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려워 하노라
본문
(고린도후서 11:1~15)
박해 앞에서도 사자같이 담대하고 죽음이 기다리고 있음에도 목숨을 아까워하지 않고 은혜의 복음을 전하던 사도바울이(행20:24) 두려움에 떨고 있습니다.
성도님은 지금 두려워하고 있는 것이 있습니까? 건강때문입니까? 자녀때문입니까? 빚때문입니까? 직장때문입니까? 신앙이 떨어진 것 때문입니까?
두려움은 우리를 긴장시킵니다. 그리고 근심하게 만드는 것입니다. 어떤 때는 몸을 손상시키기도 합니다. 마음에 평안이 사라지기도 합니다.
그런데 믿음의 사람 바울이 지금 두려움에 떨고 있습니다. 무엇때문입니까? 3절에서 밝히고 있습니다. “뱀이 그 간계로 하와를 미혹한 것같이 너희 마음이 그리스도를 향하는 진실함과 깨끗함에서 떠나 부패할까 두려워하노라” 고린도 성도들이 거짓사도요 속이는 일꾼들에게 미혹이 되어 순수신앙을 잃어버리고 그리스도를 떠나든지 아니면 교회의 분란을 야기시켜 복음전파의 길을 막고 성도들의 신앙을 무너뜨리는 일이(고후10:4) 일어날까 보아서였습니다. 바울은 28절에서 “수많은 고난과 박해는 고사하고 아직도 날마다 내 속에 눌리는 일이 있으니 곧 모든 교회를 위하여 염려하는 것이라”고 하였습니다. 참사도요 목자의 심정을 그대로 표현했습니다.
안디옥의 담임목사도 부목회자도 모든 목자들도 이같은 심정일 것입니다.
바울이 고린도 성도들의 신앙이 미혹받을까 보아 두려워 떨고 있는 것으로 끝났다면 그는 매우 연약한 신앙인이라고 평가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바울은 그렇지 않았습니다. 그 두려워하는 일을 방지하기위해서 행동하는 신앙인이 되었습니다. 지금도 좋은 지도자는 두려워하고만 있지 않고 그 일을 방지하기 위해서 행동하는 것입니다. 그 모습을 바울에게서 배웁시다. 그리고 위험에 노출되어 있는 성도들은 내가 무엇을 조심해야만 바르고 건강한 신앙생활을 할 수 있는가를 배우시기 바랍니다.
첫째 하나님의 열심으로 열심을 내었습니다.(2절)
바울은 대적자들에 의해 미혹되었던 고린도 성도들이 그들의 간사한 혀 끝에 놀아난 것을 한탄하면서(3절) 속지 않도록 하기 위해 할 수 없이 자기 자신의 삶을 자랑할 수 밖에 없음을 용납하라고 하였습니다. 이같은 어리석은 일은 고린도 교인들이 억지로 시켰다고 12:11절 “내가 어리석은 자가 되었으나 너희가 억지로 시킨 것이니 나는 너희에게 칭찬을 받아야 마땅하도다 내가 아무것도 아니나 지극히 크다는 사도들보다 조금도 부족하지 아니하노라”라고 표현하였습니다.
그리고 자신의 열심을 자랑하였습니다. 바울은 고린도교회를 섬길 때 하나님의 열심히 고린도 성도를 위하여 열심을 내었다고 하였습니다. 이 모습은 참 목자의 모습입니다.(요10:11)
바울의 목표는 고린도 성도들의 성결함이었습니다. 성숙한 신앙인의 모습입니다. 그래서 한 남편인 그리스도를 맞이하게 하기 위함이었습니다. 예수님을 구주로 고백했으면 이제 신앙이 성숙해서 성결해져야 재림의 주님을 맞이할 수 있습니다. 거짓사도들은 달콤한 말로 값싼 은혜의 말로 성도를 미혹합니다. 그것이 편안하고 좋고 위로받고 소망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그것은 신기루인 것입니다. 참 목자는 진실함과 깨끗함으로 살도록 열심을 내서 양육하고 훈련시키는 것입니다.
성도여! 어떤 신앙인이고 싶습니까? 값싼 은혜의 착각 속에 살다가 버림받겠습니까? 값비싼 댓가를 치룬 값비싼 은혜로 당당하고 행복한 신앙인이 되겠습니까?
