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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님의 십자가는 우리와 무슨 상관이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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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님의 십자가는 우리와 무슨 상관이 있는가? 윤길창


저는 오늘 예수님의 십자가에 대해 함께 생각해 보고자 합니다. 십자가에는 두 가지의 아픔이 있습니다. 육체적인 고통과 정신적인 고통입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를 앞에 두고 고민하고 슬퍼하사 … 내 마음이 심히 고민하여 죽게 되었으니(마 26:37,38)’라고 제자들에게 말씀하셨고 피와 땀을 흘리면서 “아버지여, 이 잔을, 이 십자가를 내게서 지나가게 하여 주소서”라고 기도하신 것을 보면 얼마나 힘든 상황이었는지 충분히 짐작할 수 있습니다. 예수님이 이 땅에 오셔서 당한 고통 중에 가장 큰 고통이 십자가의 고통입니다.
많은 유대의 지도자들이 주님을 조롱하고 희롱을 했습니다. 사람이 인격적으로 남에게 조롱을 받을 때의 수모와 모멸감은 죽기보다 더한 고통일 수 있습니다. 뿐만 아니라 예수님이 십자가에 달리시기 바로 직전에 옷을 다 벗겼습니다. 많은 사람들 앞에 부끄러운 수치를 당하게 하고 거기에 이들은 유대인의 왕이라면 면류관도 한번 써야 되지 않겠느냐고 놀리면서 가시로 면류관을 만들어 씌웠습니다. 뿐만 아니라 오른손에는 왕을 상징하는 홀을 대신해 갈대를 쥐어 놓고 무릎을 꿇고 ‘유대인의 왕이여 평안할지어다’라며 비아냥거렸습니다. 예수님에게 침을 뱉고 머리도 때렸습니다. 이것은 예수님을 인격적으로 조롱하고 희롱하고 무시한 장면입니다. 그런가 하면 십자가라는 것은 그 당시에 가장 극악한 사람이 당하는 최고의 벌이었습니다. 예수님이 십자가를 앞에 놓고 이런 고통과 괴로움을 당했습니다.
그런데 성경에 보면 예수님은 이 십자가에 대해서 부끄러워하지 않는 마음을 가졌습니다. 성만찬을 하실 때에 떡과 잔을 나누어주시면서 다시 올 때까지 이 떡과 이 잔을 기념하라고 했습니다. 다시 말하면 십자가를 기념하라는 말입니다. 모든 사람이 볼 때에 실패의 상징인 십자가, 고통과 아픔의 십자가, 죄수들이 받되 특별히 살인한 죄인들이나 받는 십자가가 무슨 의미가 있기에 다시 오시는 날까지 기념하라고 하셨겠습니까? 뿐만 아니라 사도들은 이 십자가를 자랑했습니다. 갈라디아서 6:14 말씀에서 사도 바울은 ‘나는 십자가 외에는 결코 자랑할 것이 없다’고 했습니다. 헬라의 철학이나 지식, 많은 소유, 가문 등 자랑할 것이 많았던 바울이었지만 그는 마지막에 십자가 외에는 자랑할 것이 없다고 고백했습니다. 또한 고린도전서 1:18에서는 ‘십자가의 도는 멸망하는 자들에게는 미련한 것이요 구원을 얻는 우리들에게는 하나님의 능력’이라고 했습니다. 사도들과 그 당시 주님의 주변에 있었던 많은 사람들은 십자가를 사랑하고 자랑했습니다. 고린도전서 2:2에서 사도 바울은 또다시 강조하기를 ‘나는 십자가 외에는 알지 아니하기로 작정했다’고 합니다. 십자가가 얼마나 귀한 것이기에 이처럼 평생 십자가만 자랑하겠다는 고백을 할 수 있었겠습니까. 예수님의 십자가는 우리와 무슨 관계가 있는지, 빌라도에게 재판을 받고 조롱과 희롱을 감당하면서까지 십자가를 시진 예수님의 십자가의 의미를 다시 한 번 깨달아보았으면 합니다.
십자가를 말하기 전에 먼저 인간은 모두 죄인이라는 사실을 알아야겠습니다.
왜냐하면 십자가는 죄와 관계된 것이기 때문입니다. 로마서 3:23에서 사람은 모두다 죄를 지었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죄를 많이 짓고 적게 지은 차이는 있을지 몰라도 아담 이후의 인생들은 누구나 할 것 없이 다 죄인이라는 사실을 성경은 가르치고 있습니다. ‘나는 죄를 짓지 않았는데, 도적질이나 간음죄는 물론 남을 해롭게 한 일도 없고 법 없어도 산다고 인정받는 사람인데 무슨 죄인이란 말인가’ 생각할 수 있겠지만 하나님께서 우리 모두 죄인이라고 말씀하고 계시므로 우리는 죄인이라고 인정할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 사과나무가 한 그루 있다고 합시다. 나무에 달린 사과 열매를 보고 이 나무는 사과나무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러나 사과 열매가 하나도 없어도, 잎만 있어도 사과나무입니다. 열매가 있기 이전에 사과나무이기 때문에 사과가 열리는 것입니다. 즉, 죄를 지어서 죄인이 아니라 죄인이기에 죄를 짓게 된다는 말씀입니다. 우리가 아는 위대한 왕 다윗은 선지자 나단에게 죄를 지적받았을 때 “내가 죄인입니다”라고 고백했습니다. 그의 회개의 고백인 시편 51:3에 ‘내 죄가 항상 내 앞에 있나이다’라고 합니다. 이어서 5절에서는 ‘내가 모태에서 죄악 중에 출생하였나이다’라고 합니다. 여기에 예외 될 사람이 어디 있겠습니까? 여러분, 우리는 죄인이라는 사실을 인정해야 합니다. 인정 하지 않으면 죄 문제를 풀 수 있는 방법이 없습니다. 부끄러워도 자존심이 좀 상해도 내가 죄인이라는 사실을 인정하는 사람은 그 다음 문제를 풀 수 있습니다.
