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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은 반칙왕

본문

하나님은 반칙왕
설교 : 김정태 전도사
말씀 :(눅 15:25-32)
『[25] 큰 아들이 밭에 있다가 돌아오는데 집에 가까이 이르렀을 때에 음악 소리와 춤추면서 노는 소리를 듣고,
[26] 종 하나를 불러서 무슨 일인지를 물어 보았다.
[27] 종이 그에게 말하기를 아우님이 집에 돌아왔습니다. 건강한 몸으로 돌아온 것을 반겨서 주인 어른께서 살진 송아지를 잡으셨습니다 하였다.
[28] 큰 아들은 화가 나서, 집으로 들어가려고 하지 않았다. 아버지가 나와서 그를 달랬으나,
[29] 그는 아버지에게 말하였다. 나는 이렇게 여러 해를 두고 아버지를 섬기고 있고 아버지의 명령을 한 번도 어긴 일이 없는데, 내게는 친구들과 함께 즐기라고 염소 새끼 한 마리도 주신 일이 없습니다.
[30] 그런데 창녀들과 어울려서 아버지의 재산을 다 삼켜 버린 이 아들이 오니까, 그를 위해서는 살진 송아지를 잡으셨습니다.
[31] 아버지가 그에게 말하기를 얘야, 너는 늘 나와 함께 있지 않느냐 ? 또 내가 가진 모든 것은 다 네 것이 아니냐 ?
[32] 너의 이 아우는 죽었다가 살아났고, 내가 잃었다가 되찾았으니, 즐거워하고 기뻐하는 것이 마땅하지 않겠느냐 ? 하였다. "』


서론
아침에 신문이나 tv를 보는 사람이라면 하루도 기분 나쁜 소식을 듣지 않고 넘어가는 날이 없을 것입니다. 우리들에게 정보를 제공한다고 자처하는 거의 모든 매체들은 세상을 살면서 반칙을 일삼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아침마다 넉넉히 들려줍니다.
요즘들어 고위 공직자들이 벌이는 초특급 비리를 보고 있노라면 이놈의 세상이 어떻게 되어먹으려고 저려는지 걱정이 앞서게 됩니다. 하지만 좀 깊이 생각해 보면 사실 반칙이 없는 세상은 없었던 것 같습니다. 인류는 문명을 발전시켜 오면서 수없는 법을 만들어 왔지만 그와 반대로 그 규칙을 깨트리는 일을 수없이 자행해 왔습니다.
얼마전 읽은 글 중에 우리나라 반칙의 역사를 정리한 글이 있었는데 이 글을 보면 조선시대가 시작하면서 부터 반칙은 시작되었다고 말합니다. 1388년 이성계는 요동 출장군의 사령관으로 임명되어 임금과 최고 지휘관인 최영 앞에 엄숙히 명령을 받들어 전쟁임무를 충실히 수행하기로 하늘과 임금을 두고 서약했습니다. 하지만 그는 위화도에 다달아서 군대를 되돌려 자신이 국가를 공격합니다. 이유는 물론 있습니다. 작은 나라가 큰 나라를 징벌할 수 없다는 것. 여름 장마철이어서 활줄이 풀리고 군사들 사이에 질병이 만연할 것, 따위의 구실을 붙여 회군하게 됩니다. 회군의 명분치고는 거의 사리에 어긋나는 이야기입니다.
