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원한 행복의 길
본문
설 교 : 조 용 기 목사
말 씀 : 창 1: 31
“하나님이 지으신 그 모든 것을 보시니 보시기에 심히 좋았더라 저녁이 되고 아침이 되니 이는 여섯째 날이니라”
[서론]
저는 오늘 여러분과 함께 ‘영원한 행복의 길’이라는 제목으로 말씀을 나누고자 합니다.
좋아하는 사람을 만나면 기쁘고 행복해집니다. “아이고 정말 반갑다. 오래간만이다.” 굉장히 기쁘고 행복해 집니다. 좋아하던 물건을 손에 넣었을 때나 좋아하던 일이 성취 되었을 때 마음이 기쁘고 행복합니다. 그러나 인생은 항상 좋아하는 일만 있지 않습니다. 싫어하는 사람들, 환경을 늘 만나게 되고 슬프고 탄식하고 불행해질 때가 많습니다.
[본론]
1. 행복하신 하나님
하나님은 행복한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은 천지와 만물을 지으시고 보시기에 심히 좋았다고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 보시기에 심히 좋으셨으니 하나님이 얼마나 기뻐하시겠습니까? 기뻐하시면 행복해지는 것입니다.
창 1:31에 “하나님이 지으신 그 모든 것을 보시니 보시기에 심히 좋았더라 저녁이 되고 아침이 되니 이는 여섯째 날이니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좋은 천지를 지으시고 하나님은 그 가운데서 대단히 기뻐하신 것입니다. 빛을 보시고 기뻐하시고 바다와 육지와 초목을 보시고 기뻐하시고 해와 달과 별들을 보시고 기뻐하시고 새와 물고기와 곤충과 짐승들을 보시고 기뻐하셨으며 아담과 하와를 지으시고 얼마나 하나님은 기뻐하셨는지 모릅니다. 좋아하고 기뻐하면 행복해지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천지와 만물을 지으시고 좋아하시고 기뻐하시고 행복하셔서 굉장히 너털웃음을 웃으시고 즐거워 하셨습니다. 여러분 웃으시는 하나님을 상상해 볼 수 있습니까? 뭐를 하나님이 거룩하고 점잖으신 분이신데 너털웃음을 웃으실까? 그렇지 않습니다. 우리 사람들이 좋아하고 기뻐하고 행복하면 웃잖아요. 토고와 축구경기에서 2골을 넣고 난 다음 국민전체가 뛰고 구르고 박수를 치고 좋아했습니다. 좋아하니까 기쁘고 기쁘니까 행복하고 행복하니까 웃습니다. 행복한데 우는 사람 없어요. 행복하면 웃지요. 사람들이 웃는 것은 하나님을 닮았기 때문에 웃는 것입니다. 동물들은 웃지 않아요. 사람이 웃어요. 사람은 하나님의 형상과 모양대로 지음을 받았기 때문에 사람들은 웃는 것입니다.
시편 104:31에 “야훼의 영광이 영원히 계속할지며 야훼는 자신께서 행하시는 일들로 말미암아 즐거워하시리로다”고 말한 것입니다.
필립 얀시는 그의 책 「뜻밖의 장소에서 만난 하나님」에서 “인간은 최소한 세 가지 면에서 동물과 다르다.”라고 이야기했습니다. 그 세 가지란 웃는 것과 기도하는 것과 일하는 것으로 모두 하나님과 닮은 모양이라고 말했습니다. 데일 카네기도 「웃음 예찬」에서 “웃음은 인간의 모든 독을 제거하는 해독제이다.”라고 말하면서 이러한 웃음은 “살 수도 없고 빌릴 수도 없고 도둑질할 수도 없는 것이다.”라고 말했습니다. 웃음을 돈 주고 살 수 있나요? 웃음을 도둑질할 수도 없습니다. 웃음은 빌려서 웃을 수도 없습니다. 속에서 웃음이 넘쳐 나오는 것입니다. 웃는 것은 행복할 때 웃는 것이고 이 웃음은 하나님을 닮은 것입니다. 인간이 동물과 다른 점은 놀이나 간지럼과 관계없이 환경을 초월하여 행복을 느끼고 웃을 수 있다는 것입니다. 인간은 생후 3,4개월부터 처음 웃기 시작합니다. 어린아이가 3,4개월 되면 말도 못하면서 ‘응아!’ 방실방실 웃습니다. 어린아이 웃는 모습이 얼마나 보기 좋습니까? 어린 아기는 자랄 때 쉽게 웃습니다. 5살, 6살 때 가장 많이 웃고 어린이는 어른보다 더 많이 웃습니다. 왜냐하면 마음이 발전하고 육체가 성장할 때 가장 많이 웃습니다. 웃음이 지적으로 발전하게 하고 인격적으로 성장하게 하고 육체도 자라게 하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어린아이가 인격적으로 기초가 완성되고 육체가 활발히 자랄 때 가장 많이 웃는 것입니다. 웃음은 근육, 폐, 성장 뇌를 비롯해 평소 쓰지 않던 230여개의 근육을 활발하게 움직이게 하는 것입니다. 현대 웃음치료는 효과가 굉장히 큰 것입니다. 가장 큰 문제는 어린아이 때 그렇게 잘 웃던 사람들이 청년이 되고 장년이 되면 웃음이 사라지고 맙니다. 노년이 되면 쓸쓸하게 웃지 않고 하루 종일 지냅니다. 웃어야 심신이 건강해지고 세포가 활달하게 되고 성장하게 되는 것입니다. 웃어야 안 늙어요. 마음에 즐거움은 양약이라도 마음에 근심은 뼈로 마르게 한다고 말한 것입니다. 양약공장을 활동시켜 심신이 건강하려면 자꾸 웃어야 되고 뼈가 말라서 시들어지게 하려면 근심을 해야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주와 만물을 지으시고 정말 좋아하시고 행복하셔서 크게 웃으신 하나님이신 것입니다. 하나님은 행복하신 하나님이시기 때문에 늘 웃으시는 하나님인 것입니다. 하나님을 모신 우리가 웃지 않으면 안돼요. 하나님의 형상과 모양대로 지음 받은 우리들은 하나님을 따라서 늘 웃어야 될 것입니다. 한번 웃어볼까요? 하! 하! 하! 얼마나 행복해요? 마음도 기뻐지고 혈압도 낮아지고 폐의 순환도 잘되고 모든 것이 좋아지는 것입니다.
