 어떻겠니? 건강만 받쳐주면 정말 좋겠는데 그건 함께 기도해보면서 말이야.”구체적으로 섬기기 위해 법대에 다시 편입하여 사법시험에 합격하여 현재 법무법인 로고스의 변호사로 일하고 있다고 합니다. 변호사로서 직업적 소명과 하나님과 이웃을 섬기는 삶의 궁극적 소명을 분리하지 아니하고 세상 한복판에서 사랑을 외치신 예수님을 닮고자 자신이 속한 영역에서 그리스도의 향기를 풍기기 위해 애쓰고 있다고 합니다. 그는 말하고 있습니다. "나는 예수 그리스도를 가장 잘 소개하는 사람이 되고 싶다.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을 가장 잘 변론하는 변호사가 되고 싶다. 내가 받은 예수님의 사랑을 법과 음악을 통해 잘 전하는 사람이 되고 싶다."
부활하셔 지금도 살아계신 우리 예수님께서 우리 성도님과 저에게도 이런 은혜를 주실 줄 믿습니다. 무슨 문제가 있습니까? 어떤 어려움이 있습니까? 어떤 절망스러운 고통이 있습니까? 우리 예수님께 그 문제 가지고 담대하게 용기를 가지고 나오시기 바랍니다.

예수님에 대한 전적인 믿음을 가지고 나온 나환자에게 예수님은 어떻게 대해 주시고 있습니까? 41절을 보십시오. 세 가지로 치료시켜 주십니다.
자신에게 나온 나병환자에 대한 예수님의 마음이 어떠했습니까? 나병환자라고 책망하며 쫓아내지 않았습니다. 예수님은 그를 보고 민망히 여겼습니다. 사람들은 역겹게 여기고 부정하게 여겼지만 우리 예수님은 연민의 정을 가지고 불쌍히 여겼습니다. 나병환자의 고통을 예수님의 고통으로 여기셨습니다. 마8:17절에는 예수님에 대하여 “예수님은 우리 연약한 것을 친히 담당하시고 병을 짊어지셨도다.”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미 구약성경 이사야를 통해 예수님께서 어떤 분이신 것을 소개해 주고 있습니다. “그가 찔림은 우리의 허물을 인함이요 그가 상함은 우리의 죄악을 인함이라 그가 징계를 받음으로 우리가 평화를 누리고 그가 채찍에 맞음으로 우리가 나음을 입었도다 (사 53:5)”
그리고 어떻게 하였습니까? 손을 내밀어 저에게 대었습니다. 율법에서 금한 일입니다. 스스로 율법을 어기는 일입니다. 모두 손을 대려고 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우리 예수님은 율법의 규범보다 사랑이 더 중요했습니다. 예수님은 그 나병환자에 무슨 말씀을 하였습니까? “원하노니 깨끗함을 받으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 말씀은 오늘 우리에게도 유효한 말씀입니다. 오늘 우리 주님 앞에 소원하는 것이 무엇입니까? 우리 주님 말씀합니다. “원하노니 깨끗함을 받으라” 지난 화요일 저녁에 문자 메시지가 왔습니다. 일산 암센타에서 집으로 가는 중인에 암검사 결과 괜찮다고 이제 의사가 오지 말라고 한다고 감사하다는 메시지였습니다. 메시지를 받고 무척 기쁘고 감사했습니다. 성도님들이 병이 들고 사업이 잘 안되고 고통스러운 일이 생기면 목회자도 무척 마음이 아프고 괴롭습니다. 몇 개월 전에 정기 검진으로 위에 종양같은 것이 있다고 진단이 나왔습니다. 다른 병원에서 검사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아직은 젊은 나이인데 수술을 받고 그 고통스러운 과정을 거쳐야 한다는 것이 마음이 아팠습니다. 우선 수술하지 말고 기도하자고 했습니다. 그동안 부부가 열심히 기도하고 저도 열심히 기도했습니다. 그런데 수술받지 않아도 되고 깨끗이 나았다니 얼마나 감사한 일이겠습니까? 부활하셔서 지금도 살아계서 역사하시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오늘 날도 우리의 부르짖음을 들으시고 응답해 주실 줄 믿습니다.