둘째 성도는 높이고 자신은 낮아졌습니다.(7절)
바울의 전반적인 삶이 성도를 위한 삶이었습니다. 하나님의 아들이 죄인을 구원하기 위해 자신을 낮추어 이땅에 오셔서 대속의 십자가를 지심은 모든 사도의 모델인 것입니다. 그러나 그렇게 살지 않고 모든 권리를 다 찾아 먹고 성도 위에 군림하면서 말로 위하고 칭찬하는 혀끝의 거짓 사도들이 있습니다.(3절) 성도들이 하와가 속듯 이들에게 너무나 쉽게 속아 넘어가기에 바울은 부득불 자신이 낮아진 것을 말하게 되었습니다. 그것은 자비량을 한 것입니다.
바울은 고린도 교인들에게서 생활비를 받지 아니하고 사역을 했습니다. 생활을 위해 아르바이트를 했고 모자란 경비는 바울이 개척한 여러교회들 특히 마게도냐의 가난한 교회들이 재정을 보내주어서 사역을 하였습니다.(8~9절) 그런데 대적자들은 그것을 탈취한 것이라고 악담을 하여 고린도 성도들이 마치 바울이 죄를 지은 것처럼 생각했습니다.(7절) 그래서 바울은 자신이 고린도에서 자비량했고 다른 교회성도들이 기쁘게 헌금하여 그 돈으로 너희를 섬겨 값없이 복음을 전한 것이 도리어 죄가 되느냐고 책망하였습니다.
저도 안디옥에서 28년 사역가운데 개척 3년째 교회 재정의 어려움 때문에 1년간 자비량 하였고 지난 1999년부터 2005년 중반까지 7년 가까이 자비량을 하고 2005년 중반부터 건축헌금을 작정해서 그 건축헌금으로 교회에서 매월 일정액을 주어 100%로 들어가고 있기에 현재 9년째 자비량을 하고 있습니다.
교회가 재정이 어려워 그러기보다 내가 하나님께 내 삶을 드리고 안디옥공동체를 섬기고 싶어서입니다. 물론 내가 공적사역을 하는 일을 위해 교회가 비용을 다 담당하고 있습니다. 단지 사적인 삶을 위한 생활비를 드리고 있을 뿐입니다.
저 역시 무익한 자랑을 한 것 같습니다.
셋째 성도에게 폐를 끼치지 않으려고 조심하였습니다.(9절)
성도의 신앙에 지장을 줄까보아 절대로 사적인 폐를 끼치지 아니하였습니다. 특히 경제적으로 사적인 부탁이나 짐을 지우지 아니하였습니다. 이는 고린도교회 뿐만 아니라 어디서든지 그런 모습이었습니다. 이것이 성도를 사랑하는 사도의 모습이었습니다.(행20:33~35) 거짓 사도나 건강하지 못한 목자는 성도에게 물질적 폐를 끼치고 인격과 신앙에 폐를 끼치는 사람입니다. 처음에는 매우 은혜롭게 천사처럼 접근하나 나중에는 온갖 부담을 주는 것입니다. 성도여! 조심하십시오.
넷째 계속같은 모습으로 사는 것입니다.(12절)
“나는 내가 해 온 그대로 앞으로도 하리니 기회를 찾는 자들이 그 자랑하는 일로 우리와 같이 인정받으려는 그 기회를 끊으려 함이라”고 하였습니다.
간사한 혀끝으로 미혹하는 자들이 기회를 보아서 또다시 고린도 성도들에게 미혹하여 인정받는 것을 끊기 위해 바울이 지금까지 살아온 그 모습으로 살겠다는 것입니다. 그것은 거짓선지자나 악한 목자들은 이 모습을 흉내는 낼 수 있을지 모르나 계속 할 수는 없기 때문입니다.(13~15 읽음)“그런 사람들은 거짓 사도요 속이는 일꾼이니 자기를 그리스도의 사도로 가장하는 자들이니라 이것은 이상한 일이 아니니라 사탄도 자기를 광명의 천사로 가장하나니 그러므로 사탄의 일꾼들도 자기를 의의 일꾼으로 가장하는 것이 또한 대단한 일이 아니니라 그들의 마지막은 그 행위대로 되리라”
성도여! 속지 마십시오. 그리고 바르고 건강한 목자를 사랑하고 따르고 순종하십시오.
그것이 목회자와 목자들의 마음에 두려움이 사라지고 평안을 주는 일이요 여러분이 복받는 행복한 길이기 때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