2. 하나님을 슬프시게 한 사건
오늘날을 웃음을 잃어버린 세대에 우리가 살고 있습니다.
지난 4월, 국내 일간지들은 우리나라의 술 소비량을 다루었습니다. 2003년 한 해 동안 음주로 인한 한국 사회의 경제 소비 비용이 24조 2천 7백억 원을 넘었습니다. 이는 불과 3년 전인 2000년에 비해 62%나 증가한 것으로, 다른 선진국의 음주비용에 비해 매우 높은 수치입니다. 이에 대해 연세대 보건대학원의 정우진 교수는 “음주 인구는 3년 동안 큰 변화가 없었지만 주1회 이상 술을 마시는 인구가 크게 늘어나 비용이 증가했다.”고 말한 것입니다. 그것은 3년 전 우리가 오늘날보다 훨씬 살기가 좋았다는 것입니다. 3년 전보다 오늘날 너무나 우리 살기가 어려워져서 사람들이 웃음을 잃어버리고 마음에 스트레스를 풀기 위해서 술에 의지한 슬픔을 이기기 위해서 술을 먹고 마음에 고난을 이기기 위해서 술을 먹는다. 얼마나 슬픈 현상인 것입니까? 기쁨을 잃어버린 우리 슬픔을 극복하기 위해서 술에 의지하는 우리가 되었다는 것은 참으로 슬픈 일입니다. 여러분 성경에 보면 하나님도 기쁨을 잃어버리고 슬퍼한 적이 있습니다. 하나님을 슬프게 한일이 무엇일까요? 아담과 하와의 타락이 하나님을 슬프게 하고 이 세상을 마귀가 점령해서 부패와 사망을 가져왔을 때 하나님을 슬프게 했습니다.
창 3:17~19에 “아담에게 이르시되 네가 네 아내의 말을 듣고 내가 네게 먹지 말라 한 나무의 열매를 먹었은즉 땅은 너로 말미암아 저주를 받고 너는 네 평생에 수고하여야 그 소산을 먹으리라 땅이 네게 가시덤불과 엉겅퀴를 낼 것이라 네가 먹을 것은 밭의 채소인즉 네가 흙으로 돌아갈 때까지 얼굴에 땀을 흘려야 먹을 것을 먹으리니 네가 그것에서 취함을 입었음이라 너는 흙이니 흙으로 돌아갈 것이니라 하시니라”고 말씀하시므로 사망과 부패가 점령한 세상을 보고 하나님은 슬퍼하셨습니다. 심히 좋던 세계가 심히 나쁘게 된 것입니다. 나쁜 것을 좋아할 분 누가 있겠습니까? 심히 부패하고 가증스럽고 사망으로 꽉 들어찬 세계를 바라보고 하나님은 슬퍼하시고 탄식하셨습니다.
롬 5:12에 “그러므로 한 사람으로 말미암아 죄가 세상에 들어오고 죄로 말미암아 사망이 들어왔나니 이와 같이 모든 사람이 죄를 지었으므로 사망이 모든 사람에게 이르렀느니라”
요일 5:19에 “또 아는 것은 우리는 하나님께 속하고 온 세상은 악한 자 안에 처한 것이며”
사망이 들어와서 악한 원수 마귀가 세상을 점령하고 도적질하고 죽이고 멸망시키는 일을 하며 사람들을 미혹해서 하나님을 반역하게 만들고 세상을 따라 멸망으로 가는 것을 보게 될 때 하나님의 마음이 슬프지 아니할 수가 없는 것입니다.
오늘날 세상은 부패하여 썩은 냄새가 어느 곳에든지 납니다. 개인적으로도 부패하고, 가정과 사회와 생활이 구석구석마다 부패하고 있습니다. 문명이 발달되고 과학이 발달되고 문화가 향상되면 부패가 사라질 줄 알지만 그렇지 않습니다. 그 가운데 부패의 역사는 계속하고 있는 것입니다.
작년 12월에 국제투명성기구(TI)는 세계 69개국을 대상으로 ‘2005년 국제 부패측정조사’를 해서 결과를 발표했습니다. 그 결과 나라마다 부정부패가 가장 심한 곳은 정당과 국회인 것으로 드러났습니다. 조사대상 69개국 중 45개국에서 가장 부패가 심한 곳으로 '정당'을 꼽았고, 그 다음이 국회와 법조 순이었습니다. 또한 교육기관의 부패가 갈수록 늘어나고 있음을 지적하면서 ‘학원에서의 부패가 우리의 미래를 멍들게 하고 있다’는 별도의 보고서도 내놓았습니다. 이번 조사에서 응답 국가의 대부분인 48개국에서는 지난 3년 간 부정부패가 점차 늘었다고 대답한 반면 부패가 조금이라도 줄어들었다고 응답한 국가는 6개국에 불과했습니다. 이러한 결과는 우리가 살고 있는 사회가 얼마나 심각한 부패 아래 있는지를 증명해 줍니다. 역사 이래 세상은 부패가 점증하고 있습니다. 정직과 청렴이 가장 요구되는 정당과 국회, 교육기관이 오히려 부정부패에 앞장서고 있다는 것입니다.