이성계는 이런 명분으로 출정을 거부하려했다면 최고사령관으로서 처음부터 사리를 들어 이를 반대했어야 옳았을 것입니다. 그런데도 개성에서 참모회의를 할 때에는 아무 의의를 달지 않다가 중간에서 군사를 돌렸던 것입니다. 그는 이렇게 반칙을 구사해 쿠데타를 성공시켰습니다. 반칙으로 쿠데타를 성공시킨 악성전통은 이때 세워졌습니다. 반칙왕의 자식은 거의가 반칙왕이었습니다. 이방원 태종도 순 반칙쟁이였습니다.
세종대왕의 둘째 아들 수양대군도 대표적인 반칙왕입니다. 그는 왕자였는데 왕자와 같은 종친이나 임금의 사위인 부마는 현직에 나갈 수 없는 것이 조선왕조의 기본 정책이었습니다. 그는 수많은 반칙을 저지른 끝에 왕위 계승의 원칙인 소목(昭穆·임금은 아들이나 조카의 대를 잇지 않음)의 질서를 무너뜨린 군주가 되었습니다. 그의 이런 반칙은 왕가의 질서를 문란케했고 왕위 계승의 나쁜 선례를 만들었습니다.
이런 반칙의 역사는 19세기에 들어서도 계속됩니다. 그 주인공이 바로 흥선대원군과 민비입니다. 흥선대원군과 민비(명성황후)는 시아버지와 며느리 사이이면서 정치권력을 두고 치열한 갈등과 쟁투를 벌였습니다. 엄밀한 의미에서 두 사람은 정치권력을 거머쥘 아무런 명분이 없었습니다. 그러나 두 사람은 임금의 아버지와 아내라는 지위를 이용해 정치판을 어지럽혔습니다. 두 사람은 최소한 고부간의 윤리도 지키지 않았고 국가 이익을 저버린 채 음모의 술수로 대결을 벌입니다. 이 두 사람이 룰을 무시한 행동은 나라를 구렁텅이로 몰아가고 결국 일제의 강점으로 이어지는 비극적 역사의 동인의 되었습니다.
해방 뒤의 사정도 다를 바가 없었다. 이승만은 독재정권을 구축하면서 헌법의 규정을 무시하고 3선 개헌을 단행했습니다. 그 과정에서 최소한도의 절차도 무시하고 이른바 ‘4사5입’이라는 해괴한 숫자놀음을 벌이며 3선 개헌안을 통과시켰던 것입니다. 박정희 군사정권은 이보다 한술 더 떴습니다. 무리한 방법으로 3선 개헌을 단행하여 한번 더 대통령이 되고도 다시 유신헌법을 제정해 체육관 대통령이 되었고 유정회라는 이름으로 자신이 국회의원 3분의 1의 의석을 임명하기까지 했습니다.
이런 정치적 반칙은 그대로 전두환 일당의 신군부에게 전해져 우리 민주주의 질서를 파괴했고 대의정치의 앞길을 가로막았습니다. 이런 해방 뒤의 정치적 반칙은 이념적 지향이 아니라 정치권력을 잡기 위한 방편으로 구사되었습니다. 덕분에 정통성이 없는 군부독재는 미국에게 자신의 권력을 유지하기 위해 국가의 이익을 팔아 먹는 수 많은 행위를 서슴치 않았습니다. 지금 문제가 되고 있는 미군과 맺은 소파(대한민국과 아메리카 합중국간의 상호방위조약 제4조에 의한 시설과 구역 및 대한민국에서의 합중국 군대의 지위에 관한 협정- Agreement under Article 4 of the Mutual Defence Treaty between the Republic of Korea and the United States of America, Regarding Facilities and Areas and the States of United Armed Forces in the Republic of Korea - 약칭 SOFA(Status of Forces Agreement)의 불공정 협약은 그런 과정중에 생겨난 것임은 더 이상 설명할 필요가 없습니다.