예수님이 불쌍히 여기시고 예수님이 손을 대시고 예수님이 원하시니까 결과는 어떻게 되었습니까? 42절을 보십시오. 곧 나병이 그 사람에게 떠나고 깨끗하여졌습니다. 예수님의 치료는 즉각적이고 완전한 것입니다. 베드로의 장모의 열병은 다음날까지 기다릴 필요없이 즉각적으로 떠났습니다. 중풍병자는 즉각 일어나 그 침상을 들고 걸어갔습니다. 한 편 손마른 자는 즉시 회복되었습니다. 죽었던 야이로의 딸은 한 순간에 일어났습니다. 전능하신 하나님이시며 참 인간이신 예수님의 전능하신 의지와 죄인을 불쌍히 여기는 예수님의 사랑과 긍휼이 결국 나병환자를 깨끗이 치료시킨 것입니다. 우리 주님이 원하시면 못 이룰 것이 없습니다. 이제 부모님을 만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이제 예배를 드릴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리운 친구를 자유롭게 만날 수 있고 사람답게 살수가 있게 되었습니다. 이제 손을 입에 대고 “부정하다. 부정하다.” 외치지 않아도 됩니다. 결혼하고 아들 딸 낳고 행복하게 살 수 있는 길이 열린 것입니다. 천대와 소외, 모든 고통과 공포에서 벗어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우리에게도 이런 역사가 있어야 합니다. 나병처럼 서서히 우리의 몸을 죽이고 있는 습관적인 죄가 예수 그리스도의 용서의 능력으로 이 시간 곧 떠나고 정상적으로 회복되는 역사가 있으시기 바랍니다. 우리의 생각을 나병처럼 서서히 죽여가는 잘못된 사고 방식이 예수님의 능력으로 곧 떠나버리고 정상적으로 회복되는 역사가 있으시기 바랍니다. 나의 신앙 생활의 진전을 가로 막는 나병처럼 나쁜 습관이 곧 떠나 버리고 깨끗하여 지기를 바랍니다. 내 인생을 나병처럼 붙들고 수렁으로 끌고가는 장애물이 곧 떠나 버리고 정상적으로 회복되기를 바랍니다.

2. 주님이 원하시는 대로...
정상적으로 회복된 나병환자에게 예수님은 무엇을 부탁하였습니까?
43절을 보시기 바랍니다. 예수님은 그에게 엄히 경계하였습니다. 무엇을 엄히 경계하였습니까? 세 가지입니다. 44절을 보십시오.
첫째는 아무에게도 말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둘째는 예루살렘 성전에 올라가 제사장에게 나병에서 깨끗이 나았음을 보여 주라는 것입니다.
셋째는 율법에 따라 예물을 드려 나병에서 치유되었음을 입증해 주라는 것입니다. 율법이 정한 예물은 산새 두 마리와 백향목과 홍색실과 우슬초입니다.(레 14:4) 8일 후에 다시 흠 없는 어린 수양 둘과 암양하나를 드리게 되어 있습니다.(레14:8) 이것은 먼저 하나님께 감사하라는 것입니다. 또한 교회의 법을 지키라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율법을 무시하지 않으셨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으로부터 치료받은 나병환자는 어떻게 하였습니까? 45절을 보십시오. 오히려 많은 사람들에게 전파하여 널리 알렸습니다. 예수님께 악의가 있거나 예수님의 사역을 고의로 방해하기 위해서 그렇게 하지는 않았을 것입니다. 수많은 세월 고통가운데 있던 그가 아무도 고칠 수 없고 그 병으로 결국 처절하게 죽어야 하는 그가 예수님으로부터 단숨에 고침을 받고 너무 놀랍고 기뻐서 자신에게 일어난 변화를 사람들에게 알리지 않고는 못 견디는 강한 충돌이 일어났을 것입니다. 아직은 어린 신앙인이기 때문에 예수님의 마음을 신앙적으로 깊이 헤아리지 못했을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의 말씀에 순종하지 못하고 감정적 충동에 자신의 입술을 맡겨 버렸습니다. 세 가지를 다 지키지 않았습니다. 그 결과 어떻게 되었습니까? 자신의 자유함을 받았지만 예수님은 구속되고 말았습니다.
예수님의 이적에 대한 열광적인 반응 때문에 동네로 들어가지 못하고 바깥 한적한 곳에 머물러야 했습니다. 예수님의 복음 전파사역은 심하게 위축을 받고 방해를 받았습니다. 갈리리 여러 마을 회당에 들어가 전도하는 사역이 방해를 받았습니다.
예수님이 그렇게 말씀하신 것은 예수님의 깊으신 뜻이 있어서였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그는 그것을 깨닫지 못한 것입니다.