아담의 타락 이후 마귀의 지배 하에서 심히 좋던 세계가 심히 나쁘고 부패하게 되어 버린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은 슬퍼하시는 것입니다. 사망과 부패가 만연한 것을 보시고 슬퍼하시고 하나님의 마음이 행복하지 않으십니다. 하나님도 우시는 하나님이신 것입니다. 여러분 하나님 우시는 것을 생각해 본적이 있습니까? 하나님이 왜 우시냐? 하나님도 감정을 가지고 계십니다. 지으신 세상이 부패하고 하나님이 지으신 사람들이 하나님을 반역하고 대적하고 떠났을 때 하나님은 슬퍼하시고 하나님은 우시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우셨다는 것을 성경에 증명할 수 있냐고 사람들은 물었을 것입니다. 여러분 예수님께서 나사로의 무덤에 가실 때 우셨습니다. 마리아와 마르다가 머리를 산발로 하고 옷매무새를 흐트러뜨리고 맨발벗고 통곡하며 울면서 앞서가는 것을 보고 예수님은 심히 통분하게 여기시고 민망히 여기시고 우셨습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이십니다. 참 하나님이 참 사람이 되신 분으로 예수님이 우셨다는 것은 하나님이 우셨다는 것을 말합니다. 예수님께서 멸망할 예루살렘성을 감람산에서 내려다보시고 눈물을 흘리셨습니다. 예수님께서 겟세마네동산에서 기도할 때 심한 통곡과 눈물로 하나님께 기도했다고 말했습니다. 하나님도 우십니다. 여러분! 여러분이 하나님을 웃게 하시든지 하나님을 울게 하실는지 모르겠습니다만 하나님께서도 오늘날 우리를 바라보시고 좋아하실 때는 기뻐하시고 행복하게 하시고 너털웃음을 웃으시고 우리가 잘못 될 때는 하나님이 슬퍼하시고 눈물을 흘리시는 하나님이신 것입니다. 하나님은 희노애락의 감정이 풍성하신 하나님인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형상과 모양대로 지음 받았기 때문에 우리도 희노애락의 감정을 가지고 있는 것입니다.
창세기 6: 5~ 6에 “야훼께서 사람의 죄악이 세상에 가득함과 그의 마음으로 생각하는 모든 계획이 항상 악할 뿐임을 보시고 땅 위에 사람 지으셨음을 한탄하사 마음에 근심하시고”라고 말한 것입니다. 하나님이 한탄을 하시고 근심을 하시고 슬퍼하시고 하나님이 눈물을 흘리신 것입니다. 오늘 우리가 살고 있는 환경의 심각성은 날로 더해가고 있습니다. 지구 온난화는 그 위기가 심각해져 온실가스의 배출량이 점점 늘어나고 지구온도는 계속 상승합니다. 그 결과 남극과 북극의 빙산이 녹아내려 해수면이 높아졌습니다. 지구촌 곳곳에 엘리뇨 등의 이상기온현상이 일어나 폭설과 폭우로 많은 사람이 죽고 재난을 당했습니다. 물 부족 현상도 심각합니다. 세계은행에서는 “20세기의 전쟁이 석유 쟁탈전이었다면 21세기의 전쟁은 물 전쟁이 될 것이다.”라고 말했습니다. 벌써 많은 나라들이 기름보다 물 값이 더 비싸고, 세계 인구의 1/4 가량인 11억 명이 안전한 식수를 이용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우리나라도 우리가 어릴 때만해도 어떤 계천 물도 마셨습니다. 한강물을 우리 식수로써 평안하게 먹고 생활했습니다. 그러나 요사이 개천 물 마실 수 있습니까? 한강물 수도도 잘 믿지 않고 마시지 않잖아요. 우리 어릴 때부터 지금 환경이 얼마나 황폐해지고 오염되었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는 것입니다. 한편 지구촌 한쪽에서 진행되는 ‘사막화’는 우리나라에도 직접적인 피해를 가져왔습니다. 중국에서 해마다 서울 면적의 5배 이상 되는 땅이 사막으로 바뀌는 바람에 우리나라는 봄만 되면 4만에서 8만 톤의 모래 먼지를 뒤집어쓰는 극심한 황사에 시달리고 있습니다. 봄에 다가오는 황사는 우리 한국 사람들이 건강에 막대한 손상을 가지고 있습니다. 이것이 중국이 자꾸 사막화됨으로 말미암아 불어오는 바람에 따라 황사가 한국까지 미쳐오는 것입니다. 아담의 타락으로 인해 마귀가 이 세상을 지배하면서 이 땅에는 사망과 부패가 점증하고 하나님이 지으신 심히 좋던 세계가 심히 나쁘게 되어버리고 만 것입니다. 하나님은 처음 세계와 만물을 지으시고 인생을 지으시고 보기에 심히 좋으셔서 기뻐하시고 행복해 하시고 웃으셨으나 인간의 타락을 통하여 하나님은 우시게 된 것입니다. 인간을 보고 우시고 자연의 타락과 절망을 보고 우셨습니다.
3. 하나님이 보시기에 심히 좋은 일
그러나 하나님을 최후로 크게 기쁘게 하신일이 있었습니다. 하나님 보시기에 심히 좋으신 일이 무엇입니까? 예수님의 성육신과 구속사역인 것입니다. 하나님의 아들 예수께서 아버지의 뜻을 쫓아 인생과 세계를 구원하기 위해서 육신을 쓰고 오실 때에 하나님은 예수님을 보시고 심히 기뻐하신 것입니다. 여러분 하나님의 구원은 인생들만의 구원이 아닌 것입니다.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했다고 했으니 세상은 사람만 사는 것이 아닙니다. 세상은 하늘과 땅과 바다와 만물을 다 포함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셨습니다.예수님이 오신 것은 사람들만 구원하기 위해서 온 것이 아니라 온 세상을 구원하러 오신 것이니 온 세상이 타락했을 때 하나님께서 슬픔을 가져오고 하나님을 우시게 하셨으나 예수님은 온 세상을 구원하기 위해서 이 땅에 오시므로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하나님이 심히 기뻐하게 된 것입니다.