본론
오늘 우리가 읽은본문 말씀은 아주 유명한 말씀입니다. 하지만 사실 오늘 본문으로 읽은 말씀은 그다지 많이 설교의 본문으로 사용되지 않았습니다. 앞에 나오는 탕자의 이야기만으로 도 주님이 주시려는 이야기가 너무가 크고 놀랍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주님께서 직접 주신 이 생명의 말씀 전체를 가만히 살펴보면 앞에 기록한 탕자의 비유보다 아버지와 함께 묵묵히 성실히 살아간 이 큰아들의 이야기가 우리와 더 어울리는 이야기란 사실을 쉽게 깨달을 수 있습니다.

오늘 성경말씀의 앞부분은 잘 아시겠지만 그의 동생이 엄청난 반칙왕임을 보여 줍니다. 앞에서 장황하게 말씀드린 반칙의 역사 못지 않게 범상치 않는 행동을 했던 그런 사람이었습니다. 오늘 우리가 봉독한 본문 누가복음15:11절을 보니까 작은 아들이 아버지를 찾아가 자기 몫을 내어 놓으라고 합니다. 쥐뿔도 없는 놈이 이렇게 당당하게 아버지에게 자기 몫을 달라고 할수 있는 근거가 무엇입니까? 그것은 요즘말로 하면 재산을 상속해 달라고 하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재산 상속이 무엇입니까? 바보가 아닌 다음에야 이 물음에 답하지 못하는 사람은 없을 것입니다. 브리테니커 백과사전을 보니까 괜시리 어렵게 이렇게 써 있었습니다. 『피상속인의 사망에 의해 상속인이 피상속인에 속하던 모든 재산상의 권리·의무를 포괄적으로 승계하는 것.』 이렇게 힘들게 말할 필요 없이 간단히 부모가 죽으면 받는 재산, 그것이 되는 것입니다. 두 말할 필요없이 부모가 돌아가셔야지 상속을 받습니다. 상속이란 그런 전재에서 되어지는 것입니다.
그런데 오늘 본문에 나오는 아들은 아버지가 버젓이 살아 있는데 상속을 해 달라고 하는 것입니다. 좀 비약이 심하지만 아버지가 죽은걸로 치고 달라는 것입니다.
에이 전도사님 언제 죽으라고 했습니까? 그래요 죽으라고 말한적은 없습니다. 하지만 그가 아버지에게 자신의 분깃을 달라고 말하고 있다는 것은 아버지가 죽으면 어짜피 내것이 될 것이니까 달라는 말이 아니고 무엇이겠습니까? 이런 놈을 천하게 후레자식이라고 합니다. 반칙도 이런 반칙은 없습니다. 부모의 목숨을 담보로 재산을 받는 상속의 행위를 그는 부모가 살아 있을 때 요구하고 있는 것입니다.
아미 그 반칙왕 아들의 말로가 어떻게 되었는지는 여러분이 저보다 더 잘 알 것입니다. 오늘 우리가 읽은 성경말씀은 그가 반칙왕으로 살다가 재산을 다 탕진하고 그의 옛집으로 돌아온 다음부터 진행된 이야기입니다.
오늘 이야기는 아버지 밑에서 반칙할 생각은 하지도 않고 작은 아들이 반칙을 저지르고 도망가는 바람에 그놈에 일까지 묵묵히 해내던 큰 아들이 하루종일 일해서 힘이 다 풀린 손과 발을 이끌고 자신의 집으로 돌아오는 장면부터 시작됩니다. 집으로 돌아오는데 저 멀리 자신의 집에서 음악소리와 춤추며 노는 소리가 나는 거에요?
26절을 보니까 그 큰 아들이 종에게 물었다고 했습니다. 종의 대답은 반칙왕 작은아들이 돌와 왔다는 것이었습니다. 큰아들은 눈에 핏발이 섰습니다. 집안을 말아먹고 도망간 놈이 다시 돌아오다니 이것도 참으로 수 없는 일인데 그 천하의 반칙왕이 돌아 왔다고 잔치를 벌여!
그동안 큰 아들은 아버지 밑에서 뼈빠지게 일을 해도 자신에게는 한번도 그런 일을 베풀어 주신 적이 없었기 때문에 더욱 화가 났습니다. 그는 집에 들어가기 싫었습니다. 왜 그랬을까요? 두말하면 잔소리 아버지가 싫어진 것입니다. 왜 아버지가 싫어 졌습니까? 실망한 것입니다. 공의만을 베푸신다고 생각했던 아버지가 반칙왕을 편들다니, 그는 아버지도 반칙을 하고 있다고 생각하게 되었던 것입니다.

우리도 살다보면 적지 않게 이런 반칙을 저지르는 것 같은 하나님을 발견하게 됩니다. 분명히 하나님의 심판이 따라야할 일이 그냥 넘어가고 천하게 후레자식들이 잘 먹고 잘사는 꼴을 본다는 것입니다. 누구는 한번에 몇억 몇천억씩 뇌물을 먹고 누구는 반칙으로 나라를 차지하고 호의호식하면서 사는데 큰 아들처럼 논밭에서 죽도록 일만하면서 살아도 염소새끼는 고사하고 닭똥집 하나 꽁짜로 먹는 경우가 없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반칙입니다. 어떻게 보면 아버지에게 자신의 몫을 달라고 한 아들이 저지른 반칙을 아무렇지도 않게 생각하시는 것 같습니다. 그 반칙을 그냥 덥어주시잖아요? 그래서 우리는 골이 납니다. 교회에 가고 싶지 않습니다. 하나님이 미워지기도 합니다.

