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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속을 회복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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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속을 회복하라
설교 : 김정태 전도사

말씀: 느헤미야 1:1-11

서론
585년 남 유다가 바빌론의 포로가 되어서 많은 종들이 바빌론의 포로로 잡혀갔습니다. 그러다가 바빌론의 고레스 왕이 첫 번째 귀환을 허락해 줍니다. 70년 동안 식민지살이를 하다가 두번째 아닥사스 왕 때에 에스라를 통해서 두 번째 귀환이 있습니다. 그리고 아닥사스 왕 때 세 번째 귀환이 있는데, 이것이 바로 느헤미야를 통해서 이루어졌습니다.
첫 번째로 에스라와 함께 돌아온 사람들이 성전을 재건하기 위해 많은 사람들을 데리고 갔지만 결국 실패합니다. 성경에는 종교개혁 운동이 많이 있었습니다. 요시아 왕의 종교개혁 운동도 유명했지요? 그런데 실패했습니다. 문제의 본질을 보지 못했기 떄문입니다.
누구나 개혁의 필요성은 느낍니다. 자신의 인생을 확 바꿔 놓을 놀라운 일을 꿈꾸는 것입니다. 그러나 문제의식을 있을지 모르지만 문제의 본질을 꿰뚫고 해결하는 사람은 적습니다. 우리에게 중요한 것은 문제를 나열하는 것이 아니라. 문제를 꿰뚫고 해결해 내는 능력입니다.
제가 신학교 다닐 때 가장 싫어했던 것중 하나가 이 교회에서는 안된다고 불평하는 말이었습니다.
신학생들만 모이면 온통 교회 문제와 교회의 부정적인 얘기들만 합니다. 교사들끼리 모이면 또 자신들 나름의 불만을 말합니다. 물론 교회가 잘못이 없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지금은 문제를 들어 불평할 때가 아니라 교회를 교회답게할 대안을 찾아야 할 때였습니다.
우리에게는 더 이상 문제를 나열하는게 필요하지 않습니다. 그 문제를 해결할 대안을 갖는 것이 필요합니다. 말이 없어서 나라가 망하는 것이 아니라 대안을 가지고 땀을 흘리는 사람이 없기 때문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IMF가 왔을때 우리 나라는 참 힘들 것이다, 이제 우리 가정은 참 힘들 것이다, 우리 기업은 참 힘들 것이다라고 말합니다. 이런 때 이런 교회에 왔으니 참 힘들 것이다. 그러나 많은 사람들은 문제를 의식하지만 그리고 걱정을 하지만 이 힘든 세상을 살아갈 방법을 가르쳐 주지는 않습니다.

기도의 사람
오늘 본문에 나오는 느헤미야는 어떻게 했습니까? 그의 동생 하나니아가 예루살렘을 다녀왔다는 소문을 듣고 물어보았습니다. 예루살렘이 어떻더냐?. 2차 귀환을 했는데 성전은 좀 잘 되었더냐? 물어보는 것입니다. 하나니야가 이렇게 대답합니다. 3절에 "그들이 나에게 대답하였다. 사로잡혀 오지 않고 그 지방에 남은 사람들은 고생이 아주 심합니다. 업신여김을 받습니다. 예루살렘 성벽은 허물어지고 성문은 다 불에 탔습니다." 아주 절망적입니다. 그때 느헤미야는 하나님께 나가서 부르짖습니다
저는 여기서 놀라운 한 희망을 보았습니다. 우리는 다 문제를 가지고 있고, 절망 가운데 있고, 오늘도 여전히 예루살렘 성벽이 무너져 내리는 것처럼, 우리들의 많은 기업들이 무너져 내리고 있고, 이 땅의 많은 가정들이 무너져 내리고 있습니다. 이 땅의 많은 교회들이 무너져 내리고 있습니다. 전혀 능력을 갖지 못합니다. 지금 많은 개척교회들이 간판을 내린다고 합니다. 오르는 임대료를 교회가 감당 할 수가 없는 것입니다. 그래서 아파트 단지나 도시 중심가에 전세를 들어 있는 교회들은 문을 닫습니다. 한 달에 50-100 만원 되는 월세를 감당할 길이 없어요. 문 닫고 무얼 하느냐 하면 먹고 사는 생존의 전선에 뛰어 듭니다. 하나님의 종으로 부름 받은 이들이 먹고 살 길이 없어서, 정말 생존을 위해서, 다 포기하는 것입니다. 저는 이런 얘기를 들을 때마다 분하고 원통합니다. 우리가 왜 이렇게 되었는가?
마치 삼손이 블레셋 사람들 앞에서 조롱받는 것과 같지 않습니까. 두 눈이 뽑히고, 두 팔이 놋쇠줄에 묶이고 감옥에서 연자 맷돌이나 돌리는 아무런 능력이 없는 상태로 전락합니다. 삼손은 당나귀 턱뼈 하나로 천명의 블레셋 군인을 죽인 괴력의 사람입니다. 힘이 없어서 눈을 뽑힌 것이 아닙니다. 나실인의 비밀을 지키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오늘 교회가 마치 눈 빠진 삼손과 같습니다. 머리 잘린 삼손과 같습니다. 오늘 성도와 교회들이 그렇습니다. 무너져 내리는 것 투성이입니다. 왜 그렇습니까? 교회를 지키는 사람들이 무너져 내리고 있습니다.
그러나 삼손이 마지막으로 하나님께 부르짖어 기도했습니다. "주 하나님, 나를 기억하여 주시기를 간절히 원합니다. 하나님, 이번 한 번만 힘을 주시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삼손은 여자의 꾐에 빠져 하나님과의 약속을 어겼지만 하나님은 삼손이 다시 주께 구하자 그에게 기회를 주었습니다.
남미의 해방신학자 세군도(Juan Luis Segundo)는 "기도는 사람의 한계에서 시작되는 것이다"고 했습니다. 여러분, 사랑은 분명히 사람이 할 수 있는 일 중 가장 고귀한 것입니다. 여러분이 사랑하는 사람에게 사랑의 마음으로 무언가를 해 줄 수 있는 일이 있다면, 그 일을 열심히 하십시오! 맛있는 것도 사 주십시오, 안아주세요, 머리를 쓰다듬으며 격려해주기도 하세요.
그러나 여러분, 우리가 살다보면, 사랑하지만 내가 해 줄 수 없는 것이 너무나도 많습니다. 아무리 사랑하는 내 자식일지라도, 내 몸처럼 아끼는 내 아내, 내 남편 일지라도 내가 아무 도움이 안되는 때가 있습니다. 내 사랑이 벽에 부딪칠 때가 있다는 말입니다. 여러분, 기억하십시오! 이 때가 바로 기도해야 할 때입니다. 여기서 참된 기도가 시작됩니다. 내 의지와 내 결심과 내 노력으로 할 수 없는 일 앞에 마주섰을 때, 그래서 그 앞에서 절망하게 될 때, 사랑의 마음으로 할 수 있는 것이 있다면, 그것은 기도입니다.