마 3:17에 “하늘로부터 소리가 있어 말씀하시되 이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요 내 기뻐하는 자라 하시니라”
예수님은 하나님이 기뻐하는 자인 것입니다. 예수님이 인생타락 후 처음으로 하나님을 기쁘시게 한 것입니다. 예수님의 대속의 권한은 하나님을 크게 기쁘게 하셨습니다. 하나님의 아들 예수님이 십자가에 못 박혀, 몸 찢고, 피 흘린 것이 얼마나 고통스러운 것입니까? 하나님은 그 아들 예수님과 함께 십자가에 마음으로 못 박힌 하나님인 것입니다. 그 억센 고통과 괴로움 속에서도 하나님이 기뻐하신 것은 인간의 타락을 다 돌리시고 마귀를 멸하시고 구원의 역사를 베푸신 것을 보시고 하나님이 기뻐하신 것입니다. 하나님이 얼마나 마음에 그리스도의 십자가 고난을 보시고 괴로워하셨겠지만 그리스도가 하나님의 소원을 이루어 드리시고 하나님의 슬픔을 거둬 주시고 하나님의 염려를 거둬 주시고 탄식을 거둬 주시고 하나님께 기쁨을 가져 주시는 위대한 역사를 베풀었기 때문에 예수님의 구속사역을 통해서 비로서 하나님의 마음이 한없이 기쁘시게 된 것입니다.
빌 2: 5~11 우리 다 같이 소리 내어 읽어 보십시다.
“너희 안에 이 마음을 품으라 곧 그리스도 예수의 마음이니 그는 근본 하나님의 본체시나 하나님과 동등 됨을 취할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시고 오히려 자기를 비워 종의 형체를 가지사 사람들과 같이 되셨고 사람의 모양으로 나타 나사 자기를 낮추시고 죽기까지 복종하셨으니 곧 십자가에 죽으심이라 이러므로 하나님이 그를 지극히 높여 모든 이름 위에 뛰어난 이름을 주사 하늘에 있는 자들과 땅에 있는 자들과 땅 아래에 있는 자들로 모든 무릎을 예수의 이름에 꿇게 하시고 모든 입으로 예수 그리스도를 주라 시인하여 하나님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하셨느니라”
예수님을 통해서 하나님은 지극히 크신 영광을 받으신 것입니다. 우리도 오늘날 예수 그리스도를 모시고 예수를 섬기고 예수님께 영광을 돌리면 하나님이 지극히 영광을 받으시는 것입니다. 이렇기 때문에 예수님을 통해서 하나님이 너무나 기뻐하시기 때문에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지극히 행복한 하나님이라는 것입니다. 오늘날은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은 너무나 행복해 하시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생애와 대속의 사업이 하나님을 심히 기쁘시게 하시고 행복하게 하신 것입니다.
요 6:38에 “내가 하늘에서 내려온 것은 내 뜻을 행하려 함이 아니요 나를 보내신 이의 뜻을 행하려 함 이니라”
하나님의 뜻은 온 세계가 하나님이 창조하신 원래대로 복구되는 것인데 이것을 이루기 위해서 예수님이 오셔서 하나님의 뜻을 이루셨으니 하나님이 얼마나 즐거워하십니까?
요 8:29에 “나를 보내신 이가 나와 함께 하시도다 나는 항상 그가 기뻐하시는 일을 행하므로 나를 혼자 두지 아니하셨느니라”고 말한 것입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을 믿고 공경하는 사람은 하나님을 심히 기쁘시게 합니다. 예수님이 계신 자에게는 하나님 아버지도 계시고 예수님이 없는 자에게는 하나님도 계시지 않습니다. 예수님을 섬기는 자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고 예수님을 따라가는 사람은 하나님을 행복하게 만드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오늘날 하나님은 여러분을 통하여 슬퍼하기도 하시고 기뻐하기도 하시고 여러분 때문에 웃기도 하시고 울기도 하시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 부모의 부모이기 때문에 부모가 자식을 기르는 것과 같습니다. 자식이 부모를 순종하고 잘되면 부모의 마음이 기쁘고 즐겁고 행복합니다. 자식이 반역하고 잘못되고 거역하면 부모의 마음이 슬프고 불행하고 부모의 눈에 눈물이 마르지 않는 것입니다.
엡 1: 5에 “그 기쁘신 뜻대로 우리를 예정하사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자기의 아들들이 되게 하셨으니”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이 우리를 자기 아들들이 되게 하시고 난 다음 기뻐하셨습니다. 내 아들 딸들 보아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아들, 딸들이 되었으니 예수로 말미암아 기뻐하신 것처럼 그리스도 안에 있는 우리들로 말미암아 하나님은 기뻐하시는 것입니다.
요12:26에 “사람이 나를 섬기려면 나를 따르라 나 있는 곳에 나를 섬기는 자도 거기 있으리니 사람이 나를 섬기면 내 아버지께서 그를 귀히 여기시리라”
예수님을 섬기면 하나님이 우리를 기쁘게 여기시고 귀하게 여기시는 것입니다.
4. 우리의 영원한 행복
우리들이 이 세상에 살면서 영원한 행복을 어디에서 누릴 수가 있습니까?
사람들은 이 세상을 취함으로 행복을 누리려고 하는 것입니다. 부귀, 영화, 공명을 얻음으로 행복을 누릴 수가 있다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혹은 돈을 가지고 주지육림 속에 육체적 쾌락을 누림으로 행복을 누릴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세상에 좋아하던 것은 곧 시들어지고 맙니다. 세상의 기쁨은 잠시 있다 사라지는 안개와 같은 것입니다. 성경은 모든 육체는 풀과 같고 그 영화는 풀의 꽃과 같다. 풀은 시들고 꽃은 떨어지나 하나님의 말씀은 영원히 있다고 말씀한 것입니다.