오늘 우리가 봉독한 하나님의 말씀은 이런 마음을 가진 우리들에게 너무도 중요하고 보석처럼 소중한 2가지 이야기를 들려 줍니다. 이 말씀이 여러분의 삶속에 생명이 되시길 바랍니다.
31절을 보니까 아버지가 입이 이만큼 나온 그의 큰 아들에게 말하기를 먼저 "너는 늘 나와 함께 있지 않느냐?" 라고 말합니다.
함께 있음!, 함께 있음!, 단순하게 생각한다면 이게 뭐 그리 중요한 일이냐고 말할수도 있을 것입니다. 이 함께 있음의 의미를 잘 아는 사람들은 아마 이산가족이나 실향민 같이 함께 있지 못한 삶을 살고 있는 사람들일 것입니다. 그들은 전쟁통에 가족과 고향을 잃었습니다. 30-40년을 떨어져 살면서 그리워 합니다. 함께 쭉 살았다면 다투기도 하고 미워하기도 했을지 모릅니다. 그걸 그들이 모르는 것이 아닙니다. 하지만 함께 하지 못했다는 이유만으로 그들은 피끓는 실향민의 고통을 안고 살아 갑니다. 그리워 합니다. 얼마전 김대중 대통령이 김정일과 만난다는 보도가 있었습니다. 김대중 대통령이 말하기를 김정일과 만나 가장 먼저 다룰 것이 실향민의 문제라고 했습니다. 그들이 다시 함께 할 시간이 많지 않다는 것이 이유였습니다. 한을 풀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어떻게 푸는 것입니까? 함께 하는 것입니다. 함께함은 우리의 가장 중요한 문제를 해결하게 하는 힘이 됩니다.
다른 차원에서 이 함께 있음은 누구와 함께하는냐를 통해 또 그 의미를 가지게 됩니다. . 우리는 매일 함께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하지만 그들에게 우리는 늘 그리움 고마움을 나누게 되는 것은 아닙니다. 오늘 본문속에서는 말씀하시길 큰 아들이 아버지와 함께 있었음을 말합니다. 형제, 자매, 친척, 사촌과 함께 있음도 중요하지만 오늘 이 본문은 아버지와 함께 있음을 말합니다.
아버지의 형상은 개인마다 다릅니다. 하지만 오늘 말씀의 아버지는 사랑입니다. 천하의 반칙왕에게도 사랑을 허락하는 바다같은 마음을 가진 아버지. 우리가 어렸을 때 아버지와 함께 있으면 두려울 것이 없었습니다. 늘 내편이셨고 든든했습니다. 아버지는 우리의 잘못을 책망하시는 분이지만 그것은 사랑이셨습니다. 용서였습니다. 그런 아버지와 큰 아들은 함께 할수 있었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예수님를 믿는다는 것은 아버지와 함께 함을 말합니다. 세상을 창조하시고 세상을 주관하시는 하나님 아버지와 함께 있음을 말하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이 사실보다 더 기쁘고 놀라운 일이 어디있겠습니까?

31절은 또 하나의 중요한 사실을 말합니다. 아버지가 말하기를 "내가 가진 모든 것은 다 네 것이 아니냐?"라고 말합니다. 모든 소유가 너의 것이라고 말합니다.
주안에 산다는 것 그것은 하나님의 나라의 주인이 된다는 것입니다. 늘 살찐 송아지 고기를 자주 먹지는 못했을 지라도 아버지의 것 즉 참되고 복된 것이 바로 우리의 것이 된다는 놀라운 사실입니다.

결론
오늘 본문 32절을 통해 우리는 우리를 사랑하시는 하나님의 마음을 만날 수 있었습니다. 32절에 말씀하시기를 "너의 아우는 죽었다가 살아났고, 내가 잃었다가 되찾았으니, 즐거워하고 기뻐하는 것이 마땅하지 않겠느냐?"라고 말합니다. 우리의 아버지가 하시는 말씀입니다.

우리는 자주 하나님이 반칙을 저지른다고 생각합니다. 공의를 외면하고 죄와 악을 감싸주시는 것처럼 보이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오늘 우리가 봉독한 하나님의 말씀은 이런 생각이 우리의 어리석음으로 인함임을 깨닫게 합니다. 반칙왕들! 그들도 사랑하시는 하나님이시지만 오늘 말씀을 통해 더욱 우리를 감격케하는 것은 묵묵히 아무말 없이 하나님 아버지를 따랐던 그의 아들에게 베푸시는 놀라운 은혜를 발견할수 있다는 것입니다. .

물론 작은 아들에게 아버지는 좋은 것으로 함께 하실 것입니다. 하지만 그에게는 우리가 아버지와 함께 함으로 누렸던 놀라운 축복의 시간을 놓쳐버리는 인생을 살게 되었다는 사실도 우리는 기억해야 합니다.

하나님안에 사는 일을 참으로 복되 일입니다. 우리는 작은 아들의 어리석은 경험을 반복할 필요가 없습니다. 우리가 이렇게 주 안에서 살게 되었다는 사실은 정말로 기쁘고 즐거운 일입니다. 주님 안에서 주의 일을 위해 살고 있음을 더욱 감사하시기 바랍니다. 이는 바로 주의 나라가 우리의 것이 되는 일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반칙의 의미를 깨닫게 되시기를 바랍니다. 반칙처럼 보이지만 하나님의 반칙은 사랑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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