우리가 무엇이 문제인 줄 알아야 합니다.
느헤미야서는 역사책입니다. 그러나 느헤미야서에는 역사적인 사실보다 기도문이 더 많이 있습니다. 1장도 보면, 1절에서 5절까지는 역사적인 사실이고, 5절부터 11절까지는 기도문입니다. 느헤미야가 책을 서술하면서 왜 이렇게 할애했을까요? 우리는 그의 의도를 알아야 합니다. 느헤미야서는 더 이상 역사적인 사실을 나열하는 것으로 끝내고 싶지가 않은 것입니다. 그 속에 함께 하신 하나님의 능력을 증거하고 싶은 것이 느헤미야의 간절한 소원입니다. 무너져내리는 것 앞에서, 울면서 슬픔에 잠긴 채로 금식하며 그는 하나님께 아뢰었습니다.
여러분, 문제를 먼저 깨달은 자가 문제를 먼저 해결합니다. 문제가 생겼음에도 불구하고 문제가 아닌 것처럼 사는 사람들은 결코 문제를 해결할 수 없습니다. 또한 그 문제를 해결할 방법을 알고 있지만 단지 피해가려고만 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우리는 그것들을 피해 갈수 있는 여러지식들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래서 그 문제를 덥혀버리는 것입니다.
지금 느헤미야는 예루살렘과는 상관없이, 바벨론의 궁전에서 아닥사스 왕의 시중을 들면서 아주 잘 살고 있는 사람입니다. 오늘로 말하자면 경호실장 쯤 되는 사람입니다. 그 개인적으로는 아무런 문제가 없는 사람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자기 조국의 성벽이 무너져 내린 것을 보고 안타까워하고 이것이 문제인 것을 알고, 애통해 하고 금식하며 하나님께 부르짖었다고 했습니다
문제를 먼저 깨닫는 사람이 문제를 해결하게 되어 있습니다. 우리는 먼저 우리가 문제를 깨닫게 되기를 바랍니다. 우리가 한주를 시작함에 있어서, 우리가 승리하기 위해서 해결해야 할 문제가 무엇인가? 이 한 해를 승리하기 위해서 내 가정의 문제가 무엇이냐? 이 한해를 승리하기 위해서 우리 기업의 문제가 무엇이냐? 승리하기 위해 나 자신의 문제는 무엇인가 먼저 깨닫고, 그 문제를 붙들고 집중적으로 기도하고 씨름하게 되기를 바랍니다.