저는 붉은 장미꽃을 좋아합니다. 장미를 보면 그 화사한 아름다움이 마음에 감동을 줍니다. 그러나 장미를 볼 때마다 늘 한편으로 즐기면서도 다른 편에서는 언제나 슬픈 생각이 납니다. 저 아름다운 장미가 얼마 있지 아니하여 시들어서 땅에 떨어지고 만다. 피어 있을 때 그렇게 아름다워도 시들어 땅에 떨어진 모습은 너무나 처량하게 보이기 때문인 것입니다. 이 세상에 부귀, 영화, 공명이 한때 찬란하고 아름다운 것 같지만 화무십일홍이요 군무십년이라. 열흘 붉은 꽃이 없고 십년을 가는 권세가 없다는 것처럼 시들어 버리고 마는 것입니다. 솔로몬이 그렇게 고백했습니다. 사람이 산 이후에 솔로몬처럼 부귀, 영화, 공명을 누린 자는 없습니다. 솔로몬은 개인적으로 부귀, 영화, 공명이 극에 달했습니다. 자기의 아내가 애굽 공주 이외에 후처가 7백 명이요, 첩이 3백 명, 천명의 여자를 거느리고 살았습니다. 그랬음에도 불구하고 솔로몬이 전 1: 2에 “전도자가 이르되 헛되고 헛되며 헛되고 헛되니 모든 것이 헛되도다.” 사람이 취할 수 있는 모든 부귀, 영화, 공명을 다 취하고도 솔로몬이 장탄식 한 것은 헛되고 헛되며 헛되고 헛되니 모든 것이 헛되다고 말한 것입니다. 왜, 이 세상에 부귀, 영화, 공명이 가져오는 행복은 잠시 있다 사라지는 것입니다. 얼마 있으면 싫증나거든. 천명의 여자를 거느리고도 여자에 실증이 났다. 신약성경에도 예수님이 만난 수가성 여인을 보십시오. 남편을 다섯이나 바꿔도 실증이 나서 다 발길로 차버리고 지금 여섯째 남자하고 살고 있다. 그래도 목마르다. 예수님이 “네가 이물을 마시면 목마르거니와 내가 주는 물을 마시면 영원토록 솟아나는 샘물이 되리라”고 말한 것입니다. “네가 남편 다섯이 우물에서 물을 마셔도 목마르지 않느냐? 여섯 번째 우물물에 물을 마셔도 목마르지? 세상 물은 아무리 마셔봤자 자 목마르게 된다. 내가 주는 물을 마셔야 영원히 목마르지 않고 속에서 솟아나는 생수가 된다.”고 주님께서 말씀하신 것입니다. 세상의 행복은 잠시뿐인 것입니다.
지난 2월 28일 국민일보에서 복권에 당첨되어 큰 기쁨을 누렸던 사람들의 말로에 관한 기사를 읽었습니다. USA투데이는 과거 당첨자 사례로 미루어볼 때 ‘복권 대박’은 비극의 시작인 경우가 많다고 보도했습니다. 복권에 당첨되고 나면 소송에 휘말리기 일쑤고, 까맣게 잊었던 친지가 몰려오고, 듣도 보도 못한 자선단체의 기부 요청이 끊이지 않고, 종종 도박이나 약물에 빠져 빈털터리로 삶을 마감한다는 것입니다. 1997년 텍사스 주의 빌리 하렐이라는 사람은 3천 100만 달러 약 300억 원의 복권에 당첨되었습니다. 그러나 불과 2년여 만에 스스로 목숨을 끊고 말았습니다. 최고급 자동차와 저택을 사들이고 가족 교회 친구들에게 마구 돈을 뿌렸지만 뜻밖의 재산이 가져온 심적 부담을 이기지 못해서 자살했습니다. 복권에 당첨 안했으면 명대로 살았을 것인데 복권 때문에 자살했다. 2001년 남편과 함께 1100만 달러 약 106억 원의 당첨금을 탄 빅토리아 젤은 현재 미네소타 주 교도소에 수감되어 있습니다. 마약과 술에 취해 운전하다가 행인을 치어 숨지게 했던 것입니다. 이러한 일을 연구해 책을 펴낸 텍사스 공대 게리 바이어 교수는 “돈을 다 써버리면 결국 아무것도 남지 않는데 사람들은 그걸 깨닫지 못한다.”고 말했습니다. 지금도 많은 사람들이 일확천금을 꿈꾸며 복권을 삽니다. 복권에 당첨되면 온 천하를 얻고 행복해질 것으로 생각하기 때문에 그렇게 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여러분, 세상의 기쁨은 잠시입니다. 곧 시들어질 뿐 오히려 불행하게 되기 일쑤인 것입니다. 우리 한국에도 복권 되고 난 다음에 집도 이사하고 전화번호도 다 바꾸었다고 그랬습니다. 온 일가친척, 동기동창들이 다 돈 내라고 따라오기 때문에 살수가 없다는 것입니다. 밤낮으로 사람만 보면 움츠려서 깜짝 놀랜다는 것입니다. 적게 벌어 편안하게 사는 것이 공짜 돈 많이 생기고 불안하게 사는 것보다 낫습니다. 공짜 돈을 탔으니 공짜로 얻어먹을 사람이 얼마나 많이 따라오는지 몰라요. 우리는 예수님과 관계에서 참된 행복을 누릴 수가 있습니다. 예수님의 사랑이 얼마나 좋은지 하나님의 사랑이 얼마나 좋은지 이 사랑의 좋은 은혜를 느껴야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지 않습니까? 예수님이 나를 이처럼 사랑하사 당신의 생명을 내어 놓고 몸 찢고 피를 흘려 값 주고 사주셨지 않습니까? 죄를 짓고 불의하고 추악하고 버림을 받아야 마땅한 우리들을 죄 있는 그대로 못난 그대로 빈 손든 그대로 끌어안아 주시고 용서해 주시고 의의 옷을 입혀 주시고 영광에 참여하시고 영생을 주신 이 주님의 사랑이 얼마나 좋습니까?
요 15: 9에 “아버지께서 나를 사랑하신 것 같이 나도 너희를 사랑하였으니 나의 사랑 안에 거하라”고 말씀하시고 있는 것입니다.