소문을 냄으로 일반인들이 예수님을 오해하여 메시아적 사역을 방해하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서입니다. 단순히 기적을 일으키는 사람으로 오해되고 정치적 메시아로 드러나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서였습니다. 예수님은 이적을 행하는 자가 아니라 기쁜 소식을 전하는 자로 알려지기를 원했습니다. 성령으로 말미암아 사람의 마음을 움직여 그들을 구원으로 이끄는 것은 질병을 고치는 것이 아니라 말씀을 들음으로 이루어지는 것이었습니다. 예수님의 주목적은 하나님 나라를 증거하고 인류를 구속하는 메시아적 언약을 성취하러 오신 것입니다. 병 낫는 것보다 더 중요한 것은 구원받은 것입니다. 이 땅에 잠깐 치료되는 것보다 더 중요한 것은 치료하시는 주님을 보고 예수님을 메시아로 영접하여 천국 가는 것입니다. 이적을 행하는 것이 복음 전파와 인류 구원사역에 방해가 되어서는 안되기 때문입니다. 주님께서는 십자가를 지셔야 하는데 아직 때가 이르지 않았기 때문에 사람들의 열광으로 정한 때가 이르기 전에 위기를 당하기 원치 않았습니다. 그런데 그는 그것을 알지 못했습니다.
제사장에게 확인을 받으라는 것은 유대 공동체에서 그가 정상적인 활동을 할 수 있도록 만들어 주기 위해서였습니다. 그 당시 율법이 제사장이 판단을 해 줄 수 있도록 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당시 나병에서 치료되었다는 것은 제사장이 판단을 해 주었고 정상인이라는 판단을 받으면 이제 나병으로부터 자유의 몸이 되었습니다. 나병에서 치료되었음을 공식적으로 입증받는 것입니다. 제사장의 인정을 받아야 법적 효력을 가지고 정상적인 사회생활을 할 수 있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이 때까지 아무에게도 말하지 말라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뿐만 아니라 예수님은 이 사건을 통해 제사장이 예수님이 어떤 분이신가를 알기를 원했을 것입니다. 병고침을 받은 산증인을 통해 예수님은 예수 그리스도의 위대하심과 하나님의 율법에 순종하심을 논박할 여지가 없도록 증거하길 원했을 것입니다.

제물을 바치라는 것은 문둥병 환자가 정결케 되는 법적 절차였습니다. 번거로운 것이 아니었습니다. 손해되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그러나 이같은 예수님의 사려 깊은 의도는 치유받은 사람의 불순종 때문에 모두 묵살되었습니다. 그는 질병 속에서 “주님이 원하시면”이라는 신앙 고백을 하였습니다. 그러고 치유의 은혜를 받고는 “주님이 원하시는대로” 살아야 할텐데 주님의 원하심과는 무관하게 자기가 원하는 대로 살았습니다. 그는 치유의 은혜르 받고 자신이 과거에 문둥병자였는데 예수님이 깨끗하게 고쳐 주셨다고 많은 사람들에게 간증하였습니다. 물론 그 자체의 행위를 별도로 떼어놓고 본다면 아무 잘못이 없고 오히려 칭찬하고 격려해 주어야 할 일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의 의도와는 다른 것이었습니다. 우리가 신앙 생활을 할 때 늘 조심해야 할 것입니다. 자동차 악셀레이터가 속도를 내는 것이 제일이라고 자동차 운전사의 마음과는 전혀 상관없이 아무 때나 속도를 내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교회에서 기도의 능력이 있다고 찬송하는데 기도하고 있으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운동선수가 코치의 말을 듣지 않고 코치의 작전과는 전혀 상관없이 골을 잘 찬다고 풀백도 하다 골키퍼도 하다 윙 도하다 자기 맘대로 뛰어다니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담임 목사님께서 어떤 일을 시켜 놓으면 다른 교회 목사님과 상의 하여 그 일을 한다면 얼마나 우습겠습니까? 아내가 집안 일을 남편과 상의하지 않고 앞집 남자와 상의한다면 얼마나 웃기는 집안이겠습니까? 내 체험이 아무리 감동적이고 내가 위대한 체험을 했을 지라도 하나님의 일은 자기 맘대로 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뜻대로 해야합니다. 남이 할 수 없는 경험을 한 사람들이 쉽게 법하기 쉬운 잘못입니다. 