죄는 그냥 두면 사그라지고 없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로마서 6:23에서 ‘죄의 삯은 사망’이라고 했습니다. 죄의 삯은 반드시 있습니다. 죄를 심어놓으면 열매가 맺힙니다. 그 열매는 바로 죽음입니다.
우리 교회는 강단에 꽃꽂이를 안 하는 편입니다. 꽃꽂이는 우선 볼 때는 아무리 아름다워도 이미 죽은 것이기 때문에 시간이 지나면서 시들어지고 말라져서 결국 쓰레기통에 버려지게 됩니다. 우리 인생도 마찬가지입니다. 죄를 해결하지 못하면 결국은 죽음으로 가는 꽃꽂이 인생인 것입니다.
러시아의 문호 톨스토이의 「인생 독본」이라는 글에 다음과 같은 내용이 있습니다. 어떤 사람이 미친 코끼리에게 쫓겨 도망을 가다보니 길이 막혔습니다. 앞에는 절벽입니다. 돌아가려고 하니까 미친 코끼리가 버티고 있어 옴짝달싹 할 수 없는 사면초가의 형편이 되어졌습니다. 살펴보니 마침 등나무가 하나 있어서 그 등나무에 올라가 코끼리를 피했습니다. 그런데 절벽 아래를 보니까 떨어지면 잡아먹으려는 무서운 괴물이 대기하고 있었습니다. 게다가 절벽 주변에는 혀를 널름거리는 수많은 뱀들이 있고 흰 쥐와 검은 쥐가 번갈아가면서 등나무 뿌리를 긁어먹고 있습니다. 미친 코끼리는 피했지만 결국에는 죽을 수밖에 없는 시간문제의 인생이 된 것입니다. 여기서 흰 쥐는 낮을, 검은 쥐는 밤을 상징합니다. 낮과 밤이 교차되면서 인간에게는 그 누구도 피할 수 없는 죽음이 찾아오게 된다는 이야기입니다.
그러나 여러분, 우리에게는 희망이 있습니다. 죄로 인한 죽음의 문제를 풀 수 있는 길이 있습니다. 죄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방법이 성경 속에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 길이 있는데 그 길을 찾지 않는다면 얼마나 어리석은 일입니까. 죽음의 문제를 풀 수 있는 이 길을 우리 모두에게 함께 공유하고 싶습니다.
구약 시대에는 사람들이 죽을 수밖에 없는 죄를 지었을 때에 그들은 짐승을 가지고 성전에 나와 제사를 드림으로 용서를 받을 수 있었습니다. 제사장이 죄 지은 사람을 위하여 짐승을 잡아 피를 흘려서 제사를 드릴 때에 죄를 사함 받는 원리가 있는 것입니다. 그때 짐승의 피가 우리 죄를 사하여주는 것이 아니라 그 피는 예수님의 피를 상징하는 것입니다. 히브리서 3:29 말씀에 ‘피흘림이 없이는 죄사함이 없느니라’ 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피흘림을 통해서 죄사함의 길을 우리에게 주셨는데 그 피는 어린양 되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서 흘리신 보혈의 피를 의미합니다. 예수님의 피 공로를 바라보고 믿을 때에 우리가 용서 받을 수 있는 죄사함의 길을 우리에게 주신 것입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방법이요 하나님의 공식입니다.
하나님은 왜 이런 지독한 방법으로 죄사함의 길을 만들었는가. 전지전능하시고 못할 것이 없는 하나님이라면 말씀 한 마디로 죄 용서했다고 선포만 하면 될 것인데 이런 복잡한 방법을 택하셨는가 생각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예수 그리스도에게 십자가에서 피를 흘려 죽게 하여 우리 죄를 용서할 수 있는 방법을 택하신 이유는 하나님의 공의를 이루시기 위해서입니다. 죄인을 사랑으로 용서하시는 하나님이시지만 하나님의 공의를 이루시기 위해서는 죄의 값을 치루어야 하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는 우리와 무슨 상관이 있습니까? 그분의 십자가는 우리의 죄를 용서하시고 우리에게 하나님의 심판을 면하게 하기 위해서입니다. 예수님은 우리들 대신 벌을 받고 죽으신 것입니다. 우리의 죄를 대속하기 위해서 돌아가신 주님의 십자가입니다.
사랑하신 여러분, 주님 앞에 나와서 주님의 십자가를 의지하고 믿으면 우리의 주홍 같고 진홍 같은 모든 죄가 흰눈같이, 양털같이 용서 받고 하나님의 자녀가 되어 영원한 하나님 나라에 갈 수 있는 줄로 믿습니다. 이 길 바라보고 하나님의 영원한 약속을 바라보는 하나님의 자녀들이 되어지시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우리는 예수님 안에서 복 받은 줄 믿습니다. 예수님 안에서 용서 받은 줄 믿습니다. 예수님 안에는 정죄함이 없습니다. 예수님 안에서는 살인자도 간음한 자도 용서 받을 수 있습니다. 예수님 붙드시고 모든 죄 용서 받으시고 하늘의 축복 받는 우리들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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