요일 3: 1에 “보라 아버지께서 어떠한 사랑을 우리에게 베푸사 하나님의 자녀라 일컬음을 받게 하셨는가, 우리가 그러하도다 그러므로 세상이 우리를 알지 못함은 그를 알지 못함이라”
사람이 사랑받고 사랑할 수 있을 때 행복한 것입니다. 돈을 사랑하면 돈으로 만족하지 못하고 쾌락을 사랑하는 사람은 쾌락으로 만족하지 못하고 권력으로 사랑하는 사람은 권력으로 만족하지 못하고 결국에는 허무맥랑하게 되고 마는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을 사랑하고 예수님을 사랑하고 하나님의 사랑과 그리스도의 사랑을 받고 사는 사람은 정말로 좋고 기쁘고 행복한 삶이 되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사랑은 끝이 없고 예수님의 사랑은 한없기 때문인 것입니다. 한없이 돈을 가질 수 없고 한없이 권력을 가질 수 없고 한없이 인간의 사랑을 받을 수도 없습니다. 마릴린몬로가 자살했을 때 그 유서에 그렇게 말했습니다. “나는 한없는 사랑을 원했지만 나를 한없이 사랑해줄 사람이 없어서 자살한다.”고 했습니다. 한없이 사랑해줄 사람이 누가 있겠습니까? 하나님의 사랑과 그리스도 예수의 사랑은 한없는 사랑인 것입니다. 우리의 결점을 보지 아니하시고 용서와 사랑으로 감싸주는 사랑이 한없는 사랑이 되는 것입니다. 율법적인 사랑은 한없는 사랑을 할 수가 없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을 좋아하고 예수님을 좋아하면 끝없는 기쁨의 샘을 발견하게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좋아하세요. 예수님을 좋아하세요. 교회를 좋아하고 예배드리기를 좋아하면 그 속에서 하나님의 끝없는 기쁨의 샘물이 솟아 흐르는 것입니다.
시 16:11에 “주께서 생명의 길을 내게 보이시리니 주의 앞에는 충만한 기쁨이 있고 주의 오른쪽에는 영원한 즐거움이 있나이다.”
주님 안에 있으면 영원한 기쁨과 즐거움의 샘물이 솟아 흐르는 것입니다.
사12: 2~ 3에 “보라 하나님은 나의 구원이시라 내가 신뢰하고 두려움이 없으리니 주 야훼는 나의 힘이시며 나의 노래시며 나의 구원이심이라 그러므로 너희가 기쁨으로 구원의 우물들에서 물을 길으리로다.”
우리가 하나님을 좋아하고 마음이 기뻐지면 가슴 가득한 행복이 다가오는 것입니다. 단순합니다. 좋아하면 기뻐하게 되고 기뻐하면 행복하게 되는 것입니다. 싫어하면 슬퍼하게 되고 슬퍼하면 불행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 원리가 간단한 것입니다. 하나님을 좋아하고 예수님을 좋아하게 되면 마음이 기뻐지고 기뻐지면 행복해지지요. 기쁨이 없는 곳에 행복이 있을 수가 없는 것입니다.
시84: 5에 “주께 힘을 얻고 그 마음에 시온의 대로가 있는 자는 복이 있나이다.”
복이 있다. 행복한 복이 있다는 것입니다.
시103: 2~ 5에 “내 영혼아 야훼를 송축하며 그의 모든 은택을 잊지 말지어다 그가 네 모든 죄악을 사하시며 네 모든 병을 고치시며 네 생명을 파멸에서 속량하시고 인자와 긍휼로 관을 씌우시며 좋은 것으로 네 소원을 만족하게 하사 네 청춘을 독수리 같이 새롭게 하시는 도다.”
얼마나 좋은 하나님이신 것입니까? 좋은 하나님을 모시니까 기뻐지고 기뻐지니까 행복해지지요. 하나님은 좋은 하나님이신 것입니다. 좋은 하나님을 우리가 모르면 우리는 결코 기쁨을 얻을 수 없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무서운 하나님이다. 하나님은 괴팍스러운 하나님이다. 하나님은 심판하는 하나님이시다. 하나님은 나를 괴롭히는 하나님이다. 하나님에 대한 부정적인 생각을 가진 사람은 결코 마음에 기쁨을 가질 수가 없습니다.
저는 저의 목회생활 48년 동안에 제가 발견한 가장 위대한 발견은 불광동에서 목회할 때 하나님이 좋은 하나님이라는 것을 발견한 것입니다. 그때 헐벗고 굶주리고 환경이 어렵고 스산해서 그 가운데 하나님은 좋은 하나님인 것을 발견하게 될 때 마음속에 기뻐지고 행복해졌습니다. 천막교회 가마니를 깔고 춥고 덥고 굶주렸지만 마음에 기쁨의 샘이 넘쳐나고 행복했습니다. 하나님은 좋은 하나님인 것입니다. 오늘 시103: 2~ 5에 하나님이 얼마나 좋은 하나님이며 하나님은 우리 영혼이 잘됨같이 범사에 잘되며 강건하고 생명을 얻되 풍성히 얻기를 원하시는 하나님이라고 말씀하고 계신 것입니다. 이 하나님을 바라보고 이 하나님을 가슴속에 깊이 모시고 하나님을 믿고 이 좋은 하나님을 고백하고 예배하고 찬송하면 마음속에 기뻐지고 행복이 넘치게 되는 것입니다.
한국 가정상담연구소에서 발간하는 「행복한 우리집」 5월호에는 하나님을 중심으로 살자 깨진 가정이 행복이 넘치는 가정으로 변화된 이야기가 실려 있습니다.
한 40대 남성이 목사님께 상담을 요청했는데, 그는 초등학교 4학년과 6학년, 중학교 2학년의 아들을 둔 가장이었습니다. 그런데 이 아이들이 가출을 밥 먹듯 하고 상습적으로 본드를 들이마십니다. 이야기를 들어보니 이 가정은 경제적으로는 풍족했지만 부부가 서로 물건을 던지며 할퀴면서 싸우기가 일쑤였습니다. 상담자는 그에게 자녀를 바로잡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먼저 부부가 함께 무릎을 꿇고 기도하고, 찬송하고 성경을 교독하라고 권했습니다. 그리고 장보러 갈 때 혼자가지 말고 부부가 나란히 장보러 가라고 했습니다. 그 40대 가장은 상담자의 말대로 해보겠다고 돌아간 후에 3주 후에 나타나서 하는 말이 소중한 가정을 주신 하나님께 감사한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3개월 후에는 아이들이 더 이상 가출할 생각을 하지 않는다며 기뻐했고, 9개월이 지났을 땐 밤늦게 공부하던 큰 아들이 “아빠, 제가 전에는 왜 그랬는지 모르겠어요.”라고 말할 정도로 완전히 변화되었다고 말한 것입니다. 교회 나가고, 말씀 읽고, 함께 기도하고 찬송 부르니까 분위기가 달라진 것입니다. 왜, 하나님이 같이 계시고 가족들이 다 하나님을 좋아하게 되니까 기뻐하게 되고 행복하게 되니까 모든 불행이 사라져 버리고 만 것입니다. 영원한 행복은 예수님의 관계에서 예수님을 사랑하고 하나님을 사랑할 때 다가오는 것입니다. 예수님 품 안에서만 끝없는 기쁨이 넘쳐흐르는 것입니다. 가슴 벅찬 행복은 하나님을 사랑하고 예수님을 의지하는 데서 다가오는 것입니다.