하나님의 말씀보다 자기 경험, 자기 생각에 우선권을 둡니다. 자기 열심 자기 전략으로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의 일을 하시길 원치 않습니다. 하나님께서 주신 열심, 하나님께서 주신 전략에 따라 일하시길 원합니다. 거라사인의 지방에서 귀신이 들려 무덤 사이에서 살다가 예수님의 치유를 받았던 자는 문둥병자의 경우와는 정반대로 지시를 들었습니다. 그가 예수님과 함께 있기를 원했습니다. 이 때 예수님은 네 친속에게 고하라고 했습니다.(막5:20) 그는 구체적으로 그 지시에 따랐고 데가볼리에 있는 사람들은 예수님의 기적을 보고 "모든 사람이 기이히 여기더라"고 했습니다.(막5:20). 나중에 예수님은 데가볼리 지역에 들릴 때(7:31) 그 일로 말미암아 더욱 복음의 문이 열렸습니다. 그러나 오늘 은혜받은 한센씨 환자는 자기 마음대로 예수님의 하신 일을 전파했다가 주님의 복음 사역에 도움이 되기는커녕 오히려 방해만 하게 되었습니다(45절). 자신의 체험에 도취되어 예수님의 말씀이 귀에 들어오지 못하게 하면 안됩니다. 예수님의 말씀보다 자신의 경험을 앞세우면 자칫 잘못하면 오히려 열심히 내일을 잘 되지만 하나님의 일을 방해할 수 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광야의 사십 년간 방황한 까닭도 하나님의 연단과 훈련을 우습게 여기고 자기들 마음대로 주님을 섬겼기 때문입니다. 내가 스스로 하나님의 일을 돕고 교회 일을 돕고 목사님을 돕겠다고 생각하지 말고 주님이 구체적으로 나에게 무슨 말씀을 하는 주의 음성을 듣고 순종해야 합니다.

인간의 3대적은 “빈곤과 무지와 질병"이라고 말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오늘 예배드리며 나에게 있는 문제는 무엇입니까? 우리 주님 앞에 엎드려 내려 놓으시길 바랍니다. 주님께서 원하시면 모든 문제를 해결해 주실 수 있다고 간구하시길 바랍니다.
예수 그리스도가 누구입니까? 예수 그리스도는 우리를 구하려 하늘의 영광을 버리고 이 땅에 인간의 몸으로 오셨습니다. 우리의 죄를 사하려고 십자가에 못 박혀 죽었습니다. 우리를 의롭게 하기 위해 사망권세를 깨뜨리시고 죽은 지 사흘만에 부활했습니다. 우리를 존귀하게 높이려고 승천하셨습니다. 우리를 이기는 교회가 되도록 보혜사 성령을 보내주십니다. 우리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우리를 새 하늘과 새 땅의 삶으로 인도하려고 재림하실 것입니다.
우리가 영적으로 정신적으로 육체적으로 치유받기 위해서 주님께 나가가는 결단이 있어야 합니다. 오늘날 많은 방해물이 있습니다. 자신의 신념이 방해합니다. 자신의 지식이 장애물일 수도 있습니다. 체면이, 사회적 지위가, 교회 건물의 초라함이, 자신의 부와 명예가, 자신의 부가, 자신의 육체적 건강이 방해물일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 어떤 것도 영원한 생명보다 귀중한 것이 아닙니다. 건강 때문에 주님께 나오지 못한다면 오히려 질병에 걸려 주님께 나오는 것이 났습니다. 부 때문에 주님께 나오지 못한다면 오히려 망하여 주님을 만나는 것이 났습니다. 나병환자가 모든 장애물을 뛰어 넘어 주님께 나와 치유를 받았듯이 우리도 주님께 나아가는데 방해가 되는 모든 장애물을 제거하고 우리 주님께 나아가 엎드려 경배하며 겸손하게 주여 깨끗하게 하옵소서 주님이 원하시면 깨끗하게 회복될 줄 믿습니다. 간구해야 하겠습니다. 병원에 나가 병고치는 것은 때가 늦으면 회복불능상태가 되지만 우리 주님께 나오는 데에는 살아 있는 동안 늦은 시간이 없습니다. 언제든지 주님께 나오면 주님은 우리를 환영하고 그 크신 품으로 우리를 안아주실 것입니다.
고침 받은 후에는 어떻게 살아야 하겠습니까? 주님이 원하시는대로 살아야 하겠습니다. 인생의 축을 나에게 둠으로 오히려 주님의 일을 방해하는 삶을 살아서는 안됩니다. 주님 말씀 붙들고 주님의 뜻에 따라 순종함으로 승리하는 우리가 되어야 할 줄 믿습니다. 내가 중심 축이 아니라 주님이 중심 축이 되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열린교회/김필곤 목사/2006.12.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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