느헤미야의 기도문
1장 5절에, "주 하늘의 하나님". 느헤미야가 울고 금식하면서 하나님께 드리는 기도가 시작됩니다. "주 하늘의 하나님". 먼저 하나님은 땅의 하나님이 아니라 하늘의 하나님이십니다. 이 모든 것을 다 주관하시는 하나님이신 것을 느헤미야는 너무도 분명하게 믿었습니다. "하늘 하나님이시여, 위대하고 두려운 하나님, 주를 사랑하는 이들과 세운 언약, 주의 계명을 지키는 이들과 세운 언약을 지키면 은혜를 베푸시는 하나님"(5).
느헤미야의 하나님에 대한 고백이 얼마나 대단한지 보세요. "주를 사랑하는 이들과 세운 언약" 여러분, 우리 성서가 원래 언약의 책이잖아요? 구약과 신약입니다. 옛날 약속 새로운 약속이라는 뜻이 성경의 이름입니다. 그래서 성서의 모든 맥은 언약입니다. 아브라함을 불러 내가 너와 언약을 맺겠다고 했거든요. 그래서 이 언약에 관한 믿음이 없이는 믿음으로 살 수가 없습니다. 느헤미야는 지금 놀라운 고백을 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언약을 누구와 세우는지 아십니까? 주의 계명을 지키는 이들과 언약은 세우는 것입니다. 우리들도 약속을 지킬 수 없는 이들과는 약속을 하지 않습니다. 매일 약속을 어기는 사람과는 약속을 하지 않습니다. 또한 약속을 지킬 능력이 없는 사람과는 약속하지 않습니다. 무엇보다 가장 중요한 것은 약속을 지킬 마음입니다.
그 사람이 약속을 지킬 아무런 능력과 아무런 의사가 없다면, 그 사람과 계약을 어떻게 하겠습니까? 그래서 주의 계명을 지킬수 있는 사람들과 하나님은 약속을 합니다. 구원을 약속합니다. 우리가 성도가 되었다는 것은 하나님이 여러분을 약속을 지키는 사람으로, 지킬수 있는 사람으로 인정했다는 것을 말합니다.
우리는 이 언약이 힘겹게 느껴질때가 있습니다. 하지만 계명은 나에게 불리하더라도 지켜야 합니다. 그것은 약속이기 때문입니다.

언약의 퇴출자
축구를 하는데, 심판이 우리 팀에게 파울을 준다고 해서, "심판이 불공정하다, 엉터리다" 하면서 불평만 한다면 그 사람은 결국 경기장을 떠나야 합니다. 그 사람은 축구 경기에서 결코 승리를 가지지 못할 것입니다. 자신이 불리하다 느낄 때마다 경기를 포기하는 사람은 결코 승리할 수 없습니다. 계명은 우리에게 불리하다고 하더라도 지켜야 하는 것입니다.
성서의 수많은 하나님과의 약속 가운데 우리에게 주신 계명들, 때때로 힘들고 어려운 것들이 많지만, 그것을 이기고 지키는 자들에게 하나님은 약속은 분명히 성취됩니다. 지금 내 상황에서 그것을 지키는 것이 상당히 힘이 들어도 지키는 자가 마침내 승리할 수 있고, 지키지 못하면 우리는 끊임없이 퇴장 당하고 맙니다. 하나님과 우리들의 게임에서 우리는 끊임없이 퇴출자가 되어버리고 맙니다. 한 번도 주인공이 되지 못하고, 한 번도 승리자가 되지 못하고 말입니다. 주님의 놀라운 언약은 어디서부터 시작되는 것 입니까, 계명을 지키는 이들과 함께 시작됩니다.

거룩한 관심
그 다음에, "이제 이 종이 밤낮 주 앞에서 주의 종 이스라엘 자손을 위하여 드리는 이 기도에 귀를 기울이시고, 살펴주십시오".(6) 사실, 느헤미야는 그 전부터, 조국의 성벽재건을 위해서 끊임없이 기도했던 것을 우리가 알 수 있습니다. 그래서 그는 하나니야가 돌아왔을 때에, 가장 먼저, "우리 가족들이 어떻게 지내느냐?" 이런 것은 묻지 않고 "하나님의 성벽이 어떻게 되었느냐?"를 물었습니다. 여러분, 기도하는 사람이 가장 궁금해하는 것이 무엇입니까? 기도에 대한 응답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그 사람이 가장 먼저 관심 갖는 것을 보면 그 사람의 기도의 방향을 알 수 있습니다.
우리가 지금 관심하고 있는 일이 하나님의 일이 아니라면 회개해야 합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주신 약속을 잊어 버리고 있다는 것을 의미하기 때문입니다.

결론
이제 우리들에게 날마다 이런 거룩한 관심들이 많아지게 되기를 바랍니다. 잡다한 세상의 관심, 어떤 옷을 입었느냐, 무얼 먹었느냐, 어떻게 지냈느냐, 오늘 어떤 일을 했느냐, 이런 것보다 우리가 소원하고 기도한 것이 하나님 앞에서 어떻게 이루어지고 있는가를 날마다 관심하고 그것에 우리의 물음을 던질 수 있는 우리가 되기를 바랍니다.
우리들의 교회도 허망하고 가치 없는 것들에 관심하지 말고, 정말로 하나님이 이 교회를 통해 이루고 소원하는 것들에 관심하게되시길 바랍니다. 우리의 가정도 세상의 풍속에 관심하지 말고, 하나님이 우리의 가정을 위해 계획하시고, 우리를 향해 소원하는 것들에 먼저 관심 할수 있는 여러분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그래서 주의 약속을 회복하시는 성스러운 주의 자녀가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을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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