신10:12~13을 우리 다 같이 함께 소리 내어 읽어 보십시다.
“이스라엘아 네 하나님 야훼께서 네게 요구하시는 것이 무엇이냐 곧 네 하나님 야훼를 경외하여 그의 모든 도를 행하고 그를 사랑하며 마음을 다하고 뜻을 다하여 네 하나님 야훼를 섬기고 내가 오늘 네 행복을 위하여 네게 명하는 야훼의 명령과 규례를 지킬 것이 아니냐?”
하나님을 섬기고 그 명령을 듣고 그 도를 지키면 우리가 행복해진다. 하나님은 우리 행복 때문에 하나님의 계명과 율법을 주셨다는 것입니다. 우리를 괴롭히려고 율법과 계명을 준 것이 아니라 우리를 행복하게 만들려고 율법과 계명을 주셨다는 것입니다.
신33:29도 함께 읽어 보십시다.
“이스라엘이여 너는 행복한 사람이로다 야훼의 구원을 너 같이 얻은 백성이 누구냐 그는 너를 돕는 방패시요 네 영광의 칼이시로다 네 대적이 네게 복종하리니 네가 그들의 높은 곳을 밟으리로다”
그러므로 하나님 믿는 것과 행복은 굉장히 가까운 것입니다. 하나님은 여러분이 행복하기를 원하시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율법과 계명을 준 것도 행복하기 위해서 주신 것이라고 말하고 하나님을 섬기는 것도 하나님이 행복하기 만들기 위해서 하나님을 섬기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예수 믿는 사람은 행복한 사람이요, 행복해야 될 책임이 있습니다. 그 행복이 예수를 믿고 하나님을 섬기면 여러분 마음속에 기쁨이 샘솟듯 하고 행복해지게 되는 것입니다. 행복한 크리스챤이 되어야 안 믿는 사람들이 우리를 보고 왜 그렇게 행복 하냐 그 이유를 물을 것입니다. 우리가 불행하고 슬퍼하면 주위에 있는 사람들은 우리를 떠날 것입니다. 누가 불행하고 슬퍼하는 사람과 함께 있기를 원하겠습니까? 기뻐하고 행복한 사람에게 같이 있기를 원하지 않습니까? 여름밤에 불을 밝히 펴놓으면 많은 불나방들이 날라 옵니다. 오라고 안 해도 불이 환하니까 불나방들이 날라 옵니다. 깜깜한 램프에 불나방들이 날아오지 않습니까? 행복한 광채를 나타내면 많은 안 믿는 사람이 주변에 다가와서 복음을 듣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마음이 어둡고 캄캄하고 불행한 사람에게 무엇이 다가옵니까? 아무도 안다가 오는 것입니다. 참된 전도는 우리의 삶을 통해서 나타나게 되는 것입니다. 내가 아무리 나가서 목이 터지라고 예수 믿고 구원받으라고 해도 사람들은 우리의 말을 듣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삶을 보는 것입니다. 얼굴이 어둡고 캄캄하고 분노한 얼굴을 가지고 “예수 믿고 구원 받으시오. 예수 믿고 구원 받으시오.” 누가 그런 말씀을 듣겠습니까? 얼굴이 환하고 빛이 나고 방실방실 웃고 행복이 넘치면서 예수 믿고 구원받으라면 “당신 어떻게 그렇게 행복한 것입니까? 나도 그런 행복을 어떻게 하면 얻을 수 있습니까?” 물을 것입니다. TV게임을 하는데 보니까 웃으면서 성내는 게임을 하는데 아무도 웃으면서 성을 내지 못해요. 여러분 웃으면서 성한 번 내보세요. 안되지요? 웃으면서 성을 아무리 내려 해도 안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웃으면 어찌할 수없이 온화한 모습이 드러나고 행복한 모습이 드러나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 하나님은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웃는 하나님이십니다.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기뻐하시고 행복한 하나님이신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만 하나님이 좋아하시고 기뻐하시고 행복하시지 예수 그리스도밖에는 하나님께서 좋아하지 아니하시고 기뻐하지 아니하시고 하나님이 슬퍼하시는 것입니다. 타락한 세계는 하나님을 슬프게 하고 하나님을 울게 만드셨습니다. 그리스도 안에서는 하나님이 너무 너무 좋아하시고 기뻐하시고 행복한 것입니다. 그리스도 안에 있는 여러분들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존재요, 하나님을 행복하게 하는 존재요, 하나님을 웃게 만드시는 존재들이 된 것입니다. 오늘 이 예배를 하나님 보시고 너무나 하나님은 좋아하시고 기뻐하시고 행복하시고 하나님이 오늘 웃으십니다. 하나님 웃는 소리 안 들립니까? 하나님 웃는 소리가 다 들리는데요? 할렐루야~
스위스의 철학자 중에 힐티라는 사람이 있었습니다. 그는 특별한 인간 행복에 대하여 관심을 가지고 연구를 했습니다. 그러나 아무리 인간적인 방법과 논리, 그리고 지식을 가지고 행복을 추구하려 해도 이는 추상적인 것에 불과했습니다. 결국 그가 발견한 것은 성경을 읽고 성경 안에서 참다운 행복을 깨닫는 것이었습니다. 그 후 힐티는 모든 사람들의 추앙을 받는 행복론자가 되었고, 77세로 삶을 마감하기까지 매일같이 성경을 읽고, 기도하고, 감사하고, 찬송하는 생활을 했습니다. 그는 자신의「행복론」에서 “주 안에 있는 시간이 행복한 시간이며, 찬송하는 시간이 평화로운 시간임”을 확실히 깨닫고 증거 했습니다. 그가 세상을 떠난 후 그의 책상에서 빛바랜 낡은 성경과 ‘영원한 평화’라는 아직 완성되지 않은 논문이 발견되었는데, 거기에는 이런 글이 적혀 있었습니다. “진정한 행복은 그리스도에게 있으니 파랑새를 잡으려 하는 허황된 행복론 자들이여 어서 속히 주님 품으로 돌아오라!” 진정한 행복은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습니다. 예수님과의 사랑의 관계 안에서만 인간은 가슴 가득한 기쁨과 행복을 찾을 수 있습니다. 예수밖에 있는 것은 다 거짓이요, 허위요, 마귀의 속임수에 불과한 것입니다. 헛되고 헛되며 헛되고 헛되니 모든 것이 헛되다는 전도자의 말과 같습니다. 물거품은 분명히 있지만 붙잡아 보면 그 속에 아무것도 없는 것입니다.
[결론]
우리가 예수님과 아버지 하나님을 심히 좋아하면 신앙생활이 크게 기뻐지고 행복의 강이 넘쳐흐릅니다. 하나님을 좋아하십니까? 예수님을 좋아하십니까? 교회 와서 예배드리기를 좋아하십니까? 그러면 기뻐지는 것입니다. 좋은 사람만나서 안 기쁜 사람 누가 있으며 좋은 물건 얻어서 안 기쁜 사람이 누가 있습니까? 기뻐지니까 행복하게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 오늘 모두 다 행복하신 분들인 것입니다.
성령께서는 예수님을 깨닫게 해 주시고 하나님 아버지를 사랑하고 크게 좋아하게 만들어 주십니다. 그 때문에 성령 충만한 성도가 기쁨도 행복도 충만한 성도인 것입니다.
요즘은 건강에 좋은 운동 중에서 '유산소 운동'이 각광을 받고 있습니다. 이 운동은 우리 몸에 산소를 충분히 섭취하면서 하는 운동이기 때문에 심폐 지구력을 기르고 혈액순환을 원활하게 해줍니다. 그렇다면 우리의 영적인 건강을 촉진시키는 유산소 운동은 무엇일까요? 기도하고 성령 충만한 것이 영적인 유산소 운동인 것입니다. 기도하고 성령 충만하면 영적으로 활달한 삶의 능력을 느낄 수 있는 것입니다. 베블리 라헤이가 쓴 「성령 충만한 여인」을 보면 주인공은 부엌일을 하면서 이렇게 기도합니다. “식사 준비를 하고 설거지를 함으로써 성도가 되게 해주시옵소서. 당신께 드리는 봉사를 받아주소서. 당신께 이 일을 해드리나이다.” 집안에서 밥 짓고 반찬 만들고 식구들을 돌보고 설거지 하는 것도 주님을 대접하는 것으로 하나님께 예배와 감사를 드렸습니다. 하나님의 백성을 돌보는 것입니다. 그녀는 부엌일을 하면서도 그 일을 통해 주님을 생각하고 만나고 섬겼기 때문에 늘 기쁨과 행복이 넘쳤다고 기록하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가 성령 충만할 때, 성령께서는 예수님을 깨닫게 해 주시고 하나님 아버지를 사랑하고 크게 좋아하게 만들어 주십니다. 크게 좋아하면 기뻐하게 되고 기뻐하게 되면 행복하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는 행복을 9만 리 장천 멀리 있는 것으로 생각하지 마십시오. 어떤 시인이 말한 것처럼 산 너머 행복이 있다기에 산 너머 가보니 또 저산너머 행복이 있다더라. 세상 행복은 산 너머 또 저산너머 또 저산너머 가도 가도 손에 닿을 듯 하면서 잡히지 않습니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행복이 있고 하나님을 섬기는 데서 행복이 있기 때문에 우리 예수 믿는 사람은 멀리 행복을 찾을 필요가 없습니다. 여러분 단순히 하나님 아버지와 예수님을 좋아하십시오. 싫어하면 안 됩니다. 하나님 아버지와 예수님을 좋아하면 기뻐지고 기뻐지면 행복하게 되는 것입니다. 많이 좋아하면 많이 기뻐하고 많이 기뻐하면 많이 행복해지게 되는 것입니다. 크리스챤은 행복해야 되는 것입니다. 행복이 크리스챤의 홀마크인 것입니다. 누구든지 행복하지 아니하면 하나님을 좋아하지 않는 증거인 것입니다. 하나님을 좋아하면 기뻐하고 행복해질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행복하면 웃게 돼요. 행복하다면서 울고 다니는 사람 보았습니까? 행복하면 웃게 돼요. 우리한번 크게 예수 이름으로 웃게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하! 하! 하! 하! 하!… 행복합니다. 아버지가 계시고 예수님이 계시기 때문에 행복할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기도]
하나님 우리 아버지여!
우리가 하나님을 좋아하고 예수님을 좋아하고 기쁨이 넘치고 행복할 수 있게 만들어 주심을 감사합니다. 부귀와 공명이 있어서 행복한 것이 아니옵니다. 아버지가 계셔서 행복합니다. 예수님이 계시기 때문에 행복합니다. 아버지여 아들 예수님과 함께 성령의 능력으로 항상 우리 가운데 계심을 감사드리옵나이다. 우리 아버지를 찬양하고 감사합니다. 아버지가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크게 기뻐하시고 행복하시고 웃으시는 하나님 아버지 우리도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크게 기뻐하고 행복하고 웃게 됨을 감사합니다. 하나님과 우리가 함께 모여 크게 웃고 행복할 수 있게 축복하여 주옵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드리옵나이다. -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